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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3/19 18:02:48
Name 술라
Subject [일반] 백설공주 감상: 자스민을 이렇게 만들었어야지 (수정됨)
※ 2019 알라딘과 2025 백설공주 약스포가 있습니다.

오늘 개봉한 2025년 백설공주 실사영화 보고 왔습니다. 한국어 더빙판으로요.
제가 1937년 백설공주 애니메이션은 보지 않았기에, 디즈니판 백설공주 단독작을 보는 건 이게 처음입니다.

이 영화는 인어공주 실사영화처럼 이것저것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흥행도 안 될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런 논란은 제 귀에 잘 닿지 않았고 대신 다른 걱정이 자리 잡았습니다.

광고문구에 큼지막하게 박힌 '미녀와 야수, 알라딘 제작진'.


전 알라딘 실사영화를 3번인가 4번인가 봤습니다. 재밌게 잘 봤어요.
하지만 제작진이 자스민을 다룬 방식은 원작 캐릭터와 배우가 너무나 아까울 정도고, 페미니스트도 아닌 제가 페미니스트처럼 생각하게 할 정도입니다.

작중의 자스민 공주는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며, 자기도 국가를 운영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화폐의 존재를 모릅니다??

거의 첫 등장에서 애들이 배고파 보인다고 시장의 빵을 멋대로 집어다 아이에게 줍니다. 그래서 도둑으로 몰립니다. 아니 엄밀하게 따지면 도둑이 맞죠.
돈을 내라니까 아이들이 굶고 있잖아요! 라고 항변합니다. 이게 나라 지도자가 될 준비를 갖춘 사람이래요.

자스민의 서사와 정당성은 첫 등장 하나로 거의 다 무너집니다.
진짜 이 장면을 생각할 때면, 제작진이 무능한 건지 아니면 사실 여자가 지도자가 돼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품고 디즈니에 잠입한 여혐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만드는 백설공주가 걱정이더군요. 왕자가 빠지고 반란군이 나온다고 하길래 더더욱요.


그렇게 걱정하면서 봤는데, 정말 다행히, 실사영화 백설공주는 자스민처럼 입만 산 캐릭터가 아닙니다. (불쌍한 원작 자스민과 나오미 스콧!)
물론 오랫동안 궁정 하녀로 지내며 바깥세상과 격리되어 살다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공주님이란 말을 듣긴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순진한 공주가 제안하는 선의와 화합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이끌고 폭군까지 무찌르게 되지요.

덕분에 재밌게 봤습니다.
'알라딘을, 자스민 공주를 이렇게 만들었어야지!' 하는 한탄과 함께 말이죠.


물론 이 영화도 단점이 없진 않습니다.
메시지를 담은 대사들이 좀 뜬금없는 타이밍에 튀어나오는데, 이건 가족영화니까 그렇다 치고요.

왕자를 도적 겸 반란군 캐릭터로 바꾼 건 좋은데, 왕자를 대체하는 캐릭터가 직접 '백마 탄 왕자 같은 게 말이 되냐?' 같은 느낌으로 말을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뉘앙스가 그랬습니다) 원작 각색하면서 셀프디스하는 일은 흔하긴 합니다만, 이건 조금 보기 그랬습니다. 영화 본 뒤에 찾아보니 주연배우의 원작 폄하 발언도 있었더군요.

한국어 더빙의 경우 디즈니코리아가 입 모양 맞추는 노하우가 조금 떨어졌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왕의 노래에서 카리스마가 부족한 느낌이고요.

비주얼적인 면도 나쁘진 않았지만, 알라딘처럼 '재관람할 정도로' 눈을 사로잡진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 재관람한다면 영어버전이 궁금해서일 것 같네요. 보석이 나오는 장면은 예뻤는데, 만약 특별관에서 봤으면 더 인상적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았던 점, 인상적인 점으로 마무리하자면
여왕의 카리스마는 과장 보태 스릴러 수준으로 뛰어났습니다. 각성하기 전 공주는 완전히 압도당했고, 보던 저도 같이 압도당했습니다. 각성한 후의 마지막 담판에서도 여왕의 뒤틀린 신념과 대담함이 빛났지요. 탐욕을 상징하는 보석 장식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어요.

