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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08 06:14:25
Name 이치죠 호타루
Subject [일반] 바르바로사 작전 (1) - 작전 수립 과정
아예 전체 연재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부분부분 잘라서 도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본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자는 주의라서... 여하간 네 편에 걸쳐서 이야기해볼 생각입니다. 작전수립 과정을 오늘 이야기해 보고, 북부 집단군 이야기를 두 번째, 남부 집단군 이야기를 세 번째, 마지막으로 중부 집단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본래는 북부 집단군 이야기를 (이쪽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보니 이야기할 게 그렇게 많을 것 같지가 않아서) 오늘 끼워넣으려고 했는데, 어째 글이 엄청나게 길어진 탓에...

그리고 이전 글에서도 종종 나왔던 실수인데, 러시아 = 소련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읽으시면 됩니다. 어쩐 일인지 습관적으로 러시아라는 단어를 쓰게 되더군요. 이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는 그 때마다 따로 제가 언급할 거구요.

제가 이전에 쓴 글입니다.
https://pgr21.com/?b=8&n=66761 1941년까지의 소련 - 독소전쟁 초기 이들이 대패한 이유



독소전에 대한 대략적인 개괄 및 소련이 깨진 이유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으니, 이 글에서는 작전이 수립된 과정에 좀더 중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로 독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작전 수립의 심리적인 요인

일단 작전 개시일인 1941년 6월 22일 이전까지의 독일군의 상황은, 타임라인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1939년 8월 25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나눠먹기로 합의한 비밀 조약) 체결.
1939년 9월 1일  독일, 폴란드 침공.
1939년 9월 3일  영국/프랑스, 독일에 선전포고.
1939년 9월 17일 소련, 폴란드 침공.
1939년 9월 27일 독일, 바르샤바 함락. 이튿날 폴란드 전역 종결.
1940년 5월 13일 독일 A집단군, 스당 돌파. 일 주일 후 A집단군 도버 해협 도달. 황색 작전 성공.
1940년 5월 28일 벨기에 항복.
1940년 6월 22일 프랑스 항복.

서부 전선의 타임라인은 이 정도였습니다. 한 달 후 상당한 규모의 항공전이 개시되지만(이게 바로 그 배틀 오브 브리튼입니다), 독일은 작전 취소일인 10월 31일까지 무려 2천 대에 가까운 항공기를 잃고 영국 침략을 단념해야 했습니다. 타임라인에서는 빼 놓았지만 육-해군의 입체적인 작전이라 할 만했던 베저뤼붕 작전(Operation Weserübung, 덴마크와 노르웨이 점령작전) 과정에서 해군이 엄청난 타격을 입는 바람에 영국 본토로 쳐들어갈 심산이었던 바다사자 작전까지 취소되고 말았죠. 영국도 1,663대의 항공기를 잃는 등 피해가 막심했습니다만.

하여간 영국이 저렇게 뻣뻣하게 버티고 있으니, 히틀러 입장으로서도 상당히 답답하기는 했을 겁니다. 체스로 치면 룩이니 나이트니 하는 상대의 핵심 기물을 잘 잡아놓고 체크메이트를 두는 게 아닌 스테일메이트(비김수를 말합니다)를 당하게 생겼으니, 히틀러 본인의 심기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겠죠. 그리고 이 영국의 기를 죽이기 위해 선택된 것이 엉뚱하게도 소련이라는 겁니다. 황당한 소리죠. 거 왜 예전에 굽시니스트가 연재했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의 그 장면 기억하십니까? 도조 히데키가 작전 입안하는 장면 말입니다. 그 작전의 골자가 이렇습니다.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내가 귀싸대기를 존나 맛깔나게 후리면 감동먹어서 나랑 협상하겠지." 거의 이것과 다름없는 개소리로 들릴 지경이죠. 근데 그게 사실이었다는 거죠. 제 뇌내망상이 아니라,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p. 223에서 제프리 메가기가 영국을 단념시키기 위한 목표로 독일군이 선택한 것이 소련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엉뚱하게도 바로 소련 그 자신인데, 겨울전쟁(소련-핀란드 전쟁)과 그 이후에 소련이 보여준 일련의 움직임들이 독일의 심기를 더욱 자극했기 때문이죠.

1940년 6월에, 소련은 순서대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점령합니다. 발트 3국이 소련의 손아귀에 넘어간 것은 이 때의 일이죠. 물론 점령지 주민들의 의사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짓이었고, 이 때문에 훗날 독소전이 벌어질 때 독일군을 해방자로 환영하게 되는 한 원인이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공개되었던 카틴 학살(폴란드의 지식층 및 장교 등을 체포하여 카틴 숲에서 살인한 것으로, NKVD의 짓입니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NKVD에 의해 처형 또는 체포,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 수감 등을 당하게 되었죠. 강제 수용소로 이송된 인원만 그 작은 나라에서 무려 12만 7천 명으로 추산된다 하니(《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p. 91) 알 만하죠.

