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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1/13 15:05:06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이토 히로부미 이야기 (수정됨)

을사조약의 원흉, 한민족의 국적으로 알려진 이토 히로부미 .

일본에서는 입헌정치의 기초를 다지고 국가를 근대화시킨 영웅.


솔직히 개인적으로 저는 이토 히로부미를 높게 평가합니다. 일본인 입장에서 충분히 영웅이라 불릴 인물입니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음으로 출세한 인물이지만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도요토미보다 더욱 큰 공을 세운 거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도요토미는 결국 전쟁밖에 남기지 못했는데 이토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이니까요..

그리고 또 다른 평을 하자면 그는 영어 덕분에 입지전적인 출세를 한 전무후무한 인물입니다.............

(이래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피해의식에 입각한 사관을 싫어합니다. 악행은 악행대로 규탄하는 게 마땅하지만,

동시에 저들이 도대체 어떻게 특정 업적을 달성했는가, 무엇을 계산했는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엇을 추구하려고 했고, 어떻게 이를 이루어냈는가, 그리고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가 

이런 점을 보고 싶습니다. 


아무튼 이야기로 돌아가서....이토는 원래 초슈 번의 하급무사로 미천한 신분이었습니다. 


그는 아직 10대 청춘일 때 때 우연히 요시다 쇼인이 운영하는 사립학교에 입학하여 후일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는 인물들과 사귀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쇼인은 그를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고 이토도 요시다의 사상에 딱히 깊은 영향을 받은 거 같지는 않습니다(요시다 쇼인은 조선, 만주, 중국까지 정복하는 것을 꿈꾸었지만, 이토는 그런 망상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쇼인은 이토의 친화력과 붙임성을 높게 사서 그가 나중에 훌륭한 주선가가 될 수 있겠다라고 평했습니다. 


아무튼 이토가 쇼인의 문하생이 된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였습니다. 이토의 싹싹하고 밝은 성격은 초슈번의 실세 기도 다카요시(카츠라 고고로)의 호감을 사서 그는 줄곧 기도의 심복으로 남습니다. 철 없던 10대의 이토는 쇼인 문하생들의 과격함을 따라하면서 급기야 영국 공사관에 불을 지르고 막부인사들의 암살작전에도 참여합니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력은 한편 초슈의 실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슴니다. 


당시 초슈는 존왕양이의 본거지로 외국인에 대한 테러와 정부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이에 막부는 초슈를 토벌하고자 하였고 초슈는 무기를 구입하고자 자금을 모으던 중이었는데 이때 이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초슈 번은 양이를 위해 서양의 항해술과 포술을 배워야한다면서 이토를 포함, 총 5명의 젊은이들을 영국에 유학을 보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토는 일본의 첫 영국 유학생이 되었습니다. 

choshu 5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쵸슈 5인방 (오른쪽 상단이 이토)


그렇게 영국에 도착한 이토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압도적인 국력의 차이를 느꼈던 것이죠. 영국에서 박물관, 공장 등을 견학하고 런던의 칼리지오브런던에서 화학교수 밑에서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초슈 5인은 모두 이과과목을 수학했는데 이는 이들이 문과공부를 할만한 영어실력이 안됐기 때문이죠. 


