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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6/23 16:39:45
Name 안동섭
Subject [일반] 나의 영어유산 답사기
얼마 전, 정확히 4일 전, 제 인생 마지막 영어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간신히 얻은 이 점수로 영국쪽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이제 무사히 학위과정만 마친다면 다시는 그 누구도 영어점수를 요구하진 않겠지요.

그러니까 이제 끝입니다.

그간의 기나긴 영어역정을 되짚어보면 어떨까 하고 글을 써봅니다.

----------------------

1. 유소년기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방학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갔는데 미녀와 야수, 피터팬, 인어 공주 등의 비디오테잎(자막도 더빙도 아니고 생판 영어)가 몇 개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밖에 나가도 재밌는 것도 없고.. 두 달 동안 늘어지도록 돌려봤었어요. 무슨 소린지도 모르면서.

이게 과연 훗날 도움이 되었을까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여튼 제가 기억하는한 최초의 집중 영어교육(?) 기간이 된 셈입니다.



2. 중학교

평소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아버지께서 칼을 꺼냈습니다.

생애 처음 받아본 제 영어교과서를 가로채서 슥 보시더니

"테잎을 들으면서 본문을 모두 외우자. 한 과를 외울 때 마다 만 원을 주마. 다만 잘못 외우는 곳이 하나 나올 때 마다 500원을 차감하마" 라고..

당시엔 반감이 제법 심했는데, 1과 본문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죠. 왜냐하면...

중 1 교과서의 첫 시작이 뭐.. 하이 샐리~ 하이 톰~ 나이스 투 미츄~ 나이스 투 미츄 투~ 하와유 암 파인 땡큐~

뭐 이러다보면 끝나는 거라 "고작 이걸 외워도 만 원을 줄거야?" "당근이지!"

뭐 그렇게 기나긴 외우기가 시작됐던 기억이 납니다 -_-;

물론 늘 8,500~9,000정도를 벌었죠. 꼭 한 두 군데 씩 틀리면서.

기억나는 건, Again을 "어게인"이라고 읽었다고 500원을 깎던 야속한 일화가 생각나네요. 꼭 "어겐" 이라고 발음했어야 했다며 제 어필을 무시하고 차갑게 500원을 차감하던 그 모습....

영어 교과서는 매 학년 총 14과로 구성되어있고, 중 3 때 까지 모두 42과가 되죠. 뒤에 몇 과는 지겨워서 못외웠던 것 같고, 대강 35과 정도 외워서 돈을 타먹었답니다.

이게 재밌는 게, 실제 제 영어실력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었어요. 본문을 싸그리 외워두면 일단 정규 시험에서 뭘 틀릴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지문이 다 본문인데요 뭐. 구멍뚫기를 해놔도 다 채워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제 영어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계기가 되고, 그렇게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채로 외고에 지원하게 되는데....후덜덜덜...


3. 외고지원기

대원외고 한 곳 지원했습니다.

당시(1999년이던가?)에도 이미 수시와 정시 같은 개념이 있더군요.

수시 때는 오직 영어로만 뽑고, 정시 때는 영어와 수학, 내신 따위를 모두 보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수시에....보기 좋게 탈락 -_-;

영어면접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완전 버벅거려서 얼굴이 빨개진 기억이 납니다.

제가 버벅거린 뒤 제 옆자리 여자애가 너무 유창하게 웃고 떠들고 농담을 주고받아서 더욱 수치스러웠더랬죠.

이 수치심이 참.. 그 후로도 오래 갔습니다.

정시 때는 일단 1차는 붙었습니다. 그냥 필기시험인데 어찌어찌 붙었네요.

2차 때 수학시험...을...망쳤죠.....ㅡㅜ

그렇게 보기좋게 떨어지고 저는 일반고로 진학하게 됩니다.



4. 질풍의 고딩

영어수업을 거의 농땡이치며 보냈네요.

아버지도 뭐 더이상 뭘 외워라 그러지 않으시고

수업 들어가면 그렇게 단어 외우라고 때리고(참..왜 그렇게 때리던지..) 하는데 너무 외우기 싫어서 그냥 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해리포터가 출간되고, 번역본으로 쭉 봤는데 그게 참 꿀잼이더군요.

흥이 나서 원서를 구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사전 찾아가며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나중에 가니 속도가 붙더군요.