여하간 소련은 이렇게 대놓고 영토 확장 및 발트 해로 진출할 의사를 보였습니다. 게다가 독일은 심정적으로는 핀란드와 상당히 가까운 축이었고(안타깝게도 제가 읽은 책 중에는 왜 그런지에 대해 속시원히 설명해준 자료는 없습니다만, 태생부터 물과 기름이나 진배없는 전체주의와 사회주의간의 이념 갈등이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이래저래 독일은 소련의 확장이 찜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욱 독일의 심기를 자극한 것이 엉뚱하게도 루마니아와 관련된 일인데, 발트 3국을 점령한지 불과 한 달 가량이 지나 소련은 루마니아에게 베사라비아(오늘날의 몰도바) 및 부코비나 지방(現 우크라이나의 체르니우치 주, Chernivtsi, Чернівецька область)의 할양을 요구한 것이죠. 루마니아가 아무리 군사적으로 중간은 가는 나라기로소니 소련의 그 거대함에 비할 바는 못 되었고, 때문에 얄짤없이 소련에게 영토를 할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이게 루마니아가 추축국에 적극 가담하는 한 원인이 됩니다). 헌데, 이게 왜 문제가 되었냐면, 루마니아는 플로에슈티 유전에서 나오는 다량의 기름을 독일에게 제공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서, 소련이 루마니아에게 계속해서 압력을 가하면 독일의 기름줄이 끊길까봐 전전긍긍했던 겁니다.

길게 이야기했지만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소련의 팽창주의적인 정책이 히틀러의 심기를 제대로 거스른 겁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자면, 장교단의 분위기였습니다. 1940년 7월은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독일에게 "가장 빛나는 때"가 되었고, 서부 전역에서의 대성공으로 인해 '우리가 군사적으로 뭘 하려고 하면 막을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과 낙관주의가 독일 장교단 전체에 팽배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겨울전쟁에서의 소련의 삽질을 보았으니, 소련군이 툭 치면 넘어갈 거라고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서부 전선에 비하면 거의 '도상연습'이나 진배없는 수준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다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 제프리 메가기, p. 226). 아주 간단하게 한 줄로 줄이면, 간땡이가 제대로 부은 거죠.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군에게 있어 대선배나 다름없는 클라우제비츠는 일찍이 이렇게 경고한 바 있었습니다.

"막연한 느낌이나 불확실한 상상만으로 공격과 기동만이 전쟁의 모든 것이며, 머리 위로 긴 칼을 휘두르며 전방으로 돌진하는 기병의 모습을 전쟁 양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중대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 출처 《전격전의 전설》, 칼 하인츠 프리저, p. 552



작전 수립 과정 - 왜 그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설정했나

제가 그간 접했던 2차 세계대전 관련 책에서 모두 간과하고 있는 것은, 대체 왜 독일이 굳이 세 개의 집단군으로 나누어서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냐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드리죠.

서부 전선에서 독일은 군대를 세 개의 집단군(A, B, C)로 나눴습니다. A집단군은 스당을 돌파하여 적의 후방을 점령, 포위하는 "망치"의 역할을 맡았고, B집단군은 적을 벨기에로 유인하는 "모루"의 역할을 맡았으며(더 많은 적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수사단까지 동원될 정도였습니다), C집단군은 마지노 전선의 적군에게 허세를 부림으로써 적의 발을 묶어 취약한 A집단군의 측면을 간접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게 성공적으로 돌아간 게 그 유명한 지헬슈니트, 폰 만슈타인의 천재적인 역작이죠.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A, B, C집단군의 목표는 작전술적인 차원이고, 전략적인 차원, 다시 말해서 경제와 정치가 관여하는 레벨의, 국가와 국가간의 큰 그림의 범주에 넣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습니다. 헌데, 바르바로사 작전을 입안하면서 각 집단군의 목표는 다음과 같이 정해졌습니다. 엄청 간략하게 줄이면.

북부 집단군 - 레닌그라드를 점령한다.
중부 집단군 - 모스크바를 점령한다.
남부 집단군 - 하리코프(Kharkov, 소련 제2의 공업도시, 現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를 점령한다.

이건 전략적 목표입니다. 전술적이나 작전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명백한 전략적인 문제죠. 기껏 도시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들 도시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레닌그라드는 소련 해군이 발트 해로 나갈 수 있는 기지이자 구 러시아 제국의 수도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고, 모스크바야 말할 필요가 없으며, 하리코프를 위시한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곡창 지대로써 독일이 사용할 식량자원의 근원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가질 수 있으리라고 독일 수뇌부는 믿었습니다. 대체 왜 이들은 전략적인 목표를 집단군에게 하달한 것이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독일군의 소련에 대한 방심과, 적의 주력을 섬멸하면 전략적인 목표는 쉽게 달성된다고 보는 독일군의 교리 때문이었습니다. 전략적인 목표로 보이는 것들은, 실은 적의 주력을 섬멸해버린 후 그에 따라 예상되는 전과 쪽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서, 적의 주력을 섬멸하고 얻을 수 있으리라 예상되는 게 터무니없이 컸기 때문에 전략적인 목표가 하달된 것으로 보이는 착시효과를 가져온 것이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 방에 가질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스스로를 판단했기 때문에 별 반대 없이 전쟁에 돌입한 것이구요.



