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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21 02:07:23
Name 바보왕
Subject [PC] 사이버펑크 2077 감상문 (1) (수정됨)
사이버펑크 2077 감상문


점수
60 / 100 (PC)
?? / 100 (PS4, PS5, XBOX One, XBOX Series)


개인 호감도 : 85%



RPG라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게임 갈래입니다. 서사와 역할 연기, 나아가서 이입이라는 꽤나 추상적인 주제를 게임에서 구현하려고 애쓰기 때문이지요.

그래픽, 사운드, 조작, 그림체(?) 같은 게 물론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으른 소를 우물까지 끌고 가는 코뚜레 역할일 뿐입니다. 코뚜레가 나빠도 목이 마른 소는 알아서 물을 찾아먹고, 코뚜레를 암만 튼튼하고 좋은 걸로 단들 소가 그럴 생각이 없으면 우물에 가서 물 떠먹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목마른 소가 되어야 하기에, RPG를 할 때는 플레이어도 다른 게임을 할 때보다 훨씬 무자비한 비판과, 동시에 너그러운 관용을 갖추고 열린 마음으로 게임을 대해야 합니다. 쉽게 되는 일은 아니죠. 효율적이지도 않고요.

그런데도 RPG는 인기 있는 게임 종류로 오랫동안 추종을 받았습니다. 정확히는 시야 투사형 RPG, 혹은 적어도 RPG의 기분이 나는 액션 게임이 나오길 다들 원했죠. 특히 스카이림 이후로 나왔던 비슷한 작품 두 편이 모두 불완전 연소 게임이었던 이후로는 더욱요. 위쳐 3는 걸작이었지만 게임의 모든 초점은 게롤트에게 있었지 플레이어에겐 없었고, 폴아웃 4는 게임이 갑갑할 뿐만 아니라 ‘모두가 바라는 매력’ 같은 게 빠졌습니다.

이건 짚고 넘어갑시다. 단순한 수작 RPG는 스카이림 이후로도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시리즈와 마이너 세계의 걸작 티러니가 나왔습니다. 웨이스트랜드가 침묵을 깨고 2를 낸데다, 엑스페디션 시리즈도 2탄이 나왔어요. 버그가 어쩌고 최적화가 어쩌고 하지만 RPG로는 분명 할 만은 했던 킹덤 컴 딜리버런스가 나왔고요.

무엇보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있었습니다.

우린 저런 훌륭한 게임이 나오는 걸 보고도 “RPG 액션”에 대한 갈증을 키워만 가고 있었습니다. 아니지. 어쩌면 RPG라고 나오는 것들이 모두 스카이림과는 디자인이 달랐기 때문에, 수작일수록 걸작일수록 일반 대중은 욕망에 목말라서 몸부림친 거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주인공인 걸로는 부족하다!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힘들이지 않고 느끼고 싶다!

그 모두를 충족시킬 화제의 게임으로서 우리 대중은, 플레이어는 사이버펑크 2077을 주목했습니다. 골때리는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골때리는 모험을 하는 무법자 용병의 디스토피아 연대기. 총과 칼, 기계와 섹스가 넘치는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

새로운 스카이림 만세.

그리고 여기 적을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다들 아시는 길고 꼬인 우여곡절 끝에, 사이버펑크 2077은 나왔습니다.

미완성인 채로요.

왜 그랬을까요? 답은 대충 나오죠. 돈이 없었고 시간이 없었습니다. 8년으로도 부족했다고? 예. 부족합니다. 더구나 대중이 요구하는 재미가 기대에 부풀어 있을수록, 제작자는 더 시간이 부족합니다. 왜냐면 한번 자기 노선을 탄 회사가 대중의 요구를 접했다고 해서 자기들이 만들려던 걸 버리진 않거든요. 더 집어넣고 더 채워넣다가 있는 것까지 말아먹는 한이 있어도 말이죠.

그게 창작자 생리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맞는데, 대중의 요구를 진지하게 수용할 사람은 애초에 자기 노선을 고집도 안 하죠. 더 길게 적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아니니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본론으로 들어가죠.

사이버펑크는 그럼 뭐가 문제이고, 뭐가 문제가 아닌 겁니까? 얼마만큼 미완성입니까?

그 모든 것을 감수해서라도 이 게임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1. 풀 보이스의 축복과 저주, 강력한 전달력과 한없이 가벼운 선택지

RPG의 질을 따질 때 자유도라는 표현을 자주 인용합니다. 어쩌면 저도 서너 번쯤은 언급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오래 전에 이미 CGW 포럼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유튜버 똘똘똘이가 언급했듯이 객관적인 완성도를 게임에선 논할 때 자유도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사실은 허상에 가깝습니다. ......아니, 그냥 거짓부렁입니다.

자유도가 말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이 물건이라서 그런 겁니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구현하면 그건 현실이지 게임이 아니란 거죠. 창작자가 특정 목적을 갖고 대단히 제한된 만큼의 경험만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해 철저히 편집한 매체가 게임인데, 여기서 틀의 바깥을 도로 요구한다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멀리 갈 것 없이 사이버펑크 안에서 대중이 소비하는 브레인댄스와 V가 활용하는 원본 BD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합시다.

그럼, RPG의 질은 어디에 있느냐? 정확히는 RPG가 무엇을 통해서 역할, ‘롤’을 놀이에 접목하는지가 중요한 질문이겠죠.

탐험, 사건, 선택.

