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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1/03 13:28:55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의 근간을 보여주는 덩샤오핑의 인터뷰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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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물로, 현대의 중국을 사실상 탄생 시켰다는 점에서 현 중국 정부의 아버지 같은 존재 입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엄청난 사람이었던 건 분명하고 이 사람을 빼놓고 현재의 중국 정치를 이야기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현대 중국을 만들어낸 산파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아는 여러모로 막대한 오점들이 많습니다. 전방위로 비판을 많이 받는데 중일전쟁 같은걸 할때 사실상 전쟁은 국민당에게 맡겨두고 꿀이나 빨았다 - 이런건 어차피 승리하는 놈이 장땡이라거나 해서 그 승리의 과실을 받아먹어 이어 온 쪽에서야 큰 상관은 없다손 쳐도, 건국 직후 대약진운동 등에서의 정책 실패와 정치적 숙청, 특히 '문화대혁명' 같은 전중국을 뒤흔든 내정 문제 같은게 있습니다.



이 '문혁' 이라는 사태가 너무나도 영향력이 크기에 이걸 그냥 언급하지 않고 지나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종종 문혁을 중국 내에서 금기시 되는 주제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천안문 항쟁' 의 경우고, 문혁은 여러가지 중국 내 영화나 소설에서도 종종 다뤄지고 젊은이들한테도 교육 과정에서 배우는 등, 생각보단 공공연한 주제 입니다. 애초에 숨길 수 있는 규모의 사건도 아니구요.



문혁은 현대 중국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마오쩌둥의 평가를 할때 절대 지나칠 수 없는 규모의 일이고... 그리고 문혁에 대해 조금만 알아본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듯이 어떤 식으로건 긍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최악의 실책이기에 이것 하나만으로도 마오쩌둥은 가루가 되도록 까일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다고 마오쩌둥을 문혁에 함몰 시켜서 완전히 부정하면, 마오쩌둥으로부터 탄생된 현대 중국의 근간에도 위기가 오기에 여러모로 곤란해지게 됩니다. 



마오쩌둥을 완전히 부정할 순 없고, 아니 건국자니 만큼 '부정은 안한다' 를 넘어 기왕이면 반반 이상으로 올려주고 싶고,  그렇다고 문혁을 언급 안할 수는 없고, 그런데 문혁을 언급하면 마오쩌둥의 위상이 여러모로 실추되고.....



여기서 나오는 유명한 말이 바로 공칠과삼(功七過三)입니다. 공이 7이고 과가 3이다. 중요한 건 과(過), 즉 실수이지 죄(罪) 까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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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현대 중국을 낳은 산파가 마오쩌둥이라면 현대중국의 방향을 결정지은 사람은 덩샤오핑 입니다. 그리고 덩샤오핑 자신도 문혁에서 많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에게 한것처럼 마오쩌둥을 부정하고 격하하는 대신 저 공칠과삼의 논리로 지난 역사와 마오쩌둥을 해석하고 이어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쨋거나 중공은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마오쩌둥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들, 마오쩌둥이 '무결했다' 라고 까지 하는건 불가능한 포장일 뿐더러 오히려 마오를 더 '공격당하기 쉽게' 만드는 짓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럴바에야 '분명 과오가 있었다' 고 인정해버리는 것이 오히려 마오쩌둥을 보호하는데 더 편해지게 됩니다. 연예인이나 가수가 원래 무결하고 바른생활만 하는 이미지였다가 무언가 이슈가 생기면 작은 일이라도 터지면 타격이 크지만 적당히 흠집이 있는 연예인은 어지간한 이슈로는 별로 사람들이 동요하지도 않는 상황을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때문에 실책을 인정하고, 동시에 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해당 실책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실수, 실책 같은 '판단의 오류'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 하며 '죄악' 까지 가는 건 피하고, 동시에 유명한 '4인방' 같은 사람들에게 악행 부분을 떠넘기면서 마오 개인의 책임을 비교적 희석시키는, 영리한 계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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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으로 '그런 느낌이었다' 는건 잘 알려진 사실인데, 덩샤오핑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좀 생경 할 수 있습니다. 