동원된 규모가 압도적이었기에 집단군 하나가 전략적 레벨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고 대강 얼버무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해석은 실제 프랑스 전역과 바르바로사 작전에 동원된 독일군의 전력(각각 335만 명, 380만 명)을 비교해 볼 때 명백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독일군은 분명히 서부 전선에서는 기껏해야 작전술적 차원의 목표를 집단군에 하달했지만, 동부 전선 개전시에는 명백히 전략적 차원으로 여겨질 정도의 목표를 각 집단군에 하달했고, 또한 달성이 가능하리라고 믿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명령 자체는, 적 부대의 섬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독소전쟁사》, 데이비드 글랜츠, p. 59). 히틀러 본인이 소련군의 기갑 전력을 섬멸하는 것과 모스크바의 점령을 놓고 비교했을 때 "모스크바는 별다른 가치가 없다"고 일축해버릴 정도였죠. 독일군은 최전방의 소련군을 다 섬멸해 버리면 알아서 적이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과신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초장에 적을 일거에 섬멸해 버리면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한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독일군의 교리는 철저하게 적 병력의 물리적 섬멸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적의 부대를 섬멸하면 동원 능력이 부족하고 전선에 구멍이 뚫린 적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설령 그 구멍을 적이 메꿀 능력이 있더라도 거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릴 테니 그 전에 충분히 전과를 크게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독일군 교리의 골자입니다. 독일군은 거의 병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적 전투력의 물리적 섬멸을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해 왔습니다. 슐리펜 작전이 그랬고, 황색 작전과 지헬슈니트 계획이 그랬으며, 바르바로사 작전 역시 마찬가지였죠.

근데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따릅니다. 일단 섬멸되는 것이 적의 주력이어야 하고, 적이 군대를 재건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설령 가능하더라도 다시 동등한 위치로 일어서기는 힘든 정도의 엄청난 타격을 입어야 합니다. 독일군이 제대로 오판한 것은 후자의 내용이었던 것이죠. 적의 병력이 손쉽게 섬멸 가능하고(여기까지는 작전 초기에는 어느 정도 옳기는 했습니다), 최전방의 적군을 섬멸해 버리면 더 이상 자신들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 믿은 것이 바로 화근이었던 것입니다.



일단 상식적으로, 작전의 목표가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면 작전의 수정이나 중지를 건의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작전 수립 단계에서 이러한 작전계획의 수정, 다시 말해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하르키우로 대표되는 목표 중 어느 하나나 둘로 가용 병력을 집중하기를 수뇌진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습니다. 즉, 명백히 독일의 수뇌진은 소련을 얕보고 있었습니다.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의 p. 237-238에 있는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같이 러시아를 얕보고 있었으니 다른 결론이 나올 수가 없지."

이 말이 갖는 의미는 큰 것입니다. 애초에 러시아 어를 알지도 못하고 소련에 대해 깜깜이 수준이라고 해야 할 판인 사람인데다가 정보 특기도 아니었던 장교에게 소련에 대한 정보 수집을 맡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독일군의 수뇌진이 소련을 얕보고 있었는가에 대한 증거라고 저자인 제프리 메가기는 지적합니다.

게다가 이전에 몇 번 언급했던 적이 있던 사실이지만, 독일군은 소련군의 잠재력을 전혀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 탐욕의 끝, 사상 최대의 전쟁》에서 폴 콜리어를 위시한 9명의 저자들은 독일군의 국경 지대에 대한 적의 규모 예측은 비교적 정확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예측 사단 147개 + 여단 33개, 실제 사단 170개, p. 577), 폴 콜리어와 제프리 메가기 공히 후방의 동원력에 대한 예측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제프리 메가기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독일 첩보부는 1941년 1월에 동원 가능한 병력을 200만 명으로 보고 있었지만,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그 때 이미 425만 명이었으며, 그나마도 전쟁이 발발한 6월 22일에는 이미 500만 명을 돌파하고 있었습니다(《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 p. 244).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 다시 말해서 초반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세운 지나치게 큰 계획을, 히틀러의 과도한 욕심(적어도 히틀러는 모스크바 방면으로의 진군과 우크라이나 점령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한꺼번에 모두 이루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혹은 정보부의 잘못된 정보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들을 비난해야 할까요? 회고록을 쓴 수많은 독일군 장성처럼? 안타깝다면 안타깝게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히틀러나 정보사령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말씀드립니다만, 독일은 전체적으로 소련을 얕잡아 보고 있었고, 바로 이 점에서 어느 독일군 장성이라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아, 나무위키에서는 관련 항목들을 대강 둘러보면 독일군 장성들이 작전에 회의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건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의 제프리 메가기가 p. 225에서 신랄하게 쏘아붙이듯이, 진실과 절반의 진실, 그리고 새빨간 거짓말이 뒤섞인 잡탕에 불과합니다. 장성들이 가진 불만은 "영국과 전쟁 중인 마당에 굳이 우리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소련을 상대로 불필요한 전쟁을 벌여서 군을 소모시킬 필요는 없다"는 쪽에 가까웠지, 그 누구도 실제로 전쟁이 개시되면 소련이 길게 버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볼셰비키를 없애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군 인사들은 굳이 소련을 친다는 작전계획에 반대할 어떠한 이유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괜히 작전과는 별 상관도 없는 절멸 계획이 작전 개시 이전부터 하달되었겠습니까(절멸 계획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는 제가 이전에 쓴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당시 바르바로사 작전 계획 수립을 총지휘하던 총참모장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 출처 위키피디아.

