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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8/07 10:25:51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19세기 아편전쟁 뒤에 숨겨진 에피소드 (수정됨)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아편전쟁의 발발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 영국의 차 사랑은 못말리는 것이어서 중국을 상대로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 차를 수입했다
- 적자를 메울 수 있는 상품을 모색하다가 아편을 발견, 아편을 중국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 아편중독에 빠진 중국은 무역흑자에서 무역적자로 전환, 결국 강력한 아편금지 정책을 펼쳤다
- 이에 빡친 영국은 아편판매를 위해 전쟁을 걸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아편무역이 어떻게 돌아가는 구조였는지 대해서 설명하는 글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되게 궁금했거든요. 아편을 어떻게 중국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이렇게 받은 "은괘"를 어떻게 현금화할 수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당시 영국의 동아이시아 무역을 총괄했던 "영국동인도회사"는 명목상 중국으로 향하는 아편무역을 금지했었는데 어떻게 아편을 판매한 것인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몇 가지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영국에서 중국으로 바로 통하는 무역은 동인도회사의 존재로 인해 불법이다
(2) 그런데 현실적으로 무역을 동인도회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어, 일부 사무역을 허용한다

동인도회사의 암묵적인 양해로 사무역을 허용받은 개인업자를 Country Trader라고 부릅니다(이들은 영국인 뿐만 아니라 인도 현지인, 아르메니아인 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무역에만 종사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동인도회사가 생산하는 아편을 구입하고, 이를 중국에 밀수하였습니다. 이렇게 동인도회사는 스스로 아편을 운반하지 않으면서 중국에게 자기들의 손은 깨끗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편무역은 모른 척 하면서 계속 차를 구입할 수 있었죠. 

개인밀수업자는 중국업자로부터 "은"을 받고, 이를 동인도회사의 은행에 예치해서 "수표로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이 수표는 런던의 동인도회사 지점에서 "현금(영국 파운드)"로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동인도회사는 동아시아의 국제통화라고 할 수 있는 "은"을 이들 밀수업자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었고, 이렇게 예치한 은을 통해 중국 차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현지 지점이나 인도에서 예치할 수 있는 은의 한도가 정해져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인무역업자들은 공적 기구인 동인도회사를 통해 은을 현금화하기 보다는 다른 루트로 현금화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금세탁"인 것이죠. 
이들은 심지어 적성국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이용해서 자금을 현금화했다고 합니다. 

그럼 이들 개인무역업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은을 현금화할 수 있는가?

여기서 등장한 게 바로 "미국수표"입니다. 미국 상인들은 목화를 영국에 수출하는 대신 런던은행으로부터 "수표"를 발급받았는데, 미국인들은 이 수표를 통해 인도에 있던 영국의 개인무역자들로부터 "은"을 구입했고 이걸로 중국차를 구입했습니다. 그럼 영국 밀무역자들은 동인도회사를 거치지 않고, 미국수표를 통해 이익을 바로 현금화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미국상인들은 영국법에 저촉되지 않는 제3자였기 때문에 이들은 보스턴에서 중국 광저우까지 자유롭게 교역했고, 이는 영국 개인무역업자들을 크게 자극시켰습니다. 이들은 동인도회사의 무역독점이 시대착오적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본국에 엄청 로비했습니다. 마침 본국의 제조업자들도 동인도회사의 무역독점권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기에 "자유무역"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그 결과 결국 1833년 동인도회사의 무역독점권이 폐지되었고, 개인무역업자들은 이제 자유로이 무역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더 많은 아편거래를 할 수 있었고 또 이렇게 얻은 이득을 현금화하는 것도 더욱 용이해졌습니다. 

본국 정부와 의원들을 설득하면서 전쟁을 가장 강력히 촉구한 것은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중국과의 무력충돌은 사실 영국 해군도 꺼려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이해관계자 집단의 힘이 정부의 관료나 군인들의 주장을 초월하게 된 사례가 바로 아편전쟁인 것이죠. 

아편무역에 연관된 국제적 분업을 살펴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미국인들은 목화를 팔아 영국어음을 얻고, 인도와 중국에 있던 영국인 개인업자를 통해 은을 구입해서 이를 통해 다시 차나 도자기를 구입하는 등... 

그리고 생산과 구매 및 판매와 유통에 정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연루되었었는데, 아르메니아 상인, 인도인 상인, 미국인, 영국인, 유대인 등 각자 자기 영역에서 특출난 분야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편무역은 영국-중국 간의 양자 무역이 아니었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만든 거대한 무역네트워크였던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걸 보면 금융이나 경제는 정말 공부할 필요가 있는 거 같습니다... 19세기 아편무역 관련 책을 읽어도 잘 이해가 안되는.. 동인도회사 어음과 미국어음 교환비율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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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Hudson
20/08/07 10:42
수정 아이콘
그 목화는 남부에서 노예를 쥐어짜내가며 얻은 것일테고...
'교환비'에서 추측해보건대 미국 상인들이 마음 급한 밀무역자들에게 수표로 rent-seeking을 약간 했던 모양이네요.
밀무역자들은 동인도회사 독점생산 아편 사느라 한번 뜯기고 미국인들에게 두번 뜯기고 하면서 불만이 많았나봐요
영국 정부 입장에서도 국부 유출이 되고 있는 상황이니 풀어줄 수 밖에 없었겠네요
담배상품권
20/08/07 11:46
수정 아이콘
rent-seeking이 무슨 뜻인가요?
데브레첸
20/08/07 12:33
수정 아이콘
아르메니아인이 중국 무역에까지 진출했나요.

유대인이나 화교같은 세계적인 금융/무역의 주축이었는데, 국내엔 잘 안 알려진 것 같습니다.
aurelius
20/08/07 12:49
수정 아이콘
광저우에서 아편무역에 종사하던 사람들 출신은 영국인뿐만 아니라 그리스계, 아르메니아계, 파르시(페르시아계), 힌두계 등 다양했다고 합니다. 인도를 거점으로 삼은 상인집단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영국계와 유대계를 제외하면 파르시였다고 하네요.
20/08/08 06:09
수정 아이콘
aurelius님, 시간이 되신다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비극인 "메츠 체게른"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보스톤 근처 "Watertown"에 매사추세츠주 내에서 가장 큰 아르메니안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2001년 그 동네를 지나갈때 처음으로 "잊지말자! 메츠 체게른 1915-1923"이란 현수막을 봤고, 저의 아르메니안 이웃을 통해서 이 엄청난 사건을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단편적으로 아는 이야기보다는 님의 스케일있는 이야기가 다른 분들에게도 유익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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