영어수업 농땡이에 대한 자기변명 겸 해서 영어 수업 시간에는 어김없이 뒷자리에 앉아 책상 밑에 해리포터를 펴놓고 읽었던 추억이 방울방울



5. 대딩


대학생은 필수 영어 코스가 몇 개 있죠.

필수 영어회화시간으로 기억합니다. 그 양키 선생은 딕테이션의 신봉자였어요. 모든 학생들에게 무슨 시디를 한 장씩 주면서 학기 말까지 딕테이션을 해와야 성적이 나올거라고 하더군요.

카네기 성공론 뭐 그런거였습니다.

학점을 포기할 수는 없는지라 계속 돌려들으며 딕테이션을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제법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6. 첫 토익

선생님...카투사가 너무 가고 싶어요.

토익 700을 목표로 달포가량 문제집을 푼 후 770을 받았습니다.

물론 카투사는 보기 좋게 탈락!



7. 군시절

짬밥이 좀 찬 후에 영어를 놓으면 안 되겠다는 불안감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잡은게 반지의제왕.

교보가서 원서를 샀고, 그걸 들고 들어와서 읽는데....와...어렵데요 -_-;;;

끙끙거리며 몇 개월 만에 다 읽고나니 말년에 시간도 잘 가고 좋았습니다.



8. 대학원


석사과정 2년간 본 2차문헌은 대략 9할이 영어였지 싶습니다.

정말 학대(?)받는 느낌으로 2년을 포풍처럼 보내고 나니 이제 전공서적의 독해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사라지더군요.



9. 유학준비


석사 졸업 후 유학을 결심했고

이 때 부터 영어와의 지겨운 소모전이 시작되었습니다.

3개월 공부하고 GRE 도전

몇 개월 뒤 다시 토플 치고

이듬해 다시 토플-아에일츠-토플-아이엘츠-아이엘츠...

한 1년 반 정도는 영어에만 매달린 기분입니다.

쓴 돈도...어휴.. 시험만 7번 쳤으니 대략 150만원은 나왔겠네요.

결국 아이엘츠로 원하는 점수가 나왔고(밴드 8) 이제야 간신히 학교측에서 요구한 기준점을 충족했네요.




---------------------------


영어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지만

국내파로서 영어를 배웠다는 [원죄]

늘 께림칙하고 불편한 동반자였던 영어....

중 1 때 정식으로 영어와 맺어진 이후 이제까지 얼추 16주년이 되었습니다.

16년간의 이력을 되돌아보건대 영어공부는 암기와 반복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봤던 비디오를 돌려보고 또 돌려보던 시절부터,

지알이 본다고 해커스 다니면서 [거](의)[만](점)[어](휘집)를 외던 때까지

암기암기반복반복암기반복

어휴;;;

유학가면 또 그 나름 영어로 고생하겠지만

그렇다고 영어시험을 보진 않겠죠 (설마...-_-;)

그렇게 생각하면 마치 영어시험으로부터 영영 졸업한 것만 같은 기분이 나네요 으흐흐

그런데 저야 그렇다 치고

옆에서 꼬물거리는 딸애들이 이제 골치네요 크크

쟤들도 분명 영어로 고생할 날이 닥쳐올 텐데

아버지로서 이제 무얼 어떻게 해야 걱정입니다.

교과서를 다 외게 해야하나? 만원...으론 택도 없을 테고, 한 5만원씩 걸고서?

뽀로로 대신 텔레토비나 틀어줄까?

아... 골치야.... 몰라.... 알아서들 해라 ^^;;; 난 이제 끝이니까 무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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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23 16:43
수정 아이콘
유학오셔서 박사학위심사 받을 때 논문작성할 때 영어로 머리를 쥐어뜯으실겝니다-_-;;;;; 전 지도교수님이 매일 영어 공부 조금씩 하라고해서 요즘 내용만 읽던 신문/논문 표현들 적어놓고 외우고 있습니다.. 회화식 영어야 어찌저찌하는데 고급영어를 '올바른'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하는건 정말 어렵습니다... 간만에 영어에 버닝 중이네요 리서치보다 재미집니다 허허허허허-_-;

