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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1/12 01:55:54 |
Name |
sylent |
Subject |
황제, 천재를 만나다. |
<황제, 천재를 만나다>
꿈은 이루어진다
전세계 스타 크래프트 매니아들의 눈이 잠실을 향하고 있습니다. 내일(2004년 1월 13일) 저녁,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와 '천재 테란' 이윤열 선수의 'KT-KTF 프리미어리그 월드 챔피언쉽'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임요환 vs 홍진호'를 제외한 어떤 결승보다 흥행할 것이라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이상일 것이라도 예상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기다려왔던 '꿈의 대결'이라는데는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상대 전적은 12 : 12. 정규리그 결승전에서 만난건 iTV 랭킹전 3rd 한번 뿐이며 그 경기에서는 이윤열 선수가 3 : 1로 임요환 선수를 꺾었습니다. 임요환 선수에게는 '우승'을 건 복수전인 셈입니다. 이번 'KT-KTF 프리미어리그 월드 챔피언쉽'은 박빙의 승부를 펼쳐왔던 슈퍼스타들의 중요한 일전이기에 많은 게임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가 치루는 이번 결승은 '임요환 vs 이윤열'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푸른눈의 마법사 기욤 패트리
스타 크래프트의 역사를 뒤틀어 버린 세명의 플레이어가 있으니 기욤 패트리 선수, 임요환 선수 그리고 이윤열 선수가 그 주인공 입니다. 스타 크래프트 초창기에 활동했던 선수들의 화두는 '지금 이순간 갖출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병력 구성'이었습니다. 오차가 허용되지 않는 빌드 오더와 끊임없는 유닛 생산 그리고 대규모 접전. 한 번 혹은 두 번의 전투에서 패하면 전세가 기우는 집중력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pure 저그 유저가 우승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당시의 많은 게이머들이 저그를 선호했던 이유도 전투가 거듭될수록 진가가 발휘되는 저그의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빌드 오더에 충실했던 국내 게이머들이 처음 만난 벽이 바로 Grrr, 기욤 패트리 선수입니다. 기욤 선수는 빌드 오더보다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마인드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 나갔습니다. '게임을 하는 모든 타이밍에 강할 수는 없다'라는 전제 하에 자원이 많이 필요한 작전을 구사할 때엔 적은 수의 병력으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펼치고, 상대와의 병력 수에서 차이를 최소화해야 가능한 작전일 경우에는 생산과 전투에 집중하는 플레이를 보여 주었습니다. 당시 이런 전략가적인 면모는 기욤 선수를 '역전승의 대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욤 선수의 플레이를 꼼꼼히 되짚어보면 '역전 아닌 역전'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워크래프트3 처럼 큰 교전 한 번에 승부의 대부분이 결정되던 경기들은 좀처럼 역전이 나오기 힘들었지만, 기욤 선수가 보여준 경기 초반의 '작전상 후퇴'는 의도된 불리함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역전승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욤 선수에게서 영향을 받은 많은 게이머들이 맹목적인 빌드 오더들을 버리고 나름의 전략과 전술을 들고 나오면서 스타 크래프트 경기들은 한 단계 발전하게 됩니다. 전성기의 기욤 선수가 '무적'은 아니었습니다만, 올드 팬들에게 '마법사'로 기억되는 이유도 변칙적인 전략들을 끝없이 선보이며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last 1.07'을 기억하라
2001년 프로 게임계는 단 한명의 테란 유저로 인해 들썩이게 됩니다. '드랍쉽의 달인'이자 끝내 '테란의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 임요환 선수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1.07 당시 테란의 암울함이란 지금의 저그, 프로토스와 견주기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러커에 찢겨나가는 마린들과 드래군에 터져나가는 벌쳐는 테란을 '재미로 하는 종족'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요. 모든 게이머들이 종족간 밸러스의 문제를 제기하던 당시였지만, 임요환 선수는 '한빛 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연달아 석권하면서 테란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천명합니다.
