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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1/08 18:42:41
Name 나는모른다
Subject 조던 피터슨 비판 - 명료성의 함정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 조던 피터슨의 논증들은 왜 그렇게 매혹적인가?
2. 조던 피터슨은 누구를 모델로 삼고 있는가?
3. 조던 피터슨의 논증이 가진 맹점은 무엇인가?
4. 사회에서 조던 피터슨 열풍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5. 조던 피터슨 열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글은

에서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이 글의 1부는 거의 이 영상의 요약본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글에 관심을 가졌다면 영상과 이 영상을 제작한 Big Joel에도 관심 가져주세요.




1부 : 조던 피터슨의 황무지


T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어려운 표현으로 소문이 나 있지만, 말하려 하는 주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세계는 황무지다”라는 것입니다.
근대가 가진 중압감 속에서 우리 자신들은 조각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것을 벗어나야 위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고쳐야만 한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기슭에 앉아
낚시질 했다. 등 뒤엔 메마른 들판.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바로잡아 볼까?”
('Shall I at least set my lands in order?')

황무지가 가진 핵심적인 줄거리는 아서 왕 전설에 있는 “어부왕”의 줄거리와 같습니다.
다리 쪽에 큰 상처를 입어 혼자 걸어다닐 수 없는 어부왕은 성 옆에서 낚시만 하는 것으로 생을 보내고, 그의 땅도 지력이 쇠해서 황무지로 변했습니다.
그 어부왕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부왕은 세 가지 말을 들어야만 합니다.

다타, 다야드밤, 담야타. 산스크리트어로 말하면, 주라, 공감하라, 자제하라.
이 단어들을 통해서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바로잡아볼” 수 있게 합니다.
자기 자신의 땅을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조던 피터슨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현대의 TS 엘리엇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엘리엇처럼 무엇이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생각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말하는 judeo-christian tradition에 대한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엘리엇처럼 그 의미를 개인적으로 되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던 피터슨의 정치적 발언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심리학적인 정치”일 것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우리들이 모두 어부왕이라고 보고, 조던 피터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인 TS 엘리엇의 ‘칵테일 파티’ 라는 시극에서, 등장인물들 중 한 명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에게 그녀의 깊은 불행을 말합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고통이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왜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만약 이것이 모두 그녀의 잘못이라면, 그녀는 그것에 대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의 본성에 있다면, 그녀는 끝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건 다 바꿀 순 없지만 자기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그의 영상, “나는 마르크스의 책을 읽었어, 이제 나는 세상을 바꿀 거야”라는 영상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
그는 액티비즘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학생의 말에 그들에 대한 회의와 현혹당했다는 의견을 표출합니다.

“너는 ‘가난에 반대한다’는 팻말과 막대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거다. 대체 누가 가난에 찬성하나? 누구도 가난에 찬성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 덕이란 가면을 써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에게 액티비스트들은 더 큰 문제를, 더 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너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나? 네 동생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해라. 5년동안 같이 싸운 사람 말이다. 가족과 다시 합칠 수 있는지 알아봐라. 여자친구와 싸움을 그만두고 2주라도 지속할 수 있는 관계를 어떻게 만들지를 생각해라.”

액티비즘을 바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액티비스트가 competent, 자격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조던 피터슨에게 competent는 굉장히 제한적인 용어입니다.




이런 말들은 자기 자신의 심리학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줍니다.
조던 피터슨의 말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해줍니다.
액티비스트들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이 이것을 하게 된 이유가 정말 완전히 건전한 곳에서부터 나왔는지 생각하게 해줍니다.
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 인정받고 싶지만 그것을 해야 할 큰 이유가 없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조던 피터슨의 힘은 이것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우리에게 있는 불안과 내면의 갈망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우리 안에 무엇인가가 부재해 있다고 말해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황무지의 문제를 사회 문제의 해결에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황무지에서 벗어나갈 수 있는 사회 정책은 없습니다. 이를 해결할 액티비즘도 없습니다. 이를 해결해줄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도 없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왜 사회에서 문제를 찾으려 드는가?”




조던 피터슨의 논증이 가진 맹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다른 관점입니다.

slobber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주간 60시간동안 일을 하며, 그 일을 좋아하지 않고, 돈을 많이 받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의 결혼 생활은 망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봅시다. “그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고 관계를 회복하게 해줄 만한 요소가 존재하는가?”
당연히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관점으로의 접근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slobber가 가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A. 깊은 심리학적인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B. 아니면 slobber가 그의 시간 대부분을 자기가 싫어하는 일에 쏟기 때문인가요?
slobber의 부인이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A. slobber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인가요?
B. 아니면 slobber가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일까요?
slobber가 다른 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A. 그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작고 어리숙한 일도 하지 않기 때문인가요?
B. 아니면 그가 처한 상황이 단 하나의 실패도 인정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B의 주장은 이 상황에서 더 알맞고 더 익숙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행복은 뗄래야 뗄 수 없게 사회와 엮어져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푸는 것이 slobber를 도와주는 길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거시적인 사회와 그에 속한 개인의 행위로부터 형성되는 관계를 인지해 내는 능력,
즉 사회학의 용어 중 하나인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심리학적인 정치”에 대비되는 “사회학적인 정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slobber에 대해서, 또한 모든 정치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가진 생각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조던 피터슨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엉클어놓는 데 논증을 바치고 있습니다.

조던 피터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던 피터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받아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보는 것을 그만두고 자기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봅니다.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문제도 사회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 사람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The gift of social apathy, 사회적 무관심이란 선물을 받아냈다는 것입니다.
저는 조던 피터슨의 영상을 많이 둘러봤지만 단 한 곳에서도 사회학적 상상력을 보이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사회학적 상상력이 부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문제가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로 보아야 할 때 조던 피터슨의 논증은 가장 독특해집니다.
조던 피터슨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점이 바로 이것에 해당됩니다.
()

조던 피터슨에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문제에 직면한 젊은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줄 수 있나요?"
즉, 개인적인 책임감을 갖고 살아도 지구온난화와 같이 집단적인 책임을 필요로 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을 질문한 것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감을 회피하기 위해 사회적 문제에 사이비 도덕성 잣대를 들이민다"고, 자기의 문제조차 제대로 정리 못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그는 지구온난화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지구온난화는 우리의 위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님이 전문적인 직종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다면,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회적 문제에 사이비 도덕성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기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의 부재라는 사실이 그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혼란스러운 답변을 낳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진짜로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방법인가?”