오리아나 팔라치는 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안나시는 분도 '이란의 독재자 호메이니와 이야기 하면서 그 앞에 차도르를 찢어버린 여기자' 라는 일화는 분명 한번쯤 들어보시지 않았을까 싶은 유명한 여기자 입니다. 헨리 키신저, 카다피 같은 유명한 인물들도 인터뷰를 자주 하면서 공격적인 태도와 독재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깡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인데 덩샤오핑하고도 인터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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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치와 덩샤오핑의 인터뷰 자체가 유명하지 않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국내 인터넷 상에서 '팔라치 - 덩샤오핑 인터뷰' 로 찾아보면 덩샤이퐁이 팔라치의 뺨을 떄리겠다했다, 팔라치가 "그럼 때려보라 기사로 쓰겠다." 고 했다, 이러면서 팔라치의 여장부로서의 용맹함을 강조하는 에피소드로 나오는 경우가 90%인데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실제로는 덩샤오핑이 70세가 넘는 자신은 생일축하를 받기도 뭐한 다 죽어가는 나이다 라고 하자 팔라치가 "우리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난 뺨을 맞을것." 이라고 하니 늙은 덩샤오핑이 그 말을 듣고 박장대소하며 "진짜로 아버지에게 당신 다 살았다라고 한 건 아니겠지요?" 라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세계적인 명성의 기자와 세계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사람의 인터뷰이니 상당히 내용들이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부분을 많이 담고 있는데 내용 자체는 (국내 기준으로는)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인터뷰가 꽤 흥미롭고,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인터뷰를 보시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는 1980년에 있었고, 바로 다음 해인 1981년 '4인방' 에 대한 공개재판이 일어났습니다. 즉 상당히 현장감을 가지고 있는 인터뷰 입니다.





http://en.people.cn/dengxp/vol2/text/b1470.html

제 의역이 좀 많으니 괜찮은 분은 위 출처의 영어 내용을 직접 보시는게 나을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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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치 : "천안문 위의 마오쩌둥 초상은 계속 그곳에 놓아 둘 생각인가요?"




덩샤오핑 : "계속 그럴 생각 입니다. 과거에는 마오 주석의 초상이 너무 많았고 어디에나 걸려 있었는데 이건 적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덕분에 마오 주석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질 정도였어요.


그래도 마오 주석이 일정기간 동안 실수를 좀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분명 중국 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중요한 창립자 임에 분명하지요. 우리가 그의 공과를 논할때 그의 실수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그가 중국인들을 위해 한 일은 결코 지워질 수 없답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항상 마음속에서 그를 당과 국가의 창시자로 소중하게 여길 생각 입니다."




팔라치 : "우리 서방인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4인방은 그 악행으로 모든 비난을 받지만 실제로는 마오쩌둥을 넣어 다섯명이 같이 비난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덩샤오핑 : "마오 주석의 실수와 린뱌오와 4인방의 잘못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만 합니다. 마오 주석은 삶의 대부분 동안 아주 좋은 일을 많이 했고 당과 국가를 여러차례 위기에서 구해냈어요. 그가 없었더라면 중국인들은 여전히 어둠 속을 엉금엉금 더듬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마오 주석의 가장 큰 기여는 중국 혁명의 원칙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을 잘 적용시키며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이지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까지 그의 사상은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고 그가 발전시킨 근본적인 원리는 꽤나 적확했다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 혁명의 모든 면에 창조적으로 적용시켰고 철학과 정치학, 군사철학, 문학, 예술 여러 부분에 대해 창조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아주 불행하게도 마오 주석의 인생의 늦은 끝자락인 '문혁' 기간 동안 실수를 저질렀고, 이 실수는 결코 작은 실수는 아니었답니다. 이 실수는 우리 당, 우리 국민, 우리 나라에 큰 아픔을 가져왔었지요. 


이전 연안 시절에 마오 주석의 사상을 '마오쩌둥 사상' 으로 통일시켜 지도이념으로 삼았고 그것을 고수해서 혁명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마오쩌둥 사상은 마오 주석 한 사람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건 아니었지요. 기성시대의 노혁명가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든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마오 주석을 다소 덜 신중하게 만들어버렸고, 그의 인생 말년에 좌파적인 불건전한 생각들이 노출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극좌적인 행동은 그가 기존에 내세웠던 명확한 여러 사상에 역행하는 일이었고, 그 자신이 주장했던 부분에서도 벗어나는 것이었던 겁니다.


