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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1/19 18:56:46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1906년 어느 조선 지식인의 기고글
요즘 부쩍 글을 많이 올려서 혼자서 게시판을 사유화(?) 하는 거 같아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그런데, 생각날 때마다 올리지 않으면, 나중에 또 기억에서 사라질 듯하여, 또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이 희미해지는 거 같아서 일단 느낌을 받았을 때 한번씩 글을 올리면서 다른 많은 분들과도 해당 글을 음미해보고 또 다른 많은 분들께서도 당대 지식인들의 번뇌를 함께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게 좋을 듯하여 글을 올립니다.

아래 글은 최석하라는 지식인이 1906년 을사조약 직후 기고한 글입니다. 

물론 이 글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일반대중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당대 (1906년) 소위 교양인 계층에서는 유럽각국의 역사 등의 지식이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1870~80년대에만 해도 교양인 계층에서 타국의 형세나 사정에 대해 논할 때 주로 춘추전국시대나 과거 중국의 역사적 사건을 기준 또는 범례로 삼는 적이 많았는데, 189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부쩍 서양의 사례를 준거로 삼는 게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900년대에 들어오게 되면 거의 완전 서양화(?)되죠. 즉, 어떤 사건에 대해 예시를 들 때 이제 나폴레옹이나 프랑스혁명이나 보오전쟁이나 이탈리아 통일 전쟁 등이 범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아래 글도 한 번 읽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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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방을 홀로 지켜서 자국 외에 타국이 있음을 알지 못하던 쇄국시대에는 수교할 필요가 없었으나 세운이 변천하고 문화가 발달해서 오주열국이 이웃집과 같이 상통하는 지금에는 일국의 소장이 만국균형세력에 중대한 영향이 있을 뿐더러, 우리가 이 사회에서 단독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내 열국이 각각 자국의 문명을 계발해서 국보의 발전을 경영하려면 우방의 조력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국제상 교제의 필요가 생긴다.


아아! 우리가 20세기 경쟁시대에 처해서 평심정기하고 천하형세를 관찰하니 일국의 성쇠흥망이 외교수단의 우열에 달려있다. 가령 국가의 생산이 거대하고 인민의 재력이 풍부해서 강대 열국과 무역을 경쟁할 실력 있더라도 국가의 외교 기관이 완비하지 못하면 자국의 상업권을 해외에 확장할 수 없고, 가령 적국과 개전해서 수백만 인명을 죽이며 수억만 군비를 써서 대승리를 얻더라도 최후 강화 담판에 불리한 조약을 체결하면 전승의 공과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는 금일의 형세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국 흥망사에도 그 실례가 명백하다. 근세에 프랑스 나폴레옹이 유럽을 병탄하고자 해서 침략주의를 자행하더니, 열국이 공적으로 인정해서 연합군을 편성하여 좌공우격함에 프랑스군이 세고하여 파리 성하에서 투항하고 개세영웅 나폴레옹은 고도 중에 유수의 치욕을 당하니, 잠시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고 세계를 호시하던 프랑스의 국위는 한 번 패배로 땅에 떨어졌으니 그 형상을 어떻게 형언할까. 이 대란을 거친 후에 열국이 비엔나에 전권대사를 파견해서 회의를 열고 프랑스가 침략했던 토지를 처분하려고 할 때, 그중에 최대의 이해관계가 있던 것은 프랑스였다. 대사 탈레이랑을 파견했는데,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 4대강국은 이미 비밀맹약을 체결해서 회의의 전권을 장악하려고 했으니, 그 안중에 어찌 패전국의 사신이 들어오겠는가?


탈레이랑은 민활한 외교가였다. 그 기밀을 탐지하고 여러 소국의 대표자들을 규합해서 자기가 모주가 되고 회의 중 성명하기를, “본 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는 모두 평등하다. 나라의 대소로 인해 권리의 차별이 없고, 또 유럽 나라들은 나폴레옹과 전쟁한 것이요, 프랑스와 적대시한 것이 아니다. 현 왕은 루이18세는 정당한 국왕이니 정당한 국왕을 대표하는 탈레이랑은 다른 열강의 전권대사와 같이 대소 의건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라고 변론했다. 또 4대강국이 이해문제에 관해 각각 이견을 가지고 있음을 보고 교묘한 수단을 발휘해서 반간책을 행하여 마침내 프랑스로 하여금 이 회의에서 중대한 지위를 점하게 했다. 그래서 프랑스에 유익한 조건으로 열국과 조약을 체결하여 패전국이 도리어 국위를 표창했으니 위대하구나! 탈레이랑의 빼어난 공이여!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프랑스가 어찌 금일에 저와 같은 지위를 유지하겠는가?


