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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8/17 12:14:10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전근대 중국 시골의 대혈전, 계투(械鬪)







 예로부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니, 법이라는게 국가의 수장으로부터 길바닥의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칼처럼 적용이 되는 현대 이전 전근대 사회에서는 법에까지 갈 필요도 없이 두 주먹으로 해결되는 일들이 종종 많았다. 물론 주먹이 안되는 수준이면 칼, 창을 들기도 해야 할 터이다. 


 법에 의해 해결을 못 볼 정도의 상황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일이고, 이 상황에서 등을 맡기고 믿을만한 존재는 달리 많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집단이 있다면, 바로 가족일 것이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중국의 계투(械鬪)는 이러한 가족, 종족(宗族) 패싸움이 절정에 달한 사례다.


 말하자면 계투란 종족이나 촌락 등 - 전근대 이전 중국의 농촌이란 대단히 배타적인 곳이므로, 종족과 거의 유사할 것이다 - 집단간에 다툼에 대해 무기를 들고 해결하려는 행위를 말한다. 이와 같은 행위가 더 전에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심화된것은 명 - 청 시대였으며, 특히 청나라 중기를 넘어 옹정 연간 무렵에는 굉장히 격렬해져 제국의 황제마저도 관심을 나타내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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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계투는 우선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우선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여, "주먹" 으로 손을 봐줘야 할만한 일이 생겼다고 치자. 그렇다면 족내에서는 선봉이 되는 사람이 나서, 다방면의 방법을 통해 족원이라는 '전력' 을 소집해온다. 그리고 어느 시기에 다른 종족 - 촌락과 맞짱을 뜨리고 정하는 것이다.


 물론 2,000년 전에 한 인물이 "이제 좀 서로 머리 식히고 다 좋게좋게 살면 좋잖아." 라고 말한 탓에 십자가에 매달리는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끄러운 분쟁을 원하는 사람보다는 좀 조용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지구상에는 더 많을 것이다. 따라서 족내에서 "저 놈들 하고 한판 뜨자!" 라고 말한다고 해도, "난 좀 그런데……" 영 껄끄러운 사람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투를 치루는데 있어 이러한 '개인의 의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의 농촌은 대단히 배타적이고, 또한 이러한 '공동체' 의 수장인 유력자나 연장자의 의사는 대단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감히 공동체를 거스르려 했다가는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벌금을 매기는 정도에서 끝나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끌려가서 신나게 두들겨 맞는다던지 장형을 얻어맞는다던지,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학술적인 이야기보다 경험담 쪽을 듣는 편이 더 와닿을 것이다. 


 "……나의 할머니는 우리들 모두를 자신의 노예로 생각했다. 할머니는 심한 아편 중독자였고, 나는 아편 냄새를 혐오했다. 어느날 밤 더 이상 그 냄새를 참을 수 없어진 나는 벌떡 일어나 난로에 얹어 놓은 아편 그릇을 발로 차버렸다. 할머니는 격노했고, 친족회의를 소집하여 '불효자식' 인 나를 '물에 빠뜨려 죽여야' 한다고 정식으로 요구했다. 할머니는 나의 죄상을 낱낱이 열거했다. 친족들은 할머니의 요구를 받아들여 실행할 작정이었다. 계모는 나를 죽여야 한다는데 동의했고, 아버지는 그것이 일단 친족의 뜻인 이상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때 마침 외삼촌이 나를 변호하고 나섰다." ─ 에드가 스노우, 중국의 붉은 별 pp. 302


 여기서 말하는 '나' 란 다름아닌 그 유명한 펑더화이(彭德懷)다. 하나의 사례로 전체를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1900년전 농촌 공동체의 모습이 이러한 정도라면 그 2백년 전에는 어떠한 모습이었을지는 짐작 할 순 있다.


 여하긴 이러한 요소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족원은 빠짐없이 계투에 나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인원이 전부 싸움을 벌이는것은 아니다. 제비를 뽑거나, 혹은 유력자의 결정에 따라 족원들은 계투에 나서 적들을 두들겨 팰 '전투원' 과, 계투가 끝난 후 벌어질 관의 책임 추궁에 대해 '독박' 을 쓸 인물을 구분하였다. 경우에 따라 계투 전에 거창하게 제사를 치루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계투를 치루기로 했다손 쳐도 이쪽의 전력이 아무리 생각해도 견적이 안 날 경우가 있다. 저쪽에는 덩치들이 우글우글한데 이쪽은 비리비리 하거나, 혹은 숫자 자체가 부족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의 열세' 에서 실제 전쟁이라면 병력을 보급하거나 해서 처리하겠지만, 계투의 경우는 어떠할까?


