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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29 11:23:53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무뢰한> - 질척한 하드보일드 멜로
※ 이 글은 영화 <무뢰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더러운 형사 정재곤(김남길)은 살인범 박준길(박성웅)을 쫓고 있다. 그는 잠적한 박준길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유일한 실마리인 박준길의 애인 김혜경(전도연)에게 접근한다. 정재곤은 이영준이라는 가명으로 신분을 속이고 김혜경이 일하는 단란주점 마카오의 영업부장으로 잠입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저 화류계의 끝물이라고 생각했던 김혜경의 외로움과 순수함을 알게 되고, 정재곤은 그런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리는데...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아직 해는 뜨지 않은, 어슴푸레 하늘이 밝아오는 새벽녘. 밤새 퍼마신 술에 절은 몸을 이끌고 해장을 할 겸 순댓국집으로 들어섰다. 나는 주방과 홀을 겸하는 조선족 아주머니에게 순댓국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가게 안을 둘러보니 나 말고 다른 손님이 앉아있었다. 이런 시간과 이런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미모의 여성이었다.

"여기, 참이슬 한 병 더 주세여~"

그녀가 살짝 취기가 도는 목소리로 외쳤지만, 주방에 들어간 아주머니는 주문을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녀는 다시 소리를 지르려다 이내 포기하고 김빠진 사이다처럼 의자에 늘어졌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인에게 들이대기 위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 시간이면 밖에 진짜 이슬이 많이 맺혀 있을 텐데요."

내 말에 고개를 든 그녀는 어디서 되도 않는 개수작을 떨고 있냐는 듯이 얼굴 전체에 짜증을 품고 있었다. 여기서 돌아서면 안 된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녀를 마주 본 자리에 엉덩이를 깔았다.

"혼자 술 마시면 체해요. 같이 마시죠. 내가 재미난 안주거리를 참 많이 가지고 있거든."

그녀는 귀찮음 반, 호기심 반인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나의 합석을 침묵으로 허락했다. 마주 본 그녀의 얼굴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관리를 받는 것인지 꽤 좋은 피부를 가졌지만, 화장은 왠지 싼 티가 났다. 나이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확실히 서른이 넘어 보였다. 발랄하면서도 농염한 색기를 풍기는 그런 얼굴이었다. 팔짱을 끼고 나를 찬찬히 바라보던 그녀는 대뜸 내 쪽으로 몸을 확 기울였다.

"아저씨! 오늘은 아저씨 꺼 말고 내 안주가 더 맛있을 것 같은데, 내 얘기 좀 들어줄래요?"

"밤새 재미난 일이라도 있었나 봐요?"

"네~ 누굴 만났거든요."

"남자였나 보죠?"

그녀는 내 질문을 무시한 채 대화를 계속했다.

"그의 이름은 <무뢰한>이었어요."





스타일에 어울리는 이야기, 이야기에 어울리는 스타일

그녀는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처음에는 나이가 많은 줄 알았어요. 근데 옛날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뭐랄까... 분위기가 조금 낡았다고나 할까? 낡은 아파트나 후미진 골목, 싸구려 룸싸롱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촌스럽기도 하고... 그냥 그 사람 분위기가 좀 어둡고 칙칙했어요."

그녀는 빈 잔을 가리키며, 잔을 채우라는 듯 눈짓을 했다. 나는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분위기에 어울리는 칙칙한 이야기였죠. 자기가 형사(김남길)였는데 잡으려는 살인범(박성웅)의 애인(전도연)하고 눈이 맞아버렸다나?"

"꽤 재밌어 보이는데요?"

"재밌긴요. 이런 이야기는 이제 인터넷에도 못 올려요. 쌍팔년도도 아니고 요즘에 그런 형사가 어딨어요?"

하긴... 요즘 사람들에게 들이대기에는 한물간 이야기라는 기분이 든다.

"근데 그 범인 애인이 참 불쌍하더라고요. 한창때는 텐프로에서 잘 나가는 여자였데요. 잘 나가는 조폭 두목한테 스폰도 받았다고 하고요. 그런데 부하 하고 눈이 맞아 버린 거죠. 그 때문에 그 부하는 살인범이 되었고요. 그렇게 스폰도 떨어져 나가고, 모아둔 돈은 주식으로 다 날려 먹고, 나이도 많고... 결국, 퇴물이 돼서 서울 외곽의 싸구려 룸싸롱 마담이 된 거죠. 빚만 잔뜩 진 채로요."

