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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0/03 06:25:19
Name 평범을지향
Subject 니체 철학을 간단히 알아보자 (3편) (수정됨)
앞서 이야기에서 니체가 극복하고 싶어했던 대상.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설명했다면 니체가 이원론이 무너진 시대, 천상과 대지로 나누어진 시대에서 천상이 무너진 시점에서 새 시대인 대지만이 남은 시대에 새로운 대지의 사상을 세우고 싶어했다고까지 얘기했습니다.
신의 죽음(이데아의 세계)은 만물을 존재하게 해주는 어떤 초월적 실체의 사라짐이자, 선악이나 미추를 판단케 해주는 절대적 가치 기준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며 가치의 우위는 권력의지의 관계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지향점이었던 가치들이 모두 의미를 잃어버린 시점. 혼란이 빠진 사람들에게 새 방향성이 필요하겠죠?
그 지점에서 그는 '위버멘시'를 생각해냅니다.


"나는 너희에게 위버맨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들 자신을 뛰어넘어, 그들 이상의 것을 창조해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이 거대한 밀물을 맞이하여 썰물이 되기를, 자신을 극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위버멘시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극복하는 사람.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할 뿐 만 아니라 머무르지 않고 그 정체성을 끈임없이 변형시키는 사람을 뜻합니다.  앞서서 니체가 위버멘시는 대지의 뜻으로 대지의 뜻에 충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바꿔 말하자면 불완전한 세상을 긍정하라. 이상적이지 않지만 우리의 유일한 조건임을 알고 그럼에도 기어올라가는 의지의 사람이 위버멘시라
표현할 수 있죠. 오락가락하죠?
우리는 초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권력의지를 조금 더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너의 내면을 들여다봐라 그 자체가 권력에의 의지다. 그것을 직시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네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 자체)


니체의 권력의지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태도입니다.
기존 서양 사상체계에서 부정하고 억압되었던 이기심,육체적 욕망을 그는 긍정합니다.
사람은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 상승하고자 하는 의지. 를 지니고 있으며 이 조건의 발현형태가 삶 그 자체입니다.
이 상승하고자 하는 의지는 우리의 주체성, 능동성을 의미합니다.
권력의지가 권력의지를 추동해 기존의 권력의지를 능가하고자 의지도 권력의지입니다.
즉, 항상 머무르고자 하는 상태, 수동성, 의존성, 남한테 판단을 맡기는 행위는 니체의 눈에는 부자연스러운 삶의 조건이며 스스로 삶을 억제함으로써 노예의 상태로 머무르게 하는 아주 아주 질 나쁜 행위이죠. (니체의 뿌리깊은 여혐은 여기서 기인합니다. 그는 여성이 수동성의 상징이며 사람들을 노예의 상태로 이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 구절은, 그가 능동성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허물을 벗지 않는 뱀은 결국 죽고 만다. 인간도 완전히 이와 같다. 낡은 사고의 허물 속에 언제까지고 갇혀 있으면, 성장은 고사하고 안쪽부터 썩기 시작해 끝내 죽고 만다. 늘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떠나는 자’만이 ‘새로운 곳’에 도달한다. 하나의 건강 상태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건강을 갖는 것, 이것이 위대한 건강이다."


그의 철학을 간략하게 읽어보더라도 그가 사람이 스스로 자기 판단의 주체가 되는 게, 또 항상 능동적으로 스스로에 안주하지 않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열변을 토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사람은 일종의 주체성, 능동성 페티쉬가 있는게 분명합니다.
암튼 간에 이 사람은 주체적이지 않게 타인의 관점에 기대어 스스로를 평가하거나 평가당하는 걸 굉장히 싫어했는데 특히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에 굉장히 격분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존재 근거는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에서 누가 누구를 쓸모없다고 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사람은 주체적으로 스스로가 이 세계의 주인으로 행세해야 하며 자신을 노예의 상태로 만드는 이러한 억압에 저항해야 합니다.
타인을 괴롭히는데서 오는 만족감과 쾌감은 나의 의지를 타인에 의존해서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니체의 사상에서 부적절하죠.
그리스도교 도덕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란 의무의 체계로서 이것과 저것을 행하고 이것과 저것을 금하라로 이루어집니다.
스스로를 노예의 상태로 두게 만드는 이러한 체계는 삶의 근본조건 자체를 부정함으로 남는 것은 쇠퇴밖에 없다고 봅니다.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은 없다.”


