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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8/13 19:32:10
Name 쌈등마잉
Subject [일반] 설국열차 - 독실한 봉준교 신자로 부터 신앙을 의심받다 (스포 있어요)
1

바야흐로 <설국열차>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옆집의 누나도 "얘, 설국열차가 말이야...", 뒷집의 아저씨도 "얘야, 설국열차는 말이다...", 앞 집의 아주머니도 "설국열차 말야, 세상에, 세상에..." 지나가는 도둑 고양이는 "설국열차는 말이다옹..." 이거, 참 뭔일이다냐.

"교를 믿으십니까?" "네?" "봉준교를 믿으십니까?" "예수 믿는대요?" "아놔, 개독,이 아니고요-봉준교의 새 경전이 나왔습니다. 여기 3000원 할인권" 오! 득탬!

"주말에는 할인 혜택이 안 됩니다. 여기 깨알같이 써져있네요. 현미경으로 보시면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비 올라서 9000원이yo"

'그렇게 설국열차는 내게로 왔다.'



2

보시다시피 1은 망했습니다. 현저히 떨어지는 드립력은 묻어버리고 담백하게 영화 후기를 남겨보겠습니다.

이 영화, 한 마디로 실망입니다. 대실망까지는 아니고 소실망정도.
제가 올해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 바로 이 <설국열차>였죠. 그래서 기다림을 달래며 자료를 정리해보기도 했습니다.
(http://cisiwing.blog.me/120195113364)
(https://pgr21.com/?b=8&n=45491)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계속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계관의 설정이라든가, 알레고리를 활용하려는 의도는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열차를 인류 생태계로 설정하고, 배열을 역사 순으로 배치했죠. 동굴 속 인류라는 알레고리,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불'이라는 장치, 재배와 목축이 가능해지고 그에 따른 잉여가 발생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구체화되는 권력의 등장, 그리고 그 권력을 정당화하는 교육과 종교의 발달 등등. 꼬리가 머리가 되는 전복이 있을지라도 기존의 인류 생태계(열차)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닌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관점. 그리고 그 생태계(시스템) 밖으로 나감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시사 등.
(작품 분석은 주요 영화 매체들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고, 인터넷으로 간단히 볼 수 있는 리뷰로는 http://aciiacpark.blog.me/100193144054
http://blog.naver.com/cerclerouge/40194310986)



문제는, 이러한 세계관의 설정이나 알레고리들이 영화의 서사와 별로 호응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정 세계를 담은 각각의 알레고리는 영화의 기본 스토리와 조응하면서 유기적으로 풀어지지 않고 그저 풍경처럼 처리됩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알레고리를 해독하고자 유도되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화면으로 파악합니다. 그러다보니, 인류라는 생태계라는 문제, 보존을 위한 통제의 정당화-혁명과 반혁명이라는 것 자체가 시스템의 필요에 의한 장치였다는 반전은 놀라움 보다는 밍밍한 느낌을 줍니다. 송강호가 열차 밖으로 뛰쳐나가 기존의 인류 보존의 시스템을 부수고자 하는 제스처도 획기적인 독해를 유도한다기 보단, '뭐 그럴수도 있지'하며 심드렁하게 넘겨집니다.

영화를 보고 얼마 뒤 봉준호를 아끼는 한 친구와 <설국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친구는 <설국열차>에 대한 수많은 악평들에 경악하고 분개하면서 무식한 관객들이라고 조소를 하더군요. 물론 저도 <설국열차>가 다소 지나치게 까인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막 만든 영화라는 평은 정말 아니죠. 하지만 스토리와 알레고리가 잘 조응하지 못해 영화적 체험이 강렬하지 못했고, 야심차게 준비한 세계관의 제시도 힘 있게 실리지 못했죠. 봉준교 신자인 친구는 이 영화의 부정적 평을 어리석은 관객에게 모두 전가하며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자신들을 책망하라고 합니다만, 이런 주장은 <설국열차>가 별 생각 없이 만든 허세 영화라는 평과 그렇게 다른 견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반복으로서의 인류 보존(열차)이 아닌 외부 세계로의 가능성을 희망하게 하는 '북극곰'이라는 매개도 '코카콜라?'를 먼저 떠올리게 하니- 무식한 관객 탓을 하며 자위하기 이전에 뭔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설국열차>를 함께 봤던 친구는 봉준호 감독에게 별다른 애정도 없었던 친구라, 영화를 보고 나온 제가 "그건 뭘 의미하는 것일까? 그 풍경은 어떤 의도를 가졌던 걸까?"하며 고민하는 걸 보고 "재미도 없고 참신하지도 않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 영화를 뭘 그렇게 곱씹냐"고 하며 볼을 꼬집더군요. 그래도 그냥 팝콘 영화처럼 넘어가기엔 아쉬운 영화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단체로 관람하고 온 동아리 아이들도 이 영화가 그렇게 진지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더군요. 물론 모두가 이 영화를 철학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긴 하죠. 그런 것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요.