"<무뢰한>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네요. 낡고 촌스럽다는 건 참 씁쓸하군요."

"그렇죠. <무뢰한>의 독특한 분위기는 김혜경의 삶을 상징하는 것 같더군요."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녀는 이야기 속 그녀의 이름을 자연스레 읊었다.

"그래서 그 둘은 어쩌다 사랑에 빠졌답니까?"

"형사도 처음에는 살인범을 잡으려는 생각뿐이었데요. 가게 관리하는 놈을 협박해서 가게에 영업부장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말만 영업부장이지 솔직히 그냥 어깨죠 뭐. 그래서 김혜경 따라다니면서 외상 값 받고 그랬다나 봐요. 그러다가 여자의 의외의 모습을 보았죠. 범죄자 애인이라 그저 그런 여자겠거니 싶었는데, 의외로 강단 있어 보였나 봐요."

"잃을 게 없는 사람, 오늘만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무섭죠."

"범인을 잡으려고 형사가 돈이 많은 척 떡밥을 뿌렸데요. 도망자는 돈이 필요하니, 언젠가 여자한테 돈을 꾸러 올 거고, 그때 뿌려놓은 떡밥으로 월척을 낚을 속셈이었죠. 여자는 그것도 모르고 그 남자를 유혹해서 돈을 뜯어내려 했고요."

"질척한 이야기군요."

"네. 한물간 술집 여자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나마 아직 반반하니 몸으로 꼬셔야죠. 그치만 살을 섞던 그 순간은 행복했어요. 이 남자라면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형사 주려고 잡채를 버무리는 손길이 조금은 흥겨워 보였데요."

이야기에 너무 몰입했는지, 그녀는 마치 자기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듯 말하였다. 얼굴에 스치는 씁쓸한 미소가 눈에 밟혔다.

"마무리가 별로 좋지 못할 것 같네요."

"퇴물이 된 술집 여자이자 살인범의 애인. 그 여자는 이게 인생의 밑바닥인 줄 알았겠죠. 그런데 그 밑에 더 깊은 바닥이 있었어요. 형사에게 받은 미끼를 애인에게 전달하는 순간 경찰이 덮쳤고, 애인은 자신과 살을 섞었던 그 형사의 총에 죽었다고 하더군요."

"절망 뒤에 더 큰 절망이 있었군요. 배신의 상처가 오래갔겠네요."

"그거 알아요? 그냥 계속 시궁창이었으면 별로 상처받지 않았을 거에요. 잠시였지만 희망을 품었으니 더욱 절망스러웠겠죠."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답니까?"

"나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허허 웃으면서 나중에 다시 만났다가 칼빵 먹었다며 배에 있는 상처를 보여줬어요."

그제서야 여인의 목에서 남자의 스킨 냄새가 풍겨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차를 놓친 기분이었다.

"아저씨. <무뢰한>이야기 어때요?"

"지독한 하드보일드 멜로군요. 뭐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 같기도 한데, 분위기와 이야기가 참 잘 어울리네요. 연륜이 꽤 있나 봐요? 이렇게 분위기와 이야기가 절묘하게 호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죠."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새초롬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무슨 말실수를 한 걸까?

"여자 나이를 그렇게 함부로 넘겨짚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 매너 좋은 줄 알았는데, 센스는 영 꽝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빈 잔을 들이밀었다.

"내공이 높다고 합시다."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빈 잔에 술을 채웠다.

[<무뢰한>의 독특한 스타일은 김혜경의 삶을 상징한다.]





어울리는 김남길. 그리고 전도연, 전도연, 전도연.

"그 형사, 어떤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 얘기 좀 더 해봐요."

그녀는 다 식어버린 국밥을 한술 뜨더니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눈을 치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 떠올리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눈빛이 굉장히 날카로웠어요. 비정한 사람이라는 기분이었는데, 의외로 성격은 서글서글하고 재밌더라고요. 그런 성격 때문인지 이렇게 지독하기만 한 일은 처음 겪은 것 같았어요."

