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20/08/17 15:09:49
Name FOLDE
Link #1 https://www.weibo.com/ttarticle/p/show?id=2309404537953979334777&is_all=1#_0
Subject [LOL] 쑤닝의 AD, 후안펑에 대한 이야기 (수정됨)



LPL 플레이오프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 어제 IG의 충격적인 탈락으로 4강 대진이 SN vs TES / LGD vs JDG로 확정이 났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있을 1경기인 SN vs TES전이 시작하기 전 가볍게 읽어보실 만한 글입니다.


얼마 전 쑤닝 게이밍의 AD, Huanfeng 선수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Huanfeng 선수는 2019년 IGY(IG 2군 유스팀)의 AD로, 지금은 VG로 간 Forge와 함께 LDL 서머 시즌 우승의 주역인지라 IG 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이름이 알려진 선수였지요. 2020년에 들어 JackeyLove 선수가 복잡한 사정으로 팀을 나가게 되면서 IG 1군으로 올라오게 될 줄 알았더니, 코로나로 인한 LPL 휴식 기간 중 SN으로 이적하게 되어 지금은 탄탄하게 제 입지를 차지한 선수입니다.


전체적으로 선수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하나하나 정리한 느낌인데, 과거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무척 감동적인 이야기인지라 한 번 날 잡고 번역을 하게 되었네요. 기존에 다른 곳에서도 한 번 올렸지만, 오역이 많은데 수정할 수가 없어... 여기서도 다들 한 번 읽어보시면 하는 마음으로 올려봅니다.








소년은 바닷가에 왔다 ─ SN Huanfeng



──19년 인생을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탕환펑의 미래는, 그가 동경하는 바다처럼 여전히 미지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




조용한 아이


프로 생활을 시작한 후, 탕환펑(ID : Huanfeng)은 가끔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하곤 했다.

탕환펑을 어릴 적 또래 집단에 던져두면, 그는 아마 그들 중 제일 조용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일 적 선생님인 방 선생님은 그녀가 겪어온 아이들 중 그가 제일 특별한 아이였다고 이야기한다. "그 당시 제가 데리고 있던 반 학생들은 모두 뛰어다니면서 장난치곤 했는데, 그는 혼자 구석에서 이것저것 고민하던, 생각이 많은 학생이었죠."

이후 탕환펑은 학교를 떠나 프로 생활의 길에 들어선다. IG.Y(IG 유스팀) 매니저 궈쿠이는 탕환펑을 만난 후 위의 선생님과 비슷한 감상을 남긴다.

"처음에는 그가 남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는 못한 느낌이었죠. 게임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소통이 그닥 없었어요."

이후 매니저는 그의 어릴 적의 기억이 지금의 그를 붙잡아두고 있으며, 그에게 정서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이라도 알 거 같으면, 저는 그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어요."

그리고 2020년에 들어, LPL의 첫 데뷔를 그는 쑤닝 게이밍에서 시작하게 된다. 스프링 시즌이 끝난 후, 쑤닝의 코치인 유안씨는 탕환펑의 어린 시절의 내면의 외로움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탕환펑은 가끔 있는 팀의 휴가가 찾아오면, 내키는 대로 전철 티켓을 사서 전철을 타고 내선순환노선을 따라 하염없이 돌거나, 어느 역에서 무작위로 내려 혼자 떠돌다 다시 전철에 올라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한 번 멈춰서서 한 번 둘러보는 게, 모노폴리 게임이라도 하는 거 같았죠." 유안씨는 탕환펑에게 왜 이런 걸 하는지 물어보았고, 탕환펑은 이게 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이라 대답했다.

탕환펑에게 LPL의 데뷔를 시작한 쑤닝 게이밍에 들어간 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포인트는 아닐테지만, 아마 그의 인생에서 몇 번의 큰 전환점 중 하나일 건 분명하다. 이전까지 그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e스포츠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왔다.







2019년 중반, 당시 IG.Y에 머물던 탕환펑은 스프링이 끝난 후 휴가철을 맞아 광시 쪽 해변도시인 고향을 찾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시의 남쪽에 있는 해안에 도착했다. 기슭 사이로 여름 바람이 그의 반팔 셔츠 안쪽으로 불어왔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좁은 강 위로 어선들이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잠시 머물렀던 시간에 탕환펑은 프로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완전히 텅 비어버린 기분을 느꼈다.