RPG는 여기서 시작하고 이렇게 나아가서 이걸로 끝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겁니다. 플레이어는 한 인물 혹은 그룹을 대리하여, 어떤 영역을 탐험합니다. 세계여행을 할 수도 있고 던전 답파를 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그게 꼭 생각대로 안 되고 뭔가 틀어져서 사고가 난단 거죠. 그렇게 벌어진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그 인물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선택을 기피하고, 그 결과 세계는 멸망했다. 혹은 마왕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았다, 끝. 전개에 변주를 주는 게임도 요즘은 많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도식은 이렇습니다.

그래서 RPG는 배경의 그래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설득력이 중요합니다. 사건의 현실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건이 플레이어에게 끼치는 영향과 목표의 당위성이 중요하죠. 이 일을 왜 해야 하느냐? 왜 안 하고 무시하면 안 되느냐?

마지막으로 선택이 중요합니다. 모든 RPG는 자각하든 못하든 간에 플레이어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합니다. A를 할래, B를 할래? 대화 지문만이 아니에요. 행동을 하느냐 마느냐,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수단으로 했느냐, 심지어 어떤 동료로 파티를 구성했느냐 하는 데까지. RPG는 다르게 말하면 플레이어를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계속해서 밀어 넣는 게임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 선택의 과정이 재미있을수록 좋은 게임이 되고, 결과가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면 더 좋은 게임이 됩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서사와 선택이란 관점에서, 사이버펑크 2077을 보도록 합시다. 사이버펑크 2077 역시 대화가 중요한 서사 게임이고, 대화 지문을 통한 선택지를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흔한 RPG처럼요.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 게임이 철저하게 1인칭을 고집하는 와중에 모든 대화가 실시간으로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플레이어인 V도, 다른 등장인물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말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빠진 컷신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고, 말하는 사람을 따라가거나, 안 따라가거나 하는 사이에 모든 등장인물이 자기 할 말을 하는 거죠.

이런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강력한 전달력을 발휘합니다. 얼마나 강한지, 대부분의 경우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상황의 일부가 되어 컷신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으면서도 자각을 못할 정도지요. 전화가 와도 끊고, 주변 사람이 말을 걸고 시비를 걸어도 무시하면서, 눈앞의 화자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플레이를 스스로 하면서도 눈치를 못 챈다는 겁니다.

사실은 대화 도중에도 다른 사람의 전화를 받을 수 있고, 길을 가는 도중에 시비 거는 녀석은 아예 그 자체가 퀘스트의 일부라서 멈춰서고 주먹다짐을 해도 되는데 말이에요. 밀거래를 할 계획을 친구와 짜다가도, 원한다면 훌쩍 자리를 떠서 다른 쪽 거래를 하러 가도 되는 거고요.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뭐, 마지막 사례의 경우는 재키가 ‘쟤 저렇게 예절이 없었느냐’고 핀잔을 주니 미안해서라도 돌아오게 되지만요.

아무튼 이게 바로 서사의 힘, 그리고 서사를 게임 안으로 끌어온 기술의 힘입니다. (기획의 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경우, V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간 듯이 사건을 접하고, 지문을 고르도록 게임이 유도하고 있죠. 그 유도가 플레이어 입장에서 과연 만족스러우냐 아니냐는 취향 차이라 판단하기 조심스러울 따름입니다.

높은 게임 전달력은 곧 높은 사건, 사고의 전달력을 발휘합니다. 전달력이 곧 사건의 당위를 뜻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적어도 주관적인 입장에서 사건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혹은 사고가 무슨 상황으로 흘러갔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는 있죠. 따라서 사건이 갖는 당위와 목적의 필요성이 플레이어에게 더욱 크게 와 닿는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버펑크 2077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뭐였죠? 아, 시한부 인생이 되었으니 의사도 못 고치는 불치병을 고치려고 동분서주하는 거였죠. 그 와중에 아는 사람 뒤치다꺼리 해주면서 하루 연명할 돈, 한 번 더 자유로워질 명성을 얻고.

이거 확실해서 좋습니다. 세상이 다 뭡니까. 사는 게 제일이죠.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병 고치려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불만 있어요?

따라서 사이버펑크 2077의 서사 전달력은 사실 꽤 좋은 편, 아니 매우 좋은 편이라고 평해야 마땅합니다. “흡입력 있는 서사적 연출” 어쩌고를 강조하는 다른 게임보다 오히려 이 게임이 훨씬 흡입력이 뛰어나죠. 아니 내가 직접 여기 왔는데 그거보다 생생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막상 많은 플레이어가 사이버펑크 2077을 하면서 흡입력의 부재를 호소하죠.

유튜브를 가만 보면, 그중 반 정도는 정신의 사치에서 나오는 불만입니다. 위에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워낙 플레이에 몰입을 크게 해서 자기가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줄도 몰라요. 전화도 무시하고, 주변 깡패들 시비거는 것도 무시하고, 오직 눈앞의 퀘스트 당사자에게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게 몰입하곤 나중에 그런 적 없다고 하면 안 돼요.

그럼 나머지 절반은 무엇인가. 그것도 플레이어 탓인가? 아닙니다.

나머지 절반은 사이버펑크 2077의 단점에서 나옵니다. 사이버펑크에 정말로 없는 건, 전달력이 아니에요.

의미 있는 선택입니다.

사이버펑크 2077은 선택이 정말 ‘희미한’ 게임입니다. 아예 선택이랄 게 없어서 희미한 경우도 있고, 어떤 건 선택은 있지만 플레이어에게 선택의 존재를 절실하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플레이어 입장에서 희미하게 보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대화 지문에 선택지는 주는데, 그 결과란 게 대단히 얄팍하다는 겁니다. 많은 경우 선택지가 몇 개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선택지를 골라도 나중에 보면 크게 다른 게 없다는 겁니다.