"그래도 마스크 덕분에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맞아요. 그 분위기랑 정말 잘 어울리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뚱해 보이기도 하는 표정이어서 정말 그 여자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그냥 일이었을 뿐인지 본심을 잘 드러내진 않았어요. 그래도... 김혜경과 동침하던 날을 이야기할 때 보여줬던 눈빛은 잊지 못할 거에요. 우수에 찬 남자의 눈빛이 멋있다는 말을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그녀는 또 한 번 추억에 잠겼다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그 미소를 헹구듯이 소주를 털어 넣었다. 나와 얘기하기 전부터 취한 목소리였던 그녀는 연거푸 털어 넣은 술에 취기가 올라오는 듯 했다. 살짝 풀린 눈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 예뻐 보였다. 나는 말 없이 일어나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어깨를 빌려주었다. 내 어깨에 기댄 채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줄곧 듣기만 했던 나는, 그녀를 대신하듯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같이 이야기하면서 느꼈는데 카리스마가 있네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고, 압도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어요. 어떨 때는 드세게 보이다가도, 어떨 때는 순애보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나 원래 이런 여자 아니에요. 살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하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 이중적인 모습을 한 몸에 담아낸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한동안 대한민국 원탑 자리는 계속 그녀의 것으로 남아있을 것 같네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자 그녀는 발끈하며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받아쳤다.

"이 아저씨가 어디 첨 보는 사람한테 당신 타령이야? 나 그렇게 만만한 여자 아니거든요? 그리고 나 원래 그런 여자 아니었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길 없는 김남길의 눈빛은 정재곤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듯 했다.]





이런 게 누아르지...

그녀는 더 마시면 안 되겠다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밌는 얘기 잘 들었어요. 밥값은 제가 낼게요."

"뻔하고 칙칙한 이야기일 뿐인걸요."

"때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한 법이죠. 전 그 칙칙함이 오히려 마음에 듭니다. 씁쓸한 여운이 나쁘지 않네요."

"영락없는 아저씨네요. 후후"

그녀는 취기가 오른 와중에도 접대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게를 나서기 전 그녀가 뒤돌아 물었다.

"잠깐 우리 집에서 쉬었다가 갈래요? 택시 타면 금방 가요."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닙니다. 전 이제 하루 시작이라서요."

"그래요... 그럼 전 들어가 볼게요. 잘 가요 아저씨."

그녀는 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은 채 문을 열고 나섰다. 나는 못내 아쉬운 마음에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칙칙한 테이블 옆에 칠이 벗겨진 의자가 놓여 있었다. 저 의자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리도 못생겨졌을까? 하지만 그 사연이 아무리 기구하고 애절할지라도 그저 그런 이야기는 술안줏거리로 휘발될 뿐이다. 다만 우울하고 씁쓸한 여운만이 기억될 것이다.

"이런 게 누아르지..."

나는 문밖을 나서며 입안에 남은 씁쓸함을 몰아내듯 가래를 뱉어냈다. 그리고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날이 밝아 초여름의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그만 눈이 시려 고개를 푹 숙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Written by 충달 http://headbomb.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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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반자르반
15/05/29 11:39
수정 아이콘
스포일러가 있어서 차마 읽어보진 못하겠네요 ㅜㅜ
길게 써주셨는데 죄송합니다만, 단순 재미로는 어느정도인가요?
마스터충달
15/05/29 11:46
수정 아이콘
대중성은 그럭저럭입니다. 이야기나 배경이 촌스럽고 칙칙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을 분들도 있을겁니다.

그래도 누아르를 좋아하거나, 전도연, 김남길 두 배우를 좋아한다면 재밌게보실 수 있을겁니다.
더딘 하루
15/05/29 11:39
수정 아이콘
오오 리뷰를 소설형식으로 작성한 건가요?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네요. 꼭 봐야겠습니다. 흐
마스터충달
15/05/29 12:16
수정 아이콘
저도 소설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크크크
전크리넥스만써요
15/05/29 11:41
수정 아이콘
김남길은 입대전 드라마 '나쁜남자'의 포스에 완전 반해서 군대만 다녀오면 장난아니겠구나 했는데 공익으로 입대하는바람에 소집해제 후 영 이미지매칭이 안되더군요;;;;
공익이 나쁘단건 아니지만 이미지의 괴리가 꽤 크네요;;
The HUSE
15/05/29 11:45
수정 아이콘
그래서 재밌나요? ㅡㅡ;;
마스터충달
15/05/29 11:47
수정 아이콘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이런 게 누아르다 싶더군요.
<차이나타운>을 보고 누아르에 대한 갈증만 깊어졌는데, <무뢰한>은 그 갈증을 어느정도 해소해 주더군요.
The HUSE
15/05/29 11:49
수정 아이콘
오. 감사합니다.
볼까말까 고민중이었는데. 봐야겠네요.
New)Type
15/05/29 12:27
수정 아이콘
저도 어제 보고 왔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좀 뻔한 이야기 같은데, 배우들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전도연 연기야 뭐 말할 것도 없이 참 좋았구요.
김남길도 극의 분위기에 잘 맞는 흐느적 거리는 듯한 연기로 속을 알 수 없는 모호함이 느껴지는 연기였습니다.
박성웅도 몇 장면 안나오는데 인물의 작은 행동들에서 이 남자의 속내가 잘 느껴지더라구요.

