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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05 16:45:24
Name 눈시BBver.2
Subject 희망과 절망 - 5. 북한군 2차 공세의 끝
스미스 임무부대의 전멸로 끝났지만, 이 7월 4일부터 시작된 미군의 증원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미연합의 시작이죠. 이를 통해 국군은 숨통이 트였고, 미군의 본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심리적인 효과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뭐 기대를 하자마자 바로 깨지긴 했지만요 =.=;;;

7월 1일 정일권이 육해공군 총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고, 4일에는 시흥사령부가 해체되고 그것을 모체로 국군 최초의 군단이 탄생합니다.


그것이 1군단이었죠. 초대 군단장은 시흥사령관 김홍일 소장, 참모장은 유재흥 준장이었습니다. 7월 5일 00:01부였습니다. 이걸 시작으로 국군은 사단을 재편합니다.


당시 수도사단장 이준식 준장

1군단 예하에는 수도사단과 1, 2사단이 소속됐습니다. 이 사단들의 병력을 채우기 위해 3, 5, 7사단이 해체되었죠. 6, 8사단은 그대로 유지됐고, 옹진에서 탈출한 17연대와 동해안을 맡고 있던 3사단 소속의 23연대, 기갑연대는 육본 직할이 됩니다.


그리고 이 때, 꽤 유명한 사람이 다시 기용됩니다. 아직 야인으로 김홍일 휘하에서 일하고 있던 김석원이었죠. 7월 7일자로 그는 수도사단장이 됐고, 예전에 그의 부하였던 이들이 김석원에게 달려갑니다.

"갑자기 11연대장 최경록 대령과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이 “떠나야겠다”고 했다. 전쟁 전 예편했던 김석원 준장이 7월 초 수도사단장에 복귀하자 예전에 그를 모셨던 두 사람이 떠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당시는 전쟁 중이라 인사계통의 명령이 들쭉날쭉했다. 자신의 친소(親疏) 관계에 따라 서로 끌고 밀어주던 시절이었다. 어떤 사람의 자리를 먼저 옮긴 뒤 부대장이 육본에 연락해 “내가 필요해서 그 사람을 끌어왔다”고 하면 양해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나보다 훨씬 명망이 높았던 김석원 장군을 찾아간 것이다." - 백선엽

특히 김석원이 전에 맡았던 1사단의 참모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것이죠. 백선엽은 이 때의 섭섭함을 회고하는데, 사실 이후 이런 걸 가장 심하게 한 게 그라고 합니다. -_-; 자기가 이끌던 평안도 파벌 챙겨주기 말이죠. 전쟁영웅이라는 희대의 공과 친일이라는 과 사이에 숨겨진,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나중 문제긴 합니다만.

아무튼 이런 건 장교들부터 병사들까지 이어집니다. 김석원 장군 밑으로 가면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죠.그리고 이건 학생들에게도 이어집니다. 대구에서 "김석원 장군 밑으로!"라는 깃발 아래 모인 학도병은 김석원이 수도사단장에서 잘린 후 확실히 입대하든가 해산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둘 다 거부하고 3사단으로 간 김석원을 다시 찾아갑니다. 이들이 포항여중 전투의 주인공이죠.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참 매력 있긴 했던 모양입니다. 대신 윗사람들이랑은 참 죽어라 싸웠죠. 그가 재기용될 때 신성모는 몇 차례나 "무조건 복종하겠다"는 맹세를 받아냈고, 그러고도 상급자인 김백일부터 미군이랑 계속 싸웠습니다. 그렇게 잘린 후에는 다시 군으로 돌아오지 못 했죠.

"장관님. 김석원은 이제 일선으로 나갑니다. 소직(小職)이 전사하면 그 뼈다귀를 북을 향해서 성남중학교 뒷산에 묻어주십시오"

이렇게 그는 군으로 돌아와서 지연전 기간 동안 군인으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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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부터 UN군의 참전이 결정된 상태에서 중요한 건 국군과 UN군간의 연합체계였습니다. 양 쪽의 소통이 원활해야 효율적인 작전이 가능했으니까요. 이미 미 공군의 오폭부터가 계속 문제가 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서울 북쪽부터 한강 방어선까지 국군은 계속 오폭에 시달렸고, 말단 병사들부터 각 장교들까지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빨리 이런 지휘 체계를 통일해야 했죠.


이런 통합은 해공군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26일에 이근석 대령을 필두로 한 F-51 무스탕을 탈 수 있을 만한 조종사 10명이 선정됐고, 일본으로 가 급히 훈련하게 됩니다. 정작 5일 동안 비가 와서 제대로 훈련을 못 했다고 합니다만 -_-; 이들은 7월 2일에 돌아와 3일부터 작전에 투입됩니다. 이와 함께 한미공군간의 연계가 시작됐고 5일에 공지합동작전본부도 설치하면서 오폭이 줄어들게 됩니다.

