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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8/09 18:16:35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그가 남긴것과 잃은 것
1.
한참 공사 중인 불국사 입구에 머나먼 곳에서 온 아사라는 이름의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아사는 불국사에서 탑을 만드는 석공인 오빠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절의 입구에서 발길을 되돌려야 했지요. 남자들만 일하는 공사장에 여인네가 들어오면 집중력이 흐트러져버릴 것이고 그것을 부정탄다고 했으니 아사로서도 도리가 없었습니다.

오빠를 찾아 멀리서 온 사연을 들은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한가지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만일에 탑이 다 만들어지면 불국사 남서쪽에 있는 영지라는 연못에 그 그림자가 뜰 것이라고 말이죠. 아사는 반가운 마음에 영지로 가서 그림자를 기다렸습니다
.
마침내 그림자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탑의 그림자는 두 개가 아니라 하나뿐이었지요. 아사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윽고 오빠가 공사를 끝내고 왔을 때는 이미 여동생은 사라져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후 연못에 비친 다보탑은 그림자가 비쳤다해서 유영탑, 석가탑은 그렇지 않다고 하여 무영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동생의 이름인 아사에서 비롯된 아사녀와 아사달의 이야기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현진건은 <무영탑>이란 소설에서 둘은 남매가 아니라 부부의 이야기로 변하면서 애절한 사랑과 나라를 잃은 슬픔을 표현하게 됩니다.

어찌되었든 이 이야기를 통해보면 공사는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국사가 만들어진 것만 해도 무려 30년 가까이 걸렸으니까 그럴만도 하지요. 그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못하게 된 누이동생의 애타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그림자가 비칠거라던 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은 걸까요?

삼국시대 신라의 탑들은 하나같이 높았습니다. 황룡사 목탑만 해도 그 높이가 80미터에 이르렀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또한 그 크기가 어마어마 합니다.
그런데 후기 통일신라시대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탑의 높이가 낮아져 버리게 됩니다. 예배의 대상이 탑에서 불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탑은 삼층탑이 대부분으로 절 밖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치 아담해지게 됩니다. 결국 이런 변화가 아사달과 아사녀의 비극을 낳은 것입니다.


이 두 개의 탑을 비롯해 경덕왕시대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뛰어난 건축물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이때 만들어졌고,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신종도 만드었습니다.

진시황이 그랬듯이 수양제가 그랬듯이 후세의 인간들에게 관광자원을 남기기는 했으나 당시의 사람들에겐 고통만을 안겨줬을 건축물을 만든 사람들은 그 폭정의 깊이가 클수록 건축물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왕실의 수명은 그만큼 짧아졌습니다.

경덕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왜 경덕왕은 건축에 빠졌을까요?

2.
760년 4월. 신라의 수도 경주가 벌컥 뒤집혔습니다. 해가 또 하나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벌건 대낮에 나란히 하늘에 떠있는 두 개의 해를 보며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 일은 열흘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이 해라고 생각한 그것은 76.03년 마다 지구를 찾아오는 ‘핼리혜성’입니다. 이때가 태양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근일점입니다. 이 핼리혜성은 전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었습니다. 화려한 꼬리를 내뿜으며 빛나는 혜성의 모습은 흡사 태양과 같이 느껴졌고 사람들은 두 개의 해가 하늘에 떴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때 신라의 임금은 경덕왕. 왕은 일관을 불러들여 도대체 어떻게 된일인지 물었습니다.
“마땅한 승려를 불러들여 꽃을 뿌리며 정성을 들이면 재앙이 물러갈 것이옵니다.”
이에 따라 초빙된 사람이 월명사였습니다.