런던에서 이토는 평생 그의 친구가 될 영국 외교관 에른스트 사토우를 사귀게 됩니다. 이제 영국에 막 도착해서 영어도 딸리는데 붙임성이 워낙 좋아서 외국인 친구들도 쉽게 사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영국에서 수학하는 도중 본국에서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영국과 기타 서양제국의 연합함대와 초슈가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서양의 압도적 힘을 느낀 그는 전쟁을 반드시 막아야한다는 사명감으로 급히 귀국길에 떠납니다. 그가 영국에서 공부한지 6개월밖에 안됐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초슈에 도착했을 때 전쟁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필사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는데 초슈의 보수파들은 이토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처벌되지 않았고 시모노세키의 수비를 맡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당연히 초슈의 참패였고 이때 초슈의 보수파들 또한 서양 연합함대의 가공할 위력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때 평화협상 교섭에 나선 것은 영어가 좀 되는 이토였고 그는 묘한 계책을 내놓는데, 전쟁배상금을 초슈가 아닌 막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전쟁은 쵸슈가 독단으로 일으킨 것이지만, 막부는 일본이라는 국가 전체를 대변하는 기구였습니다. 막부는 원래 쵸슈 책임이라고 발을 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된다면 일본의 대표자는 막부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역설적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쵸슈가 일으킨 전쟁에 대한 배상금을 "상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막부가 제2차 초슈정벌을 도모했을 때 이토는 영국인 친구들 (사토우) 을 믿고 시모노세키의 수비를 영국에게 맡기면 어떻겠냐라는 제안을 했는데 그건 아직 이토가 젊고 국제정치의 진면목을 몰라서였습니다. 이는 마치 갑신정변 때 개화파가 일본을 믿었던 것과 같은 것이죠. 아무튼 나이도 많고 정치감이 보다 뛰어났던 기도는 이토의 제안을 묵살하고 막부와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결국에 사카모토 료마가 초슈와 사쓰마를 잇고 삿초동맹이 막부를 무너뜨린 것은 익히 알려진대로입니다. 군사 작전 중에 이토가 딱히 큰 공은 세우지 않았지만 그는 기도의 심복으로 활동하면서 영국인들과 교섭하면서 군수물자를 조달하였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후에는 중소도시의 현령으로 파견되는 등의 영광을 누립니다. 미천한 출신의 하급무사가 현령이 되는 것도 꽤 큰 일이니까요. 


그리고 1870년, 이토는 근대 경제와 사법제도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납니다. 신생 정부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극히 희박했기 때문에 이토가 선발된 것입니다. 미국에 도착한 후 이토는 개혁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다시 귀국하여 여러 실험적 개혁정책을 입안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다시 이와쿠라 사절단의 멤버로 발탁되어 다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러시아 등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로써 이토는 메이지 신정부 인사들 중에 가장 많은 해외경험을 쌓게 된 셈입니다. 

이와쿠라 사절단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와쿠라 사절단.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토)

(여담이지만, 가운데 이와쿠라 도모미는 천황을 보필하는 조정의 귀족으로 가장 신분이 높았습니다. 당시 신정부의 사실상 정부수반이었고 꼰대 중 상 꼰대였는데, 미국 방문을 계기로 생각이 180도 바뀌어서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와쿠라 도모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양복 입은 이와쿠라 도모미)

이와쿠라 사절단의 여행 중에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얻는 이토는 신정부의 실세 오쿠보 도시미치와도 친해져서 더욱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오쿠보 밑에서 대장성(지금으로 치면 기재부+산자부) 그리고 내무성(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실)에서 일하면서 승승장구하였고 궁극적으로 오쿠보가 암살당하자 그를 이어 내무성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는 단순히 출세만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폭넓은 해외경험을 통해 성장한 그는 일본이 서양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가 되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서는 "헌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영국과 독일로 떠나서 무려 18개월간 헌법연구를 하고 돌아옵니다. 헌법제정을 위해 정부의 실세가 본국을 떠나 외국에서 18개월동안 연구를 한 것 또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죠. 그런데 헌법제정이란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국내정치의 이해관계를 다시 조율해야하고 보수파의 반발을 억누르면서 동시에 국내의 급진주의자들도 억눌러야 하는 복잡한 과제였습니다. 


헌법제정을 위해 그가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조선에서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일본이 조선의 개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거라고 보았는데 사실 당시 일본은 헌법제정 논란 때문에 자기 앞가림하는 데 바빴습니다. 이토는 자신의 신념과 정치생명을 걸고 국내개혁을 추진하고 있었고 외교적 문제는 최대한 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토는 헌법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의회를 개설하고 내각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그리고 초대 총리대신에 취임하게 됩니다. 사실 총리대신에는 원래 가장 신분이 고결한 귀족출신인 이와쿠라 도모미나 산죠 사네토미가 취임하는 것이 통념에 맞는 일이었지만, 이노우에 가오루가 "앞으로 일본의 총리대신은 외국의 전보를 읽고 모두 이해하는 사람만이 되어야 한다고"말했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그럼 이토밖에 없지 않느냐"라며 거들면서 결국 이토가 총리에 취임하게 된 것입니다.


