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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03 21:52:11
Name 눈시BBver.2
Subject 희망과 절망 - 4. 미군은 무너지고
"이제는 당신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들의 전쟁이다(This not your war but ours" - 6월 27일, 드럼라이트(E. F. Drumwright) 참사관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참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짜증나는 말입니다. -_-a

이 때부터 한미연합이 시작됩니다만, 일단 이 편에서는 오산-죽미령 전투 얘기를 하도록 하죠. 같이 얘기하기엔 좀 복잡하니까요.


맥아더는 우선 큐슈에 주둔한 미 24사단을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가까웠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투입하기는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죠. 이들은 물론 당시 전체 미군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일단 병력이 "부족"했습니다. 2차대전 종전 당시 89개 사단에 달했던 미군은 11개 사단으로 감축됐고, 이 중 5개 사단이 해외에 전개돼 있었습니다. 이 중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는 건 5개 사단 뿐이었죠. 일본에 4개 사단이 남아 있었던 게 다행이었습니다. 헌데 이 사단들도 병력의 1/3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이들도 전쟁을 겪은 이들이 제대하고 신병이 대다수였으며, 훈련 면에서는 중대급 이상의 훈련도 해 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장비 면에서도 수도 부족하고 있는 것들도 창고에 박혀서 썩어가고 있었구요.

군비 감축과 전쟁에 시달린 장병들의 제대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미군이 무슨 2차세계대전 수준의 장비와 병력, 훈련도가 있었으면 한국전쟁도 정말 수월히 끝났을 가능성이 더 짜증납니다. 전쟁이 없을 거라 했지만 북한은 쳐들어왔고, 미국은 한국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며, 이제 많은 미군들이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 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떠나야 했습니다. 일본과 싸울 때 그랬듯, 적에게 익숙해지기까지 또 어이 없는 피해를 입어야 했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약화된 상태에서도 그들이 여전히 세계 최강이라 여긴 것이죠. 뭐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만, 2차 세계대전 때 그들이 이긴 건 단지 숫자와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효율적인 작전과 높은 훈련도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죠. 그들은 이걸 잊고 있었고, 이렇게 약화된 상태에서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고, 북한군을 전근대적인 군대로 무시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뭐 여러 면에서 그렇게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북한군은 그렇게 만만한 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증오와 통일을 향한 의지만큼은 진짜였죠. 그리고 소련제 무기는 그렇게 부실하지 않았습니다. 미군을 보고 많이 놀랐지만, 그들은 주저 않고 미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병력도 장비도 훈련도도 부족한 상황, 애초에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방심은 그 피해를 더 크게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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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방어선 붕괴 후 후퇴하는 국군의 첫 집결지는 오산이었습니다. 육본은 평택까지 후퇴했고, 거기서 재차 지연전을 하려 했죠. 지연전의 끝은 어차피 없었습니다. 적의 기세를 확실히 꺾거나 미군이 오거나였죠. 헌데 이 때 보급물자를 가득 싣고 평택까지 온 기차가 미 공군의 폭격을 당해서 (...)... 여기에 육본의 철수차량들까지 공격을 받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미 공군은 금강을 한강으로 착각한 것이었죠 -_-;

그 동안 북한군은 4일, 단 하루만에 수원을 점령합니다. 거기서 하루 쉬고 3, 4, 105 전차여단에 '서울 사단'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며 더 세괃게(세게) 밀어붙이게 했죠.

그렇게 철수하며 집결지인 오산, 평택 사이의 과수원으로 향하던 18연대 장병들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미군을 보게 됩니다.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어차피 영어도 모르니) 말 없이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반겼고, 미군도 화답하며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고 합니다. 미군이 마지막으로 철수했던 것은 타이밍도 참 좋은 6월 22일, 정 떨어지게 떠나갔던 그들이 이렇게 다시 나타나주니 그래도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을 이끌던 연대장 한신 대령은 그런 사실을 수치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과수원에 도착했던 그들은 옷과 신발을 물에 헹군 후 나무에 널어놓고 물 마시고 목욕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무 그늘에서 늘어진 병사들도 있었죠. 그런데...

"미군이 철수하는 것 같은데?"