전체적으로 이야기 자체보다도, 극 전체에 깔린 칙칙하고 숨막힐 것 같은 도시의 공기와 정서가 더 좋은 작품이었네요
마스터충달
15/05/29 12:38
수정 아이콘
아마도 그런게 누아르다운 거겠죠
킹이바
15/05/29 17:56
수정 아이콘
익숙한 설정이지만 부분적인 디테일에서 기존 장르와는 차이가 있더군요. 동시에 '누아르' 특유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잘 발산하고요. 엔딩과 관련해선 어찌 됐건, 결국 하드보일드 [멜로]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 놀랍고 마지막에서 꽤 여운이 남았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면에선 김남길이나 조연으로 나온 곽도원,김민재도 좋지만 역시 전도연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포일러라 자세힌 언급 못 하지만, 캐릭터 디테일에서 자칫 중반까지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여자 캐릭터를 남자들 캐릭터로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잘 잡고 본인의 그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준 듯 싶네요.

개인적으로 무뢰한의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초반 두 남녀의 감정선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물론 영화가 전체적으로 흐릿흐릿하긴 함) 오히려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는 인물들의 감정선이 보이고, 그와 관련된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편이었습니다. 엔딩 시퀀스까지도요. 하지만 너무 생략이 많이 되서 초반부에서 개연성(둘 사이에 어떤 계기로 감정이 일어나는건지)이 너무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잠복도 많이 해봤을 베테랑 형사가 그렇게 쉽게 마음이 흔들리다뇨. 인간의 감정이란게 원래 언제 시작됐는지, 딱딱 인과관계가 명확히 떨어지는게 아니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느와르풍의 영화에선 아무래도 남자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한데, 이 점에서 남자 캐릭터의 매력이 아쉽습니다. 이건 '연기'가 부족해서라기 보단, '정재곤'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잘 설명되지 않아서 사실 덜 끌리더군요. (김남길 본인은 이번 영화에서 일부러 힘을 뺀 연기를 했다고 하는데, 연기 자체는 좋았습니다.) 끝으로, '대사'가 꽤나 촌스럽더군요. 감독님이 15년이나 쉬다보니, 아무래도 감이 죽으신 듯...

p.s : 엔딩시퀀스 들어가기 전, 재곤이 웬 달동네에서 어린 여자(?)를 구해주는 씬이 들어가 있는데. 그 씬이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용의자의 입을 통해 엔딩의 복선을 깔려고 넣은건지. 아니면 단순히 혜경을 찾아다니는 재곤의 현재 모습을 설명하는 씬인지.. 그 전후 씬들과 비교할 때 이질적이라, 생뚱맞은 느낌도 있었는데요.
마스터충달
15/05/29 18:47
수정 아이콘
아마도 초반 두 남녀의 감정선이 흐릿했던 것은 감독의 의도였을겁니다. 둘이 사랑에 빠지는 어떤 계기가 있던 것이 아니라 마치 젖어들어가는 것처럼 어느새 사랑하게 되는 그런 감정을 표현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런 사랑이었기에,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있음에도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을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극 초반의 경계하는 모습에서, 중간에 담배를 나눠피는 모습, 그리고 서로 동침하는 장면까지 일련의 변화를 생각하면 그 점진적인 감정의 발달이 듬성할지언정 비약이라고 생각되진 않더군요.

엔딩 시퀀스 전 장면은 어린 여자의 손목에 난 상처를 보고 비슷한 상처가 있는 혜경을 떠올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자아이를 보고 혜경을 찾아야 겠다고 결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이렇게 감상을 나눠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ㅠ.ㅠ 앞으로도 이런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요즘은 댓글로 이렇게 길게 소통한 적이 별로 없네요 ㅠ,ㅠ
킹이바
15/05/30 17:00
수정 아이콘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자주 달진 못하지만 영화 관련해서 쓰실 때마다 매번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조과장
15/05/30 12:46
수정 아이콘
적어주신 소설 읽지 않고 있다가, 영화를 본 후에 읽었네요.
이른 아침 청량리 먹자골목 해장국집에서 일어날법 할만한... 잘 읽었습니다.

