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6/09 20:00:24
Name 及時雨
Subject 흑인 사무라이, 야스케 이야기.
RhCghGn.jpg

국내에서도 블랙 팬서로 잘 알려진 채드윅 보스먼의 신작 소식이 최근 전해졌습니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야스케" 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야스케는 누구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길래 흑인 배우를 주연으로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를 풀어가느냐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弥介, 내지는 弥助 라는 한자를 쓰는 야스케라는 인물에 대한 사료의 언급은 극히 적습니다.
다만 일본 측 1차 사료인 신장공기나 마츠다이라 이에타다의 일기 등에서 실제 언급이 확인되며, 예수회 측 기록과도 교차검증이 된다는 점에서 실제 존재했던 인물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들 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야스케는 1579년 7월 25일, 선교사 알레산드로 바리나노를 따라 일본 땅을 밟았습니다.


학계에서는 대개 야스케의 출신지를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실제 바리나노가 모잠비크에 기항했던 기록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즉, 포르투갈령이던 모잠비크에서 바리나노가 야스케를 노예로 구매한 뒤 일본까지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다만 바리나노는 모잠비크 기항 이후 인도에서 긴 시간 체재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야스케를 구매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합니다.


1581년 2월 23일, 바리나노는 오다 노부나가를 알현하게 되는데, 이때 야스케를 데리고 갔습니다.
예수회 측 기록에 따르면 노부나가가 친히 흑인 노예를 확인하고 싶어했고, 혹시 검은칠이 된 것은 아닌가 옷을 벗겨 씻겨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신장공기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야스케의 나이는 26세 내지는 27세.
힘이 사람 열명만큼 셌고, 검은 소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되었습니다.
또한 마츠다이라 이에타다는 1582년 6월 11일 자신의 일기에 "몸이 먹 같고, 키가 6척 2분(약 182cm), 이름은 야스케라는 흑인" 이 노부나가를 섬기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W8k6jQD.jpg

일본에서 흑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 최초의 사례이니만큼, 많은 이들이 놀라워 했던 모양입니다.
예수회 측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도성이었던 교토에서는 흑인에 대한 소문이 나는 바람에, 구경꾼이 구름 같이 몰렸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들끼리 서로 싸움이 나서 투석전이 일어나고 중상자가 나올 정도였다니, 당시 일본인들이 야스케에 보인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미루어 볼만 합니다.


새로운 문물과 외국의 것에 거리낌이 없던 오다 노부나가는, 야스케라는 독특한 인물에 대해서도 상당한 흥미를 지녔던 것 같습니다.
바리나노와 협상을 거쳐, 야스케를 받아낸 뒤, 그를 정식 사무라이로 삼았거든요.
사무라이라는 신분은 전국시대에서는 말 그대로 귀족과도 같은 위치이니, 노예였던 야스케 입장에서는 이역만리에서 갑작스럽게 신분 상승을 경험하게 된 셈입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박연이나 하멜에게 벼슬을 내렸던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네요.
또한 야스케에게 직접 칼을 하사하고, 집까지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노부나가가 상당히 총애했던 것 같습니다.



DvNDzfz.jpg

이렇게 오다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게 된 야스케였지만, 좋은 일만 이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노부나가를 섬기게 된 바로 다음해, 1582년 6월 2일.
오다 노부나가는 혼노지에서 부하 아케치 미츠히데의 반란에 의해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 유명한 혼노지의 변이죠.


노부나가의 측근이었던만큼, 야스케 역시 사건 당시 혼노지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야스케는 노부나가의 서장자이자 후계자였던 오다 노부타다를 따라 피난처 니죠 성에서 분전했습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결국 오다 노부타다의 자살로 인해 패배로 돌아갔고, 야스케는 투항하여 포로가 되었습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야스케를 살려줬습니다.
"흑인 노예는 동물이라 아는 것도 없고, 일본인이 아니니 굳이 죽일 이유도 없다." 는 이유에서였죠.
결국 야스케는 교토의 예수회 성당, 남만사로 보내져서 예수회 측의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가 말하는 야스케의 행적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1QzI68T.jpg

이후 일본 측과 예수회 측 어떤 사료에서도 야스케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전국시대 흑인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고는 하고,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쓴 일본사에서 1584년의 오키타나와테 전투 때 아리마 하루노부 측에 대포를 사용해 활약한 흑인이 있었다고 적혀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또한 아이치현 세토시의 니시야마 자연박물관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것이라고 전해지는 데스마스크가 전시되어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해당 박물관 니시야마 관장의 말에 따르면, 이 데스마스크를 야스케가 가져온 노부나가의 목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D2oC6fM.jpg

