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11/23 12:27:39
Name -안군-
Subject 토요일 새벽. 서울.
어느 추운날 새벽 3시가 넘어가도록 일을 하다가 이제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차를 몰고 건물을 나와 큰길로 나서면 강남에서 유명하다는 클럽이 있다.
한껏 차려입은 젊은 친구들이 술에 취한 채 클럽 앞에 줄지어 서 있다.
일부는 주저앉아있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친구들은 수다를 떨고 있다.

코너를 지나니 새까맣게 선팅을 한 카니발들이 서 있다.
쉴새없이 예쁘장한 아가씨들이 타고 내린다.
저쪽 편에선 중년 남성과 어린 여성이 팔짱을 끼고 고급 승용차에 올라탄다.
그 앞을 지나 남부순환로로 향한다.

남부순환로를 지나 구로디지털 단지 방향으로 향한다.
남구로 역 앞에는 낡고 헤어진 점퍼를 아무렇게나 걸쳐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한켠에서는 큰 솥에 국밥을 끓여서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고,
주변에는 선 채로 국밥 그릇을 들고 허겁지겁 입에 쑤셔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스타렉스 몇대가 와서 길가에 서고, 기사가 내려 뭐라고 소리친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사람들이 스타렉스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영등포 역 앞으로 향한다.
역 앞을 지나 신세계 백화점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붉은 조명이 켜져 있는 낡은 집들이 보인다.
쇼윈도 안에서 거의 헐벗은 여성들이 내 차를 향해 웃으며 손짓한다.
코너를 돌면, 8톤 트럭 가득 배추를 실은 트럭이 서 있고,
작업등을 환하게 밝힌 채로 사람들이 열심히 배추를 내리고 있다.

집에 도착했다.
아직 창밖은 어두컴컴하다.
무거운 몸을 끌고 침대에 누운 나는 생각한다.
서울은 넓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0/11/23 12:53
수정 아이콘
삶의 의욕이 없을 때 새벽 전철 첫차를 타면서 동기부여가 됬던게 기억이 나네요.
20/11/23 12:55
수정 아이콘
저도 정말 실감하는게...
우린 같은 시대에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살면서, 서로 너무 다르게 살고 있고, 그만큼 서로에 대해 모른다는 것입니다.
20/11/23 13: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 정말 좋아합니다.
모르는개 산책
20/11/23 13:00
수정 아이콘
엊그제 배민커넥트 하면서 영등포역 뒷골목을 지나 타임스퀘어를 갔었는데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20/11/23 13:25
수정 아이콘
새벽까지 일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잘 충전하셨기를.. 같은 시간인데도 장소에 따라 참 다양한 삶이 있네요.
20/11/23 13:37
수정 아이콘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라는 문장이 있는 어느 소설이 생각나네요. 쓰신 분의 닉네임까지도 마침.
Ace of Base
20/11/23 14:06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IpDuHHN00mY&t=70s

이 노래 bgm으로 어떠십니까
-안군-
20/11/23 14:07
수정 아이콘
글을 쓰면서 생각났던 음악은 글루미 선데이였습니다. :)
20/11/23 15:40
수정 아이콘
새벽3시까지 일을 하시다니 강철몸이시네요 덜덜...
-안군-
20/11/23 15:41
수정 아이콘
IT 쪽이니 몸 쓰는 일은 아니라서 카페인의 힘으로 그럭저럭 버틸만 합니다. 크크크...
20/11/23 16:41
수정 아이콘
대단하신 거 맞아요.. 전 이제 게임도 3시까진 못해요.. 흑..
그리스인 조르바
20/11/23 16:39
수정 아이콘
저도 새벽에 시가지를 한번 쭉 걸어본적이 있었는데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이 가지각색으로 존재하더군요.
파아란 새벽빛에 움직이는 그 모습들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0/11/23 17:39
수정 아이콘
지리산에 자살하러 새벽에 올라갔다가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걸 보고 자살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글과 오버랩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스타슈터
20/11/23 19:44
수정 아이콘
저도 통신쪽이라 야간근무가 많은데 새벽에 집오면서 늘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네요. 아침에 가까워서 드디어 침대에 누웠을때의 감정은 굉장히 오묘합니다.
깃털달린뱀
20/11/24 00:09
수정 아이콘
1964년, 겨울 이 글 정말 좋아하는데 그 느낌이 나서 정말 좋네요.
전 항상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하구나, 그런데 나는 정말 편협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공지]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게시판을 오픈합니다 → 오픈완료 [53] jjohny=쿠마 24/03/09 25755 6
공지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49182 0
공지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25404 8
공지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48336 28
공지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18460 3
101288 [역사] 기술 발전이 능사는 아니더라 / 질레트의 역사 [2] Fig.1828 24/04/17 828 4
101287 7800X3D 46.5 딜 떴습니다 토스페이 [26] SAS Tony Parker 3130 24/04/16 3130 1
101286 방금 잠깐 1400찍고 내려온것 [71] 따루라라랑6948 24/04/16 6948 0
101285 마룬 5(Maroon 5) - Sunday Morning 불러보았습니다! [6] Neuromancer2202 24/04/16 2202 1
101284 남들 다가는 일본, 남들 안가는 목적으로 가다. (츠이키 기지 방문)(스압) [39] 한국화약주식회사6245 24/04/16 6245 42
101281 떡볶이는 좋지만 더덕구이는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 [25] Kaestro5965 24/04/15 5965 7
101280 이제 독일에서는 14세 이후 자신의 성별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292] 라이언 덕후18111 24/04/15 18111 2
101278 전기차 1년 타고 난 후 누적 전비 [55] VictoryFood11414 24/04/14 11414 7
101277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세계사 리뷰'를 빙자한 잡담. [37] 14년째도피중7855 24/04/14 7855 8
101276 이란 이스라엘 공격 시작이 되었습니다.. [54] 키토14893 24/04/14 14893 3
101275 <쿵푸팬더4> - 만족스럽지만, 뻥튀기. [8] aDayInTheLife4744 24/04/14 4744 2
101274 [팝송] 리암 갤러거,존 스콰이어 새 앨범 "Liam Gallagher & John Squire" 김치찌개2787 24/04/14 2787 0
101273 위대해지지 못해서 불행한 한국인 [24] 고무닦이6871 24/04/13 6871 8
101272 [강스포] 눈물을 마시는 새 고이(考異) - 카시다 암각문 채우기 meson2652 24/04/13 2652 4
101270 사회경제적비용 : 음주 > 비만 > 흡연 [44] VictoryFood7160 24/04/12 7160 4
101268 북한에서 욕먹는 보여주기식 선전 [49] 隱患9473 24/04/12 9473 3
101267 웹툰 추천 이계 검왕 생존기입니다. [43] 바이바이배드맨7343 24/04/12 7343 4
101266 원인 불명의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다수 발생...동물보호자 관심 및 주의 필요 [62] Pikachu11525 24/04/12 11525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