이 경우 실제 전투와 유사하다. 병력을 '보급' 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외부인을 '용병' 으로 데려와서 내세우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무시무시한 흉악범이라기 보다는, 이런 일에라도 불려오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다가다 불러모은 사람들을 내세우면, 그 사람들이 실제 족원인지 아닌지 저쪽에서 구별할 수 있을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러한 '대타' 작전은 '전투원' 의 공급 뿐만 아니라 '독박' 요원에도 적용되었다. 외부인을 독박용의 대타로 내세우면, 거의 대부분의 관리들은 누가 진짜이며 가짜인지 구별을 하지 않고 처리를 했다. 가끔 성가시게 조사를 하는 관리가 있다면, 그것은 돈 좀 내놓으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뇌물을 적당히 찔러주면 관리들은 알아서 뒷처리를 깔끔하게 해주었다.


 


문제는 이렇게 계투가 체계성을 보이면서 성행하다보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성이 강화되어 끝장으로 치닫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방관이 "싸우지 마라" 라고 하면 지방관을 공격하는 충격과 공포스러운 일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 지방관의 경우는 어차피 '대타' 를 통해 자신의 체면은 유지할 수 있었으므로, 딱히 나서서 막을 필요성도 그리 느끼지 못했다.



 그리하여 문제의 계투가 벌어질 무렵이 되면, 이 배틀로얄에 참가하는 족원들은 몽둥이, 칼, 창은 기본에 심지어 활이나 총까지 쏘아댈 지경이었다. 따라서 피해는 대단히 컸다. 사건이 해결된 뒤 지방관이 당도해봐야 범인은 잡혀가느니 저항을 하고, 군대를 끌고 올 정도가 되면 이미 달아나는 무렵이라 처벌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차라리 지방관들은 앞서 말한대로 '대타' 를 내세워서 자신의 체면을 살리고, 이 일로 은근히 압박을 주어 돈을 챙기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면 한번의 전투후에 계투는 완전히 종료가 되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계투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많은 자금에는 무조건적인 확률도 파리떼가 꼬이게 된다. 종족 유력자의 경우는 계투를 치루면서 많은 "떡고물" 을 챙길 수 있음으로 계투를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 또한 종족 내 양아치 청년들의 경우는 땅도 없고 여자도 없는데, 하잘 것 없이 농사나 짓느니 롸끈하게 한판 붙으면 챙길 수 있는것도 있어서 오히려 계투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이런 경우 때문에 계투는 일부러 빨리 종료가 되지 않고 질질 늘어지기도 하였으며, 양측의 전력이 엇비슷할 경우 수십년에서 심하면 백여년간 계투를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한 계투가 수십년에서 백여년에 이를 정도가 되면 이제 당사자들은 단순히 양쪽 세력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더해진 "동맹 세력" 들이 추가되어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었다. 기껏 한판 승부에서 이겼다쳐도, 패배 쪽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관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하면 다시 이것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이 오가고 또 계투가 벌어지기도 했으니, 완전히 손을 털고 화해를 하던지 아니면 완전히 재기의 여지도 없을 만큼 다른 세력이 끝장나던지 간에 시간은 많이 걸릴 수 밖에 없어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떡고물" 을 챙기거나 할 처지가 못 되는 대다수 일반 족원들은 피폐해져갔다. 무기를 구입하고 무뢰배 집단을 전투용 대타로 고용하기 위해 돈을 내야 했던건 이들이었으며, 전투 이후 다치고 죽는 문제도 컸다. 계투에 집중하느라 농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종족원들은 그러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계투에 나서야 했다. 심지어 농촌이 아닌 도시에 살고 있는 족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는데, 현실적으로 족원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장치가 같은 족원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종족을 떠난 족원은 그 후부터는 누구에게도 보호받기 힘들었다. 