그의 사회학적 상상력의 부재가 가장 눈에 띄는 사례를 알려주겠습니다.

그는 그의 강의 중에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인용합니다.
()
거기서 조지 오웰은 탄광에서 일하는 가난한 여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올 굵은 삼베 앞치마, 꼴사나운 나막신, 추위에 빨개진 팔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차가 지나갈 때 그녀가 올려다보는 바람에 나는 지척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둥글고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슬럼가의 젊은 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유산과 고역 때문에 스물다섯인데도 마흔은 돼 보이도록 지쳐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순간 동안, 내가 익히 본 적이 없는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느끼는 것하고 똑같이 그들이 느끼는 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리고 슬럼에서 자란 사람들은 슬럼밖에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의 오산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때 내가 그녀의 얼굴에서 본 것은, 까닭 모르고 당하는 어느 짐승의 무지한 수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모진 추위 속에, 슬럼가 뒤뜰의 미끌미끌한 돌바닥에 꿇어앉아 더러운 배수관을 꼬챙이로 찌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운명인지를, 내가 알듯 그녀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사회가 그녀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또한, “슬럼에서 자란 사람들은 슬럼밖에 상상할 수 없다”가 사실이 아니듯,
그녀가 이것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됩니다.

조던 피터슨은 그녀를 도와야 한다고, 동정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조지 오웰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들이 부자들을 싫어하기만 할 뿐 가난한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조던 피터슨은 거기에서 액티비스트가 어떻게 나쁘고 현혹당했는지를 언급합니다. 그는 예전에 다른 강의에서 했던 말을 반복합니다.

“너는 팻말을 든다. ‘가난에 반대한다’라는 아주 진부한 팻말을 들고 시위한다. 이것이 진짜인가. 이것은 마치 ‘고문에 반대한다’ 같은 팻말이나 다를 바 없다. 너무 당연하다. 그 어떤 제대로 된 사람들도 가난에 찬성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녀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말하고, 얼마나 그녀의 삶이 어려운지 말하고,
그녀의 삶이 나아질 거라 말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한 뒤에,
그것이 끝인 것입니다.

그녀는 그곳에 갇혀 있습니다. 그녀는 그 북잉글랜드의 그 추운 탄광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던 피터슨이 그녀에게 세 단어를 가르쳐주는 것을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타, 다야드밤, 담야타.”
조던 피터슨은 이 단어들로 사회의 문제가 정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해선 안될 것입니다.




2부 : 명료성의 함정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용어와 비슷한 운명을 가진 용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선형대수학에서 언급되는 “초른의 보조정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첫째로, 이 두 용어는 모두 수업 첫 시간에 언급되는 단어라는 점이 있습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사회학에서, 초른의 보조정리는 선형대수학에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단어이고,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맨 처음에 나온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이 두 용어를 만든 사람들은 이보다 더 유명한 용어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만들어낸 C 라이트 밀즈는 그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나 이 용어만큼 유명한 개념은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막스 초른 또한 초른의 보조정리를 알린 이후로 다른 활동을 했으나 그만큼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셋째로, 이것이 첫째와 둘째를 만들게 된 원인인데, 이 단어는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 채 암묵적으로 쓰고 있던 것을 용어화했다는 점입니다.
초른의 보조정리는, 막스 초른이 지적하기 전까지는 마치 기존의 정리인 것처럼 사용하다가, 막스 초른이 이것이 선택 공리와 동치이고 집합론의 공리로 받아들여야만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름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단어도 이것과 비슷합니다. 이 용어가 나오기 전에도, 사람들은 이것을 암묵적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단어를 용어화해야 하는 원인이 나온 이후로 이 단어를 쓰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사회학적 상상력을 몰랐을 수도 있었지만, 사회의 일원 전부가 사회학적 상상력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조던 피터슨 열풍을 일으킨 이유는, 사회가 사회학적 상상력을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가설입니다.

초른의 보조정리도 직관이란 면에서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른의 보조정리와 동치인 선택 공리는 직관적으로 참인 것처럼 보이지만, 똑같이 동치인 정렬 정리는 직관적으로 거짓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가 조던 피터슨 열풍을 일으킨 것도 그것에 대해 직관적이지 않은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이 유사성을 받아들여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존에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적은 경우에도, 많은 경우에도 충분히 직관적일 수 있었습니다. 2012년도의 힐링 열풍이 불었을 때는, 김난도의 책과 김제동의 강의가 동시에 직관적일 수 있었던 때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긴 논쟁 이후 더 이상 사회는 말하기 어려운 주제가 되어, 개인과 사회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보다 개인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이 더 명료하게끔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회”보다 “개인”으로 설명하는 것을 더 명료하다고 받아들입니다.
김제동이 더 이상 명료한 말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변화된 시기에 나온 자계서인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7년에 나온 “신경 끄기의 기술”은 그 전에 나왔던 자계서들과 비교하여 차이를 보인 점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기존 자계서가 한 가치 판단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는 좋은 가치에 대한 기준을 1. 현실적인 것, 2. 사회적으로 건설적인 것, 3. 즉각적,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좋은 가치의 예로 정직, 혁신, 자기존중, 호기심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 예들 또한 제시했는데,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헛된 정의 추구”입니다.
헛된 정의 추구는 현실적이지 않으며, 감당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으니,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단순한 삶을 위해 그만 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 책에서 나온 그만 두라는 말은 사회적 무관심, 즉 사회학적 상상력을 끊고 개인적인 문제에 집중하라는 조던 피터슨과 같은 입장에 있게 됩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명료해 보이지 않게 된 것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왜 사회의 문제로 보는 것을 그만두고 자기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을까요.
왜 조던 피터슨은 유튜브에서 가장 각광받게 되었을까요.