한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의 시선도 그 쪽으로 갔습니다. 어제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북상했던 미군은 철모부터 군화까지도 잃어버린 채 허겁지겁 도망쳐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명령대로 그 곳을 떠났고, 평택 근처에서 두번째 미군을 보게 됩니다. 그저 승전을 빌 따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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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북쪽에 북한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훈련도 부족하고 무기를 가진 자는 반 수밖에 되지 않으니 힘 안들이고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미 24사단 21연대 1대대는 2개 소총중대와 4.2인치 박격포 소대, 75밀리 무반동총 소대로 구성됐고, 1대대장의 이름을 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로 명명됐습니다. 7월 2일 기차로 대전에 도착한 스미스 중령은 참모들을 대동하고 오산으로 가 죽미령을 눈여겨보고 돌아옵니다. 이 곳을 방어선으로 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처치는 그에게 안성과 평택 방향으로 북상하라고 명령합니다.

7월 4일까지 스미스 임무부대(TF) 휘하의 병력이 모두 도착했고, 스미스 중령은 명령대로 병력을 북상시킵니다. 국군 패잔병 및 피난민 때문에 혼잡했고, 병력 중 운전병도 부족해서 사병들 중 운전경험자들을 뽑아 충당한 상태였습니다. 평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일이 돼 있었고 죽미령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었죠. 여기에는 미군을 위해 징발한 한국인 운전수들이 북쪽으로 간다는 말에 도망간 것도 컸습니다.

이 때문에 스미스 임무부대는 방어하기 좋은 지점을 점령하기는커녕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방어를 해야 했습니다. 마침 비도 내려서 방어준비하기는 더 힘들었죠.

7월 5일 07:00, 스미스 임무부대는 북한군과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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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우리가 한국군인줄 알았나?"

북한군 전차 8대가 나타나자 포병사격이 요청됩니다. 75mm 무반동총 2정이 일재사격을 가했고, 전차가 지근거리에 도달하자 로켓포도 사격을 개시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후방의 포병은 105mm 직사포를 쏴 전차 2대를 깨뜨렸지만 거기서 나오던 북한군이 기관총을 난사, 미군에서 첫 전사자가 나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미군은 북한군이 자기들이 국군인 줄 알았나 하고 있었댑니다. 미군이면 당연히 도망갈 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북한군의 전차는 계속 늘어나서 09:00에는 33대에 달했습니다. 이들은 국군에게 그랬듯 미군 방어선을 돌파, 미 보병-포병간의 전화선을 절단했고 계속 진격했죠. 그 뒤를 이어 본대가 나타납니다. 이들이 모두 통과하기까지 스미스 임무부대가 격파한 적 전차는 겨우 4대에 불과했습니다.

+) 이 전차부대는 105 전차사단, 유경수사단의 107전차연대라고 합니다.

그 뒤를 이은 보병부대, 미군은 이들이라도 막아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이들의 선봉에 선 전차 3대와도 제대로 싸우지 못 합니다. 거기다 북한군은 국군에 했듯 후방으로 침투, 미군을 포위하려 했습니다. 14시에 이르러 적은 미군의 양측을 완전히 포위했고 후방에까지 침투하게 됩니다.

14:30, 스미스 임무부대는 후퇴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후퇴과정은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죠.

540명의 스미스 임무부대 중 150명이 전사했고, 72명이 포로가 됩니다. 남은 인원은 7일까지 천안에서 수습됩니다. 이에 반해 북한군의 피해는 전차 4대 격파 및 2대 반파, 전사 42명과 부상 85명 정도였습니다.

생각보다 적에게 피해를 적게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벌었던 7시간동안 미군은 충청도에서 어느 정도 방어선을 만들었구요. 하지만 역시... 부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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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지상군 부대가 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적 사령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여 적으로 하여금 신중하고 완만한 행동을 취하게 한다는 책략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 맥아더

"그때 미국이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고, 미국의 참전 가능성에 대헤서 전해들은 바도 없으며, 오산에 미군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그것은 우리로서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 북한군 2군단 작전참모 이학구

북한군은 분명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때는 그 방법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중부전선에 투입된 6, 8사단이라면 모를까 한강방어선에서 국군의 주력은 적과 싸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가장 높으신 분들부터 가장 밑의 병사들까지 북한군을 너무 무시했습니다. 애초에 병력도 부족하고 북한군이 보유한 소련제에 비해 장비도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마음을 놓았으니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은 것이죠.