사실 소련군, 시대를 약간 거슬러 올라가면 제정 러시아군은 삽질을 분명히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탄넨베르크 전투로 대표되는 어마어마한 참사가 벌어졌고, 그렇게 러시아가 깨지고 잠시 관심 밖에 있다가 러시아가 안방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망했기 때문에, (독일의 항복으로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만) 혁명 정부를 수립한 레닌은 어마어마한 불평등 조약인(대충 폴란드, 벨라루스, 핀란드, 우크라이나 및 캅카스 일대를 포함한 어마어마한 영토에 상당 금액의 배상금까지 모조리 독일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어야 했죠. 적백내전도 그렇고 폴란드-소련 전쟁도 그렇고 스페인 내전에서의 소련군도 그렇고 겨울전쟁에서의 대삽질도 그렇고 하여간 이래저래 소련군의 전투력에 의문이 많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면모가 소련군의 전부는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죠.

대표적으로 할힌골 전투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전투에서 게오르기 주코프가 등판하여 멋지게 승리함으로써 숙청 대상자의 명단에서 제외된 바 있다는 이야기는 앞 글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군은 이런 정보는, 즉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작전 진행에 차질이 될 만한 정보는, 모조리 의도적으로 무시해 버렸습니다. 예컨대 "극동의 병력들이 차출되어 동원되면 어쩌지?"에 대한 답은, "그럴 일 따위는 없음"인 식이었죠.

더구나 엄청난 넓이와,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인해 미국이 독일을 상대로 선전포고할 가능성이 있다는 - 미국이 독일과 직접적으로 전쟁하게 된 것은 진주만 이후 일본이 미국과 개전에 들어가면서 독일군이 먼저 미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한 이후의 일입니다 - 경고를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습니다(《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 p. 246 - 247). 그래서 그런 왜곡적인, 장밋빛 환상에 젖은 작전계획이 수립될 수 있었던 것이죠. 시간이 날 때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서 "수학 교수"라는 별명이 있었던 할더조차 이럴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하여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독일군, 특히 히틀러와 히틀러의 최고사령부는 전쟁이 개시되면 이렇게 나누어서 몰아치면 마치 죽은 나무가 힘없이 쓰러지듯이 소련군이 패퇴할 것으로 오판했고, 따라서 과도한 목표를 각 집단군에 하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목표가 달성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플랜 B조차 독일군에게는 없었습니다. 다들 그 정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의 수준을 넘어, 당연하다고 본 거죠. 그러니 줄기차게 독일군 수뇌진들이 방심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구요.

결론을 내자면, 작전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독일군 참모부는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골라서 수집했고, 그 정보라는 것의 실체도 시원찮았으며, 결정적으로 소련군을 툭 치면 넘어갈 정도의 연약한 군대로 얕잡아보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복합되어서 바르바로사 작전의 (지금 시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작전목표라는 결과물이 탄생한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작전은 수립되었고, 작전 개시일은 5월 15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만,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무솔리니가 발칸 반도에서 사고를 치는 바람에 작전 개시가 한 달 가량 뒤로 미루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뇌진은 충분히 겨울이 오기 전에 12주 가량의 시간만 투자하면 우랄 산맥 서쪽의 소련을 전부 집어삼킬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날, 1941년 6월 22일이 밝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인 독소전쟁이 개시됩니다.



몇 줄로 오늘 이야기를 요약합니다.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한 심리적 요인
1. 영국을 단념시키기 위한 것.
2. 소련의 팽창주의적 정책이 독일(정확히는 히틀러)에게 가져온 위기감.
3.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우랄 산맥 너머로 슬라브 족을 몰아내고 독일이 살아갈 땅(레벤스라움)을 건설해야 한다는 히틀러의 망상.

불가능해 보이는 작전 목표가 설정된 이유
1. 히틀러의 욕심.
2. 정보부의 낮은 정보력 : 최전방이 무너졌다고 가정한 후에 적이 후방에서 동원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병력의 규모를 크게 오판.
3. 독일군 수뇌진들의 소련에 대한, 철두철미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방심.