일부 그가 천황주의 헌법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분명 그런 요소도 있지만, 그는 분명하게 근대적 입헌군주정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가 서양사람들에게 말하길 "천황으로 태어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꼭두각시처럼 행동해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토 본인이 총리제를 만들고 내각을 만들고 의회를 만들었지만 정당정치의 룰에 따라서 선거에서 지면 물러날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국내정치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자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재선거를 실시했는데 선거에 참패하여 그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이토만한 사람이 없어, 그는 여러차례 총리에 취임하면서 근대교육제도, 근대산업, 근대의회제도 등을 확립히였고 외교적으로도 청일전쟁의 사후처리와 서양열강과의 조약개정 등을 마무리함니다. 그리고 사실 애초에 청일전쟁도 이토는 반대했던 일입니다. 막부 원로 카쓰 카이슈도 아주 비판적이었죠. 어떻게 보면 청일전쟁은 무쓰 무네미쓰가 계속 전쟁구실(Casus Belli)을 억지로 만들어내고, 김옥균 암살 파동으로 국내여론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화시켜 전쟁을 정부에 강제(force) 한 것에 가깝습니다. 해당 시기에 대한 분위기는 만화 [왕도의 개]에서 아주 생생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메이지 덴노도 이는 짐의 전쟁이 아니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한편 이토는 러일전쟁 전에는 오히려 러시아와의 동맹도 추진하면서 주위 보수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심지어 겁쟁이라는 비난도 빋았습니다.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국내정치는 파벌 만들기의 귀재 야마가타 아리토모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보수파들은 이토를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점점 정치중앙에서 영향력을 상실해가던 이토는 한국정책을 통해 분위기를 쇄신하려고 했고 그 자신이 한국통감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일본을 "문명화" 시켰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문명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비록 조선입장에선 침략이었지만)


(그리고 일본 국내정치의 암투에 진절머리가 나서 조선으로 일종의 도피를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선의 민족주의적 열의는 이토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한 것이었고 조선에 각지의 의병운동과 고종의 돌발행동은 일본의 보수파로 하여금 이토를 다시 공격하게 만들었고 일부는 이를 이토를 실각시킬 명분으로 밀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이토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암살되었고 그가 꿈꿔왔던 근대적 (서양적) 입헌국가 일본도 죽었습니다. 이토의 친서방노선을 계승할 거물 정치인이 없어졌기 때문이죠. 


그나마 프랑스 문화와 사상 빠돌이였던 사이온지 긴모치(참고로 그는 1870년대부터 프랑스에 10년간 유학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가 이토와 사상적으로 비슷한 인물이었는데, 그는 정치적 수완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이토 사후, 일본은 폭주하기 시작했고 사이온지 긴모치는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최악의 전범국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안중근의 의거는 일본이 확실히 미쳐버리도록 하는 방아쇠가 되어 일본의 패망을 가져오는 데 기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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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3 15:27
수정 아이콘
원래 '비명을 찾아서'에서도,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있다는 가정하에서 가상역사를 풀었으니까요.
실제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독립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있었다면, 진짜로 일본은 미국쪽에 붙어서 승전국이 되었을수도 있겠죠. 그리고 조선통치를 계속 인정받았을수도 있었을테고요..
aurelius
19/11/13 15:35
수정 아이콘
영국을 대단히 의식하고 참고했던 이토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가 생각했던 endgame은 일본/한국간의 동군연합 같은 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국이 북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정도가 되는 것이지요. 또는 이씨 왕실을 계속 존속시키고, 조선의 양반들도 존속시켜 이들을 매개로 하여 철저히 일본제국에 봉사하도록 하는 Proxy 권력 투사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VictoryFood
19/11/13 15:52
수정 아이콘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하늘을보면
19/11/13 19: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지금쯤 제가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을수도 있겠군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안중근 의사님 감사합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라면 높이 살만하다고 봅니다. 전 일본인이 아니라서 글쎄요입니다.
됍늅이
19/11/13 20:01
수정 아이콘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대항해 많이 전쟁을 치르긴 했지만 막상 동군연합의 초대 왕은 스코틀랜드 왕이었지요. 아일랜드는 결국 오랜 투쟁 끝에 불완전하나마 독립에 성공했구요.
사실 이토가 살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적 관계나 국민들의 인식 등을 고려하면 2차 세계대전 패망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최소 1970년대에는 독립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에 이미 일본의 말살정책이 절정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보면 그정도로 막가자는 애들이니까 전쟁일으키고 패망한 거라고 보거든요.
윤지호
19/11/13 16:21
수정 아이콘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과 그의 정치적 입지 축소가 연관성이 있을까요?

