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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9/10 08:11:59
Name Fig.1
Link #1 www.fig1.kr/history
Subject [일반] [역사] 천 원짜리가 다 씹어먹던 카메라의 역사
- 오랜만입니다. 날이 선선해지면 다시 글을 써야지 마음먹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습하고 덥네요. 한 주 더 쉴걸 그랬나 봅니다.
- 여름동안 쉬면서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쉰다고 해서 더 뚜렷한 생각이 나진 않는다. 둘째, 마감이 없으니까 글이 마무리가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쉬는 동안 한 게 없습니다. 앞으로도 기존과 비슷한 주제, 비슷한 글을 계속 쓸 예정입니다.
- 오늘 준비한 글은 카메라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사진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보면 과거와 얼마나 다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초창기 사진은 주로 상류층들만 찍을 수 있었고, 찍을 때도 오랜 시간 공들여 찍어야 했기에 고이고이 간직했습니다. 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 순간순간 찍기 때문에 찍었는지도 모르는 사진들이 스마트폰 속에 수백 장씩 있죠.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발전 덕분입니다.

*이 글은 한국기계산업진흥회에서 발행하는 KOAMI Insight 매거진에 기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Fig.1 그림에 소질이 없던 천재가 만든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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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시작은 1839년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가 개발한 다게레오타입 카메라입니다.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는 최초의 카메라로서 발표되자마자 큰 이목을 끌었고, 프랑스 정부에서는 다게르에게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와 6천 프랑의 국가 연금을 수여했습니다.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는 19세기 중반 내내 카메라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죠. 

다게레오타입이란 촬영부터 현상까지의 사진술을 의미하는 데요. 다게레오 타입의 프로세스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은판을 요오드 증기에 노출시킨다.
- 이 판을 사진기 안에 넣은 뒤, 렌즈를 통해 빛을 쏘인다.
- 상이 맺힌판을 빼내어 수은 증기에 쬐어 현상시킨다.
- 현상 작업이 끝나고 묽은 티오황산나트륨 용액 또는 뜨거운 포화 소금 용액으로 건판을 씻어낸다.
- 염화금 용액을 들이붓고 불꽃 위에서 건판을 살짝 가열한다.
- 건판을 헹구고 말린다.
- 변색을 막기 위해 건판을 유리로 덮은 뒤 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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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다게레오타입 카메라가 최초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진기 발명가 윌리엄 헨리 폭스 탤벗William Henry Fox Talbot 이 있기 때문이죠. 탤벗은 뛰어난 수학자이자 쐐기문자를 해독한 학자였고, 국회의원으로서도 활동했는데요. 단 하나 재능이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미술이었습니다. 그의 저서에는 자신의 연필 스케치를 보고 “보기만 해도 우울하다”고 쓰기도 했을 정도였죠. 1834년부터 탤벗은 풍경을 담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네거티브 필름과 함께 카메라 ‘마우스 트랩’을 발명합니다. 그리고 계속된 실험과 개선 작업 중에 1839년 다게르의 카메라가 등장한 것이었죠. 이후 1841년 탤벗은 다게레오타입 사진술에 맞서 캘러타입 사진술을 발명합니다. 캘러타입 사진술은 네거티브 필름으로 제작되어 하나의 사진이 여러장으로 복제가 가능했습니다. 



Fig.2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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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카메라는 거대했기 때문에 주로 스튜디오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주로 귀족들의 초상화 사진에 이용되었습니다. 이를 극복한 최초의 휴대용 카메라는 1853년 토마스 오트웰Thomas Ottewell 에 의해 탄생합니다. 카메라의 나무 몸체에 경첩을 달아 접을 수 있게 만든 것이었죠. 이후 렌즈와 감광판 사이를 목재가 아닌 천으로 된 주름을 사용해 접을 수 있는 카메라가 등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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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카메라의 등장은 자연스럽게 풍경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들은 40~50mm 화각만을 가지고 있어 한정된 화면만 담을 수 있었죠. 더 많은 풍경을 담고자 하는 열망으로 1860년 토마스 서튼Thomas Sutton 이 광각 렌즈를 단 카메라를 만들어 냅니다.