니체에게 있어서 모든 사람은 동등합니다. 욕망은 세상을 창조하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 같이 동등한 세상의 창조자입니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위버멘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의 이기심을 긍정하면 타인의 이기심도 긍정할 수 밖에 없는데 기존에는 불편한 상황을 자꾸 인정하지 않으려하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굴복시키는데 혈안이 된다고 판단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정의’ 속에서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깊은 질병을 발견한다. 현대인들의 영혼은 독거미에 물린 것처럼 온통 원한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보편적 가치의 정립과 그것의 평등한 적용. 거기에는 자신과 다른 것, 즉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폭군적 열망”이 들어 있다. 마치 ‘신 앞에 영혼의 평등’을 내세우는 자들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징벌의 충동”을 느낀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할 때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 욕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경계에서 타협할 뿐입니다.
니체에게 있어서 가치란 욕망과 욕망 사이의 충돌 사이에서 끈임없는 해석의 영역에 속합니다.
나의 이기심을 긍정하되 남의 이기심도 긍정하여 끈임없이 합의하려는 태도.  그는 이것을 귀족적 정신. 건강한 이기심이며 인간 도덕의 시작과 끝이라고 말했습니다.
니체에 이르러서야 도덕은 추종의 대상이 아니라 끈임없는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그는 도덕을 천상의 영역에서 지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신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기존 가치를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로 디자인하는 작업이란 이렇게 진행됩니다.
어찌 보면 그가 현대의 윤리체계를 새로 재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는 또한 동정심이란 단어를 싫어했는데. 그에게 있어 동정이란 상대를 위버멘시가 될 수 있는 조건으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정을 되게 탐탐치 않게 봤습니다. 동정심이란 남의 주체성을 인정 안 하는 것이고 생각하고 이 사람은 주체성 페티쉬라서..


각설하고 절대적 가치 설정자가 무너진 시점에서 그는 스스로가 자기 존재의 가치 설정자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칩니다. 그는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고 있는 심연 위에 걸쳐진 하나의 줄이라 표현하고 인간은 위버맨쉬일때에만 온전한 인간이라 평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위버맨쉬'에 이르는 정신변화의 세 단계 과정을 비유를 통해 설명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 정신의 세 단계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를"


낙타의 단계는 타인의 명령에 대해 복종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자기가 참을 수 있고 견디어내는 것을 시험할 뿐입니다. 정신은 박제된 과거의 유산 속에 걸려있는 자아만을 우상으로 섬기며 경외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황량한 사막에서 두 번쨰 변화가 일어납니다.  낙타는 사자가 되고 사자는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며 자신의 사막에서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그동안 자신을 억눌러왔던 규범적 질서와 싸워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자는 마땅히 그래야한다는 의무론적 지배에서 벗어나 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용기가 강조됩니다. 그러나 사자는 곧 싸움으로 인해 황폐해진 이 땅에서 새로운 가치 창립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해야만 할 필요를 느낍니다.
사자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며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며 신선한 긍정입니다.
사자 단계에서 가졌던 '비판'과 '파괴'의 정신은 어린아이 단계에서 권력에의 의지에 기초한 긍정의 정신으로 바뀝니다.
삶의 양식 또한 선악을 넘어서 자유롭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선악의 저편에서 행동합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스스로 최초로 판단하는 운동이며 자기 가치가 자기로 수렴하는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삶을 '놀이'로서 유희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순진무구하며 그러나 호기심이 넘치는 정열적인 창조자로서 기능합니다.
니체는 인간은 이와 같은 정신변화를 겪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삶 그 자체는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삶이란 힘의 성장형식들에 대한 표현이다."


