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이성과 논리로 시작한다. 냉철한 목소리로 자문자답을 하며 인영은 수학 공식의 답을 구한다. 그러다 멍하게 있는 한 남학생을 눈에 담는다. 상담실에서도 그 학생의 멍텅한 태도는 딱 부러지는 인영과 상반된다. 어느 대학을 갈 거냐는 질문에 별 다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카메라는 선생의 지위와 멀어지는 인영의 눈빛을 카메라로 나타낸다. 인영은 학생의 찬찬히 흝어보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는 우산을 내미는 연습을 한다. 인영의 사무적인 표정에 점점 감정이 깃들기 시작하고, 그 학생의 얼굴을 다시 확인해보는 다음 씬에서 인영은 비에 젖어 헝클어져 있다.
- 비에 젖은 학생과 인영은 차 안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고 싶은 게 없다던 학생은 차 안에서 말을 바꾼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기 때문에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인영은 의사가 되고 싶지만 대학은 가기 싫다는 학생의 대답을 곱씹는다. 인영은 망상에 가까운 대답을 선생으로서 꾸짖지 않는다. 이 둘의 대화는 논리적이지 않다. 학생은 인영의 폰번호를 저장하면서 조인영이란 이름이 본명인지 확인한다. 논리에서 금새 감정으로 넘어간 영화는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혼란을 두고 자그마한 복선을 보여준다.
- 인영은 정우와 동거 중이다. 이 둘은 연인이라기보다는 배드메이트 정도로 보인다. 영화는 여기서 여성의 성과 사랑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한다. 인영은 현재 어떤 관계에 놓인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을 향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그 상대방은 자신의 학생이고 연하다. 인영의 욕망을 말리는 정우의 논리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이다. 이 반론은 오히려 인영의 주체성과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이야기한다. (이후 이 주제는 <은교>를 통해 더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나이가 들면 욕망 역시 절제되어야 하는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은 사회적 지위로 통제되어야 하는가. 인영은 정우에게 더 육체적이고 터프해질 것을 허구의 이상형과 비교해 드러낸다. 지금 봐도 도발적이다. (언제쯤이나 되야 여성의 섹슈얼 토크는 도발적으로 들리지 않게 될 것인가)
- 인영은 정우에게 그 학생이 자신의 첫사랑 이석과 이름도, 생김새도 똑같다고 이야기한다. 인영이 이석에게 호감을 갖는 이유는 첫사랑과 닮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꿰뚫는 여러가지 질문이 시작된다. 과거에 끝난 사랑은 같은 존재를 만나 다시 부활할 수 있는가. 과거의 존재를 닮은 존재에게 현재의 내가 투영하는 사랑은 반복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비슷한 대상을 마주쳤을 때 그 대상을 향한 사랑은 후에 만난 이에게 그대로 전이될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는 분리될 수 있는가, 그리고 분리해야 하는가.
- 그리고 영화는 인영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인영은 어렸을 적 개를 키웠고 이 개를 이석과 닮은 누군가가 대신 키워준다고 했었다. 개를 떠맡았지만 그는 이 개를 인영만큼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다. 영화는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온다. 인영은 이석이 공부를 못한다고 공개적으로 혼을 낸다. 인영은 이석 앞에서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한다.
- 영화는 다시 인영의 어린 시절로 넘어간다. 머리가 긴 남자의 이름은 이수다. 이수는 길을 건너려다가 차에 치인다. 이는 후에 나오는 이수의 죽음의 이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현재의 인영과 교차편집되는 장면 속에서 과거의 인영은 두 다리 사이에 손을 끼워모으고 자는 이수의 모습을 본다. 현재의 인영 앞에는 술에 취한 "이석"이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인영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이석은 그런 인영을 뒤쫓는다. 다소 느리게 흐르던 영화 속 화면이 빠르게 움직인다. 요동치던 인영의 감정이 이석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인영의 감정은 브레이크가 잘 안든다는 자전거와 비슷한 상태다.