의뢰 수행 중에 죽이면 안 되는 사람을 죽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테러 작전 중에 동료를 무시한 채 지정된 경로를 무시하는 대신 더 확실하고 안전한 경로를 타면 어떻게 되는가? 어려운 이웃에게 돈을 준 경우와, 반대로 금품을 갈취한 경우에 각각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감정에 휩쓸린 채 불투명한 사건을 속단하려는 친구를 부추기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고, 말리면 어떻게 되는가?

모두 사이버펑크 2077에서 실제로 나오는 선택의 순간들입니다. 하나같이 가벼운 상황은 아니죠. 그리고 각 선택이 가져올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길 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이버펑크 2077에서 각 상황에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진짜로 아무 것도 안 바뀝니다. 물론 시키는 대로 일을 안 하면 의뢰인이 구박을 하고, 자리를 무단이탈하면 동료가 화를 내고,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면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만 그뿐입니다. 일자리가 며칠이라도 끊기는 일도 없고, 내 독단으로 인해 다음 작전이 쉬워지거나, 반대로 회의 중에 동료가 불같이 화를 내는 일도 없습니다. 길거리 명성은 내 이웃에게 무엇을 주었느냐가 아니라 오직 아무 상관도 없는 깡패들을 몇 명 파묻었느냐에 달렸을 뿐이죠. 친구요? 아 그놈은 고집이 너무 세서 말려도 안듣고 부추겨도 안듣고...

...이게 사이버펑크 2077에 나오는 선택 상황의 대부분입니다. 개중에 정말, 정말로 치명적이어서 서사의 방향에까지 개입할 정도의 선택이어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선택의 순간이 주어집니다만, 그 정도는 용기전승 2도 하던 건데.

결국 선택으로 인해 과정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가 서사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재미는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기대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폴아웃 4하고 비교하면 일장일단 (높은 전달력, 얄팍한 결과)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고, 끽해야 데이어스 엑스, 바이오쇼크 같은 액션 게임보다는 서사 전달력 면에서 훨씬 뛰어나단 점 정도가 장점입니다.

(*주석 : 예. 바이오쇼크는 RPG가 아닙니다. 제작사는 그렇게 주장했지만요. 어딜 건방지게.)

그리고 이 부분에서 CDPR은 부끄러워해야 맞습니다. 워낙 1인칭 슈터로 손색이 없는 조작과 연출 덕분에 착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정작 CDPR은 사이버펑크 2077이 한 번도 1인칭 슈터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슈터가 아닌 RPG로서(RPG before Shooter)” 혹은 “이 게임은 RPG입니다. FPS 아닙니다!(Is not FPS, but RPG)” 하고 해마다 끊이지 않고 강조를 해왔단 말입니다.

그럼 슈터를 못해도 RPG는 잘 해야죠. 물론 하나는 잘 했지만, 다른 하나도 잘 해야죠. 그런데 지금 RPG라고 나온 게 슈터하고 서사 전달력 놓고 싸운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선택이 이렇게 의미가 없으면, 어떻게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이 돼요. 아무리 눈앞의 상황에 몰입을 해도, 돌아서면 내가 거기서 한 게 없단 느낌밖에 안 드는데. 나쁜 선택이 이렇게 해롭습니다. 하나의 단점을 넘어서 있던 장점까지 빛이 바래지게 해버리지요.


두 번째 문제는 주인공 캐릭터의 육성 문제입니다.

이거도 거기서 거긴가?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좋은 편이에요.

인물을 만드는 과정부터가 매우 좋습니다. 원래 전통적인 RPG(이하 "TRPG")에서 만들어진 체계를 쓰는 것이니 충분히 검증된 체계 아니냐 싶겠지만, 사실 TRPG와 컴퓨터 게임은 같은 경험을 절대 만들지 않거든요. TRPG에선 별 생각 없이 넘어가다가도, 컴퓨터로 가져오는 순간 어이없고 웃기는 상황의 단초가 되는 오류가 생기기도 합니다. 실제로 후술하겠지만 사이버펑크 2077에도 같은 실수가 나옵니다.

돌아가서, 레벨 1에서 최대 6까지 능력치를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사이버펑크의 인물 조형은 초반에 한해서 굉장히 다채로운 시작 상황을 만들어줍니다. 한 능력치에 3포인트를 줬다는 건 다른 능력치를 부실하게 찍고 있다는 얘기기 때문에, 더욱더 플레이어가 컨셉에 맞춘 플레이를 시험해볼 *이론적*(이 표현 중요합니다.)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배경 이야기도 셋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대단히 설득력 있는 프롤로그와 함께 V라는 인물을 조명합니다. 한 가지 웃기는 점이라면 배경 설명과 실제 프롤로그에서 그려진 V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인데, 일부러 만든 부조리로 보이니 그조차 뛰어난 점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캐릭터 레벨이 쌓이면 그동안 얻은 능력 포인트를 투자하여 캐릭터의 전문 능력을 입맛대로 조정할 수 있는데, 근본 컨셉이야 20년이나 변한 게 없으니 대단한 건 없습니다만 그 전문 능력의 구현 방법들이 다채로운 것이 좋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원거리 능력이라서 원거리 무기 강화” 이런 정도로 그치지 않고, 정말로 그 무기를 사용할 때 아쉬워할 부분을 찾아서 잘 파고들었어요.

