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수 제한 때문에 이어서 3화만 복붙해서 올립니다. 내일 중에 4화를 마저 올리겠습니다.
같은 거 보면 부럽기도 해요. 하지만 제 생각에 유럽의 길이 가지 않은 길이라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오히려 유럽은 이미 걸어온 길을 계속 걸어온 것에 가깝고, 미국과 영국,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유럽인들은 정작 가지 않은 길을, 일찌감치 걸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이렇게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IMF 금융위기 이후입니다. 그 이전엔? 당연히 다 정규직이었단 말이죠. 저희 집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1980년대 저희 어머니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괴산에서 홀로 청주로 오게 됩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가고는 싶었으나 갈 수 없었던 어머니에게 청주에 살고 있는 중학교 때 교사가 식모를 해보면서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을 제의해온 것이죠. 그렇게 식모 일을 하긴 했으나 그 교사가 워낙 이상한 사람이어서, 결국 집을 나오게 되고 친구 집을 전전하다 마침내는 홀로 살면서 롯데 햄 공장에서 일 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대셨습니다. 이 롯데 햄공장에서 저희 어머니는 정규직으로 근무했습니다. 17살, 그것도 야간에는 학교를 가야하는 고등학생이 정규직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게 그냥 너무 당연하던 시기의 일입니다. 지금은 상상도 안 가는 일이죠. 실제로 한국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IMF 이전에는 크게 높은 수준으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는 레이건, 결정적으로 클린턴 이전의 미국도 마찬가지였으며 기실 어느 선진 사회나 마찬가지였죠. 다시 말해 이 당시는 서유럽이든 영국이든(다들 아시다시피 영국은 이제 유럽 아님) 일본이든 미국이든 사실 유사한 점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유럽의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과 고용안정성은 이미 존재하던 사회협약이 큰 틀에서 변하지 않고 유지된 것에 가깝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럽이 3차 산업혁명에 대응했던 방식이었습니다. 20세기에 이미 공고하게 자리 잡았던 기존 사회협약을 근본적으로 흔들지 않은 상태에서, 적당히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기. 유럽은 2차 산업혁명 동안 걸어온 길을 대체로 큰 변화 없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걷는 길은 때문이 이미 가 본 길이라는 겁니다.
2. 도쿄가 걸어온 길(그리고 파리와 프랑크푸르트가 걸어온 길)
가끔씩만 언급되었던 또 다른 선진사회가 하나 있었죠. 바로 일본입니다. 물론 열도 토인들 하는 거 보면 선진이라는 말 붙여주고 싶진 않은데,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선진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니까요. 일본의 평등주의 전략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조직노동이 사회적 동맹을 결성해서 평등주의 정치인들을 밀어줘 정치권에서 권력경쟁을 벌이는 구미 사회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일본 열도는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서 세운 “55년 체제” 이래로 1993년까지, 즉 3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집권정당인 자민당의 보수적 헤게모니가 유지되던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민당 주도 하의 일본은 어떤 사회에서도 볼 수 없는 사회적 통합력을 보여주면서 그들만의 평등주의를 실현해나갔습니다. 일본 얘기를 하는 이유는 도쿄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3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매우 극단적인 방식 중 하나였기에 언급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1940년 전시 체제를 설계하면서 시작되었고, 전후 맥아더와 SCAP(연합군최고사령부)의 주도 하에 미국이 던져준 질서와 조응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노동 면에서, 찰스 케이데스와 같은 GHQ 내 뉴딜주의자들의 노력으로 일본은 전후 조직노동이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는 일본 국내 평등주의자들의 강력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극도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는 평등주의자들의 좌파 운동이 뿌리를 박기에는 척박했습니다. 전공투와 같은 극단적 과격파를 제외하자면 사실상 평등주의자들이 택한 현실적인 루트는 일본사회당의 길이었습니다. 자민당 중심 질서에서 노조의 지원을 받아가며 적당한 견제 세력으로 기능하겠다는 발상이었죠. 여기서 1.5당 체제라는 말이 유래합니다. 실질적으로 사회당의 힘은 자민당에 비하면 반쪽 밖에 안 되었다는 겁니다. 평등주의 정치인들이 힘을 못 썼으나 일본은 2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적응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게이레츠(계열) 시스템은 기업집단이 갖는 규모의 경제를 세계 어느 곳보다 더 잘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였습니다. 2차 산업혁명의 문을 열어젖힌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처음에 박살낸 것은 사실 3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아니라 도요타와 혼다, 닛산과 스즈키였죠. 마쓰시타, 니콘, 가와사키, 히타치, 미쓰비시 등 무시무시한 일본 게이레츠들의 이름은 미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1982년에 나온 저주 받은 걸작,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인 2019년의 LA에는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 같은 일본 여인이 건물 하나를 가득 채운 스크린에서 활짝 웃고 있는데, 2차 산업혁명 시대 말기 미국인들의 심리를 잘 보여줍니다.