그는 불교식 예법에는 밝지 못하다는 것으로 보아 승려라기 보다는 향가를 짓는 말하자면 음유시인과 같은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승려가 아닌 그가 뽑힌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혜성은 당연히 주기적으로 돌고 있지만 그때마다 이 호들갑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진평왕때에는 예외였습니다. 이 두 혜성만이 특별히 신라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진평왕때 신라인들은 왜적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왜국의 병사들은 동해안 일대에 상륙하여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속수무책이었지요. 그런 때에 북두칠성자리에 혜성이 나타난 것입니다.

오래전에 사람들은 북두칠성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신성한 곳에 혜성이 침범했으니 얼마나 불길했을까요? 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신라인들에게 다시 자신감을 갖게 해준 사람이 융천사입니다.

융천사는 국선 즉 화랑들을 이끌고 있는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혜성가를 지어 화랑들에게 연주와 노래를 하도록 합니다. 융천사는 원래는 주술사였으므로 노래는 곧 주문과 같았고, 신라인들은 사기가 높아졌습니다.

결국 신라인들의 반격에 놀란 왜병들은 물러갔고, 자연현상일 뿐인 혜성도 곧 하늘에서 사라져 저멀리 우주비행을 떠났습니다. 그후 혜성은 언제나처럼 정해진 시간여행을 했지만 아무도 그 혜성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신라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나라로 변했고, 통일전쟁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혜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경덕왕의 즉위무렵 중국은 ‘안사의 난’이라고 부르는 혼란기였습니다. 이 소식이 바람처럼 날아들자 휘파람을 부른 곳은 발해와 일본입니다.

본래 신라는 발해와 잘 지냈습니다. 당나라와 전쟁을 치렀다는 공통점이 친밀감을 주도록 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발해가 영토를 넓혀와 신라와 맞닿고, 중국이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를 후원하면서 두나라는 사이가 멀어졌고, 결국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유득공이 발해의 역사를 정리해낼때까지 잊혀진 나라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어쨌건 발해는 이일을 계기로 일본과 손을 잡게 됩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두나라는 마침내 때가 왔다고 여겼습니다. 당이 신라를 돕지 못하는 동안 일을 치러버릴 계획이었던 것이지요.

두 나라 사이에 사신이 부지런히 오갔고, 왜국에선 신라 공격을 위해 배 500척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늘에 두 개의 해 즉 혜성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속을 부글부글 태우던 귀족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습니다. 이미 무열왕이후 신라왕실과 다른 귀족들 사이에 차이는 없었습니다. 혈통적으로 똑같은 진골. 누구나 왕후장상이 될 씨였습니다.

그런데도 누구는 왕이고, 누구는 그 왕에 머리 숙여야 하는 신하. 그나마도 관직에 나가 일하지 않으면 땅을 안주겠다며 녹읍을 철폐했습니다. 위기를 느끼던 그들을 결정적으로 분노케 한것은 한화정책입니다.

한화정책은 중국식 제도를 도입해서 왕권을 강하하려는 것으로 전국의 117개의 군과 293개의 마을의 이름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꿨습니다. 관직이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마을이름은 전부 한자가 들어간 중국식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덕왕이 우리말을 말살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제코가 석자였을 뿐이지요.
귀족들은 즉각 반발했습니다.왕권을 강화하려는 일이 귀족들에게 좋은 일일리 없을테니까요.  원래 시골마을들은 귀족들의 오래전부터 다스려온 땅인데 이곳 이름을 중국식으로 바꾼 것은 강제로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꿔버린 일제강점기때 창씨개명과 같은 모욕감을 귀족들에게 주었던 것이지요. 고분고분 왕실의 신하가 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인 귀족들의 속은 부글거렸습니다.

그런때에 두 개의 해를 본 귀족들은 그것이 하늘의 계시라고 여기고 불안감을 부풀릴대로 부풀렸습니다.

들끓는 민심. 요동치는 정국. 경덕왕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월명사를 초청했습니다. 당시 저잣거리에 유명한 음유시인인 월명사를 통해 혜성을 쫓아내려고 한 것이지요.

