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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1/06 18:03:26
Name 담담
Subject 가족사진 찍은 후기
큰 애가 군대에 간다고 남편은 갑자기 가족 사진을 찍겠다고 한다.
너무 뜬금없는 얘기에 다들 싫다고 했지만 남편은 열심히 검색하더니 8만원이면 된다고 가서 한 장 찍고 오자고 덜컹 예약해 버린다.
싫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사진찍는데 못생기게 나오는 건 싫고, 화장은 할 줄 모르니 시어머니와 같이 얼굴과 머리에 돈 좀들이고 사진관으로 출발했다.
사진관에서 준 옷을 단체로 갈아입었는데 나한테는 옷이 너무 꽉 끼는 거 같아 보였다. 보조해주는 아가씨가 괜찮다고 해서 내내 신경은 쓰였지만 사진사가 시키는대로 포즈를 잡아본다. 그런데 너무 많이 찍는거다. 남편이랑 나는 이거 좀 이상한데 잘못 온 거 같다. 옷도 단체로 한 벌 더 준다. 또 찍는다. 이거 바가지 엄청 쓰는 거 아니야? 오육십 달라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나름 사진 찍는 재미에 하하호호 하며 사진을 찍었다. 다 찍고 영상으로 사진들 쭉 보여 주는데 어머니와 애들이 너무 이쁘게 나왔네. 나만 빼고 흑흑.
그런데 문제는 8만원 짜리는 손바닥만한 사진 한 장만 주고 원본 파일도 안준다고 한다. 원본 파일이랑 큰 사진 액자 받으려면 백만원 넘게 달라고 하는 거였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안된다고 투덜대는데 남편은 120만원짜리 세트를 아무말 않고 결재한다. 애들 앞에서 다투기 싫어 집에 와서 남편한테 잔소리 해댄다. 그런거도 확인도 안하고 예약하면 어떡하냐고. 너무 과다한 지출에 열받아서 밤에 잠도 안온다.
남편은 이메일로 미리 받은 원본 파일을 보며 애들 너무 이쁘게 나왔지? 하며 흐믓해한다. 남편 마음이 느껴져 눈이 시큰해졌지만 짜증내며 나 그 사진 싫으니까 내 앞에서 사진 보지마. 흥.
큰 애가 군대에 갔다. 남편은 나 몰래 짬짬이 핸드폰 속 사진들을 본다. 근데 나는 사진을 한번 보고는 안본다. 왜냐면 내가 너무 뚱뚱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값보다 충격인건 내 뱃살이었다. 내 배에 삼자가 새겨져 있는거다. 큰 액자 넣을 사진 골라서 보정할 부분 얘기해달란다. 남편한테 보정할 부분 얘기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 배에 새겨진 금 좀 없애 달라고 해. 남편은 깔깔 대며 웃으며 놀려댄다.
다음날 남편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는 동네 한바퀴 돌러 나가자고 한다. 나는 퇴근해서 저녁먹고, 다음날 먹을 반찬 준비도 하고 나면 쉴 시간도 없다고 귀찮다고 투덜대지만, 끄떡않고 끌고 나가서 공원 한바퀴를 돈다. 밤에 공원에 처음 나온거 같은데 바람도 시원하고 경치도 예쁘다. 평소에 서로 퇴근하고 없는 시간 쪼개 티브이 보고 게임하느라 대화할 시간도 없었는데 도란도란 대화도 재밌다.
액자들이 나왔다. 다행히 배에 금은 잘 없앴다. 불록 튀어 나온건 어쩔수 없는지 그대로지만. 하하.
남편은 거실 한쪽벽에 큰 액자를 걸더니 개별 사진과 그룹별 사진들을 어디에 둘지 한참을 궁리 한다.
