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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4/12 12:00:49
Name Red Key
Subject [일반] 모르는게 약
= 아빠가 피리 만들어 주까.
- 어, 아빠. 내 피리 만들어도.
= 요게 가마 앉아 있그래이. 아빠가 가가 부지깨이 만큼 긴 피리 만들어 오께

아빠는 털털거리는 경운기에 시동을 끄지 않은채 낫을 들고 냇가에 가지가 축축 처진 버드나무로 갔다. 시꺼먼 고무바를 칭칭 묶어 만든 경운기의 운전석에 앉아 아빠의 시꺼먼 등을 바라봤다. 경운기따라 털털 거리며 흔들리는 내 조그만 다리와 손닫지 않는 버드나무 가지를 잡으려 펄쩍 펄쩍 뛰고 있는 아빠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 바라 이거. 기제?

이윽고 돌아온 아빠는 왼팔을 옆으로 피고 거기다 버드나무 가지의 길이를 비교 했다. 6살 내눈에는 그게 집에 군불 때는 아궁이 옆에 놓인, 엄마가 도둑 고양이를 쫓을 때마다 머리 위로 들고 뛰어다니는 녹슨 부지깨이보다 길어 보였다. 우리 아빠 최고다. 최고.

= 근데 잔가지가 많아가, 부지깨이만큼은 안 되겠다. 알았제?

좀 덜 최고.

- 으은지~ 아빠. 길게 만들어 도. 엄마한테 비주고 자랑할끼란 말이야.
= 대신에 아빠가 소풀 다비고 올때 구판장에 가가 까자 사주께. 라면도 사서 점심에 아빠가 라면 끼리 주께.

경운기 소리 보다 큰 나의 볼멘 소리에 아빠는 목소리는 크지만 달콤하고 짠맛이 섞인 부드러운 어조로 어르고 달랬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공감각적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그깟 피리가 뭐라고. 한참 성장기인 내나이에는 eq지수와 청각 발달도 중요하지만 피와 살을 챙기는 것이 이득이다카이.

어른 한뼘 크기 되는 버드나무 피리를 하도 불어 머리가 어지러울 때 즈음 산 아래 목초지에 도착 했다. 아빠는 경운기를 그늘로 댄 뒤 챙겨온 숫돌과 물통을 바닥에 던진 뒤 나를 보며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경운기에서 뛰어 내렸다. 그 모습이 멋져 경운기 의자에서 아빠를 따라 뛰어 내리려다 고무바 사이에 발이 빠져서 자빠지자 인뜨라야, 내 그칸다고 니도 그카나.며 아빠가 나를 잡아 주었다. 그러곤 아빠는 바닥에 털썩 앉아 오른발로 숫돌을 고정한 뒤 낫을 갈기 시작했다. 숫돌에 물을 부어 가며 낫을 갈고 엄지 손가락으로 날을 확인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우리 아빠 최고.

= 여 뱀 나온데이.
- 안다.
= 니가 머 아노. 임마.
- 엄마가 뱀나온다고 장화 신으라 케가 장화 신꼬 왔다.
= 이 더분데 아로 잡는다. 너거 엄마가. 장화 벗고 경운기 위에만 있그라. 그늘 밖에 나오머 덥다. 알았제.

아빠는 준비해온 사료 포대를 경운기 적재함 바닥에 깔아 주었다. 누버가 한숨 자라 임마. 사료 포대 위에 누우니 사료 냄새가 달큰했다.
엄마한테 아빠가 내 잡는다 켓다고 집에 가가 다 일러 조야지.  

= 일나 바라.
- 으어어어
= 일나라꼬. 아들아. 니 이거 함 볼래?

눈썹을 한껏 올린 뱁새눈을 하고 만세 기지개를 켜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손을 내밀었다.

- 몰라, 아빠. 내 더 자고 싶다.
= 눈 뜨고 함 봐라 임마야.

굳은 살이 잔뜩 박힌 아빠의 손에는 뽀얀 알이 3개가 있었다. 하얗고 동그란 것이 참말로 이뻤다.

- 히야, 아빠 이거 먼데.
= 이거 산비둘기 알이다.
- 맞나. 아빠. 진짜 이쁘다.
= 그래. 이쁘제.
- 집에 가가자. 아빠. 아빠 최고. 최고다.