이 무렵 마오 주석은 점점 현실과 유리되어버렸지요. 현실감이 떨어진 겁니다. 그의 훌륭했던 정무감각도 이때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민주적인 중앙집권과 대중노선을 말처럼 실천하지도 못했고 그가 살있던 생전에 이를 제도화 하는데도 실패하고 말았지요.


이것은 마오 주석의 책임만은 아니고, 나를 비롯한 기존의 늙은 혁명가들 전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당과 국가의 정치는 여러면에서 엉망이었고, 가부장적인 악습이나 개인에 대한 미화가 만연하던 판이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생활은 건강하지 못했고, 결국 이러한 점이 '문혁' 으로 이어졌는데 큰 실수였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겁니다."




팔라치 : "당신은 마오가 말년에 건강이 좋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정작 류사오치가 체포되고 죽을 당시 마오의 건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압니다만. 그리고 그 외에도 설명해야 할 다른 실수들이 있습니다. 대약진운동은 실수가 아니었나요? 소련의 모델을 베끼는 것은 실수가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마오 주석은 '문혁' 을 통해 진정으로 무엇을 원했을까요?"




덩샤오핑 : "분명 실수는 50년대 후반부터 이미 일어나고 있었던 게 맞습니다. 예를 들어, 대약진 운동이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이 역시 단지 마오 주석의 실수만은 아니고, 주위 사람들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법칙을 완전히 위배하여 경제 활성화를 급하게 시도했고, 이때문에 크나큰 손실을 겪었습니다.


확실히 대약진 운동의 책임에서 마오 주석은 자유롭지 않지만, 그러나 그는 오래지 않아 실수를 깨달았고 -우리보다 먼저 말입니다. 그는 또한 여러 수정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교훈을 완벽하게 얻지 못했고, 그 결과가 바로 '문혁' 이었던 게지요. 마오 주석은 실정에 대해 잘못된 평가를 내렸고, 애초에 혁명의 목적 자체가 잘못 정의되어 당에서 색출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류사오치 동지를 비롯해 혁명에 기여하고 경험이 풍부한 모든 계층의 지도자들에게 타격이 가해지고 말았지요.


죽기 전 몇년 동안 마오 주석은 '문혁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되었다' 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팽개쳐 버렸다' 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면적인 내전' 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었지요. 사실 이 두 가지 부분만으로도 문혁이 좋지 못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마오 주석의 정치적 실수는 분명 작은 실수는 아니었지만, 권력을 찬탈하려는 음모를 꾸몄던 린뱌오와 4인방의 두 반혁명 파벌에 의해 이용된 점도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오 주석의 잘못과 린뱌오와 4인방의 범죄적 행위 사이에 선을 그을 필요가 있습니다."




팔라치 : "하지만 우리 모두는 린뱌오를 후계자로 선택한 것이 마오 주석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흡사 황제가 후계자를 고른 것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덩샤오핑 : "바로 그것이 제가 방금 전 말한 잘못된 행동 방식이라 할 수 있겠지요. 지도자가 자신의 후계자를 스스로 뽑는 건 봉건적인 방식입니다. 그런 사태가 제가 조금 전에 이야기한 우리들 제도의 한 결함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팔라치 : "차기 당대표회의를 열때 마오 주석에 대한 어떤 영향이 있겠습니까?"




덩샤오핑 : "우리는 마오 주석의 공과 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생각 입니다. 일차적으로 공적을 평가하고, 이차적으로 실책을 확인하려 합니다. 그가 말년에 저지른 실수에 대해 우리는 실사구시적 입장으로 평가하겠지만, 마오쩌둥 사상의 올바른 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를 고수하겠습니다. 마오쩌둥 사상은 과거 혁명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우리 국가의 소중한 소유물 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마오 주석의 초상화를 천안문 광장 위에 우리 나라의 상징으로 간직 할테고, 그를 우리 당과 국가의 창시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마오쩌둥 사상을 고수할 것입니다. 우리는 흐루쇼프가 스탈린에게 한 짓을 결코 마오 주석에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팔라치 : "그러나 다음 당대회 뿐만 아니라 4인방이 재판에 회부될 때 마오 주석의 이름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나요?"




