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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1/06 08:16:35
Name 이스칸다르
Subject 정조 이산은 명군인가?
정조이산은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입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매우 드물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 묘호는 정종이었습니다.  고종이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임금의 자리에 오르고  후에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조상들의 묘호를 '조'로 바꾸었습니다.
영종 --> 영조,  사도세자 --> 장조, 정종 --> 정조 , 순조 --> 그대로(철종 8년에 순종을 순조로 격상), 효명세자 --> 문조로 추숭했습니다.

정조의 치세는 1776년(미국독립전쟁)부터 1800년(나폴레옹전쟁)까지 24년입니다.  사후 세도정치로 조선이 막장 상황에 빠지는 것은 반동때문인지 정조를 [개혁군주]라고  평가하는  현대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정조의 업적은 무엇일까요?  수원 화성이 위치하는 수원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를 보니 몇가지가 나오네요. 거기에다가 제가 아는 몇 가지를 보충했습니다.
- 문화정치 추진 :  규장각을 설치하고, 일성록, 무예도보통지, 서학(서양의 학문과 종교)에 대하여 정학(성리학)의 진흥으로 대처
- 탕평책을 계승 :  영조의 완론탕평이 아니라 준론 탕평 (여러 세력을 등용)
- 서얼차별 완화 :  즉위하여 정유절목을 통하여 서얼출신 중인들을 주로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
- 장용영, 수원화성 :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한 수원에 화성을 건설하고,  장용영이라는 친위부대를 설치
- 신해통공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상업 부흥
뭐, 이 정도인데요.  현대인의 시각으로도 제법 괜찮은 군주네요. 업적도 꽤 많네요.
그러나, 세세히 살펴보면, [알맹이 있는 큰 개혁은 하나도 없습니다.]
00 탕평책은  정조 사후  암군 순조로 인해 세도정치로 변질되니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례가 없이 세도정치가 발생했을까요?  정조시절 홍국영을 세도정치의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과 정조가 당파의 균형을 무너뜨려 세도정치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00 서얼차별 완화도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내내 서얼차별 완화 - 허통-를 해달라는 요구가 지속되어  숨구멍은 터주는 조치가 여러번(심지어 영조때도) 있었습니다. 정조의 조치는 그냥 다른 왕들과 다를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정책의지로 따지면 영조는 서얼도 아버지와 형을 아버지와 형이라 부를 수 있게 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역률로 다스린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만, 정조는 문호를 살짝 넓혀준다는 시늉(규장각 검서관)만 하다 말았습니다. 왜냐, 조선시대는 특히 후기는 양반의 숫자에 비하면 관직의 숫자는 정말 작았거든요. 명문가 양반들끼리 싸우기 바쁜데 어디 자리가 있다고 서얼이 끼어들 틈이 있겠습니까?
00 장용영과 수원화성은 왜 개혁정책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00 신해통공도 불완전했습니다.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은 폐지되었지만  육의전의 권한은 그대로 남았거든요. 더구나 상업부흥은  대동법의 전국적 시행과 상평통보와 같은 화폐의 공급 덕분입니다. 금난전권폐지가 도움이 되었겠지만 큰 영향은 없었을 것입니다. 신해통공의 목적은 시전상인들의  금전이  노론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으려는 방편이었다는 평가가 더 맞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고루한 성리학자로서의 업적] 말고는 남는게 없네요..문체반정을 시도하여 자유로운 문체를 탄압하고, 주자대전집을 편찬하려고 했으니 딱 맞네요.
잘못한 점을 살펴볼까요?
[애절양]이라는 정약용이 지은 시를 아십니까?  시아버지는 죽고, 사내아이는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는데  3대가 군포를 납세해야 한다며 큰 재산인 소를 관리가 끌고 가자, 남편이 양물을 잘라버렸다는 내용의 아주 유명한 시입니다. 조선시대 삼정의 문란을 제대로 보여주는 시로서, 죽은 사람에게 과세(백골징포), 갓태어난 아이이게 과세(황구첨정)의 전형입니다.
이 시가 언제 지어졌을까요?  [정조가 죽은지 겨우 3년도] 안된 시기에, 세도정치가 없었던 시기입니다.  겨우 3년도 안된 시기에 새로 생겼다기 보다는 수탈이 계속되어 왔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겠지요. 즉, 정조시기에도 세도정치시대 정도는 아니지만 삼정의 문란이 심했습니다.  
[호포제]가 있습니다.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고 양인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걷자는 제도입니다. 무려 인조때부터 말이 나온 제도입니다. 영조는 군포의 폐단을 알고 임시방편으로 왕족들이 쓰던 잡세를 국가로 귀속시키고 양인들의 세부담을 줄였습니다. 그런데, 정조는 그런 조치도 없었습니다. 결국 대원군때 시행되었습니다.  
[반계수록]은 실학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유형원이 지은 책입니다. 수원화성 건설, 정전제의 토지개혁, 노비제도 혁파, 아전에게 급여지급으로 부정부패 방지 등의 시책을 담고 있어 [100여년후] 영조가 읽고서 크게 감탄하며 널리 재간행했습니다. 정조도 읽어보았으며 크게 감탄했습니다. 정조는 나중에 저자인 유형원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기도 했습니다.  
반계수록에 적힌 내용중 어느 하나 제대로 시행된 정책이 있나요?  영조는 노비제도 폐지를 위해 노력해서 크게 줄였습니다. 정조는 한것이 없어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비들의 숫자는 조선말기 신분제도 혼란으로 인해 줄어들었지만 정조의 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정순왕후는 정조 사후 순조 즉위 1년에 수렴청정하자마자 공노비 6만6천여명을 해방시켰습니다. 즉, 노비해방은 세원확보를 위해서든지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유학자의 입장이든 시대의 요구이고 집권자들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정조의 개혁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호포제를 통한 세제개혁, 서얼금고법의 완전한 폐지, 노비해방은 결국은 고종시대에 개화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정조 시대에도 이 세가지 개혁에 대한 요구는 있었고 정조 또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대지 않거나 살짝 간만 보았죠.
정조는 조선시대 왕으로서 평균보다 조금 높지, 자기 할아버지 [영조 만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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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 08:34
수정 아이콘
교과서 수준에서 저 업적들 외운 기억이 나네요
20/11/06 08:44
수정 아이콘
정조가 뭘 잘했는데 물어보면 딱히 없긴 하죠.
20/11/06 08:51
수정 아이콘
실제로 학계에서도 정조 거품론이 정설이라 하더라구요. 다만 영구가 활발한 분야는 아니라 주목받지 못하는 것일뿐..
가라한
20/11/06 09:00
수정 아이콘
흠 제가 잘 알지는 못하는데 원래 정조하면 수원 화성 축성 이후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위시한 친위 쿠데타를 한 후 화끈한 개혁을 하려 했는데 한창 40대 나이에 죽는 바람에 무산 되었단 야사가 좀 있지 않나요? 경상도 남인 쪽으로 노론의 정조 독살설이 현대까지도 전해져 온 걸 보면 당시에는 상당수가 믿었던 것 같긴한데..

