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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9/14 01:27:14
Name 꿀꿀꾸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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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10] 제사 ? 어림없지, 째뜨킥! (수정됨)


작년 이후로 우리집은 명절이란 단어가 희미해졌다.
귀경길의 차막힘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선물세트도 아련하기 그지없다.
떠들썩한 추석이 설날이, 명절이 잠잠해진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릴때 명절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도 나쁘지 않았고
터미널에서 엄마가 사주던 짱구는 못말려도 기념품 같아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나곤 했다

명절날 풍경은 어떤가.
장남인 아버지부터 작은아버지 거기에 고모가 두명
정말이지 떠들썩한 풍경이였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음식과 음식이 쌓아올라가고
술자리가 벌이지고, 먹고 마시고 놀고, 제사가 끝나면 할아버지가 용돈도 주고
화투판이 벌이지고 다시 술판이 벌어지고.

그런 명절이 거북하게 느껴졌던건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할아버지 집에 가는 골목에서
엄마가 너무나 아프다고 하면서 병원에 입원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엄마는 병원에 들어갔다가 영양제를 맞고,
근처에 있던 막내 외삼촌의 자취방으로 피신해서
조그만한 단칸방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음식과 술자리는 어디서 나왔을까.
고모들이 거실에서 술에 취해서 tv를 보면서 낄낄대는 동안.
엄마는 졸곧 부엌에 있었다.

우리 가족은 때때로 가장 먼저 할머니 집에 도착하고,
가장 늦게 집으로 오곤했다. 때때로 아버지는 새벽에 출발해서
아침에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고 술자리로 자랑삼아 이야기했지만
매번 마다 행운이 있었던 것은 아니였던지라, 나는 번번히 개근상을 놓치곤 했다.

하지만 불효막심한 나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무언가 불합리하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명절날 먹는 음식들은 맛있고, 사촌들과 노는것만 해도
하루가 금방 금방 가곤 했으니까.

삼촌이 작은아버지가 되어서 새로운 며느리가 들어왔을 무렵이였다.
놀랍게도. 작은아버지는 3일간의 명절 기간동안,
하루는 꼬박 꼬박 외갓집에 들리곤 했던것이다.

집이 가까웠기 때문이였나? 명절날 당연스레 하루동안
공백을 보내는 작은아버지를 향해 누구도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의 외갓집은 버스터미널에서 5분거리였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못 미더웠던 모양인지 엄마는 터미널에 도착하면
재깍재깍 할머니에게 전화로 보고를 해야만 했다.

물론 어쩌다 운이 좋으면 외갓집에서 하루밤을 보내는 경우도 있긴했지만
외가와 친가의 방문의 밸런스는 극도로 망가져 있었다.

아버지는 장남이었다.
호랑이 같은 성격의 아버지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쉽게 불호령을 내리고 성질을 부리는 일이 많았다.
시원하게 감정을 배설하고 깔끔하게 잊어버리는 성격이였다.

유원지로 가던중에 카메라 건전지를 빼먹었다던가
돗자리같은걸 안챙겨온 날에는 소리와 고함을 지르며
그대로 집에 돌아오는 일들이 많았다.

시원하게 내지른 만큼이나 기억에서도 말끔하게 사라져서
나중에 무언가로 추궁을 하면 어째서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에게 비난을 하냐며 도리어 억울해했다 .



그에 비해 엄마는 정반대의 성격이였다.
누구와 싸우는 일도 없고, 언성을 높이는 일도 드물었다.
무언가를 주장하기 보다는 양보하고, 때때로는 어리버리를 타곤 했다.


아버지는 종종 엄마를 보며 '융통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라는 단어가 함께 올때면 그 '융통성'은 결단코 허용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하는 전화를 몇번인가 빼먹으면 그날로 불호령이 왔고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것이 있으면 어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다.

가끔식 성질을 부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볼때면
엄마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는 사람처럼 비쳐지곤 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소리내서 엄마를 꾸짖지 않으면 고모들이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고함이 예방접종 역활을 하는거라며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시키곤 했다.