Fig.3 1달러 카메라로 사진을 대중화 시킨 코닥

카메라의 꾸준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1870년대까지 사진 찍는 과정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사진을 찍기 직전에 화학 재료를 섞어서 감광 물질을 만들고 이를 은판이나 구리판에 발라 감광판을 만들어야 했죠. 촬영 후에는 곧바로 현상과 인화를 위한 화학 처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화학 약품과 도구, 그리고 암실이 갖추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찍은 사진을 ‘습판사진’이라고 하죠.

1871년, 번거롭고 촬영 후 바로 현상과 인화를 해야하는 습판 사진의 단점을 해결한 건판사진이 등장합니다. 건판사진은 감광 물질이 미리 발라진 감광판을 이용하고, 촬영 후 바로 현상과 인화를 하지 않아도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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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가였던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 은 건판사진의 가능성을 직감하고 1881년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가 바로 코닥Kodak 입니다. 처음에 코닥은 유리판에 감광제를 바른 건판을 판매했지만, 1885년 건판보다 얇고 다루기 편한 셀룰로이드 필름을 개발해 롤 필름을 만듭니다. 1888년에는 롤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를 제작하죠. 이 코닥 카메라는 100장짜리 필름이 내장되어 있었는데, 다 찍은 카메라를 10달러와 함께 코닥으로 보내면, 필름을 현상하고 새 필름을 넣어 다시 보내주었습니다. 사진가는 이제 촬영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었죠. 코닥은 이를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광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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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닥 카메라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기에는 비쌌습니다. 당시 코닥 카메라 가격인 25달러는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약 500달러였죠. 이에 코닥은 1900년 1달러 카메라 브라우니Brownie 를 출시합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에는 필름을 판매하기 위한 코닥의 계산이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브라우니 카메라는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셔터 속도와 조리개가 각각 3단계로 조절되었습니다. 브라우니는 가성비로 큰 인기를 끌었고, 1986년에 단종되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대가 팔렸죠.



Fig.4 카메라 본체에 렌즈가 하나만 있는 이유

옛날 필름 카메라는 렌즈가 2개 달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렌즈는 사진가가 피사체를 보기 위함이고, 다른 렌즈는 노출을 위한 것이죠. 이를 TLRTwin-Lens Reflex 이라고 합니다. TLR은 실제로 찍히는 것과 보는 것이 다르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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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 렌즈만 가지고 있는 것을 SLRSingle-Lens Reflex 라고 하는데요. SLR은 내부에 거울이 있어 피사체를 확인할 때는 거울이 내려와 확인하고, 촬영할 때는 거울이 접혀 올라가 하나의 렌즈로 해결한 것으로, 1861년 토마스 서튼Thomas Sutton 에 의해 발명되었죠. 하지만 SLR 카메라는 반사 거울이 움직일 때 진동이 크게 발생하거나 고장이 잘 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한 SLR이 1905년에 등장한 소호 리플렉스Soho Reflex 입니다. 소호 리플렉스는 특허를 낸 자체 매커니즘을 통해 반사 거울의 진동과 고장을 크게 줄였고, SLR 카메라가 주류가 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Fig.5 에디슨이 만든 표준 필름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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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까지 카메라 회사마다 필름 사이즈는 제각각이었는데요. 이를 통일한 첫 번째 규격은 에디슨이 제시한 35mm였습니다. 에디슨은 코닥에서 만든 셀룰로이드 롤 필름을 보고 영사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데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필름 크기를 찾은 것이 가로 1인치, 세로 3/4인치 였습니다. 여기에 필름 양쪽에 톱니바퀴용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공간을 추가하여 최종적으로 필름 폭을 1 3/8인치로 결정했는데 이 크기를 환산하면 34.925mm입니다.