깨질 지도 모르니 보기만 하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장화를 신고 저 끝가지 달려 갔다가 다시 달려와 그 뽀얀 알을 보았다. 볼수록 이쁘고 고왔다. 주체할수 없는 벅찬 감정을 달리기로 풀던 중 넘어져 무릎이 까져 평소 같으면 아빠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억지 눈물을 원산지 속인 중국산 들기름처럼 짜내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들기름을 꾹 참고 절뚝거리며 다시 와 그 이쁜알을 다시 보았다. 이런 보물을 찾아내는 우리 아빠 진짜 최고다. XX면 XX리 XX번지 XX목장 사장님 최곱니데이. 영농후계자, 청년회장, 동네 이장 다 함 해뿌이소 마.

= 가자. 인자 그만 쪼차라.
- 빨리 가자 아빠.
= 그래 가자.
- 이거는 우짜는데, 아빠.
= 니 들고 가다가 깨진다. 아빠가 가가꾸마.
- 실타. 내가 가가서 엄마한테 비줄끼다.
= 깨진다. 아빠가 가갈께

경운기 털털거림에 닷발이나 나온 입술도 털털 거린다. 니 그래 조디 나와 있으머 아빠 까자 안사준데이. 헐. 그카머 안 되지.
혹시나 경운기 소리에 내 말을 못들을까 아빠 귀를 잡고 소리를 질렀다.

- 아빠 까자 사나?
= 그카머.
- 아빠 라면 사나?
= 아빠가 사준다 켓다 에이가.

경운기를 타고 동네 구판장으로 가니 망성댁이 할매가 나를 반겼다.

> 오늘은 꼬치 안비네. 니 꼬치 우옌노. 집에 띠 놓고 왔나?
- 안띠놓고 왔니더.
> 띠놓고 왔는지 안띠놓고 왔는지 할매가 우예 아노. 함 비도.

고무줄 바지를 들어 나의 건재함을 할매에게 자랑했다. 할매는 박수를 치면서 깔깔 거렸다.

= 돈은 아 엄마 오머 주라 큰니데이.
> 그케라. 잘 가래이.

집에 오자마자 까자를 개봉해서 게걸스럽게 먹었다. 까자 봉다리를 들고 마당을 쫓아다니자 빡조(혼종 개, 6세)가 용불용설 이론이 맞는지 유독 긴혀를 내두르며 나에게 친한척을 했다. 그렇게 까자 몇조각으로 빡조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놀았다. 과자는 이윽고 모두 나와 지입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채린 영악한 도꾸는 덤비는 나를 슬슬 피하였고, 지를 종을 뛰어넘은 스파링 상대로 인식한 동갑네기 인간을 피해 마루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놀이 상대를 잃어버린 나는 갑자기 뽀안 알들이 보고 싶어졌다. 아빠 하면서 부엌으로 달려가니 아빠는 곤로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 아빠, 알...
= 다 돼 간다. 방에 드가 있그라.

내 말을 자르고 아빠는 뒤돌아 계속해 라면을 끓였다. 나를 위해 라면을 끓여주는 아빠. 우리 아빠 최고. 최고.
방에 들어가 알 생각을 했다. 어미새가 따뜻하게 품어주면 알에서 새새끼가 나온다. 엄마가 보여준 그림책을 보면 그랬다. 엄마에게 참말이냐 물으니 엄마가 참말이라고 했다. 나는 새새끼가 너무 좋았다. 국민학교 다니는 옆집 갑석이 형님이 잡았다면서 보여주던 새새끼가 너무 이뻤는데 갑석이 형님은 나에게 새새끼를 못만지게 했다. 한번만 만져보자고 해도 못만지게 했다. 인자 필요 엄써. 나는 새새끼 세마리 만질끼다.
갑석이 형님은 비주지도 안할끼다. 명준이하고 용석이는 친구니까 만치게 해줘야지.

= 라면 묵자.
- 아빠, 라면 진짜 좋다. 아빠 최고.
= 맛있나.
- 맛있다. 진짜 미쳐뿌겠다.

아빠는 껄껄 웃으며 어디서 그런말을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엄마 앞에서는 하지말라고 했다.

= 아나, 자 계란도 묵어라.