2차 산업혁명에 잘 적응했다는 말은 일본의 산업도 대공장 시스템으로 조직이 되었다는 것이고,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강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평등주의 정치인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구미 사회에 비해 약했죠. 일본 노동자들은 그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을 법도 했습니다만 사실 선진사회 어느 곳보다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왜냐면 자민당과 연계되어 있는 관료집단(주로 통산성과 대장성), 재계 인사들이 형성한 일본판 철의 삼각동맹이 노동자 집단을 효과적으로 포섭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코포라티즘입니다. 기업은 연공서열제에 기초한 승진체계와 높은 수준의 사내 복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직업안정성을 제공해주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포섭해갔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구태여 경영진과 싸워서 이득을 무리하게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싸게싸게 좋게 가자는 거였죠. 그리하여 일본의 봄철 임금 인상 투쟁인 “춘투”는 사실상 노동계의 마쯔리(축제)로 전락합니다.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파업하는 척 하고 적당히 임금 올려주는 식의 합의를 본 것입니다. 닛산 자동차는 파업계의 레전드를 쓰게 되는데요, 이름만 들어도 정신이 멍해지는 ‘점심시간 파업’입니다. 닛산의 점심시간 파업을 기점으로 일본 노동계는 극도로 친기업적으로 흘러갑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평등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부류들은 대체로 사회문화적인 부분에서도 자유 지향적인 경우가 많은데, 일본 좌파가 이런 식으로 기반을 상실해버린 것은 일본 정치의 극도의 보수화로 이어졌습니다. 야마토 민족 일억일심 총의가 모인 사회는 끝간 데 없이 무한히 성장만 하는 경제를 기반으로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자민당 지도부들에게는 매우 흡족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숨이 막혔겠죠. 이 시대의 끝에 나온 것이 20세기 영상예술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인 오토모 가츠히로의 입니다.
만화에서는 전후 일본이 걸어온 앞날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1982년(애니메이션에서는 1988년)에 아키라의 대폭발 이후 재건된 네오도쿄에서는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이후 재건된 일본 사회가 오버랩됩니다. 공교롭게도 진짜로 개최되게 생긴 2020년 올림픽은 서구 사회에 전후 재건의 성과를 당당히 보여주던 1964년 올림픽을 생각나게 하죠. 네오도쿄의 거대한 마천루들은 80년대 일본에서 막 건설되고 있던 초고층 건물들의 미래가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본이 걸어갈 불우한 미래들도 보입니다. 미국인들이 생각한 2019년의 LA에서는 쇠락해가는 미국을 지배할 일본의 저력을 볼 수 있지만 정작 일본인들이 생각한 2019년의 네오도쿄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AKIRA가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죠). 이 초거대도시에는 무능한 최고간부회의로 대변되는 부패한 과두제, 초자연적 신비주의에 기대는 시민들, 역시 어리숙하고 성과를 못 내는 저항세력들이 있을 뿐입니다. 각각 부패 스캔들로 80년대를 내내 보낸 자민당, 곧이어 적군파 이후 최악의 테러를 일으킬 옴진리교 등 사이비 종교들, 그리고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좌익소아병 환자들, 즉 전공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는 쇠락의 증거 중 하나는 1980년대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로 디트로이트의 먼지 쌓인 미시간 중앙역과 자동차 공장들처럼 녹이 잔뜩 슨 거대한 중공업 단지입니다. 실제 80년대 일본의 경제, 특히 제조업은 “넘버 원 재팬”이라는 말을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들을 정도로 잘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 재밌는 점은 만화의 내용들이 실제 역사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실제로 개최되는 것도 그렇지만, 애니메이션 AKIRA는 혼란한 네오도쿄가 다시 대폭발을 맞이하게 되어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나온 지 1년 만에 일본 경제의 불패신화 또한 완전히 박살났죠. 버블이 끝났습니다. 경제는 기약 없는 침체에 들어갑니다.