사실 개혁군주 정조가 대중에 각인 된 건 이런 배경을 가지고 쓴 영원한 제국이 소설로 나오면서 부터죠. 정조와 노론의 대립 구도도 유명해지고. 뭐 작가가 나중에 정조의 유신을 박정희 유신이랑 엮으려 한 뻘짓이 있긴 하지만
엘렌딜
20/11/06 14:12
수정 아이콘
재위 기간 24년이었습니다. 48세에 사망했지만 다른 왕들과 비교하면 단명이 아닙니다.
뭘 해보려고 하다가 일찍 죽었다는 말은 설득력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20/11/06 09:1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도 정조가 개혁군주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렇게 명군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인의 능력이 뛰어났던건 알겠는데, 그만큼 본인이 다 휘두르려고하다가 비교적 일찍 죽는바람에 다 파토났다고 보고있고요.
그 결과가 세도정치부터의 흐름인거고...
그냥 적당한 보통 왕이었는데, 과대평가된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니스터
20/11/06 09:48
수정 아이콘
반대로 말하면 영조말고는 뭐 딱히 엄청난 왕이 없어서 그런거 아닐가요? 조선이란 국체 자체가 역성혁명 유교국가에, 역대급 아시아 강국인 명청, 에도막부(강국이라긴 뭐하고 전쟁없는 일본)를 옆에 둬서...당대 평균보다 나으면 성군이요 명군인거죠 뭐
DownTeamisDown
20/11/0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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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조마케팅 하는곳이 수원시였죠
원균마케팅의 평택시는 실패했지만 정조마케팅은 성공적이었던거로
꺄르르뭥미
20/11/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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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배운대로만 알고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조가 업적이 뛰어난 개혁군주는 아닌거 같네요. 그래도 정조의 능력으로 세도 정치를 몇십년 늦췄다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선 왕조 27명의 왕 중에서 태조, 태종, 세종, 영조 제외하면 명확히 정조 위에 둘 수 있는 왕도 없을 것 같구요.
20/11/06 10:22
수정 아이콘
성종만 해도 확실하게 정조 위인거 같습니다 크크
20/11/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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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정조는 본인 왕권 잘 수습해서 챙긴 마지막 전제군주 정도가 적당한 평가 같아요. 그 왕권을 위해 만들어둔 수단들이 세도정치의 무기가 되었으니 따지자면 조선이 막장으로 가는 흐름을 바꾸기보다는 그 흐름을 이어가는 중에 있던 왕이고...