- 학원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있고 계단으로 올라온 이석은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의 통로를 본다. 이석은 바닥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허공에 발을 담그고 인영은 그를 말린다. 움직여야 할 것이 멈춰있고 거기에는 열리지 않았을 틈새가 하나 있다. 이는 첫사랑과의 재회로 멈춰있는 인영의 시간에 이석이 끼어든 것처럼 보인다. 이석은 난데없이 인영에게 수술 경험을 묻고, 수술의 흔적을 보여주라고 한다. 인영은 자신의 과거를 이석에게 투영하며 감정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석이 인영의 과거를 쫓아가며 자신의 현재와 겹친다. (맹장 수술은 무언가를 떼어내는 수술이고, 그 수술의 흔적은 계속해서 남아있다.) 이석이 인영을 갑자기 껴안고 인영은 살짝 당황하면서도 그런 이석을 내버려둔다. 인영은 자신의 과거를 이석을 통해 다시 불러오고 이석은 자신이 모르는 인영의 과거를 탐한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리게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처럼 인영은 이석을 천천히 껴안는다. 그 사이로 인영의 과거가 다시 끼어든다.
-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살짝 비춘 죽음의 이미지는 과거 인영이 겪었던 이수의 죽음으로 확장된다. 인영은 응급실에서 이수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안실에 찾아가서도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현재 시점의 이석과 똑같이 생긴, 이수의 쌍둥이 형제인 이석이 있다. 인영은 이석을 보며 이수라고 여기고 이수의 영정사진을 가지고 힘싸움을 벌이다가 깨트린다. 정우는 "이수는 쌍둥이야, 몰랐어?" 라며 인영의 인식을 바로 잡으려 한다. 영화는 쌍둥이라는 설정을 통해 감정의 전이 가능성을 암시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한 존재에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영처럼 "이수"가 "이석"이라는 것을 헷갈려하는 데서도 시작될 수 있다. 이석은 이수가 될 수 없다. 인영은 이석의 존재로 이수의 상실을 부정하고 위안을 얻고자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군가를 인식하는데서 시작하다기보다는, 사랑했던 혹은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여기서 현재의 인영이 현재의 이석에게 품는 감정의 원천이 다시 애매해진다. 영화는 맨 처음 인영의 감정이 이석이 아닌, 긴 머리의 "이수"에게서 출발했음을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인영은 현재의 이석을 보며 "첫사랑과 닮았다" 라고 했었다. 여기서 인영의 첫사랑은 이수에게서 이석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느 쪽이 인영의 진짜 첫사랑인지도 모른다. 만약 이수가 그저 계기였고 인영의 첫사랑이 이석이라는 사실이 뚜렷하다면, 영화가 이수와의 만남에 필름을 그렇게 할애할 이유가 없다. 이후 회상씬에서도 영화는 이수를 떼놓지 않고 인영과 이석이 연결된 과거를 이야기한다.
- 영화는 죽은 이수를 보여준 후, 현재의 인영이 이석의 빈 자리를 신경쓰는 장면을 통해 두 인물의 공백을 잇는다. 영화 맨 처음의 똑부러지던 것과 달리, 인영은 다소 멍해있고 수학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석의 부재에 인영은 완전히 감정적 상태가 되어있다. 누군가와 싸운 듯한 이석이 학원에 오고 영화는 이 둘 만을 프레임안에 놓는다. 인영과 이석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이석은 인영을 껴안는다. 이 둘의 관계는 주로 폐쇄된 공간에서 진전된다. 인영은 자신을 안는 이석을 더 적극적으로 껴안는다.
- 영화는 이들의 감정이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과거로의 플래쉬백을 통해 이들의 감정을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라고 설명한다. 미래는 현재가 아닌, 이미 끝난 과거에 의해 만들어지는 셈이다. 논리적인 전개는 아니다. 이런 방식의 화법은 정지우 감독의 개성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 자체를 투영한 서사이기도 하다. 서로 이끌린다면 그것은 과거 끊어졌었던 감정이 다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상식을 따진다면 이 영화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첫사랑과 닮은 사람을 보면서 대개 빠질 감상은 사랑이 아닌 그리움이다. 영화는 그 상식을 흔드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현재의 인영이 현재의 이석을 보고, 과거의 이수 혹은 이석을 사랑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현재의 이석에게 빠져든다. 그렇다면 이석이 왜 인영에게 빠져드는지 역시 궁금해 할 수 있는데 이 역시도 인영의 감정과 같은 논리라는 것이 후에 나온다.