자료출처

《독소전쟁사》, 데이비드 글랜츠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 제프리 메가기
《전격전의 전설》, 칼 하인츠 프리저
《제2차 세계대전 : 탐욕의 끝, 사상 최대의 전쟁》, 폴 콜리어 외
《모에! 전차학교》 3권, 타무라 나오야, 장민성 역 - 타임라인 출처.
http://homa.egloos.com/3474475 - 굽시니스트 연재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1편, 〈진주만〉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Britain - 배틀 오브 브리튼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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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efake
16/08/08 06:26
수정 아이콘
아, 그러니까 '정보는 별로 없지만 소련 그거 별거 아닌거같던데 우리 잘나가니까 가볍게 이기겠지?'라는 거군요...애고..
이치죠 호타루
16/08/08 06:28
수정 아이콘
정확합니다. 거기에 "우리가 이기면 걔들 병력은 더 안 나올 테니 나머지는 깃발만 꽂으면 장땡이겠지"라는 이야기가 붙는 거죠.
cluefake
16/08/08 06:34
수정 아이콘
소련에서 물량이 거의 쏟아져나온거로 기억하는데, 생산력이나 상대가 병력 얼마나 더 뽑을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예 생각이 없었군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06:35
수정 아이콘
있기는 했으되 그 양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나마도 "애초에 그럴 일도 없겠지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져도 소련군은 형편없으니 다 격파가 가능하다"는 쪽으로 생각한 거죠. 문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버리면서...
닭, Chicken, 鷄
16/08/08 06:45
수정 아이콘
초반에 기세 좋게 다 이기면서 나아가고 곡창지대까지 접수하면서 아마 그 생각은 극에 달했을 겁니다.
먹지 않고 전쟁물자만 뽑아낸다면 나라는 망할 거라는 걸, 아무리 멍청해도 그 정도는 알 테니까요.

하지만 소련의 뒤에는 미국이 있었고, 그 미국이 독일 입장에서 비현실적이었던 그 일을 가능하게 했으니...
닭, Chicken, 鷄
16/08/08 06:32
수정 아이콘
추축국이라는 놈들은 하나 같이 생각하는 게 똑같네요. 이긴다는 거야 침략군이든 방어군이든 간에 당연히 하겠지만 망상의 차원이 다른 느낌...
한 쪽은 인종의 우월함에 빠져서, 한쪽은 신이니 왕이니 하는 같잖은 논리로-_-a

그러니 전쟁을 일으키는 거겠지만요.