근데 일본 보수파가 그정도로 민첩하고 머리가 돌아가는 집단이었으면 대본영이 그렇게 무능한 인사들로 채워지는 일도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이 글을 보고나니 대본영이 정상적인 집단이었다면? 같은 끔찍한 if가 하나 더 생긴 기분이네요.
만약 이토가 암살되지 않고 다시 주류 정계로 돌아갔다면?

그러고보니 2009 로스트메모리즈에서도 같은 가정을 했었군요. 교과서나 위인전에서는 이토의 죽음이 왜 스노우볼을 굴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것 같습니다.

유익한 역사적 지식 감사합니다.
aurelius
19/11/13 16:25
수정 아이콘
물론 큰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토 또한 이제 구시대 원로가 되어가고 있었고, 일본 정계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거든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개전과 종전 이후에 벌어졌던 고난과 어려움 등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는 오직 승리를 기억하는 젊은이들로 이들은 자국의 역량을 지나치게 과신했습니다.
19/11/16 01:05
수정 아이콘
이미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이토라서 온건파로서 정치적 기반도 개인적 명성밖에 없어서.........따라주는 세력도 거의 없었고요
조선통감도 조선 좋아하니 가서 즐기라는 의미로 보낸거나 마찬가지라 뭐............
로스트 메모리즈같은 확률은 개인적으로 1%도 안된다고 봅니다
Liberalist
19/11/13 16:26
수정 아이콘
이토 암살이 조선 병합 불러왔다고 안중근 의사 까는 사람들 많이 봤는데, 어차피 병합은 이토 죽기 전에 이미 확정적이었고 이토는 노련한 정치력으로 막 나가는 자기 후진들 누르고 있던 억제기 같은 존재였던 것... 이토 죽고 잘나가던 일본 정치가가 누구였냐를 생각해보면 뻔한 이치죠.

이토 사망이 일본 패망에 기여했다는 글쓴분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19/11/13 18:25
수정 아이콘
히데요시도 사실 일본 국내사적으로는 도수, 검지 등의 정책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주요 터닝 포인트의 하나로써 인식되고 있기는 할겁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좀더 앞이나 뒤를 터닝포인트로 보는 경우도 많긴 합니다만...
하심군
19/11/13 18:44
수정 아이콘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비록 만듦새가 별로긴 했어도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존재감이 어떤건지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는 영화였죠. 가끔씩 집단에 어떤 재능 있는 존재가 사라지면 집단 전체에 나쁜 영향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그런 사람이 아닌가...
마우스질럿
19/11/13 20:01
수정 아이콘
역지사지 해보면

조선의 하층민 누군가가 일본에 가서 다음번 왕위 계승자를 자기 마음대로 정해주고

외교권 박탈하고 근대국가 만들어야 한다면서 군대 없에고 ..

칼 맞는게 정상입니다.
어강됴리
19/11/13 20:38
수정 아이콘
이토 사후 110여년후 구 초슈번 현 야마구치현에서 이토히로부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던 아이돌이 한국의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데...
틀림과 다름
19/11/13 22:22
수정 아이콘
요즘 문피아에서 제가 읽는 소설에서 주인공과 이토가 나오는데요
요즘들어 그 역사적 배경과 관련있는 내용과 인물들이 여기 pgr에서도 나오니 흥미롭네요
(이 글 쓰신 분과 그 소설의 작가님과 동일인물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세인트루이스
19/11/14 02:02
수정 아이콘
이토 히로부미가 뭐했던 사람인지 처음 배워가네요 - 정성글 감사합니다.
궁금해서 대한민국의 헌법은 누가 기틀을 잡았나 검색해보니 (나무위키상) 유진오라는 분이군요. 친일자로 등록되어 있네요. 제헌절이 쉬는 날이라고만 알아왔지, 누가 어떤 사고로 헌법을 제정했는지 전혀 무지하게 살아왔네요.
19/11/16 01:01
수정 아이콘
이토가 일본의 후대에 끼친 최고의 업적은 그 당시 최강국이었던 영국의 의회제도 (양원제)를 가져오고 독일에서 대륙법과 기술을 가져온거라 봅니다.
지금 까지도 일본은 그 영향하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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