- 엘리베이터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둘은 곧바로 모텔로 향한다. 정지우 감독 특유의 발칙함이다. (한편으로는 발칙함이라는 게 예술가의 공통된 도전의식이 아닌가 싶다. 지고지순한 허진호 감독도 <외출>에서 서로의 불륜상대끼리 짝을 맞추는 이야기를 했었으니. 그래도 정지우는 정지우만의 고요하고 몽환적인 발칙함이 있다. 임상수, 박찬욱, 이재용 등의 감독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그만의 발칙함이다.) 죽음과 상실의 극복을 통해 플라토닉한 흐름을 이어가던 영화는 갑자기 육체적으로 바뀐다. 그러나 영화는 한발짝 멈춘다. 머뭇거리는 이석을 보며 인영은 충동을 억누른다. 그리고 닫힌 차 안에서 이 둘은 마주보며 조성모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그러다가 모텔 직원에게 "원조교제"라며 인영은 당치 않은 비난을 받는다. 인영은 화가 나서 축하용 난초를 들고 도망간다.
- 영화는 현재의 인영과 이석이 나누는 사랑과 이를 금기로 바라보는 사회적 충돌을 비극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들의 연애는 사회적으로 수용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이 둘의 투쟁이나 희생의 결과물인 것도 아니다. 이 둘의 연애는 개인사의 성격이 더 짙다. 영화는 결국 한 인간의 감정을 다루고 있고 여기서 사회적 파장을 심각하게 다루었으면 금새 신파로 빠졌을 것이다. 영화는 세상 속 둘의 사랑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 여기까지는 인영의 과거와 현재가 일으키는 갈등의 극복이었다. 그 계기가 어찌됐건 현재의 인영은 현재의 이석을 사랑하기로 했고 둘의 감정은 교차점을 지나 연애상태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또 다른 현재가 끼어든다. 인영의 동거남인 정우다. 정우가 패스트푸드 가게에 나타나고 이 둘의 오붓한 시간을 살짝 깨진다. 이는 물론 이석의 시점에서 바라본 감정이다. 적나라하게 질투하는 이석을 보며 인영은 마냥 귀여워한다. 그럼에도 인영과 이석이 누리는 현재의 시간 축에 정우가 끼어든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영화는 촌스럽게 정우를 꼰대마냥 그리지 않는다. 그는 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영의 연애를 흥미롭게 볼 뿐이다.) 여기서 정우는 중요한 분기점을 제시한다. 이석을 실제로 본 정우는 "과거의 이석"과 하나도 닮지 않았다며 과거와의 연결을 부정한다.
- 영화는 다시 인영의 과거를 보여준다. 인영이 이수에게 맡겼던 개가 자라있고, 인영과 이석은 어느 정도 그의 죽음을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수가 사실은 개를 좋아하지 않았고, 윤리 교과서가 있는데도 만날 구실을 만들려고 인영의 윤리 교과서를 빌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떠난 자의 과거가 다시 현실로 상기되고, 이석은 울음을 참지 못한다. 이석을 안고 위로하던 인영은 이석의 눈물에 입을 맞춘다. 인영과 이석은 격정적으로 키스한다. 이후에는 이 둘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세탁기 장면이 나온다.
- 인영은 과거에도 이석과 다소 충동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적지 않은 경우 첫사랑은 혼란과 착각, 한 순간의 충동에 좌우된다. 이는 현재의 인영과 이석의 관계가 과거의 반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서로 알아가고, 확신이 생기는 과정보다 어떤 상태로 돌입해버리는 이유 자체가 중요하다는 설이다. 과거의 인영과 이석이 키스를 하게 된 계기는 "잃어버린 이수"의 존재다. 이 역시 단절된 과거의 감정이 현재의 감정에 대한 원동력이라는 내적 논리다. 사랑이란 현재의 접점 없이 과거의 조각만 가지고도 만들어질 수 있다.
- 영화는 인영과 그의 엄마, 인영과 정우를 이야기하며 다시 현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뛰어넘는다. 과거의 인영은 이석의 집에서 짐이 빠지고, 교실에서도 보이지 않는 그를 통해 이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랑니>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여태 관객이 과거의 인영이라 믿었던 소녀가, 현재의 인영과 이석이 다니는 학원에 나타난다. 이석을 찾으러 왔다는 학생 인영은 선생 인영을 만난다. 인영은 교복에 붙어있는 이름표를 보며 학생 인영의 이름을 확인한다. 같은 시간축에 있을 수 없는 두 인영이 서로 만나고, 영화 속 시간축은 뒤엉킨다. 여태까지 봤던 것은 또 다른 인영의 이야기, 즉 현재 시점의 이석이 아는 학생 인영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인영의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이석을 향한 두 명의 인영이 서로 교차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학생 인영은 심지어 "정우"라는 동명이인의 친구도 있다. 학생 인영을 바라보는 선생 인영의 카메라는 격하게 흔들린다.
