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9/22 02:21:46
Name 치열하게
Subject [10] 특히나 명절에 인터넷에선 보기 힘든 사람들


인터넷을 하다 보면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세상 천지에 널린 거 같은데 인터넷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들. 돈을 갚지 않는 사람들 입니다. 돈 빌려주고 떼먹힌 사람들은 많아도 돈을 갚지 않았다는 사람은 가뭄에 콩보다도 보기 힘듭니다. 또 조별과제의 트롤들도 보기 힘듭니다. 조별과제 관련 글이 올라오면 수많은 빌런들에게 당한 사례만 올라옵니다. 빌런들은 볼 수 없죠.

당연하긴 합니다. 본인이 돈을 떼먹고 조별과제에서 무임승차를 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적으면 욕을 먹으니까요. 한 치의 염치라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터넷에서 그들을 볼 수 없습니다. 단 한 명도 인터넷을 하지 않을 리 없고, 그저 조용히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겠죠. 다른 사례들을 보면서 '멍청한 놈들. 니들이 그래서 당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욕 먹을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인터넷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들어도 명절이 오면 볼 거 같은데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사람들이 드글드글 대죠.(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반대의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잘못은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걸까요? 명절에 화목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며느리 친정 간다는 데 눈치 주는 시어머니,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라는 할아버지, 재산은 남녀 차별 말아야지 하면서 받아먹고 제사나 벌초 같은 일들은 나몰라라 하는 고모와 이모들, 간섭만 하는 친척들. 안나 카레니나 소설에 나온 대목처럼 정말 다양하게 화목하지 않은 가정을 우리는 보기 쉽습니다. 특히나 명절이 되면 그렇습니다. 어김없이 조상 덕 봐서 해외여행 가는 짤과 제 입장에선 그냥 밥 한 공기랑 국 한 그릇만 더 올리면 되는 데 굳이 한 상 더 중복되게 음식을 올렸나 싶은 제삿상의 글들이 올라오며 댓글엔
저런 사연들 뿐입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잘 지내고 집안 사람들은. 과연 없는 걸까요? 화목하게 지는 가족들은. 제사에 있어서 어느 한 쪽만 부담을 지지 않게 합의를 하고, 친척이 모여서 무작위로 팀을 나눠서 윷놀이를 하는 집안,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을인 추석엔 꽃구경을 가는 가족, 설엔 추우니 열식구 넘게 시끌벅적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 명절 속 풍경을 닮은 TV에서도 보고 바깥 돌아다니다 보면 보는 거 같은데 인터넷에선 보기가 힘듭니다. 태반이 불화 이야기 입니다.

이런 식으로 입을 털었으니 그럼 너네는 어떠냐고 따지실 수 있겠죠. 저희 집안은 잘 지내는 편입니다. 100% 아무 불화 없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있죠. 알게 모르게 각자가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엔 가족 다 같이 큰아버지 칠순 케익을 잘랐습니다. 사촌누나들은 가족앨범을 준비해 각 집에 나눠주었습니다. 자리에 없는 고모네들 것도요. 올 초 집안에 가장 중요했던 작은 거목이 쓰러진 이후 설날은 이도저도 아니게 지나가게 되었는데 버스까지 대절했었던 49제를 지나 추석엔 다시 모였습니다. 다음주엔 저희 아버지 환갑이라 같이 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정말 조촐하게 저희 집 식구들만 할 수도 있었는데 전체 가족이 모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다들 가족이 모일 이유를 찾고 있고, 이유를 찾은 사람에겐 고마워하고 그렇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 글은 좀처럼 인터넷에선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명절에 재산 때문에 싸우고 다신 작은 집 안 본다는 댓글에, 제사 때문에 아버지와 대판 싸웠다는 댓글에,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더이상 큰집 안가서 여행이나 간다는 댓글에 눈치없이(?)  
'우리 집은 이번 추석에 노래대회 열어서 둘째 작은 어머니랑 큰 집 막내 듀오가 1등했어요'라는 자랑인 듯 자랑 아닌 듯한 댓글은 못 다셨겠죠. 그래서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지났지만 이번 추석에 가족끼리 좋았던 얘기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

본문은 끝나고 후일담같이 적으면 예전부터 생각을 했었던 주제였습니다.
사실 작년에 생각했을 당시는 좀 직설적이고 욕 먹을만한 제목이었죠.
'그냥 님네 집안이 콩가루인거지 명절 탓은 아닌 거 같은데....'
제사가 안지냈다면, 굳이 명절에 가족끼리 안 모였다면 그 집안이 화목했을 것이다.
100%는 아닌 거 같아서요.