조던 피터슨에 대한 가장 많은 비판은 그가 말하는 Postmodern Neo-Marxist, 포스트모던 네오마르크스주의자란 용어의 애매모호성에 있을 것입니다.
사회학적 상상력, The gift of social apathy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때, 그의 Postmodern Neo-Marxist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social sympathizer”
사회에 관심 가지는 자들, 사회학적 상상력을 아직 가진 사람들, competent하지 않아도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바로 조던 피터슨이 비판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또한 조던 피터슨의 열풍에 벗어나려면 받아들여야 할 사람일 것입니다.
이들의 글은 명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목표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지, 그 목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명료성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보다 “개인”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명료하다고 받아들였을 때, 명료한 것이 바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자기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주장이 더 명료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에는 더 이상 말하기 어려운 주제가 있었음을, 설명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주제들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던 피터슨이나 벤 샤피로의 토론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에서 더 명료한 사람의 의견을 옳다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그만두어야만 합니다.




저는 좋은 글이 명료한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좋은 글은 생각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기존 생각들, 자신의 지평을 뒤바꾸게끔 초점을 변경하게 해주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봅니다.

그런 글은 본성부터 읽기 어려운 것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 글은 “침묵의 봄”, “총, 균, 쇠”가 어려운 것처럼 읽기에 힘들 것입니다.
이 책들은 Conventional Wisdom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책들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일반적 통념에 대항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러한 통념을 가진 일반인들의 초점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명료성이 우리가 명료성이라 흔히 칭하는 논리적 순수성이 아닌 보는 관점, 그림의 다채로움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우리도 또한 기존의 명료성, 거짓된 명료성이 아닌 사고방식의 변화라는 참된 명료성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렇게, 전 쉽고 명료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유튜브 시대에 대한 하나의 반시대적인 투쟁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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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충달
20/11/08 18:49
수정 아이콘
내용은 명료하지 않아도 좋으나, 표현은 할 수 있는한 최대로 명료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명료한 것만 좇는 게 문제인 만큼 명료할 수 있는 걸 명료하지 않게 써서 지적 허세를 부리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밥오멍퉁이
20/11/08 18:54
수정 아이콘
보통 복잡한 것에 대한 복잡한 얘기가 이해하기 어려운 걸 지적허세로 치부하기가 더 쉽지 명료하지 않게 써서 지적허세를 부릴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나마 권위있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써도 사람들이 이해해주려고 하고. 그마저도 비슷한 권위를 소지한 사람들한테 비판당하기 일쑤고요. 명료성 그 자체가 때로는 오해나 단순화를 피할 수 없게 만들고 복잡한 내용을 명료하게 표현하면 보통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해서 나는 그 얘기 한게 아닌데? 하는 경우도 많고요.
아마추어샌님
20/11/08 19:23
수정 아이콘
조금 실례일 것 같긴 하지만 쓰신 댓글 내용을 조금 다듬어 보았습니다.

어려운 것을 이해하지 않고 그저 허세로 치부하는 건 쉽지만
의도적으로 어렵게 써서 허세부리는 경우는 거의 없죠.

권위가 있는 경우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노력는 경우가 있고
아니면 비슷한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비판 당하기도 합니다.

명료하게 쓰면 오해나 단순화가 일어나게 되고
그로인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읽는사람이 이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유자농원
20/11/08 20:20
수정 아이콘
따봉.
밥오멍퉁이
20/11/08 23:08
수정 아이콘
마지막줄은 좀 이상하게 쓰신거같은데.. 어쨌든 감사합니다
라이징패스트볼
20/11/08 18:5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명료함의 맹점에 관한 내용이 무겁게 다가오네요.
시나브로
20/11/08 18:5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무언가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계속 이야기하고 고찰하고 탐구하고 하는 것은 유익하고 좋다 생각합니다.

책 '신경 끄기의 기술'은 참 좋은 책인데 pgr 추천 게시판에도 관련 글이 올라가 있으니 이 댓글 보시는 분들께 추천해 드립니다.

https://pgr21.com/recommend/2921

(링크 본문 중) '신경쓰는 상황은 언제나 생긴다. 그러나 우리에게 큰 신경거리가 있으면 작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모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넷 댓글로 싸웠던건 기억하기 힘들다. 새로 올린 프로필 사진에 '좋아요'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건 신경쓸 여력이 없다.'
아이군
20/11/08 18:55
수정 아이콘
대략 읽어봤는데, 조던 피터슨은 간결한 설명(명료성)의 장점으로 떳지만, 반대로 그 간결한 설명의 단점으로 가라앉았다는 말씀 같네요.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소위 음모론자들이 뭔가 하나로 다 설명하려고 하는데, 명료성은 거기에 빠지기 쉽습니다. 결국 피터슨 본인도 막시즘 음모론에 빠져버렸죠.
-안군-
20/11/08 19:00
수정 아이콘
딱 생각나는 단어가 [공정]이네요.
기계적인 공정은 그 자체로 굉장히 명료하죠.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회적 복잡성에 대해 외면하게 만듭니다.
조던 피터슨의 강의를 접해본 적은 없지만, 피지알의 여러 글/댓글들과 몇몇 유튜버들이 하는 얘기들과 오버랩되네요.
그 닉네임
20/11/08 19:09
수정 아이콘
피터슨의 영상을 보고 감명받은 사람들은 남성,백인,저소득자층일텐데 social sympathizer들은 이 사람들의 고충을 들어주지 않죠.

또한 마지막 문단의 명료함에 대해선 깊이 공감합니다.
조금만 긴글이 있어도

세줄요약 없음?