덩샤오핑 : "물론 이름이 언급되겠지요. 그리고 다음 당대회뿐만 아니라 다른 행사들에서도 그럴테고. 그러나 4인방에 대한 재판이 마오 주석의 위신을 떨어뜨리진 않을 겁니다. 물론 그들을 그 자리에 앉힌 책임은 마오 주석에게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인방 스스로가 저지른 범죄는 그들에게 어떤 형량이 선고되든 정당화 되기에 충분합니다."




팔라치 : "마오 주석은 당신이 자신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다고 자주 불만을 토로했고, 당신을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던데 그건 사실인지요?"




덩샤오핑 : "맞아요, 그랬었지요. 마오 주석은 내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불평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나만을 향한 건 아니고, 다른 지도자 간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점은 마오 주석의 말년에 있던 좋지 못했던 생각들, 즉 봉건적인 방식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말년의 그는 다른 의견을 들으려고 하질 않았어요. 마오 주석에 대한 모든 비판이 죄다 다 엉터리라고 우리는 할 수 없을 겝니다. 하지만 그는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지들이 제기했던 많은 올바른 의문과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때문에 민주적인 중앙집권주의가 훼손되고, 집단지도체제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렇잖으면 문혁이 어찌해서 일어났는지,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렵겠지요."




팔라치 : "중국에는 언제나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저우언라이 총리였습니다. 어째서 이게 가능했을까요?"




덩샤오핑 : "저우 총리는 한평생을 열심히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일생동안 하루에 12시간 에서 16시간을 늘 일했답니다. 우리는 서로 꽤 일찍 알게 되었는데, 1920년대에 우리가 프랑스에 있었을때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지요. 전 항상 그를 형님으로 생각 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같이 혁명의 길을 택했었습니다.


그는 전우들과 모든 국민으로부터 항상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문혁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당시 저우 총리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몰려 있었고, 하지 말았으면 하는 몇 가지 언행을 하기야 했었지요. 그러나 이미 국민들은 그를 용서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우 총리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 자신이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테고, 그가 했던 문혁의 문제점을 중화시키는 일을 할 사람도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저우 총리가 그리 했기에 그는 살아남아 많은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었지요."




팔라치 : "전 문혁 같은 끔찍한 일이 다시 반복되는 일을 어떻게 해서 피하거나 방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덩샤오핑 : "이 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우리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만든 제도 중 어떤 것들은 사실 봉건제도에 더렵혀진 것인데 인격 숭배나 가부장적 방식, 고위급 지도자들의 종신 재직 같은 부분이 그렇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을 모색중이지요.


우리 나라는 수천년의 봉건주의적 역사를 가지고 있고, 사회주의적인 민주제도와 사회주의적인 법제가 여전히 미진한 상황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민주제도와 사회주의적인 법제를 견실하게 마련하게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이런 점만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팔라치 : "앞으로 일이 잘 해결 수 있을거라고 확신합니까? 스스로가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나요? 소위 마오이스트-홍위병들은 아직도 많이 있지 않던가요?"




덩샤오핑 : "물론 4인방의 영향력을 과소평가 할 순 없겠지만, 97% ~ 98%의 중국인들은 그들의 범죄 행각에 대해 극렬하게 증오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겁니다. 이 사실은 1976년 4월 5일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4인방에 대한 대중시위에서 이미 보여진 부분이지요.


당시 장칭(마오쩌둥 부인)이 위세를 떨칠때 마오 주석은 위독한 상태였고 저우 총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칭을 타도한 후, 특히 지난 2년 동안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제3차,4차,5차 회의를 통해 인민의 의지와 요구가 많이 표출 되었고, 제도를 개선해 문제를 개선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문제점들이 이미 제기된 상태지요. 4대 현대화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는 것에 중점이 되어 있고, 바로 이 점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정치적인 안정과 통일성을 원합니다. 그들은 이제 대규모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들 넌더리가 난게지요. 우리는 현재 진로의 정확성을 감안할 때 국민이 우리를 지지할 것이라 믿고, 문혁같은 현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팔라치 : "4인방은 마오 주석의 사망 후에 체포 되었는데 누가 그들의 체포를 주도한 겁니까?"