전국시대의 흑인 사무라이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보니, 야스케는 이후 여러 미디어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지고 창작 속 주인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968년 쿠루스 요시오가 쓴 "쿠로스케(くろ助)" 는 야스케를 주인공으로 한 아동 문학으로, 1969년 일본 아동 문학가협회상을 수상했습니다.
1971년에는 일본 기독교 문학의 거장인 엔도 슈사쿠가 유머 소설인 "검은 도령(黒ん坊)" 을 통해 야스케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고요.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오카자키 타카시의 작품 아프로 사무라이 또한 야스케 이야기에서 그 모티프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만화, 문학, 영상 작품에서 야스케 캐릭터는 등장하고 있고, 이번 할리우드 영화 "야스케" 가 그 명맥을 잇게 된 것입니다.



0tdagIo.jpg

더불어 게임 쪽에서도 야스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사 시뮬레이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회사, 코에이 테크모의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도 야스케는 등장합니다.
2013년 발매된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서 특전무장으로 등장해, 모든 시나리오에서 전부 사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또한 2017년 역시 코에이 테크모 작품인 액션 게임 인왕에서도 스테이지 보스 "칠흑의 사무라이" 로 야스케를 등장시켰습니다.



sJlNycL.jpg

이 흑인 사무라이에게서 큰 감명을 받은 아티스트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조각가 니콜라 루스가 있습니다.
주로 폐타이어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고 있는 조각가인데, 2015년부터 야스케의 이미지를 활용한 No Man's Land 연작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곧 다가올 할리우드판 야스케가, 과연 이 작품의 이미지와 얼마나 비슷할지도 두고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고통은없나
19/06/09 20:10
수정 아이콘
전국시대 일본의 외국인 사무라이중에서 제일 많은건 조선인이었다고 하네요.일본 전국시대에서 활약하는 조선인 사무라이..그림이 잘 그려질거같은데 영화화할 나라 없을려나요.
及時雨
19/06/09 20:13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기록이 남아 있는게 좀 중요한 부분인 거 같긴 합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가 조선인으로 사무라이의 삶을 산 사람은 홍호연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도자기 쪽으로는 이름 없이 백파선이라고만 전해지는 여공이 있었다고 하네요.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680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0514
及時雨
19/06/09 20:15
수정 아이콘
더불어 임진왜란 때 끌려간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일본 측이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언급하기 꺼리는 부분이다보니 미디어 등장이 더욱 어렵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에서 귀순한 사야가 김창선 장군 이야기가 임진왜란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겠죠.
아케이드
19/06/09 20:26
수정 아이콘
우리 입장에서야 조선인이 일본에서 사무라이를 했다는게 신기하고 희귀한 일이지만,
서양인 입장에서 보자면 바로 옆나라 사람들끼리 교류한 정도라서 별로 흥미거리가 안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케이드
19/06/09 20:16
수정 아이콘
오다 노부나가가 정말 개방적인 인물이긴 했던 모양입니다.
본문 내용처럼 흑인등 외국인도 능력 있으면 사무라이로 채용했고,
그래서 총기 및 총병 관련 전술도 다른 영주들보다 빨랐던 거 같구요.
及時雨
19/06/09 20:19
수정 아이콘
더불어서 원체 노부나가가 힘센 장사를 좋아했었습니다.
스모 경기 같은 것도 주최해서 즐기는 사람이었으니,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괴력의 거한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겠죠.
졸린 꿈
19/06/09 20:19
수정 아이콘
인왕하면서 많이 잡아본(?) 그 사람이네요. 크크크
나중엔 비겁하게 둘이서 같이 덤벼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及時雨
19/06/09 20:21
수정 아이콘
게임은 안 해봤는데 찾아보니까 가면 벗은 모습도 나오더라고요 크크
By Your Side
19/06/10 12:02
수정 아이콘
저도 보자마자 인왕 생각이.. 크크