이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예전에 비해 '명료함, 간단함'의 가치가 폭등하고 있어서 걱정이 되네요.
하심군
20/11/08 19:13
수정 아이콘
그알싫에서 신라대학교 식품공학 교수가 나와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죠. 교수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모르겠는데요라고요. 저는 그 말이 교수는 그걸 알려고 하는 직업이라는 말 처럼 들리더군요.
실제상황입니다
20/11/08 19:13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근본적으로다가 사회가 사회학적 상상력을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조던 피터슨 열풍이 일어났던 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열풍이 거세게 불었는가.. 하면 그렇듯 어려운 환경에서 특정한 사회적 상상력들을 학생들 훈계하거나 대중들 계몽시키듯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 아닐까요. 사회학적 상상력을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런 사회적 상상력들이 사회를 분열시키고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신경 끄기의 기술”이란 책에서 “헛된 정의 추구”를 비판적으로 봤었다는 건 생각해볼 만한 점이라고 봅니다. 저도 명료성에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모른다님께서 말씀해주신 바에도 대체로 동의하구요. 근데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도 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쪽으로 잘 모릅니다만 피터슨 열풍도 사회적 상상력을 조심성 없이 발휘해서... 아니 그냥 조심성 없이 발휘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발휘한 것들을 또 조심성 없이 강요하다시피 떠들어대서 생긴 거라고 봅니다. 그런 사회적 상상력들은 밸런스가 부족해서 다같이 공감하기에도 쉽지 않으니 말입죠
20/11/08 19:16
수정 아이콘
생각해봄직한 얘기들이 많지만 어째선지 정치만능주의로 귀결되는 느낌을 받네요. 정치는 언제나 대중을 광장으로 불러모으게하죠.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을 책임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정치의 효과를 과대포장해서 대통령 한명 바뀐다고 천지가 개벽할것처럼 마케팅하죠. 그런 만능주의가 극단에 다다를수록 거기에 반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는 또 다른곳이 생길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심군
20/11/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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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치가 문제 해결의 답이고 정치는 국회에서 하는 것이 아닌 회사와 노동자, 커뮤니티안에서의 개인, 나와 얼굴을 맞대고 하는 모든 의사소통이 정치이기 때문이죠. 정치가 없는 사회는 결국 지역유지와 농민처럼 관계역전이 불가능한 계급사회에서나 가능한 물건이었다는 게 제 결론이 되더군요. 결국 우리는 정치를 하고 살아야하고 롤에서나 하는 정치질과 그 정치질을 보고 정치를 혐오하게 되는 건 결국 자신의 가치를 딸어뜨리게 되는 거라고 봅니다.
피우피우
20/11/0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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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사회학적인 의미로 얘기하는 정치와 일상적인 의미로 얘기하는 정치가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일상적 의미의 정치는 국회의원, 대통령, 정치인들이 하는 일들이겠지만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정치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가치관에 관한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도 아우르는 용어 같습니다.
20/11/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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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명료하지 않은건 비슷한 문제에서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제가 사회의 문제에서 자신의 문제로 오게된 가장 큰 이유는 사회를 고치자던 민주당과 조국의 행동에 너무 실망해서입니다.
글의 관점은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잘읽었습니다.
댓글달면내가개다
20/11/0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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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같은 물건에 대한 글이라도, 그 물건에 붙은 가격표와, 사용설명서와, 그 물건을 선물하며 함께 담은 손편지의 역할과 가치는 다르죠. 명료성은 명료성의 역할이 있지만 명로성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가격표만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것 같은 함정이 있겠네요. 덕분에 명료하지 않던 조던피터슨에 대한 제 생각이 좀 더 명료해졌습니다.
구밀복검
20/11/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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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드 딱지 붙은 전원책이지요. 보리적 합수의 살아 있는 표본.. 새로운 것도 굳건한 것도 없는데 유튜브 덕에 떴다가 이젠 다들 실체 까보릅 되어 떡락한 거 알고 손절하고. 사실 팩트 논리 합리 이성 과하게 강조하는 사람 치고 정상인 없다는 걸 보여주는 교보재.
20/11/0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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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방정리 마스터 분이 자기 방정리 제대로 못한거에서 끝났다고 봅니다
20/11/0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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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번역체 어투의 글인거 같아 잘 읽히질 않네요.. 나만 그런가.. 근데 비판할땐 비유를 들어 비판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던 피터슨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현대의 TS 엘리엇이다 라는 말을 하는 순간 글을 읽기가 싫어집니다 비판해야될것은 조던 피터슨이지 TS 엘리엇이 아닙니다 조던 피터슨과 TS 엘리엇의 공통점을 들어 비판하고 싶으시겠지만 둘이 같은 말을 했다하더라도 그 말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를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아무튼 비유를 하는순간 또 비유를 잘못하는 순간 우리는 비판하는 상대에 대한 터무니 없는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조던 피터슨에 대해 자세한건 모르지만 유튜브 영상들은 좀 봤었습니다 조던 피터슨이 자격이 있어야 세상의 문제에 눈을 돌릴수 있다라고 느껴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대의(사회적문제해결)에 대해 그것이 정의일지 너가 노력함으로서 해결가능할지 불확실한 것들을 바로잡으려 하기보단 니 옆에서 니가 확실히 할수있는 실현가능한 것들을 하는것이 작게는 너에게 크게는 너를 둘러싼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라고 말하고 있는것으로 이해했고 이정도라면 크게 문제가 없는 말인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댓글달면내가개다
20/11/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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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한 댓글이네요. 본문을 이해하신지 의문...
20/11/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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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부분에서요?
댓글달면내가개다
20/11/0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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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신 글을 쪼개 보죠.
1. 뭔가 번역체 어투의 글인거 같아 잘 읽히질 않네요.. 나만 그런가..
타인이 공들여 쓴 글 면전에 ‘번역체’ 운운부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만 그런가..)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구요.

