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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6/25 20:02:17
Name PKKA
Subject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5
* 본인은 『8월의 폭풍』의 역자이자 연재소설 『경성활극록』의 저자임을 독자분들에게 먼저 알리는 바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https://novel.munpia.com/163398


1922년 11월, 가토 내각은 시베리아 출병이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리하여 시베리아 내전이 종결되며 극동공화국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극동공화국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합병을 요청하는 형태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그해 12월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되었음을 선언하며, 마침내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전이 종결되고 소련 체제가 성립되었지만, 소련에 남은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적백내전, 그리고 스페인 독감으로 발생한 수백만 명의 막대한 사상자와, 8년간의 전쟁으로 엉망이 된 국민경제, 그리고 국제적인 고립이었습니다.

레닌이 예상한 세계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독일 스파르타쿠스단의 봉기는 사회민주당 에베르트 정부가 극우세력인 자유군단까지 동원해 가며 무자비하게 진압하였고, 봉기를 주도한 독일 공산주의자인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유군단에게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헝가리에 수립된 쿤 벨러의 헝가리 공산당 정부 또한 1년도 못되어서 무너졌고 쿤 벨러는 소련으로 도주했습니다.

세계혁명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큰 기대를 모았던, 붉은 군대의 폴란드 진공은 바르샤바 목전에서 일약 역전극을 당하며 폴란드의 사회주의화도 실패했습니다.

이리하여 소련은 완전히 국제적으로 고립되었습니다. 아군이라고는 막 공산화된 몽골인민공화국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내전에서 간섭세력의 개입은 제한적이었지만, 소련 입장에서는 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여력이 없었을 뿐이지 이런 고립 상태에서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언제든 소련을 침공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중되었습니다.

레닌은 결국 세계혁명의 실패를 인정하고, 미래의 세계혁명을 위해서는 소비에트 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레닌은 대외정책을 방향을 혁명의 수출에서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공존 및 기존 외교질서로의 복귀로 틀고 말았습니다.

소련은 아직 소비에트 러시아였던 1922년에 같이 고립된 상태였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라팔로 조약을 맺으며 새롭게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이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예전에 소비에트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내전에 간섭했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복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혁명을 지지한 구체제 외교관인 게오르기 치체린을 필두로 한 소비에트에 기용된 제정 시대의 외교관들은, 소비에트 연방이 제정 러시아의 합법적인 후계국이며, 소비에트는 제정 체제에서 맺은 조약들을 보장한다고 제국주의 국가들을 설득하였습니다.

몇년 전만 해도 모든 외교적 프로토콜을 다 무시하고 일방적인 조약파기를 자행한 소비에트였던지라 상당히 꼴이 궁색하게 되었지만, 레닌에게는 당장의 체제생존이 더 급한 판국이었습니다.

일본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소련은 일본과 외교관계를 재수립하면서 전쟁 위협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계산하에 일본과의 외교관계 복권을 타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의 마찰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연해주의 한인 독립운동가 무장단체들에 대한 무장해제와 해산이 시행되었습니다.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소련의 지원만을 바라고 붉은 군대를 도와 싸운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은 이에 반발하여 중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김홍일이 있습니다.

반면 소비에트의 안정이 조선 독립과 연결된다고 생각한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은 해산을 받아들이고 연해주에 정착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도 외교관계를 쉽게 재수립할 의사는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시베리아와 연해주에서는 철수했지만 여전히 북사할린에서는 철수하지 않았습니다. 니항 사건의 배상이 철수의 조건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속셈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일본은 이 기회에 석유와 석탄이 나오는 북사할린을 자기 땅으로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일본 정부는 소련에 북사할린을 1억 5,000만엔에 매각하라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소련도 한때 이 조건을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영토 매각에 대한 거부감 때누에 당 내에서도 논쟁이 많았던지라 쉽사리 일본의 조건을 수락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밀고 당기던 협상은 소련이 북사할린을 영유하되, 자원에 대한 이권을 일본에 제공한다는 타협안을 제시하며 급물살을 탔습니다.

그 결과 1925년 1월, 소일기본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기본조약은 소련과 일본의 국교복원, 북사할린 이권을 일본에 양도, 일본군의 북사할린 완전철수, 포츠머스 조약의 보장 등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소련과 일본은 국교를 회복하였습니다.

조약에 따라 1925년 5월까지 북사할린에서 일본군이 철수했습니다.

