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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3/01 23:06:59
Name Neanderthal
Subject [일반] 너에게 엄마 젖을 주마...
우리 엄마 젖에는 200종이 넘는 HMOs(human milk oligosaccharides)라는 복합당들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HMOs들은 아기들이 먹어도 소화를 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학자들은 궁금했습니다. 왜 아기들이 소화도 못시킬 성분이 엄마 젖에 들어있는 걸까? 그것도 락토오스, 지방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분으로 말이죠. 저 HMOs 대신 당장 아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성분들이 좀 더 들어있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그들은 궁금했습니다.


milk_piecharts.png
엄마 젖에는 8%, 소젖에는 0.1%도 없는 성분...


좀 더 연구를 해보니 이 HMOs들은 아기들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성분들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바로 아기들의 대장 안에 있는 비피더스균들이 이 HMOs의 주요 고객이었던 겁니다. 엄마 젖에 들어있는 HMOs들이 아기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들은 위와 소장을 거침없이 통과해서 대장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대장에 있는 비피더스균들이 이들을 자양분 삼아 번성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대충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추가적인 연구를 더 해봤더니 놀랍게도 아무 비피더스균들이나 다 이 HMOs를 먹고 쑥쑥 자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 HMOs를 특히 잘 먹어치우는 균종은 Bifidobacterium longum infantis라는 특정한 균종이었습니다. 일단 HMOs가 공급되면 이 B. infantis는 경쟁에서 다른 비피더스균들을 압도하면서 HMOs를 흡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B. infantis와 사촌 격인 B. longum longum은 HMOs가 공급되더라도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B. lactis라는 균종은 아예 HMOs의 공급 환경에서는 전혀 자라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엄마 젖 안의 HMOs들은 단 한 종의 비피더스균인 Bifidobacterium longum infantis만을 번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성분들이었습니다.


bifidobacterium-infantis.jpg
HMOs를 내 품안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균종만을 특히 사랑하시어 이렇게 특별한 음식까지 제공해가면서 키우게 된 것일까요? B. infantis의 사기극에 놀아난 것일까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역시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었습니다.

B. infantis가 HMOs를 소화시키면 short-chain fatty acids(SCFAs)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 SCFAs가 유아들의 장 세포들로 하여금 세포부착성 단백질을 생산하게 해서 장 세포들 사이의 벌어진 틈을 채우도록 하고 또 장 세포들이 면역체계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분자 물질들을 만들어내도록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즉, B. infantis라는 비피더스균종이 아이가 막 태어나고 난 후 면역체계를 제대로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엄마 젖에서 따로 성분들을 만들어 내어 이들에게 공급할 차고도 넘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기브 앤 테이크"...인생사 최고의 진리 아닌가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Ed Yong의 [I contain multitudes]라는 책을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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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Mk2
17/03/01 23:37
수정 아이콘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추천 하였습니다~
하와이
17/03/02 00:06
수정 아이콘
장누수증후군 이란게 있죠. 장에 스트레스 항생제 등등의 이유로 틈이 벌어지면서 그곳으로 유해균이 들어와서 면역력을 약화시킨다는건데..
아토피의 원인 중 하나로 장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암튼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17/03/02 00:11
수정 아이콘
아.. 우유를 먹으면 저 메커니즘이 생성이 안돼서 장이 안좋은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결과가 ..(아기때의 영향으로)