에디슨의 영사기는 한 번에 한 사람만 볼 수 있어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영상의 인기는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큰 스크린으로 화면을 비춰줄 수 있는 영사기를 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뤼미에르 형제가 채택한 필름의 폭도 35mm였기에 35mm 필름이 널리 확산되었죠.



Fig.6 라이카가 유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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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 시네마의 35mm 필름을 스틸 카메라로 들여온 최초의 카메라를 라이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35mm 스틸 카메라의 특허는 라이카가 등장하기 전인 1908년에 이미 있었고, 라이카는 품질 좋은 35mm 카메라를 개발해 대중화한 것입니다. 

라이카의 시작은 오스카 바르낙Oscar Barnak 의 35mm 시네 필름을 가지고 사진을 찍은 후에 크게 확대하여 인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됩니다. 바르낙은 원래 칼 자이스Carl Zeiss 사의 직원이었는데 자이스사가 그의 아이디어를 채택하지 않자, 라이츠 사로 이직합니다. 그리고 1913년 라이츠에서 만들어진 바르낙의 카메라는 ‘라이츠가 만든 카메라’라는 뜻으로 라이카라고 이름 붙게 되죠. 

앞서 말한 것처럼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는 이미 있었지만, 라이카는 기존 35mm 카메라보다 2배 큰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 화질이 뛰어났고, 작고 가벼웠으며 오늘날 카메라와 유사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출시 직후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1931년부터는 렌즈를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인기를 끌었죠. 라이카의 성공으로 다양한 35mm 카메라가 등장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콘탁과 캐논입니다. 



Fig.7 코닥이 버린 디지털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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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빛을 전기적 신호로 전환하는 기능을 가진 반도체 소자인 CCDCharge-Coupled Device 가 개발되었습니다. 이 CCD를 활용해 1975년 코닥의 연구원 스티브 세손Steve Sasson 이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죠. 첫 디지털 카메라였던 만큼 한계도 명확했는데, 필름 카메라에 비해 너무 큰 무게와 크기, 떨어지는 화소, 그리고 사진 한 장을 기록하는 데 23초나 걸렸습니다. 게다가 카메라에 별도의 화면이 없어서 결과물을 확인하려면 TV에 연결해야 했죠. 이러한 단점들과 필름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던 코닥이었기에, 디지털 카메라를 좋게 보기 힘들었던 코닥 임원진은 디지털 카메라 연구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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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서 손을 떼면서, 최초의 상업용 디지털 카메라의 영광은 1981년 소니의 마비카Mavica 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마비카라는 이름은 마그네틱 비디오 카메라에서 유래했는데, 외형은 당시 필름 카메라와 흡사했고, 27만 화소(570×490)의 해상도를 지원하는 CCD를 탑재해 마비팩Mavipak 이라 불리는 2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사진을 저장했습니다. 이 마비카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통해 유명해지게 되었는데, 마비카를 사용한 사진 기자들은 현상이 필요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진 기자들에 비해 빠르게 신문사에 사진을 전달하면서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죠.



Fig.8 다시 돌아온 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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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카의 등장 이후 여러 카메라 회사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합니다. 초기 디지털 카메라를 포기했던 코닥도 다시 디지털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죠. 코닥은 1987년 카메라에 부착해 필름 대신 디지털로 이미지를 저장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인 M1을 생산합니다. 1989년까지 주로 니콘의 SLR 카메라 F3에 결합해 군 또는 정부의 감시 목적의 카메라로 납품했죠. 이를 “카메라를 바꾸지 말고 새로운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반 시장에도 출시한 것이 1991년에 출시된 모델 DCS100이었습니다.