어쩜 이탈리아가 현실적이었나?
이치죠 호타루
16/08/08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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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현실적이지 못했고(자기 자신이라 할 수 없는 이탈리아의 국력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었고 남들의 능력은 더더욱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었죠), 이 무솔리니가 전권을 쥐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도 현실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크죠... 그냥 세 나라 전부 미쳐돌아간 걸로.
닭, Chicken, 鷄
16/08/0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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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그로도 능력 차이군요-,.-
cluefake
16/08/08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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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나마 현실감각이 있었으면 적당히 먹고 만족하거나 최소한 어그로조절하면서 한턴 쉬어갔을텐데..
닭, Chicken, 鷄
16/08/0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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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발정난 셈이었죠. 세계가 미쳐돌아가던 20세기 초반 정세에 더더욱 미천한 미치광이들이 나라를 휘어잡고 조급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듯...
칼라미티
16/08/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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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역에서 너무나 쉽게 너무나 큰 승리를 가져가서...이해는 됩니다.
1940년 초의 독일은 그리 자신만만하지는 않았거든요.
롱리다
16/08/0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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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덕에 간만에 굽시니스트 만화 정주행 했네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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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굽시니스트의 만화는 당시의 밀덕들이 2차대전의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개념을 잘 풀어낸 역작이죠.
하심군
16/08/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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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였던건지 파리점령때까지만 해도 불침조약을 맺었다가 저렇게 뒤통수를 까는 건 제정러시아때를 생각하고 얕잡아봤다는 이론은 설득력 있어보이긴 합니다. 여튼 3국 모두 절박함이 업적을 만들어내긴 했는데(일본의 만주점령이나 독일의 기적같은 마지노선 돌파같은거) 문제는 이 업적이 3국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는 거? 약소국이 전쟁을 일으키려면 이렇게 해야하는 걸 보여준 전쟁이자 그 전쟁의 결과까지 패키지로 보여준 게 2차세계대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전쟁 당사자들이 각각 운들이 좋았죠. 주축국이나 연합군이나 각 나라의 운명의 톱니바퀴가 이렇게까지 맞나 싶을정도로 시대상황이 각각 잘 맞아 떨어진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8/0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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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운의 영역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만, 확실히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 초기의 독일군이 (동부 전선의 그 미묘한 개전 시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운이 좋았죠. 거기까지였지만.
하심군
16/08/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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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주변국 사이에 형성된 믿음을 비집고 얻어진 행운이라면 일본은 러시아를 어찌어찌 이기고 중국이 무주공산이었던 행운이 있었죠. 둘 다 거기까지였던게 문제긴 합니다만...그 문제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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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쟁을 판 위의 말을 움직이는 정도로만 여기고 남의 역량은 물론 스스로의 역량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짧아터진 대전략적 식견이 문제였던 거죠.
하심군
16/08/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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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대가 '마 어차피 이대로 쩌리로 살거 함 저질러보자! 어차피 이대로 죽으나 저대로 죽으나 죽는건 매한가지!'에 하나같이 강호라는 나라들이 1차대전 이후로 병든 닭 처럼 지내던 시기라 질러볼만한 국력이 쌓인 후발주자들은 질러볼만 했죠. 결국 시대가 문제랄까... 언더독에 감정이입 많이 되는 저로서는 참 묘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우리제국화이팅 이라는 건 아니고 언더독이 치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생긴 파멸이라는 교훈이 2차대전의 성격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니깐 참 그렇더라고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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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이 쌓였다기보다는 내부의 문제를 외부 쪽으로 돌리려는 무모한 시도였고 몇 번 운 좋게 판돈을 따자 그게 자기 실력인 양 기고만장하다가 철퇴를 얻어맞은 쪽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많이 갈리는 관계로 누구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것도 복합적인 요인의 하나죠. 사람마다 생각하는 원인의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
하심군
16/08/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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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만큼의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신생국가가 이정도였으니까요. 나머지들은 열강들에게 빨대가 꼽히거나 일본에게 빨때꼽힌 나라밖에 없으니 뭐...
해피바스
16/08/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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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독일이 그런 어이없는 삽질로 몰락했군요.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는 히틀러가 소련과 동맹을 맺은것은 서쪽 정벌을 위해 후방을 다지는 입장이었을 뿐 사실 히틀러 또한 공산주의를 극도로 싫어했고, 구실을 아무거나 대충 잡아서 소련을 치기 시작했다고 묘사되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글의 요지대로라면 이념적 차이가 아닌 영국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는건데 굉장히 파격적인 이유군요; 어쨌든 그당시 미쳐 돌아가던 독일이 망한건 정말 다행입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8/08 09:05
수정 아이콘
물론 독일이 소련을 친 데는 이념적인 것도 아주 단단히 한 몫을 했습니다만, 전쟁이 그렇게 한두 가지 이유만으로 단순하게 벌어지는 건 아니기는 합니다. 그 하나하나가 어이없는 이유일 수는 있어도 말이죠.
16/08/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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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2차대전때 보면 참 지려고 별 짓을 다해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09:29
수정 아이콘
더욱 어이없는 건, 대전 초기 연합군의 패배나 소련의 무모한 역공 작전, 특히 연합군의 마켓 가든 작전 등을 보고 있자면, 이쪽도 참 지려고 별 짓을 다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는 거죠.
하심군
16/08/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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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정치의 가장 극단적인 수단(정확한 워딩이 기억이 안나서 이런 애매한 표현으로 대체합니다)이라는 전쟁론의 말을 생각해보면 둘 다 전쟁을 지나치게 정치수단으로 밀어붙인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8/0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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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자체를 외교적 수사나 도구로 이용한 이상 최소한 지엽적인 패전, 보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괴멸적인 파국은 예견된 것이나 진배없다고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말씀하신 바에 크게 공감이 가네요.
토다기
16/08/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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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2차대전 독소전 양상이 옛 나폴레옹 시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 전역을 평정하고 영국을 치지 못하자 러시아(소련)으로 가다가 말아먹은 게 비슷해보여서요. 또 전선이 두 개인 것이 1차대전때와 비슷하지 않나요? 반대인 것이 1차대전 때는 프랑스가 있는 서부전선이 쉬울 거 같으니 빠르게 치고 러시아의 동부전선을 맞선다 였는데 현실은 서부전선이 더 힘들었고, 글 내용으로 보아 2차대전 때는 반대로 쉬울 줄 알았던 동부전선에서 패망의 길을 걸었으니까요. 어쩌면 프랑스가 너무 쉽게 무너진 것이 독일의 근자감을 더 키운 거 같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8/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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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관련해서 <전격전의 전설>에서 저자가 언급한 것이 있는데, 요약하면 프랑스에서는 잡탕작전으로 운 좋게 승리한 거고 러시아에서는 제대로 된 계획이랍시고 뻐겼지만 결국 박살났다는 평이었습니다. 거기 평을 옮기자면 아마추어 체스 애호가가 운 좋게 천재적인 수순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자 자기가 천재인 마냥 뻐기다가 망한 거란 비유도 있죠.
하심군
16/08/08 11:03
수정 아이콘
그래도 현장에 있는 군대는 제법 유능했던 건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 턱밑까지 쳐들어온 것도 그렇고 구세주 만슈타인(...)이라거나 열악한 가운데서도 노획병기(마르더3)로 임기응변을 잘하기도 했고요. 전격전의 전설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수뇌부라고 봅니다. 그건 소련도 마찬가지라(...) 소련이 이기긴 이겼지만 1000만의 희생자는 승리한 수뇌부의 실패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일본이 시대를 타고 깝치다가 망한 케이스라면 독일은 좋은 칼을 들고도 머리가 멍청해서 망한 케이스랄까...수뇌부가 지나치게 아마추어인데 권한이 지나치게 많았죠. 이것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었던게 역사의 비극이지만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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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만슈타인에게는 히틀러가 있었다, 이 한 문장으로 많은 것을 압축해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세종머앟괴꺼솟
16/08/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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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2차대전 기간 동안 독일의 전반적인 패배 원인 중 한 축으로 언급해 주신 [정보부의 낮은 정보력]을 듭니다. 거의 전쟁 기간 내내 정보력에서 열등했었던 것 같더군요.
그나저나 개전 원인 1순위가 [1. 영국을 단념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건 놀랍기만 하네요 크크 나폴레옹 때에도 그렇고 이쯤되면 영국은 대륙의 수호자가 아닌가...
하심군
16/08/08 12:01
수정 아이콘
내부보안은 철저했던걸 생각하면 사실 정보의 필요성 자체를 자각 못한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적은 허접하니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느낌?
닭, Chicken, 鷄
16/08/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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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가 줄줄 새어나가는데 전쟁 동안 암호에 대해 안심하고 있다는 것부터(...)
하심군
16/08/0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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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줄줄 새어나가는 게 대전 후반부 아니었나요?
닭, Chicken, 鷄
16/08/0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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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초반에는 해독당하고 바꾸고 했고 45년 들어서야 하루만에 해독되는 걸 몰랐군요.
진짜 줄줄 샌 건 일본군이었고...-,.-
간디가
16/08/0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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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관련해서 일본군이 털린 건 정말 전세계의 행운이었습니다.나구모도 큰 역할을 했지만 그 전부터 미국의 전략이 참 좋았어요.처음에도 나구모덕분에 빠른 회복이 가능했고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13:25
수정 아이콘
말이 아예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기는 했습니다. 영국은 꾸준히 독일을 칠, 독일과 맞상대를 해볼 만한, 덩치 큰 유럽의 (1941년 1월 당시로서 전쟁 중이 아니었던) 제3국을 찾고는 했는데 이 조건에 정확히 들어맞는 게 소련뿐이었거든요. 독일이 이걸 생각하고 소련을 점령하면 영국도 GG칠 거라 보고 선빵을 갈겼는데, 넉 다운될 줄 알았던 소련이 버티면서 일이 제대로 꼬인 겁니다.
간디가
16/08/08 12:17
수정 아이콘
근데 독일은 소련하고 군사협정도 맺어서 훈련도 같이 진행했던 걸로 아는데 여러모로 얕잡아 봤네요.소련 장교들도 독일 경계하고 정비에 힘쓸 정도였는데 상반된 모습입니다.근데 현장에서 지휘하는 군인들은 다른 곳으로 가는 것보다 모스크바 돌파를 가장 원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반대였네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13:27
수정 아이콘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실제로 훈련 수준이 모자라다고 1933년에 공동 훈련을 하면서 이미 얕잡아 본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스크바라는 전략적 목표는 바르바로사가 돈좌되자 벌어진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거지, 처음부터 수뇌진이 중요하게 여기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선후관계가 차이가 있죠.
수원감자
16/08/08 12:40
수정 아이콘
도버 해협 사이에 두고 영국이랑 대치하면서, 북아프리카에 3개 기갑사단(LSSAH, 다스라이히, 토텐코프)과 1개 항공단만 더 보냈으면. 아무리 못해도 이집트 까지는 먹고 적당히 미국과 휴전할 수 있었을텐데.
이치죠 호타루
16/08/08 13:34
수정 아이콘
저는 회의감이 큽니다.