펠릿이 흩어지는 샷건의 경우 팔다리에 주는 피해와 그로 인한 불구, 절단과 즉사 등을 노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최고로 멋있는 대신 제약도 가장 극심한 블레이드는 치명타 한 방에 사람이 죽는 동시에, 플레이어 체력까지 회복할 수 있도록 해서 방어능력 유무에 상관없이 플레이어가 저돌적으로 움직일 요인을 줍니다. 소총은 다른 무엇보다 탄착군과 반동 제어에 관한 능력을 아낌없이 줘서, 관련 능력을 찍고 카운터매스까지 무기에 달면 터미네이터 부럽지 않은 런앤건 머신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무기만이 아닙니다. 이 게임에서 마법을 대신하는 능력인 퀵핵과 침투 프로토콜에도 특성을 투자하여, 지속시간을 늘리고 침투 난이도를 낮추며 능력 자원의 회복 속도를 높이는 탄탄한 전문 능력을 주는데다, 냉혈이라는 특수 버프에 특성을 투자하여 지치지 않는 킬링 머신으로 플레이어를 꾸밀 수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상하시겠죠. 지금 이건 모두 장점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걸 문제라고 하는가?

대답은 이렇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 모르고 하시면, 이 좋은 게 다 그림의 떡 돼요.”


이 게임은 초반 난이도가 매우 높습니다. 난이도를 쉬움보다 높이 설정할 경우, 난이도 설정에 상관없이 적들은 대단히 느리게 죽습니다. 체력이 너무 많아서 총알을 한 바가지씩 갖다 던져야 된단 겁니다. 반대로 적이 플레이어에게 주는 피해는 절대로 정면 싸움에서 승산이 없을 정도입니다. 더구나 실력을 발휘해서 헤드샷을 맞춰도 적이 받는 피해는 너무나도 미미합니다.

아니 뭐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현실은 대부분) 숫자가 전부인 RPG인데 달리 뭘 기대하겠습니까. 말씀드렸습니다만, CDPR이 생각하는 사이버펑크 2077은 RPG입니다. 절대로 1인칭 슈터가 아니에요.

그게 말이 되냐고요? 당연히 말이 되죠! 바보왕은 언제나 말이 되는 소리만 하거든요.

적은 죽지 않는데 플레이어는 너무나 쉽게 죽는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다들 경험으로 알고 계시겠지요. 자연스럽게 플레이가 위축됩니다. 엄폐물 뒤에 숨어서 손에 잡히는 총을 갖고 있는 총알만큼 쏘기. 어지간히 컨셉에 미친 또라이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이런 소극적인 플레이를 억지로 선택한다는 겁니다.

자연히 레벨이 올라도, 지금 당장 급한 능력에 투자해서 최대한의 효율을 내는 것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레벨이 오르고 나면 이미 총과 ‘빠른 살인’에만 특화된 아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캐릭터가 완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뒤늦게 컨셉을 찾아보려 한들 이미 투자한 능력과 어울리지 못하니 한 번 투자한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을 더욱 고집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렇게 레벨을 올려서 적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시점이 되면, 그제야 자신의 캐릭터가 너무 밋밋하다는 것에 불만을 갖기 시작합니다. 총의 특성을 다양하게 겪어보지 않았으니 이게 그거 같고 그거는 이거 같고. 칼이 뭐가 좋고 야구 방망이는 또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에라, 총이나 쏘자. 심심하네.

이것이 사이버펑크 2077의 다양한 특성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과정입니다. 캐릭터 육성의 선택은 공염불이 되고 많은 플레이어가 다 거기서 거기인 핸드건 마스터 라이플 마스터 헤드샷 킬러가 됩니다.

선택이 있고, 결과가 있으면,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도 플레이어가 좀 더 재미있게,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야 맞았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는 여기서 크게 실수했죠.




그리고 이건 선택의 문제 못지 않게, 난이도와 밸런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이버펑크의 탐험 요소를 감상하기 앞서, 다음 편에서 사이버펑크 2077의 이 난이도와 밸런싱 문제를 한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을 기대...까진 하지 말고 적당히만 기다려주세요.



기대하시면 싸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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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왕
20/12/21 02:09
수정 아이콘
쓰고나니 풀보이스 문제가 빠져 있네요. 다음편에 핫픽스를 첨부하겠습니다.
겨울삼각형
20/12/21 02:24
수정 아이콘
케릭육성부분.. 처음 스텟 배분할때 최대 6까지밖에 못줍니다.
바보왕
20/12/21 02:31
수정 아이콘
긴급 수정했습니다.
사과의 의미로 5,000쥬얼에 버금가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이웃집개발자
20/12/21 02:40
수정 아이콘
우왕 재밌어욧!!
manymaster
20/12/21 05:21
수정 아이콘
싸펑 유저는 아닙니다만...

그러니까 유튜브의 흡입력 부족 호소는 몰입이 쉽기는 하나 선택을 통해 무엇이 변하는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현자 타임이 오며 몰입이 싹 깨진 자들의 느낌이란 말씀이신 거죠?
바보왕
20/12/21 07:25
수정 아이콘
반은 맞습니다. 실망을 처음에 안하고 나중에 하는 스트리머들 보면 전개에 감탄을 하려다가 어느 순간 텐션이 확 떨어지는 구간이 있는데, 그때 보이는 공통점이 좀 있더라고요
Hudson.15
20/12/21 06:12
수정 아이콘
겜이 RPG장르적 재미가 부족해도 총 쏘는 맛이 있으면 그럭저럭 할만한데, 이 겜은 폴아웃 4보다 RPG 요소도 딸리는데 타격감은 훨씬 떨어집니다. 폴아웃4는 적어도 싸움하는 재미는 있었죠
베르톨트
20/12/21 07:55
수정 아이콘
[더구나 대중이 요구하는 재미가 기대에 부풀어 있을수록, 제작자는 더 시간이 부족합니다. 왜냐면 한번 자기 노선을 탄 회사가 대중의 요구를 접했다고 해서 자기들이 만들려던 걸 버리진 않거든요. 더 집어넣고 더 채워넣다가 있는 것까지 말아먹는 한이 있어도 말이죠.]

