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의 최고 벼슬은 영의정(정1품) 이라고 합니다. (3정승 6판서의 최고봉) 우리가 흔히 알고 계시는분중에 정도전,황희,신숙주,한명회,류성룡 등과 같은 분이 지내셨던 관직입니다. 그런데 영의정을 지낸 분이 세분정도 나온집안이 대제학(정2품) 한분 나온 집안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이게 왜 그럴까요?
대제학은 홍문관,예문관에 둔 정 2품 관직입니다. 홍문관 : 궁중의 경서(유교 경전),사적(역사 서적)의 관리와 문한(글쓰는일)의 처리 및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고 예문관 : 왕명작성, 국사편찬 등 담당 하는 관서 입니다.
하지만 이게 조금 독특한게 영의정은 흠집이 조금 있더라도 오를수 있는 반면, (예를들면 김자점) 대제학은 가문의 3족(친가,외가,처가)까지 함께 살펴보고, 몇대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조사를하고 따져가면서 (범죄가 있었는지, 탐관오리가 있었는지, 역적질한 자가 있었는지 등등..) 임명한다고 합니다. 더 까다로운것은 문과 대과 급제자이면서 독서당(흔히들 엄친아격인 사람만 모은)출신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본인의 의지로 종신까지 가능한 선비라면 누구나 우러러 보던 관직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명예직이고 또 그 당시의 문의 최고봉에 오른 사람만이 받던 관직이기에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이렇게 따로따로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예외로 조선시대 유일하게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동시에 겸임 하신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서거정 입니다.
서거정(1420~1488) 45년간 여섯 임금을 섬겼으며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해으며,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을 번역 했다.
재밌는 사실은 그 명예로운 대제학보다 더 알아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선생(先生) 입니다. 퇴계선생, 이율곡선생, 서화담선생 과 같은 분들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이 선생보다도 더 높여주는것이 처사 라고 합니다. (대략 선생 3 = 처사 1) 세상은 통달했지만 평생 벼슬하지않고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다가신 분들을 지칭합니다. 유명한 학자이신 남명 조식 선생의 부친도 처사 로 살다간 분이고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갈처사, 조선 선조때 학자였던 한순계도 처사로 불렸다고 합니다.
한순계 처사의 대표적인 일례로 모친이 병에 걸리자 약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구리를 녹여 그릇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누군가 금을 구리인줄 알고 팔았는데 그 금을 다시 들고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장사로 남은 이익이 생기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모친의 병이 다 낫자 바로 장사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생전에는 서화담, 이율곡, 성혼 같은 훌륭한 분들이 자주 찾아와 즐겁게 지냈다고 합니다. -조선 숙종때 그가 살던 집 앞에 정문(충신,효자,열녀등 표창을 위해 집앞이나 마당에 세워주던 붉은문)을 세워주었다. -조선 영조때 사헌부 지평이란 벼슬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영의정3 < 대제학 < 선생3 < 처사 로 볼수 있습니다. (명예를 재단했을때)
하지만 벼슬을 했던분들의 업적은 기록으로나마 남아있었지만 그당시 최고의 명예로 처사라 칭해지는 분들의 일화가 부족한게 아쉬울뿐입니다. (이런 일화나 에피소드를 묶어서 책으로 나오면 재밌을것도 같은데..)
글을 처음 써보는 초보라 많이 미흡했습니다.
여러가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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