백설공주는 다른 디즈니 프린세스 실사영화 공주들과 달리(?) 백성의 지지를 받고 활용하는데, 아버지의 후광으로 폭압에 맞서는 시민의 희망이 된 여성이란 점에서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도 살짝 떠오르더라고요. 반정(反正)의 전개는 Speechless와 비교되어 곱씹을수록 치밀해서, 백설공주가 아니라 혁명가 백설이라 불러도 될 것 같네요. 좋았습니다.

옆 나라 왕자에서 반란군 겸 도적이 된 캐릭터도 괜찮은 재해석이었어요. 자애롭지만 격리되어 살아와 순진하고 이상주의적인 공주와, 살기 위해 도둑질하며 완전 염세적으로 된 도적의 조합은 훌륭한 로맨스 감이지요. 폭군 여왕을 몰아내는 스토리라인에도 어울리고요.

백설이란 이름의 유래를 눈보라로 설정하면서, 눈보라가 긍정적인 상징으로 묘사됩니다. 배우 피부색 때문에 그런 거라곤 하는데, 제가 문화 매체에서 눈보라를 긍정적으로 활용한 건 러시아 동장군 외엔 처음 보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극장에서 볼만했습니다. 영화에 좀 더 화려한 볼거리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주연배우가 쓸데없는 소리를 안 했다면 재관람도 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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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9 18:3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25/03/19 19:4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5/03/19 18:45
수정 아이콘
평론가들이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전사라도 하라고 해서 어떤 내용인가 싶었는데....
25/03/19 19:27
수정 아이콘
백설공주와 그 부모(선왕과 왕비)가 굶주린 백성이 없도록 식량을 나눠주고, 직접적으로도 '나눔'을 강조하긴 했습니다. 우파적인 관점에선 그런 게 사회주의적인 걸로 보일 순 있겠네요. 작중에서 여왕-마녀-계모의 경비병이 억압의 상징으로 묘사되는데, 경비병이 현대로 치면 경찰 겸 군대란 걸 감안하면 미국 리버럴에 비판적인 평론가들이 돌려까기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백설공주의 반정은 아동영화 선에서는 가장 정교한 축에 들 것 같습니다. 작전회의 장면도 없고 여왕의 카리스마가 원체 강렬해서 보면서는 인식하기 어려운데, 다 끝나고 복기해보면 평범한 할리우드 영화의 피상적인 민중혁명 묘사보다 훨씬 예리하고 교묘하더라고요. 물론 아동영화의 한계는 있지만요.
Blooming
25/03/19 18:48
수정 아이콘
시나리오는 괜찮은 모양이네요. 주연배우가 어그로만 안 끌었어도 상황이 나았을지도.
25/03/19 19:44
수정 아이콘
주연배우의 발언은 영화를 잘 본 저도 눈쌀 찌푸리게 하더라고요. 오래된 작품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부 장면을 셀프디스하는 정도는 종종 있지만, 이야기 자체를 디스해버리면 왜 리메이크작에 출연했냐는 의문이 바로 나오니까요.
신성로마제국
25/03/19 18:53
수정 아이콘
제가 알라딘을 보면서 자스민 서사에 대해 느낀 어색한 점이 딱 저거였습니다.
아예 왕정 갈아엎고 민주정 하자는 거면 모를까, 결국 화폐개녀도 없으면서 혈통빨로 왕위 계승하고 싶다는 공주님 징징으로 보여서요.
25/03/19 19:35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군주정 체제에서 남녀평등도 당위는 있지만 (유럽 왕정들이 살리카법에서 절대적 맏이 상속으로 바꾼 이유기도 하고) 사람들에겐 그냥 여성 지도자가 아니라 능력 있는 여성 지도자가 필요한 법인데, 작중의 자스민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묘사가 되니까요. 자파와 국가행정으로 논쟁하는 장면까진 필요없겠지만, 적어도 화폐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굳이 넣은 건 제작진을 탓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라이징패스트볼
25/03/19 19:13
수정 아이콘
어차피 원작 애니매이션의 서사나 캐릭터를 따라갈게 아니었다면 차라리 디자인도 과감하게 바꿨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라틴계 배우 섭외해놓고 굳이 원작이랑 비슷한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씌울게 아니라, 아예 원작 느낌을 지우는 방향으로 가는게 반발감이 더 적었을 것 같아요. 근데 또 그런 시도를 해서 평가가 별로였던게 인어공주일수도 있겠네요.
25/03/19 19:42
수정 아이콘
사실 전 라틴계나 독일계(아리안인? 게르만족?)이나 그냥 똑같은 백인으로 보는, 인종에 둔감한 타입이라 아무 위화감 없이 보긴 했습니다만 라틴계 캐스팅으로 말이 많더라고요. 말씀대로 하는 것도 방법이 되었을 수 있었겠지만, 하필 흥행에 실패한 인어공주가 그런 유형이라 제작진 입장에선 모험으로 느꼈을 것 같네요.
25/03/19 19:49
수정 아이콘
(수정됨) 동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자파가 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인물로 보였습니다.