잘 지내는 집안은 제사를 지내든 기도를 드리든 이번 명절엔 어디 집이 해외여행을 가서 빠지든 잘 지내지 않았을까요?
제사를 지냈던 집이라는 가정하에(안 지내는 기독교 집안이라든가 있으니까요) 제사라도 해야 가족이 모이는 게 아니라
모이는 가족의 모이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사나 차례 아니면 안 본다는 건 남이라는 얘기니까요.
이미 그 전에 관계가 깨진거겠지요.


명절은 죄가 없습니다. 사람이 죄지요.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거고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거고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이 앾아빠지게 행동하고
그래서 그 많은 명절날 불화스토리가 있는 거겠지요.







ps. (엑시트 스포 주의)

이번에 개봉한 영화 엑시트가 화목하게 지내는 가족의 예시입니다.
그 안을 자세히 파고들면 감독이 설정을 안해서 없겠지만, 조금의 투닥거림은 있더라도 그렇게 지내는 거지요.
화목하지 않은 댓글의 가족들이었다면 영화의 감동은 덜 했을거라 봅니다.
사촌들끼리 모여서하는 대화 장면, 화목하지 않은 가족이라면 불쾌한 긴장감(?)과 재난 후 트롤의 예고였겠지만
화목한 가족으로 설정되었기에 그냥 웃고 넘어가며 재난 후 서로 걱정하며 협력의 연속이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조유리
19/09/22 02:53
수정 아이콘
엑시트에 나온 가족이 화목한 가족의 예시라면
그럭저럭 화목한 가족 많긴 하겠습니다만..
(저희 집도 의외로 화목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사족인 영화 얘기에 토 달긴 뭐하지만 가족이 좀 한국적으로 피곤하게 묘사되지 않았나요.. 딱 평범한 수준의 명절스트레스를 보여주는 느낌? 어느 정도 조정석-윤아로부터 거리를 유지시켜서 더 훈훈해진다고 느꼈는데..
치열하게
19/09/22 09:24
수정 아이콘
화목이 뭐 별거겠습니까. 다음에 보기 싫지 않고 모이면 좋은게 화목이겠죠.