2. 근데 비판할땐 비유를 들어 비판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던 피터슨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현대의 TS 엘리엇이다 라는 말을 하는 순간 글을 읽기가 싫어집니다 비판해야될것은 조던 피터슨이지 TS 엘리엇이 아닙니다 조던 피터슨과 TS 엘리엇의 공통점을 들어 비판하고 싶으시겠지만 둘이 같은 말을 했다하더라도 그 말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를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아무튼 비유를 하는순간 또 비유를 잘못하는 순간 우리는 비판하는 상대에 대한 터무니 없는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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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판할 때 비유를 들지 말라는 것인지 충분히 논증되지 않고, 설득력도 없습니다. ‘글을 읽기가 싫어집니다’ 따위의 기분 나쁜 감상만 있구요.
본문에서는 조던 피터슨의 ‘주장’에 대해 TS 엘리엇과 충분히 비교하며 서술하고, “둘이 같은 말을 했다하더라도 그 말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를수 있”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조던 피터슨의 주장을 비평하고 있습니다. 엘리엇을 오용하거나 비난의 도구로 삼는 것도 아니고, 그 나름의 쓰임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며 비평하는 것까지 문제를 삼는다면, 역시 적어도 본글에서, 말씀하신대로 ‘비유를 잘못하는 순간’ 발생한 ‘터무니 없는 오해’ 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발생하였는지 ‘명료히’ 말씀해주셔야죠.

그냥 오해할수도 있단 말이야! 비유쓰지마! 정도의 수준의 댓글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묻고 싶군요.
마지막 세번째 논지는 더 어처구니가 없는데,

3.조던 피터슨에 대해 자세한건 모르지만 유튜브 영상들은 좀 봤었습니다 조던 피터슨이 자격이 있어야 세상의 문제에 눈을 돌릴수 있다라고 느껴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대의(사회적문제해결)에 대해 그것이 정의일지 너가 노력함으로서 해결가능할지 불확실한 것들을 바로잡으려 하기보단 니 옆에서 니가 확실히 할수있는 실현가능한 것들을 하는것이 작게는 너에게 크게는 너를 둘러싼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라고 말하고 있는것으로 이해했고 이정도라면 크게 문제가 없는 말인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던 피터슨에 대해 자세한건 모르지만’ - 으로 시작해서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라는 인상 비평도 웃기지만, 적어도 글 쓴 분은 정성을 다해서 “ 조던 피터슨은 대의(사회적문제해결)에 대해 그것이 정의일지 너가 노력함으로서 해결가능할지 불확실한 것들을 바로잡으려 하기보단 니 옆에서 니가 확실히 할수있는 실현가능한 것들을 하는것이 작게는 너에게 크게는 너를 둘러싼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라는 것의 한계를 공들여 지적한 것인데요.

바로 말씀하신 그 부분에 한계가 있음을 본문 내내 말씀하셨는데,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로 글을 맺으시면 의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부디 제가 의아했던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아셨기를 바랍니다.
20/11/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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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부분은 대부분 동의하긴 하지만, 댓글을 읽다가 조금 부연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몇 글자 써봅니다.

[비판할땐 비유를 들어 비판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는 댓글이 상당히 무례하게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TS 엘리엇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유라는 것은 설명하려고 하는 대상을 좀더 알기 쉽고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비유를 위해 가지고 온 TS 엘리엇을 잘 모르는 저같은 사람은 이 글의 첫부분부터 미궁에 빠져버립니다. 본 글에서 TS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주어져 있지 않고요.

그리고 이 글의 2부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용어를 선형대수학에서 언급되는 “초른의 보조정리”와 비교하면서 주장을 전개하는데, 저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용어를 충분히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초른의 보조정리"는 전혀 모릅니다. 고등학교 수학과정까지 비교적 성실하게 거쳤던 제가 모르는 수학정리라면 아마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은 모를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따라서 일반인이 보는 게시판에 글을 쓰면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비평하기 위해서 "초른의 보조정리"를 가지고 오는 것은 정말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같습니다. 초른의 보조정리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말은 충분히 비평가능해 보이고, 오히려 초른의 보조정리 없이 설명하고 비평하는 것이 더 나아보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원글과 같은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인문학에서 과학적 용어를 "명료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와서 쓰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명료하다고 모두 좋은 글은 아니지만, 명료함은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료한 글로도 충분히 사고의 지평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난해함"이나 "모호함"이라는 포장 뒤에 숨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사고의 지평이 흔들리는지 아닌지 조차 헷갈리게 하는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0/11/0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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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먼저 왜그리 공격적이시고 고압적이신지 모모르겠습니다.
1. 한 단락을 예로 들면 "액티비즘을 바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액티비스트가 competent, 자격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조던 피터슨에게 competent는 굉장히 제한적인 용어입니다." 이 글만 보면 이해하기가 좀처럼 힘듭니다. 온갖 영어가 한글과 영어로 쓰여있고 마지막 문장, 조던 피터슨에게 competent는 굉장히 제한적인 용어입니다. 는 무슨 의미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후술하는 말도 없구요. 그래서 번역체 어투라고 썼고 혹시 내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런가 해서 나만 그런가 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 제가 보통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것 같아서요.
2. 왜 비유를 들지 말라는 것인지는 자꾸 무리하게 조던피터슨과 TS앨리엇을 동치시켰기 때문입니다. 다타, 다야드바, 담야타 -> 주라, 공감하라, 자제하라 ->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바로잡아라(자신의 땅을 정리한다) 로 이어지는 해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조던피터슨이 말했던 자신의 방을 정리하라 라는 말과 유사함을 이끌어내 조던피터슨을 비판하기 위한 무리한 비유일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엘리엇과 조던피터슨을 동치시키는 무리한 비유가 계속되고 이는 까기위해 얶지로 엮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얶지로 까기 위해 게속 비유를 하는 글을 읽기 싫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3. 조던 피터슨에 대해 자세한건 모르지만 = 당연히 조던 피터슨이 했던 말에 대해 제가 아는것과 모르는 것이 있을테니 내가 유투브 영상을 통해 봤던 조던 피터슨에 대해 말하겠다
느껴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 내가 이해한 바로는 조던 피터슨은 그런 맥락에서 말을 한적이 없었다. 이게 웃긴가요?
이 글은 조던 피터슨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조던 피터슨의 말을 왜곡해 조던 피터슨의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활동가들이 그것을 해야 할 큰 이유가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는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사회정책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도 않씁니다. 그리고 저는 아까 해석할수 없었던 글쓴님의 "조던 피터슨에게 competent는 굉장히 제한적인 용어입니다."를 다시 써보겠습니다. 조던 피터슨에게 자격이란 굉장히 엄격한 용어입니다. 글쓴님은 자격이라고 해석했던 용어를 저는 유능함으로 바꿔 보겠습니다. 조던피터슨에게 유능함이란 굉장히 엄격하게 쓰이는 용어입니다. 조던피터슨이 유능하다는것을 굉장히 엄격하게 쓰고 있는지는 제가 알고있는 바로는 모르겠지만 조던피터슨은 네가 복잡한 사회문제를 깊숙이 이해하는 유능함을 갖추지 않았다면 그것을 고칠확률은 0이라고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바꿔 말하면 네가 유능하다면 고칠수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조던피터슨은 활동가들에게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정책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큰 이해 없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활동가들을 비판할 뿐이죠.
20/11/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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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피터슨의 철학은 잘 몰라서 이렇다저렇다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운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만 글의 논지를 반박하는 건 아닌데, 최소한의 명료함은 선일 거에요. 추상적이고 의미를 함의함으로서 커뮤니케이션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특히 문자로 소통함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음란파괴왕
20/11/0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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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꼰대스러운 말들을 되게 그럴듯하게 잘 표현하는 재주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전통적 가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 되겠군요. 한동안 사회가 명확하지 않은 어떤 정의에 매몰되어 있다보니 생긱 피로감의 반작용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사상가라기 보다는 현시대에 필요했던 사람이 아닐까 싶은 느낌.

