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5/30 00:09:17
Name 서현12
Subject 촉한사영과 과로사 문제 (수정됨)
촉한사영은 촉한을 번영케 했다는 4명의 현명한 재상. 제갈량, 장완, 비의, 동윤을 이르는 말입니다. 보통 촉한은 제갈량의 식소사번 이미지와 동윤의 비의의 일을 1년동안 열심히 처리하다 죽었다는 이미지 때문에 과로사가 많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촉한의 시스템이 이들을 과로사로 몰아 넣었을까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전 우선 보통 우리가 '제갈량의 후계자'로 인식하고 있는 장완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완이 '제갈량의 후계자'인데다 제갈량보다 12년이나 더 살아서(246 년졸) 제갈량보다 대여섯 살은 어리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글곰님의 촉서 제갈량전에도 비슷하게 묘사하셨지요. 하지만 반준전을 보면 의외로 오히려 장완 쪽이 제갈량보다 연상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우선 장완은 반준의 이종사촌형(姨兄)입니다. 반준전에 의하면 반준은 약관에 송충에게 수학, 나이 30이 채 안 되었을 때 유표가 강하군 종사로 임명, 사이현장을 죽이고 이후 상향현령이 되어 치적을 쌓았다고 하지요. 여기까지가 황조 생전(황조는 208년 봄에 사망)의 일입니다. '30이 안 되었을 때'라면 27-29세 정도로 잡으면 될 듯한데, '강하군 종사>사이현장을 뇌물수수건으로 사형시켜 군(郡)을 진동시킴>상향현령으로 치적을 쌓음' 커리어입니다. 이미 207년부터 손권은 황조를 공격해 관리와 백성을 잡아갔고 208년 봄에 사이현에 있던 황조를 손권이 죽임으로서 사이현이 손씨에게 넘어갔다는 걸 생각하면 사이현장 사형과 상향현령 임명은 그전에 있었던 일일테고 몇 달간 빠르게 일어난 일로 잡아 최소한의 연도로 가능한 207년에 반준이 27세일 경우 반준은 181년생이 되고 29세면 179년생이 됩니다. 이게 가장 어리게 잡은 생년이고, 207년에도 손권의 침략으로 강하군이 혼란한 상황임을 감안하여 강하군 종사 커리어가 더 이전인 206년 이전에 시작되었을 수도 있음을 고려하고 이런 일이 몇개월 만에 뚝딱 처리될만한 일인지 생각해보면 반준은 208년에 이미 30대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반준은 아무리 못해도 최소 170년대 후반 출생으로, 사촌형 장완 역시 최소 170년대 중후반 출생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제갈량은 181년생인데, 이렇게 보면 제갈량이 오히려 장완보다 최소한 너댓살 어린 셈이 되지요.

장완전을 보면 제갈량은 항상 "공염은 뜻을 충성과 고아함에 두고 있으니, 나와 함께 제왕의 대업을 도와줄 사람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은밀히 표를 올려 유선에게 "신에게 만일 불행이 있게 된다면, 훗일은 응당 장완에게 맡기십시오."라고 했다지요, 그런데 이런 장완의 실제 나이를 고찰해 보면 제갈량이 장완을 후계자로 삼았다고 보통 해석되는 이 문장들의 의미가 완전히 바뀝니다. 즉, 장완이 제갈량보다 나이가 많았다면 제갈량에게 있어서 장완은 단순히 상사, 부하의 관계를 넘어서 '지금' 자신과 함께 대업을 도울 동료이고, 자신이 혹시라도 잘못되는 비상사태에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일종의 동등한 러닝메이트로 삼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보면 어떤 의미에서든 장완은 '제갈량의 후계자'가 아니라 '제갈량이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될 것이고 진짜 '제갈량의 후계자'로 볼 수 있는 인물들은 비의와 동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강유가 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제갈량에게 등용된 젊은 신진관료라는 공통점도 있고요.

이렇게 보면 장완은 제갈량이 죽었을때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였거나 환갑을 훨씬 넘었을 나이일 겁니다. 요즘이야 60을 넘기면 한창 청춘이라지만 서기 3세기 쯤에 이 나이면 노인이어도 한참 노인인 셈이죠. 하지만 장완은 제갈량이 자신에게 맡긴 촉한을 그가 중병에 걸린 243년까지 약 10여년간 효과적으로 통치해냅니다. 즉, 노인임에도 10여년간은 제갈량과 같은 총괄 업무를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갈량이 시스템을 잘 남겨두었다고 할 수 있지요. 장완을 두고 이전 사람, 즉 제갈량보다 못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화양국지는 이 때의 통치를 두고 '촉에서는 여전히 선정이 지속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제갈량 같은 뛰어난 인물이 통치하는것이 아니더라도 촉한은 여진히 강건한 통치를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는 증명이 될 것입니다. 243년부터 246년까지의 중병은 장완이 170년대 중후반 생이라면 246년 사망 당시 70 언저리니 과로라기보단 노환이라고 볼 수 있고요. 유능한 인재들이 묘하게 오래 못 사는 촉한인데 저 정도면 과로사가 아니라 매우 장수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완이 와병중임에도 촉한의 통치체제는 무리없이 돌아갔고요.

