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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7/31 03:02:27
Name sungsik
File #1 사도세자묘지명.jpg (101.7 KB), Download : 61
Subject [펌글/역사] 영조의 사도세자묘지문



명문 글들이라 하여 예전 글들이 올라오길래 저도 하나 가져와 봅니다.
사실 명문이나 그런 건 아니고, 사도세자가 죽은 후 그의 묘지문을 영조가 말하고 받아 적은 것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사도세자의 묘지석은 5개의 청화백자판에 기록된 내용이며 원래 기존에는 묘지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정조시절 사도세자묘가 양주에서 수원으로 이장됐을 때 분리되어 따로 보관중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1999년에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묘지석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고 그 사람의 인적사항 등을 무덤 앞에 있는 상석 안에 보관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런 내용뿐 아니라 사도세자에 대한 평소 행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먼저 보내야했던 영조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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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지문 
유명조선국 사도세자 묘지. 사도세자는 이름이 선이고 자가 윤관으로 
영조 즉위 을묘년(11년/1735) 1월21일 영빈의 아들로 탄생하였다.
나면서부터 총명하였고 자라면서는 글월에도 통달하여 조선의 성군으로 기대되었다.
슬프게도 성인을 배우지 아니하고 거꾸로 태갑*의 난잡하고 방종한 짓을 배웠더라.
슬프도다, 자성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것을 훈유하였으나 제멋대로 언교를 지어내고 
군소배들과 어울리니 장차는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노라.



자고로 무도한 군주가 어찌 한둘이오만, 세자시절에 이와 같다는 
자의 얘기는 내 아직 듣지 못했노라. 그는 본래 풍족하고 화락한 집안 출신이나 
마음을 통제치 못하더니 미치광이로 전락하였더라. 지난 세월 태갑의 뉘우침을 바랬으나
끝내는 만고에 없던 사변에 이르고, 백발이 성성한 아비로 하여금 만고에 없던 짓을 저지르게 
였단 말인가? 오호라, 아까운 바는 그 자질이니 개탄하는 바를 말하리라. 
슬프구나, 이는 누구의 허물인고 하니 짐이 옳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소치일진데 
어찌 너에게 허물이 있겠는가? 슬프도다, 13일의 일을 어찌 내가 즐기어 하였으랴,
찌 내가 즐기어 하였으랴. 만약 네가 일찍 돌아왔더라면 어찌 이런 시호가 있었으랴.


강서원에서 여러 날 뒤주를 지키게 한 것은 어찌 종묘와 사직을 위한 
것이겠는가? 백성을 속이는 것일지니라. 생각이 이에 미쳐 진실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으나 9일째에 이르러 네가 죽었다는 망극한 비보를 들었노라.
는 무슨 마음으로 칠십의 아비로 하여금 이런 지경에 이르도록 했느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구술하노라. 때는 임오년 여름 윤5월하고도 21일이라.
이에 다시 예전의 호를 회복하게 하고 시호를 특별히 하사하여 사도라 하겠노라.
슬프도다, 30년 가까운 아비의 의리가 예까지 이어질뿐이니 이 어찌 너를 위함이겠는가? 
슬프도다, 신축일의 혈통을 계승할데 대한 교시로 지금은 세손(정조)이 있을 뿐이니 
이는 진실로 나라를 위한 뜻이니라.



7월23일 양중 중랑포 서쪽 벌판에 매장하노라. 
슬프도다, 다른 시혜 말고 빈에게는 호를 하사하여 사빈이라고 하는 것으로만 그치노라. 
이것은 신하가 대신 쓰는 것이 아니며 내가 누워서 받아 적게 하여 짐의 30년 의리를 
밝힌 것이니, 슬프구나. 사도는 이 글월로 하여 내게 서운함을 갖지 말지어다.
세자는 임술년(1742)에 학문에 들어가고 계해년(1743)에 관례를 올리고
자년(1744)에 가례를 올려 영의정 홍봉한의 여식이자 영안위 주원의 오대손인 
풍산홍씨를 맞아들였다. 빈은 2남2녀를 두었는데, 첫째가 의소세손이며 
째도 곧 세손으로 참판 김시목의 여식이자 부원군의 5대손인 청풍김씨와 례를 올렸다.

  

장녀 청연군주, 차녀 청선군주가 있으며 측실로 또한 3남1녀의 자제를 두었다.
승정 기원후 135년 임오(1762,영조 38년) 7월 일.


*태갑 : 은나라 탕왕의 손자로 방탕한 생활로 재상 이윤에 의해 3년간 별궁에 갇히고 후에 죄를 뉘우쳐 다시 복직한 인물





출처 :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230193
본 글의 내용 일부를 제가 느낌에 맞게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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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이 왕이다
15/07/31 04:19
수정 아이콘
'...생각이 이에 미쳐 진실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으나 9일째에 이르러 네가 죽었다는 망극한 비보를 들었노라....'
열흘째에 꺼내 주려고 했단 걸까요? 정말 저당시의 실제 상황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모든 게 이해가 안가는 것들 투성이라...
15/07/31 04:57
수정 아이콘
잔인함이 너무 심했죠
사도세자의 기행과 횡포가 문제라면 공론화해서 적당한 처벌을 어떻게 내릴것인지 신하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을텐데 뒤주에 가두고 음식도 끊는 잔인한 사형을 내리다니요...
15/07/31 08:13
수정 아이콘
임금이 신하들을 '내 어미 죽인 놈'이라 여긴 연산군의 사례가 있어서 그게 안 쉬웠을 겁니다.
물론 정조의 그릇이 연산군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해도, 세자도 한 순간에 비뚤어져 그 모양이 되었는데 세손도 그럴 보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결국 '자식 입장에서 결코 해할 수 없는' 영조 자신이 직접 손 쓰는 것이 파장을 최소화하는 일인 것은 맞았죠.
우주모함
15/07/31 11:34
수정 아이콘
https://namu.wiki/w/%EC%9E%84%EC%98%A4%ED%99%94%EB%B3%80

이걸보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죠.

그나저나 사도세자건은 사도세자보다도 그냥 애비가 또라이같습니다.
영조가 사도세자한테 한거 보면 미치지 않는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어요.
겨울삼각형
15/07/31 14:25
수정 아이콘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힐때.. 영빈 그러니까 사도세자의 친모 마저도 여기에 찬성(이라기 보다 죽여야 한다고 주장을..) 하죠.

사도세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실록이나 한중록 등을 교차로 확인해보면, 사도세자가 많은 사람을 살해 했다는게 현재 중론이지요..

사도세자의 후궁인 경빈박씨에 대한 내용만 보더라도..
https://namu.wiki/w/%EA%B2%BD%EB%B9%88%20%EB%B0%95%EC%94%A8#s-2
아케르나르
15/07/31 16:28
수정 아이콘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h002 이 글 말미에도 영조의 트라우마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평이 있네요.
그나저나 윤 5월이면 양력으로 7월쯤 될까요? 염천에 물도 안 주고 가뒀으니 고통이 더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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