그러나 엄마를 적극적으로 비난하는 대상은 고모들이 아니라 할머니였다.
장남이었던 아버지가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웠던걸까.
할머니의 눈에 비친 엄마는 그야말로 맘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강제적인 엄마의 전화가 없으면 나를 무시한다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명절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가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인지
트집을 잡기위해 부엌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미주알 고주알, 하나하나 명령을 내리곤 했다.

아무런 요리를 하거나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엄격하기 그지 없었다.
어쩌다가 먹으라고 주는것은 썩어빠진 귤이나 상해가는 과일이었고
나이를 들어서 노망이 심해질 무렵에는 안본 자리에서 자기 욕을 하네 마네
지갑에 돈을 훔쳐갔네 마네 하면서 울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런 할머니가 융통성을 보일때는 '작은 엄마'와 관련된 경우였다.
처음부터 바락바락 대드는 작은엄마의 짧디 짧은 신경전이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나자.
할머니는 작은 엄마에게는 엄마에게 보여주던 무언가의 잔소리도,
지적질을 하는 일도 없었다.

얼마나 친절하고 배려깊은 사람인지.
나중에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도
간병인에게 차마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꺼내달라는 말을 할 수 가 없어서
엄마가 올때까지 기다려서 엄마를 시키곤 했다.

물론 엄마와 작은엄마는
공평하게 할머니의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


그러니 실로 경이롭다고 할정도로.
엄마는 인내심이 강했던 사람이였다.
아버지는 한번도 엄마의 편을 들어준 적이 없었음에도
엄마는 참고 참으며 견뎌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버틸리가 없었다.
엄마 손을 잡고 할머니네 집으로 가던날, 엄마는 머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하고
차마 외갓집은 갈 수 가 없어서 막내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취방으로 갔다.

그때 엄마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면 언제 와서, 일을 거드는 거니'

우리 모자가 할머니네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 어느 지점에서 내가 지랄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몰려오는 압박감과 긴장감을 이기고, 설령 모든것을 때려친다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지랄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 당시에는 명백하게 일그러진 것으로 보였을 행동을
했어야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나 역시도,
그러한 순간에는 참으로 마음이 편하게 융통성을 발휘하곤 했다.

골골거리는 할머니는 언제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거 같고
엄마는 여전히 젊고 건강해보였다.

모든것은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줄거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저 회피하기에 바뻤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면서 명절을 보내는 동안
엄마가 할머니와 고모들간에 있었던 혐오감이 드는 이야기를
듣는것 만으로도 버겁기 그지 없었다.


그러니 나또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불합리한 무언가를 앞에 두고도 참고 참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노친네가 그렇게 오래 살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올해까지만' 이라는 단어가 매년마다 되풀이 되었다.
할머니는 90세를 넘기고 돌아가셨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병실에 있는 모든 이들이 도둑질을 한다며
의심암귀에 빠진채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가
막판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순순한 모양새가 되어서
그럭저럭 보내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죽은 이후로 익숙한 전개로 얼마안되는 유산을 가지고
몇번의 고성과 말다툼이 오가고, 더이상의 친척들의 왕래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고모들은 여전히 몰락한 우리아버지와는 더이상 교류를 이어가진 않지만.
작은 아버지와는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곤 한다.


그런고로 기나긴 명절날의 풍경도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외갓집을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우리 가족끼리 조촐하게 제사를 지내곤 한다.
그러나 엄마가 며느리와 전을 부치는 모습은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부터가 명절을 혐오하기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버지는 효자였다.
신혼여행조차 제대로 간적어 없었지만 중학교때와 고등학교때는
매주 주말마다 차를 몰고 할머니와 할어버지를 모시고 식당이니 관광지를 가곤 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아들은 학원을 그만두고 엄마는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모심에는 한 점 소흘함이 없었다.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이사를 갔을때에도
아버지는 근처에 있는 친척들이 못미더웠는지
버스로 몇시간 되는 거리를  엄마를 보내 간병을 시키곤 했다.
커다란 종이박스에 과자들을 꽉꽉채워 놓으면서


할머니가 죽고.
작년인가 제작년인가,
가족끼리 술자리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건 정말로 드문 기회였다.

