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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6/09 11:26:19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좌충우돌 다양한 면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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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는 중국 역사상의 황제들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편에 속합니다. 우선 업적만 해도 삼번의 난 진압, 대만 정복, 준가르 격파, 티베트 복속, 러시아와 국경분쟁 후 네르친스크 조약 등등…… 워낙에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고, 제위 기간도 무려 61년이나 되어 중국 역사상 최대 기간을 자랑하는데다, 또 아들들이 다툼과 후계자 싸움이 딱 드라마 소재로도 적절한 지라 2차 창작물에도 자주 얼굴을 들이매는 유명 인사 중에 한명입니다.






그런데 강희제라는 인물의 '역사적인' 업적은 둘째로 치고, 이 사람의 개인적인 면모를 살펴 보아도 상당히 재밌는 점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근대의 왕조인 청나라의 군주이니 고대의 군주들에게는 찾기 힘든 사생활적인 부분에 대한 기록도 많은 편인데, 일단 절대왕권을 가지고 있는 청나라의 군주다 보니 칭찬할만한 부분에 대해서 과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 시대 궁에서 일하던 서양인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도 있고 하여, 상당히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시각을 볼 수가 있는데, 



다만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은, 강희제를 이상적 군주로 그리고 이에 대비해서 자신들 군주에 대한 비판 혹은 충고 같은 의도가 있는 점도 있긴 합니다.



여하간에 게중에 재밌는 부분들을 말하자면 이런 점들이 있습니다.




1. 연주왕 강희제


정확히 말하자면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 코드 입니다만..
만력제 시절에 마테오 리치가 건반 악기 였던 클리비코를 명나라 황제에게 선물한적이 있지만, 이를 과연 쳐본 수준을 넘어 '연주'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 강희제가 최초로 이를 연주해본 황제가 아닐까 합니다.

강희제는 단순히 피아노를 재미삼아 툭툭 쳐본게 아니라, 그 연주법을 배우고 음표를 보면서 '연주' 했습니다.






2. 작곡왕 강희제



강희제는 유럽의 음악이 배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고, 페레이라 라는 신부에게 직접 음악의 이론적인 강의를 들었고, 서양의 악기를 수집하는데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또, 오르간의 기계장치 작동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중에는 급기야 작곡까지 하기도 했는데, 직접 기독교 사제와 하프시 코드에 앉아 작곡한 음악을 한 절씩 연주해보고, 그 뒤에 이에 대한 반응을 듣고, 다시 수정을 하고 연주해 본적도 있습니다.




강희제에게 작곡 등을 가르친 페드리니


3. 수학왕 강희제




강희제는 서구를 좀 더 잘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직접 예수회 사제들에게 부탁해서 '과외 수업' 을 받았습니다. 


대체로 강희제가 가장 좋아한 서양 학문은 바로 수학이었습니다. 계산법이나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공부에 많이 흥미를 느꼈는데, 황제의 과중한 업무 중에 잠시 짬이 날떄도 직접 기하 도형을 그리고, 연산을 훈련하,고 수학 기구 사용을 연습하면서 여가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황제의 체면도 상관없이 바로 물어보았습니디.



강희제는 또 바티칸의 "실용과 이론 기하학"을 공부하고 그것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차이점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반년도 되지 않아 그는 기본적인 기하 지식을 갖추었음은 물론이고, 몇몇 기하 도형의 정리와 증명 과정은 술술 말 할수 있을 정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또 능숙하게 대수를 이용해 연산을 했고, 또 대수표를 이용해 삼각형을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자신이 "기하학원본"을 적어도 스무 번은 읽었다고 말했으며, 두 세 시간 강의를 들은 후엔 혼자서 그것을 복습하는 열의까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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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가 수학 공부를 할때 사용한 계산기





4. 농사왕 강희제



강희제는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는 퍼포먼스를 즐겨 했는데, 실제로도 농사에 관련된 책을 여러개 읽고, 서한의 농업 정책을 줄줄히 암송할수도 있었습니다. 강희제가 직접 농사를 지을때, 하루는 비가 많이 오자 걱정이 되어 아침부터 오후 5시가 넘을때까지 황실 내의 논에서 시간을 보내는 적이 있었을 정도로 은근한 취미생활이기도 하였습니다. 


