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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4/14 17:55:19
Name 글곰
Subject [일반] 두 개의 관점
내가 공익근무를 했던 곳은 지방 환경청에 속한 조그마한 출장소였다. 5급 사무관이 출장소장을 맡고 있었고 직원을 전부 합쳐 봤자 열손가락 안쪽으로 꼽을 수 있으리만큼 작은 기관이었다. 나는 오후면 추레한 초록색 공익 옷을 입고 꽤 값이 나가는 검은색 측정기를 든 채 쭐레쭐레 걸어가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을 매일 측정하여 대장에 기록했다. 대체로 별다른 일은 없었고 나는 한가했다. 그래서 나는 알뜰살뜰하게 시간을 낭비했다. 룰루랄라.

출장소의 주 업무는 지역 업체들의 폐기물 배출과 환경오염 등을 단속하는 일이었다. 공장들이란 대체로 최대한 환경규제를 어기려 애쓰는 편이었고, 그래서 항상 적발되는 위반건수가 많았다. 공무원들이 으레 그러하듯 출장소도 매일 월요일 아침 아홉 시에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두 팀으로 나누어진 직원들이 지난 주의 단속 실적을 보고하고 공익근무요원은 커피를 타서 날랐다. 그즈음해서는 웬일인지 적발 건수가 평소보다 줄어든 상태였다. 보고를 들은 출장소장은 흡족하게 말했다.

“위반하는 업체들이 줄어든 걸 보니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구먼. 다들 고생이 많으셨네.”

다음 주에 정기인사발령이 났다. 전임 소장은 환경청으로 들어가고 대신 다른 사람이 출장소장에 임명되었다. 월요일 회의에서 새로운 소장은 적발 건수가 줄어들었다는 보고를 들은 후 짜증을 냈다.

“적발 건수가 줄어들었다면 직원들이 일을 너무 안 한 것 아닙니까? 팀별로 계장님들이 좀 더 챙겨 보세요.”

이 이야기를 통해 딱히 주장하고 싶은 교훈은 없다. 다만 똑같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그토록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말이지만, 내가 업무시간에 이런 글이나 쓰면서 월급도둑질을 하는 것도 혹여나 어떤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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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키
16/04/14 18:11
수정 아이콘
말년과 신규부임의 차이도 있을 것 같아요...
16/04/14 22:10
수정 아이콘
군기 잡기 vs 떠나는 입장에서 베풀어두기의 차이일 듯요. 속 생각은 달랐을 지도.
결혼해도똑같네
16/04/15 06:32
수정 아이콘
TMS를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글을 곱씹게 되네요. -_-
drunken.D
16/04/15 08:33
수정 아이콘
월급루팡이 되어 곰국지를 선물하셨으니 바람직한 일이 없진 않습니다.

공직 사회나 샐러리맨 사회나 결국 관리자들의 시선이 조직의 방향성을 정한다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시선 보단 획일화 된 시선을 요구하는 게 우리 사회인지라.. 또 하루 이 울타리 속에서 살아갈 걸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 오네요.
16/04/15 16:21
수정 아이콘
굳이 선택하자면 좋은게 좋은거다 식으로 긍정쪽을 선택할래요.
16/04/16 00:50
수정 아이콘
어떤 일이나 현상이 발생했을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또는 해석)은 하나로 정해지는 경우는 없는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두개 이상의 해석이 가능하더군요.

예를 들면 "붕당정치는 모래알 처럼 흩어지고 패가르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특징이 반영된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주장을 할 수도 있고, "현대적 정당정치와 유사한 형태가 이미 조선시대에 시작됐다"라는 어느정도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하죠. 책이 깨끗하면 "아 이사람은 책관리를 잘하는구나!" 또는 "아 이사람은 책을 읽지도 않고 장식용으로 쓰는구나"등등...

조직에서 일하다면 보면 어떤 상황에 대해 인식하는 대처하는것을 보면 책임자의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180도 다른경우도 태반입니다. 군에 있을때 전임사단장은 병영 분위기가 밝아야 사고도 예방되고 병사들이 즐겁게 생활 할 수 있다고 영내 건물들 도색을 밝은색 위주로 하라고 해서 창고고 휴게실이고 다 밝은색으로 도색했는데, 이후에 오신 사단장님은 부대내 모든 건물은 전시에 활용할 수도 있는 군시설이므로 모두 위장 도색을 하라고 해서 모두다 국방색위주의 얼룩무늬 위장도색으로 다시 한적도 있죠. 물론 두분다 생각이 있어서 하신것이고, 딱히 틀린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밑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괴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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