 이러한 실례는 유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방 청국에서도 볼 수 있다. 근년에 청국이 러시아와 조약을 체결해서 요동반도를 조차지로 양여했는데, 러시아가 조약을 준수하지 않아서 동아에 일대 문제가 되었다. 마침내 일로전쟁의 참화를 양출하고 금일까지 세계열강이 주목하는 곳이 되어 장래 동양 평화와 분란의 분기점이 되는 듯하다. 이로써 보건대 외교는 국가의 생명에 관련된 대기술이다. 일보를 나가면 그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고, 일촌을 실수하면 그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 서양 철학자의 말에 외교사상이 없는 민족은 그 나라를 보존할 수 없다고 했으니, 지극하구나! 이 말이여! 참으로 복응할만한 잠언이다. 


 아아! 동양의 대세를 조용히 생각하건대, 세계열강의 축록장이 되었으니 강자가 아니면 그 나라를 발전시킬 수 없고 능자가 아니면 그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 강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실력을 양성해서 외모를 막을 수 있는 자다. 그렇다면 동양민족이 되어 국가의 독립권을 보전하고자 한다면, 안으로는 정치를 혁신해서 국력을 공고하게 하며 밖으로는 다수 우방을 만들어야 그 목적을 거의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개국 이래로 대외관계가 거의 없어서 외교사상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외인을 대하면 혹은 위축하는 마음이 생겨서 명령에 따르기만 할 뿐이며, 혹은 무단히 배척하는 마음이 생겨서 악감을 자초하니 개탄 막심이다]. 이는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근고 이래로 국민교육이 보수적 주의를 숭상했기 때문에 국민의 정신이 소극적으로 향해서 이러한 결과에 이른듯하다. 지난 일은 논할 수 없지만, 올 일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경쟁장에 처해서 국제상 도태가 외교의 교졸에 달려 있음을 알았으니 조차전패하는 사이에라도 그 이칙을 잊지 말고 외교사상을 양성하되 우선 외교계에 통용되는 구미제국의 언어를 학습해서 그 국인의 종교, 문학, 이상, 기풍, 습관 등을 깨우치며, 만국 외교사를 숙독해서 그 흥망성쇠의 원인을 연구하며, 국제법을 정밀히 고찰해서 열국의 선례를 기억하여 우내적 두뇌(세계적 사고방식을 의미)를 생장시키면, 외인과 교제함에 감정이 공통되고 사상이 같아져서 자연히 사해형제주의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후에 항상 주의할 것은, 외인은 개인적으로는 동포와 같이 친밀할 수 있지만 국가적으로는 이해관계가 상반되어 약육강식하는 경쟁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외교상 한 마디 말이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으며, 조약상 한 구절이 민족을 잔멸시킬 수 있다는 이칙을 깨닫는다면 빈사 상태에 놓인 국가를 회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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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이 글의 저자가 대단한 애국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최석하는 일진회 멤버였고, 결국에는 진성 친일파로 거듭나 조선총독부 참의까지 지내게 됩니다. 

우리 근대사의 안타까운 부분인데, 최석하 못지 않게 세계정세에 밝고 교양있는 인물로 윤치호가 있었고, 그 또한 진성 친일파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꺠어있던 사람들 중 용기있던 일부는 김규식처럼 파리에 까지 가서 조목조목 국제법과 지정학적 논리 등을 증거로 이용하여 조선 독립에 힘을 보태고자 했고, 일부는 미국에 가서 그곳에서 미국인들을 설득하고자 했습니다. 

아래 보신 것처럼 어떤 이는 아주 훌륭한 식견으로 국제정세을 분석하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했고요. 