선후관계가 좀... 제작자가 홍보한 것을 보면 대중의 기대는 자신들이 만든 건데 그들이 그걸 핑계삼으면 안되겠죠.
시간이 모자란다기보단 그냥 개발 역량이 안됐던 겁니다.
바보왕
20/12/21 08: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글쎄요, 초창기 이 게임이 컨셉을 내놓았을 때, 이 정도로 큼직한 게임이 될 거라고까지 입을 털진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2012년, 13년까지도요. 그런데 위쳐2가 성공을 거두고 시간이 흘러 3이 나올 때쯤 싸펑에도 어마어마한 기대가 먼저 몰렸던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CDPR은 거기에 제동을 걸기보단 예, 그것도 됩니다! 그것도 아무렴 되고말고요! 역대급 게임이 나올 거임! 하면서 부채질을 해버렸죠. 그 뒤론... 그 뒤론 말씀대로 더 통제 못 할 만큼의 기대가 부푼 것도 맞습니다. 제가 쓴 대목은 CDPR이 느꼈을 중압과 사실관계 이야기고, 제작사가 대중의 기대를 부추긴 책임이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역량 부족이란 건 아마 맞을 겁니다. 애초에 자기들의 한계선 자체를 자각을 못한 게 아닌지. 혹은 어느 시점에서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이상징후를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 때는 늦었을 겁니다. 입은 털었고 다 된 건 없고.
시린비
20/12/21 07:56
수정 아이콘
와 넷러너! 안드로이드 넷러너를 사본 유저로써 한번 넷러너쪽으로 막 찍어볼까! 싶었는데
그러면 안될꺼같은 느낌도 스멀스멀...
뭐 패치되고 하려고 묵혀두고 있긴 합니다..
TWICE쯔위
20/12/21 08:25
수정 아이콘
게임자체는 괜찮은거 같습니다. 하루에 몇시간씩 몰입해서 플레이하는 게임은 간만이네요.
간간히 그래픽깨짐등의 문제도 패치로 어느정도 개선은 됐고...

역시나 이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유저기만이라....애당초 지들이 얘기한 거의 반이라도 구현해놨으면 그나마 이렇게까지 까이진 않았을거라 봅니다.
세종대왕
20/12/21 08:36
수정 아이콘
몰입도도 높고 사이드 스토리도 나쁘지 않은데 메인 스토리가 너무 짧고 (재키와의 6개월을 무슨 하이라이트로...) 중간중간 버그 때문에 진행 안되는 경우가 퀘스트 캐릭터가 사라지거나... 갑자기 화면 까맣게 나오거나... 등등 어디까지가 버그고 어디까지가 의도한 건지 모를 정도로 버그가 많아서 2회차는 한 1년 묵힌 다음에 해야겠습니다.
구치리
20/12/21 08:37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밤새면서 한 게임인데 글을 보면서 통찰을 얻네요.
개인적으로 인물들과 엮여과는 스토리가 좋았습니다.
주디 팔머 조니 완전 사랑함.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alphaline
20/12/21 08:47
수정 아이콘
선택지, 난이도에 관한 부분 완전 동감합니다
능력치 및 그에 따른 기술과 임플란트 결합으로 구현할 수 있는 컨셉이 무궁무진한데
막상 그 컨셉을 구현할 정도 레벨이면 무의미한 학살 말고는 즐길 수 있는게 없죠
RapidSilver
20/12/21 10:42
수정 아이콘
이게 컨셉맞출때쯤 되면 딱 디아블로3 대균열 도는 느낌이더라구요
나도 까딱하면 죽을수도있지만 어쨌든 전투컨셉 맞추면서 학살하는 플레이양상이...
한방에발할라
20/12/21 08:5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선택지는 사이드퀘에서 상당히 의미가 크긴 합니다. 델라메인. 시장 후보 관련 퀘스트나 초반에 나왔던 산드라 관련 퀘스트, 등등 전부 선택지에 따라 확 바뀌는지라....그리고 이렇게 바뀐 결과가 가끔 라디오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사이드 한정으로 보면 이만큼 선택지 풍부한 게임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위쳐보다 더 나아요. 하지만 메인에서 정말 의미있는 선택지는 딱히 떠오르는 게 초반에 덤덤 관련이랑 스타우트 살리는 거? 중반부에는 부두 보이즈 관련? 그리고 분기 관련된 정도밖에 없네요.
20/12/21 09:07
수정 아이콘
제작 역량이 부족했던건 코로나 때문도 있게죠. 재택근무의 파편화로 인한 업무효율의 저하는 작업공수와 버그를 한없이 늘려줬을 겁니다.
20/12/21 09:33
수정 아이콘
처음엔 저도 진짜 버그는 그렇다 치고 게임은 재밌구만 왜 똥겜이라 그러지? 싶었는데 하다보니 진짜 어느 순간 재미가 확 없어지더군요. 이 글을 보니 대충 이해가 됩니다.
묵리이장
20/12/21 09:53
수정 아이콘
선택에 따라 갈림길이 나뉜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못느끼겠더군요.
마지막 녹턴 퀘스트만 그렇지 뭐 다른거야...
그리고 풀보이스에 돈 때려박느니 저는 개발자 뽑아서 완성도 높이는게 나았다고 봅니다.
그래도 리로드하면 대부분 퀘스트 버그는 진행이 되는게 다행히었다??
이쥴레이
20/12/21 10:16
수정 아이콘
메인 퀘스트는 녹턴까지 딱 진행 해놓고, 아직 엔딩을 안보고 서브퀘들 진행중입니다.
메인퀘도 스토리 전개나 이야기 전개가 나쁘지 않고 재미있다고 보는데, 서브퀘들 하면서 와 이거 생각외로 재미있네 하고 있습니다.
초반 서브퀘할때 근처지역 가면 의뢰가 오고 단순하게 누구처치나 뭐 탈취정도로 아주 간단하고 금방 끝나는 서브퀘나 임무라고 생각했고
비판도 많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예상외 스토리나 이야기 전개, 잠임등 여러가지 요소 있는 퀘스트들이 꽤 많더군요. 꽤 인상에 남는 서브 미션들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연애가능한(?) 주연급 캐릭터들에 서브퀘들도 메인 스토리만큼 꽤 재미있습니다.
성별에 따라 연애가능여부가 갈려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메인퀘스트에서 느끼지 못한 캐릭터성을 여기서 느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현재 조니 밴드 멤버 모집(?)하고 있는데 흥미진진하더군요. 그러다가 과거 메인퀘나 다른퀘스트에서 선택했던 연동이 조금씩 영향이 있는것도
있고 캐릭터 능력치 상승과 명성에 따라 적들과 싸우지 않고 평화적(?) 해결도 가능하고 해서 계속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 60시간 좀 안되게 했는데, 일단 서브퀘들은 거의 다 마무리하고 메인퀘 엔딩을 볼 생각인지라.. 엔딩을 봤다면 서브퀘하는 흥미도가
떨어질거 같아서요. 크크 평판도 최고로 올렸고, 레벨은 이제 40은 찍었는데.. 아직도 필드에 수많은 퀘스트 마크를 보면서 갈길이 참 멀구나 합니다.