20세기 영상예술의 기념비적 걸작이라고 할만한 오토모 가츠히로의 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 바이크 추격 씬입니다. 혼돈과 무질서, 방황으로 가득찬 AKIRA의 배경 네오도쿄는 전후 일본 사회가 걸어온 모습의 종착지였죠.
그리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2차 산업혁명만으로는 경제를 성장시킬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일본한테 쳐발릴 줄 알았던 미국은 다시 금융과 IT로 혁신을 일으킵니다. 싸구려 제조업들은 전부 중국에 하청 맡겼습니다. 일단 러스트 벨트는 망했지만 어쨌든 미국은 끝없이 쇄신 중이었습니다. 반면 서구인들에게 첨단기술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일본은 이러한 혁신 분야에서 예상 외로 심각하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도쿄 오다이바에 소재한, 이름도 찬란한 과학미래관에 가서 로봇 아시모를 본 기억이 납니다. 재밌는 경험이었지만, 사실 아시모는 미국 최고 로보틱스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들어낸 아틀라스에 비하면 매우 조악합니다. 또, 지금 일본에서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든 최첨단 기술 이런 걸 느낄 수 있나요? 구글, 페이팔, 이베이, 아마존은 이제 선진사회에서는 그저 생활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여기에 일본 기업이 낀 자리는 없습니다. 게임만 봐도 그래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서 다들 JRPG를 하고 그랬습니다. 저만 해도 파랜드 택틱스 깨겠다고 컴퓨터에 줄창 앉아있곤 그랬습니다. 이제 누가 JRPG 하나요? 일본에서 오버워치 같은 세계를 휩쓴 게임이 나오나요? 분명히 말하자면 미국에 비해서 일본은 혁신경제에 적응 못 했고 그게 미국에 맞먹던 제2의 경제대국이 중국에도 밀리게 된 현 상황입니다.
물론 이는 미국이 너무 잘 적응한 것이기도 하죠. 미국이 이렇게 혁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에서 비생산적인 부분은 그냥 가차 없이 내팽겨 쳐버리고 바로 생산성 있는 부분으로 갈아타는 그 역동성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2차 산업혁명을 헌신짝 내버리듯 버리고 3차 산업혁명으로 갈아탈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일본은 모든 사회구조가 2차 산업혁명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슘페터는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가져온다고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일본이 3차 산업혁명으로 도약하려면 기존의 사회구조를 우선 파괴할 필요부터 있었습니다. 레이건과 대처는, 솔직히 전 이 정치인들을 극혐하기는 하지만 이런 파괴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친 뒤 미국은 클린턴 시대의 창조적 혁신으로, 닷컴 시대로 나아갔습니다. 일본의 극도로 보수적인 정치환경은 파괴와 도약을 위한 새로운 사회협약을 창출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자민당 계파들이 권력 노나먹기 하고 선출직도 아닌 관료들이 여전히 정치인들 위에 있는 나라라 기득권 내의 이례적인 인물이 반짝 추진하고 그치곤 했죠. 그 이례적인 인물 중 하나가 바로 고이즈미 준이치로였습니다. 평등주의 사회협약을 깨고자 노동유연화를 단행했고 우정국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기형적 평등주의는 보수주의 세력의 근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기존 사회질서에 공고히 융합되었다고 봐야할 겁니다. 고이즈미의 개혁은 자민당 내부에서, 그리고 관료집단 사이에서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죠. 고이즈미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고 바로 일본의 변화는 추진력을 상실했습니다. 대안세력들은? 애초에 평등주의 세력은 사실 이런 사회협약을 주도적으로 깰 주체가 될 수도 없었지만 사회당은 90년대에 이미 무리하게 정권획득을 위해 연정하다가 0.5당의 지위마저도 잃게 되고 자멸합니다. 그 뒤 자민당 내에서 민주당이 나왔지만 이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정당이었죠. 자민당과 구분하기 힘들거나, 너무 아마추어스럽거나, 기존의 평등주의 레토릭만 그대로 쓰거나. 일본 사회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엔 많이 허약한 정당이었죠.