무슨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느샌가 고부살이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왜 며느리랑 시어머니간에 사이가 안좋은지 아냐?"

술에 취한채로 얼굴이 벌거진 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생각해보면 '정치'에 대해서 느끼던 것처럼,

나는 그저 혐오하기만 했지
이런 주제를 가지고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 한적은 없었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아버지가 내린 결론은 과연 무엇이였는지..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해본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아무 노력도 안한채 시간을 보낸건 아닐까


"며느리와 시부모간에 정이 없어서 그래~
결혼하면 며느리는 무조건 6개월 정도를 시부모랑 같이 살면
정이 생기고 사이가 좋아질 수 있는건데 그걸 안해서야 "



그건 농담이 아니였다.


수십년간 시어머니에게 시달리다 골병이든
아내를 두고, 아버지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이런 미친...'


다시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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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장
19/09/14 01:56
수정 아이콘
제발 픽션이길 바래봅니다..
아스날
19/09/14 02:15
수정 아이콘
할머니 40년 모시면서 딱히 좋은 소리 못듣는 저희 부모님 생각나는 글이네요. 그 많은 자식들 불만 많으면 본인들이 1년이라도 모셨으면 말을 안하지..
차례, 제사, 모시고 사는거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명절날 내려가는데 너무 싫습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척들 일일이 다 찾아가서 인사하고 엄마, 와이프 음식 준비하고 힘들다고 하는것도 더 이상 보기싫네요.
그냥 명절 없어지고 회사 출근하는게 속 편할것같습니다.
19/09/14 02:22
수정 아이콘
차례 제사상 문화라는게 제대로 내려온 전통도 아니라는게 정설이고 이젠 끊어낼때죠.
19/09/14 02:41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정말 없어져야할 풍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르래
19/09/14 03:31
수정 아이콘
저희 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고생하신 어머니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저희는 올해 어머니와 어머니의 며느리가 서로 모이지 않고 차례상도 차리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전화통화만 간단히 했을 뿐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supernova
19/09/14 04:3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끊어야 할 악습입니다. 저도 어릴때는 삼촌 사촌 형누나 모여서 먹고 떠들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와 숙모들의 희생이 만들어준 판이었을 뿐이었네요. 다들 이민가고 뿔뿔히 흩어져서 더 이상 그 고생 안해도 되는게 좋네요.
잉크부스
19/09/14 06:51
수정 아이콘
저희 어머니가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고해서..
제가 엄마 며느리가 팬티 벗어던지면서 이거 내일까지 세탁해줘 라고 말했을때 화안나면 그게 딸이고 화가나면 며느리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편안한 관계가 일방이되면 한사람에겐 고통이니까요.
유쾌한보살
19/09/14 07:4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조상님께 감사, 가족 친척간에 화목...등의 명분 하에 이어져 내려온 제사와 명절은,
<가부장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지도 모르죠.
아들로서만 이어지게 하면서... 또 여성에게는 끝없는 노동과 희생과 복종을 합법적 제도 하에 요구하는 게지요.
명분은 아들이 챙기고 실질적 수고는 며느리가 다아 감내해야 하는...

더 악질적인 건, 그 며느리들의 관리 감독은 그 전 며느리(시어머니)가 담당하는 시스템이지요.
억압 통제 구박 억울 갈등 희생 개무시 .... 그들 사이의 문제는, 우습게도 그들의 부족함이나 못남 열등으로 귀결시켜 버립니다.
여기서 그 아들은, 전적으로 그 전 며느리 편에 서줌으로써
그들에게 아들, 아들, 오로지 아들을 낳는 것만이 살길임을 대대로 ..확인시키며 가부장제를 이어갑지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꾸잉 님의 부친께서는 정~말 너무 하셨습니다.
19세기를 사는 분도 아니고 말입니다.
읽다가 꾸잉 님께 분노마저 솟구쳤습니다.
왜 ? 왜 ? 어머니를 위해 한 마디도 항변하지 못했습니꽈.
19/09/14 08:16
수정 아이콘
아이고야....
Bemanner
19/09/14 09:11
수정 아이콘
저희 어머니께서는 시어머니 안계신 시댁에서 2일동안 집안일 1/n만 하면서 쉬는거보다 친정에서 1주일동안 치매걸린 외조부모님 모시면서 집안일 95%를(제가 5%..) 전담하시는걸 더 선호하시더라고요. 최대한 편한 환경에서도 이럴 수밖에 없는데..
界塚伊奈帆
19/09/14 09:35
수정 아이콘
소설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실화라면...... 휴우...

