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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6/16 16:54:08
Name 안동섭
Subject [일반] 선조들의 외국어교육
전공상 한문 독해능력이 아주 많이 필요했고,

아니, 그냥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한문 해독이 안 되면 논문을 못쓸 처지라 (-_-;)

어찌저찌 전통방식의 한문교육을 받게 되었었었습니다.

그게 벌써 2008년 이군요.... 한국고전번역원(구 민족문화추진회)에 입학했던게.

시간을 제법 투자한 덕에 한문을 쵸큼 볼 줄 알게 된 것 외에

선조들의 외국어교육시스템 간접체험이라는 소득이 있었습니다.





1. 한문이란?

이게 말이 '한문'이지 사실은 큰 상관 없는 서로 다른 장르의 글쓰기가 방대하게 중첩된 문화컨텐츠입니다.

한켠으로 보면 동일한 문법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문체'일 수 있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그냥 아예 다른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문체'를 많이 탑니다.

그래서 전통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각자의 분야에 맞는 글쓰기를 독해하는데 특화되어있어서

다른 분야의 글은 거의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예컨대, 사기, 전한서, 후한서, 삼국지 등등을 기가막히게 읽을 줄 아는 중국사 학자라 할지라도

주자어류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쩔쩔맬 수 있고

반면에 주자어류 이정어록 횡거어록 술술 보던 사람이

왕의 포고문 한 편을 번역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문체의 차이 뿐 아니라 내용의 차이도 장벽입니다.

주자어류와 대혜어록은 문체상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시대도 동시대구요.

하지만 주자어류 볼 수 있다고 대혜어록을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불교와 유교의 차이 때문이죠.




2. 선택과 집중


이러한 차이 때문에 교육의 현장에서 교사들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이게 그래서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신라 때 교재로 많이 쓰이던 텍스트와

고려 때의 텍스트

조선 때의 텍스트는 정말 많이 다릅니다.

논어맹자가 조명받는 때도 있고

시경 서경이 조명받는 때도 있습니다.

문선 읽기가 폭풍처럼 유행하다가도

또 언제가 되면 아무도 문선은 안 보고 고문진보만 보기도 하죠.

그리고 그 차이에 따라 당대의 문풍이 달라집니다.



3. 쓰기

'글씨' 쓰기야 말할 것도 없고

'글' 쓰기, 즉 작문능력이 어마어마하게 강조됩니다.

모든 공적 영역이 글로 운용될 뿐 만 아니라

사적 영역, 즉 편지를 통한 상호교류 역시 모두 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앞서 언급했던 각종 '문체'들의 작문은 모두 '따로' 배워야 할 영역들입니다.

시 쓰기.. 사부쓰기... 포고문 쓰기.. 임명장 쓰기.. 편지 쓰기.. 척독 쓰기.. 논문 쓰기.. 주석 달기..

뭐 하나 문체가 겹치지 않습니다.



4. 말하기 듣기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런건 중인계급의 역관들이 합니다.

재밌는 건, 역관들이 오늘날처럼 뭐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통역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저냥 중요한 자리면 몰라도

정말 중요한 대화는 그냥 필담나눕니다.




5. 교육

이상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교육이 실시됩니다.

일단 읽는 건 기본 중의 기본 기본 기본 기본입니다.

어마어마한 양을 읽습니다.

책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책을 1번씩 읽는 독서보다는

그냥 접근이 용이한 책들을 여러 번 읽게 됩니다.

정확한 독해는 정말 중요합니다.

각종 문체를 다 읽을 수 있는 교육을 따로 받습니다.

그리고,

외웁니다 -_-;;

물론 주요 경서는 다 외우구요.

주요 경서가 아님에도 그냥 다 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차피 다양한 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뿐더러

대부분의 '2차' 문헌들은 '1차'문헌들에 고도로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1차'에 해당하는 문헌들(주로 경서, 혹은 레전설급 문학작품들이나 역사서들)을 싹 다 외워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이 때 아예 뼛속 깊이 박히도록 소리내서 외워버립니다.

이렇게 외운 글은 시험을 봅니다.

선생이 앉아 있고, 학생은 선생을 등지고 벽을 바라보고 앉습니다.

선생이 '어디어디부터 외워보라' 하고 시험문제(?)를 주면 그부분부터 줄줄줄 욉니다.

못외우면....혼나죠..^^;

이렇게 욈으로써 각종 문체의 문법적 구조, 관례들, 관용구들, 그리고 '단어'들을 다 습득합니다.

이렇게 고도의 독해-암기 훈련을 받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씁니다 -_-;

재밌는게, 쓰는 훈련을 따로 받지 않아도 계속 외다보면 그냥 써집니다.

