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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1/21 18:09:51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19세기 거문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수정됨)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크림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에 패배하고, 더 이상 발칸반도로 진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침략의 방향을 아시아, 특히 태평양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860년에서 1900년에 이르는 약 40년간 일본, 한국, 중국의 연안지를 대상으로, 태평양 진출 계획인 일환인 부동항 획득을 기도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 1860년 블라디보스토크를(동방의 패자) 점령한 러시아는 중국과 북경조약을 맺어 연해주를 합법적으로 영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는 부동항이 아니었으므로 러시아는 자연히 더 좋은 항만 조건을 지니는 곳을 찾아 나섰고, 그곳은 조선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남하 정책과 대립하고 있었던 중국, 일본 등은 자연히 러시아에 대해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방아론(防俄論)이 대두한 것이 이 무렵이었습니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은 조선 개항 전부터 조선에게 러시아의 남하에 대한 방비책을 권고했습니다. 1880년 황준헌이 지은 "조선책략"이 방아론을 역설하는 대표적인 문서입니다. 러시아를 제 1 위협요소로 설정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해서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내용의 요지였죠. 

마찬가지로 영국의 세계전략 또한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국은 중국침략의 최선봉에 서있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협조를 긴밀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중국의 위신이 지나치게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했고 중국 또한 동아시아에서 영국의 상권을 보호하는 주력했습니다. 어제의 침략자가 오늘의 친구로 변하는 순간이었으며, 실제로 영국은 중국에 기술적, 금전적 지원을 퍼부었습니다. 영국은 이와 같은 협조체제를 기반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현상유지를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사태를 일변하게 만들었습니다. 러시아는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아라비아 해로 진출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인도를 제국방위의 핵심으로 삼고 있었던 영국을 크게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심화는 뜻밖에도 영국을 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영국은 러시아의 이익이 조선에도 얽혀있다는 것을 알고, 조선 영토인 거문도를 무단 점령해서 러시아를 압박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때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이렇게 거문도 점령은 영ㆍ러 대립이라는 세계적 차원의 국제정치에 조선이 직접적으로 편입되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 하에 영국은 1885년 음력 3월 1일 세척의 동양함대를 파견하여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습니다. 영국은 거문도 점령의 공식적인 이유를 러시아의 점령에 대한 예방조처라고 설명하였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갑자기 제3국이 자국을 침략한 모양새였습니다.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군은 영국기를 게양하고 포대와 병영을 쌓는 등 섬 전체를 요새화 했습니다. 섬 주위에는 수뢰를 부설하고 급수로와 전선을 가설하고 그밖에 해문공사를 벌이고 동도의 남단과 고도를 연결하는 등 제방 축조 공사도 벌였습니다. 거문도 주둔군은 때에 따라 200~300명에서 700~800명으로 증가하였고 정박한 군함도 5~6척에서 10척까지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국군과 거문도민과의 관계는 원만하였고, 도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보수와 의료혜택을 받았습니다.
 
한편 거문도 점령은 조선의 국제적 지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거문도점령은 사실 주권국가의 영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1) 영국은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기 때문에 거문도에 관한 협상도 중국을 통해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은 당시 거문도를 주제로 교환된 영국외교문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2) 한편 이것은 조일조규와 조미조약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주창했고 미국 또한 장문의 보고서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속국론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조선을 자주독립을 옹호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은 자국문서에서 조공국(Tributary State)속국(Vassal State)의 차이를 논하며 조선은 조공국이지만 완전한 주권을 보유한 나라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논란에 관련된 당사자인 중국과 조선의 입장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중국은 변화하는 국제질서 흐름 사이에서 전통적인 사대질서를 근대적인 국제관계로 전환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실 일본의 류큐병합, 프랑스의 안남병합은 중국의 "전통적 천하질서"를 부정하는 사건들이었으며 중국의 마지막 속방 조선에 대해서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자국의 마지막 속방 조선을 지키기 위해 대단히 노력했습니다. 