그 후 미군이 계속 증원됐지만, 축차 투입에 지나지 않았고, 충청도까지 너무도 쉽게 밀려버립니다. 그리고 충청도의 금강 방어선이 뚫린 상태에서 전라도는 무주공산이 됩니다. 국군이나 미군이나 전라도를 방어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군이 제 힘을 발휘할 정도의 병력을 투입하기 위해서, 혹은 북한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국군이 재편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후퇴밖에 답이 없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야 옳은 판단이었지만... 역시 싫어요.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 지역이 넓어질수록, 민간인의 피해는 커지기 마련입니다. 뭐 일단 이 때 북한군이 저지른 두드러진 민간인 학살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군이 후퇴하면서 저지른 게 더 보일 뿐이죠.

자... 그럼 이렇게 밀리던 상황, 경기-충청도까지 후퇴하는 상황에 있었던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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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규명위원회에서는 이 때 수원 지역에서 학살당한 보도연맹원을 370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군 자료에는 정치범 1800명이라 돼 있다 하는데, 이 직후 나온 북한의 조선인민보에도 370명이라 돼 있고 참전경찰의 증언에서도 수백명 단위라서 이 쪽을 따른 것으로 보이구요.

"나는 전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두 대의 대형 불도저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 때 체포된 사람들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도착했다. 손이 모두 등 뒤로 묶여 있었다. 그들은 서둘러 판 무덤 언저리에 길게 줄지워 세워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머리에 총탄을 맞은 채 무덤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 미 공군 OWI 요원 니콜스

이렇게 각 지역마다 내려가면서 참 많이도 죽였습니다. 이 정확한 수가 어떤지는 말마다 다르고, 생존자나 그 때 직접 쏜 경찰관들도 헷갈리고 있습니다.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으니까요. 당진의 경우 160명 혹은 360명인 것 같은데 십의 자리 60명만 기억난다고 하죠. 일단 "최소'를 붙여 적은 쪽을 택한 모양이구요.

정말 운으로 살아난, 아니 운이 아니라 그 책임자의 결단으로 살아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천안의 경우 360명의 좌익분자+요시찰인 중 주동자 소수만 남기고 모두 석방했다고 합니다. 김종대 경찰서장의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갑을병 혹은 ABC로 분류된 이들 중 갑, A만 죽이고 나머지는 풀어준 지역도 제법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송덕비도 제법 있구요. 그거 말고도 돈 받고 풀어준 경우도 있죠 - -;

경기도부터 충청도까지의 보도연맹 학살은 계속되는 후퇴 및 서울에서 보도연맹원 등 수감자들이 탈옥 후 북한에 가담했다는 첩보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 하지만 계속 후퇴하는데 그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데리고 갈 수 없으니 죽인다는 거였죠.

경기도의 경우 싸우기도 바빠서 육본이 있었던 수원 주변에서만 진행됐지만, 충청도에서는 미군이 막고 있는 동안 참 대전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충청북도의 경우 청주-청원에서 최소 588명, 대전의 경우 형무소가 있어서 최소 1400명으로 잡고 있죠. 그나마 이 충청도부터 전라도까지는 나은 편입니다. 경상도에서는 적이 다가올수록 낙동강 방어선을 탄탄히 하기 위해서 계속 죽여댔거든요.

확실히 어쩔 수 없다고 할 사례들은 있습니다. 인천의 경우 북한군이 들어오기 전에 시를 장악하고 되돌아온 경찰에 확실히 적대행위를 한 상태였고 이 사례도 포함됐으니까요. 그 외에 보도연맹원들이 패잔병부터 우익 인사들을 사냥하고 인민재판에 앞장 서기도 했구요. 말 하자면... 정말 길고 길군요.

자세한 건 나중에 하겠습니다. 다만 예고편으로 두 가지 말로 끝을 내겠습니다.

무장하고 자신들에게 적대 행위를 한 이들을 죽인 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그냥 감옥에서 끌고 나와서 단체로 죽인 겁니다. 애초에 전자의 방식대로 한다면 병력과 여유가 넘치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없어요.

