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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0/20 01:35:12
Name 성아연
Subject [삼국지]촉한멸망전에 비해 오 멸망전의 인식이 떨어지는 이유 (수정됨)
네 물론 1차적 이유는 삼국연의의 주인공이 촉한이지 오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위 정사가 퍼졌다고 하는 현 세대에서도 여전히 촉한 멸망전이 오 멸망전보다 인지도가 높은 것은 단순히 연의의 주인공이 촉한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연의 본전만 해도 촉한 멸망과 오의 멸망은 후다닥 처리되는게 사실이고요, 나관중 외에도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촉한 멸망전에 더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보고 있습니다.

1. 독발수기능의 난
아마도 정사가 퍼지면서 오나라가 16년 만에야 멸망한 이유가 이 독발수기능의 난 때문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대표적으로 최훈의 삼국전투기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냈죠, 실제로 당시 진나라의 종친인 부풍왕 사마준이나 인간병기 문앙, 제갈량의 팔진도를 이용해 독발수기능을 완전히 격파한 명장 마륭까지 10여 년간 많은 장수들이 물자가 투입된 이 사건은 후일 오호십육국의 전초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것인데 촉한멸망전에는 이런 요소 없이 온전히 위진이 전력을 투사할 수 있었던 반면 독발수기능의 난에는 관중과 농서가 선비족의 손에 들어가 오나라에 전력을 투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즉 독발수기능의 난은 일시적으로 천하를 다시 3분으로 세력구도를 나누었기에 오나라의 존속이 가능했다는 것이죠, 실제로 마륭이 소수의 병력 가지고 독발수기능을 완전히 격파한 279년에 오나라 정벌론이 다시 급물살을 탄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2. 네임드의 문제
이건 연의를 쓴 나관중도 느꼈을 문제였을텐데 촉한멸망전 당시에는 아직 유비-제갈량 시대의 구신들이 직접 나서서 최후의 저항을 펼치고 있었죠. 당장 네임드만 해도 최후의 촉한 3대장인 강유, 장익, 요화가 검각에서 버티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그 제갈량의 아들' 이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네임드 명사가 안 될 수가 없는 제갈첨이 있었는 데다가 당시 남중 도독이자 유선에게 직접 지원군 타진 의사를 밝힌 곽익만 해도 제갈량 시절부터 태자사인을 맡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러니 그냥 후반부 획획 넘기기로 유명한 나관중이라도 이들의 저항이나 충심 같은 걸 묘사할 여력이 있었죠.

반면 오나라의 경우 후반부의 가장 중요한 네임드라고 할 수 있는 육항과 정봉이 각각 274년, 271년에 죽습니다. 육항이나 정봉 같은 네임드 인사가 죽은 이후에 진짜 오나라에 거물급 네임드라고 알려진 사람이 없죠. 이미 오 멸망전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인물들이 없으니 그만큼 관심도도 떨어지는게 사실입니다. 솔직히 최훈 정도가 아니면 종리목 같은 무릉만이-진나라 교주쪽 침입을 막은 사람에 관심을 둘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게다가 멸망 전 오나라 최후의 저항을 이끈 오의 마지막 승상 장제도 그 자체로는 시세에 영합해 세간의 비웃음을 샀다는 기록이 있고 잘 알려진 것이라면 결국 오나라 최후의 충신이라는 것 외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죠. 그러니 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3. 당대 분위기 자체
촉한멸망전 당시에는 사마소와 종회만이 은밀히 촉한을 칠 계획을 짜고 있다가 기습적으로 공표한 이후 촉한의 수비가 견고하다며 반대 의견을 펼치는 현지 전선 사령관 등애를 어떻게든 억지로 끌어들이고 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의 목을 쳐 조리돌림 하는 등 억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가면서 원정을 강행합니다. 반면 오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당장 현지 사령관인 양호가 육항이 274년에 죽자마자 지금이 오나라를 칠 절호의 기회라고 하고 있고 그의 추천을 이어받은 두예도 마찬가지 의견이었었으며 아예 익주의 왕혼은 279년에 272년부터 7년동안 오나라 침공할 배를 만들고 있는데 이러다가 배가 썩겠다며 얼른 오나라를 침공하자 하고 있었습니다. 전선 사령관들도 이런 마당인데다가 장화 같은 중신들조자 지금이 오나라 칠 적기다라고 외치고 있었으니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는 인식을 주기 쉬운거죠.