제 어머니가 오버랩되어서 참 씁쓸하군요.
은하영웅전설
19/09/14 09:4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희 어머니도 그렇게 35년...
할머니 돌아가시고도 아버지때문에 계속 제사 지내시다 유일한 친척이었던 작은아버지가 이제 제사때 안오겠다고 선언하시니까 그때 끝났습니다.
저는 틈나는대로 어머니 편 들고 사다가 지내자고 하면서 사오기도 하고 성질냈지만 먹히지도 않더군요.
저희 어머니도 허리며 다리 어깨..골병이 드셨죠.
19/09/14 09:55
수정 아이콘
부조리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말만 하지 말고 끊으세요. 지금 세대가 변화할 타이밍으론 제격입니다. 언제까지만 하고 안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미루면 계속 그대로 갈 뿐입니다.

저는 이미 명절을 연휴로 쓰고 있습니다.
이번은 죽어라 일하는 중이지만...
외력과내력
19/09/14 10:16
수정 아이콘
저희 집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라 남일 같지 않네요. 그분들도 며느리 시절이 있었을텐데...... 괴물이 괴물을 만든다는 얘기를 명절 때마다 떠올립니다.
녹용젤리
19/09/14 10:41
수정 아이콘
저도 친가쪽 사촌들과는 상종도 안합니다.
큰아버지가 무능한데다 뜬구름만 잡던 분이셧던지라 아버지가 조카들 학비며 옷이며 용돈, 수학여행비까지 다 챙겨 줬는데
명절에도 연락한번 없고 어저다 한번 아버지가 포항이나 부산 내려가셔서 만나도 어찌된게 용돈 한번을 받아 오질 못하시더군요.
가난한것도 아니에요 큰조카하나는 부산 대형종합병원 수간호사로 일한지가 십수년째인걸요.
심지어 제 결혼식이 부처님 오신날이었는데 그날 교회행사있다고 죄다 불참.... 에휴

아버지가 그치들 결혼식할때 축의금을 얼마했는지 제가 다아는데[어머니와 제가 뼈빠지게 장사해서 번돈입니다. 장부에 빠짐없이 다 적어뒀어요]
달랑 송금된돈은 지들이 받은 축의금의 1/3도 안되는 액수. 그걸 보고도 아버지는 싫은소리한번을 그것들한테 안하시더군요.
조카들한테 꼬라박던돈을 우리 남매한테 그리 좀 써보시지... 나이가 들고 이 집안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게 될수록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늘어 갑니다.
처음과마지막
19/09/14 11:01
수정 아이콘
주변 어머니께 친척 분들 결혼 리얼한 생활이야기만 들어도요 결혼은 정말 대부분 미친짓 같습니다

자신들의 부모님들만봐도 대부분 솔직히 많이 다투죠

그래도 자신은 다를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지만 진짜 행복한 커플은 극소수죠

결혼은 진짜 너무 여러가지 변수의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거든요
19/09/14 11:04
수정 아이콘
이 이야기하니 눈 휘번득하게 뜨고 이게 얼마나 오랜 전통인데 하는 사람 봤습니다.
19/09/14 11:06
수정 아이콘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 생각나네요.
거기서도 결국 가부장적인 구두쇠 아버지(신구)는 딸과 부인(나문희)을 아끼는 마음이 있음에도, 그간의 행적들 때문에 결국 가족들에게 용서받지를 못하죠.
19/09/14 11:4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어느정도 살면 인간은 죽을 준비가 끝나야죠. 인생을 열심히 산분들은 70세정도만 되어도 큰 후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어쩌다 60-70세 되면, 후회가 많은지 이것저것 자꾸 해보게 됩니다.

