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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2/05 21:34:02
Name 실제상황입니다
Subject <조커> 리뷰: 하강의 경쾌함, 추락의 즐거움 (수정됨)



(피드백 받은 부분 수정했습니다)



1. 극초반 아서 플렉은 어떻게 해서든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광대짓을 끝내고 분장을 지운 모습으로 기나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이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르는 아서 플렉의 모습은 대단히 지치고 힘든 뒷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아서 플렉과 같은 약자가 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의 앙상한 등짝은 그 고단함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캐비넷을 앞에 두고 덜떨어진 구두를 삐걱거리는 아서의 굽은 등짝, 그 뒷모습이 이를 은유한다.



2. 아서의 등을 휘게 만드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폭력, 즉 불친절이다.
아서는 발작적인 웃음이 터질 때면 자신에게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불쾌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카드를 꺼내 건네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발작적인 웃음은 그렇듯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아서를 불쾌하게 쳐다보는 세상의 불친절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회로가 망가진 아서는 그런 불친절에 눈물짓는 대신 웃음을 터트리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세상의 불친절이라 함은 단순히 아서의 병적인 웃음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불쾌한 얼굴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부조리 그 자체이기도 하다.




3. 아서 플렉의 파멸 또한 그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발생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서는 결코 그러한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것이 조커의 서사에 존재하는 정치성의 부재이다. 영화는 물론 시의적이긴 하지만 정치성을 향해 달려가진 않는단 뜻.
그는 금융쟁이 3인방을 금융쟁이인 줄도 모르고 죽였다. 그 뒤로 저지르는 살인들 역시 철저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저지른 살인들이다.

아서는 그 개인적 살인들을 통해서 한꺼풀씩 자기 자신을 벗겨가며 마침내 조커가 된다.
이는 고담이라는 사회에 적응해가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온갖 노력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포커스는 오로지 아서에게만 맞춰지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고담시나 고담시의 폭동, 빈부 격차 등등의 사회구조적 모순들은 부차적이고 작위적인 것이 된다.
가령 광고판을 훔쳐 달아나다가 후미진 골목까지 쫓아온 아서를 두들겨패던 애새끼들의 모습이나
술에 취해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치근덕거리다가 아서에게 뒤져나갔던 금융쟁이들의 모습,
그 밖에도 아서의 저임금 광대 동료들, 정치인 토마스 웨인, 쇼호스트 머레이 등등 고담시의 인물들은 다소 소품적인 양상을 띤다.

영화의 서사를 지탱하는 설정들이 부실하다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상술한 고담시의 폭동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해서 폭동이 그렇게 확산되었는지 관객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극이 진행되다 보니 어쩌다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식이다.
왜 그럴까? 앞서 말했듯 영화는 오로지 아서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아서의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현실에서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이 정신 차려 보니까 촛불시위로 전국이 난리가 났고
다들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다는 것을 불현듯 알게 되는 꼴이다.
세상이 난리가 났다는 건 알겠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아서 플렉도 그런 의문을 가졌을 법했겠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간다. 그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폭동에도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이 양복쟁이 몇명을 쏴죽인 일로 폭동이 번졌고
자신이 분한 광대 캐릭터가 그 마스코트격 노릇을 하고 있다 하니 희열을 약간 느낄 뿐이다.
따라서 아서의 의식을 따라 진행되는 영화는 폭동의 개연성을 자연스럽게 개무시하고 지나쳐가는 것이다.
아서 플렉 본인이 그걸 개무시하고 있기 때문.
이렇듯 아서 주위의 서사들 혹은 설정들은 부차적이거나 소품적일 따름이다.
그 모든 현상과 상황들이 아서에게 있어 억압이 된다는 것 자체만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다소 연극처럼 느껴진다. 가령 아서 플렉이 갑자기 (대본에도 없던) 춤을 춘다든지...
분명 이 영화는 계급 우화라고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그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일 테지만
계급 우화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정신병자의 정신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라는 게 내 생각.



4. 다시 계단으로 돌아가자. 하여튼 계단을 오르는 것은 곧 그러한 억압들을 버텨가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억압들을 버텨내기 위해 아서가 품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의 꿈들이다.
그 꿈들이란 다시 말해 그의 망상들이라 할 수 있겠다.