삼번의 난이 진압된 1681년 6월 말, 강희제는 경작에 열중하다가 우연히 이상한 벼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강희제가 발견한 벼는 다른 벼보다 키도 크고, 이삭이 아주 잘 익은 벼였습니다. 우연한 발견이었지만, 강희는 이것이 혹시 새로운 벼의 품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여 이씨를 받아 보관해 두었다가, 그 이듬해에 다시 논에 심어보았습니다. 과연 6월이 되자 벼는 가장 먼저 익었고, 이삭도 모두 튼실했습니다. 강희는 이것이 농업생산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 경작면적을 늘려보면서 10여년 가까이 시범 제배를 하면서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그리하여 10여년 후인 1691년 4월, 강희는 몇몇 대신들을 불러 이를 소개했고, 조생벼의 종자를 외부에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황제의 논에서 난 벼임으로, 이는 어도(御稻)라고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강희는 어도 재배에 성공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은 식사 때마다 천하의 백성들과 음식을 나눌 것이다."


 강희 54년부터 강남 지방에서 어도가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벼 경작 경험이 풍부한 관리들이 이를 담당하자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소주와 강녕 일대에서 벼가 익으려면 145일이 걸렸지만, 어도는 100일 남짓이면 수확이 가능했습니다. 잘만 하면 수확량도 50% 가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결론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퍼진 어도는 이모작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는데, 유명한 청나라의 소설 홍루몽에서도 어도에 관한 내용이 나올 정도입니다.




5. 메뚜기왕 강희제


메뚜기를 예전에 달리 부르던 말로 풀무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메뚜기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수 없어, 그로 발생하는 재난은 홍수와 가뭄 바로 다음 수준이었습니다. 강희는 메뚜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직접 고대부터 당대까지 메뚜기의 피해등을 다룬 책들을 뒤져 모두 소개하는 한편, 포황설(捕蝗說)이라는 저서에서 메뚜기의 특징과 이에 맞는 포획 방법을 소개하였습니다. 


이 책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메뚜기 퇴치에 관한 학술 논문 수준이라고 하며, 탁상공론식의 내용은 전혀 없고 구체적인 포획방법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강희는 대학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이 풀무치의 생장과정을 연구해 보니, 풀무치가 알을 낳기 전에 날씨가 추워지면 풀무치가 모두 동사하여 이듬해에도 다시 생겨나지 않지만, 이미 알을 낳고 난 후에 날씨가 추워치면 풀무치는 동사 해도 그 알이 남아 다음 해에 다시 성충이 되어 피해를 입힌다오."


 그리하여 겨울이 늦게 온 이번 해에는, 서둘러 논밭을 갈아버려 풀무치 알 들을 땅속 깊이 묻어버리자고 주장했습니다. 1712년 여러 지역에서 메뚜기의 피해가 보고되자, 강희는 직접 메뚜기 퇴치법을 지시합니다.


 "풀무치가 남쪽을 향해 날면 앞부분이 날아오르고, 뒷부분은 그저 따라서 날아오르며, 무리가 흩어지지 않고, 죽을 때에도 서로 붙어서 함께 죽으려고 한다. 따라서 풀무치를 잡을 때에는 뒤에서 따라가면 잡을 수 없고, 어느 쪽에서 날아오르는지 잘 살펴 앞쪽에서 덮쳐서 잡아야 한다."


 실제로 지시대로 수행을 하자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희는 자만하지 않고 메뚜기는 1년에 두 번 산란을 하기 때문에,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해도 그 알들이 성충이 되어 나타날 수 있음으로 극히 조심하고 메뚜기 알을 박멸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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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냥왕 강희제

학문을 읽혀 스스로를 다스리는것에 큰 관심을 가진 강희 였지만, 무예를 읽히는데도 열성이었습니다. 그의 최대의 취미는 바로 사냥이었고, 활쏘기에 관해서 말하자면 오른손과 왼손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며 말 위에서도 활을 아주 잘 쏘았고, 말이 달릴 때에도 자유자재로 무기를 구사했습니다. 심지어 전통적인 중국의 무기가 아니라 서양의 무기도 제법 잘 소화내었습니다.