배우는 것 못지 않게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도 생각해볼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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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9 19:07
수정 아이콘
1906년이면 이미 을사조약 이후죠. 저 사람이 설사 친일파가 아니더라고 해도 이미 너무 늦은 인식이었다고 봐요.
3.141592
20/01/19 19:10
수정 아이콘
당시 조선에 남아있는 식자층에겐 친일 외에는 자기 능력 발휘할 방법이 거의없죠. 미국이나 중국으로 가면 어떻게 자기 능력 써먹으면서 식민지 조선에 도움되는 삶을 살 수 있었겠지만... 우장춘 석주명 정도로 아예 정치외교와 상관없는 삶을 사는것도 특정 분야에서만 가능하고요.
Je ne sais quoi
20/01/19 19:15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롯데올해는다르다
20/01/19 19:32
수정 아이콘
평시에는 '무단히 배척하는 마음'으로 불리는 게 혈기나 객기, 냄비근성, 민족주의에 불과하다고 욕을 먹지만
난세가 오면 그런 극단적인 신념이 있는 사람만이 끝까지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거고 그 신념을 비웃던 이는 '현명하게' 친일파가 되는 게 아닐까도 싶네요.
지록위마조국
20/01/1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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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네요..
20/01/1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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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주시는 글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근대 동아시아는 정말 흥미로운 시기예요.
아리쑤리랑
20/01/19 21:1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오히려 당대 조선 지식인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건데요. 외교기관이 아무리 잘 완비되고 정치체제의 근연성을 얘기하며 열강들에게 호소해도 열강들은 바라보지도 않고 내팽개친적이 한 두번이 아니며 탈레랑이 한 것은 원래 대 프랑스 정확히 대 나폴레옹이란 목적 외에는 전혀 없었던 각 열강들의 이해관계 충돌을 적절히 유도한것으로 앙시앵-레짐 시절의 프랑스 영토를 회복시킨건데 이건 단순히 탈레랑의 외교술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가 당시 유럽열강들중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국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담보로 흥정이 가능했던 덕분이 큽니다.

애초에 역사를 깊이 파고든다면 시대의 흐름과 배경 그리고 국가 전체의 역량과 벗어나 한 사람의 위대함만으로 모든것이 결정된다는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을 쉽사리 알 수 있고 설령 그러해보인다 해도 그 뒤에는 뒷배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외교술은 중요하나 외교와 전쟁은 결국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서 벗어날수 없으며 유럽 열강들중 으뜸인 프랑스와 당시 세계의 변방이던 동아시아중에서도 약체인 조선을 비교한다는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객관화가 안되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죠.

그리고 저런식의 외교를하고 우방을 만들면 될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가서 바로 실패와 실망을 겪은것입니다. 당시 일본을 제일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이는 바로 대영제국이었으며 일본의 동아시아 전략 즉 러시아를 막기위한 대륙진출을 도와주었죠.

그렇기에 저런식의 외교를하고 우방을 만들면 될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가서 바로 실패와 실망을 겪은것입니다. 당시 일본을 제일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이는 바로 대영제국이었으며 일본의 동아시아 전략 즉 러시아를 막기위한 대륙진출을 도와주었는데 조선 군부대신 이용익이 영국 데일리메일의 기자에게 조선은 중립선언을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모을것이라고 하자 이리 말합니다.

1904년 2월 6일 프레더릭 맥킨지, “이용익은 매킨지의 걱정에 ‘한국은 안전하다. 왜냐하면,한국의 독립은 미국과 유럽에 의해 보장되어 있으니까 라고 했다. 매킨지가 ‘스스로의 힘에 의해 뒷받침 없는 조약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가…"’ 라고 하자 이용익은 타국이 뭘 하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중립성명을 내놓았고,중립이 존중될 것을 요청했다’고 답했다. 한국이 스스로를 지키려 들지 않는데,어떻게 타국이 한국을 지킬 것인가’

한국은 한국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만 배우며 가쓰라 태프트에 열만 올리지만 조선은 조불수호통상조약, 조영수호통상조약, 조로수호통상조약 심지어 조독통상조약까지 프랑스, 영국, 러시아, 독일에서까지 서로간의 조약을 맺었고 저런 발언을 했습니다. 즉 국력이 없는 조약이란 그저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본질을 정확히 지적했으며 저 인터뷰 이후 1년만에 조선은 외교권을 강탈당하는 을사조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1907년 헤이그 특사로 이위종이 밀서를 가지고 마지막 외교적인 수단으로 열강들을 설득할려고 하나, 그의 사돈 국가인 러시아부터 수호 통상조약을 맺은 미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아예 영일동맹까지 맺으며 일본을 미는 영국까지 어떤 국가도 그를 진지하게 들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위종과 영국 만국평화회의보에서 나온 기자인 스테드와의 인터뷰가 그것을 명확히 지적하지요.