니체에게 있어서 인간은 교량이지, 목적이 아니라서 위대합니다. 특정한 목적에 묶여서 자기 자신을 그 목적의 수단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위대한 정신은 자신의 관점으로서 스스로를 세워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유정신을 사랑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는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 우리 자유로운 정신이 이미 ‘모든 가치의 재평가를 수행하는 자’이며 ‘진리’와 ‘비진리’에 관한 모든 낡은 개념에 대한 선전포고와 승전선포의 육화(肉化)라는 사실을.”

"더 이상 초월적인 실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환하게 웃을 때, 신의 죽음이 찾아오며, 그때의 죽음은 인간에겐 가장 영예로운 일이 될 것이다."


"신앙을 가진 자들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반대로 생각한다. 그는 신이야말로 인간의 피조물이고 그림자라고 본다. 인간은 태양이 넘어가는 황혼녘에 드리워진 자신의 긴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라 그것을 섬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림자가 사라질 ‘위대한 정오’가 오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 시간은 자기 ‘그림자의 그림자’로 존재했던 인간이 스스로를 극복했을 때 찾아오는 위버멘쉬의 시간이다. 따라서 신의 죽음도 위버멘쉬의 출현도 모두 인간의 죽음을 의미한다. ‘위버멘쉬’라는 말 자체가 ‘인간을 넘어섬’, ‘인간을 극복함’이라는 뜻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언젠가 우리가 위대한 정오를 맞이하여 갖게 될 마지막 의지가 되기를."


휴.. 쓰다보니 마구잡이 엉망으로 쓴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이 사람 글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게 아니라, 죄다 상징과 비유 경구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정리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다음 글은 니체의 예술관, 영원회귀, 초인 개념 보충으로 이어나가겠습니다. 아마 담 글이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네요. 엉망진창인 글이지만 봐서 재밌어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다음은 니체가 당시 기독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새로 도래하던 합리주의를 까면서 시작하는 글귀로 짤막하게 마무리짓겠습니다.