강희는 사냥을 매우 열성적으로 했고, 이를 군사훈련과 연결이 시키는 동시에, 황자들의 재주를 살펴보는 기회로까지 사용했습니다. 강희는 사냥 도중에는 중원의 황제로 지낼 때와는 달리 매우 격식이 없는 동작을 취했는데, 잡은 물고기나 사냥감으로 간단하게 먹는가 하면, 말을 타고 자신을 발견해도 내릴 필요가 없었으며, 말이나 양의 젖을 발효시켜 이를 마시면서 병사들 사이로 들어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고 술을 따라줄 정도였습니다.



7. 요리왕 강희제

강희제는 사냥을 나섰을때, 예수회 선교사들도 대동하고 떠났습니다. 선교사 제르비용은 강희제의 사냥을 따라 나섰는데, 언젠가는 강희제가 직접 잡은 사냥감을 요리해서 자신에게 주었다고 기록했습니다.



8. 회화왕 강희제


강희제는 라틴어를 선교사들에게 배웠습니다. 또한 7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중국 14개 성의 악센트를 구별 가능 해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도 고향이 어디인지 대략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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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전쟁왕 강희제

강희제는 삼번의 난 진압에 있어서, 비록 신하들의 반대로 현장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전역을 주관하는 총사령관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준가르 원정에서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메마른 사막으로 출정하여 가르단을 격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0. 장수왕 강희제

강희제는 61년의 치세로 중국 역사상 가장 긴 제위기간을 거쳤으며, 평소에도 폭식등을 하지 않고 건강에 관심을 가지면서 체력을 유지했습니다. 선교사들은 강희제가 상당히 잘생긴 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강희제의 머리가 희끗희끗 해졌을 무렵, 누군가가 머리와 수염이 검게 된다는 약을 바쳤지만 강희제는 웃으면서 거절했습니다.


"역대 제왕들 중에 수염이 흰 사람이 없었지. 그러나 짐은 오래 살아 이제 반백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11. 정력왕 강희제

강희제는 영아 때 사망한 자식들을 빼고도 아들만 24명 이상을 보았고, 딸까지 포함하면 자식들이 엄청난 숫자에 이릅니다. 


12. 검소왕 강희제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는 국가였지만, 강희제 본인은 대단히 검소한 생활 습관을 유지했습니다. 선교사인 조아심 부베는 루이 14에게 하는 보고에서 강희제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 ……중국의 황제는, 혹자는 그가 무궁한 재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혹자는 그의 강토가 광할하고 부유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장 세력이 강한 군주라고 말해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그렇지만, 그는 진정 자신의 몸에 모두 사치와는 거리가 먼 것을 사용했다. 그 개인과 관련된 부분에서 보면, 그의 말은 소박하고 담백함이 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이에 따라 공봉(供奉)되는 물품을 제외하고, 그는 조금도 사치스러움을 구하지 않았고 매우 일반적인 음식에 만족했으며, 조금도 정도를 지나친 적이 없다. 그의 담백함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비록 황제가 거주하는 방이라 하더라도, 몇 폭의 서화와 몇 점의 금을 입힌 장식물 및 일부 소박한 주단(紬緞)이 있을 뿐이다. 주단은 중국에서 매우 보편적인 물품으로, 사치품에 속하지 않는다. 간단하고 소박함이 이 방의 거의 모든 장식물에 보인다. 강희제는 북경 근처 3리 떨어진 곳에, 그가 매우 좋아하는 원유(장춘원长春园)를 조성하고, 매년 이 안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이 안에는 그가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개축한 두 곳의 대수지(大水池)와 몇 곷의 하도(河道) 말고는, 부유하고 또한 강성한 군주가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호화스러운 기백에 어울리는 물품은 거의 볼 수 없다.


 그의 의복은 궁정 안에서 매번 볼 수 있는 겨울을 나는 검은 담비 및 은서피(銀鼠皮) 옷을 제외하고, 일부는 중국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항상 볼 수 있지만 일반 백성은 입기 어려운 사주(絲綢) 복장이다. 비가 오는 날에 사람들은 그가 털로 짠 모작물로 만든 외투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중국에서 흔한 거친 의복이다. 여름에 우리는 그가 보통의 마포단괘(麻布段掛 마포로 만든 홑 마고자)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역시 일반 가정에서 항상 입는 의복이다. 경축일 대전을 거행하는 날을 제외하고 우리가 그의 몸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물품은 큰 구슬이다. 이 구슬은 여름에 만주족의 풍습에 따라 그의 모자에 다는 것이다. 그는 황성 안팎에서 말을 타지 않을 때에는 가마를 이용한다. 이 가마는 담가(擔架)와 비슷한 물품이다. 나무 재질은 일반적인 것이고 옻칠을 했으며, 몇 군데 동편이나 도금으로 장식한 목조이다. 