- 학생 인영은 현재의 시간축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영이다. 그러면서도 편집된 장면들에서 여전히 현재의 인영이 떠올린 회상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서 현재의 인영이 맺은 "과거"와의 관계가 변한다. 인영이 현재의 이석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과거의 이석과 닮아서" 이기 때문이다. 인영의 감정은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은 일종의 운명적 초월로 그려진다. 그러나 학생 인영을 보는 선생 인영은 질투하기 시작한다. 이석이 자신의 이름을 확인했던 것은 이미 존재하는 인영과 자신을 겹쳐보는 의미를 가진다.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이석에게 자신은 "또 다른 인영"을 떠올리는 대체재이며 불완전한 존재이다. 여기서 인영의 감정은 이율배반의 형태를 띈다. 사랑은 과거에서 현재로 연속되며 서로를 잇는다. 과거에서 현재로 연속되기에 사랑은 늘 현재를 배반하며 과거와 대결한다. 현재는 과거에 잉태되어있고, 과거는 현재가 태어나면서 깨어진다. 인영에게 과거의 이석과 현재의 이석은 이어진다. 그러나 이석에게 자리한 "과거의 인영"은 현재의 인영을 그 둘의 과거로부터 소외시킨다. 누군가의 과거는 과거와 현재를 유리시키는 하나의 벽이 된다.
- 인영과 인영이 만나는 장면부터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인영의 회상인줄 알았던 모든 장면들은 "다른 인영"으로서의 중의성을 띈다. 이는 인영이 믿고 있는 과거의 반복,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부정하는 기능을 한다. 아예 그 모든 회상 장면은 다른 인영이고 현재의 인영이 이야기하는 '첫사랑 이석"의 증거는 오로지 대사뿐일수도 있다. 혹은 그 반대로 현재의 인영이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 이를 혼자 체험하며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모노드라마일지도 모른다.이 같은 혼란은 "나의 과거가 다른 이(학생 인영)의 현재"일 수도 있으며 "나의 과거가 존재하는 만큼 다른 이(이석)의 과거 역시 존재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정지우 감독이 전작 <해피엔드>에서 몽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렸다면, <사랑니>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구분을 지우고 있다. 과거는 현재와 이어진다. 과거는 현재와 평행한다. 과거의 나의 사랑은 현재 누군가의 사랑이고 현재 나의 사랑은 과거의 사랑과 겹쳐진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사랑과 재회하지만 과거의 사랑은 현재의 사랑을 동반하고 있다. 매우 이상한 시간축의 모순이다. 그리고 정지우는 이것을 실재하게 만든다. 설명되지 않는 시간의 혼돈은 인영과 인영, 인영과 이석이 만나면서 현실이 된다. 과거와 현재의 조우가 일어나고 두 인영이 만들어내는 블랙홀에서 관객이 휩쓸려있을 동안 영화는 패러독스의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 이 모순은 논리적 대칭구조를 이룬다. 교사 인영은 과거의 이석에게 느꼈던 사랑을 현재의 이석에게 투영한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이석은 과거의 인영에게 느낀 사랑을 현재의 인영에게 옮겨왔다. 두 사람 모두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질 수 없는 감정을 다른 타인에게 전이시킨다. 여기서 학생 인영을 또 다른 인물이라 상정하면, 인영은 이수에게서 이석으로, 과거의 사랑을 현재로 그대로 옮겨온다. 영화의 주제는 더 공고해진다. 인영이 그랬듯 이석도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은 시간축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현재의 존재와 과거의 존재를 어지럽힌다. 거기에는 사건이나 사람이 없다. 오로지 감정만이 박동하며 관계를 증명한다. 사랑하니까 누군가가 의미를 갖고 과거와 현재 모두가 한 사람 안에서 살아나게 된다. 본질은 감정이고, 그 감정의 기시감이 누군가의 존재를 착각하게 하거나 과거를 투영시키게 한다. 모든 사랑은 감정 그 자체로서 과거를 타고 현재로 흐른 뒤 한 상대안에서 맴돈다.