"그거 아세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건 진짜 힘들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그걸 경험한 유일한 시간이었죠."

휴가를 끝내고 팀으로 돌아온 탕환펑은, 다시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미래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해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의 기분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집


어린 시절, 탕환펑의 어머니는 그에게 대답할 수 없을 질문을 자주 던지곤 했다 : "내가 너희 아버지랑 헤어지면, 넌 누구랑 같이 살 거야?"
 
가족의 변화도 그 무렵에 일어났다. 현실에 의해 강제로 단축된 탕환펑의 어린 시절, 부모는 영영 계속될 것만 같은 갈등 속에서 살아갔다. "부모님이 싸울 때 저는 항상 제 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사실 그 방은 방음이 안 돼서 싸우는 소리가 다 들렸어요."

갈등의 원인은 많았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의 또 다른 가정과, 어머니의 낭비벽에게서 비롯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후안펑이 초등학교 4~5학년 당시, 어머니가 그를 갑작스레 웬 전기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데리러 왔다. 그렇게 돌아가다가, 어머니가 갑자기 "집에 반찬 살 돈이 없어서 파 한 개만 살 수 있다"라고 그에게 말하는데, 그 당시의 후안펑은 당연히 생각했다 :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후 부모님의 다툼 속에서 탕환펑은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하기 위한 어머니의 메가폰 역할을 대신했다. "부모님은 나를 앞에 두고 몇 번이나 이달 집세는 어떻게 하고 생활비는 어떻게 할 거냐고 싸우곤 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어쩔 수 없었죠. 엄마는 그 당시 마땅한 직업이 없었어요."

중학교 1학년 당시 그의 어머니는 잠시 집을 비웠고, 그러던 1학기 어느 날 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짐을 싸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주 조용한 자정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탕환펑은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와, 가방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지만, 문이 닫히는 소리 외에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12세의 탕환펑은 혼자 살아가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그 좁은 집엔 갑자기 그 한 명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보름마다 한 번씩 200위안(현재는 3만 4천원 정도)을 주었고, 가끔씩 그의 다른 가정에서 돌아와서 그에게 물려준 컴퓨터를 쓰다 가고는 했다. 탕환펑이 혼자 사는 집의 조명은 대부분이 고장나 불이 들어오질 않았고, 밤이 되면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어두운 방의 조명 역할을 대신했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남한테 의지하는 걸 보게 되면 기분이 무척 안 좋아졌어요. 저는 모든 일들을 혼자서 해내는 거에 익숙했기 때문에, 일찍 독립하는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그 작은 집에서, 탕환펑은 3년 내내 혼자 살아야만 했다.

무너진 가정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후안펑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 앞에서 한 짓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척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이후, 그는 "'좋은 사람'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중학교를 다닐 시절, 모텔을 운영하던 친구가 후안펑의 집 맞은 편에 머물면서 두 사람은 매일 아침 30분씩 자전거를 타고 등교할 수 있었다. 친구가 후안펑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된 후에 친구는 이따금씩 여러가지 생활 용품을 사서 그에게 가져다 주고는 했다. 처음에 후안펑은 그에게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친구는 제발 그러지 말라며 사양했다. 친구가 후안펑에게 이것저것 대접하는 횟수가 늘자 어느날의 등굣길에 후안펑은 물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야?"

친구는 대답했다. "우리는 그냥 동창이 아니라, 친구잖아."

언젠가 한 번은 탕환펑이 해변에서 발을 헛디뎌 조수에 휩쓸린 적이 있었다. 바닷가엔 사람이 꽉 차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어 그의 손을 잡아준 건 오직 그 학생 뿐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탕환펑에게 자주 찾아와 물리 수업 내용에 대해 물어보는 여학생이 있었다. 언젠가 그녀가 일요일 귀교할 때 집에서 가져온 먹을 것을 나눠줬던 적이 있는데, 당시 후안펑은 '좋은 일이지만 진실하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 여학생에게 친구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왜 그렇게 남한테 잘해주는 거야?" 그러자 여학생은 반문했다 : "이게 평범한 거 아냐?"