 총괄하자면, 그의 주변에 모든 것에 대해 사람들은 다른 아시아 군주처럼 사치가 극에 달하는 규모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는 개인을 위해 낭비하지 않고, 현명하게 절약함으로써 금전을 제국의 진정한 수요에 사용한다.' 



13. 인권왕 강희제

1668년 - 35명
1706년 - 25명
1712년 - 32명
1715년 - 15명


강희제 시기 전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죽은 사람의 숫자는 이 정도 숫자였습니다. 강희제는 자신이 어지간하면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들도, 목숨은 구해주기 위해서 판결 기록을 여러번 꼼꼼히 읽는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강희제는 혹독한 지역으로 유배되는 사람들의 편의를 봐주고, 감옥에 있는 죄수들의 아프지 않도록 의원을 보내주고, 죄수들이 덥지 않도록 감옥을 시원한 상태로 유지하라는 명령도 내린 적이 있습니다.



14. 배려왕 강희제

앞서 말했듯이 강희제는 사냥을 대단히 좋아했는데, 하지만 사냥하기는 좋으나 물을 얻기는 어려운곳과, 물을 얻고 야영하기는 좋으나 사냥하기에는 그저 그런곳이 있다면, 일부러 후자를 택했습니다. 병사들의 고생을 줄이려던 것입니다. 


또, 언제는 밖에서 식사할때 일하는 사람의 실수로 밥 대신 고기만 온 적이 있었는데, 주위에서 처벌을 내리려고 하자 강희제는 그만두게 하고는 고기만 먹었습니다. 또, 준가르로 원정을 떠났을 무렵 천연두에 면역이 약한 몽골 어린이들이 이에 힘들어하자, 불쌍하게 생각해서 기초적인 방식의 예방 접종(환자의 귀에서 살짝 긁어내거나 상처를 이용해서 약하게 천연두를 앓게 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15. 포용왕 강희제

 강희는 정호와 정이, 주희의 성리학을 가장 뛰어난 가르침으로 받들며, 주희와 공맹을 최대한 연결시켜 공자와 주희를 함께 숭배했고, 경서에 주석을 달고 보급한 주희의 공적을 치하하고, 성리학을 경세치용의 수단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웅사이, 이광지 등 제국 최고의 학자들에게 관련된 책을 편찬하도록 하고, 평생도록 유가 경전을 탐독했습니다. 그러나, 강희는 스스로 성리학자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성리학 경서들은 입신의 근본이니, 읽지 않으면 아니 되고, 행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성리학은 스스로의 사상만 옳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폐단이다. 고서에서는 무턱대고 믿고 따를 수 없는 점들이 있다. 경서를 읽으면서도, 스스로의 주관을 뚜렷하게 세워야 한다."



16. 종교왕 강희제

강희제 시기, 바티칸에서는 중국내 기독교도들이 제사 등의 '우상숭배'를 벌이는 점에 대해 지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강희제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공자는 중국인들의 위대한 스승이다. 그래서 존경받지만, 행복이나 벼슬, 재물을 얻으려고 공자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기도하지는 않는다. 조상숭배는 사랑과 추모의 정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 조상의 은덕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지만, 그 안에 조상의 영혼이 거한다고 믿진 않는다." 

"우리가 공자를 존경하는 이유는 덕을 숭항한 그의 원칙과 교육체계,윗사람과 조상을 공경하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너희들이 너희의 성인들을 존경하는 것도 그들의 고귀한 행위 때문 아니던가?" 


나중에는 이런 소리까지 했습니다.


 "서양인들은 날개 달린 사람(천사)를 그려놓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은 마치 날개 달린 것처럼 민첩한 하늘의 영적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실제로 날개 달린 사람은 없지만.'"