- 인영과 인영과 이석은 횟집에서 어색한 만남을 갖는다. 이석은 학생 인영과 함께 앉아있고 교사 인영은 이 둘의 맞은 편에 앉아있다. 인영과 인영은 서로 질투하고 공기가 팽팽해진다. 교사 인영이 바깥에서 통화를 하고 있을 때 횟집 마당으로 학생 인영은 울면서 뛰쳐나온다. 두 인영은 같은 자리에 앉는다. 이 둘을 한 사람으로 본다면 과거와 현재의 화해가 된다. 이 둘을 두 사람으로 본다면 교사 인영이 학생 인영과 이석의 연애에 부분집합으로 포함되고 교사 인영은 어른으로서의 이해와 포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갈등고 합의가 공존하는 이상한 그림이다. 이석이 뛰쳐나오고, 학생 인영은 횟집을 뛰쳐나가고, 교사 인영은 플래쉬백으로 진행됐던 이수, 이석, 학생 인영 사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학생 인영의 이야기는 교사 인영의 회상이 아니라 동시간대에 존재하는 다른 인영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 인영은 이 둘을 기차역으로 데려다준다. 영화는 여기서 다시 예측불허의 발칙한 리듬으로 튀어나간다. "너 그 애랑 잤니?" 교사 인영은 학생 인영과 이석의 육체관계를 묻는다. 여태 꼬인 시간축과 뒤틀린 만남 자체로 인지와 감정의 혼란을 야기하던 영화가 매우 현실적인 톤으로 인영의 질투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다시 삼각구도의 틀 안에서 성인 여성과 어린 남성, 같은 연령대의 두 남녀에게 소외당하는 성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인영의 질투는 실존적이다. 애초 인영은 "자고 싶어" 라는 성적 욕망으로 이석에게 다가갔고 이후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다른 여자랑 잔 이석에게 참을 수 없는 질투와 열패감을 느낀다. 이제까지 과거의 첫사랑이자 현재의 어린 남자에게 느꼈던 인영의 모든 욕망은 불장난으로 취급당할 위기에 몰려있다. <사랑니>는 감정의 시간적 교차와 존재에 관한 역설이기도 하지만 인영이라는 한 여성의 사랑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기차역에 도착하자 학생 인영이 차에서 나가고 이석도 따라나간다. 교사 인영은 이석을 잡아보려 하지만 이석은 끝내 학생 인영을 뒤쫓는다. 여기까지 보면 영화는 망상이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여태까지 자신의 첫사랑인줄 알았던 이야기는 다른 이의 첫사랑이었고, 인영의 감정은 순간의 불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영은 그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갑자기 유턴을 한 후 건너편에서 계속 경적을 울리며 이석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과거는 현실과 분리되고, 서로의 시간축은 살아온 시간에 맞춰 돌아가려고 했었다. 인영의 유턴은 원래의 흐름을 거부하고 시간을 되돌리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이석은 자신을 기다리는 두 인영 사이에서 주저한다.
