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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수가 하도 늘어서 앞으로 링크는 생략하는 게 보시는 분들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 걸렀는데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있었...겠죠? 헤헤.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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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그녀와 약속한 금요일까지는 아직 삼일이나 남았지만, 그 정도 기다림은 설렘으로 기쁘게 기다릴 수 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니 세상이 마냥 아름답게 보인다. 학교 정자에서 즐겁게 떠드는 신입생들의 모습도 마냥 귀엽다. 그리고 그 옆에서 신입생 여자애들과 웃고 있는 현중이의 모습도.
잠깐. 쟤는 예외다.
“야 김현중!”
나는 기분 좋게 주변을 둘러보다 말고 현중이 녀석에게 쇄도했다.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너만큼은 봐줄 수가 없다. 이 입 싼 자식!
“헉!”
무섭게 쇄도해가는 나를 발견하고 현중이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형 오셨어요?”
현중이는 무고한 내게 왜 그러냐는 듯이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이 가증스러운 녀석.
나는 현중이 옆에 있던 신입생들의 인사를 간단하게 받고 녀석의 손목을 낚아채 정자에서 조금 거리를 벌렸다. “나한테 할 말 없냐?”
삐질.
4월로 접어들어 한창 따뜻해진 날씨 때문일까? 현중이의 이마에 땀방울이 한 줄기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하. 있죠. 죄송해요. 현우 형.”
현우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내게 사죄했다. 그래도 발뺌안하고 먼저 사과부터 하는 모습에 기분이 살짝 풀어진다.
“그러니까 왜 있지도 않은 말을 떠들고 다녀.”
“그거야 형이 다급하게 가시니까, 제가 아니고 누가 봐도 여자 친구라고 생각했을 거라고요.”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멋대로 내 얘기를 하고 다닌 것에 대해서 단번에 용서해줄 수는 없다. 나는 오른손의 중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아 현중이의 이마로 가져다 댔다. 현중이는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듯이 눈을 꽉 감고 고개를 숙였다.
딱!
“보자마자 사과했으니까 이걸로 퉁 쳐줄게.”
“크. 네.”
자식 엄살은. 현중이는 딱밤 맞은 이마를 문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나저나 형 시험 준비는 잘 되가세요?”
현중이가 화제를 바꿨다. 그 물음에 나는 깜짝 놀랐다.
“뭔 벌써 시험?”
확실히 날이 따뜻하다 못해 더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 얼마나 나왔다고 벌써 시험이란 말인가.
“4월 넘어왔고, 이제 수업마다 다르겠지만 바로 시험기간이잖아요. 빠른 애들은 당장 다음 주에 시험 보는 애들도 있을 걸요?”
확실히 현중이의 말은 틀림없다. 학기 중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더니 금세 시험기간이 닥친 것이다. 4학년이랍시고 교양수업이 전공수업보다 많다보니 너무 끈을 풀어놨던 것 같다. 물론 교양수업을 많이 듣는 만큼 시험부담은 덜하겠지만, 그렇다고 망쳐서는 곤란하다. 교양학점도 아쉬운 판이니까.
“너는 그럼 준비하고 있냐?”
넌지시 현중이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현중이는 씩 웃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전 아직 2학년이니까요!”
미친놈. 저러다가 나중에 나처럼 부랴부랴 학점복구 한다고 피를 토해봐야 정신 차리지. 하지만 조언이나 충고한다고 저런 태도가 나아질리 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자신이 직접 닥쳐봐야 곤욕을 알고 행동하는 법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피똥 싼다?”
그래도 선배랍시고 조언 아닌 조언을 살짝 건넸다.
“그래도 아예 포기는 아니고 시험기간 만큼은 학교에서 밤이라도 세면서 하려고요.”
얘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는 걸까. 대책이 없다 대책이. 뭐 이런 낙천가적인 녀석의 면모가 함께 놀았을 때 즐거운 이유 중 하나니까 크게 불만은 없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기도 하니까. 아무리 선배라도 이 이상의 왈가왈부는 지나친 오지랖이라고 생각해 화제를 바꿨다.
“오늘 시간 남으면 시험 기간 전에 술이나 한잔 어때?”
사흘정도의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술만큼 좋은 친구가 없지. 낙천가답게 현중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승낙한다.
“좋죠! 술값은...”
녀석의 말꼬리에 눈을 치켜뜨고 부라렸다.
“제가 살게요. 막걸리 어때요?”
“좋지!”
“그럼 이따가 연락드릴게요.”
“오야.”
현중이와 헤어지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도서관에 갈 생각이 들었다. 저녁까지 수업도 없어서 갈 데도 마땅치 않은데다가 현중이 녀석이 시험기간을 들먹거린 덕분이었다. 일전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수학 좀 알려달라던 연주의 말이 떠올라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나도 염치가 있는 사람이니 연주가 내 과제를 도와준 만큼 시간이 날 때 이런 식으로라도 연주를 도와줘야겠다.
드르륵거리는 기본 수화 음이 몇 번 울리다가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선배? 웬일로 전화에요?