파일:Kangxi7.jpeg



17. 암기왕 강희제


 강희는 상소가 올라오면 언제나 신속하게 처리했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전역에서 매일 수많은 비답이 도착하는데, 황제가 너무나도 이를 빨리 처리하는 바람에 신하들은 과연 존엄한 천자가 이 자질구레한 상소를 제대로 읽기는 하는지, 혹은 그저 적당히 답장만 보내는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신하들의 의심을 눈치챈 강희는 대학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은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리다 보니 글을 읽는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오. 한번은 상소가 올라온것을 짐이 순식간에 모두 읽으니, 당시 상서였던 목화륜이 짐에게 자세히 읽어 달라고 몇 차례나 말한 적이 있소. 그래서 짐이 목화륜에게 상소의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했더니, 목화륜은 묵묵히 돌아갔소이다."


 강희 46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 신하들의 의심이 일어나자, 강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방금 형부에서 상소를 올렸는데, 그 중에 틀린 글자가 있어 짐이 붉은 먹으로 틀린 글자를 고쳐서 내리 보냈소이다. 내용이 아무리 많아도 짐이 그것을 모두 읽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마시오. 짐은 상소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틀린 곳이 있으면 모두 수정해 주고 있소. 한문을 만주어로 번역하다가 틀린 부분이 있어도 모두 고쳐 주고 있단 말이오. 전쟁 때에도 하루에 3,4백건의 상소를 일일히 처리했는데, 이제 나라가 태평해 상소가 하루에 4, 50여 건 밖에 되지 않거늘, 그것을 처리하는것이 무어 그리 어렵겠소?"


 그리고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짐은 읽는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한 번 읽은 것은 절대로 잊지 않소."


 이는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나이가 들어 노화 현상을 겪기 전까지, 어떤 일이던지, 혹은 어떤 지방을 지나가면서 만난 어떤 사람의 이름이던지 잊어버리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강희가 페르비스트와 배를 타고 여행할 때, 강희는 어떠한 새의 이름이 벨기에 말로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페르비스트는 자신이 그 새의 벨기에 말을 과거 강희에게 직접 가르쳐 주었다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본인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강희는 오히려 자신이 새의 벨기에 말을 페르비스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18. 현실왕 강희제

강희제는 죽기 전에 남긴 상유에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짐이 태어났을 때 결코 신령스럽거나 기이한 징조들이 보이지 않았다. 또 자라날 때도 신기한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덟 살에 제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57년 동안 역사책에 실려있는 상서로운 별, 상서로운 구름, 기린과 봉황, 지초가 나타나는 경사라든가 궁궐 앞에 불타는 진주와 옥이 나타나거나 천서가 하늘의 뜻을 나타내려고 떨어지는 것 따위의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상서로운 조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는 모두 헛된 말일 뿐이다. 짐은 감히 그렇게까지 (잘 다스렸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진실된 마음을 갖고 실제에 도움이 되도록 다스렸을 뿐이다."


19. 예언왕 강희제

 강희제는 강남 지방을 남순하면서 서양인들의 여러 모습을 보았고, 연해지방의 총독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서양의 여러 나라들 때문에 중국이 곤경에 처할까 염려된다. 이는, 짐의 예측이다."





내용 출처 : 

조너선 스펜스 ─ 강희제
부베와 라이프니츠 ─ 안종수
수신제가 ─ 등예쥔
강희제 평전 ─ 장자오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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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9 11:33
수정 아이콘
강희 옹정 건륭...저 시대에 조선에선 북벌 하자고 했죠
13/06/0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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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 정말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13/06/0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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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벌 당하지 않았을까요... 덜덜
13/06/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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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중의 왕. 황제군요.
13/06/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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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청에는 강희제가 있지 않나..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단한 인물이죠...
루크레티아
13/06/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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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천고일제가 아니죠.
이 양반은 정말 무엇하나 까기가 힘든 인격자에 슈퍼맨입니다. 딱 하나가 후계구도를 조금 엉키게 한 점이지만, 그렇다고 뒤를 이은 후계자가 일반인도 아니고 역시 슈퍼맨이니...
펠릭스
13/06/0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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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가 옹정제. 크크크크.
냉면과열무
13/06/09 11:51
수정 아이콘
중국 사람들은 최고의 황제를 강희제라고 생각하나요? 너무 고대의 왕들 제외하고서 말이죠.
펠릭스
13/06/09 12:04
수정 아이콘
현대 중국에서 밀고있는 올타임 넘버원입니다. 일단 이민족 출신 황제라 여러 민족을 통합하려는 현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와 맞아떨어지거든요. 원래 먼치킨이기도 합니다.