사막 전투의 핵심은 불모지에서 현지 보급을 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을 보급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인데, 일단 트리폴리부터 카이로까지의 거리가 2천 km가 넘어가고, 그만한 병참선을 통해 보급을 제공할 능력도 병참선을 지킬 능력도 독일에게는 없었습니다. 로멜이 무리한 진격으로 바보짓한 것에 가깝죠. 더구나 병참선에 있는 몰타를 놔 두고 크레타 같은 데에 공수부대를 다 투입하는 바람에 그나마 얼마 가지도 않았던 아프리카 군단의 보급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애초에 로멜이니까 그 능력으로 엘 알라메인까지 몰아붙인 거지 정상적이었다면 토브룩은커녕 벵가지도 점령 불가였죠. 게다가 독소전쟁의 스케일은 아프리카 사단의 144배에 달했으니 그런 곳에 최정예 사단을 보낼 여유는 더더욱 없었죠. 독소전쟁을 안 일으켰으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졌겠습니다만 이놈의 히틀러와 스탈린은 결국 치고박을 운명이었다는 게 또 문제였죠.
겨울삼각형
16/08/08 16:34
수정 아이콘
독일이 소련에대해 판단한건 대부분 맞아떨어지지 않았나요?

천조국의 랜드리스가 없었으면, 소련도 버티지 못했을겁니다. 아니면 버티긴했더라도 전선만 간신히 유지하면서 반격은 힘들었겠죠.