일본에 소재한 러시아 외교공관들에서는 구체제의 삼색기가 내려가고 소비에트 연방의 붉은 깃발이 휘날리게 되었습니다. 한참 사회주의가 전파되고 있던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에서도 1896년에 고종이 아관파천을 한 러시아 공사관이 소련 총영사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나 비록 외교관계가 복원되었어도, 이미 군부를 비롯한 일본 보수층은 전통적인 러시아혐오증에 더불어 극렬한 반공주의를 가지고 소련을 강력히 적대했습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영향으로 일본과 식민지 조선을 가리지 않고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이 발흥하였습니다. 또한 코민테른은 일본과의 국교복권과는 별개로 일본과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보수 세력에게 있어서 천황의 신성성을 부정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세력의 등장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넘어서 생존까지 위협하는 강력한 위협이었습니다.

일본 육군의 제1가상적국은 소련이 되었고, 육군의 작전계획은 대소전에 초점을 두고 작성되었습니다.

여기에 1925년 4월, 일본 의회에서는 악명높은 치안유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치안유지법은 국체를 변혁하거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는 조항을 1조 1항으로 하였으며, 1928년에는 최고형이 사형으로 개정되며 본토의 사회주의 운동은 물론이고 식민지의 독립운동까지 포과하여 탄압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소련을 최대의 안보적 위협으로 여긴 것과 별개로, 당대 소련이 일본에 실질적인 안보적, 군사적 위협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소련 극동지방에 배치된 극동 특별적기군의 병력은 기껏해야 2개 소총(보병)사단과 기타 지원 부대로만 구성되었습니다. 이 병력으로는 일본이 소련의 남하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소련이 일본의 북상을 두려워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함대전력이 못 되었던 소련 태평양함대는 일본 해군에 비해 더욱 열세에 처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소련과 일본, 정확히는 소련과 식민지 조선 사이에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완충지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장쭤린의 봉천군벌이었습니다.

만주 일대 군벌들의 수장인 장쭤린은 본거지 만주를 넘어서 베이징, 텐진을 비롯한 화북지방까지 차지했으며,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와 중원의 패권을 다투고 있을 정도로 막대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전략적으로 장쭤린을 지원하고 있었던 관계로, 장쭤린이 만주와 화북에 버티고 있는 한 소련을 막아줄 확고한 완충지대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소련과 충돌이 일어난다 해도, 봉천군벌이 먼저 맞아줄 것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일본은 먼저 소련과 무력충돌을 하기보다는 현행 국제질서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5대 승전국 중 하나이자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인 관계로 현행 국제질서의 유지에서 이익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24년에 집권한 가토 다카아키 내각의 외무대신 시데하라 기주로는 영국과 미국의 외교노선에 협조한다는 영미협조체제란 이름하의 외교정책을 전개하고 있어서, 현행 국제질서를 파괴하거나 타파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선 아래서 소련과 충돌하는 일은 일본도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육군은 소련을 강력한 안보적 위협으로 여기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토 다카아키 내각의 육군대신 우가키 가즈시게 대장은 시베리아 출병도 끝났고 소련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데다가 국내적으로 반전 평화주의 운동의 기세가 강해지는 현실에 맞추어, 21개 사단 중 4개 사단을 완전히 해체하는 대대적인 군축을 감행했습니다.

우가키는 육군의 과도한 유지비를 줄이고 절약한 비용으로 전차와 항공기 등 신무기들을 구입하며 군의 현대화를 추구하였습니다.

우가키의 이러한 방침은 일본의 안보태세를 해치며 일본 고유의 병법을 해치는 것이라는 군부 원로들의 반발에 부딪쳤지만, 우가키는 군축을 밀어붙였습니다.

이처럼 국교복원 이후에도 일본은 소련을 적대시하는 시선이 강했지만, 소련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관계로 소일 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1928년에 들어서며 동북아시아 정세의 변화가 일어나며 소일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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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맨틀
20/06/25 20:39
수정 아이콘
일본제국육군의 제1가상 적은 구소련이고 일본제국해군의 제 1 가상 적은 미국이라 흥미롭네요.
20/06/25 20:39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해군력은 소련이 뒤떨어지다 보니 굳이 적이라고 할 수가 없기도 했구요
패트와매트
20/06/26 08:43
수정 아이콘
8월의 포성인줄 알았습니다 헷갈리네요
20/06/26 09:54
수정 아이콘
헷갈리지 마십시오! 『8월의 포성』은 바바라 터크만이 쓴 제1차 세계대전 초반을 다룬 1960년대 논픽션이고, 『8월의 폭풍』은 1945년 소련군의 만주침공을 다룬 연구서입니다.
스타더스트
20/06/27 09:45
수정 아이콘
우리의 역사서에 반드시 있어야 할 내용들이네요
20/06/27 10:23
수정 아이콘
음 거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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