남자 캐릭터를 할경우 공략할수 있는 여캐가 의외로 적다는게 좀 아쉽더군요.
제친구는 엔딩보고 나서 주디와 연애(?)를 하겠다고 여자 캐릭터를 만들어 다시 2회차를 하는거 보고..

버그나 콘솔 그래픽이나 팅김 관련해서 정말 할말이 많은 게임이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어서 계속하고는 있네요
바보왕
20/12/21 10:22
수정 아이콘
으왘 제목에 스포주의 쓰기 싫어서 일부러 몇 가지 빼놨더니 댓글 덕분에 도로 달게 생겼네 허허허 일단 냅둬봐야지
루엘령
20/12/21 10:32
수정 아이콘
보통 버그잡는 작업을 마지막에 할텐데 코로나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을 해봅니다
버그만 잡았어도 80점은 넘게 줄만하다고 생각해요
위처3이 무료 dlc가 16개였고 본편 비슷한 불량의 확장팩도 착한 가격에 내줬으니
사평도 그 정도 사후지원이 된다면 명작소리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키리코
20/12/21 10:59
수정 아이콘
브레스 오브 와일드가 rpg게임이었어요?
아이폰텐
20/12/21 13:18
수정 아이콘
이렇게 아시는분이 많더라구요.

젤다는 RPG로 딱 분류할 수 없는 장르긴하죠.
바보왕
20/12/21 13:27
수정 아이콘
가장 본질 되는 것과 뼈대만 남기고 나머지를 싹 다 빼버린 RPG입니다.
빈 자리엔 액션, 탐험, 생존과 대요정을 넣었고요. 액션도 뛰어나고 탐험도 뛰어나니 원하신다면 다른 장르로 불러도 괜찮습니다만, 그렇다고 젤다가 RPG가 아니게 되진 않습니다. 그게 젤다가 갓겜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장르를 강조한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액션이고 또 RPG니까요.
avatar2004
20/12/21 14:36
수정 아이콘
젤다는 그냥 액션 어드벤처 아닌가요. 젤다가 rpg였던적은 과거에도 없고 현재에도 없는거 같은데 말이죠. 젤다의 본질은 모험인데 최소한의 역할 플레이는 아에 존재하지가 않잖아요
바보왕
20/12/21 14:51
수정 아이콘
탐험, 모험은 RPG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RPG는 대화 지문으로만 구현되는 것도 아니고요. 어떤 아이템을 지금 사용할지 정하고, 강한 칼과 약한 창 중에서 무엇을 먼저 소모하고 희생할지를 정하며, 길을 정하고, 과정을 정하는 것 또한 RPG의 한 부분, 원래는 진짜 본질의 한 축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80년대와 90년대 초중반의 좋은 어드벤처 게임과 좋은 RPG 게임은 서로를 굳이 구분하지도 않았습니다. 한쪽의 극단에 이르면 다른 쪽 장르에도 맞닿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울티마가 곧 어드벤처 장르이고 젤다가 곧 RPG 장르였습니다.

장르가 공식화되고, 레벨업과 육성이 RPG의 본질을 침식하고, 장르가 감상을 세밀하게 나눠 하기 위한 색안경이 아니라 제작자를 구속하는 한계선이 된 현세대에 와선 좀 낯설어진 얘기지만요.