정형사나 김마담이 서로 누군가에게 집착하게 되는 이유를 무심히 던진 연못의 돌처럼 그저 파문으로..
구질구질 에둘러 설명하지 않아 준 감독의 힘이 좋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장르영화로서 느낄수 있는 관객만 느껴라 하는 의도로 생각되었네요.

미스터 충달님 글만큼 좋은 영화였습니다. 저도 언제쯤 글을 잘쓸수 있을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스터충달
15/05/30 13:05
수정 아이콘
마지막 인사 뒤가... 덜덜한데....

그리고 미스터 아닙니다 ㅠ,ㅠ
조과장
15/05/30 14:26
수정 아이콘
앗~ 제가 닉네임을.. 실수 했습니다. 마스터충달 님~

작은 댓글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정형사의 마지막 대사를 순화해서 적어보았습니다.
마스터충달
15/05/30 14:41
수정 아이콘
네 저도 그 마지막 대사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근데 이거 우회욕설 아닙니까? 크크크 (농담입니다;;;)
파우스트
15/05/30 20:38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접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런 신선한 시도가 참 좋더라구요.
이 영화는 패스할 생각이었는데 스포일러 전까지 읽고나니 급 땡겨서 오늘 보고온 참입니다. 하하.
영화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간만에 보는 수작급은 아닌 것 같고, 그냥 '하드보일드 멜로'라는 타이틀이 창피하지는 않게 뽑아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되면 <차이나타운>과는 비교를 안할 수가 없겠죠?
캐릭터 자체의 개성은 차이나타운이 더 튀긴하지만(박보검씨를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별 특징이 없는 <무뢰한>의 현실적인 인물들이 관객이 영화속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개성이 있기도 하고 영화에 잘 녹아드는 캐릭터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긴 하죠.
그래서 위에 킹이바님이 말씀하신 '누아르적 캐릭터의 매력 부재'에 크게 공감하는데 이건 정말 참고 봐야하는 부분..입니다. 장르 불문하고 우리나라 영화에서 개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영화에 잘 녹아드는 캐릭터가 쑴풍쑴풍 잘 나오기까지는 한 십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갈 길이 한 참 멀었거든요. 게다가 이제 걸음마 뗀 상탠데 뛰어서 가려면 더 기다려야죠. 근데 생각보다 쑥쑥 안 크는게 좀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보니까 <차이나타운>보다 10억 정도 더 썼던데 그래도 평균보다는 살짝 떨어지는 군요. 역시 소규모 제작비로는 무리하게 볼륨부터 빵빵하게 채울 생각보다는 이렇게 내공의 힘으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해보니 <차이나타운>이 돈을 못 쓴건 아니고 그럭저럭 썼는데 기획부터 좀 무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겉은 때깔나지만 속 빈 강정을 만드는 것 보다는 작고 알찬게 마음에 들어요, 라고 적다가 각 영화의 현재 관객수를 보니 제가 대중과 멀어있나? 라는 물음이 생깁니다. 정말 영화로 돈 벌려면 대중적인 삘을 꽂아줘야 하나봐요.. 왠지 느낌이 흥행에서 <무뢰한>이 차이나타운보다는 못 하거나 비등비등할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이제는 진짜 영화 이야기 해야겠죠.<무뢰한>을 누아르로 본다면, 필수요소인 분위기는 얼추 맞아들어갔지만 미장셴이나 캐릭터 다 제껴버리니 남는게 없어요. 아니, 분위기라도 맞췄으니 다행이라고 봐야하나요? 하여튼 이제는 분위기만 맞추는 누아르에서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할 때입니다. 완성도를 더더더 쌓을 필요가 있어요. 뭐 기존의 조폭나오는 누아르보다 다른 시도를 해서 낫긴 하다만요.
그리고 영화 내내 대사가 제일 신경쓰이더라구요. 뭔가 이상하게 귀에 잘 박히지도 않고(이건 제 귀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촌스러운데다가 이야기 전개 이상의 역할을 못해줬어요. 박훈정 감독은 찰진 대사를 곧 잘 뽑아내던데 역시 이 부분은 오승욱 감독님의 감이 좀 떨어지는 탓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결국 국내영화의 구조적인 결함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런 기본적인 요소들은 결국 각본에서 나오는 건데, 지금 국내 영화계에서는 각본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나 싶습니다. 할리우드처럼 완전히 감독과 각본을 분리시키는 것 까진 안 바라더라도 최소한 각본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이런면에서 현 감독/예비 감독들은 각본부터 출발한 박훈정이 그래도 일 인분은 해주는 모습을 보고 좀 배워야 합니다.
마스터충달
15/05/30 22:04
수정 아이콘
일단 저는 평가하고자 하는 평론은 지양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잘했냐 못했냐고 말하기 보다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지, 어떤 것을 보여주려고 했고 그것이 잘 통하였는지, 통하지 않는다면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면에서 <차이나타운>은 코인로커와 엄마로 상징되는 껍질(데미안에서 아브락삭스가 깨고 나오는 알과 비슷합니다.)을 벗어나는 중심 내러티브가 영화의 스타일 요소와 호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불호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인지 파악이 안되는 작품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무뢰한>은 촌스럽고, 한물간 듯한 이야기와 캐릭터가 같은 느낌의 미장센(허름한 아파트, 싸구려 룸싸롱, 돼지 발정제, 잡채, 소시지, 햄 등등)과 호응하면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둘을 비교하자면 <무뢰한>이 억울할 수준이라고 봅니다. 한준희 감독은 <차이나타운>이 입봉작이었고, 오승욱 감독은 비록 연출은 두 번째이나 영화계에서 경력이 많은 사람이었죠. 이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의 문단에서 보셨다시피 저는 <무뢰한>의 미장센을 좋게 평가합니다. <차이나타운>도 중화풍의 독특한 미술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것이 따로 놀았는데, <무뢰한>은 낡고 한물간 이야기와 캐릭터에 딱 맞는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다소 흔해보일 수는 있지만 과한 것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여러 미장센 중에 잡채라는 소품이 정말 좋았습니다. 솔직히 요즘 잡채는 대단한 음식이 아니죠. 잔치 음식이란 느낌도 사라져서 뷔페에서도 모습을 감추었고요. 그런데 애인을 위해, 동침한 남자를 위해 잡채를 버무립니다. 그 한물간 음식에 애정을 쏟는 그 모습이 참 짠하고 씁쓸하더군요.