스테드: 여기서 뭘 하십니까? 왜 이 평화 회의에 파문을 던지려 하십니까?
이위종: 저는 아주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법과 정의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각국 대표단들은 무엇을 하는 겁니까.

스테드: 그들은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위종: 조약이라구요? 그렇다면 소위 1905년 조약은 조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희 황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체결된 하나의 협약일 뿐입니다. 한국의 이 조약은 무효입니다.

스테드: 하지만 일본은 힘이 있다는 걸 잊으셨군요.

이위종: 그렇다면 당신들의 정의는 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며 기독교 신앙은 위선일 뿐입니다. 왜 한국이 희생되어야 합니까? 일본이 힘이 있기 때문인가요? 이곳에서 정의와 법과 권리에 대해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 차라리 솔직하게 총, 칼이 당신들의 유일한 법전이며 강한 자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님이 올리신 글을 기고한 최석하와 이위종등 조선 지식인들의 한계라는것입니다. 같은 유럽 문명국인 벨기에조차 독일군에게 유린당하고 강간당했는데 동양 끄트머리 국가에게 특별히 정의를 집행해달라는건 어이없는 소리였던것이지요.

유럽 아니 인류사에서 문명을 자처하던 이들도 최종적인 수단으로 타국에 압력을 넣을수 있던건 바로 총 칼이였으며 그것으로 유럽문명은 지구를 정복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대국의 사신과 소국의 사신의 지위가 다르다고 했듯, 외교관과 사신의 역량은 그 자의 세치혀와 현란한 말솜씨와 기교가 아닌 뒤에 얼마나 많은 기름진 땅덩이와 천군만마를 거느리느냐에 있는것이죠.

비스마르크가 법을 만드는 과정은 소시지 같다고 했듯 국제외교도 실로 그러합니다. 겉으로는 평화와 정의 주권을 내세우나 뒤로는 야합과 탐욕 공포로서 타 국가와 민족을 도륙하고 침탈하며 국가의 힘을 키웠으며 그게 바로 당대 문명국들이란 국가들의 본질이었기 때문이지요. 저런 인식이 공감이 가신다면 그건 동화속의 왕자님이 잠자는 공주를 구해줄것이라는 설익은 인식에 지나지 않는것이며 그렇기에 자신의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를 못이기고 친일파로 변절하거나


황제 폐하께
"우리의 조국 대한은 이미 죽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모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소인은 적에게 복수할 수도, 적을 응징할 수도 없는 무력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소인은 자살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소인은 오늘 생을 마감합니다."

이범진과 같이 이렇게 무력함을 깨닫고서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겁니다.

윤치호를 마지막에 언급하셨는데, 윤치호는 지적으로 명석한 인물이나 국제 정세의 본질에 대해 꿰뚫어보지 못했던 이입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이 영미 및 유럽은 인종차별때문에 일본은 낙원이라든가 중일전쟁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본이야말로 왕이라고 했는데 그건 이 지구란 행성을 누가 통치하고 체제를 설비했는지에 대해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죠.

세계 전역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으로 이어져오는 거대한 교역망에 의해 이어져 있었고 일본 또한 그저 그 주변부에서 호랑이가 잠시 다른곳으로 갔을때 늑대가 날뛰었던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지하지 못한 그때 그때 일어나는 피상적인 측면을 바라보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왕은 일본이 아니었고 바로 유라시아에 걸친 초대형 대륙국가인 소련과 세계 해양을 지배하는 영미라는걸 깨닫는데는 그 말을 하고 난뒤 채 10년도 안되어서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은 과연 다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국 대사가 독일에 가서 감히 독일이 화웨이를 훼방놓는다면 그에 따른 보복조치가 취해질것이며 스웨덴 보고 라이트급 국가주제에 헤비급 국가인 중국에 대해 주의하는게 좋을거다라고 어제 오늘 말한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러겠지요. 저렇게 횡포를 놓고 외교적 깽판을 치니 중국이 패권국이 못되는거고 독재체제를 유지하니 세계의 교감을 못얻어서 될 수 없다 아니 되지 않아야 된다.

죄송하지만 이 세상은 당위로 굴러가지 않으며 되지 않아야 된다 따위는 없습니다. 중국이 패권국이 못되는건 이전 미국과 힘을 겨루던 대영제국, 독일제국, 소련은 커녕 자기네들의 나와바리인 남중국해 대만해협도 돌파 못하고 그들 선조들이 제패하던 중앙아조차도 이미 한 번 몰락한 러시아를 제압하지 못하여 호령할수 없는 비루한 능력때문이지, 그들이 약자를 괴롭히는 악행과 외교적인 실책을 저질러서가 아니란 말입니다.