자, 지금 일본은 어떤가요? 아베는 엔을 끌어내리고 수출경쟁력을 올려서 일본 경제에 활력을 넣어, 1억총활약사회(크크크)를 만들겠다고 용쓰고 있습니다만, 전혀 효과가 없는 상태입니다. 사회는 생기를 잃어가고 있고 정치는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심지어 미국이 주도하는 혁신에서도 도태되어서 잘라파고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죠. 일본은 3차 산업혁명에 대처한 두 극단 중 하나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한 극단은 당연히 미국입니다. 미국은 3차 산업혁명의 도전에 자신들을 파괴하면서까지(트럼프를 소환해가면서까지) 응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2차 산업혁명기를 기준으로 만들어낸 사회구조의 큰 틀은 전혀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했고, 정체되어갔습니다. 일본의 이런 경직성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여행 가서 공사장 근처에 한 번 가보세요.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나이 든 안전요원들이 여전히 고용되어서 공사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2차 산업혁명 시기 평등주의가 보장해준 완전고용, 평생고용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3차 산업혁명에 대처해 가지 않은 길을 걸은 미국, 영국과는 달리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걸어온 일본 사회의 발자국입니다.
한편 유럽은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들도 나름 3차 산업혁명에 그래도 대응해나갔습니다. 유럽연합이 추진한 역내 경제 통합은 사실상 아웃소싱을 위한 황금같은 기회였죠. 동유럽으로 수많은 공장이 이전했습니다. 간간히 한국에도 알려진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보면 그렇고, 프랑스에서 올랑드가 진행하고 있는 노동법 개혁안도 평등주의의 사회협약을 이제야 해체하고 있는 과정인 셈이죠. 또,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자동화된 제조업 혁신의 최선두 국가 또한 독일입니다. 그러나 역시 독일과 프랑스의 혁신 정도는 미국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참고를 위해 말해두자면 전 여기서 미국식이나 유럽식이 무조건 옳다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식은 무조건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어쨌든 미국과 영국은 앞만 보고 달린 대가로 도널드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맞이했으니,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말은 이번에도 증명된 셈입니다.