그렇다면, 이대로 물러나면 자기들에게 적대행위를 할 게 분명하니까, 확실한 "빨갱이니까" 반드시 죽여야 했다. 인륜이니 정의니 이런 걸 떠나서, 이게 맞다면 우리가 북한의 인민재판을 욕 할 이유가 있을까요? 북한은 인민재판과 북진 과정에서 국군 포로 및 북한 내의 반동들을 역시 많이 죽였습니다. 이들은 국군이 이기면 반드시 한국 편을 들 이들이었겠죠. (이 쪽에도 남북 상관 안 하는 무고한 이들도 적진 않았겠지만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걸 욕 하는 건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는데 그냥 "적이 아군을 죽인 것"이니까 욕 하는 게 될 뿐입니다. 북한군이 악이라거나 특별히 잔혹해서가 아니라요. 이게 맞을까요? 분명 다른 편을 틀 테니까, 빨갱이/반동분자니까, 반드시 죽여야 된다, 이런 것 말입니다.

둘째로 보도연맹 사건의 주 희생자는 감옥에 갇혀 있거나 부르니까 온 자들입니다. 확실히 북한 편을 들기 위해 미리 북한군에 붙거나 국가의 명령을 어기고 (북이든 남쪽으로 피난이든) 도망간 이들은 별로 안 죽었죠. 국가가 자신을 탄압해도 자기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던 이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자기가 사는 나라에 순응하고 살려고 했던 이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건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국가를 믿지 않는 상황을 만든 건 바로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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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원래는 한 대전까지 뚫린 다음에 쓰려고 했지만, 그냥 여기서 넣습니다. 애초에 저 부분을 먼저 쓰기도 했구요 (...); 봐 주세요. TGIF잖아요. 술 안 들어간 상태에서 쓰기도 참 싫은 상황이고...

다음 편은 미군이 충청도에서 완전히 깨지고 전라도가 완전히 적의 손에 넘어간 부분까지를 다루겠습니다. 갈 길이 멀군요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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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08/03 22:2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우리 현대사는... 언제나 서술하기 힘든 부분들이네요 -_-; 힘내서 써주세요!
눈시BBver.2
12/08/03 22:22
수정 아이콘
네 '-')a~ 감사합니다~
주말 동안 못 썼던 것들 많이 쓸게요 ^^;
공상만화
12/08/03 23:00
수정 아이콘
양산부대. 스미스부대 가 등장했군요.(배식을 받을때 미군병사가 양산을 쓰고 받았습니다.)
보도연맹학살은 국민방위군과 함께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기억이죠.
더운날 글 쓰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홍Yellow
12/08/03 23:12
수정 아이콘
군대에서 정신교육 시간에 6.25에 관해서 교육하면
스미스부대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대해 간략히 질문하자면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북쪽출신인데 민주화?라고 해야하나요?
남한화 되기로 약속을 하고 가입을 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이 북쪽 출신들이 남한을 배신하고
북쪽으로 붙을 까봐 그게 걱정되서 학살한게 맞는거죠?
내일은
12/08/03 23:42
수정 아이콘
쓰시는 단어들이 참...
간략히 설명하자면 보도연맹은 일제시대 친일 전향 단체인 대화숙을 본떠서 만들어진 단체로 남한 내 '좌파'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반공으로 전향시킨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원래 일제시대 때 일제와 일본인들이 일종의 지주-자본가 역할을 수행했고 우익들이 친일로 많이 전향했기 때문에 광복 당시 한반도 내 좌익 세력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남북 분단으로 북쪽에서 공산 정부가 남쪽에는 자본주의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남쪽 내 좌익 세력이 북과 손잡을 것이 걱정되어 통제하기 위해 만둘어진 단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개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그렇듯이 (인생의 진리죠) 실제 좌익 여부와는 관계없이 지역별로 할당이 되어서 사상과 관계없거나 그냥 유명해서 가입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북쪽 출신 좌익들이 왜 남한에 공개 활동하곘습니까 -_-;;; 좌익이라면 북쪽에 남거나 혹은 월북하거나 아니면 남한 내에서는 박정희 처럼 지하활동을 주로 했습니다.
구밀복검
12/08/04 01:03
수정 아이콘
참고로 당시 전시행정으로 보도연맹 가입자를 늘리곤 했기 때문에 중고생들도 어찌어찌 보도연맹 가입되었다가 나중에 총 맞고 그랬죠.

뭣보다 국가에서 불법으로(법 절차를 완전히 무시) 무고한 시민들을 (혹시 모르니까) 살해했단 게...
3시26분
12/08/04 00:13
수정 아이콘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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