월명사는 왕명을 따라 도솔가를 지었습니다. 왕은 성대한 의식과 함께 도솔가를 불렀고 저잣거리 사람들에게도 부르게 했습니다. 두려움에 가득찬 신라인들은 도솔가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경덕왕의 바람대로 혜성은 점차 크기가 작아지고 빛을 잃어갔고  신라는 곧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던 중국의 안사의 난도 신라에겐 평화를 제공했습니다. 난을 제압하느라 지친 당나라가 발해가 손을 잡았습니다. 일본도 사정이 마찬가지로 변했습니다. 입만 열면 신라정벌을 외치던 후지와라 나카마로가 힘을 잃고 말았던 것이지요. 이후에도 일본은 발해에 신라를 같이 정벌하자고 부추겼으나 발해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왕과 귀족의 힘이 균형이 맞아 태평성대가 이어질 때는 자연현상들은 마치 공기와 같은 존재입니다.하지만 왕의 힘이 작아지면 자연현상은 하늘의 계시로 둔갑하여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합니다.

혜성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머나먼 시간여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은 잠시 물러섰을 뿐이었습니다.

3.

5년 뒤. 765년 경덕왕은 위기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귀족들의 반발은 여전히 거셌고, 정국은 요동치고 있었으며 그들을 달래기 위해 녹읍을 돌려주며 한발 후퇴했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져갔습니다.

3월 3일은 신라의 최고 명절날입니다. 왕은 정국을 반전시킬 카드로 이날 특별한 손님을 초대합니다. 원래 이 명절날에는 왕을 위해 좋은 말을 해줄 승려를 초청하는 것은 전통이었습니다. 왕은 예전처럼 왕실의 덕으로 좋은 옷을 입고 호화롭게 지내는 승려를 초청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글부글 끓는 민심을 달랠 반전카드로 선택된 승려가 충담사입니다.

충담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루한 옷을 입은 승려여서 경덕왕이 초청했다고 나오는데요, 여기서 남루한 옷을 입는 승려란 귀족의 복을 빌어주고 그들의 떠받침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길을 거부한 사람이이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담사는 귀족들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유명한 저잣거리 스타였던 셈이지요. 그러니 민심을 잡을 반전카드였던 것입니다.

충담사가 특별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찬기파랑가>라는 향가때문입니다. 이 노래가 그를 스타로 만든 것이지요. 왜 이 노래와 이 노래를 만든 충담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특별히 뛰어난 음악이라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노래의 주인공이 기파랑이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기파랑은 누구일까요?

기파랑이란 기파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이란 뜻입니다. 기파는 인도이름 지바카의 신라식 표기법으로 지바카는 인도의 전설적인 외과의사입니다. 부처의 병을 치료해줬기 때문에 불교경전에도 이름이 올라와 의술의 고수를 대표하는 대명사격이 된 것이지요.

충담사는 어느 날 숨은 의술의 고수를 만나 그에게 기파라는 이름을 주어 찬양하며 <찬기파랑가>라는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기파랑이란 명예로운 호칭을 얻은 의술의 고수는 어쩌면 외과의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찬가파랑가>가 사람들 사이에 유행가가 된 것은 기파랑의 의술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저잣거리에 많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충담사는 이 의사의 후견인으로 기파랑만큼 존경받고 있었던 듯합니다. 의술을 가진 자, 그리고 그를 후원하는 승려라면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전통시대 사찰은 민간의료를 베푸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기파랑도 충담사도 특별한 것은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돈벌이 수단으로 의술만한게 어딨을까요. 귀족을 등쳐서 쉽게 돈을 얻을 수 있고 혹세무민하기 좋은 승려의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충담사의 옷은 누추했던 것입니다.