하여튼 이런 대응의 결과물이 어떤지 보도록 할까요. 1인당 GDP는 한 국가의 경제적 수준 고도화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지표죠. 스카우터로 전투력 측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막바지인 1980년을 봅시다. 프랑스 12,700$, 미국 12,600$, 독일 12,100$, 영국10,000$, 일본 9,310$입니다. 이 때는 이미 닉슨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 이후니 변동환율제인 것을 감안할 때 환율 상의 미세한 차이를 조정하면 사실상 미국, 프랑스, 독일은 같은 라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2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적응 못한 영국은 살짝 아래고, 일본은 사실상 후발국이라 무섭게 성장하긴 했어도 아직은 최고 선진국 대열까지는 아닙니다(물론 90년대에 환율뽕으로 미국이 3만 달러에서 놀 때 4만 달러를 찍던 기염을 토하지만 이건 내실이 있는 건 아니죠). 2015년 지금은? 미국은 55,800$입니다. 우린 선진국들 하면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이탈리아 등을 생각하니 다 비슷한 라인에서 놀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차례로 영국 43,700$, 독일 41,200$, 프랑스 36,200$, 일본 32,500$입니다. 물론 유로화가 2011년부터 완전 죽쑤고 있으니 그거 감안을 해야하긴 하겠죠. 그리고 2016년에 파운드가 유로화 뺨따구 후려갈길 정도로 개작살 났을테니 아마 영국은 더 추락했을 겁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인한 강제적 화폐가치 평가절하로 많이 낮게 나타난 거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다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55,800$와 이들 경제가 큰 폭으로 차이난다는 것은 역시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미국과 같은 화끈한 변화 없이는 미국과 같은 혁신 경제를 구축할 수 없고, 이는 경제적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까 일본에서 아마존, 구글, 이베이, 페이팔을 찾아볼 수 있는가 얘기했죠?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에 그런 혁신 기업이 있습니까? 구글이 세금내기 싫다고 아일랜드로 도망쳐도 구글이 아일랜드 기업이 되는 게 아닙니다. 노키아가 있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삼성한테도 쳐발리는 게 노키아입니다. 현실은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입니다. 마이클 무어는 이탈리아의 휴가를 낭만적으로 촬영했을지는 몰라도 이탈리아 은행위기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까진 낭만적으로 그릴 순 없겠죠.
3. 볼스카야 인더스트리로 (못) 떠납니다: 모스크바의 길
갓흥겜 오버워치는 2060년 세계 각국을 배경으로 게임이 진행되는데,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흥미롭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맵이 있습니다. 바스티온이 회전초밥을... 아 이것 때문에 멋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분위기가 정말 끝내줘서요. 미래적 분위기의 거대한 마천루들이 들어서있고 남자의 로망을 두들기는 것 같은 전투 병기들이 웅장하게 서있는 곳. 바로 볼스카야 인더스트리입니다. 볼스카야 인더스트리는 설정 상 옴닉(로봇)들의 반란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로봇 제작 군수공장으로, 그 배경에는 2060년의 모스크바가 서있습니다. 미래의 모스크바는 진짜로 저 정도로 간지날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실로 멋진 맵이지요.
왜 뜬금없이 러시아 얘기를 하냐면, 2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주역이 바로 러시아이기 때문입니다. 스탈린은 천연자원, 노동력, 기술, 자본 등을 공업 중심지에 집적시켜 놓는 콤비나트 체제로 2차 산업혁명에 대응했습니다. 항구가 없는 거대한 대륙국가로서 러시아의 상황에 적합한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농업국가였던 소련은 1차 산업혁명을 건너뛰고 2차 산업혁명에 바로 진입합니다. 마그니토고르스크의 석탄 고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철강들, 스베르들롭스크의 우랄마쉬 기계공장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중기계들, 모스크바의 최첨단 과학연구소는 이러한 기술들을 인민에게 거의 무상으로 공급할 R&D를 진행하고 있었죠. 2차 산업혁명의 물적 유산인 대공장 체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정신적 유산인 평등주의도 역시 극한으로 밀어붙인 나라, 소련은 나라 자체가 2차 산업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매우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2차 산업혁명을 낳은 국가인 독일을 밟아버릴 정도였다면 이 나라가 얼마나 그 변화의 물결에 잘 적응했는지 설명이 된다고 봅니다. 1960년대 소련은 인간을 우주에 보내고 선진사회 중에서 소득격차는 전세계 최하위,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는 꿈과 희망의 나라였습니다.실제 당시 쓰여진 서구권의 경제지리 교과서 등에서는 소련 계획경제의 우수성마저도 쓰여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노농적기가 휘날리는 최첨단 중공업 도시로 도약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고, 실제 소련 지도부도 그런 꿈을 꿨을 겁니다. 과학과 우주, 인간이성에 대한 그들의 열렬한 사랑을 보건대 분명히 그랬을 겁니다. 즉, 소련은 결국 볼스카야 인더스트리로 떠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볼스카야 인더스트리로 못 떠났습니다. 3차 산업혁명의 초입에 등장한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의 장기예프는 붉은 소련 국기를 달고 있습니다만은 지금 2016년 볼스카야 인더스트리에는 노농적기가 아니라 러시아 연방의 국기가 휘날립니다. 소련의 도시들은 볼스카야 인더스트리와 같은(혹은 리장타워와 같은) 첨단 도시로 도약하기는커녕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바로 디트로이트였습니다. 1991년 뚜껑을 열어보니 소련은 나라 전체가 러스트 벨트였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도 없었고 범죄와 알콜중독이 들끓어 악화된 치안은 수많은 도시전설과 실제 피해사례들을 쏟아냈죠. 어쩌다가 2차 산업혁명에 충실히 적응한 나라가 이렇게 된 걸까요?
