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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6/12 20:40:58
Name Odgaard
Subject [일반] 죽음에 가까웠던 경험에 대하여 (수정됨)
어렸을 때 제 방에서 홀로 자다가 일산화탄소 가스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저 꿈 속인데 숨이 쉬어지지 않고 온 몸이 마비되는 것처럼 괴로웠지요. 꿈이라고 생각했고 암흑 속에 제 웅크린 몸이 점점 작아진달까 멀어진달까...희미해지며 마비되고 있던지라 몸무림을 친 것 같습니다.
그러다 숨쉬는 게 조금씩 편해지며 발에 찬 바람이 닿는 느낌도 들고, 아 시원하다 생각하는데 누가 저를 자꾸자꾸 불렀습니다.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니 제 맨발이 공중에서 달랑 거리고 있었습니다. 등에 업혔는데 아빠가 엉엉 울면서 응급실로 달리고 계셨습니다. 응급실이 3분 거리이긴 했지만 그 날 아빠는 차키도 찾을 수 없었고 신발도 신을 수 없었고 전화를 할 수도 없어서 그저 업고 달리고 계셨습니다.
신선한 겨울 공기에 씻겼는지 아빠 부름에 깨었던 건지 응급실 도착해서 산소치료 후 그날 아침에 학교도 갔어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날 새벽 거실마루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 나와봤더니 제 방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격렬한 몸부림은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고 있던 의지였던 것 같습니다. 문턱에 걸려 발등도 찢겨 있었구요. 이건 아마도 제 몸이 제 의식을 살린 것은 아닌지 아무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게 발견되지 않았으면 그 괴로운 암흑으로 의식은 영원히 사라졌겠지요.

저승이 있는지 천당이 있는지 영혼과 육신은 다른 것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아니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가 암흑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던 것만이 제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막연하게나마 죽음은 소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추정도 합니다.

죽음의 정확한 모습은 모르겠지만 제가 원하는 사후 세계 모습은 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 막바지에 죽은 잭의 영혼이 무도장으로 이끌려 헤어졌던 다른 이들과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들, 3등칸 사람들, 다른 이들을 지킨이들과 배와 함께 사라진 이들. 공포와 두려움을 떠나 평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들.
죽음이란 육신은 소멸하지만 영혼은 남은 번뇌없이 안식을 얻는 것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 겨울 밤 맨발로 달리던 나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하며...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그게 힘들다면 작은 풀 한포기에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아빠 나중에 우리도 우리만의 무도장에서 웃으며 만나요!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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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다리털
20/06/12 20:46
수정 아이콘
아버지 보고싶네요...
국제제과
20/06/12 22:59
수정 아이콘
닉네임 보고 추천드립니다.
valewalker
20/06/12 23:30
수정 아이콘
제가 기억나는 죽을뻔한 기억은 유치원생때 독감으로 열 40도 넘게 올라서 부모님께 업혀서 병원 갔을때, 초등저학년때 다리미 플러그를 110v 220v구분 못하고 코드꼽았다가 감전당했을때, 군대시절 창고정리 도와줄 작업인원을 배정 못받고 혼자 정리하는데 텐트 팩 몇십개가 든 박스를 들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명치에 박스를 떨구고 혼자서 객사할 뻔했던 적 이렇게 3개네요..
20/06/12 23:34
수정 아이콘
입안이 헐어서 아프고 배고파서 죽을뻔
20/06/13 02:04
수정 아이콘
시골에서 방에 멀쩡히 서있던 제가 갑자기 정신 놓고 넘어지면서 바닥에 있던 종이박스에 부딪혔었습니다.
쿵소리에 엄마가 달려왔고
괜찮냐 물어보실때 응응 하면서 침대에 올라갔는데
턱 아래가 벌어져서 속이 보이더래요. 피가 상반신에 흥건하고
종이상자 모서리에 턱을 찍은건데..
그리고 저는 정신을 놨고 나중에 지나서 들었던건
밤이었는데 엄마가 차가있던 주변 집들 다 뛰어다니면서
응급실좀 가달라고 우시면서 그렇게 사정 사정 하셨다더라구요.

글쓰신분의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글 보니 엄마 생각나네요
20/06/13 03:26
수정 아이콘
죽음과는 상관 없지만 죽음의 공포를 느낀 건 훈련소에서 가스 마셧봤을 때였어요. 분명 들어가기 전에 절대 안 죽는다고 설명을 충분히 듣지 않았다면 뛰쳐나갔을 거 같고, 숨이 막히면 사람이 자동으로 공포를 느끼는구나? 그런데 또 적응이 되는것도 신기하고 하여간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오토바이 타다 결과적으로는 그리 크지 않는 부상 입는 슬립 과정에서도 정말 찰나의 순간인데 짧은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는 것도 그렇고, 사람이 참 생존과 관련된 본능에 비슷한 반응이 존재하나 봐요.
20/06/13 03:52
수정 아이콘
저도 저정도까진 아니지만 캐리비안베이에서 바디슬라이드 탔는데 끝이 안나고 점점 몸짓이 느려지니깐 공포감에 생각도 느려지더라구요.
그러던 중에 라이프가드가 저를 구해서 나갔습니다.
목격한 친구한테 물어보니깐 제가 너무 몸을 뒤로 젖히고 탔는지 파이프 밖으로 나와서 머리부터 물 속으로 빠져버렸다고 하더군요.
20/06/13 07:10
수정 아이콘
어릴적에 동네형들이랑 강 다리밑에 물놀이 갔다가 잠수를 했는데 발이 닿지않아 물에 빠져 죽을뻔 했어요. 물살이 쌔지않아 깊은 물 주변을 빙빙돌다 수영 잘하는 형이 구해주러 들어왔는데 막 살고자 몸부림 치다 모래턱 쪽에 발이 닿아 겨우 살아 걸어나왔습니다. 저는 한 1분 정도 숨참고 허우적 거린 느낌이었는데 동네형들이 말하기 5분 넘게 물속에 있어 쟤 진짜 죽는 줄 알았다며 발동동 구르고 있었다네요.

성인이 되고 수영하며 물에 노는 걸 좋아합니다. 당시 죽음의 공포보다 물속 유영을 더 편안하게 느꼈던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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