막줄은 되게 공감하기 어려운데... 명료한건 명료한거고 생각하게 하는 건 생각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보통은 명료한 글이 생각하게 해주는 글인 경우가 많습니다.
20/11/0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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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피터슨의 글을 보면, 이 사람은 꼰대중에 상꼰대죠. 그런데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터슨은 전통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금 시대가 전통적인 가치들을 낮게 평가하다보니 반대급부로 주목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런 사람들도 더 많이 나와야해요.
20/11/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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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피터슨은 심리학자이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터슨의 논지를 가지고 와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게 적절한 비판인지 의문입니다.

예시로 들어주신 slobber 라는 사람이 불행한 이유에는 사회적인 이유도 있고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요. 사회가 해결해 줘야 되는 문제를 무시한 채 모두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 만큼이나 그 반대도 잘못된 해결방안이 아닌가 합니다.
20/11/0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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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조던 피터슨은 임상심리학자지 사회학자나 철학자가 아닙니다. 너무 유명해져서 개인들에게 하는 충고를 사회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허수아비치고 있다고 봅니다. 뭐 좀 아는척하고 싶으면 피터슨 까면 좀 있어보이니까요.
20/11/09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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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문제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는 사회적으로 다루는 게 맞다고 봅니다. 둘이 분리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20/11/1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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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법륜스님이 '결국은 니 마음의 문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개인에게만 촛점을 맞추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심리학자, 상담사, 의사 등은 개인의 마음의 병,몸의 병을 고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의 병을 고치려면 이 약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하는데 거기에 대고 이 사람이 이렇게 된 사회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왜 눈감고 있느냐고 지적하는 거나 비슷한 게 아닐까합니다.
번개맞은씨앗
20/11/0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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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던 피터슨의 영상을 많이 둘러봤지만'

글이 온통 단정조로 쓰여져 있는데, 자신감이 대단하군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회학을 '이야기짓기'라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면, 그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창작자의 인격인 거라 생각합니다. 그의 욕망, 그의 불안, 그의 성격 따위가 반영되어서 이야기짓기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인 거죠. 사회학의 모든 것이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 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짓는 창작자에게, 그리고 선택적으로 이야기를 골라 듣고 믿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격을 되돌아보라고 긴장감을 주는 것은 좋은 거라 봅니다.
피우피우
20/11/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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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 명료성의 함정 부분은 특히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본문에 쓰신 '명료성'에 대해 제가 생각한 부분을 재구성해보면..
저는 명료성을 크게 형식적인 명료성과 의미적인 명료성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컨대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다" 라는 문장은 현대에는 형식적으로도 명료하고 의미적으로도 명료하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이 문장은 형식적으로는 명료할지언정 의미적으로는 전혀 명료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현대에도 누군가에겐 이게 의미적으로 전혀 명료한 문장이 아닐 수 있을 거고요.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다" 라는 문장을 '명료'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논거와 자료를 준비하고 이를 잘 정리해서 이야기해야 할텐데, 경우에 따라 이 과정에서 형식적인 측면의 명료성은 오히려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애초에 의미적으로 명료하지 않은 내용을 형식적인 명료함에 집착해서 이야기하려 한다면, 자칫 잘못하여 소위 '명언충'이 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의미적으로 명료하지 않은 내용, 즉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형식적인 명료함을 좀 잃어버리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뭐 이런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20/11/0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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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렇게 쓰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매우 역설적이게도 명료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글로 보여집니다.
양파폭탄
20/11/0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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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무관심이라는 선물이라... 인간은 발췌독이 가능하고 발췌해서 의견을 수용할 줄 아는 동물이죠.
이선화
20/11/08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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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그랬죠.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역시 미국의 대문호다운 통찰력입니다그려..
블랙박스
20/11/0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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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원인을 내부에서 찾을 것인지 외부에서 찾을것인지에 대한 답은 누가 일률적으로 정해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문제를 외부에서만 찾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하기 쉬운 동시에 늘 사회와 환경에 대한 불평과 핑계만 가득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고, 반대로 문제를 내부에서만 찾는 사람들은 결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 앞에서도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는 고통스로운 삶을 살게되는 동시에 세상을 바꾸는 일에는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던 피터슨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항상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이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uantum21
20/11/0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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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그의 영상이나 책을 보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저는 조던피터슨의 주장이나 사상이 명료하다고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의 미덕을 느끼기에는 함량미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명료함을 척도로 본다면 평균적인 식자들인 가진, 특출날 것 없는 정도였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주장에 동감하는것과 그렇지 못하는것도 혼재되어 있지만
조던피터슨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그의 혹은 그 주장의 "명료성"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소위 political correctness, 거기에 더 나아가 소셜워리어들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과 반감을 대변해주었기 때문이다라고 느껴집니다.