소련은 3차 산업혁명에 적응하기는커녕, 그 물결에 동참하는 것마저 거부했습니다. 서유럽이나 일본은 어쨌든 국제경제 내에서 경쟁압력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만큼 자국 질서의 파괴를 선택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적응을 하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그 일본도 도요타 공장의 기계화 수준을 보자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전후 국제질서의 설계자이긴 했어도 거기에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3분의 1만을 들고 자력갱생에 들어갔고, 경쟁압력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기 보다는 그저 하던 대로 했습니다. 소련인들은 스탈린이 만들어준 길,방향을 터준 길로만 다녔죠. 사실 덕분에 나라는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소련은 자원을 막대하게 사용하고 노동력도 극히 많이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산업구조를 유지하면서 인민을 먹여살렸죠. 모든 인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제공하는 주택, 교육, 의료, 그리고 결정적으로 직장에서 인생의 모든 욕구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그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생산성 혁신이 없는 상태에서 인구만 늘자 국민에게 1960년대 수준의 복지를 계속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브레즈네프는 석유를 팔아서 재원을 충당하기로 합니다. 그런대로 소련의 경제는 돌아가긴 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이 진정으로 위대한 인물인 이유는 그가 과거를 돌아보고 그에 기초해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정확하게 세운 것에 있습니다. 그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한 인물이었죠. 1929년 그가 권력을 최종적으로 손에 넣었을 때는 2차 산업혁명이 물이 올라있던 때였습니다. 미국과 독일이 무슨 업적을 이룩해냈는지 똑똑히 알 수 있던 시대였죠. 스탈린은 그런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보고 나라를 바꿔낸 것입니다(물론 결코 잊어선 안 될 막대한 희생도 있었죠). 그러나 브레즈네프 지도부는 미래를 볼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없었기에 소련은 3차 산업혁명에 진입을 거부합니다. 한편 서방은 3차 산업혁명을 통해서 세계의 제조업은 이제 더 이상 요소투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소련은 정보혁명이 초래한 엄청난 기회도 놓쳤고, 그 결과로 CNC도 독자개발 못해서 제조업 경쟁력은 계속 뒤쳐졌습니다. 국민차 라다와 지굴리는 독일이나 일본의 그것에 비하면 진짜 한숨 나오는 퀄리티인데(보면 압니다 진짜), 그마저도 이탈리아와의 합작품이었습니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국방비에 재원을 낭비하지 않고 그냥 국내산업을 키웠더라면? 어쩌면 제조업에서 혁신도 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설령 혁신이 없었다 하더라도 소련 정도 되는 규모의 국가에서 적당히 후달리는 차 타고 다니고 적당히 후줄근한 집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교육, 보건, 고용이 확실히 보장되면 나쁘지 않은 삶 아닐까? 하지만 그런 건 애석하게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첫째, 소련의 경제구조는 스탈린의 대숙청을 거쳤어도 관련 당조직들의 복지부동성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통산성이 보여준 행태보다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하진 않았을 겁니다. 권력경쟁을 통해 견제 받지 못하는 권력은 막대한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으며 체제 속에서 이익을 편취합니다. 둘째, 소련의 인구구조가 그러한 변화를 유지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련은 산업화를 일정 궤도 위에 올리면서 인구구조가 안정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즉, 생산가능인구는 더 이상 급격하게 늘지 않고 완만한 추세선을 그리고 있는 반면 부양해야할 인구는 엄청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진입하는 생산가능인구의 상당수는 교육 수준이 낮아 생산성이 떨어지는 중앙아시아 농촌에서 들어왔습니다. 