- 교사 인영은 경적을 울리며 흐느낀다. 짝을 찾아 헤매는 인영은 순리 앞에서 다시 무너지려한다. 선생은 학생을 사랑하면 안되고, 나이 많은 이가 어린 사람을 사랑하면 안되고, 과거가 아닌 현재의 다른 누군가이기에 사랑해서는 안되고, 사랑하려는 이가 다른 이와 사랑을 하고 있기에 안된다. (그리고 이 영화가 관계의 분기점으로 세우는 육체적 관계도 맺지 못했다) 되찾은 사랑은 눈앞에서 자신을 버리려한다. 이것은 모두의 상식 아래에서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그래야 옳은 일처럼 보인다. 그래서 인영은 운다. 다 큰 여자가, 고등학생 남자를 두고, 그 여자애랑 잤냐고 질투한 뒤 동갑내기 여자애를 쫓아가는 남자애를 어쩌지 못해 자동차 경적으로 울어제낀다. 알 만큼 알고 배운 어른이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대로변에서 민폐를 끼치면서 매달린다. 인영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차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가슴이 터질 것 처럼 운다. 환상과 현실 사이를 부옇게 헤쳐가던 영화는 가장 선명하고 처절한 감정으로 다시 모든 혼란을 시작한다. 그럴지도 몰라 - 라며 찾아온 감정에 몸을 맡기고 그게 아니야 - 라며 부정하는 현실에 부딪힌 여자가 떠났어야 하는 사람, 흘러갔어야 하는 시간을 붙든다. 감정은 사랑을 일깨우고 사랑은 사랑을 당긴다. 이석은 학생 인영을 뒤로 하고 교사 인영에게 다가간다. 감정은 그렇게 세상의 질서를 역행한다. 왜냐하면 인영은 이석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 인영은 이석을 되찾는다. 이는 또 다른 인영에게 뺏겼을 뻔한 이석일 수도 있고 과거 속으로 사라지려는 이석일 수도 있다. 둘은 곧바로 잠자리를 가진다. 이 둘의 육체적 관계는 허구와 몽상에 겹쳐진 이들의 관계를 실재의 세계로 끌어오는 접점이다. 동시에 인영의 주체적 욕망이 해소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불완전하던 관계는 더욱 더 견고해진다. 인영에게도, 이석에게도 학생 인영의 존재는 더 이상 신경쓰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학생 인영은 학교 양호실에 누워있고, 그런 그를 뒤로 한 양호선생님은 데이트용 신발을 신어보며 설레여한다. 삶이란 이별의 휘장 뒤로 또 다른 사랑이 전개되는 장이다. 신발은 다음 씬의 연결점이 된다. 인영은 첫사랑 이석을 만나고 오는 길에 신발을 벗고 있다. 첫사랑 이석에게서 그저 실망만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신발을 신으며 기대하는 사람과 신발과 함께 기대를 벗어던져놓은 사람을 병렬시킨다.
- 여기까지가 인영의 내면적 시점과 현실적 시점이 뒤섞인 판타지에 가까웠다면 이 다음부터 영화는 환상을 현실로 완성한 인영의 삶에 또 다른 현실을 이끌고 온다. 정우는 인영의 첫사랑, 성인 이석을 인영과 만나게 한다. 일차적으로 이는 인영과 이석 사이를 정우가 끼어드려는 시도다. 두번째로, 과거의 이석이 현재의 인영과 이석 사이를 끼어드려는 시도다. 현재의 이석을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는 현재의 인영을 중심으로 한 사각관계로 재편된다.
- 인영이 이석을 재회하면서 과거와 현재는 달리 정의된다. 과거는 감정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의 계기가 될 뿐이다. 감정의 근원인 이석은 감정의 결과물인 이석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오랜만에 만난 이석은 인영의 눈에 학생 이석과 전혀 다르게 생겼다. 이석의 성격은 학생 이석의 성격과도 판이하다. 그는 인영의 성을 "최씨"로 잘못 기억한다. 인영은 이석에게 실망한다. 과거는 싱겁게 끝난다. 이석은 인영에게 "많이 달라졌다" 라고 한다. 영화 속 "고정되어있던" 과거의 개념은 현재를 기준으로 다시 구축된다. 과거에 맞춰 현재가 이끌리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에게는 늘 현재가 기준이다.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가 움직이고, 그 과거가 다시 현재가 될 때 조작된 과거와 현실의 괴리감이 생긴다. 그 간극은 설렘일수도, 실망일 수도 있다.
- 인영이 신발을 벗어던지고 담배를 물며 운전을 하는 건 첫사랑 이석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다. 인영은 과거와 현재를 포개며 현재의 이석에게 품은 감정 전체가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빠져있다. 과거의 확인은 현재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이석과 이석이 닮지 않았기 때문에 이석에게 품은 감정이 이석에게 품었던 그 때 감정이 아니고, 그러므로 첫사랑의 부활이 아니라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 정도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이석은 또 다른 현재의 이석으로 부정된다. 과거는 분리되고 현재는 과거라는 출발점을 잃어버린 채 표류한다. 감정은 정박할 수있는 현재를 찾아나선다. 인영은 집에 돌아온 정우에게 안긴다. 정우는 인영을 안아준다. 정우는 인영의 가장 생생한 현재다.
