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학개론] 거절의 트라우마 (부제 : 숙제를 내자)
연애 초보이든, 아니든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약간씩은 '거절의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 거절의 트라우마라는 게 꼭 "널 사랑해." 혹은 "나랑 사귀어줘." 류의 거창한 고백들에 대한 거절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구요. 자잘한 만남이나 데이트 신청에 대한 거절도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데이트 신청의 거절에서 생겨나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1. 누구나 거절의 트라우마는 있다
사실 한때 저도 거절의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마음에 드는 여자분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후 승낙을 받으면, 만나기로 한 전날까지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슨 괜히 "이번 주말에 보기로 한거 잊지 않았지?" 류의 소심한 확인 연락에, 상대방으로부터 "참, 근데 저 죄송한데.. 사실 제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날.. 블라블라" 류의 거절을 당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곤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내 연락을 안 하다가 전날 정도에 한번 확인 연락을 하곤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만, 이런 식의 불길한 예감은 전날이든, 당일 날이든 여지없이 맞아떨어지더군요. 그런 노래 가사가 있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뭐, 이런 가사처럼 이러한 상황에 맞딱뜨릴 때마다 속절없는 내상과 멘붕을 겪곤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한가지 느낀 점이 무엇이었냐면,
"깨질 데이트는 어차피 깨진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뒤집어 얘기하면 "만날 데이트는 지금 아니라도 어떻게 되든 성사된다." 라는 사실이죠.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데이트 신청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 그리고 거절에 대한 트라우마를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데이트를 어떻게 신청하느냐까지는 나의 문제지만 그 이후 그녀가 승낙하느냐 마느냐는 내 손을 떠난 그녀의 문제라는 사실을 점차 인식하게 된 거죠.
2. 거절의 트라우마,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실제로 돌이켜보면,
치밀하고 야심차게 계획하고 준비했던 데이트보다도, 의도치 않게 제안하거나 혹은 즉흥적으로 요구했던 데이트 신청의 승낙률이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벼르던 제사에 물도 못 떠놓는다는 말이 있듯, 데이트 신청을 너무 야심차고 진지하게, 심각한 태도로 접근하면 (아무리 문자나 카톡 상이라고 해도) 상대방 또한 그러한 분위기나 기운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상대방의 부담은 가중되는 것이고 그럴수록 데이트 거절이나 중간 파투의 확률 또한 높아지죠.
결국 데이트 신청의 기본자세는 묵직한 인파이팅보단 가벼운 아웃 복싱입니다. 나비처럼 가볍게 접근해야 성공 확률도 높고, 실패 시에 입게 되는 내상도 적습니다. 본격적인 인파이팅은 직접 만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사실 데이트 신청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론은 예전 글
[데이트 성공을 위한 대화의 기법 (1) - 데이트 신청](
https://pgr21.com/?b=8&n=31920)을 통해 말씀드렸기에, 오늘은 이러한 데이트 신청과 거절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마음가짐 측면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이른바 '거절의 트라우마,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오늘 글의 핵심 주제겠네요.
3-1. 발상의 전환 - 숙제를 내자
우선 제가 생각하는, 거절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첫 번째 핵심은 관계의 재정립과 관점의 전환에 있습니다. 사실 연애 초반, 이성적 호감으로 접근하는 남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여성간의 관계 사이에는 자연스레 연애권력이 형성됩니다. 이른바 연애 오디션에 참가한 참가자와 심사위원 간의 관계 혹은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과 교사 사이의 관계랄까요. 결국 오디션 참가자가 심사위원의 합격 사인을 절실히 바라고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이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간절히 원하듯, 데이트 신청을 하는 우리들 또한 상대방의 데이트 승낙을 애타게 바랍니다. 누구도 거절당하기 위해 데이트 신청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데이트 신청과 만남의 과정에서 머릿속으로 별별 생각이 다 들고 데이트 승낙을 받은 이후에도 만나기 전까지, 불길한 예감과 불안감이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수시로 '데이트 불안 증후군'에 떠는 분들에게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바로, 데이트 신청은 '숙제를 검사받는 행위'가 아닌 상대방에게 '숙제를 내주는 행위'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데이트를 신청하는 순간, 고민의 무게 추는 나에게서 상대방 쪽으로 확 기울어져 버립니다. 그 고민의 정체가 승낙을 앞둔 행복한 고민이든, 어떻게 거절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난감한 고민이든 중요한 건 결국, 고민은 데이트 신청자가 아닌 수용자의 몫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전 사실 누군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때, 약간의 조마조마하는 설렘도 있지만 그보다는 흥미로움과 궁금증이 더 큽니다. 과연 이 사람이 어떻게 승낙할까, 혹은 어떤 식으로 거절할까 하는 그 대응이 궁금한 거죠. 저는 숙제검사를 받는 학생이 아닌, 동등한 눈높이로 숙제를 내준 스터디원이니까요. 물론 내가 내준 숙제에 대해 그녀가 내가 원하는 정답을 내어놓을 수도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오답을 내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정답을 내놓았다면 즐거운 일이고, 오답을 내놓았다면 아쉽긴 하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숙제를 내주면 될 일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로 그녀의 승낙여부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내준 숙제 앞에 열심히 고민하는 상대방을 바라보며 데이트 신청 순간의 그 상황, 그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물론 데이트 신청을 하기 전까지는 내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데이트 신청을 위해 충분히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맞으나, 어떤 식으로든 데이트를 신청하고 만남을 제안한 그 순간부터는 고민하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결국 그녀와 나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문제를 내고 나머지 한쪽이 그 문제를 푸는 교사와 학생간의 일방적인 관계이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숙제를 내주고 서로가 푸는 동등한 스터디원의 관계여야 한다는 얘기죠. 여기에서 더 오버해서 마운트 포지션을 점하면서까지 그녀를 짓누를 필요는 없죠. 사실상 우리에게 그럴만한 능력도 없구요-_- 단지 동등한 눈높이로 서로를 대하는 스터디원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3-2. 안철수식 화법을 통해 그녀를 해석할 것
더불어, 물론 데이트 거절?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인드로 숙제를 내든, 그녀의 승낙여부까지 좌지우지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녀의 데이트 거절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매우 흔한 일이죠. 하지만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데이트 거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보통 우리들이 데이트 거절을 당했을 경우, 대부분의 연애 초보남들은 내상에 시달리며 그녀가 왜 데이트를 거절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혼자 고민합니다. 그녀의 거절 사유 뒤에 숨겨진 정치적 함의를 파악하기 위해 머릿 속으로 동분서주하죠.