군사정권때 충무공을 밀었지만 원래 그분도 먼치킨이었으니까요.
난멸치가싫다
13/06/0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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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r 댓글에서 본거 같은데 그 판단 후보에서 진시황은 제외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넘사벽이라..
13/06/0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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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왕이기도 했지요. 위소보랑 수련하면서... 왕까진 아닌가?;
대통령 문재인
13/06/09 11:57
수정 아이콘
천재네요. 7개국어에서 gg..
nokjung777
13/06/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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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정도는 되야 녹정기에 출현할 수 있죠.
펠릭스
13/06/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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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 와는 다르다! F4와는!!!
13/06/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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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맞습니까....
스카야
13/06/09 12:16
수정 아이콘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와 이분을 비교한다면
어떤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가 나을까요..크크
대단하네요...
스타본지7년
13/06/09 12:19
수정 아이콘
평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아케르나르
13/06/0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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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일단의 황제 집단을 일컬어 강희제..라고한건 아니겠죠? 이런 먼치킨이 있나.
Jealousy
13/06/0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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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
Je ne sais quoi
13/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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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어마어마하네요.
난멸치가싫다
13/06/09 13:02
수정 아이콘
터키에 대한 호감때문에 아타튀르크가 우리나라에서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잘 쳐줘봤자 오랜지 공 빌리엄이나 못하면 호치민 정도 되는 인물입니다. (수정:전국구->)전세계구급 능력자라기엔 한참 부족하죠.
13/06/0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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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을 빌렘보다 더 쳐주지 않나요?
난멸치가싫다
13/06/09 13:40
수정 아이콘
기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조직 형성의 능력은 호치민쪽이 더 뛰어난 듯도 싶지만, 호치민의 군사적 업적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인데(게릴라전에 의한 소규모 승리가 대부분이니.) 빌렘은 당대 최강인 스페인과 맞서 싸워 승리를 얻어냈죠. 암살만 안 당했어도 당대에서 조국이 독립을 얻어낼 것이 거의 확실시되었으니..
Rorschach
13/06/09 13:08
수정 아이콘
정말로 좋은 왕만 있으면 군주제가 매우 좋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단 잘못 만났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큰게 문제;;
Practice
13/06/0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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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마키아벨리가 그랬대요.

창업자는 군주로서의 자질을 익힌 이후에 군주가 되지만, 세습자는 군주로서의 자질이 깃들기도 전에 군주가 된다고...

강희제는 비록 창업자는 아니지만 - 그 시대를 살아간 인민들에게 있어서 - 정말로 운이 좋은 케이스였던 것 같아요 흐흐
WindRhapsody
13/06/09 14:03
수정 아이콘
네,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듯 좋은 왕 나올 확률보다 안 좋은 왕 나올 확률이 더 높다는거.. 윗분 말처럼 창업자 빼고 통계내면 더 암울해질 것 같습니다.
13/06/0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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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중국서 환생하셨나.. 허허
Practice
13/06/09 13:32
수정 아이콘
우와... 먼치킨... 먼치킨이네요 정말로;;;; huh?;;; 이 사람이 정녕 인간이기는 한가요?