짧게 등장한 액션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무뢰한>은 창의적인 액션을 보이기 보다 쩐내나고 묵직한 액션을 보여줍니다. 굉장히 공을 들인 티도 나고,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박준길(박성웅)이란 캐릭터를 그 액션신을 통해 많이 설명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총평을 하자면 감독은 '누아르'의 분위기라는 것에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는 느낌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느냐 보다 어떻게 이야기를 다루느냐에 초점을 맞춘 셈이죠. 이야기는 뻔하고, 역시 뻔한 이야기를 채우는 캐릭터도 전형적이지만 감독은 그것들 보다는 씁쓸한 분위기 자체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전도연이라는 배우는 그 전형적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바꿔놓았고요. 결과적으로 꽤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가 내러티브 이상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작품이지만 동시에 비디오아트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박훈정의 <신세계>보다 <무뢰한>이 더 누아르다운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더 좋은 영화라고는 못하겠네요) 물론 이야기의 짜임새나 캐릭터의 힘은 <신세계>가 훨씬 좋았습니다. 하지만 분위기, 그것도 흔한 누아르와는 다른 낡고 촌스러움이 전해주는 씁쓸함을 보여줬기에 <무뢰한>이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분위기 이상의 주제의식을 갖는다면 그게 더 훌륭한 작품이 되겠지만... <차이나타운>처럼 이야기를 감당못하고 휘청거리느니, 누아르가 보여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무뢰한>이 확실히 더 낫지 않나 싶네요. <신세계>와의 비교는... 글쎄요. 이야기의 <신세계>, 분위기의 <무뢰한>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앞에선 둘 다 한 수 접어야 할듯요)