244년부터 장완의 권리를 천천히 물려 받기 시작한 비의의 경우엔 장완보다 더욱 편안한 업무스타일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는 바둑 등의 잡기를 즐기면서도 업무스타일이 술술 넘어가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도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곤란한 일입니다. 비의는 분명 주로 큰 일에 대해서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했을 것이고 작은 일은 유능한 부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업무 도중에 바둑을 둘 정도로 여유를 부리진 못하겠지요. 동윤이 비의의 업무를 따라하려다가 그 엄청난 업무량을 혼자서 꾸역꾸역 처리하다가 사실상 과로사 한 것을 생각하면 비의에게도 만만치 않은 업무가 몰려들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의가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업무를 총괄할 수 있었던 것은 비의의 업무스타일에 맞추어 행정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촉한 행정부에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데 제갈량은 스스로 죽을때까지 많은 업무를 스스로 떠안았고 결국 그것이 그의 과로사로 연결되는 원인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동료와 후계자들은 제갈량이 남겨둔 촉한의 행정 체계에서 상대적으로 쾌적하게 업무를 볼 수 있었고 그런 행정체제를 구축한 제갈량의 능력은 무시할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지탄다 에루
20/05/30 00:45
수정 아이콘
장완의 나이는 처음 알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StondColdSaidSo
20/05/30 00:4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VictoryFood
20/05/30 00:53
수정 아이콘
비의가 널럴하게 일하는 방법도 동윤에게 알려줬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20/05/30 01:36
수정 아이콘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질과 성격탓이라 가르쳐주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닌거 같습니다.

비의가 특이한 경우라.
지니팅커벨여행
20/05/30 08:29
수정 아이콘
이종사촌 형 맞나요?
장완의 여동생이 반준의 아내라고 알고 있는데 당시에도 여자의 나이가 더 어렸던 것을 생각하면 장완이 제갈량보다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서에 중병을 앓다가 사망했다고 되어 있는데 늙어 죽은 거라면 굳이 저렇게 기록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서현12
20/05/30 12:04
수정 아이콘
時濬姨兄零陵蔣琬為蜀大將軍

반준전 주석 강표전 표현입니다. 여기서 '姨兄'이 이종사촌 형이라는 뜻이고요.
20/05/30 13:17
수정 아이콘
장완은 능력이 되는데 체력이 부족해서 오버클럭해서 돌렸다면 비의는 그자리에 딱이었는데 아쉽죠..1인 집권 체제로 저렇게 잘굴러가는게 쉽진않은대 잘짜놓긴했을듯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167 러닝시 두가지만 조심해도 덜 아프게 뛸수 있다.JPG [43] insane10909 24/03/21 10909 18
101166 이번에 바뀐 성범죄 대법원 판례 논란 [94] 실제상황입니다11390 24/03/21 11390 9
101164 이건 피지알러들을 위한 애니인가..? 스파이 패밀리 코드: 화이트 감상(스포 조금?) [28] 대장햄토리4918 24/03/21 4918 3
101163 박노자가 말하는 남한이 사라진 가상 현대사 [102] 버들소리9629 24/03/20 9629 2
101162 참으로 안 '이지'했던 LE SSERAFIM 'EASY'를 촬영해 봤습니다. :) [14] 메존일각3315 24/03/20 3315 9
101160 삼성전자 990 프로 4TB 42.8만 플스 5 호환 O 떴습니다 [55] SAS Tony Parker 6755 24/03/20 6755 1
101159 [역사] 가솔린차가 전기차를 이긴 이유 / 자동차의 역사 [35] Fig.17834 24/03/19 7834 33
101158 일러스트레이터 이노마타 무츠미 사망 [17] Myoi Mina 25005 24/03/19 25005 1
101157 [번역글] 추도:토리야마 선생 희대의 혁명아가 걸어온 진화의 길 [13] Starscream3995 24/03/19 3995 8
101156 자애와, 동정과, 역겨움을 담아 부르는 ‘가여운 것들’ (스포일러 주의!) [10] mayuri3602 24/03/19 3602 2
101154 평범한 개인 투자자는 주식을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 [77] 사람되고싶다9356 24/03/18 9356 15
101152 해외직구는 좋지만... 역차별 받는 국내 수입업자들? [123] 아서스14580 24/03/18 14580 6
101151 슬램덩크 극장판을 얼마전에야 봤습니다. [35] rukawa5591 24/03/17 5591 0
101150 meson님이 올려주신 연개소문의 승첩에 대한 글을 보니 떠오른 기억이 있습니다. [2] 니드호그2425 24/03/17 2425 7
101149 쓸때없이 맥북프로를 산 의식의 흐름과 10일 후기 [30] 한국화약주식회사5112 24/03/17 5112 1
101148 이엠텍 4070 슈퍼 78만 핫딜+3D Mark 할인. 그 외 잡설 [30] SAS Tony Parker 4289 24/03/17 4289 2
101147 [역사] 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9. 나가며 [10] meson1786 24/03/17 1786 15
101146 [역사] 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8. 태산봉선(泰山封禪) [6] meson3068 24/03/16 3068 13
101145 (스포)요즘 본 영화 감상​ ​ [4] 그때가언제라도3763 24/03/15 3763 0
101144 제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영원히 살도록 할겁니다 [51] 보리야밥먹자7090 24/03/15 7090 0
101143 [역사] 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7. 선택과 집중 [10] meson3821 24/03/15 3821 9
101142 오랜만에 랩 작업물 올려봅니다! (스파6 류 테마 등) [4] 개념치킨2519 24/03/14 2519 7
101141 『드래곤볼』과 함께 하는 인생 (토리야마 아키라 추모글) [26] 두괴즐3779 24/03/14 3779 1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