덩샤오핑 : "어느 한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집단적인 노력이었습니다. 우선 1976년 4월 5일의 천안문 항쟁에 기저를 두고 있겠지요. 4인방이라는 용어는 마오 주석이 사망하기 2년 전쯤에 만들어진 것인데, 1974년과 1975년 우리는 장칭에 대항해서 2년여 동안 투쟁했었습니다. 그 무렵에 사람들은 그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확인했었던 겁니다.


마오 주석이 후계자를 지명했는데 4인방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마오 주석 사후 장칭은 기회를 빌어 모든 권력을 자신들의 손에 넣으려 했었습니다. 상황은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했지요. 동지들 대다수는 장칭을 타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몇몇 두어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이런 일을 해내는 것이 어려웠을 겁니다.


다만 4인방 체포 이후 있었던 몇가지 일은 마오 주석의 뜻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해야겠습니다. 그는 이미 50년대에 우리가 죽으면 모두 화장해야 하고, 재만 보관해야 하며, 유해를 보존해서는 안되고, 무덤을 짓지 말자고 제안했습니다. 마오 주석이 여기에 서명하고 우리 모두가 그 뒤를 따라 서멍했었지요. 중앙과 전국의 대다수가 서명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 서명서를 가지고 있었요. 


그러나 4인방을 무너뜨리고 난 뒤 행해진 일들은 (시신보존과 개인 기념관 같은 개인숭배 행위)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기 위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팔라치 : "마오쩌둥 기념관이 곧 철거된다는 이야기인가요?"




덩샤오핑 : "나 자신은 철거에 대해 찬성하지 않아요. 이미 거기 있으니, 이제와 없앤다는 건 좀 그렇지요. 애당초 짓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긴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걸 제거하는 것도 온갖 쓸모없는 종류의 화제만 불러일으킬 겝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기념관을 철거할 것인지 추측하고 있던데,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팔라치 : "부총리를 그만두려고 한다고 들었는데?"




덩샤오핑 : "저만 그만 두는 게 아닙니다. 기성세대의 다른 동지들 역시 모두 겸직을 포기하고 있지요. 화궈펑 주석도 더 이상 총리를 겸임하지 않게 되었고, 자오쯔양 동지가 그 직책을 맡게 되었구요. 우리 옛 동지들이 계속 자리에 남아 있으면 신참들의 일에 방해만 될 겝니다. 우리들은 모든 단계에서 지도자들의 평균 나이를 점차적으로 줄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우리가 앞장서야겠지요.


예전에는 이와 관련한 규정이 없어서 지도급 자리에서 종신 재집권 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리더십의 재창출이나 젊은 지도층의 진흥이 결코 촉진 될 수 없습니다. 60년대에는 우리가 한창때였기 때문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개인의 문제이고 제도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할 앞으로의 일반적인 정책이나 4대 현대화 부분에 있어서도 고나련이 크기 때문에 옛 동지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계몽된 태도를 취해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팔라치 : "중국에서 다른 초상화들을 본 적이 있는데, 천안문 광장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그리고 스탈린의 초상화를 본 기억이 나는군요. 당신은 그들을 거기에 걸어둘 생각인가요?"




덩샤오핑 : "문혁 이전에는 중요한 공휴일에만 걸어두었지요. 문혁 기간 동안 관행이 바뀌어 영구적으로 걸어두게 되었는데, 예전 스타일로 바꾸려고 합니다."




팔라치 : "4대 현대화는 외국 자본을 중국에 끌어들일 것이고, 이는 민간투자도 불가피하게 할 테고, 그렇다면 이것이 소규모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요?"




덩샤오핑 : "우리의 경제발전의 일반적 원칙은 여전히 마오 주석이 교시한대로 우리 자신의 자력갱생에 중점을 두고 외부 원조를 부차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외부 세계에 대해 어느정도 개방하고 외국의 자본을 인정하더래도 그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일테고, 생산수단의 사회주의 공유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없습니다.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흡수하고 더 나아가 외국인들이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도록 용인하는 건, 사회주의 사회에서 생산력을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줄 겁니다.


물론, 이런 시도가 중국 땅에 어떠한 퇴폐적인 자본주의 영향을 가져올 수 있겠지요. 우리 역시 이 가능성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두려워만 해서도 안되겠지요."




