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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6/05 05:20:54
Name Je ne sais quoi
Subject [일반] [잡담] 말 조심하기 (약간 프로그래머 계층)
모기 때문에 깨서 잠 못 자다가 축구까지 본 김에 그냥 조금 있다 출근해야지 하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잡답이나 늘어놓습니다.

저희 팀에는 저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개발자가 있습니다. 팀장님이 뽑을 때 본 이력서의 화려한 내용과, 들어와서 처음에 하는 이야기들은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커널을 떡 주무르듯 하는 개발자라니. 대박이구나 하면서요.
(커널: 간단히 말해 OS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커널은 리눅스 커널이고 보통 시스템 프로그래밍이나 임베디드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으면 커널 자체를 다룰 일은 없습니다. 그냥 제공하는 함수만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기대감은 서서히 무너집니다. 대표적으로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게 크론과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크론이란 리눅스에서 주기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설정을 하는 데몬으로 리눅스 사용자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데몬: 서비스라고 부르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OS가 제공하는 프로그램 격입니다. 예를 들어 윈도우에도 탐색기, 방화벽부터 수많은 서비스가 있고, 제어판을 통해 설정할 수 있죠)
어느 날, 팀 프로젝트에 관계된 일이 있어 작업해야 하는데 크론을 설정하라고 했더니 크론 데몬을 재 시작하고 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프로그래머라면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크론 설정을 수정하면 되는데, 크론 프로그램 자체를 재구동시켰으니 차라리 신입 사원이라면 가르쳐준다는 심정으로 알려줄 텐데, 경력직, 그것도 1~2년도 아닌 사람에게 이런 기본적인 업무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일도 참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사연들이 있었지만, 그러다가 결정적인 일이 터졌습니다. 팀 프로젝트를 테스트하는데 예전에 나오던 것과 수치가 판이하게 달랐는데 여기서 크게 붙게 되었죠(회사에서 싸우지 맙시다 ㅜ.ㅜ). 이전에 테스트할 때 수치는 변동 폭이 아무리 커도 10%를 넘은 적이 없는데(대부분 5% 정도), 어떤 부분을 수정하라고 그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나서 결과를 보니 수십%가 변했었죠.

제 주장은, 이렇게 크게 변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니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비정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분 주장은, 정상인 수치가 뭔지 모른다. 정상인 수치의 범주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 거냐?

결국, 원인을 찾았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이후론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 친구의 담당 서버가 비정상 동작을 해서 받을 데이터를 못 받아 결과 값이 예전의 수십 분의 1로 나왔는데, 원인(= 그 친구의 담당 서버가 비정상 동작)을 저와 다른 팀 동료가 추적 끝에 찾는 일이 생겨서 이제는 팀 전체가 그 친구를 싫어하게 됐네요. 이 일로 몇 주를 그냥 날렸거든요 ㅜ.ㅜ

물론 여전히 그 친구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만, 이런 일이 계속되고 보니 그 친구도 나름 불쌍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원래 호불호가 강한 편이라 좋을 때는 잘 해주지만 한 번 돌아서면 거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한 번 호불호가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도 않고요. 게다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타고난 재주 -_- 도 있어서 상대가 그걸 느끼기도 쉽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저한테 이것저것 묻더니 요즘엔 업무 얘기도 거의 물어보질 않네요. 그런데 처음엔 저만 그러던 게 이젠 팀멤버들도 일을 겪으면서 하나 둘 그러는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게 직장 왕따 -_- 인가하는 생각도 들고, 뒷말이 될 수 있는 말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잡담이니 결론도 흐지부지입니다.
- (남의) 이력서 (무조건) 믿지는 말자. 인사가 만사는 어느 분야나 적용된다.
- (자기) 이력서 작성할 때 어느 정도 허풍은 필요하지만, 과장은 금물. 어차피 드러난다. 프로그래머는 100% 드러난다 -_-
- (어디서든) 맘에 안 드는 동료가 있어도 참아보자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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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
13/06/05 05:26
수정 아이콘
경력직 뽑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보면 단순한 문제입니다. 그냥 못하면 못한다, 모르면 모른다 솔직하게 대답해야죠.