러셀옹께서 하신 말씀중에 이런게 있었죠.
이 세상의 문제는 바보들과 광신도들은 항상 확신에 차있고, 현명한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이다.
The whole problem with the world is that fools and fanatics are always so certain of themselves, but wiser men so full of doubts.
20/11/08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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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러셀의 명언을 상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1/0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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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험한 산이에요.
설악산보다 높은 산은 없어요
20/11/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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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의미로 쓰신건지 알수 있을까요?
스칼렛
20/11/0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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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공감하는 글입니다. 들었을때 바로 이해되는 말, 명쾌한 삼단논법, 간단하고 자명한 해결책 같은 것들에 사회가 중독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좀 삐딱해지자면 과연 조던 피터슨이 본인의 정신건강과 약물 의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바쿠닌
20/11/0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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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명료성의 유혹과 그 맹점을 비판하고자 피터슨의 일부만을 억지로 끌어온 느낌이 듭니다. 피터슨을 향한 지지들의 배경에는 그 논증에 감화된 사례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요인은 서구의 정치, 문화적 주류에 대한 반감이 유튜브라는 글로벌한 플랫폼을 만난 덕이 큽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이 피터슨에게 환호한 건 주류 미디어 담론에 대한 반감을 세련된 언어로 풀어낼 존재가 필요했던 거고, 마침 피터슨이 그 안티테제의 표상으로 대변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피터슨의 영상을 쭉 보다보면 그 대척점에 있는 패널들보다 '덜' 명료합니다. A=B 식의 정의와 'A=옳다 B=그르다' 식의 윤리론을 부정하며 논증을 시작하는 게 조던 피터슨의 화법이에요. 무엇에 대해 논하건 간에 그것이 단일변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방어적으로 논증하죠. 적어도 저는 피터슨에게서 관성적 통념을 반대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습니다. 지젝과의 토론에서 똥꼬쇼 좀 했고, 지금 개인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해서 피터슨의 가치가 퇴색될 것 같진 않아요. 이 글의 댓글에도 달렸지만 어떤식으로든 필요한 인물이었으니까요.
갸르릉
20/11/0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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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게 맞는 방식인데 이게 개인에게 빠르게 적용되지 않는게 문제죠. 내가 지금 점심밥 먹을 돈이 없는데 사회탓 한다고 해결이 안되죠. 그런 사회적 논의에 지친 사람들에게 피터슨의 말이 해결책처럼 다가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좌파든 우파든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경제는 갈수록 안좋아지니 사회가 내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을 포기하는 거죠. 지금 한국에서 20대만 해도..이 집값폭등을 대체 누가 해결해줄수 있을까요..평생 내 집 하나없는 미래가 확정적으로 기다리는 상태죠.
벌점받는사람바보
20/11/0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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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기존 생각들, 자신의 지평을 뒤바꾸게끔 초점을 변경하게 해주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봅니다.]

이런 글이 굳이 읽기 힘들고 텍스트 량이 많아야지만 된다고 생각하지않습니다.
이부키
20/11/09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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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말잘하는 보수죠.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사회에서 찾으면 진보고 개인에게서 찾으면 보수라는 큰 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20/11/0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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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어려운 얘기는 어렵게 풀 수 밖에 없죠.

명료성의 함정은 통계가 가장 큰예시죠. 우리 주변에서 흔히보이곤 한다고 생각하네요. 뭐 이건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테고.

전 명료함은 필연적으로 과한 단순화의 오류에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과학 다큐나 유튜브를 자주보는데 언제나 이야기 초반부분에 '이건 쉽게 설명하기 위한 예시일 뿐입니다. 실제는 다릅니다'라고 나오죠.
라이징패스트볼
20/11/0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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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슨에 대한 과도한 찬양과 과도한 비난은 무엇이 먼저이든간에 서로 불가분적 관계라고 봅니다. 페미니즘 이슈에서 부각된 이후로 누군가는 피터슨을 이시대 최고, 최후의 지성인으로 추앙하고, 누군가는 고리타분하고 헛점도 많은 얘기나 하는 양반으로 치부하죠.

저는 명료함이 사유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더 그렇죠. 어쨌든 그들은 대중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인데 이정표가 혼란스러우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겠죠. 사회문제가 복잡하고 마냥 명료할 수 없는 것은 수 많은 고려사항들이 있고 이에 따른 수 많은 길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 안에서 각자가 최선이라 생각하는 길을 제시하는 사람은 자기 이론의 명료함을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유의 나태함이나 빈곤합을 명료함으로 포장해서 이 세상 모든 문제가 단 하나의 길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들을 경계해야 하구요.
나는모른다
20/11/09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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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이미 나왔지만, 된다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이렇게 있습니다.

