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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31 06:03:17
Name CoMbI COLa
Subject (일상) 아는 것이 힘이다 (수정됨)
월요일에 카톡으로 카드 명세서가 날아왔습니다. 평소보다 30만원 가까이나 많이 나왔더군요. 잠깐 혼란스러웠다가 이내 30만원의 출처가 생각났습니다. 카드 내역을 기준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니 11월 12일 목요일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11/ 12 목
갑자기 오후에 왼쪽 귀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뭐랄까 고기쌈을 먹을 때 입을 너무 크게 벌리면 귀 뒷쪽이 살짝 땡기는 느낌 이랄까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습니다.

11/13 금
아침에 일어났는데 여전히 통증이 있습니다. 마스크를 바꿔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11/15 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통증이 약간 더 심해졌습니다. 어제 늦게까지 안 자고 컴터로 영화보고 해서 피곤해진게 원인이라 생각하고 푹 쉬었습니다.

11/16 월
피곤은 개뿔, 푹 쉬었는데 더 아픕니다. 일 끝나고 이비인후과를 갔습니다. 귀가 아프니까 라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죠. 그런데 의사쌤이 보시더니 귀는 완전 정상이고, 환절기라 목이 좀 부었는데 방사통(통증이 다른 부위로 전달되는 뭐 그런거)인 것 같으니 약 3일 먹어보라 했습니다.

11/19 목
약을 다 먹었는데도 방통인지 방사통인지 차도가 없습니다. 일단 이비인후과는 아니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치아나 잇몸 쪽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치과를 갔습니다. 엑스레이까지 찍었는데 정상이라고 합니다.

11/20 금
어제 치과에서 오는 길에 또 인터넷을 찾아보니 뒷 목의 근육이 긴장해서(소위 뭉쳐서) 그럴 수 있답니다. 그래서 정형외과를 찾아갔습니다. 엑스레이 또 찍었습니다. 또 정상이랍니다. 분명 아픈데 다 정상이랍니다. 일단 주말이니까 진짜 푹 쉬어보기로 했습니다.

11/22 일
이틀간 푹 쉬었는데도 여전히 통증이 있습니다. 자꾸 신경써서 그런가 두통도 있는 것 같고요. 내일은 연차를 쓰기로 했습니다.

11/23 월
이젠 어디를 갈 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내과를 갔습니다. 뇌관련 질환(뇌졸중 등)일 수도 있다며, 근처 대학병원에 소개서를 써 줄테니 검사를 받아보라 합니다. 어우...살짝 후달렸습니다.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를(또?) 소개해 줘서 갔더니 역시나 정상이라고 합니다. CT까지 찍었는데 이상소견 없고 또 방사통이 어쩌고 하더군요. 대학병원에서도 정상이라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집에 오는 길에 환상통 같은거 검색해보고 그랬습니다.

11/25 수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는데 애도 아니고 줄줄 흘렸습니다. 잠결이라 그런게 아니라 뭔가 느낌이 이상합니다. 잠시 후에 샤워 하려고 거울을 보니 얼굴 왼쪽이 주저 앉았더군요. 하루 아침에 말입니다.
이쯤되니 멍청한 저도 병명을 알겠습니다. 구안와사인거죠. 욕 먹을 각오하고 출근 1시간 전에 연차를 쓰고 신경과(인터넷 찾아봄)를 찾아갔습니다. 2주 전부터 통증이 있었다니까 뻔한 클리셰처럼 의사쌤 입에서 왜 이제야 오셨냐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넘모 억울했지만 얼굴이 이렇게 된 건 오늘 아침부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습니다.


약 3주간의 치료로 다행히 지금은 완벽하게 예전의 못 생긴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구안와사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질병은 아닙니다만 정말 삶의 질을 뚝 떨어트립니다. 먹거나 마실 때 질질 흘리고(맛도 제대로 안 느껴져서 식도락이 없어짐), 눈이 안 감겨서 수시로 안약 넣어줘야 하고, 발음이 엄청 세는데 마스크까지 끼고 있으니 상대방이 알아듣기 힘들어하죠. 마스크 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일그러진 얼굴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었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늘어난 카드 값 중에 신경과에서 3주간 쓴 20만원은 보험으로 해결한다 하고, 병원 순회하며 쓴 20만원가량(사실 대학병원에서만 15만원 나옴)은 생각할수록 속이 쓰립니다. 만약 귀 뒷쪽 통증이 구안와사 전조증상인걸 알았다면 아낄 수 있었을테니까요. 세상에 누가 그걸 아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거나 제목에도 적었듯이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제 덕에 알게 되셨으니 저에게 항상 감사하십시오. 제가 드리는 거지같았던 2020년의 마지막 선물입니다.