코미디언이 될 것이라는 망상,
자신의 병적인 웃음이 세상에 행복을 나누어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어머니의 말을 믿는 망상,
머레이쇼에 초대되어 아버지 같은 머레이와 서로 사이좋은 말들을 나누며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그와 포옹하는 망상,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는 망상,
그리고 어쩌면... 토마스 웨인이 자기 아버지일 지도 모른다는 망상.

그 망상들은 아서가 자기가 속한 사회에 적응하여 "정상인인 척"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망상들이다.
그러한 망상들이 없다면 아서는 이 잔인한 세상을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영화는 아서의 망상들을 하나하나씩 깨부숴 간다.
유전에서 파이몬의 재림을 위해 피터의 가족을 죽여나가듯,
네르프가 인류보완계획의 실현을 위해 신지의 정신을 서서히 붕괴시켜가듯
이 영화는 조커의 탄생을 위해 아서의 꿈들을 하나하나씩 깨부숴간다.



5. "note: 정신질환자가 가장 힘든건 정상인인 척 해야한다는것"
여기에 아서의 꿈들이 박살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아서가 괴로워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망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서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즉 정상인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의 꿈들에 의존해야 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서가 그의 망상에 의존하면 할수록 현실과 꿈이 뒤섞이고
그럴수록 또 진짜와 거짓 사이에 간극과 괴리가 끊임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의 병적인 웃음은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저 장애 때문에 터져나오는 것이겠지만
은유적으로 생각하면 그러한 현실과 가상의 교차 사이에서 태어나는 희와 비의 엇갈림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의 꿈들을 하나하나씩 깨부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서 이 병신아 크크 걍 니 새끼가 미친놈인 걸 받아들여'라고.
그렇게 아서는 축복처럼 쏟아져내리는 햇빛 속에서 그 앙상한 등짝으로 춤사위를 펼치며 경쾌한 추락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조커는 아서가 극초반 힘겹게 올라갔던 그 계단을, 이제는 즐겁고 유쾌하게 내려오기 시작한다.
마치 사회적 인간으로서 아서에게 요구되었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또 한명의 인간으로서 꿈꾸어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런 모든 인간적인 굴레에서 해방되어 한없이 가벼워진 존재의 탄생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예고편에서 계단씬 bgm 장엄하게 깔아주는 거 진짜 지리게 멋있었는데
왜 굳이 그런 가벼워 보이는 음악으로 바꾼 걸까? 하고 꽤나 못마땅해 했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탁월하고 적절한 음악 선정 아니었나 싶다)

머레이쇼에서 조커는 다리를 떨어대며 세상이 불친절하다 말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제 정상인인 척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더이상은 자기 망상이 망상이라는 것에, 가짜가 가짜라는 것에 괴로워할 필요 없다.
자기 자신이 미친놈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병신 망상충 싸이코 살인마라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순간이며, 미친놈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때, 영화 내내 엇갈리기만 하던 희와 비가 마침내 만나게 된다.
정상과 비정상의 간극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망가져 있던 아서의 회로가 비로소 이어져 하나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커는 이제 불친절을 맞닥뜨려 본의가 아닌 병적인 웃음에 고통받지 않는다.
참을 필요 없다. 본의가 담긴 미소를 지으며 폭력을 되돌려주면 되니까.
조커는 더이상 누군가를 웃길 필요도 없다. 그 자신만 웃으면 그만이다.
해서 조커는 혼자 실실 쪼개며 타인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는 조크 하나를 마침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6. 극장을 나오면서 당신은 조커를 이해했다고, 그의 농담을 이해했다고 어렴풋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브레이크가 걸려 있는 일반적인 사회인이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의 조크는 비유하자면 기생충의 기택과 결이 같다.
생각해보자. 영화상에서 박사장의 본질이 저급하긴 했다지만 코 좀 막았다고, 냄새 좀 싫어했다고 죽이는 게 말이나 되나?
보통 사람이라면 그 정도 가지고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다.
(딸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지만
영화적으로 봤을 때 기택의 살인은 명백히 계급적 차이의 반응이었다)

조커도 마찬가지다.