하나. 용어를 더 쉽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둘. 1부 2부를 더 명료하게 정리해서 조던 피터슨 비판과 조던 피터슨 열풍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대한 선을 긋고 싶습니다.
셋. 임상심리학자가 심리학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만, 정치적 발언에 있어 임상심리학자적으로만 대답하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넷. competent가 얼마나 과도하게 쓰였는지, 사회운동에 대해 competent를 주장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가지는지를 더 써보고 싶습니다. 그가 지구온난화에서 가진 매우 독특한 주장에 겸하여, 그는 동성애자 결혼에 있어서도 똑같이 "찬성하지만 관련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자격없는 네오맑시스트가 주동하는 것이므로 지지하지 않음"이란 매우 독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조던 피터슨이라면 "부동산 정책은 잘못되었지만, 그것에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자격이 없는 일이므로 자격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도록 기다릴 것"이라 할 것입니다.
20/11/0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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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너무 잘읽었습니다. 조던 피터슨이란 사람을 잘 알지 못했고 그의 사상을 잘 몰랐지만 액티비즘에 대한 생각이 그와 제가 유사한듯 한데,
competent의 번역과 조던 피터슨의 다른 이야기들이 엮여서 제 생각이 꼭 왜곡되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글쓴이께서 조던 피터슨의 대화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셨겠지만 저는 이 글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지만 어느정도 지지하는 입장이 된것 같습니다. 그 입장에서 액티비즘에 대한 비판을 말해보면

1. competent를 유능한, 능숙한으로 번역되는데 저는 이 글에서 자격이라고 한 것이 해당 액티비즘이 말하고자 하는 전문가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과 자신에게 가까운 유능함, 능숙함이아니구요. 지구 평평론도 나름의 근거와 지식을 토대로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증거를 자기 기준으로 선택, 결론에 맞춰 가설 수정 등 여러가지 과학적 오류가 동원되었구요. 저는 이러한 현상이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자신의 지적역량을 토대로 전문적인 영역을 판단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봅니다.
- 이 글을 쓰다가 느낀건데 전문가 집단만으로 사회에 미칠 힘이 부족하고(미국 코로나 사태), 전문가 사이의 의견대립이 적고 비교적 명료한 결론이 있는 경우 사회 구성원의 액티비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
- 제 주장은 전문가가 도덕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네요.
- 적다보니 제 생각에 대한 반박도 절로 떠오르는데 일단 여기까지만 적겠습니다.

2. 제 생각에는 개인이 겪는 문제는 분명 사회적, 개인적 원인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으로 바꾸기 쉬운 부분은 분명 개인적 원인이고 slobber씨도 개인적 원인에 대한 고찰을 해보는 것이 자신의 행복에 유리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저는 그 이상으로 액티비즘 자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개개인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액티비즘을 지지해야 하는것인가?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액티비즘을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전문적 판단이 없이 이러한 여론에 이루어지는 정치적 결정을 옳지 않고 자기만족에 그쳐야 한다고 봅니다.(나는 ~~한 사람이야 라는 자기만족 O, 내 말을 이해못하는 무시갱이 보다 내가 낫지 세모, 저 반대하는 무시깽이들 때문에 열받아X) 물론 자기만족을 위해 액티비즘을 한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요.

좋은글에 부족한 퇴고로 제 맘대로 생각을 적어서 죄송하네요. 나중에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20/11/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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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글 감사합니다. 생각해볼 기회가 많은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글과 댓글들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이제야 댓글을 달게 되네요.

1. 명료성에 대한 부분과 피터슨에 대한 비판은 분리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명료성에 대한 주제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적을 분량이 많은 주제이고, 피터슨보다는 다른 글이나 인물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두가지가 무리하게 연결되다보니, 어느 한쪽을 부정하면 다른 한쪽도 부정되는 것처럼 여겨지는것 같습니다.

2. 피터슨에 대한 비판으로 '사회학적 상상력의 부재'를 지적하셨는데, 저는 그 지점에 오히려 피터슨열풍의 이유가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터슨은 굉장히 고루한 사람입니다. 전통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지금 시대에 있어서 전통적인 가치가 포기될 이유가 없다고 지적하죠.

말씀하신 사회학적 상상력은,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주류적 흐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최근의 기후이상과 관련해서 외치는 구호중에 제가 굉장히 충격받았던 구호가 있었는데, '아버지 세대는 늙어죽지만, 젊은 세대는 기후이상으로 죽는다'라는 구호였습니다. 이런 구호가 굉장히 광범위하게 SNS를 비롯한 곳곳에서 사용되더라고요. 본질적으로는 툰베리가 말하는 이야기들도 이런 사회학적 상상력의 극대화고요.
기후변화 뿐만이 아니라, 페미니즘, 노동문제를 비롯한 사회영역 곳곳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가지는게 중요하고 '올바른 일'인것처럼 담론이 형성되고 있죠. 유튜브와 SNS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젊은 세대'를 통해 이런 사회학적 상상력은 커져가고 공감받으면서 세력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이기에 유튜브를 활용한 피터슨의 강의와 발언들이 오히려 화제가 되었던 거라고 봅니다. 피터슨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것도 '페미니스트 여기자와의 대담'이었고요.

그렇기에 피터슨의 '사회학적 상상력의 부재'는 그런 주류담론에 지친 사람들에게 오히려 공감을 불러일으키죠. 특히 피터슨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중시하고, 그런 관점에서 '청년과 아버지'들을 위로하는 장면들에서요.

그래서 피터슨은 지금 시대에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주장에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터슨이 만들어내고 가지고있는 포지션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포지션이었거든요.
세크리
20/11/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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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에 대해서 어느정도 통찰이 느껴지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세대의 정치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아닌가 싶네요. 그들은 좌파 정책을 비판하지만 우파처럼 자유시장을 주장하지도 않고 그 전 보수처럼 사회질서의 안정을 논하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은 정책이 스스로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장 크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옳거나 그른것은 아니고 그냥 현재가 이런 시대인 것 같습니다. 개인이 무슨무슨 주의라고 얘기되는 가치를 더 이상 신봉하지 않는 시대인거죠. 아마 가치가 더 다원화 되다 보니 개개인이 하나에 뜻을 모으기 어려운것도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쨋든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20/11/1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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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동의되지는 않네요

조던 피터슨에 대한 비판이 일정부분 옳다거나 통렬하다고 해서

그렇다고 조던 피터슨이 하는 비판이나 공격 즉 비전문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회적인 상상력이 어쩌고 하는 게 허망하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주장이 틀렸다고 느껴지지는 않네요.

지금 정권 잡고 부동산 가격이나 대차게 올려놓는 사람들이야말로 전공이 열려라 꿈동산 사회학적 상상력! 이런 소리들 하는 사람들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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