각 장르마다 일종의 관례가 있어서

대강 어떤 말로 시작해서 어떤 내용을 꼭 넣고 어떻게 마무리한다 뭐 이런 흐름과 격식이 정해져있습니다.

그래서 인용할만한 경서가 다 머릿속에 있고, 해당 장르의 흐름과 격식이 아주 익숙해지면

그냥 막 써집니다.

물론 작문 숙제도 많이 내줍니다.

그렇게 쓴 글은 선생에게 첨삭을 받구요.

간혹 열심히 써서 글 좀 쓴다는 유명 작가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봐달라구요.

그러면 보통 칭찬과 격려와 함께 첨삭을 받기도 합니다.



시험을 보면 성적을 냅니다.

그리고 보통 성적을 공개합니다.

잘하는 애는 공개적으로 칭찬받고 예쁨받고 뭐 그렇습니다.

일종의 엘리티즘 문화의 일단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잘'하는 그 능력 자체가 경외와 찬양의 대상이 된달까요?

순기능과 역기능이 분명한데, 순기능만 일단 언급하자면

여튼 그래서 잘하는 놈은 계속 이 방향으로 포풍 성장할 수 있는 자신감(?) 같은 걸 잔뜩 얻어갑니다.

말하기와 듣기 교육... 그런 거 음슴니다.

안가르칩니다.





6. 단상.


오늘날의 외국어교육과의 비교를 아니할 수가 없겠네요.

한 30년 전 쯤으로 돌아가봅시다.

위의 교육과 제법 비슷하지 않나요?

일단 '쓰기'의 비중이 좀 낮아지긴 했지만

강려크한 독서와 외우기 문화는 전반적으로 조선시대의 외국어교육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일단 시대가 다르다보니 필요 능력치가 좀 다릅니다.

따라서 이 '필요'에 맞는 외국어교육에 대한 요청이 계속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교육이 달라지고 있긴 합니다.

예전만큼 '쓸' 필요는 없어진 대신

말하고 들을 일이 훠어어얼씬 많아졌죠.

그래서 요즘은 말하고 듣는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더군요.

괜찮은 변화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와 함께 등장하는 "말도 못하는 영어" 라든가 "수영을 책으로 배운다" 같은 비아냥은 좀 그렇네요.

필요에 따라 다른 언어를 배웠다 뿐입니다.

독해와 작문 위주의 교육이 '틀렸다'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한문 독해가 안되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구어랑 문어가 너무 달라요.

정도는 덜하겠지만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어(spoken language)와 문어(writen language)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학생들이 '국어' 과목을 제대로 못 풀어서 끙끙 거리듯

걔들도 토플, 아이엘츠 보면 '어휴 리딩이 왜이리 어려워?' 이럽니다.

오히려 문제는 독해/문법/어휘 위주의 교육을 '실시' 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공교육 시스템이 아닐까 싶어요.

독해와 작문으로 '제대로' 교육받고 또 스스로 노력했던 소수 사람들의 힘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근세기의 위기를 이렇게 빨리 극복할 수 없었을지 모르죠.






(뱀발: 나이든 교수님들 중 무시무시한 두께의 영어 책들을 아무렇지도 팔랑팔랑 넘겨보고

영어 논문을 술술 쓰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분들이 외국 학자와 대화하면서 통역할 일이 있으면 제가 도울 수 있지만

독해나 작문에 관해서는 제가 개발살...이 납니다-_-;

넌 젊은 애가 영어도 못하냐고 막 놀리고-_-;;;;;;;

참 재밌게도, 이분들의 외국어 학습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한문이나 영어나 거기서 거기로 보더군요.

그냥 다 외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한 문화의 질긴 연속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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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16 17:00
수정 아이콘
갑자기 옛날 생각 나네요 크크 알바하던 곳에 나이 한 20대후반~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헝가리 형이 자주 왔었는데..
한국말을 좀 했어요. 미국서 3년간 일하다가 한국 왔다고 하던데, 어학연수 온 러시아 대학생 누님들이랑 친하고 영어로 이야기도 잘 하셨는데,
제 토익책 한번 슥 보더만..

"와, 이거 너무 어려워요, 이 책 쓴 사람 미친 사람이에요."

라고 하고 가더군요 -0-;;;
13/06/16 17:02
수정 아이콘
그때는 책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 다 외우는 것도 가능했죠. 어차피 다른 학문도 없었고...
지금도 통채로 외우는 방식이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효율의 문제때문에 쓰기 어려운 거지...