경덕왕의 초청을 받은 충담사는 왕의 바람대로 <백성을 편안히 하는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었습니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다사로운 어머니
백성은 어린 아이라고
하실진대,백성이 다사로움을 알도다.
구물구물 살아가는 물생
이들을 먹이고 다스려라
이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리
하실진대, 이나라 보전된 것을 알도다
아아,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하리라

이 노래는 경덕왕을 흡족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행간을 읽어보면 왕과 귀족은 싸우지 말고 백성을 보살피라는 뜻입니다만 왕은 신하는 감히 왕의 자리를 넘보지 말라는 말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왕의 바람도 헛되었습니다. 귀족들의 반란은 그치지 않았고 경덕왕이 죽고 어린 혜공왕이 왕위에 오르자 마침내 무열왕의 후손들의 왕계가 이어지던 신라중대는 끝이 나게 되고 신라 하대가 열리게 됩니다.


4.

민심을 손에 넣고 귀족들을 제압하여 정국을 주도해나갈 능력이 없었던 경덕왕은 혼신의 힘을 다해 위대한 문화유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늘 말해주듯이 그것들은 그것을 만든 장인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수고와 정신적 가치는 담아낼 지언정 왕실의 번영을 약속하진 않습니다.

하지만....위대한 문화유산이나 하다못해 서푼짜리 관광자원도 안될 일에 목매달면서까지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려했던 통치자가 남긴 쓰레기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적어도 불국사나 석굴암이나 에밀레종이 경덕왕이 죽은 뒤 쓸모가 없었다면 방치되었을 것이고, 파괴되었을 것입니다.그 누구도 아닌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죠.

2013년 여름. 잘못된 4대강 사업을 정치적 이유로 찬성표를 던졌던 사람도, 열렬히 옹호했던 사람도 그것을 밀어붙였던 통치자도 보이지 않은 채 썪어가고 부러지고 무너지고 깍인 채 신음하는 산하만 남았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심판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남겨서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되돌릴 것인가. 둘다 길이 멀고 상처가 깊습니다.

진시황도, 수양제도 경덕왕도 자신의 가문의 부귀영화가 끝난 대가로 문화유산을 남겼습니다만, 지금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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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사라비아
13/08/09 18:27
수정 아이콘
아아.... 오랜만 입니다

항상 느끼지만 정감있는 글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설탕가루인형형
13/08/09 18:28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봤습니다~
Practice
13/08/09 18:30
수정 아이콘
이렇게 거대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재주지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한강에 뭔가 둥둥 떠 있다는 섬을 만들었는데, 스케일은 달라도 하는 짓은 같은 듯하네요.
히히멘붕이
13/08/09 18:36
수정 아이콘
아? 해피엔드님 돌아오신건가요~흐흐흐
13/08/09 18:52
수정 아이콘
다보탑,석가탑 둘다 낮은탑이데 왜 하나만 보였을까요? 영기가 부족했나
Je ne sais quoi
13/08/09 18:59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13/08/09 19:0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완전연소
13/08/09 19:4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몽키.D.루피
13/08/09 21:33
수정 아이콘
유산은 커녕 후손들에게 거대한 똥을 싸질러 놓은 거죠. 뭐, 옆나라 보니까 핵 싸지른 것보단 낫지만요.. 똥은 냄새나도 치울 수라도 있지..
절름발이이리
13/08/09 21:57
수정 아이콘
역시 해피엔드님..
루크레티아
13/08/09 22:35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잘 읽었습니다.
요즘엔 장마철에 진저리 나게 들리는 임진강과 한탄강 이야기 말고도 새로운 걱정거리가 서울 한 가운데 둥둥 떠 있어서 참.....
콜록콜록
13/08/09 22:50
수정 아이콘
아이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추천 쾅!
먼곳을향해
13/08/10 15:47
수정 아이콘
추추추추..추천!
13/08/10 21:0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3/08/11 00:01
수정 아이콘
그가 남긴건 천문학적인 수준의 정부부채와 파괴된 자연 그리고 몇몇의 주머니속에 들어간 검은돈...
GreatObang
13/08/12 11:25
수정 아이콘
오늘도 추천입니다 ^^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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