"이들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왜 신앙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 걸까? 교황의 말처럼 신은 죽었으나 신앙이 남았고, 그 신앙은 새로운 신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 다시 말해서 그들은 신앙을 만드는 것 자체를 그만두지 못했던 것이다. 미신과 주술을 거부하고 실증성과 엄밀성을 최고의 원칙으로 삼는 과학자조차 또 하나의 주술, 또 하나의 신앙에 빠져들 수 있다. 바로 실증성과 엄밀성 자체가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법을 믿기 때문에 신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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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3 06:37
수정 아이콘
참 좋아하는 철학자이긴 한데, 사실 명제에서 가치 명제를 이끌어내는 데는 이사람도 딱하니 설득력있는 해법을 제시한 것 같진 않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결론이었습니다. 기독교적 윤리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되고 나니 위기감을 느껴서 뭔가 대안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좀 있었던 것 아닌가 싶은데, 사실 상대적인 걸로 끝이어도 아무 문제는 없지 싶어요. 내가 나를 극복할 생각이 없다는데 왜 님이 나한테 위버멘쉬가 지향점이라고 명령함? 이런 느낌이랄까요... ??? 해서 저는 히피나 비트족이 더 와닿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제 개인 취향일 뿐, 보편타당한 지향점은 아니고요. 저한테는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평범을지향
19/10/03 06:53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가치가 상대적이라면 내가 스스로 존재해야 할 가치를 창조자의 태도로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라 이러한 자기극복의 원리를 제시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니체가 자살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 니체가 혐오하는 것은 타성적으로 이유를 묻지 않고 관습에 따르는 자세인데. 자살을 한다고 해도 위버멘쉬로서 스스로 주체자의 입장으로 행한다면 상관이 없죠. 하지만 자기극복이 없다면 타성에 휩쓸려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뜻인데.. 님이 스스로 왜 명령함? 이라고 질문하는 태도가 이미 위버멘쉬의 지향점하고 어떤 면에서 닮아있는거라..
19/10/03 20:29
수정 아이콘
타성에 젖어 사는 건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지! 이런 류 주장의 효시가 이 양반이긴 하죠. 어디까지나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 약간 응? 스럽다는 거지, 19’세기 철학자로서 니체의 위대함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구밀복검
19/10/03 07:2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조금 위험한 번안이지만 한국에 빗대어서 설명하면 제법 적실성을 띨 것 같아서 대충 끼적여 보자면..
니체 세대 이전까지, 그러니까 헤겔로 대표되던 세대까지만 해도 독일 지식인들의 기본 정서는 프랑스를 배우자, 프랑스를 이기자입니다. 왜냐하면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에게 개발려봤고 그러면서 금마들이 얼마나 선진적이고 트여 있는지도 겪어 봤거든요. 아무리 미워도 나폴레옹 법전과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식 제도와 사상과 문화가 독일보다 훨씬 우월하단 건 부정할 수가 없던 겁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프랑스를 벤치마킹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것'을 만들고 구축하고 프랑스식 방식들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합니다. 양자가 상반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죠. 결국은 베끼든 배척하든 프랑스에 대한 대자적 존재로서 독일의 정체성을 형성한 거고 머릿속엔 온통 프랑스만 가득 찼던 겁니다. 마치 과거의 한국인들이 일본이 아무리 미워도 일단 일제면 마쓰시타면 코끼리표 밥솥이면 무조건 금돼지 팔아서 사갖고 베끼고 그러다가도 닭도리탕 같은 건 일제 잔재니 용납할 수 없고 다 뜯어 고쳐야 한다고 길길이 날뛰었던 것처럼요. 이럴 때 흥하는 담론은 '국개론'이죠. 독일 국민이 지금 개새끼니까 빨리 정신 차려서 계몽주의 배워서 자유주의 배워서 프랑스 같은 '선진국' 따라잡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대적인 조류 자체가 엄청 통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이고 그렇죠. 우리의 소원은 통독~ 꿈에도 소원은 통독~

근데 니체 세대엔 독일이 프랑스를 개작살 내버립니다. 황제를 포로로 잡고 파리를 포위 끝에 점령하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남북통일한 직후에 한일 무역전에서 일본이 관광업 망했다고 GG치고 항복 선언한 거죠. 그러면 그동안 열등감 속에서 언제 분출될지 기다리고만 있었던 386식 민족주의와 국뽕이 일제히 분출 되는 겁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 어쩌구 하면서 자아도취에 젖는 거죠. 워낙 잘나가니까 귀족적이고 도회적인 퇴폐적인 예능과 쾌락이 산업적으로 형성되며 너도 나도 퇴행적인 모양새를 보이고요. 한편으로는 그러면서도 고루한 기독교식/동유럽식 전통이 퇴행적으로 남아 있죠. 말하자면 도시 한쪽에는 나영석 식 포르노 예능을 보며 힐링힐링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농촌 가보면 양반 가문이니 쌍놈 가문이니 돼먹지도 않은 옛날 소리 해대면서 정감록이니 예수니 뭐니 하는 미신과 전통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 모두를 뒤덮는 시대 정신이 독일 국뽕 코인이었던 거고요. 그게 니체가 맞닥뜨린 세태였던 겁니다.