나오는 걸까요??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17/03/02 00:13
수정 아이콘
둘째까지는 모유수유 했는데 집사람 건강으로 셋째는 모유수유를 한달밖에 못해서 늘 마음이 쓰입니다. 물론 집사람 건강이 더 중요하지만요.
Neanderthal
17/03/02 08:04
수정 아이콘
필수적인 거 까지는 아니고 도움이 된다 정도겠지요...분유 먹고도 건강하게 쑥쑥 크는 애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17/03/02 00:29
수정 아이콘
우와.....!!!!
조지영
17/03/02 00:34
수정 아이콘
장내미생물에 대한 연구의 대중과학서로 '10%인간' 번역서가 있어서 최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홍승식
17/03/02 00:44
수정 아이콘
역시 사람은 사람젖을 먹어야죠.
전에 티메레스님이 모유나누기 운동을 하신다는 걸 들었는데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17/03/02 00:45
수정 아이콘
인체라는건 참 재미있네요. 그런 깊은 뜻이!!!
i_terran
17/03/02 02:16
수정 아이콘
사실 인간은 적당한 육체노동을 하고 살아야하는 것도 맞아요. 그래서 AI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면 인간을 원시인처럼 살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마스터충달
17/03/02 03:12
수정 아이콘
아니 그럼 모유는 기생균을 염두에 두고 진화한 거네요. 이거야말로 최초의 가축?!
희원토끼
17/03/02 03:16
수정 아이콘
흠...초반에만 필요한 성분일까요..보통 6개월지남 영양가 없다vs24개월까지권장수유로 말 많은데..
파핀폐인
17/03/02 04:1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탐나는도다
17/03/02 04:14
수정 아이콘
엄마젖이 안나와 못먹고 자랐는데
왠지 손해본 기분입니다!!!! 엉엉
Neanderthal
17/03/02 08:04
수정 아이콘
제대로 컸으니 인정 불가!!!
Camellia.S
17/03/02 08:06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모유를 안 먹고 분유로만 자라난 아이들은 결국 어떻게 되는걸까요?...
Neanderthal
17/03/02 08:08
수정 아이콘
생존을 좌우할 정도의 치명적 요인은 아니라는 거 아닐까요?...도움이 좀 된다 정도...--;;
Camellia.S
17/03/02 08:13
수정 아이콘
모유로만 키운 아이 vs 모유없이 분유로만 키운 아이 들의 향후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장기적으로 추적 연구한 논문은 없을지 궁금하네요. 일반 대학교 수준에서는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미 NIH 에서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17/03/02 09:36
수정 아이콘
그런 연구가 학술적으로는 가치가 있는데, 현재 알려진 바로는 일단 초유가 상당히 유용하기에 그걸 retrograde 한 방법으로 연구한다면 모를까 RCT를 돌리기는 윤리적으로 어려울거에요. 더군다나 그런 연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분유가 모유보다 좋아서 앞으로는 분유만 먹여야 된다는 결론이(그럴 확률도 낮은데) 아닌 이상 현재 방식에서 바뀔게 별로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그런 연구에 돈 쓸 이유가 없을거에요. 궁금하긴 한데 돈 안되는 연구 같아서 아쉬워요.
YORDLE ONE
17/03/02 09:03
수정 아이콘
굉장히 재밌네요. 모유수유로 자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사이에선 후천적으로 미미한 차이가 생겨나는걸까요?
Neanderthal
17/03/02 09:30
수정 아이콘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잔병치레를 좀 더 하고 말고 하는 차이 아닐까요?...
얼핏 검색해 보니 모유수유가 생리적으로 아기에게 좀 더 좋은 방법이다 라는 논문이 하나 보이긴 합니다만...--;;
17/03/02 10:12
수정 아이콘
아하 그래서 모유를 먹으면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것이 이것 때문인가 보군요. 정말로 좋은 지식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17/03/02 11:53
수정 아이콘
박테리아를 키우기 위한 성분이 나오다니..
신기하네요.

분유에도 넣으면 되는 걸까요?
Neanderthal
17/03/02 11:55
수정 아이콘
분유를 최대한 모유에 가깝게 만드는 노력들이 있어왔던 것으로 아는데 어느 정도까지 도달했는 지 저도 궁금하네요...
미카엘
17/03/02 12:0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어머니ㅜㅜ
17/03/02 16:32
수정 아이콘
인체와 우주는 참 알면 알수록 넘나 경이로운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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