4. 전쟁 자체의 내용
촉한멸망전이나 오 멸망전이나 사실 원정 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의 내용을 보면 양측의 내용이 좀 많이 달랐죠. 촉한 멸망전의 경우엔 일단 강유의 구원군 요청이 거부되고 강유 혼자 전방에서 죽어라 구르면서 어떻게든 검각에서 막아낼 것처럼 보이다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등애의 음평산길 터 넘기가 성공하고 촉한 전군이 수도 성도를 구원하려는 직전에 유선이 그냥 항복해 버린다는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이렇게 망할일이 아닌데?'라는 전개로 가버렸죠. 촉한 쪽 관리인 왕숭이나 서진 쪽 학자 원준이나 '이건 솔직히 촉한이 이기고 위진이 질 뻔했는데 간신히 위진이 이겼다'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였으니까요. 거기에 강유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촉한부흥을 위해 종회를 이용하면서 까지 분투하다가 망하기에 비장함이 더해지고요. 반면에 오 멸망전은 두예의 '파죽지세' 한 마디로 정리 될 수 있을 만큼 사방에서 몰려드는 서진군에 오나라가 스무스하게 망하는 전개로 갔습니다. 이러니 '촉의 멸망은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고군분투지만 오의 멸망은 그냥 쉽게 한방에 멸망했다.'라는 인식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거죠. 솔직히 이 부분은 파죽지세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낸 두예를 까야 합니다(?).

정리해보자면 위진에게 저항했다는 관점에서는 육항의 수년에 걸친 디펜스나 교주 정벌에 멸망 죽을때까지 저항했던 승상 장제 같은 걸 생각하면 오나라도 그렇게 쉽게 멸망하진 않았다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솔직히 강유나 촉한의 저항도 마찬가지고 결국 최후의 전쟁에 따라서 보는 시각이 결정될 수 밖에는 없는 거 같습니다. 까놓고 촉한멸망전은 역사적 가정의 IF 요소가 워낙에 많고 오 멸망전은 IF의 요소가 거의 없었기에 이렇게 오늘날까지 마지막까지 관심을 받는 최후와 관심이 부족한 최후의 차이가 결정나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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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탄다 에루
20/10/20 02:56
수정 아이콘
좋은 정리글 잘 읽었습니다.
삼국지 글은 여러 시각에서 볼수 있어 참 좋아요.
랜슬롯
20/10/20 03:00
수정 아이콘
중학교때 처음 제 아버지가 이문열 삼국지 읽어보라고 하시고 읽어봤는데 (물론 그전 초등학교때 이미 만화 삼국지 여러번 읽었습니다만) 그 때 푹 빠져서 몇달간을 헤어나오질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개인적인 성향이 뭔가 재미있으면 진짜 미친듯이 빠져들어서 게임이면 밤새면서 계속 하고 소설이면 수십번씩 읽는데, 삼국지의 경우 후자였죠. 나이를 먹고 삼국지에 대한 다각적인 해석들과 접근들을 보며 항상 느끼는건... 크크 아직도 모르는게 많구나 란 생각이네요. 감사합니다
20/10/20 03:45
수정 아이콘
If류의 무한대입이 무척 재밋는 촉한
등산가가 지금 산을 타고 싶은데..
등반왕이 산을 안타면 못이김
제갈첨이 제갈량의 튜터를 받았다면?
강유가 지원을 받고 위군을 뚜까팰수 있었다면?
비의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왕평이 좀 더 살았다면?
강유의 진언을 유선이 듣고 방비를 제대로 했다면 우주 방어로 촉한이 존재했던 시대를 년단위로 늘렸을텐데 이건참 아쉽다고 느낍니다.
저런 if는 사실상 의미가 없지만 유선은 강유의 말은 어느정도 듣고방비는 했어야했는데 참..
20/10/20 08: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마막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염우가 이세계로 빨려들어가지 않았다면
의 if도 있어서 진짜 끝이 없네요
유니언스
20/10/20 09:02
수정 아이콘
근데 저만큼 IF가 많다는것도 대단합니다;
그것도 죄다 안좋게 터져버림;
카바라스
20/10/21 16:07
수정 아이콘
사실. 조비 조예의 연달은 급사(특히 조비의 급사는 북벌을 바로 시작할정도의 천운중 하나), 낙곡대전의 경이적인 실패같이 위에게 안좋은 if도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양국의 전력차가 워낙 컸다고 봐야죠
거짓말쟁이
20/10/20 05:15
수정 아이콘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인기가 없었죠..
복타르
20/10/20 07:14
수정 아이콘
이궁의 난 으로 이미 끝난거죠...
Your Star
20/10/20 08:10
수정 아이콘
항상 생각하지만 삼국지는 제갈량 사후 배드엔딩으로 끝
일단 저 같은 독자입장에서 위촉오 아무도 통일을 못해요 아 진나라 취급 안 합니다 전 ㅡㅡ
리자몽
20/10/20 08:53
수정 아이콘
삼국지 후반부는 전반부 네임드 태반이 사라진채로 시작하니 흥미가 떨어지고

