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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6/05 16:56:41
Name 라쇼
Subject 역사 속에 등장하는 망나니, 야마다 아사에몬과 샤를 앙리 상송 전편 (수정됨)
이 글은 막장 인물이 아니라 사형집행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이라 본의 아니게 낚인 분들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역적이나, 살인범 같이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을 참수하는 사형집행인. 순수 우리말로 망나니라고 불리는 그 직업에 종사하는 부류들은 대중들에게 경원시 당하는 천한 계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 남은 기록 중엔 사형집행인이라는 3D 직종에 종사하면서도 권력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부귀영화를 누린 특이한 인물들이 보이는데요. 그들이 바로 야마다 아사에몬과 샤를 앙리 상송입니다. 우선 야마다 아사에몬 부터 얘기해보록 하죠.

야마다 아사에몬(山田浅右衛門)의 직함은 오타메시고요(御様御用)으로 막부 휘하에서 타메시기리(試斬 시참)을 통한 도검 감정과 죄인들의 참수형을 집행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오타메시고요를 직위를 얻은 야마다 가문의 당주들은 대대로 '아사에몬' 이란 이름을 사용했죠. 오타메시고요는 쇼군가에 헌납되는 도검과 장신구를 담당하는 요물봉행에 소속되었는데, 막부의 신하이면서도 하타모토나 고케닌 같이 영지를 수여 받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일개 낭인 신분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보면 대기업으로 부터 외주 받는 프리랜서 같은 입장이었달까요?

정식 관직이 아닌 낭인 신분이었지만 막부에서 도검감정과 사형집행인으로 일하는 야마다 아사에몬의 수입은 상당히 쏠쏠했습니다. 아니, 쏠쏠하다 못해 일설에는 왠만한 소규모 다이묘 만큼 재산이 넘쳐났다고 하네요. 정식으로 영지를 받는 대신 막부로부터 돈을 받았는데 1713년 쇼군이 일광참배를 올리며 아사에몬에게 하사한 금화가 무려 300냥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시세로 금화 300냥은 300석 영지의 1년 수입과 같았습니다. 즉, 대기업에서 이사님, 부장님 소리는 못들어도 연봉은 빵빵하게 받는 기술직 프리랜서였죠.

막부로부터 받는 돈 말고도 아사에몬의 수입은 따로있었습니다. 당시 도검감정은 날이 얼마나 잘드냐에 따라 명검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타메시기리를 통해 칼을 시험했는데요. 좀 으스스한게 현대 검도처럼 짚단 같은 걸 베는 게 아니라 시체를 베어 검의 예리함을 측정했습니다. 거기다 죄수들을 처형하는 일도 병행했기에 막부는 아사에몬에게 참수되고 남은 시체의 소유 권한을 주었지요.

당시 에도 시대에선 사람 시체가 꽤 비싼 소재였습니다. 윗 문단에서 시체가 타메시기리 용도로 쓰인다고 적었듯이 소유한 칼이 얼마나 잘드는 지 시험해보고 싶은 무사들에게 매각하거나, 시체를 베는 걸 꺼림찍해 하는 고객에겐 대신 타메시기리를 해주는 서비스도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시체의 간이나 뇌, 담즙 등을 이용해서 '아사에몬 환'이란 환약을 제조했는데. 결핵에 특효약으로 날개 돋힌 듯이 팔렸습니다. 또한 당시 유녀(기생)들은 남자에게 변치않는 사랑을 맹세할 때 새끼 손가락을 잘라서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아사에몬으로부터 시체 새끼 손가락을 구입했다고 하네요. 참 처형된 죄수 입장에선 죽은 것도 억울 한데 시체까지 능욕 당하니 저승에서 입맛이 썼을 것 같습니다.

아사에몬은 시체 말고도 도검을 감정하여 수입을 올렸는데요. 대대로 타메시기리를 하며 경험을 축적한 결과 도검 감정의 명인으로 불리어서 5대 당주 아사에몬 요시무츠는 일본도 등급을 매긴 도검감정서 <회보검척>(懐宝剣尺)을 저술했습니다. 아사에몬이 이건 명품이다라고 한 마디만 하면 저급 일본도도 값 비싼 명검이 됐기에 감정비는 부르는 게 값이었죠.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야마다 아사에몬이 돈만 밝히는 수전노처럼 생각 되겠지만 단순히 물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역대 야마다 아사에몬들은 친자식에게 당주를 물려주는 걸 매우 꺼려했는데요. 수입은 많았지만 목베기 아사에몬, 살인자 아사에몬이라 불리며 막부의 무사들에겐 무시당하고 백성들로부턴 두려움으로 경시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 중에 실력이 뛰어난 자가 있으면 친자식 대신 당주자리를 거리낌 없이 물려주었지요. 더욱이 오타메시고요 직위가 공식 관직으로 인정 받지 못한 이유는 손에 피를 묻히는 사형집행인 특성 상 막부의 요직들로부터 불길하다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야마다 아사에몬의 삶이란 기구했지요. 죄수들을 너무 많이 처형하여 업이 쌓였다고 생각했는 지, 아사에몬들은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무덤비를 세워주고 공양을 드리는데 돈을 아낌 없이 사용했습니다.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한 공양비, 힘들고 위험한 일을하는데도 무시당하는 열등감이 역대 아사에몬들이 돈을 밝힌 이유가 아니었을까라고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아사에몬 편을 끝내기 전에 재밌는 일화 몇가지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사에몬이 죄수 여러명을 처형하는 날, 집에 촛불을 인원수에 맞춰 켜놓고 일을 하러 갔는데 죄수가 한 명씩 목이 떨어질 때마다 촛불이 하나씩 꺼지고 모든 죄수들을 처형하고나면 촛불도 모두 꺼졌다고 합니다. 뭔가 괴담 같은 이야기네요.

