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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6/14 14:51:37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영화공간]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악역 등장씬 10선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공간]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악역 등장씬 10선


오늘 영화공간은 제목 그대로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악역 등장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봤던 작품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악역 캐릭터들의 첫등장씬들을 국내, 국외로 나눠 각각 다섯편씩 총 열편을 (순위에 관계없이) 꼽아봤다.



1.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조진웅) 등장씬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박력 있고 임팩트 있는 등장씬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조진웅) 등장씬이다. 영화 [끝까지 간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영화의 잠재력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적어도 이 장면만큼은 탈충무로급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기존 할리우드 영화들에 견주어 봐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카리스마와 박력을 뿜어내는 등장씬이다. 내 개인적으론, 안 그래도 거구의 덩치를 지닌 조진웅의 몸집이 1.5배 가량은 더 커보이게 만드는 착시마저 느껴질 만큼 뇌리에 강하게 남는 장면이었다.    







​2. [괴물]의 괴물 등장씬



개인적으로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 등장씬과 더불어 한국영화 속 악역 캐릭터 등장씬의 투탑으로 꼽는 [괴물]의 한강괴물 등장씬이다. 봉준호 감독이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의 러닝타임이 한참 진행된 후에, 그리고 어두운 밤에 하이라이트로 괴물이 등장하는 보통의 괴수영화의 공식을 뒤엎으며 영화의 극초반부에, 더군다나 그것도 벌건 대낮에 한강공원 고수부지에서 대놓고 출몰하는 이른바 ‘진격의 괴물씬’은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2006년도 작품임을 감안할 때, CG의 수준도 나름 준수하지만 만약 할리우드 수준의 제작비가 받쳐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3. [관상]의 수양대군(이정재) 등장씬



'캐릭터의 카리스마와 강렬함을 어떻게 하면 한방에 관객들에게 각인시킬 것인가'에 대한 교과서적인 해답을 보여준 등장씬이라 할만하다. 관상가 내경(송강호)과 수양대군(이정재)이 처음으로 조우하는 씬으로 배우의 눈빛 연기와 화면의 구도, 배경음악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아낸다. 스크린 속 주인공 내경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스크린 밖 관객까지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등장씬. 다만 얼굴의 흉터에서도 보여지듯 수양대군이란 악역 캐릭터를 너무 1차원적으로만 그려낸 것은 이 작품의 흠이자 아쉬움.







4. [명량]의 구루지마(류승룡) 등장씬



사운드가 영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량]의 왜장 구루지마(류승룡) 등장씬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이 참여했다는 브라스 섹션의 웅장하고 압도적인 음악 속에 등장하는 구루지마 군대의 위용이 등장인물들과 관객까지 잡아먹으며 스크린을 고스란히 장악한다. '위압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면으로 웅장한 사운드와 어우러진 구루지마의 기괴한 가면이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다만 이 등장씬에서 최고조를 찍은 구루지마의 카리스마가 영화가 진행될수록 급격하게 쪼그라들며 용두사미로 그친 것은 아쉬운 지점.







5. [타짜]의 아귀(김윤석) 등장씬




"다 때 되면 남들이 알아서 잘라줄 거인디, 고거 그냥 나둬라.", "시팔 뭔 통성명은.." 국내와 국외를 통틀어 내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악역 캐릭터인 [타짜]의 아귀(김윤석) 등장씬이다. 마치 노래하듯 대사를 내뱉는 김윤석의 톤과 건들거리는 그의 몸짓, 그리고 하늘하늘한 옷깃까지. 압도적이고 강렬한 맛은 없어도 오히려 아귀의 캐릭터가 여운처럼 길게 남으며 계속 돌려보게 되는 그런 장면이다. 개인적으론 "나 이렇게 카리스마 있고 대단한 놈이야." 라고 웅변적으로 시위하듯 등장하는 수양대군이나 구루지마의 등장씬보다 더 흥미로운 장면이 아닌가 싶다.







6. [레옹]의 스탠스 필드(게리 올드만) 등장씬



뤽베송의 명작 [레옹]의 주인공은 '레옹'이자 '스탠 형사'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글자 그대로 약빤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게리 올드만의 첫 등장씬으로 평화롭게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그의 뒷모습만으로도 무언가 범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진다. 이 씬 조금 뒤에 이어지는 ‘캡슐 마약 흡입씬’은, 마약에 찌들어 온갖 악행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스탠 형사의 정체성과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의 클래스를 동시에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지금껏 널리 회자된다. 마약을 흡입한 후 머릿속으로 베토벤의 음악을 그리며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의 가족을 살해하는 씬에서의 연기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영역이다.