젤다 시리즈가 RPG로 구분되는가 아닌가에 대해선 아마 그쪽 제작자들은 딱히 무슨 의도도 없었을 겁니다. 시게루 아저씨 팀은 자존심도 워낙에 쎄보이고요. 중요한 건 탐험, 서사, 선택이 젤다, 특히 야숨 안에 정확히 들어 있다는 겁니다. 길고 복잡한 대화 없이도요. 그러니 RPG 덕후가 젤다를 RPG로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avatar2004
20/12/21 14:57
수정 아이콘
근데 저는 울티마의 몰락이 이상한 자유도에 집착하다가 정작 rpg 본연의 장점을 버리고 어드벤처가 되버려서 망한거라 생각하거든요 . 물론 모험과 탐험이 rpg의 특징이기도 하죠.
아이폰텐
20/12/21 16:20
수정 아이콘
동의가 되는 의견이네요. 사실 야숨에 이르러서는 RPG 딱지를 붙여도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소위말하는 요즘게임식 RPG성이 강화되기도 했고요. 다만 젤다를 혹평하는 의견중에 '스토리가 유치하다', '맵은 광활한데 놀거리가 없다'는 식의 다른 장르의 기준을 붙여서 젤다를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보니 전통 팬중에 젤다=오픈월드RPG겜 이라는 공식에 학을 떼는 사람이 많은거 아닌가 싶습니다.
키리코
20/12/2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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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에는 롤플레잉요소가 없는 것 같은데요
미숙한 S씨
20/12/21 15:25
수정 아이콘
굳이 따지자면 botw는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에 가깝지요.
뭐, 옛날식 분류에서 고전 젤다는 액션rpg라는 얘기가 많았고, 그 전통이 이어져 오면서 지금까지도 젤다 = 액션rpg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요.
iPhoneXX
20/12/21 11:07
수정 아이콘
버그/최적화/무리한 마케팅만 없었으면 이렇게 혹평 받을 게임은 아닌듯..
별거아닌데어려움
20/12/21 11:43
수정 아이콘
초반에 잘모른 상태에서 지능과 냉정에 특성찍고 했는데 은신 목조르기로 대부분 해결이 가능하고, 사이버사이코의 경우도 회피하면서 느려지는 것을 해서 술래잡기하면서 쫄깃하게 잡아서 전투도 위쳐3보다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길거리 평판을 올려야 좋은 사이버웨어를 살수 있길래 메인퀘보다 사이트퀘스트를 우선시 하고 지도를 돌아다니면서 평판을 올리다 보니 사이드퀘를 많이 하게 되고 노트북이나 샤드의 메시지를 다 읽어보면서 하다 보니 오랜만에 게임을 몰입해서 하고 있네요. 위쳐처럼 확장팩도 잘 내고 하면 2년후에는 명작소리 듣지 않을까 합니다.
Dena harten
20/12/21 12:22
수정 아이콘
하다보면 초중반의 그 강렬한 몰입이 깨지는 그런 순간이 와버려요. 그때부터 게임의 단점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하는데 재미는 있어서 쉬이 놓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20/12/21 13:07
수정 아이콘
저는 그냥 평타 정도였습니다. 출시 당시엔 기대치가 높긴했는데, 일부러 기대치를 내리는 작업을 한 다음에 들어갔거든요. 본문에 언급된 스토리 부분에 있어서는 전 너무 쓸데없는 대화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TMI가 아닐까할 정도로 핵심을 관통하는 대사가 많지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를 주는데, 이 선택지도 딱히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토리는 아 그냥 액션 영화겠거니 하면서 가볍게 봐서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엔딩 크레딧에서 주어지는 동료들의 영상편지가 마음에 콱 박혀서 스토리에 점수를 좀 더 주었지만요.

능력치 세팅부분은 솔직히.. 공감은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능력치에 따라서 플레이 적으로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예 없어요. 능력치 찍는 것들만 봐도 재미있는 플레이를 강요하기보다는 그냥 무난한 패시브 용도의 스킬들이 많았거든요. 그렇다면 재미있는 플레이는 어디서 느껴야하냐 하면 파츠 부분에서 이걸 느낄 수 있는데.. 서브는 어느정도 깨고 보조 퀘스트를 깨지않고 진행하는 입장에서 파는 파츠들은 턱없이 비싸다고 생각돼서 결국 엔딩을 볼 때쯤엔 원하는 파츠들을 얻지도 못하고 그냥 엔딩을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흥미도 갑자기 식더군요.

패치로 해결할지는 모르겠지만.. 서브 퀘스트도 그렇고 뭔가 얻는게 크게 없어서 별로였습니다. 각 인물마다 개성을 좀 줘서 특이한 파츠들을 내놓는다던가 하면 이런 퀘스트에 목적성을 가지고 뛰어들었을텐데 말이죠.
돌아온탕아
20/12/21 14:02
수정 아이콘
좋은 평 감사합니다. 첫번째문제는 선택에따른 변화가 기대치는 디트로이트비컴휴먼이었는데 실제로 나온거는 워킹데드 수준이라 보면 될까요?
바보왕
20/12/21 14:09
수정 아이콘
텔테일보다는 한끗 낫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거하고 비교하면 서럽지 않을까요(...)

기대치는, 제 경우는 풀보이스라는 점 때문에라도 디트로이트는 고사하고 폴아웃4 정도만 돼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너무쌍은 제약된 흐름 속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기를 결정하는 게 주 요소였기 때문에 서사가 그 정도로 다채로워질 수 있었던 거고요.