잔치에서는 조정석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괜찮은데 취직해서 여유있는 상황이면 '요즈음 뭐해'에 스트레스 받지도 않고(요것도 사족인데 자주보면 요즈음 뭐해랑 질문을 안하겠지만 오랜만에 봤을 땐 가장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 저도 많이 들어봐서 정말 혼자 스트레스 받는 질문이어서 안해야지 생각해도 오랜만에 보면 말할거리가 없어 하게 되더라구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남은 음식, 술 싸가는 거에 대해 그렇게 짜증을 내진 않았겠죠(요 대목도 조정석이 처한 상황에 빗대어 가족들이 조정석 말을 잘 안듣는 걸 표현한게 아닐지)
가족 모여서 뭘 하는 게 피곤하긴 한데 나이 들수록 소중해지더군요. 어린아이때는 노래방노래방 어른들 앞에서 노래불렀는데 좀 크니 방에 짱박히거나 나가 돌아다녔는데 요새는 다시 뭘 하려는 방향이 되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다른 친척들 손님들에게 인사하기 싫은 것도, 메인무대(?) 나가서 노래나 춤추기 싫어했던 걱도 조정석이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아직도 취준생이란 상황 때문에 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 업는 것도 매형들에게 밀리지 않았겠죠. 자신감이 있었으면. 저도 경험이 있기에..... (저희 가족 생각해보니 대학 어떠니, 취직 언제하니, 결혼은 안하니 하는 질문 안했습니다. 참 서로서로 고마울 거예요. 묻지 않아줘서)
19/09/22 10:47
수정 아이콘
그럭저럭 평범하고 화목한 얘기는 관심을 못 받기 때문에 안 올리는 거 아닐까요. 저도 댓글 0개는 상처받습니다. 크크
치열하게
19/09/22 14:09
수정 아이콘
화목한 가정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기 때문에 훙미진진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린우드
19/09/22 12:05
수정 아이콘
화목하게 지내는 사람들 글도 여럿 본거 같은데요. 화목이란게 뭐 별거겠습니까. 명절썰만 들어도 화목하단걸 알겠던데.
치열하게
19/09/22 14:10
수정 아이콘
제사나 명절음식 다루는 글에서도 느낄수가 있죠. 그 때의 기억이 좋지 않으면 배추전이나 약과에 좋은 감정이 있기가 힘드니
마법거북이
19/09/22 12:54
수정 아이콘
부러운 가족입니다. 가족끼리 잘 지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서른이 훌쩍넘어서야 알게됐네요
치열하게
19/09/22 14:17
수정 아이콘
본문에도 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아래 범위에도 시끌한 일이 있는데 집안 범위가 더 커지면 묻혀있는 폭탄도 있죠. 그래도 어떻하든 붙잡으려는 거 같습니다. 외가는 더 많이 뭉치려고 해도 늦은 느낌입니다. 언제 삼촌이 돈 줄테니까 너희끼리(조카들) 꾸준히 만나라 얘기하시더군요
답이머얌
19/09/22 14:04
수정 아이콘
요즘 얘긴 아니겠지만 남자들끼리 군대 얘기해도 맞은 사람만 있지 때린 사람은 없죠. 물론 어쩌다 진짜 열받아서 한두번 때린 경우 말고, 군기반장격으로 설친 사람 말이죠.
치열하게
19/09/22 14:20
수정 아이콘
자긴 때린게 아니라 쓰다듬은 거니까?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952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왜 뚫렸을까? [29] 隱患4884 24/02/19 4884 0
100949 일본의 스포츠 노래들(야구편) [3] 라쇼2997 24/02/19 2997 2
100948 아시아의 모 반도국, 드라마 수출 세계 3위 달성! [18] 사람되고싶다7617 24/02/19 7617 11
100947 복지부가 의대 2천명 증원의 근거를 제시했는데, 근거가 없습니다? [197] 여수낮바다11522 24/02/19 11522 0
100946 R&D 예산 삭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6] HolyH2O5021 24/02/19 5021 0
100945 [웹소설] 당문전 추천 [57] 데갠3974 24/02/19 3974 3
100944 정부 "공공의대·지역의사제 국회 심의과정 지원할 것" [44] 사브리자나7137 24/02/19 7137 0
100943 이재명 "의대 정원 확대는 정치쇼…비상대책기구 만들어 의협과 논의" [117] 홍철10289 24/02/19 10289 0
100942 내분이 가속화 되고 있는 개혁신당 오늘의 근황 [70] 매번같은7699 24/02/19 7699 0
100941 일본과 미국에서의 일반의약품 및 원격진료 경험담 [33] 경계인4731 24/02/19 4731 8
100939 수도권 의대교수도 동네 병원으로 이직 러쉬 - 23년 11월 기사 [93] 바람돌돌이10000 24/02/18 10000 0
100938 의사의 신규 계약 거부를 처벌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98] kien9008 24/02/18 9008 0
100937 대리처방과 오더거르기에 대한 글 [138] 헤이즐넛커피9787 24/02/18 9787 1
100936 외계인2부 를 보고 (부제 최감독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2] PENTAX4703 24/02/18 4703 7
100935 의사들이 숨기는 거 [248] Pikachu13319 24/02/18 13319 0
100934 기술적 특이점은 오지 않는다. 절대로. [34] brpfebjfi10286 24/02/18 10286 9
100933 일본은 한국보다 10년 빠르다. 의사증원마저도. [321] 스토리북15852 24/02/18 15852 0
100931 이승만 띄워주기의 피로함에 대해서. [163] 테르툴리아누스10507 24/02/17 10507 0
100930 국민의힘 대전·세종·경남·경북 단수공천 대상자 발표 [60] 자급률7710 24/02/17 7710 0
100929 최근에 읽은 책 정리(라이트노벨, 비문학 편) [16] Kaestro2759 24/02/17 2759 1
100928 일본의 스포츠 노래들(축구편) [8] 라쇼2445 24/02/17 2445 1
100926 대한민국 제조업에는 수재들이 필요합니다 [73] 라울리스타9082 24/02/17 9082 33
100924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3) [7] 계층방정6988 24/02/17 6988 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