2

어느 날 딱봐도 악당 같이 생긴 사내가 나타나서 아사에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요구를 거절하자 사내는 "그럼 내 간을 사줘 어차피 당신한테 목이 잘릴 테니 선금으로 생각해." 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합니다. 민간에도 아사에몬이 시체 간을 약재로 사용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서 생긴 이야기 같습니다.

3

18세기 경, 금화 십 냥이란 거금을 훔친 도둑이 체포 되었는데, 당시 법에 따라 참수형이 결정 되었습니다. 야마다 아사에몬이 형을 집행하려는데 사형수의 뒷덜미 부터 견갑골 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호(神號)인 '동조대권현(東照大権現)'이 적힌 문신이 보였습니다. 이에야스의 이름에 칼을 댔다간 자기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라 상관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었는데 상관 또한 뾰족한 방법이 없었는 지 섬으로 무기한 유배보내는 걸로 덮어두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요상하게 돌아가서 소문을 들은 에도의 불한당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참수형을 피하려고 동조대권현 문신을 하는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신을 한 사형수가 들어왔는데 아사에몬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었던 거죠. 문신이 된 부분만 가죽을 도려내어서 땅에 묻어버리고, 괘씸한 사형수의 목을 날렸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름을 문신했다고 죄수들을 처형하지 않고 유배만 보낸다면 아사에몬 입장에선 직장에서 잘리고 수입이 끊기는 중대사한 일이었기에 궁리해낸 묘안이었지요. 범죄 저지르고 잡히면 고통스럽게 가죽이 벗겨지고 목까지 날라간다란 소문이 퍼지자 불한당들이 문신을 지우거나 덧씌우는 등 이에야스의 이름을 지워서 사형을 집행하지 못하는 해프닝은 끝난다고 합니다.

다음 편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을 날린 남자 샤를 앙리 상송을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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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남자
20/06/05 17:0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FRONTIER SETTER
20/06/05 17:10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06/05 17:38
수정 아이콘
오 망나니가 전문 직업처럼 물려주는 것이었군요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재밌어요
20/06/05 17:5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세계 각국에선 망나니들이 천민 계층이었는데 유독 일본과 프랑스에서만 세습 사형집행인 공직이 있었습니다. 그런 특이한 개성 때문인지 만화에도 종종 소재로 써먹더라고요. 가장 유명한 작품은 무한의 주인인데 거기서 주인공 만지를 고문하는 악역으로 나오죠.
20/06/05 18:03
수정 아이콘
이노센트라는 만화(국내 정발중)가 샤를 앙리 상송을 다뤘습니다.

꽤 좋은 작품이니 한번 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20/06/05 18:23
수정 아이콘
이노센트 재밌죠 작가 전작 고고한 사람도 좋아합니다
초보저그
20/06/05 18:21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무한의 주인에서 꽤 정확하고 세세하게 묘사가 된 편이었군요.
20/06/05 18:33
수정 아이콘
작가 사무라 히로아키는 인터뷰에 시대극에 관심 없어서 역사 같은 건 잘 모른다고 말했는데 시대 고증 잘한 편이죠.
20/06/06 16:00
수정 아이콘
와 진짜 재밌는 이야기군요! 프랑스의 경우에는 "목 베는 여자 (영어원제:The Headswoman)"이라는 블랙 코미디 단편 (역사극은 아니고, 피터팬의 작가로 유명한 케네스 그레이엄이 쓴 잔혹동화...? 입니다. 아무도 프랑스의 망나니직을 세습하려고 하지 않자, 은퇴하는 망나니의 친딸이 나서서 남자들을 천국으로 보내주게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기에요.)을 수업교재로 만난적이 있어서 익숙했습니다만, 일본도 비슷한 제도가 있었군요. 역시 전근대에서 시체는 돈이 된답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요~ 말씀해주신 아사에몬의 이야기는 엄청 입체적인 인물 같다는 점이 살아있는 글이라서 더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06 16:12
수정 아이콘
피터팬 작가가 망나니 소재로 책도 썼었군요. Farce님 글을 읽고나서도 생각했었는데 댓글도 그렇고 참 견문이 높으신 것 같습니다. pgr에 글 잘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분발해야겠네요. 저도 자식에게 3d직종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아사에몬들의 이야기가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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