팔라치 : "자본주의 모든 것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덩샤오핑 : "당신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봉건주의와 비교한다면, 어떠한 자본주의도 봉건주의 보다는 우월하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전된 모든 것이 자본주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술이나 과학 말입니다. 고급화된 생산 공정 역시 과학의 일종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사회주의에 기여하기 위해 선진 기술, 과학, 경영 기술을 모두 습득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술과학에는 계급적인 성격이 없지요."




팔라치 : "몇년 전 당신은 인간이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약간의 관심(이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는데, 개인 이익을 인정하는 건 공산주의 자체를 토론의 주제로 밀어 넣는 것 아닙니까?"




덩샤오핑 :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의 제 1단계에 해당합니다. '그의 노고에 따라 각각에게' 원칙을 실천하고 국가와 개인, 집단의 이익을 결합해야 하는 매우 긴 역사적 기간을 다루고 있는데, 그렇게 해야만 노동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주의의 생산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의 고급 단계에 이르면 생산력이 크게 발전하고 '능력에 따라, 필요에 따라' 분배될 것이며, 개인의 이익이 인정받고 더 많은 개인적 욕구도 충족될 겁니다."




팔라치 : "당신은 마오쩌둥 사상에 기여한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누구인가요?"




덩샤오핑 : "저우언라이 총리, 류사오치 동지, 주더 등 여러 다른 혁명가들이 있지요. 많은 노혁명가들은 창의적이고 독창적이었어요."




팔라치 : "왜 당신 자신의 이름은 빼놓았지요?"




덩샤오핑 : "거기에 관해서 나는 하찮은 역할을 했을 뿐인걸요. 물론 나도 몇가지 일을 하기는 했는데, 그렇잖으면 혁명가로 간주되지도 않았겠지요."




팔라치 :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만일 4인방이, 당신이 말한대로 온나라가 반대하는 소수에 불과했다면 어떻게 그들이 노련한 다른 지도층을 포함해서 온 나라를 장악할 수 있었다는 건가요? 네 사람 중 한 명이 마오쩌둥의 아내였고, 마오쩌둥과 그녀 사이의 유대가 누구도 감히 그녀를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깊었던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덩샤오핑 : "그런 점이 해당 문제의 요인 중 하나였지요. 앞서 말했다시피 마오 주석은 실수를 했는데, 그 중 하나는 장칭이 정권을 잡게 한 부분입니다. 또한 장칭 일당에게도 분명한 자신들의 세력이 따로 있었습니다. 특히 무지한 젊은이들을 자신들의 기반으로 삼아 파벌을 조성하고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지요."




팔라치 : "마오 주석은 그녀가 하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녀에게 눈이 멀었다는 걸까요? 그녀는 서태후 같은 여자가 아닌가요?"




덩샤오핑 : "분명 장칭은 마오 주석의 깃발을 들고 설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었지요. 다만 마오 주석과 장칭은 이미 한참 전부터 별거한 상태였습니다."




팔라치 :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몰랐군요."




덩샤오핑 : "장칭은 마오 주석의 깃발을 휘날리며 온갖 일을 했지만 마오 주석은 이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개입하진 못했습니다. 분명 이 점에 대해 그는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장칭은 그야말로 속속들이 썩어 있는 여자였고, 4인방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분이 내려진다고 한들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습니다."




팔라치 : "장칭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그녀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겠습니까?"




덩샤오핑 : "0점 이하도 과분하지요."




팔라치 : "그렇다면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덩샤오핑 : "나 자신에 대해선 장단점이 반반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면 나는 꽤 만족할 것 같습니다. 단지 내가 직접 이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이는 점은, 어떤 점에 대해서는 저는 평생 남부끄럽지 않습니다. 다만 내 말에 주의해줬으면 하는데, 분명 저는 일생동안 꽤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마오 주석이 저지른 몇몇 실수에 대해서는 제 자신의 몫 역시 있지요. 그러나 이 실수들은 선의로 인한 실수였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겝니다. 과거의 모든 잘못을 마오 주석에게 다 덮어씌울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를 아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는 일차적으로는 많은 기여를 했고, 이차적으로는 여러 과를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마오 주석의 사상에서 많은 점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가 저지른 실수 역시 분명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덩샤오핑이 얼마나 노회한 사람인가 느낄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팔라치가 마오쩌둥에 대한 비난이나 무리한 쉴드를 끌어내려고 하지만, 덩샤오핑은 여러차례의 민감한 질문에 무리하게 쉴드를 치는 대신 되려 맞장구를 치면서 


"맞다. 마오 주석의 그런 점이 잘못 되었다." 며 손뼉을 마주치면서 여기저기서 많은 인사들을 쩔쩔매개한 팔라치의 공격적인 태도를 어영부영 하게 만들면서(니 말 맞다는데 거기에 화를 낼 수도 없고) "마오 주석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잘못도 있었다." 며 책임은 분산 시키고, 동시에 4인방의 악행을 부각시키며 마오쩌둥의 책임 문제를 묘하게 희석시켰습니다.



