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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02 23:05:09
Name PKKA
Subject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12
* 본인은 『8월의 폭풍』의 역자이자 연재소설 『경성활극록』의 저자임을 독자분들에게 먼저 알리는 바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https://novel.munpia.com/163398

12. 독소 불가침조약과 할힌골 전투의 종결

잠시 소련이 어째서 나치 독일과 불가침조약에 이르게 되는 상황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1933년에 나치당의 히틀러가 총선에서 승리해 독일의 권력을 틀어쥐자, 소련의 스탈린은 독일을 최대의 안보적 위협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가 대놓고 유대-볼셰비즘을 절멸하고 소련으로 쳐들어가 레벤스라움을 만들자고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탈린을 대유럽 외교노선을 부르주아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 프랑스와 손잡고서라도 함께 나치 독일을 고립시키는 '집단안보체제'의 형성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스탈린은 집단안보체제를 위해 영국 및 프랑스와 계속 접촉하고 1935년에는 프랑스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대독 포위망을 구축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의 집단안보체제 구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영국 체임벌린 내각의 대독 유화정책과, 이로 인한 뮌헨 협정에 의한 체코슬로바키의 수데텐 할양으로 스탈린은 대서방 불신을 품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수데텐 위기 전 체코슬로바키아와 협정을 맺어 체코가 위기에 처하면 소련군을 파견하여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폴란드 혹은 루마니아를 통해 병력을 파견해야 했지만, 이온 안토네스쿠의 파시스트 정부가 집권한 루마니아는 물론이고 반소감정이 완강한 폴란드는 절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가 자국 영토에서 소련군을 통과시켜 체코로 보내달라고 설득하지 않으며, 수데텐 위기에서 소련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결국 체코의 후견국이었던 소련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체코를 상실했습니다.

그럼에도 스탈린은 어떻게든 집단안보체제로 독일을 고립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이를 논의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보낸 군사대표단은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없을 만큼 격이 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스탈린은 결국 집단안보체제 노선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스탈린은 독일과의 무력충돌이 불가피하다면, 소련군의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시간을 벌 심산으로 나치 독일과 불가침조약 협상을 시작하였습니다.

서방 국가와의 충돌 시 동부에서 소련과 동시에 충돌할 위험을 피하려 했던 나치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 결과 8월 4일에 독소 불가침조약이 조인되었고 8월 23일에 공표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이 중대한 사안을 방공협정 가맹국인 일본에게 하나도 알리지 않은 채로 조약을 진행하였습니다.

히라누마 내각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유대-볼셰비즘 절멸을 내세우며 노골적인 반공, 반소 정책을 내세운 나치 독일을 믿었기에, 이전의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에서 방공협정에 가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나치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는다는 것은 극도로 혼란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나치가 불가침조약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질이나 암시도 주지 않은 데다가 일본 외무성이나 정보기관들도 불가침조약 움직임을 전혀 알지 못했던 관계로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히라누마 총리는 "구주천지 복잡기괴"(유럽 정세가 하도 복잡하여 기괴하기 짝이없다)라는 8글자로 그 충격을 말하고 내각총사퇴를 해버렸습니다.

한편 소련군은 8월 25일부터 할힌골에 포위된 일본군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포위된 일본군 전체가 전멸당할 위기였습니다.

결국 나치가 폴란드 침공을 시작한 9월 1일에, 모스크바 주재 일본대사인 도고 시게노리가 협상을 타진했습니다. 독일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일본 협상대표단은 소련측이 놀랄 정도로 저자세로 나왔습니다.

2주 간의 협상 끝에 양측은 전투를 멈추고 포로교환을 하며 국경선은 소련이 요구한 대로 결정한다는 합의를 보았습니다.

소련은 원하는 국경선을 확보한 대신에 일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중화민국에 대한 원조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후 현지에서 소련 및 몽골군과 관동군 및 만주국군간의 국경 실무협상이 계속되었습니다.

외교관들과 달리 관동군 장교들은 보다 더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심지어 이 사태의 원인 중 하나인 츠지 마사노부는 소련측 협상대표인 세묜 보그다노프 사단지휘관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며서 보그다노프가 몽골 협상대표와 함께 오밤중에 숙소를 빠져나오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보그다노프는 훗날 제2근위전차군 사령관에 오르는 인물로 하마터면 소련군은 인재 하나를 어이없이 잃을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고, 결국 국경선은 소련과 몽골이 원하는 대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소련군에 포위당한 일본군 포로들은 협정에 따라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몇몇 포로들은 항복한 군인을 겁쟁이라고 멸시하는 일본의 사회풍토가 두렵고, 또 소련의 회유에 넘어가 소련 귀화를 택하기도 했습니다.

패장이 된 고마쓰바라 중장은 일본으로 돌아와서 비난에 시달리다 1940년에 사망했습니다.

전투의 승자가 되어 모스크바로 복귀한 주코프는 할힌골의 승전을 바탕으로 군단지휘관(중장)으로 승진하고 키예프특별군관구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주코프는 대조국전쟁에서 소련군의 승리를 이끄는 주역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만주사변 이후 무소불위의 위세를 자랑하던 관동군은 기세가 크게 꺾였습니다. 관동군사령관 우에다 겐기치 대장은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직했습니다. 육군성은 관동군의 인사와 예산을 더욱 통제하려 들었습니다.

또한 일본의 전략적 노선은 할힌골 전투를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동맹인 나치 독일이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게 되면서, 양국이 불구대천의 이데올로기적 원수가 아닌 서로 조약도 맺고 합의도 할 수 있는 평범한 국가관계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소련과 충돌 시 나치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심지어 육군의 몇몇 장교들은 이렇게 된 바에야 독일-이탈리아-일본-소련의 사국동맹을 추진하자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대소전에 초점을 맞춘 북진전략은 중일전쟁 수행을 위하여 태평양의 자원을 확보하자는, 해군이 주로 주장하는 남진전략으로 선회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미국, 영국, 네덜란드와의 갈등 격화는 태평양전쟁 발발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할힌골 전투는 결국 일본의 국가전략 노선을 바꾸어 버림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방향을 크게 결정한 전투가 된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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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맨틀
20/07/02 23:30
수정 아이콘
결국 할힌골 전투가 소일불가침조약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군요.
20/07/03 09:46
수정 아이콘
그렇게 된 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안군-
20/07/03 01:00
수정 아이콘
소일전쟁을 계속하는 것과 태평양전쟁으로 미국과 싸우는 것 중에서 과연 일본에게 더 유리한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니면 이러나 저러나 별 상관 없었을려나요? 일본이 공산화 되는 것보다는 미국한테 지는 쪽이 더 나았을려나..
20/07/03 09:47
수정 아이콘
저도 이건 잘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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