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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소리 이전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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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욱이는 잠시 멈춰있는 것도 참지 못할 만큼 극성이었다.
항상 뛰었고 소리를 지르고 나에게 올라 탔다.
항상 나를 너무 크게 불렀다. 아빠!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진욱이를 봤고
나는 그게 민망해서 늘 조용히 좀 말하라고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빨리 가자, 아빠! 응 조금만 기다려. 먼저 가지 마라 진욱아. 아빠 옆에 있으렴.
먼저 가지 마라. 어디 갔니? 진욱아 어딨니? 아빠랑 같이 가야지.
진욱이가 빗속에서 우두커니 나를 보고 있었다.
멀리 있었지만 나는 그 시선을 알 수 있다. 진욱이가 나를 부른다.
나는 호스에 뒤엉킨 손을 들어 차창을 더듬었다. 진욱아 잠깐만 기다려. 지금 간다. 아빠 금방 갈게.
손톱으로 차창을 계속해서 긁어댔지만 이 얇은 유리 하나 나는 넘지 못했다.
초록색 우비를 입은 진욱이가 계속해서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빗 속에서 작은 두 손을 꽃잎처럼 펼치고.
간병인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여자 아이였다.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달려와 아이를 나무랐다.
아니, 웃고 있었나? 둘은 신나게 뛰어 놀기 시작했다. 이 빗속에서.
그 풍경을 떠나기 싫어 나는 수풀이 그들을 가릴 때까지도 한참이나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가슴에 응어리가 지기 시작한다.
힘껏 가슴을 펴봐도 펴지지 않고 계속해서 뭉쳐간다.
가슴 한 복판이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하고 곧이어 배와 어깨까지 빨려 들어갔다. 어지럽다. 눈이 부시다.
정현이의 배맡에서 나는 항상 야구에 대해 설명해 줬다. 빨리 나와서 나와 캐치볼을 하자고 졸랐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진욱이를 위해 나는 플라스틱 배트와 가장 작은 글러브를 사 두었다.
진욱아 저게 홈런이야. 치기는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일어서서 기뻐한단다. 아빠도 홈런을 쳤지. 그게 너란다.
말도 안 된다며 깔깔 웃던 정현이가 내민 책을 펼쳐 또 읽기 시작한다.
내 어릴 적 엄마가 항상 읽어주던 동화책. 이젠 진욱이에게 읽어주는 이야기.
산호 숲 바위 틈에 사는 조개가 친구들의 고통을 함께 나눠,
살피고 도우며 고통을 인내하고 마침내 이겨내
품 안에서 곱디 고운, 아니 아름다운, 아니 그보다 더 찬란한, 아니 위대한, 아니
그야말로 우리 진욱이 같은 진주를 품어내는 그 이야기.
눈동자가 자꾸만 위를 지나 뒤로 돌아간다.
끝도 없이 입이 벌어진다.
턱이 하늘을 향하고 어깨가 쪼그라든다.
산소는 들어오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고 두 손이 경직되어 공중에 뻗쳐 있다.
소백산의 험한 외형을 헤처 마침내 연화봉에 도착했다.
오래간 이어지던 숲을 나와 우리는 하늘과 맞닿은 여러 능선들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거의 다 왔다. 나는 무심코 정현이의 팔목을 잡았다.
내 스스로도 놀라 멈칫했지만 정현이는 저항 없이 나를 따랐다.
연화봉 정상에 울라 우리는 넋을 잃고 풍경에 취했다.
어쩜 하늘은 파랗고 철쭉은 흐드러졌을까.
턱까지 차올랐던 숨은, 마치 거짓말처럼 환희로 바뀌었다.
온몸을 적셨던 땀은 멀리 능선을 타고 온 바람에 흔적까지 사라졌고
그게 너무 기분이 좋아 마주보며 웃었다.
카메라 세트에 딸려온 허접한 삼각대를 펴고 우리는 나란히 섰다.
아직도 서로 많이 어색해 셀프타이머가 야속하게 길었다. 아직도 안 찍혔다.
나는 침을 삼켰다. 이제서야 삐삐 거리는 소리가 난다.
빨리 좀 찍어라 이놈아.
막상 정상에 오니 할 말도 별로 없고 이 어색함을 어떻게든 넘어서야 할 텐데 도저히 나 같은 놈은 안되나 보다.
말없이 정현이가 팔짱을 꼈고 나는 땡그란 눈에 숨이 멎는 표정으로 사진에 찍혔다.
지진이 나는 것처럼 몸이 흔들렸다.
땅이 꺼져 아주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저기로 빨려 들고 온갖 곳에 내팽개쳐 졌다.
이젠 40kg를 넘지 못하는 형편없는 몸뚱이가 그 인생처럼 찌그러 졌다.