공과와는 별개로, 했던 일들을 보면 아무리봐도 그냥 능력있는 성리학꼰대라...왜 개혁군주라고 하는지는 학생때부터 의문이었어요.
20/11/06 10:13
수정 아이콘
그만큼 정조보다 확실히 낫다고 할 수 있는 왕 자체가 몇 없다보니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는듯
게다가 대비되는게, 정조 죽고 나니 세도정치로 조선 몰락 가속화되니...더 돋보이는 면도 없지 않아 있을테구요.
silent jealosy
20/11/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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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동무고추탁...
20/11/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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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에서 정조 능력치가 엄청 처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계층방정
20/11/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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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는 엉뚱하게 단종 능력치가 전체 조선 왕 중 공동 2위라(그래도 능력치 중간값인 합 9보다는 낮은 8. 그만큼 조선 왕이 죄다 능력치가 다 낮음) 그냥 생각없이 매겼을 것 같습니다.
됍늅이
20/11/06 11:20
수정 아이콘
어차피 세계사 수준의 시야에서는 존재감 0의 왕이고(사실 저는 한국사 전체로 봐도 큰 의미 없는 왕이라고 봅니다. 있으나 없으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이벤트로 등장할 것도 아니고 대부분 1444년 그랜드 캠페인 하는 겜에서 걍 랜덤으로 정해도 되죠...
20/11/06 11:45
수정 아이콘
하긴 당대에 쟁쟁한 다른나라 군주들을 보면 높게 주긴 어렵겠지요
카바라스
20/11/06 10:46
수정 아이콘
숙종 영조는 개인사때문에 저평가되고 정조는 고평가되는게 있다고봅니다. 근데 정조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왕이었다고보고 34년이나 제위했던 순조책임이 좀 크죠. 거기에 나름 기대주였던 효명세자 헌종이 연달아 요절하면서 나라가 완전히 골로갔고
20/11/06 10:47
수정 아이콘
이룬게 없으니 과대평가라는 말도 맞고, 시대의 한계라는 말도 맞고
미카엘
20/11/06 10:54
수정 아이콘
정조보다 낫다고 볼 수 있는 왕도 딱히 몇 없고, 시대적으로 왕 혼자 캐리하기도 어려웠고, 뭔가 싹 해 보려다가 급사한 것도 맞고.. 엄청 후려쳐질 군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LifeLivingToday
20/11/06 11:01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개인적으로 정조는 보통 왕이라 생각합니다만, 지금처럼 부각되는 왕인건 17c 이후 조선이 내세울 게 전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조반정 이후부터 조선은 처참하기 그지 없죠. 삼전도의 굴욕은 말할 것도 없구요.

뉴턴이 지상과 천상의 운동을 통합할 무렵인 17c에 조선은 상복을 두고 싸우는 병림픽을 하고 있었고(그것도 두 번이나)
산업혁명이 일어날 시기에도 당시 조선은 여전히 봉건국가였죠.