아니, 지니의 힘을 손에 얻었는데도 세계를 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타고난 신분제의 한계만을 뚫으면서 정신 술탄이 되게 해달라 요구했으니까요. 최강의 마법사가 되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사실 자스민의 설득에 정신 차린 경비병들을 제압하기 위해 최강의 마법사가 되기를 요구했던 것이고...... 크크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만 요구하고 나머지는 내가 개척하겠다!'란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싶더군요.

솔직히 자스민이 한 건 어....... 이렇게 말하긴 뭐한데 혈통빨 믿고 노래 하나 부른 다음 수비대장에게 '해줘' 한 것밖에 없지 않나......(...)
25/03/19 20:00
수정 아이콘
실사영화의 자파는 외국의 도둑 출신으로 재상까지 출세한 입지전적인 캐릭터죠. 악역이지만요. 자스민이 한 걸 냉정하게 보면 말씀대로기도 하고요. (불쌍한 나오미 스콧)

전 자파 좋아합니다. 2인자 캐릭터 특유의 짠한 매력에, 배우 마르완 켄자리도 연기 잘 했고, (더빙판 기준으로) 목소리도 좋았습니다. 실사영화에서 자파 노래가 사라진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25/03/19 20:09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원작 더빙판 다 봤는데 둘 다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크크.
자파가 매력적으로 묘사된 것에 비해 자스민과 알라딘이 너무 아쉽지 않았나 싶더라구요. 좀 더 진취적이고 멋지게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아쉬운 부분을 윌 스미스가 연기로 커버했던 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윌 스미스밖에 안 보이더라구요.
하이퍼나이프
25/03/19 20:39
수정 아이콘
저도 영화판 쟈스민에 대해 정확히 동의합니다. 화폐제도 하나도 이해 못할만큼 쥐뿔 능력도 없으면서 왕은 되고싶고, 백성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나 자신이라는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있고, 본인 능력부족은 객관화 못하고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유리천장 탓만 하고,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비장한 노래 열창 뒤에 기껏 한다는건 경비대장에게 '쟈파 잡아줘' 라고 명령내리는게 본인 최대치였던.
이게 수동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졌 디즈니 공주를 현대적 페미니즘 관점에 맞게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인물로 재해석한 결과가 맞나 싶을 정도로 허술한 설정이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개봉 당시에 그런 내용으로 논쟁이 좀 붙었는데요, 쟈스민의 능력부족을 지적하니 '백성을 사랑하니까 지금부터 잘 배워 나가서 훌륭한 왕이 되겠죠' 정도의 답변이 돌아왔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메인은 백설공주 이야기인데 쟈스민 이야기가 흥하네요
25/03/19 20:56
수정 아이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됬네요. 아무래도 약스포에 맞춰 조금만 이야기했다보니..
강스포일러를 쓰고 백설공주 이야기를 많이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LuckyVicky
+ 25/03/19 23:54
수정 아이콘
볼 생각이 없었는데 보고 싶어지는데요;;;
+ 25/03/20 00:11
수정 아이콘
백설의 캐릭터가 스토리와 잘 맞물렸다면, 배우 논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적어도 거슬릴정도는 아니었다 정도인지, 더 적절한 배우였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박보영에게 매드맥스2 주연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번 백설공주와 저번 인어공주는 도저히 몰입이 안됩니다.

영화내 설정은 별개로 쟈스민은 좋은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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