 이렇게 계투의 폐단이 뿌리가 깊어졌기 때문에 이제 지방관들도 계투가 벌어지면 오히려 좋아라 하면서 양측으로부터 돈을 뜯어낸 일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설사 강직한 지방관이 오더라도 사태는 비슷했는데, 지방관은 그렇다쳐도 그 밑에 있는 서리나 아역들은 유력 종족에 포함되어 있거나 유력자의 수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계투의 폐단을 막으려면 그 원인이 되는 부분까지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어야 했지만, 대다수 지방관들은 이제 좀 현지 사정에 익숙해진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계투가 지속되면서 적응이 된 것은 지방관 뿐만 아니라 계투에 투입되는 대타용 전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저 할게 없어서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점차 익숙해진 집단들은 계투를 직업처럼 삼는 무뢰배 집단이 되어갔고, 평소에는 다른곳에서 불법을 자행하고 살다가도 계투가 치뤄진다 하면 모여들었다. 이러한 집단은 건륭 연간을 넘어 가경 시대가 될 무렵에는 확연한 "용병" 집단이 되어 전문적으로 계투를 청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계투가 갑자기 청나라 중기에 이르러 규모가 확대되었을까? 물론 '중국인의 본성은 대체로 험악 - 잔혹하여 피와 분쟁을 즐긴다' 고 하면 아주 간단하겠지만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서야 그 사람의 수준을 아주 잘 보여주는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계투 역시 경제적 - 사회적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명말 - 청초에 이어진 전란으로 인해 대혼란이 벌어지고 농촌의 자율적인 질서가 파괴되었다. 이에 집단무장과 폭력적인 자율구제가 더욱 일상화 되었다. 


2. 둘째. 청나라는 대만의 정씨 정권을 제압하기 위해 해금령을 실시했는데, 이는 첫번째 요소와 함께 기존 질서를 완전히 붕괴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해금령은 단순히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수준을 넘어, 백성을 내지로 옮기는 천계령(遷界令)과 더불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있고 밑도 끝도 없이 의심스런 이웃이 생긴 주민들이 있으니, 분쟁이 나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


3. 여러 혼란, 그리고 그 와중의 기회를 틈타 작았던 소성(姓 작은 성씨)들은 본래 지방에서 강력하던 대성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소성들은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합을 했고, 이 와중에 계투는 더욱더 커져만 갔다.


4. 해금령, 천계령등으로 인해 기존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어업이나 무역같은 경제적 요건은 완전히 다르게 변하다 보니, 점차 곤궁해진 주민들은 한정된 자원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살기 위해 서로를 향해 칼을 들이밀었다.


5. 이렇게 일상화된 계투를 주민들이 토지, 수리, 분묘, 시장 등 온갖 문제에 적응시키면서 커져만 가고 있었는데, 국가의 행정력은 비대해져 가는 나라를 맞춰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청나라의 인구는 경이적일 정도로 엄청난 숫자로 증가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사회문제도 더욱 복잡해져갔다. 하지만 행정력의 발전은 더뎠다. 되려 지방관의 이동만 더 늘어나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떠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소송이나 사건이 쌓여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질질 끄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송사, 서리, 아역, 그리고 지방관 역시 뇌물을 탐냈으므로, 그 긴 재판 기간을 계속 버티다 보면 이것 역시 경제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국가 행정력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계투는 이러한 요소 등이 겹쳐서 발생했고, 여기서 더 복잡해지면 복잡해졌지 그 원인이 간략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 계투가 가장 성행하고 문제가 되었던 곳이 해금령 - 천계령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받는 민남 지역이라는 것은 그 원인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참초  : 
淸 中期 민남의 械鬪 盛行과 그 背景 - 원정식
淸代 福建社會 연구 : 淸 전·중기 민남사회의 변화와 宗族活動 - 원정식
淸前期 天地會 硏究 - 고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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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13/08/17 12:2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할머니가 일종의 가부장으로서의 권리를 행할 수 있었다는 건 또 의외네요.

인간사회에서 윤리와 도덕이(어떤형태로든) 필요한건 저런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겠지요.
Je ne sais quoi
13/08/17 12:4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아우디 사라비아
13/08/17 12:45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13/08/17 13:12
수정 아이콘
얼마전에 중국 한국 교포 배 과수원을 중국주민 800명이 몰려가서 배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베어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900139
공안이 와서도 지켜만보고 있었다는게 이해가 안됬는데
이런 계투라는 문화적인 배경이 있었군요.
Neuschwanstein
13/08/17 13:49
수정 아이콘
우리도 석전이라는 전통이 있어서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거칠었다고 하는데... 역시 대륙 스케일은 다르군요 이건 뭐 말 그대로 전쟁;
일각여삼추
13/08/17 14:19
수정 아이콘
참초라는 말은 사초를 참조했다는 뜻인가요?
신불해
13/08/17 18:10
수정 아이콘
그냥 참조 오타입니다.
미스터H
13/08/17 19:30
수정 아이콘
딱 보면서 드는 생각이 무림이네요. 역시 무협소설이 쓰일 대륙 답다는 생각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13/08/18 00:26
수정 아이콘
읽으면서 소설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비슷하겠죠...?
오단기아
13/08/18 07:49
수정 아이콘
현재에도 계투가 남아있는 곳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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