아주 커다란, 단단하고 무거운 것이 짓누르기 시작한다. 발끝이 사르르 떨려온다.
나는 계속해서 진욱이 운동화를 찾았다. 손끝을 더듬고 고개를 흔들어 운동화를 찾았다.
어김없이 그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시끄럽게 들려온다. 새우소리.
나는 필사적으로 힘을 모아 창 밖을 봤다. 눈이 부시다.
봄이구나. 알겠다. 나는 죽는다.
무거운 돌, 더 무거운 돌, 그보다 더 무거운 돌이 계속해서 내 위로 떨어졌다.
손끝이 굳고 혀가 말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 있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나는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위에서는 더 빠르게 운명이 짓눌렀다. 빨려 들어간다. 뼈만 남은 이 초라한 몸뚱이가 더 작아지도록
천천히 무겁게 가라앉는다.
빛과 어둠이 차례로 왔다 갔다 하고 빠른 건지 느린 건지 이제는 모르겠다.
나는 점점 작아져 갔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나는 조개. 산호 숲 바위 틈에 사는 조개.
다만 불가사리에 모든 의미를 빨아 먹힌 껍질만 남아버린 조개.
그저 물결에 표류하는 껍데기. 저주에 타버리고 스스로 소멸하는 뜻 없는 존재.
조개 껍질에 수많은 균열이 생기고 차례차례 부서지기 시작했다.
부서진 조각들은 균열을 반복해 끝없이 가루로 사라져간다.
명심할 것. 가족 사진.
나는 표류하는 눈동자를 붙잡았다.
눈동자는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내가 더 필사적이었다.
오른쪽으로 천천히 줄다리기를 하듯 눈동자를 돌렸다.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가족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오른쪽 머리맡에 있을 텐데 아직 눈동자가 도착하지 못한 건지. 어둠 뿐이다.
아무 것도 없다. 눈동자를 놓쳤다. 다시 눈동자가 위를 돌아 뒤로 빙글빙글 돌았다. 명심할 것. 가족 사진.
밝아진다.
크게 환해 지더니 점점 작아져 끝내 동그란 모양의 빛 덩어리가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것. 품 안에 꽉 차게 들어올 만한 크기. 빛. 진주.
나는 멍하니 한참 동안 그 아름다운 빛을 봤다.
영롱하고 매끈한 순백의 결정.
안고 싶다.
진주를 품에 안고 고통을 보상받고 싶다. 나는 팔을 들어 손을 뻗었다.
그 소리가 들려 왔다. 타닥거리는 그 소리. 다만 달랐다.
수천 개의 실들이 하나씩 끊어지는 소리였다.
타닥. 탁. 탁.
나는 진주에게로 손을 뻗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들이 점점 빠르게 끊어지기 시작한다. 하나씩 하나씩.
눈동자도 없고 고통도 없다.
나는 고요한 무게 속에서 아주 천천히 운명처럼 당연하게 진주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은 느려지고 실들은 점점 더 빨리 끊어지고 있다.
아직. 아직 닿을 수 있다. 진주가 주인을 부른다.
실이 하나씩 끊어질 때마다 자유로 소멸해 갔다.
다리가 끊어져 사라졌고 허리가 끊어져 사라졌다. 배와 머리, 어깨가 끊어져 공허로 사라졌다.
모든 소리가 죽었다. 나는 손 끝만 남았다.
실도 이제는 단 한 가닥만이 남았다.
진주를 품고 싶다. 마지막 한 가닥의 실이 팽팽해졌다.
앉아서 수건을 개던 엄마가 나를 봤다.
검은 파마 머리 뒤로 석양이 물들어 황금빛으로 빛난다.
엄마가 웃는다. 우리 애기 엄마 불렀어?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지러질 듯 웃으며 팔을 마구 흔든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탁. 마지막 실이 끊어졌다. 나는 죽었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뒤를 돌아 봤다.
친구가 나를 보고 한참 벙긋거리다, 울음진창이 된 얼굴로 두 팔을 모아 하트를 그렸다.
나는 크게 웃으면서 말하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저 입만 벙긋거렸다. 괜찮다.
나도 두 팔을 모아 하트를 그렸다.
늙어 빠진, 어느새 훤한 머리에 배가 두툼한 내 친구.
아랫 입술을 구겨 물더니 애써 지은 웃음으로 손을 젓는다. 가라. 시간이 없다. 빨리 가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 나는 달렸다. 맞바람이 불어 왔다. 아직은 선선한
봄바람.
내 허리를 감아 돌았다. 고통은 없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끌어 안고 싶다. 함께 울고 싶다. 만나자. 지금 가고 있다.
늦어서 미안. 그제야 눈치 챈,
내 손에 들려 있는, 진욱이 운동화.
명심할 것. 꼭 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