3

인터뷰를 보니 예산 압박 때문에 많은 부분을 부득이하게 쳐냈다고 하던데, 그런 압박이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으로 낼 수 있었겠죠?
차기작의 예산 확보는 북미를 비롯한 해외 흥행이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성공해서 좋은 투자자들을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ps. 본 리뷰도 철저히 저의 개인적 감상입니다. 제가 봉준교 신자라고 놀린 친구의 의견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견해고요. 저도 봉준교 신자입니다. 괜한 사족을 다는 이유는 (pgr에서는 크게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긴 하지만) <설국열차> 관련 게시물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불타오르는 걸 왕왕 봤기 때문입니다. 제 게시물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다들, 어땠나요? <설국열차> 그리고
해외에서 흥행은 할까요? 국내에선 1000만도 가능해 보이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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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등마잉
13/08/13 19:34
수정 아이콘
다음영화 네티즌 평점이 6.9네요. 7점 이하라니 좀 충격인데요?
절름발이이리
13/08/13 19:35
수정 아이콘
설국열차에 대한 악평 가지고 무식한 관중 운운하는 건 개그지요. 정말로 어렵고 복잡하고 심오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설국열차를 좋아할 확률은 매우 낮을거라고 판단합니다.
13/08/13 20:08
수정 아이콘
동감입니다. 그리 따지자면 '유식한' 관중들이 좋아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고 봅니다.
쌈등마잉
13/08/13 20:30
수정 아이콘
그렇죠. 봉준호가 스스로 밝혔듯이 이 영화는 '유식한 관객'이 아닌 '대중'을 위해 연출된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친구의 심정도 이해되는 게 이 영화가 아무 생각 없이 만든 단순 오락물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폄하하는 리뷰들이 상당히 많기도 하고. 네티즌 평점이 6점대이기도 하고. 그 친구는 이 영화가 그런식의 대우에 받는 것에 분개하는 것인데, 저로서는 뭐- 그럴수도' 라는 생각입니다.
13/08/14 00:18
수정 아이콘
그런 사람이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동시대영화를 좋아할 일 자체가 거의 없죠. 토리노의 말정도는 되야 좋아하겠죠.
why so serious
13/08/13 20:01
수정 아이콘
기차 칸배열이 인류의 역사다... 뭐 이런 해석은 꿈보다 해몽입니다.
봉준호 감독 인터뷰 찾아보시면 있어요.
쌈등마잉
13/08/13 20:24
수정 아이콘
그렇긴해요. 엄밀하게 따져보면 그렇게 매끈하게 맞아 떨어지지도 않죠. 다만 인터뷰에보니 "근본적으로 그것이 봉건주의건,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실패한 어떤 체제이건 간에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고, 그것을 기차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상징적으로 풀려고 했던 것"이라고 밝히고 있고 또 기차를 단순한 "하나의 인류 체제가 아닌 역사적 맥락을 고려했다"는 점은 밝히고 있네요.

어쨌든 그가 어떤 상징들을 생각했고 그것을 알레고리화했는지 정확히 독해할 필요는 없지만, 그 노고가 영화 서사랑 잘 호응되지 않아 매력이 반감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벨리어스
13/08/25 11:54
수정 아이콘
감독이 그런 의도를 하지 않았더라도 영화가 사람들에게 공개된 이상 영화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영화 내용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라면 말이죠.
저는 상당히 안타까운것이 사람들로부터 '꿈보다 해몽' 이란 말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쓰인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애초에 '꿈보다 해몽' 이란 말이 왜이렇게 부정적으로 얘기가 되는 것인가? 라고서 의문을 품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꿈' 과 '영화' , 둘 다 어떤 하나의 대상이며 그 대상을 해석하는 것, 즉 해몽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은 그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신들의 시점에서는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그 관점을 타인에게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되는군요.
13/08/13 20:17
수정 아이콘
거의 동의합니다.

재료 준비 및 레시피는 완벽했지만 조리시간이 부족했던게 아닌가...

나쁘진 않았지만 아쉬운 면이 있어요. 돈 아깝지는 않았어요
13/08/13 20:19
수정 아이콘
개인취향차이죠 크 전 괜찮게 봤습니다.
엄청 와닿고 찐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힘빼고 편하게 보기에도 무겁고 진지하게 보기에도 괜찮은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영화 자체 이상으로 비하인드 스토리나 영화에 대한 설명을 곱씹는 재미도 있었구요.
작은 아무무
13/08/13 20:29
수정 아이콘
문제는 언제나 예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 올해 본 영화 중에선 가장 재미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예산이 좀 넉넉했더라면 조금 더 세심한 연출이 가능하지 않았겠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WindRhapsody
13/08/13 21:23
수정 아이콘
예산의 문제였든 시간이나 편집의 문제였든 감독의 역량문제였든 어느 쪽이었든 간에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게 아쉽네요.
그날따라
13/08/13 21:28
수정 아이콘
결말 예측이 안되서 흥미진진하게보다 마지막은 좀 벙찌던군요 세기말 생존 인류쪽을 좋아해서 새칸마다 뭐가 나올지 기대되던데 역시나 돈문제로 제약이 많았어요
애니로라도 나와서 자세히 보고싶더라구요
포포탄
13/08/13 23:32
수정 아이콘
스시먹을때 나왔던 북극곰이 좀 더 크게 보였더라면 북극곰이 쌩뚱맞다는 느낌은 없었을텐데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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