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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0/07 15:44:55
Name 울림요정
Subject 스크린 밖으로 따라 나온 조커

*영화 <조커> 내용 일부를 암시하는 글입니다.






미국에서 영화 ‘조커’가 연일 화제다. 상영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표현의 폭력성을 떠나 너무도,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에 갇히지 않고 삶에서 충분히 발견될 수 있는 내러티브. 그 음울한 메시지는 영화가 끝나고도 사람들의 뒤를 쫓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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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생일 겸 모임을 마친 뒤 이야기다. 막차시간에 일단 올라탄 버스가 집 방향과 달라 내리게 된 곳은 약간 낯선 동네였다. 카카오택시를 불러야 하나,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교차로 건너편에 빈차등을 켜놓고 신호 대기 중인 택시가 한 대 보인다. 금요일 밤의 콜상황을 고려하자면 이 기회를 놓치면 귀가시간은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얼른 쫓아가 뒷좌석에 올라타 목적지를 말했다. 끽해야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기사는 아마도 직진을 고려 중이었던 것 같다. 좌회전을 요구하자 순간적으로 뭔가 구시렁대는 음성을 들은 듯했으나, 서울의 택시기사에게 으레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었겠거니. 생각하며 그저 가방 속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았다.

한데, 이 기사 약간 이상하다. 거치대에 놓인 휴대전화를 조작하길래 목적지를 입력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보고 있던 유튜브 화면 속 실시간 채팅에 참여하고 있었다. 채팅 행위는 운전 중에도 계속되었고, 나는 이 사람의 멀티태스킹 능력의 피실험자가 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가 그저 모 극우사이트 컨텐츠에 심하게 매료된 사람 정도일 것으로 생각했다. 음악 볼륨을 뚫고 들어온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득 차량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고개를 들었다. 택시는 넓지 않은 4차선 거리에서 굉장히 무리한 움직임으로 과속과 칼치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무리한 끼어들기에, 옆 택시가 신경질적인 가로막기를 시전하자 대뜸 쌍욕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 씨x, 개xx. 아 쫓아가서 받아버릴까. 내려서 죽여버릴까? 진짜 어떡하지..”

듬성듬성 들리는 음성엔 분명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별것 아닌 일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 마침 엊그제 영화 조커를 본 탓이었을까? 흔들리는 차의 움직임에 맞춰 내 심장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 덩치는 내가 더 큰데도, 운전석에서 내뿜는 광기는 이미 차 안을 압도하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을 멈추는 것은 좋지 않다. 그저 손잡이를 꽉 잡고 이 시간이 흐르길 바랄 뿐이었다.

‘중간에 내려달라고 말을 할까?’ ‘아니지, 더 화가 나서 나한테 화풀이를 하면 어떡하지?’

마지막 삼거리를 지나 택시가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이번엔 오토바이가 문제였다. 우리 앞의 오토바이는 정상속도를 지키며 주행 하고 있었으나, ‘그의 택시’는 오토바이 바로 뒤에 바짝 붙은 속도로 위협적인 배기음을 내고 있었다.

"아이 씨x, 확 받아버릴까 아이 씨x. 바빠죽겠는데’

또다시 욕설. 계속해서 이어지는 뜻모를 읖조림. 손잡이를 잡은 손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집까지 두 블록 정도 더 꺾어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큰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하차를 요구했다.

그리고.. 얼른 카드를 찍어 하차하려는 순간, 그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운전석의 문을 열어젖히더니 차를 두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처음에 누군가(나를 포함한)를 해칠 목적으로 무기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행동이었다.


얼른 그 장소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거리를 확보한 모퉁이에서 잠시 그가 차로 돌아올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운전자의 소재를 파악하기 전에 뭔가 나의 뒷덜미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는 다시 차량으로 돌아와 유유히 사라졌다. 큰일이 벌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짧은 3~4분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오토바이 운전사를 쫓아 뛰어간 것일까?

혹은 그저 분노로 가득 찬 감정을 잠시 달리며 쏟아낼 목적이었을까?

제대로 허가를 받은 운전기사는 맞을까?


집에 들어오고 나서도 흥분한 심장 때문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건장한 남성으로서도 굉장한 긴장감을 느꼈는데, 만약 그날 밤 내 자리에 여자 승객이 탔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내게 위해를 가한 가하 바는 없지만,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조처를 했어야 하나? 부디 내가 영화 속 광기 어린 주인공의 잔상 때문에, 사실 별것 아닌 에피소드를 과대해석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당분간은 택시를 자제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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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손을 잡으
19/10/07 15:47
수정 아이콘
급똥 아니였을까요?
울림요정
19/10/07 15:50
수정 아이콘
킄크크크크 정말 무서웠었는데.. 이 댓글은 빵터졌습니다
19/10/07 16:58
수정 아이콘
저도 급똥에 한 표 던집니다.
Euthanasia
19/10/07 15:47
수정 아이콘
조커님의 그것은 큰가요?
안초비
19/10/07 15:47
수정 아이콘
지입택시일 가능성이 높군요..
울림요정
19/10/07 15:50
수정 아이콘
중얼거리는 와중에 금액(?)을 채워야 한다 뭐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10/07 16:02
수정 아이콘
조커 상영 이후에 따라올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행동들에 대한 방지책을 강구하는 단체, 정부에 대한 비웃음이 잇따랐는데
사실 저런 사람들이 조커 보는게 제일 무서운거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에 영화를 사용할 거거든요
울림요정
19/10/08 00:15
수정 아이콘
처음엔 영화하나에 왜들 호들갑인가. 싶다가, 막상 말씀해주신 부분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니 확 와닿더라구요..
음란파괴왕
19/10/07 16:08
수정 아이콘
영화하나로 왜이렇게 난리인가 싶겠지만, 외로운 늑대는 어느사회나 있고 이런 친구들을 자극할 수 있는 영상물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보긴합니다. 상영을 막지는 않아도, 경계하거나 조심할 필요는 분명 있다고 봐요.
처음과마지막
19/10/07 22:13
수정 아이콘
지방 공중파 뉴스에서본 기억이 있습니다
택시기사 구하기 힘들어서 감옥 다녀온 사람들도 회사택시 운전해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뉴스가 지방 공중파 뉴스에서 나왔거든요 벌써 오래전 뉴스죠
솔로14년차
19/10/07 22:43
수정 아이콘
저런 경우야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공포인거고, 공포를 느낀 후의 긴장감은 그저 사람차이겠죠.
울림요정
19/10/08 00:14
수정 아이콘
제가 어떤 액션을 취했어야 하는건가? 에 대한 물음이 따라오더라구요. 유유히 빠져나가 다음 손님을 향해가는 택시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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