하지만 그녀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연애의 기본은 상대방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설령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숨겨진 이유가 있든, 어찌됐든 일단 우리는 상대방의 화법을 안철수식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녀가 "선약이 있었는데 모르고 깜박했다." 라든가 혹은 "오늘 갑자기 몸이 안 좋다." 라는 식으로 얘기한다면 '그렇구나' 하고 믿고 넘어가면 될 일입니다. 적어도 그녀의 말에 위배되는 확실한 정황이 내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이상, 함부로 그녀를 의심하며 그녀의 거절 속에 숨겨진 또다른 진심(?)를 파악하는데 고심하며 시간을 낭비해선 곤란하다는 얘기이죠. 이런 식으로 고민할 시간에 다음 번 데이트를 어떻게 신청할 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합니다.
3-3. 모든 거절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더불어 데이트 거절도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데이트의 거절이 가치 있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일종의 마음이 빚으로 작용하여 다음 번 데이트를 신청하는데 유용한 도구와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데이트 거절이 만들어내는 추진력을 무시해선 곤란하죠.
예를 들어, 이번 주말을 A, 다음번 주말을 B라고 해봅시다. '어차피 연말이고 바쁜 시기라서 거절할게 뻔한데..' 라며 거절의 트라우마에 미리부터 주눅 들어 데이트 신청 자체를 주저하는 남자 C군과, '뭐, 애인도 없을텐데 본인도 심심하지 않겠어?' 라는 뻔뻔한 마인드-_-로 그녀의 쓸쓸한 주말을 알차게 채워주고자 데이트를 신청하는 D군이 있습니다. 이 경우 지레 겁먹고 물러선 C군과 달리 D군의 경우, 설령 그녀의 거절로 이번 주말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거절을 빌미로 다시 한번 약속을 잡아 다음 주말에는 그녀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거절 자체를 두려워하며 데이트 신청에 소극적인 남자 C는 이번 주말 뿐만 아니라, 다음 주말에 그녀를 만날 기회조차 함께 잃어버리는 것이고 반대로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자 D는 이번 주말 뿐만 아니라 다음 주말에도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얘기죠. 이러한 측면에서 결국 +1과 0의 차이가 아니라, 한번의 데이트 신청이 +2와 0이라는 꽤나 크고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물론 A, B 두 시기 전부 그녀의 거절로 데이트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이 경우 잠시 휴지기를 가진 후, C시즌에 다시 한번 삼고초려를 하면 그만이니까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거절들이 우리들에겐 상당히 중요한 자산이고 정보입니다. 데이트 신청의 삼고초려란 단순히 만남을 위한 제안의 수준을 넘어서서 나를 향한 그녀의 호감도를 체크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데이트 신청이 거절당하면 거절에 담긴 그녀의 본심과 진의(?)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다음 번 데이트 신청을 고민합니다. 더불어 세 번 이상 데이트를 신청했음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세 번 다 데이트를 거절하거나 (그날은 안 되지만 다음에 언제는 된다는 식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며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하는 경우는 나에 대한 이성적 호감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결국 데이트 신청은 승낙을 얻든 거절을 당하든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얘기이죠. 결국 데이트 거절은 마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닌,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대상입니다.
4. 데이트 신청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결론적으로, 우리가 데이트 신청을 하면서도 원인 모를 거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상대방의 이유있는 거절에도 과민반응하며 스스로 멘붕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존감이 다져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죠. 자신감은 없고, 과거에 거절 당한 트라우마가 발목을 잡다보니 동일한 상황도 자꾸 부정적이고 불길한 쪽으로만 해석하게 되고 내가 못나서 거절당한 것만 같은 위축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무너진 자신감과 자존감의 회복은 다른 무엇보다도,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니가 어디 승낙 안하고 배겨?" 라는 당당한 마인드와 "나와의 데이트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리면 너도 손해일텐데." 라는 뻔뻔한 자신감이 필요한 거죠. 결국 거절의 트라우마는 적극적인 데이트 신청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고 이것이 그녀와의 데이트 성공률을 높이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숙제를 냅시다.
더 이상 숙제 검사를 받는 일방적인 학생 입장이 아닌 동등한 눈높이로 당당하게 숙제를 내봅시다. (상대방이 어떤 답을 제시하든지간에) 이렇듯 '데이트 불안 증후군'에서 벗어난 당당한 모습만으로도 우리들의 데이트 신청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정답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