조선 후기를 파고들수록 대한민국이 계승했던 국가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어지고, 이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역사학자 및 교육자들이 그래도 [평타 이상은 한] 정조를 부각시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20/11/06 11:19
수정 아이콘
사실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은 반식민지 위성국가 비슷한 상태에다가 주변국가들 급성장에 비하면 문자그대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 자체라서 사실 후기 조선왕들은 어느정도는 면피용으로 부각되는 것도 없잖아 있다 싶습니다. 예를들면 고종이 나라 말아먹었지만 망할나라가 일제한테 망한거다 이렇게 국사책에서 얘기는 못하니까요.
LifeLivingToday
20/11/06 13:17
수정 아이콘
제 생각과 완벽히 일치해서 놀랐습니다.
20/11/0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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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고 보니까 그렇네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숙영정 라인이 상대적으로 잘한거지 절대적으로는 에도 막부랑 청에 비해 진짜 우물안 개구리 그 자체였죠. 물론 역사가들 입장은 다를수도 있습니다만.
LifeLivingToday
20/11/06 13:36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 역사가들이면 최소 중국, 일본, 블라디보스톡 근방 러시아 역사까지 꿰고있을텐데 그들이 더 잘 알겁니다.
다만 후대의 자긍심을 위해 솔직히 말할 수 없는 것이죠.

뉴턴이 지상과 천상의 운동을 통합하는 놀라운 도약을 할 때 우리는 상복을 며칠입는지 갖고 싸우는 병림픽중이었죠. 그것도 두 번이나
전 아직도 예송논쟁과 그걸 포장하는 자들 보면 역겹습니다.
가라한
20/11/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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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댓글에도 썼지만 정조가 대중적으로 개혁 군주로 인기를 끌게 된 건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소설 이후에요. 이인화씨가 어른들이 모이기만 하면 "임금을 죽인 숭악한 놈들"이라며 울분을 토하는 경상도 남인 후손 집안에서 자랐고, 성장 후 그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름 자료 조사 후 쓴 소설인데 나름 대박 납니다.

이 소설의 내용이 뭐냐면 수원 화성에 정조 친위대인 장용영 앞세워 친위 쿠데타를 준비하던 정조와 이를 눈치깐 노론이 정조를 독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이 독살을 막으려는 남인 측 주인공의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미스테리 추격전 같은건데... 뭐 결국 정조 독살로 이어지고 소설은 끝납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배경은 정조 유신론인데 이 유신이 뭐냐면 나라를 완전히 새로 개국하는 정도로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정조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후 노론을 싹 정리해 버리고 노예제, 서얼제 폐지 등 위에 본문에 언급하신 급진 개혁을 한 방에 처리한다는 거죠. 소설상으로는 노론이 성리학 탈레반 기득권 층이어서 이런 개혁에 절대적인 반대 세력이었기에 정조가 친위 쿠데타로 제거 하려 하구요.

뭐 소설 자체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저도 재밌게 읽었구요. 지금이야 흔햬 빠진 클리셰가 됐지만 당시로는 신권에 위협 받는 왕이란 구도가 참신했고 노론이 극보수 성리학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상당히 충격적이었죠. 이 소설이 나름 빅히트를 했고 이후 대박은 아니어도 연극,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알게 창작하는 분들에게 영향을 크게 끼칩니다. 이 이후 나오는 모든 대중적인 정조 관련 사극은 기본 전제가 이 영원한 제국을 따라갑니다.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면서 수구적인 노론과 소수파 남인이나 북인 끼고 개혁을 하려는 왕 정조. 그리고 정조 독살설.

사실 제가 역덕이 아니어서 이 소설의 배경 상황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고, 실제 독살이나 정조가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해도 정사에 남을 수는 없으니 진실은 알 수가 없겠죠. 물론 친위 쿠데타나 유신 같은 것도 작가의 상상력이겠지만, 단지 200, 300년이 지났음에도 집안 어르신이 모이면 "임금을 죽인 숭악한 놈들" 이야기를 하는 집안이 남아 있을 정도니 실제 정조 사후 경상도 남인들의 인식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서 흥미롭긴 합니다. 정조의 친위 쿠데타 설이나 유신 같은 것도 어른들 이야기를 듣고 작가가 살을 붙인 거라 봐야 할거구요. 어차피 정말 만의 하나 사실이라 해도 정사에 남았을리는 없고... 어쨌든 이 흥미로운 설이 현재 대중들의 정조에 대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보심 됩니다.
답이머얌
20/11/0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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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영원한 제국이 나오기 이전부터 국사시간에 영정조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고 배웠어요. 나름 성군이고, 사회가 안정되었으며, 당쟁도 줄어들었다고요.