+) 이 때 공군을 돕기 위해 왔던 미 공군은 자원한 것이었는데, 일본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

해군의 경우 30일부터 37도선을 경계로 북쪽을 미군이, 남쪽을 국군이 맡기로 했는데 스케일도 워낙 다르고 연락장교도 제대로 파견이 안 돼 합동작전을 펼 정도는 아니었죠.

  7월 7일, UN은 또 다시 결의안을 냅니다. 7.7 결의, UN군 파병에 대한 것이었죠.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군이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한 것을 평화의 파괴행위로 확정하고, 군사력과 기타 지원을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이 미국 채김하의 통합군사령부가 그러한 군사력과 기타지원을 운용하도록 할 것을 권고하며, 미국이 그러한 군사력을 지휘할 사령관을 지명하도록 요청하고, 통합군사령부가 미국의 재량으로 북한군에 대한 작전 중 유엔기를 여러 참전국의 국기와 함께 사용하도록 승인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통합군사령부의 책임하에 취해진 작전경과에 관한 적절한 보고서를 안전보장이사회로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 주도의 UN군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된 이상 유엔군사령관이 누가 될 지는 뻔했죠.


"미국의 작전임무는 국제정치상 어디까지나 유엔안보리의 지원하에 이루어진다." - 미 육군부가 맥아더에게

7월 8일,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이 떨어졌고 10일에는 정식 임명서가 발송됩니다. 이렇게 그는 정식으로 한국에 파병되는 육군과 유엔군의 총사령관이 됩니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그리고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워커 중장은 미 지상군을 지휘하게 됩니다.

이에 맞추어 정부는 7월 8일 전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전시체제로의 전환이었죠. 이 때 전라도가 빠진 이유는 여기까지 전쟁이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였죠. 여순 사건이 일어났다 해도 전라도는 우익이 강세였던 지역, 이승만은 대구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는 말에 쫄아 전라도로 내려가 뱃길로 부산으로 갑니다. 전시 징병도 전라도에서 우선 시작됐구요. 반면 경상도는 UN군의 지원이 직접 오는 곳이니만큼 신경써야 했고, 대구 등에서 좌익의 폭동에 대비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요.

이후 금강 방어선이 밀리던 7월 15일,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국군의 작전권을 이양합니다. 이후 직접 지휘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육본에 요청하는 식으로 하긴 했지만 이렇게 국군의 작전권은 유엔군에게, 실질적으로 미군에게 넘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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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연합군이 형성돼 갔지만 아직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황, 괜히 부대를 섞어봐야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초기 한미연합군은 지역을 정해서 그 지역을 맡기로 합니다. 경부선을 중심으로 한 서부는 미군이, 동부는 국군이 맡기로 한 것이었죠.


한강 방어선이 뚫려가던 동안 6사단은 또 한번의 전공을 올립니다. 뒤늦게라도 국군의 후방을 끊으려 한 2사단과 6사단 19연대 및 2연대 예하 2개 대대가 증원된 "이천지구전투사령부"의 전투였죠. 이들은 지연전을 펼치면서 후퇴하다가 이천에서 적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2일부터 북한군과 마주치게 됩니다. 결과는 춘천-홍천 전투 2탄이었습니다.


북한군은 여기서도 이천을 넘어 소백산맥을 미리 점령하려 했고, 그 때문에 지형도 무시하고 달리기에 바빴습니다. 국군은 오는대로 쐈고, 적은 쓰러질 뿐이었죠. 이 과정에서 19연대는 민간인으로 변장해 적의 동태를 알아내고 곳곳에서 기습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힙니다. 클래스가 어디 가지 않는 거죠. 3일이 되고 한강 방어선이 뚫려가고, 적의 공격도 더 강해지면서 김종오 대령은 방어를 그만두고 철수할 것을 명령합니다. 뭐 일단 이 전투의 지휘관 자체는 이천지구전투사령관에 임명된 이형근이었습니다만 -_-a 그 동안 6사단 본대는 충주-단양까지 후퇴하며 소백산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8사단이 빠진 동해안에는 3사단 23연대가 투입됩니다. 이들의 목표는 울진 방어였죠. 하지만 7월 1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공격에 3시간만에 울진을 잃고 평해(현재 울진 소속)-영해(어디지--;)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연대장 김종원 대령은 정확한 정보를 받지 못 했고, 그저 북한군을 유격대 정도로 생각한 게 패인이었죠. 안 그래도 상대가 안 되는 전력이었는데요.