풀보이스처럼 자원 먹는 하마가 액션이나 RPG에 묻으면 그 자체로 플레이 디자인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특히 RPG 덕후에게는 보통 안 좋은 변화를 일으키죠. 자세한 건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20/12/21 14:28
수정 아이콘
애초에 이 게임을 오픈월드 어드벤쳐 처럼 속을 수 밖에 없게 만든 마케팅이 지금 상황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버그를 제외하고 게임 플레이적인 측면에서요.
거기에 RPG를 기대한 플레이어에게도 말씀하신 것처럼 선택에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도 않구요. 다만 20시간 정도 플레이한 지금 정도되니 어느 정도 고민하게 만드는 선택지가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초반부터 있어야 했다고 봅니다.
단순 버그나 기타 콘텐츠 추가로 플레이적인 부분이 개선될 수 있으나 초중반 스토리를 경험하는 측면에 개선이 없다면 얼마나 더 나아질지 모르겠네요.
캐릭터 육성 측면도 어느 정도 공감하구요. 리퍼닥에게 10만 유로달러면 특성 초기화 할 수 있는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데 저는 지금 돈 모아서 특성 초기화해서 플레이 스타일을 다시 정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avatar2004
20/12/21 14:31
수정 아이콘
의아한게 사이버펑크 처음나왔을때 리뷰중에 호평의 리뷰는 분명히 선택에 대한 결과에 대한 극찬이였거든요.

당연히 그게 위쳐1부터 cdpr이 끊임없이 추구해왔던 가치였고 이번 사이버펑크에서 최소한 그거는 확실하게 만들었겠구나 했는데 정작 이후 나온 평들보면 어떤 선택을 해도 달라지는게 없다니 이게 대체...처음에 나온 리뷰는 뭐였을까요.
Lord Be Goja
20/12/21 15:26
수정 아이콘
대화문을 잘짜고 설득력있는 연출을 해놔서 처음 할때는 그럴싸하거든요.내가 영향을 주는구나 하는 느낌은 납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거기를 다시 해보면 티가나는거.
Lord Be Goja
20/12/21 15:28
수정 아이콘
우드맨 같은 경우가 처음 할때도 내 선택을 무시하는게 눈에 확뛰는 요소고 (죽였는데 다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스토리에 또나옴)나머지는 티 안나게 잘해놨습니다.
20/12/21 14:54
수정 아이콘
전 더빙두 별로였습니다. 장르는 달라도 데스티니 더빙이 훨씬 나앗네요.
미숙한 S씨
20/12/21 15:21
수정 아이콘
싸펑에 대한 유저의 리뷰 중에 RPG로서의 정체성을 잡아놓고 까는(?) 글은 진짜 오랜만에 보는것 같아요. 루리웹에는 죄다 샌드박스로써 GTA보다 못하다 어쩐다 이런 헛소리, 아니면 버그 까는 글 밖에 없어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JRPG와 대비되는 의미에서- 서양식 RPG의 정수는 '선택'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결과'에 있다고 보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죠. 선택은 하는데 서사는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서양식 RPG로서는 욕먹을 일이 맞으니까요.
일반상대성이론
20/12/21 16:03
수정 아이콘
싸펑을 JRPG로 보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크크
아이폰텐
20/12/21 16:23
수정 아이콘
싸펑은 JRPG 기준에서도 고평가 받기가 힘들어요.

전통적인 JRPG를 아직까지 꾸역꾸역 내는 팔콤게임보다 못해요.

JRPG는 스토리의 유치함은 호불호로 차치하더라도
캐릭터 육성 - 전투의 밸런스는 황금밸런스인 점이 셀링포인트거든요. 이걸 살짝 빗겨가고도 성공한게 서양덕후 + 국내게이머들에게 호평받는 '페르소나'시리즈구요.
근데 사펑은 전투가 개노잼인데 육성도 재미가 전혀 없는 수준입니다.
드퀘11이나 궤적시리즈랑 비교하면 처참하죠. 장르의 호불호를 떠나서 완성도만 놓고보면요.
avatar2004
20/12/21 16:11
수정 아이콘
뱀파이어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니 진짜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놨나 보네요.
20/12/22 08:36
수정 아이콘
저는 큰 기대를 안해서 인지
6만원정도 내고 2회차정도는 할만한거 같습니다
20/12/22 15:21
수정 아이콘
원래가 스토리에 중점을 두지 않고 캐릭터 강해지는 맛에 이것저것 만들어둔거 탐사하는 재미를 느끼며 하고, 버그도 웬만하면 별로 불평이 없는 터라, 주변 사람들보다 사이버펑크를 재밌게 즐기고 있습니다.

스토리를 안밀면서도 게임사가 만들어준 온갖 퀘스트를 하며 맵에 뜨는 퀘스트 느낌표 다지워가면서 참 재밌게 하고있습니다. (덕분에 막상 스토리퀘만 남으면 상대적으로 쉽게 하고있어요)

그렇게 재밌게 하면서도 뭔가 시대를 풍미할 최고 작품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는 느낌을 추상적으로 받고 있었는데
제가 느낀 바를 잘 풀어 주신 것 같아서 추천 드렸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한발자국 앞서나가는 면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버그에 선택지부족에 이것저것 부족해 보여도 최고급 작품이라고 했을것같은데. 게임구성의 느낌은 GTA 시리즈나 어쌔신크리드나 워치독스류에서도 느껴본 종류라고 생각되네요.
-안군-
20/12/22 20:30
수정 아이콘
주디 이뻐요 주디!! 주디 완전 사랑해!!
...는 사족이고,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너무 너저분해졌어요. 뭔가 이것저것 하고싶은건 많은데 그냥 다 때려박은 잡탕찌게같은 느낌?
특히나 소모성 아이템, 의복류 종류가 쓸데없이 많고, 그나마 정렬도 제대로 안돼서 뭐가뭔지 일일히 찍어봐야 하고. 편의성은 개나줘버린 UI에다가.
게임개발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선 "이 회사는 컨트롤타워가 없나? 그냥 하자는거 다 한건가??" 싶더라고요. 좀더 정돈할수도 있었을텐데...

근데, 재미는 있습니다? 호제던 이후로 인생게임을 하나 더 만난 기분입니다.
20/12/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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