최후의 승자는 위촉오도 아닌 진나라니 인기가 앖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20/10/20 08:56
수정 아이콘
어린시절 본 한권짜리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한중왕 오르는것 까지 나오고
나머지는 몇년도에 촉멸망, 위멸망, 오멸망, 진나라 통일이라고 정리된걸로 나온걸로 봐서
처음보고 뭐지?! 위오촉이 싸웠는데 왜 진나라가 통일해??? 하고 벙졌던 기억이 나네요
GNSM1367
20/10/20 09:32
수정 아이콘
제 또래는.. 어렸을 때 대부분 삼국지 첨으로 접했던게 만화버전 삼국지였을텐데..
관우 죽고, 조조 죽고, 장비 죽고, 유비가 죽고.. 이 뒤에 내용이 거의 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유니언스
20/10/20 09:52
수정 아이콘
촉나라는 거기에 멸망후 유선의 '그립지 않다!'로 결말까지 완벽(?)합니다!
20/10/20 09:55
수정 아이콘
간지부족이 가장 큰 원인인거라...
판을흔들어라
20/10/20 10:15
수정 아이콘
1번 독발수기능의 난과 3번 당대 분위기 자체를 연결하면 당시 오나라가 얼마나 얕잡아 보였는지가 드러나네요. 지형차도 있겠지만요. 그런점에서 제갈량의 북벌은 위-진나라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줌으로써 촉의 방어에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지...
Rorschach
20/10/20 10:20
수정 아이콘
그런데 촉한멸망과 오멸망의 차이보다 촉한멸망과 오장원에 떨어진 별 차이가 훨씬 크지 않을까요? 아니면 이릉대전이나 크크
20/10/20 10:48
수정 아이콘
이게 임팩트로만 따지면 그럴수있는데 유선이 에라이 던져 했는데도 강유가 붙잡고 그만큼 남자의 충심을 보여준게 너무 멋져서 그래도 이만큼 언급이 되는거 같아요.
담배상품권
20/10/20 10:23
수정 아이콘
강유는 정말 멋있는 양반입니다.
Lord Be Goja
20/10/20 11:31
수정 아이콘
팀의 인기도 인기인데,
아무래도 정상적인 전투끝에 역량차이로 져버린거와 기습적인 판짜기에 터지기 시작하면서 힘도 못써보고 진건 화제성이 다르겠죠.

젠지vsG2가 DRX vs DWG보다 더 활활타는걸 보면 알수 있습니다.
더치커피
20/10/20 18:31
수정 아이콘
하지만 젠지에는 강유가 없었,
유념유상
20/10/20 11:52
수정 아이콘
촉의 경우에는 혹시 뭐뭐 했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반해 오는 그냥 밀렸다가 끝이라.. 재미가 없죠.
따라큐
20/10/20 11:59
수정 아이콘
말년까지 오나라는 스타성이 없음
Liberalist
20/10/20 12:01
수정 아이콘
촉은 강유의 마지막 불꽃이 워낙 화려해서 아무래도 인상이 깊을 수밖에 없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역대 중국 왕조 다 통틀어도 촉 멸망을 능가하는 처절한 멸망 과정을 밟은건 남송이 유일합니다. 반면에 오나라는 중국의 여타 허접한 분열 왕조 망하는 테크 그대로 타서 허망하게 망했으니 무시당할만 하죠.
야망가득길모퉁이
20/10/20 20:01
수정 아이콘
촉한과 남송... 공감되네요.
하나의꿈
20/10/21 10:51
수정 아이콘
오가 망하는 이야기는 연의에서는 거의 언급이 없는 수준이지 않나요? 정사가 많이 보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연의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정사와 비교해보길 좋아하지 않을까요
카바라스
20/10/21 16:01
수정 아이콘
육항과 양호가 좀더 살아있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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