예컨대 1882년 조미조약 체결 당시 조선이 중국의 속방이라는 것을 명문화시키려고 했던 집요한 집착은 중국의 우월적 지위를 재확인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대질서와 근대국제관계는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을 확실히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아두려면 근대적 의미의 속국(Vassal)으로 묶어 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임오군란은 중국이 조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실이 되었고 중국은 이러한 기회를 십분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중국의 노력은 오히려 갑신정변이라는 반작용을 낳게 되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갑신정변과 이를 주도한 개화파는 매우 강렬한 反중국 노선을 표방했습니다. 가령 조공제도를 폐지하고 조선 군주를 황제로 칭하는 것과 대원군을 송환하려는 조치 등은 전통적인 관계를 타파하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는 한편 조선 내부로부터 중국의 우월적 지위를 부정하는 행위였으며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도 손상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갑신정변 당시 군대를 신속히 투입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조선정책을 취했습니다. 갑신정변 주역들도 중국이 바로 이렇게 개입할줄 몰랐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영국과의 외교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거문도 사건을 영국과 양자적인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조선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논란은 더욱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은 중국의 노골적인 개입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이에 적극적인 반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또 비록 강화도 조약을 통해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일본의 침략적인 야욕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 그나마 믿을 수 있던 미국은 상업관계만을 중시하고 정치적 관계에 있어서 실질적인 힘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선은 대부분의 국가의 공통된 위협 제1순위인 러시아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뮐렌도르프에 의해서 추진된 한ㆍ러밀약이 바로 이 무렵 추진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ㆍ러밀약은 조선의 이익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밀약설이 유포되면서 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심화되었고 더불어 중국의 간섭도 강화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국가들이 기피하는 세력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하책인 바, 조선의 독립을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노력도 존재했습니다. 바로 유길준의 "중립론"입니다. 유길준의 중립론은 갑신정변 이후에 나온 글로서 조선책략이 권유하는 것처럼 일본과 미국에 의지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논의를 했습니다. 한편 조선이 살아남을 길은 유럽의 벨기에와 스위스처럼 항구적인 중립을 통해서 밖에 실현될 수 없다고 역설하고 이는 다시 중국의 주선을 통해 이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얼핏 보면 수구적이고 사대적인 친중국적 노선이 아닌가 생각될 수 있겠지만, 이는 갑신정변 이후 심화되는 중국의 간섭이라는 맥락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방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당시 처한 현실에서는 의미있는 논의였습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의 4중의 압력 하에서 조선이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갑신정변의 주인공이자 집요한 反청노선을 주창했던 김옥균마저 『여이홍장서』에서 중국이 조선의 중립을 위해 나서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계최강국 영국과 중국의 협조체제가 존재하는 한, 중국에 노골적으로 반하는 것은 조선의 입장에서도 전혀 무익한 것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함과 동시에 자주권을 획득하고 중립을 도모하는 양절적인 노력은 당시의 세력균형을 고려해볼 때 의미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거문도 사건의 전개로 돌아가서,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함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단을 획득하고자 했고, 이는 한편 러시아를 자극해 조선에 개입할 구실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거문도 점령 - 비록 그것이 일시적 점령이라도 - 을 중국이나 조선이 인정한다면 러시아는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편 중국은 거문도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가 실제로 남하하게 된다면 중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거문도 점령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문제를 최대한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일본 또한 영ㆍ러 대립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또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따라서 중국, 일본 각자 나름대로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선에서 합의를 하고자 했고 조선은 그 사이에서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1887년 여러 우여곡절 끝에 영국은 결국 철수하게 됩니다. 정작 사건의 발단이 된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고 영국과 러시아는 거문도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조속히 해결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서로 자국의 이익을 서로 어느 정도 인정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았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선의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한편 세력균형 차원에서 영국의 거문도 점령의 의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면... 