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등장씬



[태양은 없다]의 병국(이범수), [범죄와의 전쟁]의 박창수(김성균)와 함께 단발머리 삼대장(?) 가운데 하나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단언컨대 이 세 명의 단발머리 삼대장 가운데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냉혈한은 단연 안톤 쉬거이다. 그 유명한 슈퍼마켓씬, 모텔습격씬 등 그가 등장한 씬마다 명장면 아닌 장면이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의 오프닝과 함께 이어지는 첫등장씬에서 그는 경찰을 교살하며 특유의 냉혹하고 차가운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특히 살인 후 수갑을 풀고 손을 씻는 장면과, 살해당하며 몸부림친 경찰의 구두 뒷굽으로 난장판이 된 바닥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 씬의 백미.







8.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 등장씬



속칭 '지린다'라는 표현은 이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극중 FBI 요원으로 등장하는 스탈링(조디 포스터)과 감옥에 수감된 한니발 렉터 박사(안소니 홉킨스)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으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눈빛 하나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안소니 홉킨스의 아우라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서 정신과 의사로 등장하는 그가 스탈링과의 짧은 대화만으로 그녀의 개인 취향과 가족사,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까지도 파헤쳐내는 장면에서의 화면 장악력은 어마어마한데, 그의 연기뿐만 아니라 이를 받아주는 조디 포스터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9. [다크 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 등장씬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다크 나이트]의 오프닝 시퀀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히스 레저의 연기를 두고 극찬했다는 이 은행강도 시퀀스의 말미에, 정체를 밝히며 등장하는 조커(히스 레저)의 모습이 담긴 씬이다. 은행털이 과정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조율하는 조커의 모습 속에 앞으로 진행될 영화의 흐름 안에서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조커의 능력과 존재감이 상징적으로 담긴 그런 씬이기도 하다. 작은 동작 하나, 짧은 말투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히스 레저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시작부터 빛을 발한다.