머레이가 타인의 꿈을 이용하고 조롱해서 웃음 좀 팔았기로서니, 그게 못된 짓이야 했다지만 고작 그 정도 가지고 죽인다니 말이나 되냐?
그런데 사실 그런 일이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나기는 한단 말이지.
왜 뉴스에도 가끔 나오잖냐. 택도 없는 이유로 누구 죽였다는 이야기.
이유가 택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살인을 미쳤다고 한다. 미쳤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해불가능성의 표현이다.
미쳤다는 것 이외의 합리적인 이유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쳤다는 건 그 자체로 비합리적인 이유가 된다.
물론 미쳤다는 것은 불가항력이기 때문에 부조리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우리가 공감할 수는 없다.
억압의 질서 속에서 생존을 누리는 보통 사람에게는 결코 공감 불가능한 것이다.
그 불가항력이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어쩌면 우리와 우리 가족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로 그런 미친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현실성이고, '극중 인물 조커'가 정말로 무서운 이유이다.
그는 이해불가능하다. 그러나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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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yInTheLife
19/12/05 22:36
수정 아이콘
이 영화가 위험한 이유.. 라고 하긴 좀 거창하고 이번 영화에 과몰입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서 플렉의 흐름은 논리정연하게 잘 이뤄지고 그걸 엔딩에서 시위대에 둘러쌓인 장면으로 희석해 놓았기 때문인거 같아요.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조커가 될뻔 한 사람들. 이라고
부자와 빈자의 갈등은 오래된 서사기도 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월가 점령 시위가 떠오르더라고요. 그게 왜 폭동까지 번졌나는 몰라도 그 부분을 영화가 적절하게 눙치고 넘어가는 구나 싶었거든요.
slo starer
19/12/05 23:52
수정 아이콘
인셀이 총기난사하는걸 쿨하게 표현한 작품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깊이있는 메시지가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롯데올해는다르다
19/12/06 00:45
수정 아이콘
충분히 맞아본 사람이면 조커의 살인이유가 그냥 미친 싸이코패스라서-라고 할 거 같진 않네요.
내가 맞다 죽을 거 같으면 그놈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죽일 각오로 패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미국에는 총이 있었을 뿐이고..
Le_Monde
19/12/06 01:25
수정 아이콘
영화를 사회적 맥락에서 비평할 때는 영화와 사회비평 모두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글은 그냥 자기 만족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실제상황입니다
19/12/06 02: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냥 자기 만족으로 쓴 글인데 어설프게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그냥 얘는 이렇게 느꼈구나 정도로 가볍게 봐주시면 감하겠습니다. 영화의 사회적 맥락은 소품 같다고 생각하여 심리적인 맥락에 보다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은 채 대충 미숙한 이해력을 가지고 미숙하게 분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Le_Monde
19/12/06 09:37
수정 아이콘
슬프고 미친 세상이긴 합니다. 조커는 폭발적인 영화라 우리를 말하게 만들지요.
대학생이잘못하면
19/12/06 02:10
수정 아이콘
조커와 기생충이 사회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비춘 점에서 비슷하지만 제게는 조커가 훨씬 더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건 사실성이나 표현의 수위 문제가 아니라 플롯의 차이 같아요. 기생충은 한 가족이 통 큰 사기를 치는 줄거리인만큼 진행상 언젠간 적발이 되고, 시청자들은 그 순간을 숨죽여 기다리게 되죠. 반대로 조커를 보러 간 사람들은 조커의 탄생을 보러 갔습니다. 부조리한 사회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착해보이기까지 하는 아서 플렉을 보고 언제 흑화할지를 기다리고요. 그리고 조커가 (죽어도 싼) 웨인사 직원들을 죽이고 예전 동료를 죽이는 걸 보면 기다림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어떤 쾌감까지 느껴지죠. 영화 내 광대들의 메세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요.
실제상황입니다
19/12/06 02:2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기생충은 다소 거리를 두고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라면
이 영화는 아서 플렉에게 감정이입하여 일종의 쾌감? 사이다?를 얻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서가 조커가 되기까지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 즐겁습니다. 영화의 오락적 재미는 거의 대부분 거기에 의존하고 있죠)
적어도 그런 의도로 만들어졌다 할 수 있으며
플롯상으로도 조커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즐거움과 동시에 불쾌함이 느껴집니다.
결국 조커의 행위가 합리화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사실 저는 이러한 불쾌함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커에게 감정이입을 성공하는 사람조차 그런 불쾌함을 동시에 느꼈으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그랬습니다.
공감과 불쾌함이 공존하는 이런 기묘한 정서가 바로 조커라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바 아닐까 합니다
겟타쯔
19/12/06 09:13
수정 아이콘
그 불쾌함에 좀 더 집중해야 영화의 의도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멋지고 카리스마 있는 악당이 영화에 등장하면 관객이 자신을 악당에 투영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조커는 그게 정말 안 돼요. 저는 사실 카리스마 있는 다크나이트 같은 조커를 기대하고 갔는데, 병약하고 찌질한 조커, 중간에 흑화해도 결국 끝까지 병약하고 찌질할 뿐이었죠. 결코 내 자신을 투영하기 싫은 캐릭터입니다.