전공지식 및 리서치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게 제가 보기엔 영어 발표/논문 작성입니다. 자기가 아는게 많다 하더라도, 또 새로운 발견을 해냈다 하더라도 표현을 제대로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 시험만 쳐서 점수로 합격여부를 결정할 때가 정말 행복할 때입니다 허허허허허허-_-;;;;
안동섭
13/06/23 16:52
수정 아이콘
후덜덜;;;

희망을 주세요 절망 말구요 엉엉
13/06/23 16:57
수정 아이콘
진지먹고 말씀드리면, 영어 정말 중요합니다. 전공지식에 쏟는 노력의 절반만 해도 그 효과가 훨씬 크니까 꼭 연습하세요. 발음이나 인토네이션이 중요한게 아니라 표현이 정말 중요해요(발음은 오히려 어설프게 원어민 흉내내서 굴리지 말고 또박또박 다 하는게 더 쉽게 들립니다). 학문별로 잘 쓰는 표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도, 또 발표할 때나 논문을 작성할 때 오해를 사지 않고 독자들에게 내용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영어는 필수입니다. 특히 경제/경영학 계열이시라면 그 중요도는 미친듯이 올라갑니다. 더불어 발표 스킬도 상당히 중요하구요. 제 지도교수님도 비록 발음은 아시아계지만 대화할 때 표현이나 논문 작성하신 표현보면 감탄합니다. 최고급 수준을 구사하세요. 더불어 저한테도 맨날 영어 연습 좀 꾸준히 하라고 ㅠㅠ

희망은... 글쎄요 대학원생한테 무슨 희망을 요구하십니까?-_-;
안동섭
13/06/23 17:49
수정 아이콘
끙;;;
정진하겠습니다 ㅡㅜ
개깡다구
13/06/23 17:06
수정 아이콘
토익770이 저렇게해야 받을수 있는 점수란 말입니까.... 덜덜덜 원서를 쑥쑥 읽는 사람이 달포간 준비해야 맞는 점수라니 무섭네용.
안동섭
13/06/23 17:50
수정 아이콘
당시엔 지금보다 훨 못했어요;;
그리고 스피킹 같은 게 생긴 지금하곤 시험이 쵸큼 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무슨 입사지원하다고 8~900 막 찍고 그러던데 당시 제게는 700도 굉장히 멀었던 걸로 기억해요.
복제자
13/06/23 17:48
수정 아이콘
전 토플 공부하고 있는데, 정말 영어는 끝도 없더군요 ㅠㅠ 매일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단어와 표현들. 끝도 없이 외워오고 있는데 끝도 없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수개월간 지겹도록 반복하고 보고 쓰고 말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늘긴 늘더라고요. 유학갔다오면 좀 나아지겠지 생각하고 공부중입니다 ㅠㅠ
안동섭
13/06/23 17:51
수정 아이콘
예 저도 그 희망 하나로 버텼는데 타블로이드님이 다시 절망을 덜덜덜
복제자
13/06/23 18:00
수정 아이콘
엉엉 저도 희망에 부풀어있었는데 절망으로 바뀌려고 합니다.
13/06/23 18:06
수정 아이콘
죄송합니다-_-;
13/06/23 18:00
수정 아이콘
아버지 직장이 외국이라서... 자동으로 영어랑 제2외국어가 해결된 3개국어자가 되어서 참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영어로 고생은 안하니까요
안동섭
13/06/23 21:16
수정 아이콘
부...부럽네요 ㅠㅠ
하후돈
13/06/24 13:07
수정 아이콘
와 부럽습니다...영어뿐만 아니라 제2외국어까지..해외에서 오래살다 오셨나 보네요.
Tchaikovsky
13/06/23 20:00
수정 아이콘
언제가시나요? 저도 이번에 영국에 석사하러갑니다. 직장생활하다 공부하려니 죽겠더군요.크크.
안동섭
13/06/23 21:16
수정 아이콘
앗 반갑습니다.
전 10월 13일 개강인데 못해도 8월 초엔 들어가서 적응해보려고해요
하후돈
13/06/24 13:07
수정 아이콘
무슨 전공으로 가시나요?
13/06/24 17:13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번에 비슷한 생각으로 아이엘츠 준비중인데 밴드8이면 정말 쉽지 않으셨겠네요.(말하기, 쓰기까지...)
전 밴드7 목표로 8월에 시험보려고 합니다. 가서 할 고생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야겠네요.
혹시 아이엘츠 노하우&팁이 있으면 전수받을수 있을까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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