“웬일은 무슨, 저번에 수학 좀 알려달라며. 지금 도서관 갈 생각나서 전화했다.”
-- 아 잘됐다. 안 그래도 지금 경제수학하고 있었어요. 여기 도서관 3층인데.
“알아서 찾아갈게 하고 있어.”
-- 네.
전화를 끊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경제수학이면 나도 한참 전에 배운 터라 잘 가르쳐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도서관 3층에 도착했을 때, 가까운 곳에 연주가 눈에 띄었다. 과목이 어려운지 꽤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1층이나 지하에 조용한 분위기의 열람실과 위층의 탁 트인 테이블에 조금의 잡담이 허용되는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 연주 옆에 빈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시험기간 다가온다고 되게 열심히네?”
이상하게 현중이나 주찬이랑 있을 때는 그런 기분이 안 드는데 공부하고 있는 연주랑 있을 때는 조금 초조한 기분이 든다. 같이 있으면 나만 공부 안하고 놀아서 망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
“음. 그런 것 보다는 아무래도 제가 수학이 약하니까 미리미리 안하면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과목보다는 미리미리 준비하는 편이죠.”
생각해보면 참 대견하기도 하다. 이렇게 제 공부할 것 다하면서 좋은 학점도 받고, 소소한 알바까지 하면서 자기 용돈벌이는 자기가 한다고 알고 있다. 나도 뭐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반성도 살짝 들 지경이다.
“그래서 뭐 물어볼 거는?” “음. 아직은 괜찮아요. 닿는 데 까지 해보고 정 안 풀리면 물어볼게요. 선배 공부 할 거 하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주섬주섬 가방을 풀어헤쳤다. 솔직히 전공과목은 수업 시간에 제대로 들어둔 덕에 시험 기간이 다가와도 여유로웠지만 교양과목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놓고 있다가 수업을 놓쳤지.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되는 과목은 바로 이거다.
“와 선배 교양으로 한자 쪽 과목을 신청했었어요?”
다 합치면 얇은 책 한권쯤 될 만한 분량의 프린트 물을 가방에서 쏟아내자 연주가 탄성을 질렀다. 망할. 한자 교양은 사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한 기피 과목이다.
“수강 신청 망했거든.”
지금 와서야 태연하게 말하지만, 수강신청 아니, 그 대란의 날을 떠올리면 눈물이 절로 나온다. 내 피 같은 돈으로 등록금을 냈는데 듣고 싶은 과목을 듣지 못하다니. ‘한자만 아니면 되지’라고 수강신청 몇 분전 주찬이와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될 줄이야.
내 앞에 쌓인 프린트 물과 그 안에 빼곡히 들어선 무수히 많은, 글인지 그림인지 모를 것들을 보니 그 날의 울분이 다시 생각난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고봉을 바라보며 이런 답답한 심정을 느낄까?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이 가로 막고 있는 것 같다.
촤라락.
내가 한숨 쉬는 사이 연주가 프린트들을 대충 넘기며 훑었다.
“이거 거의 오백 자 이상인데요? 휴 제가 안 들어서 다행이네요.”
절망적인 소리를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힘내요. 아직 일이주정도 시간 남았으니까 충분히 외우실 수 있을 거예요.”
덧붙여 희망의 소리도 추가하고는 다시 경제 수학으로 시선을 돌린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수강신청 못한 내 잘못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오기로 한 번 외워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붙어서 공부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도서관에 들어올 땐 밝았던 밖이 조금씩 어둑해질 정도로.
내게 공부를 도와달라던 연주는 스스로 막힘없이 진도가 나갔는지 질문한 번 하지 않았다. 그 덕에 나도 제법 흐름을 끊기지 않고 많은 한자를 외울 수 있었다.
위이잉.
-- 어디에요 형?
그리고 한자 외우기가 질릴 무렵 때마침 현중이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 도서관.
-- 헐 진짜요? 저 이제 내려 갈 건데. 당구한판 치시고 술 어떠세요?
마다할 이유가 없다.
- 그래.
-- 그럼 정문에서 기다릴게요.
톡을 마치고, 한창 집중하고 있는 연주에게 물었다.
“공부 언제까지 할 거야?”
“네? 음.”
“난 이제 내려가 보려고. 현중이랑 약속이 있어서.” “또 술 마셔요?”
또 라니. 아니라고 해주고 싶지만 맞는 말이다.
“바로는 아니고. 잠깐 놀다가 마시려고.”
“음.”
내 말에 연주는 고민이라도 하는 듯 한손으로 자기 턱을 괴었다.
“그럼 노는 거 끝나면 저한테도 연락 주실래요? 저도 갑자기 술 땡기는데. 그때까지 공부하고 있을게요.”
연주가 무슨 일이 있나보다. 얘가 갑자기 사적인 자리로 술이 땅겨서 마시고 싶다고 하다니. 뭐 나나 현중이 녀석이나 연주와 친하니 술친구로 연주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불편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 알았어. 이따 보자.”
“네.”
그렇게 잠시 후를 기약하며 나는 먼저 자리를 떴다.
16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