니체 같은 사람 입장에선 개같은 겁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이 독립적인 판단의 단위가 되는 '개인'이 없어요. 다 죄다 나영석 예능 보는 개돼지나 월드컵 4강 신화 가지고 딸잡는 국뽕러나 통일 이룩하고 만주땅까지 우리가 먹어야 한다는 환빠나 예수천국 불신지옥 부르짖는 개독이나 뭐 그런 천박한 작자들이 기득권 쥐고 있다고 갑질을 하고 있던 것이죠. 이런 NL 비슷한 휴거 비슷한 갬성으로 가득한 미개한 천것들하고 얽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던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남에 의지해서 빌빌대지 않는, 집단과 이념과 자본과 기성관념 등등 개돼지식 노예도덕에 놀아나지 않는 진짜배기 개인이 되어야 한다, 남의 욕망에 세뇌 당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에서 달아오르는 진솔한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거죠. 그 모든 걸 어절 단위로 응축한 게 결국 위버멘쉬고 권력의지인 건데, 결국 개념 자체가 거창한 게 아니라 핵심은 갬성에 있는 거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이거 아니면 죽음 진짜~ 주독프군 주한미군 몰아내자 이딴 거 말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인 겁니다. 이게 결국 따지고 보면 '예술가 마인드'인 거고요. 정치병자들 몰아내고 인생 자체를 예술로 빚자는 캐치프레이즈의 출발이죠.그런 면에서 니체는 개돼지는 취급 안 해주는 '(정신적)귀족/계급주의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주의자로서 자유주의자이자 '누구든지 남에게 선동당하지 않고 자기 원하는 바를 충실히 행하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자유로움이다'는 명제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민주주의자기도 한 거고요. 우리 모두 오연하고 고상한 개인이 되자는 것이죠. 실상 언급하신 비트닉들이 니체 워너비였다는 점까지 고려하고 보면 니체가 독자에게 전해주는 해방적인 의미는 좀 더 재미있게 뜯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HA클러스터
19/10/03 09:52
수정 아이콘
한국에 맞춰 그때 상황을 이야기 해주시니까 더 이해가 잘 되네요.
19/10/03 11:01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표현이 구밀복검님 평소 글에 비해서 정말 찰지네요!
번개맞은씨앗
19/10/03 09:3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철학이란 주제가 아쉽게도 글쓰는데 고생만 하고 반응은 없는 심심한 것임에도 이렇게 끝까지 연재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한 가지 저도 의견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잘 알고 하는 말은 아니니, 이렇게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가볍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니체의 방법론 중에 낙타의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에 두 가지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낙타의 단계는 타인의 명령에 대해 복종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자기가 참을 수 있고 견디어내는 것을 시험할 뿐입니다.'

첫 번째로, 여기서 저는 '타인의 명령'이 아니라 '명령'이라 생각합니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낙타란 것이죠. 다만 이를 훈련하기 위해, 타인의 명령을 수단으로 할 수는 있겠고요.

두 번째로, 저는 낙타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을 기뻐한다는 점이 방법론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왜 기뻐하는지도 중요하다 생각하는데요.

<차타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 부분을 가져와봤습니다. 의지에 대해 써주신 글과 연결하여 보면 더 잘 이해될 수 있을만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내면에 외경심이 깃들어 있는, 강하고 참을성 있는 정신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정신의 강함과 무거운 것과 가장 무거운 것을 갈망한다.

가장 무거운 것이란 무엇인가? 참을성 있는 정신은 이렇게 물으며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무거운 짐을 싣기를 바란다.

그대 영웅들이여, 내가 짊어짐으로써 나의 강함을 기뻐할 수 있을 만큼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인가? 참을성 있는 정신이 묻는다.'
평범을지향
19/10/05 09:48
수정 아이콘
그것도 좋은 해석인 것 같네요. 자기 스스로 자신이 참을성 있다는 것을 통해 정신의 강함을 확인하려는 심리가 스스로 무거운 관념과 규율을 생성해서 자신을 억누르게 한다? 그런 해석이신 것 같은데, 씨앗님의 말이 니체의 낙타정신을 더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 도 같습니다.
번개맞은씨앗
19/10/05 10:31
수정 아이콘
아뇨. 아쉽게도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거운 관념과 규율을 생성해서 자신을 억누르게 한다?'

관념, 규율, 억누름 세 단어 모두 안 맞다고 생각해요. 그건 니체를 칸트식으로 해석하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이 들고요.
전자수도승
19/10/03 15:09
수정 아이콘
니체는 과연 선악의 피안에서 제 3의 수단인 나치가 튀어나올거라 예상했을까요?
폰독수리
19/10/03 19:0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연아
19/10/03 21:4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9/10/04 03:5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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