영국의 개입은 당시 세계최강국이었던 영국이 한반도에 직접 관심을 표한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엄청난 권력체가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말이죠. 그러나 영국의 철수는 한반도에 일종의 권력의 진공(Vacuum of Power) 상태를 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공백을 채우기 위해 중국, 일본, 러시아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중국이 승리하는 듯 했으나, 곧 일본의 적개심만을 증폭시키고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당시 조선이 세계최강국이었던 영국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으면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19세기의 이동인은 일본이나 미국도 아닌 영국을 한반도에 개입시키고자 했습니다. 세계국가인 영국이야말로 한반도의 안전과 근대화를 적절히 도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는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구상을 실행하기도 전에 행방불명(암살?)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세력균형과 권력의 진공상태의 의미를 곱씹어보자면... 현재 대한민국에는 미국이라는 세계최강국이 진입해있습니다. 냉전 시대 미소대립 기간 동안 대한민국이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미군의 주둔과 한미동맹의 굳건함이었습니다. 또 북한과 더불어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 또한 미국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권력체가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면, 권력의 진공상태가 야기될 것이며 이는 다시 주변국들을 한반도에 대해서 과도하게 경쟁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같은 맥락에서 19세기 조선과 가장 상황이 유사한 나라는 북한인데, 38선 이북에 권력의 진공 상태가 발생하게 되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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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yFood
20/01/21 19:26
수정 아이콘
상세한 내용과 현실과의 연계까지 훌륭한 온고지신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포프의대모험
20/01/21 20:01
수정 아이콘
당시엔 열강이 전세계를 상대로 땅따먹기하던 시절이고 솔직히 조선은 무주공산으로밖에 안보였을텐데
요즘시절에 북한에 권력공백이 생긴다고 해서 중국이 숟가락을 얹을 수 있을까요? 북한에 티스푼만 얹어도 한미일러가 동시에 거품물거같은데..
됍늅이
20/01/21 21:13
수정 아이콘
저때도 마찬가지죠. 일본이 청나라 배 태우고, 영국이랑 동맹맺고, 러시아 뒤통수 치고, 미국 양해 받고 조선 병합한 거죠. 일본도 조선을 식민지로 두기까지 여러 나라와 경쟁했습니다. 경술국치로부터 30년, 아니 20년 전만 해도 조선을 누군가가 속국으로 둔다면 가장 유력한 국가는 그래도 청나라였죠.
마우스질럿
20/01/22 01:08
수정 아이콘
이거 제가 모셨던 거문도 출신 선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자기도 어린이일때 동네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거문도에서 영국군이 철수할때 해저케이블 돌돌 말면서 갔다고...( 19 세기에... )

아마도 모르스부호를 통해 의회의 오더를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전달하는 명령체계 였던듯

2003년 즈음 70 대 셨으니까 그분이 어린시절 할아버지면 대략 거문도 점령사건 즈음의 동네 주민이 맞을거 같더군요
20/01/22 17:11
수정 아이콘
땅따먹기 시대와 현재는 강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다르지 않을까요?

그 당시 영국은 일본과 다름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영국이 식민지 인도에서 한 악행은 일제시대보다 덜하지 않았으니..
20/01/22 21:43
수정 아이콘
조선이 무주공산일 수는 없죠.

일단 중국의 영향력이 확고한 상태고 이게 서양 애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형태 - 그래서 니네 신하지? 신하긴 한데...-
그리고 최소 천 년 이상 가는 주권이 확고한 나라라 명분 부족
안면몰수하고 1000명 안쪽 소규모로 먹으려고 해 봐도 그 정도로는 불가능, 큰 이득도 없음

그리고 옛날에도 무주공산으로 보이지만 사실 못 먹는 건 마찬가지였어요. 조선이 압록 두만 북쪽 여진족 땅에 확고히 진출 못한 것도 명나라 눈치 봐서 그런 거고, 서양쪽도 다 그래요.
아리쑤리랑
20/01/22 22:04
수정 아이콘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중국은 ISIS가 세력이 커질시 손잡도 석유수급 받을 계획이였단 자료도 나오는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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