유럽과 미국은 그보다 몇배의 악랄한 짓을 저지르고도 현재 웃음 가면을 쓴채로 있는데 중국이라고 못할것이 없지요. 중국은 세계는 커녕 자기 지역권내 주변국인 한국 일본등도 마음대로 때려잡을수 없을정도로 힘이 약하기 때문이지 정의가 수반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중국도 힘이 충분히 있다면 패권국이 될 수 있지요. 역사가 항상 증명했듯이.
포프의대모험
20/01/20 02:07
수정 아이콘
영국이 18세기에 다른대륙에 병력 1만명씩 투사하고 그런건 놀라운 일이지만 청나라도 솔직히 그거맞고 침몰할 나라는 아니었는데 국가의 자원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한 탓에 쪽박찼죠

내용을 자세하게 써주신것처럼.. 진짜 한계는 조선의 국력이지만 청나라처럼 국력이 있으면서도 지는 싸움을 하면 안되고 그건 위정자들의 통찰력문제가 아닐까요
아리쑤리랑
20/01/20 02:11
수정 아이콘
국력에는 단순히 경제규모만이 아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사용하느냐의 행정력 그리고 그 힘을 투사할 군사력까지 다양한것이 포함됩니다. 게다가 전근대 경제는 애초에 통일된 화폐 기준이나 물품의 가치 판단 기준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만큼 실제 경제력이 어떤것인지 알 도리가 무방합니다. 그저 전근대 1인당 소득은 크게 격차는 안났으니 인구로 이정도 나겠다고 가늠하는거에 지나지 않죠.

요새 2018년 Angus Maddison 자료에서는 이 논지조차도 부정확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비교해보니 1인당 소득이 심지어 1300~1400년대부터 이미 프랑스등 유럽이 중국 지역의 최소 2~2.5배였다는걸로 어느정도 판명나서 청나라가 덩치야 거대함은 당연하겠으나 실제 경제력이 지금까지 알려져있던것만큼 강력했느냐 이것도 요즘 의문이 제기되는게 최근 동향입니다.
포프의대모험
20/01/20 02:35
수정 아이콘
2배든 3배든 인구수가 압도적이었고 국가의 토탈 리소스가 당시 영국보다 딸렸냐고 하면 아니란거죠. 결과로만 얘기할거면 논의가 필요없기도 하고요.
아리쑤리랑
20/01/20 02:5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니요. 19세기 기준으로 국가 정부가 쓸 수 있는 토탈 리소스는 딸린거 맞습니다. 재정이 최소 2.4배 이상 차이났거든요. 심지어 이건 아편전쟁 시기도 아니고 1777년도 기준이고 아편전쟁 시기 즘 오면 이건 몇배 더 벌어집니다. 전근대 중화왕조는 조선에게는 압도적인 적수긴 하지만 세계구에서 보았을때 아주 엄청난 수준까진 아닌게 사실이죠. 네 1800~1849년 연간 평균 기준 청나라는 1367톤의 은괴를 보유한 반면, 영국은 6156톤이였습니다.
포프의대모험
20/01/20 03:34
수정 아이콘
리소스 얘기하는데 "정부가 쓸수 있는"같은 단위는 왜 갖다 붙이시는지; 1인당 4배 생산했다는 계산으로도 아편전쟁 직전까지 영국-청나라 GDP 차이가 7배입니다.
아리쑤리랑
20/01/20 04: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굳이 그렇게 따지면 그 당시 영국은 인도를 통째로 집어삼킨 시점이라 식민지 포함 전체 비교하는게 맞는데요. 그러면 청나라가 못따라잡고요. 애시당초 구매력도 제로에 가까웠던 청나라 절대다수의 빈민들을 합치면 영국령 인도제국이나 그 외 식민지들도 합산하는게 이치에 맞죠.