- 음성메시지를 통해 인영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염려하는 정우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정우는 학생 이석의 카운터 파트, 학생 이석에게 학생 인영과 같은 존재다. 정우는 인영과 함께 축적한 시간이 있고, 동년배로서 통하는 부분이 많으며,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인영의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이석이 인영의 환상을 채워준다면 정우는 인영의 현실을 채워준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일대일 매칭을 진리로 그리지 않는다. 하나의 갈등으로서 최우선과 차선이 서로 투쟁하는 형태가 아니라 감정이 확신에 이르기까지, 확신에 차있음에도 유동적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 현재가 메꾸지 못하는 자리를 또 다른 현재가 채울 수 있고, 그 현재는 과거로도 채워질 수 있었다. 인영의 감정은 아직 아무데도 도착하지 않았다.
- 인영은 잠을 자다 마루로 나선다. 그리고 황급히 학원으로 뛰어간다. 술 취한 이석이 찾아왔던 그날 함께 걸었던 길을 인영은 혼자 거꾸로 간다. 학생 인영이 찾아왔던 학원 그 길을 현재의 인영이 간다. 과거는 다시 되돌려진다. 과거는 반복된다. 아무도 없는 학원에는 낮에 한 약속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학생 이석이 잠을 자고 있다. 이석은 이수가 그랬던 것처럼 두 다리 사이에 손을 끼워놓고 옆으로 잠을 잔다. 이석이 이석으로 부정되었지만 아직 첫사랑의 연결고리는 존재한다. 이석은 이석이 아니라 이수의 재림인지도 모른다. 인영의 사랑은 다시 불씨를 찾아낸다. 세상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똑같은 자세로, 아직도 떠나지 않고 어두운 공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기로 했잖아요" 예정되어 있던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인영은 이석에게 입술을 맞댄다. 인영의 다리가 떠오른다. 앉아있는 이석과 수직을 이루며 인영은 공중에 부유한다. 샤갈의 그림처럼, 인영은 속세의 법칙을 초월한다. 자신의 과거는 분리되었지만 눈 앞에 있는 현재는 여전히 과거를 담고 있다. 첫사랑이니까 사랑이다. 첫사랑이 아니어도 사랑이다.
- 학원 소파에서 이석과 잠을 자던 인영을 학원에 일찍 온 학생이 발견한다. 아차 싶었지만 때는 늦었고 인영은 학원 동료에게 이를 털어놓는다. 그렇다고 영화가 인영의 감정을 비련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인영의 고백을 듣는 동료는 인영을 이해한다. 학생들은 수근대지만 눈치가 보이는 정도의 선에서 머문다. 사회적 금기는 대단한 박해를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뻔뻔하게 대꾸한다. 인영은 점집을 찾아가고 무녀는 연하남은 만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인영은 난처하게 대답한다. "둘 다 연하남인데...."
- 영화는 인영과 (학생) 이석의 잠자리가 끝난 뒤를 보여주며 둘의 연애를 묘사한다. 이석은 자신이 인영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한다. 귀여운 남자와 포용하는 여자를 통해 영화는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을 그린다. 이 영화가 의미있는 것은 "남자의 상대방"으로서 존재하는 여자가 아니라 "여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주체적 인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 인영은 토요일날 이석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정우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부탁한다. 그 날 인영과 이석은 요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갑자기 정우가 집에 들어온다. 그는 이석과 동행한다. 예상치 못한 사자 대면이 이루어진다. 이는 정우의 얄미운 질투다. 인영, 이석, 이석, 정우 네 명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 여태까지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이석과 인영 둘의 사랑이 완결될 줄 알았던 이야기는 인영의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며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거기에는 인영이 과거를 투사해 사랑한 현재의 이석, 인영이 과거에 사랑했던 이석, 인영이 사랑 비슷한 호감을 품은 정우, 이렇게 인영의 사랑에 대한 역사가 총망라되어있다. 학생 이석은 별 말을 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말도 없다. 아마 둘 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데 대한 불편함과 질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냥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는 인영에게 짐짓 허세를 부린다. "나 저 사람들 신경쓰지 않아. 저 남자들, 선생님 과거일 뿐이잖아" 현재는 과거를 향해 선포한다. 이석은 그래서 그 어색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 이런 이석에게 첫사랑 이석이 계속 말을 건다. 교사 인영과 학생 인영이 만났던 것처럼 첫사랑 이석과 학생 이석이 만난다. 사랑한 자기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충돌은 자신이 사랑한 과거와 현재의 충돌로 이어진다.