어설프게 안다고 나서면 잘못됬을때 혼자만 피해보는게 아니라 다수가 피해봅니다.
13/06/05 07:45
수정 아이콘
이건 뭐 좋게 해석해 줄 여지가 없는 상황이네요. 이 정도로 이력서와 실제가 다르다면 사실상 사기죠. 신기한 건, 이런 스타일의 사람들은 죽는 그 날까지 자기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답이 없어요.
This-Plus
13/06/05 08:36
수정 아이콘
이정도면 잘라야죠...ㅜㅠ
커널패닉
13/06/05 09:45
수정 아이콘
으흐흐 그쵸 프로그래머는 결국 다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13/06/05 09:53
수정 아이콘
결국, 원인을 찾았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이후론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 이유가 뭐였나요?
Je ne sais quoi
13/06/05 10:39
수정 아이콘
이유는... 자기가 담당하는 부분에 자신이 생각했던 추가 로직이 데이터를 더 넣어서인데... 그걸 본인이 몰라서(아마 까먹은 듯?) 그 이유를 찾는데 하루를 사용했네요 ㅜ.ㅜ
레페리온
13/06/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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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물어보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하고.
우리나라는 사죄를 구하지도 않고 용서를 받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13/06/05 10:10
수정 아이콘
제대로 된 프로그래머가 되려면 두 가지 소양을 갖춰야 하는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고, 두번째는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갖는 것이죠.
커널패닉
13/06/05 10:40
수정 아이콘
동의 합니다
Je ne sais quoi
13/06/05 10:40
수정 아이콘
전 1번은 자신 있습니다. 제 특기 중 하나는 아는 사람에게 끝까지 묻기... 2번은... -_-;;
13/06/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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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프리하면서 느끼는건데 눈치가 빨라야하고 최소한으로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문제일으키지 말아야하고 빨리 업무파악 해야하구요. 그런데 이게 쉬운건아니죠. 특히 문제가 많은 시스템일때요. -_-
여튼 주변사람에게 못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왕따 되기 쉽상이고 심한경우에는 타겟이 되기 쉽상이죠.
프리의 특징인거같아요.
자루스
13/06/05 13:41
수정 아이콘
프리는 역시 눈치가~!
13/06/05 13:48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자존심을 버리는건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뿐만아니라 자신이 짠 소스에 대한 자존심까지도 버려야한다는거죠.
프로그래머들은 고집이 있어서 자기가 짠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경향과 기존의 것이 마음에 안들면 '내가 만들고 말지뭐'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크게 만드는 경우가 많죠.
13/06/0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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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안그래도 내일까지 걸어야할 크론이 있었는게 새까맣게 까먹고 있다가 이 글 보고 기억났네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크론 수정만 해주면 되는걸 재시작했다니 여러의미로 대단하네요-_-;;;; 크론을 만져본적이 없는게 아닐까요 덜덜
커널패닉
13/06/05 10:42
수정 아이콘
뭐.. 저도 커널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만, 생각보다 크론을 그렇게 많이 써보지는 않았어요.
예전에 실험할 때 여러 머신들에서 동시 수행을 하는 경우 외에에는 잘 건들이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서버 구성 이후, 관리하기 위해 크론을 쓰긴 합니다만.. 개발용도에서는 잘 안쓰게 되네요 )
13/06/0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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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에서는 보통 엄청나게 쓰이니까요.. 아니 지금까지 맡아왔던 프로젝트들에서 크론없이 작업했던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Je ne sais quoi
13/06/05 10:41
수정 아이콘
왠지 댓글 다신 분들은 모두 프로그래머나 최소한 이공계통인 듯 하군요 ^^
생각해보니 이 글도 결국 뒷말인데.. 그 분도 어느 커뮤니티에 가서 불평하지 않을까 궁금해지네요. 성질 더러운 놈 잘못 만났다고...
지게로봇정규직좀
13/06/05 11:00
수정 아이콘
그분도 문제가 있어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회사측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일단 첫번째로 사람 뽑을 때 그사람의 말만 믿고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크네요. 최근들어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구글 같이 면접 보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들었습니다. 면접시 했던 프로젝트 혹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던져주고 구조나 구현방법에 대해서 1시간이든 2시간이든 설명하라고 하고 들어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두번째는 프로젝트의 관리도 쉽지는 않겠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Unit화 해서 각자의 책임영역을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건 사실 엔지니어 마인드가 있어서 소통할 때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잘 해결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인거 같네요. 결국에는 회사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이 드네요. 저도 잘 못하지만 자꾸 사람문제로 몰고가면 우리나라 회사에 문제가 안될 회사가 없을 것 같아서요. 조그마한 회사라도 시스템적으로 극복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A.디아
13/06/05 11:06
수정 아이콘
저는 프로그램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면접관으로 앉아있어도 봤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허풍과 허세는 일하면서 곱절의 후폭풍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경력이던 신입이던 직장을 옮기면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인지라 전 차라리 모르면 모른다고 당당하고 씩씩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 끌렸던 기억이 납니다.
13/06/05 13:35
수정 아이콘
다음주부터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면접보는데 좋은 참고가 되었네요 흐흐..
자루스
13/06/05 13:38
수정 아이콘
어디나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자신이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지 자신이 얼마나 하는지 모르고 프로젝트 이해도 못하면서요
답답한 분들 많아요.

예전에 디자인 + 자바를 할 줄 안다고 사장님 특채로 들어온 분이 계셨는데요.
간단한 쇼핑몰 디자인을 시켜놨더니
"자신이 자바를 잘 아니 html 코딩을 자바로 하겠다"라고 해서

"이건 무슨 멍멍이 소리인가? 너에게 시킨것은 디자인인디?!" 생각하고 바로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잘랐습니다.

IT에도 상상초월이 많아요~!
테스트 서버 만들라고 했더니 1주동안 was도 못올리는 부장(?)이 있지를 않나
13/06/05 13:54
수정 아이콘
크크크 html을 자바로..!! 이게 무슨 쌩노가다인가! 쉬운길을 돌아서 가는군요. 알고보니 디자인을 못하는 엄청난 자바 전문가였다던가?!
아스트랄
13/06/05 14:30
수정 아이콘
"html 을 자바로" 아주 신선한데요? 크크크
13/06/05 16:30
수정 아이콘
여러의미로 대단하네요 진짜 크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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