저는 인간은 어려서 배우고 전성기를 보내고, 가정을 이루고(이건 옵션) 그리고, 후대를 보았다면 인생을 잘 살아내었다고 생각합니다.
60대가 넘으면 새로 이것저것 배울게 아니라(한풀이 하지말고), 자기가 그동안 살면서 배웠던 걸 후대에 전하는 시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가는거죠.

제 경우는 나이드신 부모님 두분이서 제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사시는데, 혹시 죽으면 누가 날 장례치뤄줄건지를 놓고 10년째 하소연하십니다. "내년엔 저 꽃을 볼까?' 하신지 20년째 되십니다. 제사는 제 세대에서 끊길것 같네요.
19/09/14 11:49
수정 아이콘
아끼는 마음보다 본인이 더 커서 그렇게 한걸로... 돈은 있고, 아끼는데 못해줬다는 거짓말이고, 차라리 없어서 못해줬다는 용서받을겁니다.
능소화
19/09/14 12:05
수정 아이콘
이제는 명절 풍습 고집하시는 분들이 청학동 취급 받으시는 날이 되는건 상식이죠.
세상이 변해버리니~ 라떼로 목 축이는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결혼도 안하고, 해도 애도 안 낳는데 이야기 성립이 안되요.
매일푸쉬업
19/09/14 12:12
수정 아이콘
제 평생 제일 싫었던게 명절날 큰집가서 친척들 만나고 여기까진 참을만 함. 고모 오지랖이 좀 거슬리지만
제사 지내고 성묘가는게 진짜 너무 스트레스였는데 드디어~~~ 드디어 !!! 없어졌습니다 ㅜㅜ

할머니 돌아가시면서 유언대로 할아버지 산소도 전부 화장처리하고 두분 다 절에 모셨습니다. 집에서 따로 제사 안 하고 명절때 절에 한번씩 갔다 옵니다.

[진짜 제사 없애서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이제 명절이 지긋지긋하지가 않아요 으하하
단지 우리 누나는 시집가면서 거기서 제사상 차려야되서 다시 지옥 시작..크크
매일푸쉬업
19/09/14 12:21
수정 아이콘
정말 악습중의 악습이죠. 일단 저희 집은 없애 버려서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비마이셀프
19/09/14 13:34
수정 아이콘
제가 아버지와 연결된 애증의 실이 점차 끊어지게 만들기 시작한게 저 비슷한 명절의 부조리한 상황과 어머니의 수고를 전혀 모르는 아버지 태도 때문이였어요.
루트에리노
19/09/14 14:09
수정 아이콘
많이들 끊죠
수지앤수아
19/09/14 15:11
수정 아이콘
경상도 남자인 저희 아버지도 똑같습니다.
청보랏빛 영혼 s
19/09/14 15:26
수정 아이콘
가만히 읽어보면 장남이라는건 정말 신비로운 존재에요.
할머니가 엄마한테 그 모든 진상을 다 부릴 때는 아버지보다 본인이 약한 존재이며 친가식구들이 본인에게는 잘해준다는 이유로 침묵하고
그 시절의 아버지만큼 힘이 세지고나면 이제서야 불쌍한 우리 엄마 걱정을 본인 부인에게 하기 시작하잖아요.
'우리 엄마 불쌍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가 잘해드려야되.'
꾸잉님 아버지가 전형적으로 이런 테크였을 거라고 봅니다. 이상한거 아니에요. 꾸잉님이 느끼는 모든 부채의식을 아버지도 똑같이 느끼고 할머니에게 효자가 된거 뿐이니까.
19/09/14 15:50
수정 아이콘
저런 부조리를 깨려면