다 정리하고 싱글벙글이다. 애들 너무 이쁘게 나왔지? 나한테 또 묻는다. 그래 너무 이쁘다. 너무 보고 싶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게임 좋아해서 게임 얘기하는거 보는거도 재밌고,  유머란도 재밌어서 오랫동안 눈팅만 했었는데 롤드컵 이벤트 한번 참여해 봐야지 하고 가입했습니다. 근데 올해는 안하네요. 하하. 아무튼 올해 이벤트가 없지만, 담원과 LCK 우승해서 기분 좋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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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언니
20/11/06 18:10
수정 아이콘
외노자로 생활중인데 왠지 찡해져서 오늘 어머님께 전화 해봐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0/11/06 18:21
수정 아이콘
제 글 읽고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 뿌듯하네요.
20/11/06 18: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출력된 사진은 여러모로 이야기가 담겨있기 마련이죠
핸드폰 사진처럼 수십 수백장을 뽑는게 아니니
지워낸 뱃살보다 나를 더 예쁘게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만 남길 바래봅니다
20/11/06 18:22
수정 아이콘
그렇지요. 사진은 출력된 사진이 추억이 더 담기는 거 같은 기분입니다.
소이밀크러버
20/11/06 18:17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
Hammuzzi
20/11/06 18:19
수정 아이콘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네요. 가족사진이라.. 좋네요.
20/11/06 18:22
수정 아이콘
사진관 상술은 공통이군요 흐흐흐 저희집이랑 똑같네요
20/11/06 18:28
수정 아이콘
따뜻해지는글인데 사진관 상술 엄청나네요 덜덜
끄엑꾸엑
20/11/06 18:30
수정 아이콘
사진관..저거 사기아니에요?
시라이시세이
20/11/06 18:37
수정 아이콘
사진관 상술은 너무 하네요.
그래도 글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20/11/06 21:32
수정 아이콘
좋은 주말되세요
20/11/06 18:40
수정 아이콘
본가 갈 때마다 문 열자마자 저 맞은편 거실 벽에 걸려있는
2005년에 1024*768 최대해상도의 코닥 디카로, 심지어 역광으로 찍은 네 명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아쉬움에 큰 한숨을 짓습니다.

픽셀 뭉개져 인터넷 사진 출력업체에서도 품질보장 안된다고 난색 표하는 걸 억지로 확대해 얼굴도 잘 안보이지만, 가족 첫 제주 여행의 설렘과 즐거움만은 그대로 담겨있는 사진.

어머니 쓰러지기 전 번듯한 가족사진 하나 찍었으면 돌아가신 이후에 이렇게 후회가 오래가진 않을텐데. 그게 마지막 가족여행일줄은, 그리고 마지막 네 명의 사진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집에 혼자 계신 아버지께서도 항상 같은 마음이시겠죠.

여러분, 사진 동영상은 많이 찍으세요.
이젠 돈 드는거도 아니도 큰 수고가 드는 거도 아니니까요.
20/11/06 21:37
수정 아이콘
정말 아쉽겠네요. 토닥토닥
20/11/06 22:5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빙긋 웃게 됐어요. 종종 담담한 글 부탁드립니다.
20/11/06 23:12
수정 아이콘
글재주가 없어서요. 이거 몇줄 쓰는거도 한참 걸렸습니다.
굵은거북
20/11/06 18:41
수정 아이콘
저도 외노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한국에 계시고 두 아들은 각각 북미와 남미에 살고 있고요. 매번 일정들이 안맞아서 부모님-우리가족, 형님-우리가족 이렇게 따로따로는 두해 마다 한번 씩 보지만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본지가 십년이 다되어 가네요.
아버지 연세가 많으셔서 저희집에 오시는게 마지막일것 같아 올초에 큰맘 먹고 부모님 형님 모두 저희 집에서 모시고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는데요. 아시다 시피 코로나로 어그러져 버렸습니다. 꼭 다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말이죠.
11년전 결혼하기 몇달전에 찍은 사진이 마지막 가족 사진입니다. 그동안 며느리와 두 손주가 생겼는데 아직도 가족사진이 업데이트가 안되고 있고요. 따뜻한 이야기 감사드려요. 내년여름에는 형님과 휴가 맞춰서 부모님 형님 우리가족 모두 모여 꼭 가족사진 찍으려고요.