p.s. 구안와사의 공식 병명은 안면마비 혹은 벨마비 라고 합니다. 그리고 원인은 신경계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라네요. 하여간 코로나도 그렇고 바이러스 놈들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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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1 06:23
수정 아이콘
몇년전에 저도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여기저기 병원 헤메다가 나중에 발견한 것도 똑같네요. 고생하셨습니다.
CoMbI COLa
20/12/31 09:06
수정 아이콘
아이고 고생하셨겠네요. 의사가 신도 아니고 자기 분야가 아닌 질병을 넘겨짚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은 합니다.
단비아빠
20/12/31 13:38
수정 아이콘
(수정됨) 글쎄요.. 엄청 대단한 병도 아닌데 자기 분야 아니라고 못찾는게 과연 용납될만한 일일까 하는 의문은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모르겠다고 하던가.. 모르겠다고 하는게 좀 그러면 최소한 이런 과로 가보라고 조언 정도는 하던가..
억지로 자기 분야 안에서만 병명을 찾아서 그걸로 끝낼려고 하니까 본문같은 상황이 수시로 나오는거 아닐까 싶네요.
어째서 일반인이 몇번이고 시행착오를 하면서 자기 병명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해당하는 과에 정확하게 가야만 하는걸까요..
적어도 [어느 과로 가야하는가?]에 대해서라면 일반인보다는 의사가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 본문같은 상황이라면 적어도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서 CT까지 찍었는데 별다른 이상이 안나온다면
자기네 분야가 아니라는 의미니까 이런 과로 가보라고 해줘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왜 다른 가능성은 저쳐두고 억지로 방사통으로 끝내려고 하는걸까요..? 이미 방사통 약 먹어서 아무 효과 없다는 얘기도 하셨을텐데..
살면서 이런 상황 안겪어보신 분은 없을거라고 봅니다. 적어도 몇번 정도는 겪게 되죠...
CoMbI COLa
20/12/31 17:21
수정 아이콘
사실 저도 글 처음 쓸 때는 다소 비판적인 어조였습니다. 연말이기도 하고 이미 지난 일이라 서운한 감정이 다 날아가서 유하게 바꾸었고요.
대학병원에서 사실상 손을 놓았던게 제가 말씀하신 것처럼 상세히 하소연을 하니 "그렇지만 저희 과(이비인후과)에서는 더 이상 해드릴게 없어요" 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더군요.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다른 과를 추천했는데 헛방이었다? 저기 어디 누구 의사가 여기 가라고 했다 하면서 클레임을 거는 상황이 나온다거나 등등요.
공항아저씨
20/12/31 07:17
수정 아이콘
아이고.. 지금은 다 나으신건가요? 나아지고 있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건강하세요.
CoMbI COLa
20/12/31 09:07
수정 아이콘
네, 지지난주에 다 나았습니다.
보라준
20/12/31 09:34
수정 아이콘
휴 다행입니다!
CoMbI COLa
20/12/31 17:2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하우두유두
20/12/31 08:41
수정 아이콘
정말 다행입니다
CoMbI COLa
20/12/31 17:28
수정 아이콘
인터넷 찾아보니 4% 정도는 후유증이 남는다던데 다행히 96%쪽입니다 흐흐
SAS Tony Parker
20/12/31 08:54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네요..
CoMbI COLa
20/12/31 17:28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20/12/31 09:20
수정 아이콘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매형이 구안와사로 엄청 오래 고생하셔가지고... 귀뒤통증 명심또 명심하겠습니다
CoMbI COLa
20/12/31 17:23
수정 아이콘
한 가지 의사 분에게 들은 내용으로는 빨리 오면 올 수록 치료기간이 짧아진다고 합니다. 증상 발현하고 1달 지나면 치료에 최소 석 달은 생각해야 된다네요.
AaronJudge99
20/12/31 09:54
수정 아이콘
옛날이면 손쓰기 힘들었을텐데....이렇게 원상복구하는것을 보니 현대 의학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CoMbI COLa
20/12/31 17:24
수정 아이콘
전광렬님 나온 드라마 허준 보고 물리적 치료가 필요할 줄 알았는데 바이러스가 원인이라 약이 중요하더군요. 아, 물론 물리치료도 회복에 필수입니다.
민트밍크
20/12/31 09:54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네요.. 아마 통증만 있고 신경마비 증상이 없는 단계에서는 구안와사를 진단할수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게 검사로 진단하는 질환도 아닌걸로 알고있거든요. 통증만 있는데 바로 구안와사를 염두에 두고 스테로이드같은 치료를 해버리면 부작용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도 저 단계에서는 딱히 해줄게 없었을것 같아요. 할 검사도 마땅치 않고요..
CoMbI COLa
20/12/31 17:27
수정 아이콘
안 그래도 그걸 물어봤는데 일단 통증이 있는 것 부터가 마비가 시작된 상황(얼굴이 멀쩡해 보이고, 본인이 못 느끼더라도)이고, 신경과에 오면 전극으로 테스트를 해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덧붙여서 저는 스테로이드 때려 넣어서 치료할 시간이 지나서 회복이 더 오래 걸렸네요.
민트밍크
20/12/31 19:06
수정 아이콘
아아 그렇군요 그런 경우라면 더더욱 억울하셨겠네요
20/12/31 14:48
수정 아이콘
감사의 추천 드립니다
잘 해결되서 다행이에요
CoMbI COLa
20/12/31 17:2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0/12/31 16:55
수정 아이콘
다 나으셨으니 좋은 액땜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CoMbI COLa
20/12/31 17:28
수정 아이콘
저도 액땜 대용(?)으로 연말에 글로 써봤습니다. 새해 복 많으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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