- 이석은 과묵하게 있다가 거실의 게임기 앞으로 자리를 앉는다. 그리고 거기로 정우가 따라들어가며 두 사람은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대전 게임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인영의 감정을 두고 겨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게임에서 정우는 이석에게 거의 묵사발이 난다. 엇갈리는 관계 속에서도 이석과 인영을 밀어주는 영화의 은밀한 신호다. 그러면서도 인영이 사랑니때문에 통증을 느끼자 정우는 이를 자연스럽게 챙긴다. 정우에게도 어느 정도 여지를 남기며 영화는 이 사각관계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 정우와 이석이 게임을 할 동안 마루에 단 둘이 남은 인영과 첫사랑 이석은 대화를 나눈다. 자기가 일부러 교과서를 빌렸었다는 이석의 고백으로 영화는 인영과 첫사랑 이석의 관계가 과거완료가 아니라는 암시를 한다. 인영이 과거의 이석을 소환했던 것처럼 이석 역시 과거를 매개로 현재의 인영과 접점을 만들어낸다. 영화가 학생 인영(혹은 인영의 과거)의 장면에서 보여줬던 교과서는 윤리였다. 이석이 꺼내온 책은 세계지리다. (지구본을 좋아했던 이수의 설정을 보면 이 쪽이 더 아귀에 맞는다. 혹은 윤리와 세계 지리가 인영과 이석이 서로를 향한 애정을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확고한 과거는 현실과 충돌한다. 서로 닮지 않은 이석, 윤리 교과서가 아닌 세계지리 교과서, 내내 경박해보이던 첫사랑 이석은 프레임 속에서 무게를 갖춘다.
- 사랑니 때문에 신음소리를 내자 인영을 향해 세 남자가 일제히 시선을 꽂는다. 카메라는 걱정스러운 얼굴의 이석, 정우 , 이석을 차례로 담는다. 인영은 욱신거리는 입가를 부여잡고 웃는다. 진위에 상관없이 사랑의 감정이 머물렀던 이들이 자신을 향해 공전한다. 서른살, 첫사랑과 또사랑이 엇갈리면서 인영의 주위를 맴돈다.
- 정우와 이석은 평상에 누워 나무에 열린 꽃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마루에 앉은 이석은 다른 꽃을 바라본다. 이석의 시선을 따라간 인영도 그 꽃을 발견한다. 인영이 모텔에서 훔쳐왔던 난초에 꽃이 피어있다. 네 명의 엇갈리는 감정 속에서 인영과 이석은 둘 만이 공유하는 역사를 몰래 나눈다. 시간을 관통하는 절대와, 시간들이 충돌하는 상대의 논리에서 어지롭게 오가던 감정은 결국 처음 느꼈던 설렘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한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속에서도 인영과 이석이 맞춰 도는 축이 있다. 이 둘의 미소는 왈츠를 춘다.
- 단 한송이 꽃은 수없이 피어있는 벚꽃 가득한 장면으로 넘어간다. 환자복을 입고 있던 학생 인영과 정우가 병원 어딘가에 있다. 인영은 정우에게 꿰맨 맹장 수술 자국을 봐주라고 한다.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 상처를 보여주는 인영이 울먹거리며 정우에게 말한다. 또 다른 인영일까. 이것이 학생 인영이라면 그는 맹장수술처럼 사랑을 떼어내고 그 아픔을 견디고 있다. 과거의 인영이라면, 떠나가버린 이를 안은 상처가 돌아온 이에게 보듬어지는 이야기가 된다. 시간은 순환한다. 간절한 바람은 세월을 타고, 아뜩한 수의 벚꽃잎이 다 흐드러지고 훔친 난초의 꽃으로 다시 화한다. 너무나 사랑해서 사랑하는 이가 되버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인영은 이석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과거의 통증이 다시 욱신거리고, 과거의 이석도, 현재의 정우도 아닌 또 다른 이석이 그 때의 이석으로 다시 인영에게 찾아왔다. 어지로이 도는 세상에서 잔상이 되어버린 이가 다시 마음 한가운데로 돌아와 손을 마주잡았다.
@ 이날 GV만큼은 감독님이 "정답"에 가깝게 이야기를 해줬던 듯. 답을 듣고나서야 미로의 출구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