이후 세도정치로 몰락 테크, 죽음에 대한 의문은 다루지 않았고요.

영원한 제국은 국사시간에 배우지 않았던(=대중들은 별로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던) 정조 죽음의 수수께끼를 다루었고, 박정희 유신과의 연관으로 크게 부각되었을뿐이고요.
가라한
20/11/0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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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말씀하신대로 저도 국사 시간에 배우긴 했습니다만 좀 피상적이었죠. 영정조 시기가 조선의 마지막 태평 성대고 화성 짓고 능력있던 왕 정도. 제가 말씀 드리고 싶었던 건 수구 노론과 대립하던 강력한 개혁 군주, 그래서 개혁의 강도도 굉장히 세 보이는 정조의 인상이 대중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가 영원한 제국이라는 거구요. 작가가 박정희 빠라고 커밍 아웃하고 영조 유신 = 박정희 유신 이런식으로 들고 나온 건 제 기억에 소설 히트 치고도 최소 3에서 5년 뒤입니다. 게다가 이 부분은 작가만 묻히게 되고 대중적 영향도 별로 없었죠.
20/11/0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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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한 10년만 더 살았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후마니무스
20/11/0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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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등용이 뛰어나 세도정치를 미룬것만으로도 업적은 크죠.

화성축조같은건 기술문명을 이룬업적으로 평가될거구요.
이리스피르
20/11/0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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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건 반대 아닌가요? 오히려 정조가 세도정치를 조장한 것에 가깝다는 평가를 들은적은 있어도 미뤘다고는...
abc초콜릿
20/11/06 14:24
수정 아이콘
반대입니다. 오히려 기존 붕당정치를 붕괴시킨 덕에 세도정치를 초래했죠
유리한
20/11/06 11:48
수정 아이콘
나의 정조는 그렇지 않아! (수원 출신)
20/11/06 12:02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근데 정조가 세도정치를 미뤘다는 평가를 받네요..
오히려 세도정치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많지 않나요? 기존의 당파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바람에 말이죠.
본인의 능력이 뛰어날때야 능력좋고 왕권이 강하니 아무 문제가 없는데, 후계가 나이어릴때 죽어서 더욱 그랬기도 하고 말이죠.
유자농원
20/11/06 12:26
수정 아이콘
원래 뜰때는 능력때문이 아니라 스토리로 뜬거니까 능력 위업 그런건 덧붙은거죠.
퀀텀리프
20/11/06 12:26
수정 아이콘
당파정치를 혁파하니 세도정치가 오고.. 노답
시니스터
20/11/06 13:06
수정 아이콘
전제군주정(???)은 왕의 능력이 중요한데 왕의능력이 업으면 뭐...
캬옹쉬바나
20/11/06 13:02
수정 아이콘
너무 일찍 운명했죠
StayAway
20/11/06 13:20
수정 아이콘
현재적 관점에서 판단하면 안된다고 봐요. 뭐 딱히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백성을 궁휼히 여기고 개혁을 완성하고 뭐 이런건 요즘 관점에서나 맞는 말이고