세종대왕느님으로 평소 홀로 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강희제는 한 술을 더 뜨네요;
리그오브레전드
13/06/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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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황제는 천하 제이이이일! 이군요
Captain J.
13/06/0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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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왕 강희제 부분에서 정말 강희제의 성격이 확 느껴지네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정말.
13/06/09 14:03
수정 아이콘
괜히 소수 이민족 왕조가 300년 다스린게 아니죠
청 황제중 폭군하고 암군이 없죠
13/06/09 14:15
수정 아이콘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걸까요? 명나라와는 너무 대비되는데..
계속된 행운? 만주족=똑똑? 황제선발/교육 시스템이 달랐다거나..
13/06/09 17:33
수정 아이콘
태자밀건법이라는 제도 때문이죠
유교전통적인 왕위계승은 장자 상속제입니다. 그러나 청나라는 자식중 가장 똑똑한 사람을 왕위 계승시키는 방법을 썼죠
태자를 미리 정해놓으면 그를 둘러싼 권력암투가 심해지니까 황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태자를 정해놓지 않고
황제가 다음 황제이름을 적어서 ‘정대광명 正大光明’이라고 쓴 현판 뒤에 숨겨 둡니다. 그리고 황제가 죽거나 물러난후에 현판을 열어 이름을 공개하죠
그렇기 때문에 형제들 끼리 서로 잘할려고 하고 최소한 무능한자가 황제에 오를 염려가 없는거죠
그러나 태자밀건법의 최대약점은 서로 경쟁하다보니까 황제 못지 않게 황제의 형제들도 힘이 있게 되죠.
청나라역사에 등장하는 "O친왕'들이 대표적이죠
난멸치가싫다
13/06/09 14:0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이 사람과 비견할 수 있는 군주가 표트르 대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조프 탈환 실패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당시 죄수들을 가혹하게 다룬 것이 문제는 될 수 있지만, 기반이 갖춰져있던 청나라와는 달리 러시아는 급진적인 개혁이 절박하던 시점이었으니...공사장 인부 구하다 죽은 사실을 보면 본인의 인격 자체도 깔게 없고요. 선진 해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선박장에서 일하고, 서유럽의 학자들을 초청해서 수업을 들었던 걸 보면 비슷비슷한게 많군요.
소중한겨드랑이
13/06/09 14:12
수정 아이콘
강희제가 세종대왕처럼 글자체계를 창제했다면 참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어는 너무 어려워...
13/06/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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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애민과 과학기술 중시라는 점에서 세종대왕 뺨치네요.
고기 덕후인 세종과는 달리 자신의 건강의 중요성도 알고 실천했고요.
13/06/09 15:31
수정 아이콘
본문에서도 쓰셨지만 치세는 완벽에 가까웠고, 수많은 기록들을 찾아봐도 그의 개인적 성품에 대해서는 찬양 일색입니다. 흠을 잡을 수가 없는 먼치킨이죠.
다만, 제가 감히 깊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강희제가 비판받는 부분이 있긴 하더라구요. 그게 아예 '차원'이 다른 비판이라는게 오히려 그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지만요. 대략 그게 뭔가하면, 결국 청 제국을 근대의 봉건주의에서 현대 자본주의로 이끌지는 못했다 뭐 이런식의 -_-

이와 관련한 글입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듯 싶네요.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2990
거의 동시대에 통치했던 표트르대제와 강희제를 비교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강희제와 다르게 표트르 그 개인은 성격적인 결함(특히나 폭력적인)도 많았고 중용과는 거리가 먼 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가 가졌던 개혁성향을 가지고 강희제와 대비시키고 있네요.
중국 본토에서 쓰인 걸 번역한 글로 알고 있습니다만, 깔게 없으니 이런 차원으로 까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난멸치가싫다
13/06/09 15:54
수정 아이콘
백못쓰내요 쯧쯧
13/06/09 15:38
수정 아이콘
우정왕 강희제...위소보와의 우정은 정말...넵 뻘글..
13/06/09 15:54
수정 아이콘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뭔 먼치킨이여 크크크
김연아
13/06/09 18:12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신불해님도 피지알에 아주 정착하신 건가요?
역시 역사사이트 피지알답군요
필자진이 참 알찹니다
언제 본좌대결 함 가야됩니다
찬공기
13/06/09 20:59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역사사이트 피지알 크크~
신불해님 엠팍에서 글쓰시는거 열심히 읽었었는데 pgr에도 이제 글 쓰시는군요~
엠팍은 리젠이 빨라서 항상 신선한 핫이슈를 다루는 데에는 좋지만 글 하나로 긴 토론이 이루어지기에는 약간 애매한 면이 있는데, pgr 자게는 그런 면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중에 진지한 이야기를 다뤄보기론 손에 꼽는 좋은 환경인거 같아요.
인간실격
13/06/10 02:33
수정 아이콘
전부터 엠팍에서 썩기 아까운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피지알에서 보다니 깜짝 놀랐네요.
하심군
13/06/09 18:51
수정 아이콘
왜 갑자기 워해머 40000의 황제가 생각나는걸까요.
Practice
13/06/09 19:30
수정 아이콘
For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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