중국애들이 한문 못 하는 건 간체자 때문이라고 봅니다.
결국 한자는 그림문자라 통채로 알면 되는 건데 괜히 문자 자체를 새로 만드는 바람에 전통과 단절되고 말았죠.
어차피 요새는 컴퓨터로 글을 쓰기 때문에 굳이 간체자를 만들 필요도 없었는데...
안동섭
13/06/16 17:09
수정 아이콘
간체가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결정적이진 않다고 봅니다.
왜냐면, 간체 않쓰는 대만애들도 한문 못보거든요 -_-;
걔들은 문언과 어언이 갈라진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다는게 가장 큰 원인 같아요.
뭐랄까..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고려가요를 해독하지 못하는 거랄까요?
13/06/16 17:11
수정 아이콘
그렇긴 하죠. 언어는 변하니까... 그래도 아예 같은 글자가 2개가 되어버린 건 너무나도 큰 변화에요. 배우는 입장에서 미쳐버리죠.
13/06/16 17:17
수정 아이콘
역시 제가 외국어를 못하는건 제가 문제였던게 아니었군요.
피자21
13/06/16 17:35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옛날에는 중국어로 말은 하지 못하면서 한자로 쓰는건 가능하도록 배웠을텐데..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노력을 많이 들였을지 상상도 안가는군요.
물론 현대 한국인에게 읽기 능력이 훨씬 중요시되는건 사실입니다만.. 언어라는게 읽기/쓰기/말하기/듣기 각자 따로 배운다고 되는 아니라서 말이죠.
무서운 두께의 영어 책을 팔랑팔랑 넘겨보시는 분들이 제대로 된 말하기/듣기 교육을 함께 받으면서 배웠다면.. 아마 그간 들인 노력의 절반이면 됐을겁니다.

전 외국나가서 분통이 터지더군요. 내가 그간 영어를 공부한 방법이 정말 잘못됐었구나. 한국 교육이 엉터리였구나 하고 말이죠.
언어를 언어로 다시 배우고 나서야 읽기 실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구요. 느끼기 전엔 모릅니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책으로 아무리 공부해도 직접 수영을 안해보고 어찌 알겠어 하는 생각이 드는것이고..
영어도 말을 할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말도 못하는데 읽기 교육을 하는게 그게 효율이 절대 나올리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죠.

정리하자면 영어 읽기가 중요한건 사실이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듣기/말하기 위주로 먼저 교육을 해서 언어를 언어로 배운 다음에 심도있는 읽기 교육을 하는게 훨씬 효율적인 방향이라는 생각입니다. 돌아가는것처럼 보이는게 훨씬 빠를수 있어요.
레지엔
13/06/16 17:54
수정 아이콘
돈과 시간, 교육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씀하신 방법이 정석입니다. 돈, 시간, 교육 시스템을 고려한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피자21
13/06/16 19:06
수정 아이콘
돈과 시간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말하기/듣기부터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어느정도 수준의 읽기 능력(전공 서적 독해 정도의)을 목표로 한다면 더더욱 말이죠. 그동안 영어 학원 다니고 단어 외운다고 애쓰고 했던 시간이랑 돈이 참 아깝게 느껴지거든요.
현실적인 교육 시스템은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교실에서 그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특히 교사들의 영어 실력면에서) 묻는다면 저도 회의적이 되네요.
13/06/16 18:15
수정 아이콘
과연 일주일에 서너시간, 수능때 정말 많이 하는 학생이야 하루에 두시간 공부하는 영어공부에서 과연 그러한 방법을 채택하여 효율을 달성 할 수 있느냐의 문제죠. 언어를 언어로 배워야 읽고 쓰기 실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것도, 언어를 언어로 배우고, 그 활용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그것이 과연 읽기공부에도 효율적인가? 라는 물음에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12년 영어를 배운다고 해도(저는 6년) 기껏해야 하루에 한두시간 배우는 것과, 외국에 나가서 하루종일 회화부터 시작하는 언어를 배우는 것과의 애초에 투자하는 시수는 비교가 안됩니다.
피자21
13/06/16 19:14
수정 아이콘
하루에 한두시간 투자가 한계인 상황에서 효율 달성이 가능한가..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방식의 교육이 짧은 시간에 효과적이라 한들.. 달성 가능한 수준이 정말 미미한 수준 아니겠습니까. 저도 외국 나가기 전에 정말 많은 시간 영어 학습에 투자했었습니다만.. 말한마디 못하고 책을 봐도 5분이면 졸음이 쏟아지는 수준이었으니..