깨려는 사람의 힘(영향력, 권력, 집안에서 발언권 등등)이 커야 합니다.
19/09/14 16:07
수정 아이콘
안타깝네요. 어머님께서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콜라제로
19/09/15 09:55
수정 아이콘
저는 어릴때부터 명절이 진짜 너무 싫었습니다. 어린시절엔 도로 상태도 안좋은데 초장거리 이동 + 가서 아무것도 할 거 없음 + 밥도 맛없는거만 나옴 등등 장점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가 없었거든요. 그나마 용돈 받은건 다시 부모님이 회수해가버리니 그때 기준으로는 개고생만하고 남는건 없는 지옥같은 며칠이었죠. 크크 그때 추억(?)이 지금까지도 남아 명절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쉬거나 놀러가는 정도만 합니다.
몰아치는간지폭풍
19/09/15 11:15
수정 아이콘
저는 아직 30대이지만 20대초반에 이미 집안 어른이 전멸(...)해 버리셔서 결혼하고 나서 제사고 차례고 명절이고 다 없애 버렸습니다. 명절이 참 편하네요 크크
파이몬
19/09/15 11:43
수정 아이콘
그냥 무시하고 안 갑니다.
편-안 그 자체
다이어트
19/09/15 18:02
수정 아이콘
제사 지내는거에 왜 난리치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장점이 있다고 그렇게 지내야 한다고 우기는지
아웅이
19/09/16 16:36
수정 아이콘
아이고.. 속터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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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54 [일반] [보론] 일본의 정보력과 근대화에 대한 집착 [28] aurelius2608 19/10/17 2608 4
83153 [일반] X같은 대학원, 정승처럼 졸업하기 1 [5] 방과후계약직1377 19/10/17 1377 4
83151 [일반] 펜벤다졸 유행이 시작된지 4주차네요. 짧은 제 생각을 올려봅니다. [20] 그랜즈레미디5476 19/10/17 5476 2
83150 [일반] 잘뽑은 네이버 시리즈 광고 [14] 박진호2653 19/10/16 2653 2
83149 [일반] 설리 씨의 조문을 다녀오며. [6] 엄지3605 19/10/16 3605 20
83148 [일반] (스포)요즘 원피스 다시 보는데 [81] 그때가언제라도5053 19/10/16 5053 3
83147 [일반] 설리처럼 살고싶었다 [16] SigurRos3749 19/10/16 3749 3
83146 [일반] [도서] 이탈리아 만들기(The Pursuit of Italy) [8] aurelius1220 19/10/16 1220 3
83144 [일반] 개인적으로 적어보는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 부활(THE RESURRECTION) 2005年 [20] 랜슬롯2885 19/10/16 2885 0
83142 [일반] 금리가 0.25% 인하되었습니다. 부동산? 제로금리 시대? [54] 마약남생이6338 19/10/16 6338 1
83141 [일반] [도서] 기독교의 탄생(La naissance du Christianisme) [8] aurelius1406 19/10/16 1406 0
83140 [일반] [역사] 1872년 어느 일본인이 둘러본 프랑스 파리 [49] aurelius5059 19/10/16 5059 9
83138 [일반] 운영진에게 격려를 보냅니다. [16] 닭장군2820 19/10/16 2820 27
83137 [일반] X같은 대학원, 정승처럼 졸업하기 [29] 방과후계약직4138 19/10/16 4138 10
83133 [일반] 환경부의 미세먼지 메뉴얼. 심각 단계시 민간 강제 2부제, 임시 공휴일 검토 [23] 아유3527 19/10/15 3527 2
83131 [일반] 리얼포스 구매 후기(지출에 도움을 주신 피지알러 두분) [36] 분당선3695 19/10/15 3695 2
83129 [일반] 고통없는 세상에서 꼭 편안하시길 [3] 청순래퍼혜니3102 19/10/15 3102 6
83128 [일반] 런닝맨을 돌려보며 (17~19년도), 그립다! 무한도전! [10] 랜슬롯2692 19/10/15 2692 3
83127 [일반] 어플로 여자 사귄 썰 푼다 [34] Aimyon9091 19/10/15 9091 51
83126 [일반] [알쓸신잡] 서양사람들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39] aurelius5210 19/10/15 5210 11
83125 [일반] [추모] 경계인 설리가 떠났다 [16] 두괴즐5695 19/10/15 5695 12
83124 [일반] 어제가 생일이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크크 [6] 목화씨내놔1758 19/10/15 175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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