10.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워보이 기타맨(iOTA) 등장씬



영화 속 캐릭터 등장씬을 얘기하면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임모탄 군대의 문선대-_-소속이자 유일한 연예병사(?)인 기타맨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최종보스는 아닐지언정 임모탄 군대의 웅장한 출정씬에서 화려하게 등장하며 악당 군대의 현란하고 압도적인 위용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 워보이 캐릭터로 작품 안에서 씬 스틸러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화를 보고나서도 임모탄보다 더 뇌리에 남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한 기타맨을 연기한 배우는 호주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iOTA라고 하며, 영화에서 그가 실제로 기타 연주를 한 것은 물론, 작품의 전쟁 테마곡을 직접 작곡 및 녹음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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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Reverse Carry
15/06/14 15:12
수정 아이콘
저는 오늘 보고와서 그런지 악역은 아닌데 쥬라기 공원 1편의 티렉스 등장씬이 인상적이네요. 크크
저는 저 중에서 양들의 침묵과 다크 나이트가 더 잘만든 등장씬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포스로는 관상의 수양 등장씬이 더 컸던 기억입니다.
15/06/14 15:14
수정 아이콘
오오오 기타맨!!
Shandris
15/06/14 15:1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이걸 등장씬이라 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엑스맨 퍼스트클래스 마지막에 에릭이 자기를 매그니토라 불러달라했던 장면이 인상적이더라요...그러고보니 얘가 매그니토였지...라는 기분이었달까...
그리고 불꽃 기타맨은 악역이 아니라 진주인공이죠, 넵...
마스터충달
15/06/14 15:20
수정 아이콘
한국영화만 생각하고서는 '이건 <끝까지 간다>랑 <관상>이다' 생각하고 들왔는데
<레옹>이.... 덜덜
파우스트
15/06/14 15:23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그런데 괴물 씬에서 마지막 도날드 상병은 잡아먹힌건가요?
세상사에지쳐
15/06/14 16:07
수정 아이콘
팔이 잘리고 수술중 죽는데 이게 나중에 괴물에 치명적 바이러스가있다 한강을 차단하고 무슨 물질을 살포해야한다는 근거로쓰이죠
15/06/14 15:23
수정 아이콘
역시나 잘 봤습니다. : )
마치 여러편의 영화를 한 번에 본 것 같은 좋은 기분이네요~
일요일 오후를 잘 보냈습니다. 하핳
즐겁게삽시다
15/06/14 15:24
수정 아이콘
와 다 엄청 좋아하는 씬이네요.
다쓰 베이더 등장씬이 왠지 있을 것 같았는데 없어서 아쉽네요 흐흐
15/06/14 15:24
수정 아이콘
이 글은 마지막 기타맨을 위해 갑자기 쓰신 글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잠깐 언급하신 단발3대장 중 태양은없다의 이범수도 기억에 남네요 주차장에선가 쇠파이프끌고 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아 그런데 등장씬이 아니네요 음
Eternity
15/06/14 15:26
수정 아이콘
헛.. 걸렸..-_-;
예리하시군요.. 뭐 굳이 변명하자면 [끝까지 간다]의 조진웅과 기타맨 이 둘을 얘기하고 싶었셉습..
블랙숄즈
15/06/14 15:27
수정 아이콘
모바일엔 타짜가 안뜹니다ㅠㅠ수정해주세요!
Eternity
15/06/14 15:32
수정 아이콘
[타짜]의 아귀 등장씬만 유투브에 없어서 네이트 동영상을 링크했습니다. [타짜]는 컴으로 보셔야 할듯 싶네요;;
블랙숄즈
15/06/14 15:48
수정 아이콘
아 그래서 저도 저장면 보고싶어서 유트브 찾아봤는데 없었군요ㅠㅠ
JISOOBOY
15/06/14 15:41
수정 아이콘
문선대 소속...크크크크크 너무 웃기네요.
불편한 댓글
15/06/14 15:46
수정 아이콘
전 캡아 윈터솔져에서 도로위 닉퓨릭 차를 뒤집으며 등장한 윈터솔져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자신을 덥쳐오는 차를 시크하게 피하는 윈터솔져의 뒷모습은 간지가 철철 흘렀어요
Eternity
15/06/15 09:51
수정 아이콘
아.. 윈터솔져를 깜박했네요. 이건 제가 깜박한 게 맞습니다.
생각났다면 무조건 넣었을텐데 말이죠. 진짜 그장면 간지가 철철 넘치는데 말이죠.
복타르
15/06/14 16:02
수정 아이콘
[첫]등장씬만 아니라면... 전 바스터즈의 란다대령을 뽑고싶네요.
란다대령과 쇼샤나의 만남씬은 나까지 숨막히게 만들정도였네요.
이쥴레이
15/06/14 21:13
수정 아이콘
그게 첫 등장씬 아닌가요?

전 첫 등장하면서 10분동안 긴장감으로 숨이
막히더군요. 이게 진짜 배우의 힘이라는걸 알게되었습니다.