정해진 시간(예를 들면 1천시간) 안에 어느 방법이 효율적이냐 묻는다면 실험적 증거도 없고 저도 확답은 못드립니다만,
원하는 수준(무리없는 전공 서적 독해)을 놓고 어떻게 하면 빨리 달성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단연코 지금 방식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거 같네요.
Neuschwanstein
13/06/16 18:50
수정 아이콘
근데 듣기/말하기 위주의 교육이라는게 말이 쉽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수준과 견련시키면 무시무시하게 지난한 과정이 아닌지...

조선조 역관에게 요구되는 어학능력의 스케일 내지 질과, 직접 중국조정을 상대하는 외교문서 등 공문서를 기획/작성하는 고급관료에게 요구되는 그것에는 차이가 있었을테죠. 잘은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근데 오늘날과 비교하면 조선조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당대 중국은 그야말로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중심문명 그 자체였고 우리 조상들의 국가정책을 넘어서 사유 자체가 지배되고 의존하는 근본이었으니까요. 책을 통째로 왼다는게 '무식한 옛날사람들은 비효율적으로 공부했네 낄낄'이 아니라, 그 정도로 엄밀하고 철저하게 습득하는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던거죠. 이거 가지고 자주성도 없이 남의 체계속에 힘써서 편입되려 하다니..라고 깔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영어교육도 오랫동안 꽤 문제가 있었고, '뭔 영어를 10년 가르치는데 말 한마디를 못하고 리스닝도 안되나?'라는 좌절감; 내지 반발심에서 오는 반동 때문에 이젠 역으로 독해력이라는 항목이 무시되고 얼마나 양키와 똑같이 발음할 수 있느냐, 술술 말하는 유창성이 있느냐를 따지는 풍조가 있는데... 이것도 반대 극단에서 오류를 저지르는것 뿐이라고 봅니다.

저 고등학교때 원어민 선생이 처음 왔을때 넉살좋은 아이 몇몇은 그 선생 졸졸 따라다니면서 농담따먹기 하고 친하게 어울려서 상당히 '스피킹'을 잘했어요. 사전에도 없는 비속어도 섞어 가면서... 근데 그렇게 의사소통을 잘하는 편인거랑 그 친구들의 '영어실력'이랑은 별개였다는 거죠. 수능 외국어영역 점수의 문제를 떠나서 구사하는 말의 수준이 '대학에서 학업을 진행하기 위한 기초실력'이라는 영어교육의 목표랑은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공교육의 영어교육 목적이라는걸 많이 오해하고 있다고 봐요. 그전의 성문영어, 맨투맨영어 식의 교육 자체도 문제가 많았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외국인 면전에서 쏼라쏼라 입만 트이면 장땡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것도 한참 벗어난거죠. 그런 영어를 원한다면 막말로 공교육에서 커리큘럼까지 짜서 가르치는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맨손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도 가서 식당 알바를 하는게 나을걸요. 요는 대학가서 자기 전공과목의 논문이나 학술서 원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느냐, 그만은 못하더라도 교양차원에서 바른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에 있는거니까요.
Neuschwanstein
13/06/16 18:53
수정 아이콘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암기라는게 '시간'이라는 제한적인 자원과 외국인이라는 근본적인 한계 상황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어학 학습법일 수 있다고 봅니다. 아니 솔직히, 어학을 떠나서 암기는 모든 분야에서 굉장히 고효율의 공부방법이죠. 암기라는 것 자체의 요령을 모르는 학습자의 경우에는 머리속에 뭘 넣질 못하니 고통의 연속이겠지만, 일단 머리속에 넣어둔다는게 엄청나게 효과적이거든요.
13/06/17 13:39
수정 아이콘
이건 외국어 교육이 아니죠..조선시대의 문학교육이라고 봅니다.
당시에는 문학에서 인용할 만한 한반도의 고전이 거의 없던 데다가 중화사상에의 동조 및 사대주의 때문에 문학의 소재나 인용을 중국 것으로 한 것이죠.
문자도 한자일 수 밖에 없었고, 표현 문법도 한문이었고요..