<영웅본색>에는 쌍권총으로 총알을 뿌려대던 소마(주윤발)가 다리에 총을 맞고 아성(이자웅)의 따까리가 된 채, 식어버린 도시락을 먹던 장면이 나옵니다.(주윤발의 연기력이 쩌는 장면이었죠.) 저는 <무뢰한>의 분위기가 그 장면에서 느껴진 씁쓸함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파우스트
15/05/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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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말씀하신 평론의 자세에서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잘 감이 안오네요. 사실 평가라는 것은 어떤 것에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인데, 가치란 개인마다 다 다른것이고 무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했냐 못했냐를 따지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적합과 부적합의 문제입니다. 감독이 의도한 바가 관객에게 잘 통했다면 그게 잘한거고, 잘 안 통했다면 그건 못한 거죠. 통했느냐 안 통했느냐를 따져보는 것도 역시 평가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이나타운>과의 비교에서 저는 <무뢰한>이 압승이라기 보다는 살짝 근소우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무래도 가치관과 연결되어있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영화란 당의정처럼 그 달콤한 맛에 누구나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그 속에 약이 되는 메시지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대중성도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또 말씀하신 대로 내러티브와 스타일의 이격때문에 저 역시 <차이나타운>을 전체적으로 호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중에게 어필할만한 요소들이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완성도에서 <무뢰한>이 앞서가니 <무뢰한>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장센의 경우는, 말씀을 들어보니 납득이 갑니다. 왜 잡채일까는 생각해봤는데 금방 떠오르지가 않더라구요.
그렇다면 왜 저는 <무뢰한>의 한물간 촌스러움에서 오는 묵직함을 제대로 못 느낀 것일까요? 저는 <무뢰한>이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그 테이스트가 감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저는 자문해봅니다.
이 테이스트의 차이는 역시 가치관, 더 간단하게는 취향이나 경험의 차이때문이라고 자답해봅니다.

저는 사실 말씀하신 옛 느낌을 잘 모르거든요. 밝히기가 좀 껄끄럽긴 한데, 충달님에게만 말씀드리자면 제가 나이가 좀.. 아니 피지알 연령층에는 많이 어린 축에 속합니다. ^^; (구체적으로는 말씀 못 드리고 대학교 초년생입니다.) 작품에서 주요 소재로 나오는 김혜정의 직업인 유흥업 종사자에 대해서 매체로밖에 접해보질 않았고, 특히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촌스러움에서 오는 묵직함에서 그 촌스러움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본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제가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또는 촌스러움이 체감이 안되어서 <무뢰한>의 테이스트를 제대로 못 느낀 것도 있겠지만 동시에 촌스러움 보다는 '세련됨'이라는 컨텐츠에 더 매혹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무뢰한>의 쩐내나는 액션( 이전 댓글에서는 미처 못 썼는데 박준길-정재곤의 액션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만큼이나 <신세계>의 액션이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그런데다 이야기에서도 우위니 저는 <신세계>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요.

그런데, 만약 제가 위 같은 이유로 <무뢰한>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면, 왜 더 구세대의 이야기인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이나 훨씬 더 구세대의 이야기인 <대부>, 또는 오우삼이나 왕가위의 영화에서는 그렇게 진한 감동을 받았던 걸까요?
이점에 대해서는 결국 전반적인 완성도가<무뢰한>보다는 후자쪽이 훨씬 더 높았기에, 또 볼륨이 더 풍부했기에 세대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압도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결론을 내면, <무뢰한>은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이나 모든 요소들이 분위기에 특화되어있고, 그 분위기가 잡아내지 못하는 영역의 관객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여겨집니다. 다르게 말하면 '<무뢰한>은 장르영화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 대중성을 희생해버렸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를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관계로 확장시켜본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의 갈등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결국 밸런스를 잘 맞춘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또는 자신의 영역만 특화한다는게 좋은 선택일까요? 모두 제가 영화를 더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물음들입니다. ^^;
마스터충달
15/05/3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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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대로 저도 궁극적으로는 평가라는 가치판단을 합니다. 다만 그 평가 이전에 작품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고,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어떤 극적 장치를 사용했는가, 어떤 촬영을 했는가, 어떤 편집을 했는가 등등)을 했는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세라면 작품을 점수화 시킨다며 평론가를 고깝게 바라보는 제작자들과도 소통의 여지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뭐랄까 평가보다 이해와 인정을 우선시한다고 말해야 옳았을 것 같습니다.(뭐라 정확히 표현하기가 참 애매하네요 ㅠ,ㅠ)

<무뢰한>의 낡은 것에 대한 감성을 전달받는 관객이 제한적이라는 말씀에 정말 동감합니다. 저도 주변지인에게 30~40대 여성에게 강력하게 어필할 작품이라고 소개하기도 했거든요. 제가 주목한 잡채라는 미장센도 그 음식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다면 그저 지나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국외에서 그 감성을 포착하는 관객은 아마 절대 없겠죠;; (그렇다면 잡채를 버무리는 장면에서 연기를 통해 김혜경의 감성을 전달한 전도연은 정말 대단하다고 해야겠네요) 결국, 보편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 그것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을 퇴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적에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와의 비교는 조금 애매합니다. 이 작품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오늘의 현실을 비꼬고 있기 때문이죠. 쌍팔년도나 있었을 부패와 폭력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범죄와의 전쟁...>외의 나머지 작품들과 비교하면서 말씀하신 완성도와 볼륨에 대한 지적은 지극히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뢰한>에서 보편성이 떨어지는 것이 대중성의 희생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감독의 감성이 낡고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승욱의 시대와 감성을 조금이라도 맛보지 못한 관객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 뿐이겠죠. 대중성을 희생하는 선택이라기엔 영화가 통속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니까요.