그래도 5일까지 영해에서 버티면서 포항까지 밀리는 걸 막아냅니다. 여기엔 맥아더가 동해안에 주목한 게 컸습니다. 동해안이 뚫리면 경상도가 위협받게 되고 미군의 증원이 불가능해지게 되니까요. 미군을 비롯해 이미 파견된 UN군 해군이 동해안 곳곳에서 포격을 통해 북한군을 막아냈고, 내려오는 길도 좁고 바다에서는 상대할 수 없는 미 해군을 만나게 되면서 북한군의 진격이 둔화됩니다. 특히 발이 느린 포병대는 말 그대로 괴멸됐다고 합니다.

여기엔 북한군의 실책도 큽니다. 초반의 기세를 타고 미친 듯이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곳에서의 진격속도는 서부전선의 절반도 안 됐죠. 북한군의 주력이 서부에 있었고 미군이 올 줄 몰랐으니 천천히 서부에 맞춰 천천히 내려갈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패착이 됐죠. 여기다 남하에 집중하지 않고 병력을 산악지대로 빼서 공격력 자체도 줄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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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임무부대가 후퇴하는 동안 오산 방면에 투입된 것은 17연대였습니다. 이들은 원래 금강 방어선에 투입되려 했는데 총참모장이 된 정일권이 전방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죠. 아무래도 스미스 임무부대가 너무 적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미군이 왔다 우린 이겼다~"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스미스 중령은 이 17연대를 자기들과 함께 죽미령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이건 들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7월 3일에 오폭, 그것도 아주 대규모 오폭을 당했다는 것이었죠. -_-; 호주 공군의 오폭이었습니다. 200명이나 되는 사상자가 나왔고, 연대장 백인엽 대령까지 부상을 입고 후송됩니다. 김희준 중령이 연대장 대리가 되었죠. 물자 손해도 커서 20량이나 되는 탄약와 7량이나 되는 보급품이 불타버렸죠.  5일이 돼서야 상황이 좀 나아지고 전 부대가 흰색 페인트를 칠해 피아식별을 하게 했습니다.

+) 호주군이 오자 이를 오스트리아로 착각해서 이승만의 아내인 프란체스카의 모국이 사위 나라 구하러 왔다는 말이 돌았던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죠 (...)

뭐 그래도 17연대가 정예이긴 했던 모양입니다. 고립된 옹진에 있었으니까요. 서부전선에 투입된 유일한 국군이었습니다. 이들은 스미스부대가 떠난 후 북상을 명령받아 오산 북쪽 1km 갈곶리-청호리 부근에서 진지를 만들어 스미스부대를 지원할 태세를 갖춥니다.

스미스부대를 공격한 북한군은 곧 17연대의 진지에 이르렀고, 나름대로 반격을 하긴 했지만 역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17연대는 철수했고, 다행히 북한군은 더 이상 진격해 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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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2차 공세는 5일로 끝이 납니다. 모든 전선에서 전투가 끊긴 건 아니지만 계속 남하하던 북한군 병력이 대체로 이 시기 멈추었죠. 대략 평택-충주-단양-울진을 연결하시면 됩니다.

아직은 UN 공군의 공격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상태였지만, (오히려 오폭이 끝이 없었지만 -_-;) 그래도 수송 능력이 부족했던 북한군에게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여기에 미 지상군이 직접 참전했다는 소식은 북한을 놀래게 하기에 충분했죠. 밀어붙이던 그 힘으로 평택 근처까지 오긴 했지만 한 차례 쉴 타이밍이긴 했습니다.

어차피 쉬는 건 단 하루, 6일부터 북한군 3차 공세가 이어집니다.

"최대한 버티되 고립 위험시 스미스 부대와 같이 되지 말라" - 24사단 부사단장 바스

이어지는 3차 공세, 미군은 나름 북한군에 대해 경계하게 됐지만 아직 준비가 부족했던 미군은 그대로 밀리게 됩니다. 반면 국군은 이 3차 공세에서 나름대로 활약을 하게 되죠. 뻥 뚫린 서부전선과 소백산맥이 있던 중부전선의 난이도 차이, 슬슬 북한군에 익숙해져 가던 국군과 아직 부족했던 미군의 차이 등이 낳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3차 공세를 통해 국군과 UN군은 낙동강으로의 후퇴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어진 4차 공세는 낙동강 전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죠.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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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rriser
12/08/05 17:25
수정 아이콘
선추천 후감상...흐흐 잘보고 있습니다. ^^
지나가다...
12/08/05 17:25
수정 아이콘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사진(아마도 제6보병사단)은 링크 문제로 안 보이네요.
그리고 맥아더의 파이프가 참 압박입니다. :-)
누나전문깔대기
12/08/05 19:38
수정 아이콘
잘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마지막 사진 밑의 멘트 7월 29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2차 공세는 5일로 끝이 납니다. 는 6월 29일로 수정되야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Je ne sais quoi
12/08/05 20:39
수정 아이콘
뭐 아직도 오스트리아와 호주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당시에는 정말 이해가 가는 일이네요 -_-;;;
점일홍
12/08/06 00:55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blue wave
12/08/06 11:2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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