요즘 국어교육의 일환인 고전(古典)교육을 보면, 그 고전에서 문자와 문법 모두 중국의 것을 이용하여 만든 문학작품일지라도 이를 공부하는 것을 외국어 교육 시간이라고는 안하잖아요..
안동섭
13/06/17 21:53
수정 아이콘
외국어교육이 맞죠
지금은 한문이 사어이기 때문에 고전교육이겠지만
당시에는 사어가 아니었으니까요
20세기 초만 해도 유럽 각국에서 라틴어는 필수과목이었죠
외국어로서 :)
13/06/18 10:56
수정 아이콘
본문에서 언급한 조선시대 교육 과정이 중국어 발음 그대로 진행되었으면 몰라도, 중국어 발음과는 전혀 다른 순전히 우리식의 발음으로 읽고 쓰는데 이것이 어떻게 외국어가 되나요? 라틴어와는 다르죠. 라틴어는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발음, 회화, 어휘, 언어학 등 언어자체를 배운것이고, 조선시대의 문학교육은 순전히 문자와 문자의 쓰임만 가져온 것입니다.
지금 고등학교에서 '한문수업'과 '중국어수업'이 전혀 다른 내용의 수업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안동섭
13/06/18 13:49
수정 아이콘
(일단 계속 이 글에 관심 가져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일단 "언어자체"라는 말에 조금 어폐가 있어보입니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spoken language와 written language는 다르죠. 하지만 둘 다 언어입니다.
오늘날 한문이 사어가 된 건 그 누구도 한문으로(사실 있긴 하지만 극소수) 새로운 저작을 창작하지 않아서입니다.
새로운 저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한 그건 언제까지나 언어죠.
과장된 사례를 들어보자면, 헬렌켈러도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했던 것 아닌가요?

2.
고전교육이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그들이 고전만 배웠던 건 아닙니다.
관청에서 매일같이 "조보"라는 이름의 관용신문이 각급 양반가에 배달이 되었고
또 매일같이 관리들이 필요한 문서를 작성해서 이리저리 돌렸습니다.
이런 보다 '실용적'인 글쓰기 역시 학습의 대상이었구요.

3.
우리식의 발음과 중국식 발음이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가까웠습니다.
현재 우리 한자음이 대강 당나라 때의 음과 일치한다고 하는데요
조선 초만 해도 명나라발음과의 간극이 상당히 적었었죠.
실제로 현재 남아있는 음운서들에 기록된 발음표기가 오늘날 한국 한자어 발음과 상당히 유사하답니다.
그래서 중국 음운학 연구 시 한국 발음이 꼭 필요한 참조점이 되구요.

4.
라틴어교육도 사실은 고전에 훨씬 더 치중했었습니다 -_-;
라틴어를 사용한 '회화'는 17~18세기 때 이미 가장 저명한 상류사회에서도 사장된 상태였고,
라틴어 '회화'의 자리를 대체했던 건 '프랑스어' 였던 걸로 알고있어요.
심지어 구어체 라틴어와 문어체 라틴어가 분화된 건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AD68년에 이미 문어 라틴과 구어 라틴이 달라서 따로배워야 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이렇게 구어체로부터 분리된 문어 라틴의 학습을 통한 '작문'이 무려 19세기, 혹은 그 너머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참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5.
지금 고등학교에서 한문수업과 중국어수업이 전혀 다른 것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애들도 중국어수업과 한문수업을 별개로 받습니다.
하나는 구어로, 하나는 문어로요.
하지만 둘 다 語임은 명백하죠.
13/06/19 01:58
수정 아이콘
댓글을 달다보니 계속 달게 되네요..저도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한시를 짓는 사람도 많고 배우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어라고 할 수는 없죠..한문자체는 언어가 아니니까

인용했던 것이 옛고전, 즉 중국의 고사를 인용했죠. 매일같이 한문을 이용해서 실용적으로 쓴 글을 외국어라고는 할 수는 없죠.
계속 말씀드리듯이 이는 한문을 이용한 국내 작품입니다.

아무리 우리식 발음과 중국식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도 외국어는 외국어입니다.
발음이 결코 같을 수 없죠..세종대왕이 괜히 '나랏말쌈이 듕국과 다르다'고 하셨겠습니까.
이미 조선초부터 한자어 발음과 중국어 발음 사이에 괴리가 매우 크다는 방증이죠.

가사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도 외국어는 외국어죠. 국내의 한자어는 일본어의 한자어와 발음이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발음이 일치할 수도 없고, 일치하는 발음의 국내의 한자어를 일본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일본도 중국에서 넘어온 한자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도 자국의 언어라고 하지 중국어라고 하지는 않지요.
조선시대 이후 한글 창제 없이 한문을 그대로 이용해서 현재까지 창작활동을 이어왔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를 외국어 교육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일본의 경우처럼요..

라틴어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국어교육이 언어학과 문학 등으로 나뉠 수는 있어도 이를 구어, 문어라고는 안하죠..
제가 말씀드린 의도는 조선시대의 작품활동이 한문을 이용한 국내어의 작품활동일뿐이지, 외국어 교육은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때도 외국어 교육은 따로 있었죠. 역관들이 하는 중국발음과 중국회화, 중국 구어와 중국문어, 중국 풍습을 이해하고 중국식으로 풀어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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