그리고 계산도 잘못된거 같습니다. 2018 Maddison Project 기반 중국 1840년대 1인당 gdp는 600불 언저리인데 영국은 cgdp인지 rgdp인지 따라서 2700~3500불까지 나고 인구 격차는 영국 본토만 2650~2700만에, 중국이 당시 4억으로 약 2.58~3.36배 차밖에 안납니다. 7배란 계산은 어디서 나오시는건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실제 가용할수 있는 전체 리소스는 전근대에서 보통 재정으로 쓰입니다. 현대 GDP 개념을 애초에 전근대 국가에 도입하는거부터가 정합성과는 거리가 먼 소리입니다만. 전근대 GDP 산출부터가 워낙 부정확하고 오류가 많은것도 있어서 경제사학자들이 굳이 전근대 GDP 는 크게 의미 안두고 비교도 잘 안하는거라는건 인지하셨다고 생각했는데 아닌지요?
답이머얌
20/01/20 12:35
수정 아이콘
아리쑤리랑님 생각에 대부분 찬성하지만, 정말 몰라서, 순진해서 그런 주장을 했을까요?

그리고 나서 잽싸게 친일파로 돌아선건 현자타임이 와서?

적어도 이천만 인구 중에 깨어있는 그리고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국제 정세를 전혀 모르면 모를까 이미 유럽이 돌아가는 얘기를 알고 있다는건, 머리좋고 식견있는 이라면, 표면상의 소식만으로 이면상의 내막을 여러모로 궁리케 하니까요.

몰라서 헛소리를 했다기보단, 참새가 곹 죽어도 짹! 한거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 이외엔 도대체 할 말이 없으니까요. 그냥 힘없으니까 우리 밟은게 정당하니 순순히 따를께요. 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요. 정치인들이 선거때면 말도 안되는 공약해도 유권자나 정치인이나 서로 좋게좋게 넘어가는건 멍청해서 그런게 아니듯이.
아리쑤리랑
20/01/20 12:3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쉽게도 그 당시 지식인들 일기나 기록을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대국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 그 옛날 천자의 나라가 지켜줄것과 같이 말이죠.

근데 그게 한반도 역사 내내 이어진 한민족 왕조 주변 유일의 강대국이였던 중국과의 관계니 그렇게 생각하는게 이상한것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유럽이 돌아가는 얘기를 안다고 해서 그걸 어떻게 써먹느냐는 별론의 얘기고 그걸 해석하는 방법론이 잘못되면 그 지식도 현실에서 무용지물이고요.
푸른등선
20/01/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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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네요. 특히 매킨지가 ‘한국이 스스로를 지키려 들지 않는데,어떻게 타국이 한국을 지킬 것인가’라고 한 부분이 당시 시기적으로 미묘하고 의미가 깊어 보입니다. 그냥 상상인데 1905년에 러일전쟁을 마치고 고종을 만나러와서 전쟁이냐 외교권 포기냐라고 이토가 윽박질렀을때 고종이 그래 전쟁하자!!고 뭔가 액션이라도 취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하곤 합니다. 고종은 전쟁을 해서 기득권 대다수를 잃는 모험보다 외교권만 넘기고 사직과 왕실 자산은 지키겠다는 식의 태도였는데 만약 싸울 전력이 있었어도 결국 포기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되긴 합니다.

얼마 멀지 않았던 시기에 에티오피아가 국력은 딸리지만 이탈리아와 전쟁을 불사하니까 유럽 각국이 이탈리아를 제지하고 견제할 목적으로 에티오피아 편을 들어준 걸로 알고 있는데 조선은 전쟁할 능력을 떠나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거나 국제 역학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상황이 아니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근본적으로는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황제의 보수반동성이 너무 심각해서 어떤 대안도 먹히지 않았다고 봅니다. 좌파 민족주의쪽 역사학자들도 요즘엔 한일합방 관련 고종의 입장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가하는 걸 봐서 고종부터 망국의 암군으로 재평가(?)를 일단 확실히 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맨날 (실제론 사이도 좋았던) 이완용한테 협박당하고 사기당하신 마냥 불쌍한 임금님 타령 좀 그만 봤으면 해요.
퀀텀리프
20/01/1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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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이르러, 미국이 2천km가 넘는 태평양을 건너와서 군대를 주둔하게 되고, 급기야 북한의 침략으로 한반도에 대한 의지를 시험받게 되며, 자유세계를 공산권으로부터 지켜야한다는 대의를 세우고 수만명의 자국 군대를 희생하면서 중러연합에 대항하게 되며, 계획에없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묶이게 되기까지, 이 모든 과정에 이승만의 외교적식견이 크게 작용하기는 하였으나, 한국이 별로 한것도 없이 이루어진것은 한민족의 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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