20/11/06 21:39
수정 아이콘
코로나 ㅠㅠㅠ 빨리 없어져서 모두 모이길 바랍니다
배고픈유학생
20/11/06 18:44
수정 아이콘
아마추어 스냅작가도, 연예인들도 다 사진에 보정이 들어갑니다. 저만해도 제 친구들 찍어주고 턱선좀 깍아주고 살도 좀 빼줍니다. (말은 안하지만)
스위치 메이커
20/11/06 18:49
수정 아이콘
이래서 사진은 아는 사람에게 찍어야... ㅠㅠ
20/11/06 18:54
수정 아이콘
지하철에서 읽다가 눈물이나옵니다
혹시 누가 볼까 이리저리 고개를 저으며
살짝 흘러나온 녀석을 흘려보냈습니다
뱃살마저 이쁜 글이라니..
20/11/06 21:40
수정 아이콘
뱃살 ㅠ
 아이유
20/11/06 19:01
수정 아이콘
행복하면 그만이지요. 10년 20년 지나면 그래도 그때 사진 찌기 잘했다! 생각만 나실거에요. 앞으로도 행복하세요!
20/11/06 21:51
수정 아이콘
한편으론 속이 쓰리지만 사진 속 가족보면 행복하답니다. 님도 행복하세요!
Asterios
20/11/06 19:05
수정 아이콘
제가 외가에 가면 저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어머니 이모 삼촌이 70년대에 찍은 사진이 거실 한켠에 있고, 그 벽 반대쪽 끝에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삼촌 외숙모 외사촌이 2000년대 중반쯤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어릴 때부터 외가에서 보냈던 추억과 외가 쪽 친척들이 제게 주신 사랑이 떠올라서 마음이 따뜻해져요. 작성자께서 찍으신 사진도 볼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지셨으면 좋겠네요.
20/11/06 21:53
수정 아이콘
저희 아이들도 나중에 님처럼 생각해주면 좋겠네요. 님도 사진 많이 찍으세요
20/11/06 20:14
수정 아이콘
덜덜 벌써 자식을 장성하게 키워서 군대보내셨군요
20/11/06 21:54
수정 아이콘
덜덜
하우두유두
20/11/06 20:33
수정 아이콘
3살딸내미 옆에서 보면서 댓글답니다. 참 멋있네요. 저는 딸이 남자찬구 생기면 그런느낌이겠네요
20/11/06 21:57
수정 아이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떠나보내니 생각보다 더 마음이 아프답니다.
크라상
20/11/06 21:38
수정 아이콘
요즘 사진관 상술 지나치죠
저도 저 나온 사진은 두번 보기 싫더라구요
두분 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아름답네요~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20/11/06 22:01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제 사진은 안보게 되는데 애들 사진은 자꾸 보게 되네요
onDemand
20/11/06 22:14
수정 아이콘
120만원이라니.. 기분나쁠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걸 훠어어어어얼씨인 뛰어넘는 행복감이 느껴지네요! 따뜻합니다! 멋진글이에요.
20/11/06 23:13
수정 아이콘
몇일은 속 쓰렸는데 사진 받고 나니 잊게되네요. 이래서 사진관이 먹고사나 봅니다
20/11/06 22:38
수정 아이콘
자식이 군대갈 나이이면 최소 50대이신데 이스포츠를 좋아하시는군요! 혹시 아드님이 여기 회원 아닙니까?
20/11/06 23:20
수정 아이콘
아마 아들은 회원이 아닐거 같습니다. 예전에 오지엔에서 애들 롤챔스 보는거 몇번 구경하다 재밌어서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롤은 참 보는 재미가 있네요. 몇번 해보기도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
구동매
20/11/07 02:27
수정 아이콘
오우 글이 너무 따뜻해요
피지알 크크 아니 아들은 안하는데
어머님이 피지알을? 크크
20/11/07 06:52
수정 아이콘
따듯한 글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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