고맙심니데이. 김사장님. 계랄 참 달고 꼬시니더

- 파는 빼도 아빠. 내 파 실타. 근데 아빠. 오늘부터 방에 불 좀 떼도.
= 더버 죽는데 불은 와 떼노.
- 새새끼는 만들라고. 엄마가 그림책 비줬는데 따시게 해줘야 새새끼 만들어 진단다.
= 맞나. 일단 라면 묵어라.
- 내 라면 다 묵으머 새알 줄끼제.
= 라면 묵고.
- 근데 아빠, 새새끼 만들면 이쁘겠다. 맞제.
= 마, 라면 묵으라고.

아빠가 갑자기 야단을 친다. 가끔 내가 밥먹을 때 너무 시끄러우면 야단을 친 적이 있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수준이고 그냥 부자간의 대화 정도이다. 라면을 다 먹자 아빠는 밥을 말아주었다. 배불러서 안묵는다 해도 묵으라고 했다. 아빠가 아랫입술을 깨물 땐 말을 듣는게 좋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팁이다.

라면을 다 먹고 상을 물린 뒤 마당에서 평상에 앉아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는 아빠한테 가서 새알을 달라고 했다. 내 보물을 내놓으시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인이여. 아빠는 담배를 피며 알겠다고 했다.

-지금 도. 아빠
=소 풀 좀 내라 놓고 줄께.
-으힝~ 지금 좀 주지. 알았다 아빠.

아빠가 소풀을 다 내리기를 문턱을 베개 삼아 배고 지켜봤다. 그러곤 잠이 들었다.
엄마가 와서 나를 안고 이불위에 눕혔다. 엄마의 의도와 달리 잠이 깨버렸다.

- 엄마, 아빠는?
* 아빠? 마당에 있는데.

엄마, 나도 엄마 할끼다. 이말을 들고 아리송해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아빠한테 갔다. 내 경운기도 태아주고, 새알도 찾아주고, 라면도 끼리준 내한테 최고로 멋진 아빠.

- 아빠, 내 새알 도.
= 아나 자.

우리 멋진 아빠가 드디어 새알 줬다. 근데. 알이 달랐다. 알인건 확실하다. 근데 색이 다르다. 크기도 좀 더 커진거 같다.

- 아빠. 이거 맞나.
= 그거 맞다.
- 에인거 같은데.
= 그거 맞다.
- 에이잖아. 아빠 와 거짓말 하는데. 엉엉.
= 그거 맞다. 임마.
- 에이잖아. 이거는 엄마가 후라이 해주는 기잖아. 아빠가 새새끼 키울라고 그라제. 엉엉. 빨리도 도, 내 새알. 내가 새새끼 키울꺼란 말이야.
= .........

아빠와 옥신각신 하는 나를 보며 엄마가 한마디 거들었다.

* 뭔데, 아꺼 빨리 줘라. 뭐하는데.
= 그게 에이고..그게 있잖아.

엉엉 우는 나에게 등을 돌린채 아빠가 엄마에게 소근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끝난 뒤 엄마는 아빠의 맨살의 등을 세네번 찰지게 때렸다. 그리고 엄마는 우는 나를 꼭 안아주며 아빠가 또 주워 준단다 울지마라. 하며 나를 달랬다.

아빠 진짜 못땟다. 아빠 최고 에이다. 똥깨다, 똥깨. 엉엉 와 내 알 안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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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12 13:03
수정 아이콘
감성 돋네요.
경상도 시골에 생활한 사람은 더 푹 젖어서 보겠네요.
무리뉴
17/04/12 17:08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빠는 등짝스매싱을 당한건가요. 애 키우는 입장에서 경험적으로보면 아빠가 안전히 옮긴다 그러고 깨먹은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라면에 넣어서 끓여먹은건 아니겠죠?
17/04/12 17:33
수정 아이콘
어린 새 알이니까, 다시 둥지에 몰래 갖다 놨겠죠.
무리뉴
17/04/12 17:49
수정 아이콘
그런데 왜 엄마가 아빠를... 제 감성이 너무 메말랐나봅니다. 흐흐
MirrorShield
17/04/12 17:57
수정 아이콘
저도 처음엔 라면에 넣어먹은줄 알았는데

자기가 들고오다가 깨먹은게 아닐까요
17/04/12 20:54
수정 아이콘
동심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모르는게 약이죠.
나중에 알게된 진실은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ㅠㅠ
무리뉴
17/04/12 20:56
수정 아이콘
궁금해서 못견디겠습니다. ㅡㅜ
둥실둥실두둥실
17/04/12 17:53
수정 아이콘
마음이 따땃~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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