본문에도 있을줄 알았습니다. ㅠㅡㅠ
Go2Universe
15/06/14 16:05
수정 아이콘
<노킹온헤븐스도어>에서 룻거하우어가 걸어내려올때
<케이프피어>에서 도망치던 가족을 같은차 바닥을 부여잡고 따라갈때
사실 찾아보면 엄청나게 많고 한국영화보다 외국영화에 훌륭한 장면이 한 만배쯤 많죠.
한국영화는 인물의 첫등장에 강렬한 의미부여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거든요. 절대적인 편수가 적어 생기는 문제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양들의침묵>은 배우의 연기만이 아니라 촬영, 미술, 연출 3박자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장면이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이 연기가 변수가 아닌 상수였던 탓이 크지만 말이죠.
Eternity
15/06/15 09:46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대로 한국영화와 외국(특히 할리우드)영화의 산업 규모나 토양 자체가 비교불가의 수준이니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얘기해도 둘 간의 격차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건 그렇고 [양들의 침묵]은 두 배우의 연기에만 집중해서 항상 이 장면을 봤는데
말씀하신 다른 요소들도 주의깊게 한번 살펴보며 다시 영화를 봐야겠습니다.
치키타
15/06/14 16:06
수정 아이콘
다스베이더는 있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쌔씁니다
루크레티아
15/06/14 16:14
수정 아이콘
안소니 홉킨스경은 진짜 렉터 그 자체..
원작자보다 훨씬 더 캐릭터를 이해하는 연기는 진짜 귀기 어린 연기입니다.
15/06/14 16:29
수정 아이콘
아 괴물에서 컨테이너 박스 못 들어간 아줌마가 이제보니 라미란이네요
Neandertal
15/06/14 16:32
수정 아이콘
타짜 처음 볼 때 김윤식이라는 배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진짜 저 등장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나 나쁜 놈이야 내세우지 않아도 악의 스멀스멀 풍겨오는 분위기랄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 역시 악마가 이 세상에 현신한다면 바로 저런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제가 감독이면 좀 유치하지만 [아귀 vs 안톤 쉬거] 같은 역할로 절대 악 들의 대결하는 반 영웅물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Eternity
15/06/15 09:42
수정 아이콘
배짱이나 깡으로만 놓고보면 아귀가 안톤 쉬거에게 밀릴 리가 없지만 싸움을 붙이면 총기사용에 능숙한 안톤 쉬거에게 그냥 발릴 듯 하네요;;
다만 안톤 쉬거랑 아귀랑 단둘이 맞고를 치며 화투-_-로 붙으면 당연히 아귀가 탈탈 털겠죠 흐흐
어쨌든 전투 능력치로만 치면 [안톤 쉬거 vs 조커] 정도의 매치업은 돼야 흥미진진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솔로10년차
15/06/14 16:51
수정 아이콘
간만에 댓글을 날렸... ㅠㅠ
저는 저 중에서 관상의 수양대군 등장씬에 가장 감탄했었습니다. 저 중에서 본 영화는 모두 8개인데, 나머지 7개는 해당씬 이후에 '우와!'하면서 감탄하고 놀랐다면, 수양대군 등장씬은 관객일 뿐인 제가 '이렇게 진행하다가는 수양대군이 등장할 때 망가질 것 같은데'라는 걱정까지 했을 정도로 기대감을 고조시켜놓고, 그 기대감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등장씬으로 나왔거든요. 한명회등장씬은 다른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수양대군 등장씬은 정말 감탄했었습니다. 멍석을 그렇게 열심히 깔드만, 만족까지 시키다니... 하고 말이죠. 물론 제가 영화에 정통하지 않다보니 그런 감도 있지만요. 전 '울어라!'하면 울고, '웃어라!'하면 웃는 감독에게 순응적인 관객이라.
뿌넝숴
15/06/14 17:00
수정 아이콘
허지웅 씨가 필름 2.0에 기고한 글의 일부인데, 양들의 침묵 관련해 읽으면 흥미로울 텍스트라서 긁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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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 포스터는 짧은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지금 앤소니 홉킨스라는 이름의 저 영국 배우가 빈정거리는 모양새란 대본에 없는 내용일뿐더러 리허설 때도 하지 않았던 대사다. 그들은 볼티모어 주립 정신이상자 수용병원에서 클라리스 스탈링과 한니발 렉터가 처음으로 만나는 <양들의 침묵>의 도입부를 촬영 중이었다.

“값비싼 가방에 싸구려 구두라, 때 빼고 광냈지만 품위가 없군. 영양상태는 좋아 보이지만 저소득층 백인 쓰레기 집안의 자식일테고, 웨스트 버지니아 억양이 자기도 모르게 묻어나고 있어.” 여기가 문제다. 웨스트버지니아 운운하며 조디 포스터의 남부식 억양을 따라해 조롱하는 행동 따위는 전혀 미리 논의되거나 합의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흡사 연기의 일부가 아니라, 조디 포스터를 향한 개인적 공격처럼 느껴졌다. 당황을 넘어 이젠 화가 치밀어 오른다. 탁 후지모토는 두 사람을 번갈아 찍는 대신 두 대의 카메라를 한꺼번에 작동시켜 배우들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조나단 드미의 컷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포스터는 자신이 빨리 다음 대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절망적이다. ‘문제는 저 망할 치가 내 억양을 따라하며 조소를 날렸을 때 머릿속이 이미 하얘져 버렸다는 거지.’