실질적으로 왕정제 국가에서 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신권을 잘 컨트롤하면 그 자체로 좋은 왕입니다.
예를 들어 숙종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독단적이고 난폭하며 환국을 밥먹듯 했지만 평가가 나쁘지 않죠.
영정조 이후로 제대로 신권을 제어한 왕이 있느냐를 생각해보면 정조는 그 자체로 괜찮은 군주라고 봐야합니다.
이리스피르
20/11/06 14:15
수정 아이콘
동시에 후계를 튼튼히 하는 것도 군주의 의무죠... 왕권 강화와 그로인한 권력의 쏠림 등으로 발생한게 세도정치니까요
가라한
20/11/06 15:12
수정 아이콘
후계 문제는 정조가 약간 면피할 면이 있는게 여색을 밝히지 않아 후궁도 별로 없고 왕손도 늦게 본데다가 무예도 잘하고 매일 활쏘기 만발을 맞출만큼 운동 능력이 있는 왕인데 40대 후반에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는 건 예상 밖이었죠.
본인이야 노론이던 어디던 드센 신하들 상대로 노련한 정치 싸움을 할 수 있는 철혈 군주지만 왕손이 너무 어린 통에 본인은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니 외척으로 뒷배 만들어 주려다 세도 정치 테크를 타게 되죠.
그나마 정조 바로 뒷대에는 세도 정치가 그렇게 막장은 아니었는데 좀 똘똘한 세자만 나오면 단명을 하니..... 조선이 망할 운명이었나 싶기도 하네요.
20/11/06 15:36
수정 아이콘
뭐.. 지금 시점에서 과거의 인물을 평가할때는 결국 결과를 놓고 판단할수밖에 없으니까요.
자손문제란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후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좀더 일찍부터 했어야..... (....)

개인적으로는 조선멸망의 방아쇠를 당긴 인물이 정조라고 생각합니다.
후계문제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문체반정을 통해서 보여지는 모습이 상꼰대라;;;;
고종쯤가면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그나마 가능성있던 유일한 시기가 정조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정조 본인이 워낙 잘나서 그렇기도 하고요.

이래저래 적어주신것처럼 세자들이 자꾸 죽어나간것도 있고 그런거 생각해보면, 운명이었나 싶기도 하죠.
가라한
20/11/06 18:30
수정 아이콘
어찌됐던 결과론 적으로는 조선 후기가 막장이 된게 세도 정치의 씨를 뿌린 정조 때문인 건 100% 인정합니다. 문체 반정은 솔직히 잘 모르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정치적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어찌 됐던 정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건 그 사후 조선이 막장 테크를 타게 되는데 조선을 살릴 수 있던 마지막 기회가 허망하게 날아가서겠죠. 정조 당대에 서얼 철폐, 노비 철폐 같은 대 개혁이 이루어졌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알려진 이미지로 봐서는 할 수도 있었을거 같은데 뭐 그런 기대요.
Chandler
20/11/0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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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론 세종 바로 밑에 급 명군으로 평가되는걸로 체감되는데 그거까진 과대평가고 그렇다고 암군으로 평가될 정도는 당연히 아니고 그럭저럭 좋은 왕 정도가 맞는 평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반상대성이론
20/11/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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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태종 세종 밑으론 잘나봐야 거기서 거기 아닐까...
지니팅커벨여행
20/11/0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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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사후 3년 뒤의 수탈은 정조 책임인데, 사후 1년에 공노비 해방은 정순왕후 업적...
그냥 둘 다 정조의 영향 아닌가요?
노비 해방을 정조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1년만에 뚝딱 해치웠다기 보다는 준비 과정 중에 왕이 급사했다고 봐야할 것 같은데요.
이스칸다르
20/11/0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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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과정중 왕이 급사 -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달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공노비 해방에 대하여 집권층의 통합적 합의가 이미 완료된 상태였는데, 정조는 정책 시행이라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고요.
조선시대 후기에서 영조는 정말 오랫동안 집권했지만, 그 시대에 요구하는 민생에 관한 개혁과제를 시행하려고 노력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정조가 영조만큼이라도 정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20/11/0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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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조 이후에 그야말로 암군의 연속이니.. 후기 역사를 다룰 때 그래도 이런 사람은 있었어- 자부심을 가져 이장도 느낌이었죠
20/11/0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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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유명한 건 정약용이 딱 그 시대에 살아서.
antidote
20/11/0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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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뭐냐 자본주의 맹아론 같은 겁니다.
조선을 어떻게든 미화하려고 찾고 찾다보니 아직 세도정치기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그래도 이정도의 희망의 싹은 있었다 정도로 부각되었는데 그 뒤가 너무 암울하다보니 과하게 조명되고 미화된 왕이죠.
왕권 강화는 했는데 시스템을 그 상태로 놔두고 일찍 죽어서 세도정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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