여러 날선 비판에 대해 무리하게 성역화 시키기 보다는 "그래 비판할건 비판하자." 며 마오쩌둥이라는 호수에서 '비판점' 이라는 물줄기를 하나 뚫어 놓고 여러 수많은 비판을 이쪽 물줄기로 가게 유도하고는, "잘못된 점은 있지만 공적 역시 크고 이런 공과 과를 나눠서 봐야한다." 식으로 사고를 유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새로 또 비판이 나오더라도 애초에 무결한 존재라고 하질 않았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흘려보내고, 반면에 공적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과 없는 공이라고 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 공 자체가 산산이 흩어질 일도 없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마오쩌둥 '개인' 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마오쩌둥 사상' 에 대해서는 일종의 '마오쩌둥의 긍정적인 면' 에 더해 '여러 사람이 기여한 공유물' 로 여기면서 '실책' 과 분리하려는 모습도 보이구요.




자기 의도는 다 살린 정치적인 인터뷰 면서도 태도 자체는 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했다는 느낌이 들게 털털한 인상이 남게 하는것도 "괜히 그 중국 근현대사 온갖 풍파를 헤쳐온 사람은 아니구나." 느낌이 들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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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Plainview
20/01/03 13:51
수정 아이콘
덩샤오핑이 당시 천명했던 몇 가지 원칙이나 행적을 보면 그는 분명 대중의 지지를 얻는 법, 그리고 권력의 속성과 관료제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 점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독재자와는 다르게 장수하면서 안정적으로 권력을 운영해 나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vallalla
20/01/03 13:59
수정 아이콘
고수대고수 느낌인데요
오클랜드에이스
20/01/03 14:01
수정 아이콘
저우언라이나 덩샤오핑 같은 사람들을 보면 마오쩌둥 아래에서 어쨋든 숙청당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저력이라거나 아니면 혜안을 엿볼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런 덩샤오핑이 향후 50년간 도광양회 하라고 했는데 그걸 뭉개고 20여년만에 패권야욕을 드러낸 시진핑이 지금 두들겨 맞는걸 보면 어디까지 앞을 내다보고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죠.
20/01/03 14:06
수정 아이콘
덩샤오핑 이후 후임들이 그의 말대로 종신 재직이 아닌 10년 주기를 잘 지켜왔는데, 마치 유신헌법처럼 종신이 가능하게 된 시진핑의 10년이 지나기 전 중국인민의 힘으로 내려오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스위치 메이커
20/01/03 14:09
수정 아이콘
오리아나의 날카로운 궁!
덩샤오핑의 칼점멸!

미꾸라지를 보는 듯 하네요
펠릭스30세(무직)
20/01/03 14:13
수정 아이콘
등소평 평전 황금가지에서 나온게 참 재미있어요.

서양인의 관점이 아닌 동아시아인의 관점으로 당시 덩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잘 보이거든요. 아시아적 문화권의 사람들은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정치의 천재였지요. 그러니 군사도 모르고 행정도 모르고 경제도 모르는데 이런 제국의 기틀을 닦을 수 있었고.
20/01/03 14:18
수정 아이콘
과를 이야기할때는 공을 이야기 할게 아니라 신랄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과 과를 구분하는 겁니다.
20/01/03 14:31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아무리 공이 있다 한들 과는 철저히 잘못된거지요.

라고 덩샤오핑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1/04 00:33
수정 아이콘
멋진 댓글이네요
레드로키
20/01/03 14:36
수정 아이콘
덩샤오핑의 내공이 느껴지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페스티
20/01/03 14:38
수정 아이콘
인터뷰 재미있네요.
韩国留学生
20/01/03 14:5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Finding Joe
20/01/03 15:05
수정 아이콘
최근 중국에서 중국인 친구의 결혼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결혼식 아침 신랑이 조부모에게 3보 -> 부모에게 3보 -> 조상님이 계신 방향으로 3보 -> 집 안에 모셔진 마오쩌뚱의 얼굴이 새겨진 그릇에 대고 3보를 하더군요.