19/06/09 22:5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는 쥬얼시디를 사서 슈팅게임 '바사라'를 해본적이 있어서 흑인이 하나 나오는게 무슨 게임적 허용인가 갸우뚱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무위키 항목도 있어서, 아주 처음 듣는 주제는 아니지만 이렇게 깔끔하고도 재미있게 적어주시니 정말 보기 좋습니다.
특히, 최근에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고, 흑인 사회에서 이 문화심볼을 이렇게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적어주신 덕분에 지식이 늘었습니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보았던 "드래곤볼 만화 속의 인종주의"라고 유튜브 영상이 올라왔던게 생각나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아니 또 무슨 불편한 이야기를 드래곤볼을 가지고 하려는 건가, 회의적으로 생각한 영상이었는데요.
담백하고도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담아줘서 정말 진지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이었습니다. 재미도 물론 있었고요.
https://youtu.be/6AEQJZ_BzJk
캐릭터를 다양하게 잘 만드는 일본에서, 입술이 두껍고, 피부가 까만 캐릭터로 디자인의 변화가 거의 없이 흑인을 소모한게 아쉽다.
흑인들은 드래곤볼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프리저편은 특히 모든 흑인들의 '소울 이야기'이다. 사이아인이 전투민족으로서,
프리저에 의해서 끌려와서 모르는 세계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내용이 아니냐. 우리 동년배 꼬마들은 다 열광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야스케의 영화화와 마지막에 이미지로 첨부하신 조각상이 어쩌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군요.
及時雨
19/06/09 22:53
수정 아이콘
사실 야스케 영화화는 라스트 사무라이의 전례가 있다보니 좀 불안하긴 합니다...
일본이나 한국이 흑인을 대하는 자세는 요새 그나마 나아졌지만, 과거 주로 사용하던 토인이라는 용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죠.
이 글에서도 쿠로스케나 검은 도령 책 표지는 스테레오 타입으로서의 흑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네요.
그리고 일단 니콜라 루스는 백인이긴 합니다 크크
http://nicolaroos.com/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036 아이돌 덕질 시작부터 월드투어 관람까지 - 1편 [4] 하카세2486 24/02/26 2486 5
101035 대통령실 "4월 총선 이후 여가부 폐지를 예정대로 추진" [133] 주말12506 24/02/26 12506 0
101034 갤럭시 S22 울트라에서 S23 FE로 넘어왔습니다. [10] 뜨거운눈물5130 24/02/26 5130 5
101032 마지막 설산 등반이 될거 같은 2월 25일 계룡산 [20] 영혼의공원4721 24/02/26 4721 10
101031 해방후 적정 의사 수 논쟁 [10] 경계인5663 24/02/26 5663 0
101030 메가박스.조용히 팝콘 가격 인상 [26] SAS Tony Parker 7033 24/02/26 7033 2
101029 이재명 "의대 정원 증원 적정 규모는 400~500명 선" [84] 홍철13561 24/02/25 13561 0
101028 진상의사 이야기 [1편] [63] 김승남5843 24/02/25 5843 33
101027 필수의료'라서' 후려쳐지는것 [53] 삼성시스템에어컨8796 24/02/25 8796 0
101025 그래서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151] 11cm8251 24/02/25 8251 0
101024 소위 기득권 의사가 느끼는 소감 [102] Goodspeed11292 24/02/25 11292 0
101023 의료소송 폭증하고 있을까? [116] 맥스훼인9198 24/02/25 9198 42
101022 [팝송] 어셔 새 앨범 "COMING HOME" 김치찌개1851 24/02/25 1851 1
101021 아사히 “미-일 반도체 회사 합병시키려 윤 정부가 SK 압박” [53] 빼사스9348 24/02/25 9348 0
101020 의료유인수요는 진짜 존재하는가 (10년간 총의료비를 기준으로) [14] VictoryFood4018 24/02/24 4018 0
101019 의대 증원에 관한 생각입니다. [38] 푸끆이5308 24/02/24 5308 44
101018 팝 유얼 옹동! 비비지의 '매니악' 커버 댄스를 촬영했습니다. [12] 메존일각2747 24/02/24 2747 11
101017 우리는 왜 의사에게 공감하지 못하는가 [331] 멜로13433 24/02/24 13433 53
101016 <파묘> -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풀스포) [54] aDayInTheLife4821 24/02/24 4821 6
101015 단식 전문가가 본 이재명의 단식과 정치력 상승 [135] 대추나무8563 24/02/24 8563 0
101014 “이런 사정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딨냐” [136] lexicon10204 24/02/19 10204 51
101013 '파묘' 후기 스포 별로 없음 [9] Zelazny4131 24/02/24 4131 0
101012 김건희 여사 새로운 선물 몰카 공개 예고 [71] 체크카드12672 24/02/23 1267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