DCS100은 1.3메가 픽셀 CCD(1024x1280)를 가지고 있었지만, 배터리와 이미지 저장 장치를 담을 가방을 휴대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가격은 3만 달러였죠. 결국 2002년 말까지 큰 이익을 내지 못하고 코닥의 전문가용 카메라 사업은 종료됩니다.



Fig.9 2010년, 디지털 카메라의 화양연화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 DSLR의 부진에도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된 것은 ‘컴팩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부터 입니다. 컴팩트 카메라는 이미지 센서 크기를 줄여 품질은 필름 카메라보다 떨어지지만, 휴대성을 높인 것이었죠. 휴대성을 앞세워 인기를 끈 디지털 카메라는 호황을 누리며 필름 카메라의 점유율을 금세 추월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정점을 찍고 추락합니다. 전 세계 디지털카메라 출하량은 2010년 1억 2150만 대에서 2013년 6280만 대로 절반 가까이 떨어지고, 2021년에는 836만 대까지 떨어졌죠. 이는 폰카의 발전으로 인한 일이었습니다.



Fig.10 휴대폰 카메라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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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카메라를 탑재한 휴대전화는 1995년 일본 교세라가 출시한 VP-210입니다. VP-210은 화상 통화용으로 11만 화소의 전면 카메라를 탑재했습니다. 물론 1995년에 화상 통화 핸드폰이 잘되었을 리는 없겠죠?

VP-210 출시 이후, 카메라 기능이 추가된 휴대전화가 줄지어 등장합니다. 하지만 초창기 휴대전화에 탑재된 카메라 센서는 당시 저렴하고 전력 소비율은 낮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CMOS 센서를 사용했고, 10~30만 화소 대의 성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디지털 카메라가 200만 화소 대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성능은 한참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카메라폰이 인기를 얻자 휴대전화 제조사는 디지털 카메라에 쓰이는 CCD 센서를 사용한 카메라폰을 개발하며 200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카메라 성능을 거의 따라잡게 됩니다. 이는 곧 디지털 카메라의 하락을 의미했죠.

하지만 카메라폰의 사진 품질 향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휴대전화에 들어갈 수 있는 이미지 센서 사이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근 스마트폰에서는 이미지 센서가 받아들인 신호를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를 통해 고품질로 변환하여 사진 품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Reference.
- 마이클 프리차드. (2019). 50 CAMERAS: 카메라에 담긴 사진의 역사. 페이퍼스토리.
- 서동민. (2024). 추억을 기록하는 카메라의 역사. 웹진 거북이. URL : https://kgukubooki.cafe24.com/series/?mod=document&uid=1023
- 이경민. (2011). [테마특집ㅣ디지털카메라] 1.디카의 탄생_사진기의 역사. URL : http://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6036
- 이용욱. (2023). [카메라] 2.1 라이카 이전의 카메라. 브런치. URL : https://brunch.co.kr/@yongwookle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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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룩
24/09/10 08: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펜탁스의 펜타프리즘 개발로 카메라 시장이 완전 뒤바뀐게 카메라 역사에서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그 내용이 없는게 아쉽네요
그리고 요즘은 폰카가 워낙 좋아져서 전통적인(?) 카메라들이 많이 사라진게 참 슬픕니다
예전에는 다들 카메라를 쓰다보니 저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데 별 부담이 없었는데
요즘은 폰카로 찍어서 카메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까 카메라 들고다니는게 혼자 튀어보여서 좀 부담스럽더라구요 ㅠㅠ
파르셀
24/09/10 09:11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코닥이 노키아 선배였는데 그래도 코닥은 중간에 한번 컴백했다는게 재미있네요
20231003
24/09/10 09:21
수정 아이콘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혹시 홈페이지 RSS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최근 텔레그램 봇을 추가했는데 이용해보고 싶어지네요
서린언니
24/09/10 10:18
수정 아이콘
제 첫 디카가 코닥의 DC-3400이었습니다. 그거 사고 디씨에 글을 썼던 기억이
율리우스 카이사르
+ 24/09/10 16:3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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