이런 걸 보면 아직까지도 모택동은 중국에서 국부로 존경받는 거 같긴 합니다.
20/01/03 15:15
수정 아이콘
한반도는 오랫동안 통일국가로 지내서 그런거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데 중국은 갈라지면 사람 목숨을 갈아댔던 역사가 너무 많아서 중국의 분열을 엄청나게 경계하는 느낌이더라구요. 마오쩌둥은 분열을 막은 것만으로도 온갖 과가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느낌입니다. 박정희 산업화의 공 같은 느낌이라해야하나...
비온날흙비린내
20/01/03 16:43
수정 아이콘
'하나의 중국', '천하통일'이라는 관념이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인들 피에 흐르는 거 같습니다.
말다했죠
20/01/03 16:0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VictoryFood
20/01/03 19:42
수정 아이콘
마오쩌둥 - (주은래) - 등소평 - 시진핑 라인이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게 괼지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주은래가 가장 대단해 보이지만 역사에서 서포터는 빛을 못 보니까요.
20/01/04 01:53
수정 아이콘
소하급 서포터라면
어니닷
20/01/03 21:34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의 글을 읽을수 있다는건 제가 PGR21에 들어와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됩니다.
20/01/03 22:29
수정 아이콘
누가 이런 좋은 글을 썼나 했더니 신불해님이시군요.

정말 등소평은 말 하나 하나에서 내공이 느껴지네요..
非黃錢
20/01/03 23:28
수정 아이콘
정치 글 때문에 분위기가 좀 그랬는데...신불해님 덕에 잘 배우고 갑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근거는 전혀 없고 그냥 개인적인 느낌인데, 정치 지도자 개개인의 능력만을 보면 중국이나 소련/러시아가 미국이나 민주사회보다 좀 나은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보다가 트럼프/레이건/아들 부시/박근혜/일본 누구 아들 같은 사람들 보면 말이죠.
뭐랄까 전체주의 체제 지도자는 도산검림 속에서 온갖 권모술수를 헤치고 살아남은 사파의 절정고수 분위기가 있는데, 민주사회 지도자는 정파에서 영약 받아먹으면서 곱게 큰 도련님이랄까? 개인의 능력보다는 선거로또 잘 긁어서 횡재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가 워낙 잘되어 있지만, 서방세계는 신비화가 가능한 곳이 아니라 약점이 워낙 많이 노출되어서 그런 것도 있을테고...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능력없으면 바로 댓가를 치르는)권력투쟁 속에서 크게 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권력투쟁이 어찌되었든 선거에서 결판이 나서 그런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자체의 역량을 보면 전체주의가 민주사회를 따르지 못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고...
young026
20/01/06 11:50
수정 아이콘
민주정에서 Trump가 집권해서 할 수 있는 삽질과 習近平이 독재자가 돼서 할 수 있는 삽질을 비교해 보면 후자 쪽이 더 악영향이 크죠.^^;
시그마
20/01/04 03:03
수정 아이콘
역시 신불해님.
신불해님 덕에 pgr 자게 볼 맛이 납니다.
20/01/04 17:24
수정 아이콘
너무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항상 감사드려요
여행가요
20/01/04 21:37
수정 아이콘
내공이 느껴집니다.
감사히 읽겠습니다.
지록위마조국
20/01/06 23:02
수정 아이콘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박정희 싫어하는 것처럼 중국 공산당도 마오쩌둥 싫어해 할 것 같은데 안 그런거보면 참 신기하네요. 박정희는 독재자였고 몰래 끌려가서 죽고 고문당한 사람들이 있지만 마오쩌둥이 홍위병으로 피해 입히고 죽인 사람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텐데요.
20/01/07 13:27
수정 아이콘
그사람들은 천안문에서...
20/01/25 21:30
수정 아이콘
pgr 자게에서 빛나는 글이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20/01/25 21:31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덩샤오핑이 문혁을 겪지 않았다면 천안문 사태 진압이 덜 강경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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