그나저나 이렇게 댓글로 소통하다보니 저도 영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흐흐
파우스트
15/05/31 20:42
수정 아이콘
아 그러면 '충분한 분석을 거치지 않은 섣부른 평가를 지양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게 해서 '평론가가 제작자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편견을 조금씩 해소하자'는 주장을 하시는 것이라면, 저도 매우 동감합니다.

또 지적해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모두 동감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코멘트는 따로 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감사합니다. 다음 영화 평에도 또 좋은 대화를 나눠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다음 감상평은 뭘로 하실 계획이십니까? 크크
마스터충달
15/05/31 20:58
수정 아이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일단 듣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예를 들자면 영화 <숨바꼭질>의 경우 완성도 면에서 정말 형편없는 장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채점하듯이 평가 위주로 바라봤다면 몹쓸 영화에 그칠겁니다. 하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 대한민국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생존과 허영이 뒤섞인 욕망에 대한 지적은 분명히 이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 부분을 우선 설명해주는 것이 좋은 평론가라고 봅니다. 그리고 부족한 완성도는 못 했다고 하기 보다 아쉽다고 말하는... 만드는 사람의 심정을 전달하고 헤아려주는 그런 시각을 계속 가지려고 합니다. 어짜피 보는 사람의 심정이야 쓰다보면 줄줄이 나오게 되있어서요 크크

대신 이 기준에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버버 거릴 경우는 확실히 잘못했다고 지적하긴 합니다. 근데 그런 수준의 영화들은 뭐 쌍욕을 날리지 않은게 다행인 수준이 더 많더라고요. (올해로 따지면 <오늘의 연애>라던가....)

다음 감상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는 <unexpected>랑, 임수정, 유연석 주연의<은밀한 유혹>이 될 것 같습니다. 후자는 소설이 아닌 다른 새로운 형식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파우스트
15/05/31 21:03
수정 아이콘
크크크 충달님은 '착한 평론가'시네요!
그런 의미라면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잘 보고 배울게요.

그리고 국내 영화를 꽤 자주 챙겨보시는 편인것 같습니다. 저는 좀..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들어 기피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오늘의 연애>를 보시다니.. 이건 너무 착하신게 아닌가 싶네요. 크크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마스터충달
15/05/31 21:05
수정 아이콘
사실 저는 국내/국외 잘 안가리긴 하는데 개봉작 위주로 보다보니... 스파이를 놓진게 지금 몹시 아쉽습니다. ㅠ,ㅠ
파우스트
15/05/31 21:11
수정 아이콘
가려고 했는데.. <스파이> 이야기라니 이어지겠네요..

저는 공교롭게도 <무뢰한>하고 <스파이>가 왓챠에서 둘 다 동시에 3.0점이 떠서 정말 고민하다가, 충달님 감상평보고 <무뢰한>으로 <차이나타운>정화하러간거라 어쩔 수 없이 놓쳤네요.
하지만 이제 2주차고, 매드맥스는 끝물이니 아마 1,2주는 더 잔류할 것 같습니다. 초반 성적도 나쁘지 않고요. 그래서 저는 다음 주 주말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마스터충달
15/05/31 21:18
수정 아이콘
저는 <스파이> 못 볼듯 한데, 보시면 꼭 평 남겨주십쇼. 흐흐
파우스트
15/05/31 21:29
수정 아이콘
글로요?;; 생각은 해보겠습니다만 저는 일단 아는게 많이 없고 원체 필력이 후달려서..
마스터충달
15/05/31 21:40
수정 아이콘
에이~ 댓글만 봐도 글 잘 쓰실것 같은데요?
파우스트
15/05/31 22:18
수정 아이콘
제가 이런 말에 약해서 넘어가 버리겠네요. ^^;;
노력해서 쓰기는 해보겠습니다만, 기대는 많이 하지마세요..
Thanatos.OIOF7I
18/08/10 04:42
수정 아이콘
영화를 뒤늦게 보고 혹시나 리뷰를 찾아봤는데, 본문 퀄리티 못지않은 댓글들이...^^;; 좋은 글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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