침이 꼴깍 넘어가고 눈자위 밑으로 미세한 경련이 두어 차례 지나갔다. 앤소니 홉킨스의 치켜뜬 두 눈이 그제야 시야에 온전히 들어왔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붉게 충혈된 잔인한 눈이다. 입가에 흩어진 미소가 그의 눈동자와 강렬하게 대비됐다. 그 안에 반사된 자신의 표정을 발견했을 때, 더 이상 그녀는 화를 내거나 당황하고 있지 않았다. 두려움에 질려 있었을 뿐이다.

앤소니 홉킨스의 예기치 못한 즉흥연기는 다음 컷에서도 계속됐다. 그가 빠른 속도로 공기를 들이마시며 기괴한 소리를 냈을 즈음 조디 포스터는 공포에 눌려 숨조차 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악몽같이 길고 긴 촬영을 모두 마치자마자 조디 포스터는 상기된 표정으로 앤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드미에게 3자대면을 요청하고 나섰다.

“어쨌든 이런 식으론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두 분 모두 아실 거예요.” 그녀는 조나단 드미가 애초 클라리스 스탈링 역으로 원했던 배우가 자신이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미셸 파이퍼나 엠마 톰슨이 아니라 정말 미안하군.’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들을 속으로 삭히며 조디 포스터는 이를 꽉 깨물었다.

앤소니 홉킨스에 대해 그녀가 아는 것이라곤 영국의 연극무대를 주로 전전하며 훌륭한 커리어를 쌓았지만 미국에서의 스크린 나들이는 그리 주목할만한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사실 정도였다. <피고인>으로 이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는 그녀는 자신보다 곱절이나 나이가 많은 이 영국 배우에게 좀 더 격에 맞는 대우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앤소니 홉킨스는 예의 그 사려깊은 표정으로 정중히 사과했고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된 듯했다. 그녀가 모니터로 촬영 분량을 확인하기 전까지 말이다. 조디 포스터는 오늘 자신의 연기가 다른 때와 사뭇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거기에 클라리스 스탈링을 연기하는 조디 포스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겁에 질려 간신히 말을 내뱉는 남부 출신의 FBI 연수생이 존재할 뿐이었다. 여태껏 자신이 연기해본 그 어떤 역할보다도 클라리스 스탈링이라는 인물이 잘 이해되기 시작했다. 혹시 앤소니 홉킨스는 이걸 모두 계산하고 있었던 걸까. 고개를 돌려 그의 표정을 살폈다. 조디 포스터와 앤소니 홉킨스의 눈이 마주쳤다. 한니발 렉터가 찡긋, 윙크를 날렸다.
Eternity
15/06/15 09:4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소개 감사합니다. 몰랐던 사실인데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강가딘
15/06/14 17:05
수정 아이콘
저도 관상의 수양대군 등장씬을 최고로 꼽고 싶군요
그 포스는 정말 후덜덜이란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루이스비톤
15/06/14 17:56
수정 아이콘
진짜 하비에르 바르뎀은 역대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음악 없이 저런 섬뜩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이분 밖에 없을듯..

개인적으로 이 순위에서 가장 만나기 끔찍한 사람이에요
15/06/14 19:02
수정 아이콘
진짜 이정재 등장신에서 지렸습니다..

저는 1등 이정재 등장신이요... 관상 영화는 그저 그랬는데

저 이정재 등장신에서 지려서 진짜..
신중함
15/06/14 20:46
수정 아이콘
저도 수양대군 씬이 눈에 가네요. 나 등장한다 하고 예고하고 등장하는데도 포스가...
Awesome Moment
15/06/14 21:4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이분야 갑은 레옹의 게리 올드만인것 같아요.
공노비
15/06/14 22:13
수정 아이콘
제목보자마자 끝까지간다 생각했네요..
15/06/14 22:40
수정 아이콘
끝까지 간다 다시 봐도 카리스마 넘치는 등장씬이네요.
15/06/14 22:59
수정 아이콘
신세계 보고 관상을 봤는데 정재형이 너무나 멋지게 등장하더군요
신세계의 이자성의 모습을 지운 등장이라 더 멋졌어서 다음 영화도 기대했건만.....
15/06/15 11:42
수정 아이콘
전 관상이랑 다크나이트 흐흐
신예terran
15/06/15 17:46
수정 아이콘
저도 바로 끝까지 간다 나오겠지 했는데 처음부터 나오네요. 영화를 잘라서 보니까 좀 감이 덜한데 영화 전체로 봤을때 그 압도적 긴장감은 모든 영화 통틀어서 최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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