램페이지 같은 영화는 정말로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조커는....아닙니다.
실제상황입니다
19/12/06 19:2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그 두 가지가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조커는 자기자신을 투영하기엔 거북스러운 캐릭터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감정이입이 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죠. 적어도 그런 관객들이 꽤 있다는 것입니다. 상술한 바와 같이 플롯상으로도 그걸 유도하고 있고요.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이 캐릭터가 불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이렇듯 본래라면 공감불가능했을 캐릭터에게 공감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공감과 불쾌함의 경계에서 인간은 어느쪽으로든 기울어질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투페이스식으로 말하자면 동전의 앞면이 나올 수도 있고 뒷면이 나올 수도 있고... 그래서 저는 영화가 딱히 윤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훈적인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이 세상이 얼마나 미쳐있는지 한번 느껴봐라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그러니까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거야~'라거나 '저런 새끼가 돼서는 안 되겠다~'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는 점에서 전혀 교훈적이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근데 영화의 제작 의도가 그런 교훈적인 의도라고는 생각이 안 들더라구요. 기생충도 그렇구요. 기생충의 제작 의도도 '그러니까 기생충같이 빌붙어서 남의 피 빨아먹고 살아선 안돼~'라기보다는 그냥 '세상이 이래~' 같은 느낌이잖아요? 조커도 시시비비를 따지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세상이 이래~'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현실을 냉소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비판적이라는 기분도 들고, 시시비비를 따지게 된다는 점에서 시사적인 영화라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영화가 분명 시의적이긴 하지만 정치성을 향해 달려가진 않는다고 표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윤리성을 향해 달려가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맥락도 있고 윤리적 맥락도 있긴 한데 그게 영화의 본의 같지는 않더란 말입죠. 정치적 맥락도 윤리적 맥락도 관객들이 자유롭게 찾아서 발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덜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영화가 어떤 교훈(정치적 교훈이든 윤리적 교훈이든)을 들려주고자 애쓰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그런 현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란 거죠. 건조하게 현실을 묘사했던 기생충과는 달리, 아서 플렉이라는 원톱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 그런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유별나긴 하지만 말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19/12/06 20:1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덧붙이자면 저는 그 불쾌함이 이 영화가 그냥 정신병자를 내세운 게 아니라 조커를 내세웠던 이유라고 봅니다. 윗댓에서도 말했듯 그 불쾌함이란 것은 조커의 행위 혹은 심리가 정당화되는 듯한 느낌에서 오는 감정인데, 이렇듯 싸이코를 미화하는 듯한 느낌이 바로 이 영화가 아서 플렉이 아니라 조커를 내세운 근본적인 이유이라고 할 수 있죠. 조커라는 캐릭터 자체가 바로 싸이코 살인마의 우상화 버전이니까요. 이 영화의 특징은 바로 그런 우상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커가 되기까지 아서 플렉의 서사를 통해 말이죠. 이 우상화는 어찌보면 인간 잠재의식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광기와 혼돈에 대한 동경, 선을 넘는 것에 대한 동경... 그것은 질서의 합리성만큼이나 강렬한 충동입니다. 그런 만큼 언제나 억눌려 있어야 하는 충동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영화는 아서 플렉에 대한 합리화를 통해 혼돈을 질서와 동격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것이죠. 아서 플렉을 조커로 캐릭터화함으로써 공감과 불쾌함의 경계,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서 양쪽으로 동시에 이끌리는 그런 경험을 영화가 선사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조커에 이입된 관객들조차도 조커를 받아들이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양면적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비윤리적이기도 하거니와 말씀하신대로 자기자신을 투영하기에는 너무 병약하고 찌질하니까요. 다크나이트의 조커나 코믹스의 조커와는 달리 카리스마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설계되어 있었던 거죠. 이입을 유발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카리스마의 부재가 이 영화를 비현실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느끼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카리스마 있는 싸이코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본작의 조커는 다크나이트의 조커나 코믹스의 조커와 대비되어 현실적인 입지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건 영화나 만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19/12/06 11:3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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