천조국의 쇼미더머니가 사기입니다.
호이로 미국을 잡으면 확실하게 느낄수 있지요.
이치죠 호타루
16/08/08 16:53
수정 아이콘
렌드리스가 수많은 장병들의 목숨을 구하고 소련이 버티는 것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이는 게오르기 주코프도 사석에서 인정한 사실입니다) 렌드리스가 없었으면 소련이 버티지 못하거나 전선이 고착화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공을 무시할 수는 없죠. 헌데, 문제는 이 렌드리스 물자의 대부분이 1943년이 되어서야 제공되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1942년 상반기까지는 소련은 (미국의 도움이 아예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상당 부분을 소련 스스로의 힘으로 싸워 나가야 했습니다. 일례로 1942년 말까지 영국에 58억 달러에 달하는 물자가 제공되었지만 동 기간 동안 소련에 제공된 물자는 그 1/4도 못 미치는 14억 달러 상당의 물품이었습니다.

이는 독소전쟁 1기인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독일과 소련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을) 자기네들 힘으로 싸워 나갔다는 걸 의미하고, 나아가서 독일은 몇 주 내의 초전 박살을 의도했지만 소련군이 훌륭하게 그 공세를 버텨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독일군의 계산이 완전히 엇나가 버린 거죠.
미닛메이드
16/08/09 14:12
수정 아이콘
진짜 뭔 생각으로 저렇게 집단군을 나누어서 배치했는지....

주변에 예스맨 밖에 남지 않았을때 발생되는 전형적인 예가 아닐런지...
이치죠 호타루
16/08/09 16:17
수정 아이콘
히틀러의 예스맨들이 남았다기보다는 군에서도 가망있다, 아니 당연한 이야기다라고 판단했다고 봐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히틀러를 상대로 한 군의 발언권은 없지는 않은 때였으니까요. 흠, 사람에 따라서는 당시 총참모장 할더를 예스맨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주변에 예스맨들만 있었다는 말도 아주 틀리지 않기는 합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6/08/18 03:58
수정 아이콘
잘읽고있습니다

궁금한게 작전술적 차원과 전략적 차원의 목표가 알듯말듯 합니다. 전력적 차원의 목표를 예로 들자면 어떤게 있을까요? 경제와 정치까지 총괄하는거면, 이라크전쟁으로 후세인 정권 축출과 민주주의 체제 확보 및 자본주의경제 구축 이정도가 전략적 목표일까요? 그렇다면 전략적목표는 전쟁자체의 목표인거 같기도 하구요..

글고 갠적으론 소련침공1번인 영국과문제를 이해는 할듯합니다. 히틀러 입장에선 영국이 개기는게 짜증나는데. 소련이 없으면 제깟게 뭘하겠어 이런 심리가 있었을거 같아요. 거기에 볼셰비키에 대한강한혐오에 호구로 인식까지 더하면 뭐...
이치죠 호타루
16/08/18 04:15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바가 대체로 맞습니다. 다만 전쟁 자체의 목표 = 전략적 목표가 될 때도 있고, 전쟁 자체가 워낙 스케일이 큰 경우(바로 독소전쟁이 대표적이죠) 스케일을 약간 나눌 수는 있죠.

대략 이야기하자면 이런 느낌입니다. 예컨대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제 손에 세 개의 군단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편의상 제1군단, 제2군단, 제3군단이라 하죠.

제1군단은 휴전선에서 몸빵, 제2군단은 판문점을 돌파해서 개성 - 평산까지 진격, 휴전선의 적의 좌익 후방으로 우회, 제3군단은 백마고지를 돌파하여 휴전선의 적의 우익 후방으로 우회. 각 군단이 성공적으로 우회한 후 사방에서 적의 휴전선 병력을 포위 섬멸함으로써 적의 병력 분쇄. - 이게 대략적으로 작전술적인 차원의 목표입니다. 즉 작전술적인 차원의 목표라 함은 [아군과 적의 병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휴전선의 적을 박살냄으로써 아예 북한의 항거할 의지를 꺾어버리고, 적의 내부에 회의감을 심어 북한 내부의 반발을 야기하며, 덤으로 예성강 유역의 평야를 확보하여 일정 부분 적의 군량에 타격을 줌으로써 최소한 협상테이블로 북한을 불러냄. 이 전과를 바탕으로 황해도와 강원도를 석권, 휴전선을 북쪽으로 최소 30 km는 밀어버리는 것이 주 목표. - 최소한 이 정도 레벨은 되어야 전략적 차원의 목표라 할 만하죠. 그러니까 [적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상황을 총망라하여 최대한의 이득을 뽑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전략적 차원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규모의 전쟁이면 일반적으로 작전술적 차원의 목표가 곧 전략적 차원의 목표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독소전은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고, 전략 자체가 스텝 바이 스텝으로 짜여져야 했죠. 예컨대 우크라이나 석권 → 적의 자원줄 봉쇄 → 적의 병력에 제공될 주 보급 차단 → 그 다음 목표는...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소련을 침공한 이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아주 정확한 요약입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6/08/18 04:22
수정 아이콘
오~ 아직 안 주무셨..아니 일어나신건가요 흐흐
답변 너무 감사합니다. 안개가 풀리듯 훨씬 정확히 알거같네요. 자다깨서 3시쯤부터 정주행하느라 아직 안 자고 있는건 함정입니다만...너무 재밌습니다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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