1.07 버전 당시, 임요환 선수가 테란으로 프로 게임계를 평정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전략'에 '컨트롤'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기욤 선수가 다른 선수들보다 한 단계 앞서 전략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면, 임요환 선수는 그런 전략과 함께 두 단계 앞선 마이크로 컨트롤을 선보였습니다. 임요환 선수의 환상적인 컨트롤로 마린이 러커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적절한 건물의 위치로 탱크에 달려드는 질럿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종횡무진 맵을 휘젓는 드랍쉽을 통해 상대의 멀티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의 프로 게임계가 '저그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1세대 프로 게이머들의 플레이 스타일에는 저그가 가장 알맞았기에 많은 선수들이 저그를 주종족으로 플레이 했습니다만, 대 저그전에 특히 강한 임요환 선수 앞에서 줄줄이 패배하게 됩니다. (임요환 선수의 상대전적을 살펴보면 대 저그전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러커와 마린의 일기토'는 임요환 선수의 완성됨을 증명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한빛 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끝날 때쯤 게임 팬들은 궁금해하기 시작합니다. '기욤 패트리와 임요환 중 누가 더 강할까?'. 이런 게임 팬들의 염원을 담아 1.07 버전의 마지막 대결이 펼쳐지게 되는데, 다름 아닌 '온게임넷 last 1.07'입니다. 결과는 임요환 선수의 3:0 완승. 스타 크래프트의 2세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괴수 출현!
스타 크래프트의 2세대는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와 '폭풍 저그' 홍진호 선수의 라이벌 관계 속에서 가을을 책임진 '농부 질럿' 김동수 선수, '프로토스의 영웅' 박정석 선수, 월드컵을 원망하고 있을 '불꽃 테란' 변길섭 선수등의 득세 속에서 나날이 커져 갑니다. 이 선수들의 현란한 컨트롤은 프로 게임계에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프로 게임계에 걸출한 신인의 등장을 바라던 게임 팬들에게 반가운 소문이 들려옵니다. '앞마당을 먹으면 지지 않는 테란 유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를 '토네이도'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천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천재 테란' 이윤열 선수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윤열 선수는 전략과 컨트롤에 '물량'을 더했습니다. 임요환 선수는 여전히 멋진 경기들을 보여주었지만. 생산력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김동수 선수와 박정석 선수에게 가을을 넘겨 주어야 했습니다. 뛰어난 재기와 발군의 컨트롤에 엄청난 생산력을 함께 겸비한 이윤열 선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프로 게임계를 평정합니다. 이윤열 선수의 기세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를 위협하는 많은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그를 뛰어넘는 플레이어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3세대가 시작되는가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은 이윤열 선수에게도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상을 차지한 시기가 늦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임요환 선수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룬 다음이었습니다. 많은 게임 팬들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선수로 이윤열 선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지만, 기량이 아닌, 프로 게이머로서의 최고의 플레이어는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를 떠올립니다. 이윤열 선수는 임요환 선수를 뛰어넘고 싶습니다. 임요환 선수를 꺽고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KT-KTF 프리미어리그 월드 챔피언쉽'은 '스타 크래프트 3세대를 여는 열쇠를 손에 쥐기 위한 일전'이기에 이윤열 선수에게는 어떤 결승전 보다도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임요환 선수가 기욤 선수를 꺽고 게임 팬들에게 '임요환'을 각인 시켜주었던 것 처럼, 이윤열 선수는 임요환 선수를 꺽은 다음에야 소리칠 수 있습니다. "의심하지 말라! 이윤열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황제, 천재를 만나다
이번 'KT-KTF 프리미어리그 월드 챔피언쉽'에서 만약 임요환 선수가 승리한다면 임요환 선수는 최고의 위치에서 은퇴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라는 말을 몸소 증명하는 셈이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나위 할 것 없이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임요환 선수는 스타 크래프트 역사의 영원한 주인공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기 때문입니다.
임요환 선수의 입대가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윤열 선수에게 이번 경기는 임요환 선수를 제대로(!) 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두 선수가 올 가을이 되기 전 메이저 대회의 결승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윤열 선수가 이번 경기를 놓치고, 임요환 선수가 은퇴하게 된다면 이윤열 선수가 게이머로서 존재하는한 '임요환'이란 이름은 언제 어디서든 이윤열 선수의 발목을 잡게 될 것입니다.
스포츠의 근본은 '승부'입니다. 모두 다 열심히 했다고 격려 할 수는 있지만 모두 다 잘했다고 칭찬 할 수는 없습니다. 이기는 자가 있으면 지는 자가 있고, 웃는 자가 있으면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습니다. 운명의 여신이 어떤 선수에게 미소를 보일지, 남은 시간이 길게만 느껴집니다.
임요환 선수, 이윤열 선수 화이팅!
2004/01/12, sy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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