혁신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2천 200만 제곱킬로미터에 산재해 있는 3억명의 엄청난 인구에게 사회주의의 풍요를 제공해줄 수가 없던 것입니다. 브레즈네프 시대부터 소련인들의 삶의 질은 결국 계속 떨어져갑니다. 소련이 자랑하던 그 전인민에게 공급되는 보건 영역의 쇠퇴가 대표적이었습니다. 늘어만 가는 의료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던 소련 사회의 보건 수준은 점차 악화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산업화의 부작용인 환경오염은 비용을 더욱 늘려줬습니다. 그리하여 소련 후기부터 평균수명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몰락이 시작되었고,볼스카야 인더스트리를 향한 꿈은 디트로이트를 향한 느리고 완만한 추락으로, 그리고 1991년 이후로는 수직낙하로 처박혔습니다.
트럼프와 존슨이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대두된 것은 혁신을 무작정 밀어붙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혁신의 질주에서 추락한 자들이 죽창을 들고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하는, 사회통합이 붕괴되는 모습 말입니다. 허나 그렇다고 혁신을 중단하는 것은 해답이 아닙니다. 소련의 몰락은 혁신이 완전히 정지된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보여줍니다. 물론 이제 자본주의 질서로 세계가 (심지어 중국도) 통일된 지금 소련과 같은 사례는 앞으로 나오리라 보긴 힘들 겁니다. 모든 선진사회, 그리고 개도국 사회들도 어떤 식으로든 경쟁 압력을 받아서 세계 어딘가에서 지고 있는 석양.. 아니 혁신의 물결을 타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유럽,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각각 사회는 단순히 혁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창출을 해내야만 합니다. 결국 소련이 겪는 문제는 모든 산업사회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기 때문이고, 사회의 자원압박은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업화를 통한 인구구조의 변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일 것입니다. 미국은 운 좋게도 이 문제도 이민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민은 심지어 혁신에 도움도 됩니다(하버드대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복지국가의 정치학에서 이민 사회기 때문에 미국이 복지가 후달리는 사회라고도 합니다만 사실 책 안 읽어서 잘 모릅니다).
한편 유럽과 일본은 줄어만 가는 생산인구에 대처해야만 했습니다. 부양 부담은 늘어만 가고 2차 산업혁명기에 형성된 생산성 떨어지는 제조업은 안 그래도 줄어가는 인구 때문에 줄어든 국내 수요에 대처해야합니다.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확 높여서 대처하지 않으면 서서히 몰락해갈 뿐입니다. 심지어 일본도 아예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었는데, 일본은 평등주의 세력 자체가 없는 것이나 다름 없기에 결국 기득권이 국내 행위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식으로 대처하죠. 산업시설들은 이제 중국으로 대규모 이동 중입니다. 그러나 혁신을 창출할 새로운 사회협약은 정치적 부담이 들기에 추진하진 않았죠. 누군가에게 보기 좋았을 숨막히는 일억일심의 일본 사회는 결국, 공동화하고 있는 산업과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 줄어드는 젊은이와 늘어만 가는 노년층의 부담을 혁신 없이 맞이해야만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소련의 길을 걸을까요? 그건 아마 아닐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미래가 밝은 곳은, 유럽과 일본의 “가지 않은 길” 너머에 있지는 않다는 겁니다. 이미 가 본 길이고, 그곳이 어떨지는 다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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