"이 두 가지 일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됐어요." 탕환펑은 낮엔 정상적인 아이처럼 등하교하며 친구들과 어울렸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후엔 홀로 불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 머물러야만 했다. 방에는 컴퓨터가 있었고, 밤에는 소파에서 혼자 잠들었다. 자신의 작은 방에는 어릴 적, 부모님이 있을 때 모았던 만화책, 장난감, 온라인 게임에 나오는 모형 칼이 있었지만, 혼자 살게 된 이후 그는 한 번도 그 방에서 잠든 적이 없었다.

소년의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갔고, 과거 어머니가 했던 그 질문의 해답은 후안펑의 내면에서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만일 엄마가 아빠와 헤어지면, 넌 누구랑 살 거니?'

"나 혼자. 컴퓨터 한 대, 학교, 반 친구 한 명. 그 정도면 됐지. 그냥 이렇게 살 거야."




언약


어느 순간부터, 정확히는 중학교 3학년 마지막 학기가 끝난 뒤의 겨울방학에, 그에게는 꼭 이뤄야 할 약속이 하나 더 생겼다. 설이 다가오자 탕환펑은 아버지와 함께 농촌으로 돌아가 새해를 보내게 된다.

설날이 찾아올 즈음, 어린 시절의 후안펑은 아버지 쪽의 모르는 친척들에 대해 항상 반항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필연적으로 온갖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그는 더욱 자주 욕을 얻어먹었고 점차 마음 속 그늘이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아서 네가 뭘 하겠느냐'라며 아들에게 흥정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작은 지방, 작은 도시에 사는 이들이 설이 되면 집집마다 농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명절에, 혼자 도시에 남게 되면 식사를 할 장소조차 찾기 어려웠으니.

농촌에는 아버지 쪽의 대가족이 있었고, 후안펑은 가족들 중 열째에 해당해 모두들 그를 '열번째'라고 부르곤 했다. 섣달 그믐날 밤, "아홉번째", "열번째", "열한번째" 삼형제는 집에 머무르질 않았다. 그들은 몰래 집을 빠져나와, 곧장 PC방에 가서 밤을 새우곤 했다.

"'아홉번째'는 집안 형편도 저와 비슷했고, 우리 둘 다 게임을 즐기는 편이었죠. '열한번째'의 부모님은 우리랑 같이 놀지 말라고 하셨고, 또 우리랑 같이 나간다면 그를 죽이겠다고 하셨어요." 그날 밤, 부모의 가르침은 PC방의 유혹 앞에서 찌르자마자 터지는 비눗방울이 되었다. 

설을 쇠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세 사람이 찾아간 PC방에는 사람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들은 다음 날 새벽까지 놀 수 있었다. 그 당시엔 "데마시아 삼형제(가렌, 자르반 4세, 신짜오)" 조합이 유행해서, 그들 중 한 명이 자르반 4세를, 한 명은 가렌을, 한 명은 신짜오를 플레이하곤 했다. 정월 초하루 아침 7시,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밤샘비로 써버리고, 아침도 거른 세 명의 꼬마들이 집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누군가 한 마디를 꺼냈다 : 나중에 같이 프로게이머가 되자.

당시 플레티넘이었던 후안펑에게는 우스갯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그는 프로와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자신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한 번도 그런 걸 생각해본 적 없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그 설날 아침에 그는 두 형제와 함께 했던 말을 진심으로 여겼다.

"어렸을 때 집안 싸움이 나면, 우리 엄마는 맨날 우리 아빠 말은 다 헛소리라고, 전부 거짓말이라고 했어. 그리곤 남자들은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한테 그랬지."







그러고 나서 작은 집으로 돌아온 탕환펑은 훈련을 시작했고─ 게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랭킹을 돌린 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등교해 수업하고, 2시간을 쉬는 점심시간에는 집과 학교를 오가는 1시간과, 나머지 1시간에는 솔랭 혹은 듀오를 돌리고, 오후 수업이 끝나기 전에 학교 숙제를 끝낸 뒤 귀가해 11시까지 혼자 게임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일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미드를 돌렸는데, 그는 '뭔가 잘못됐다'라는 걸 느낀 후 AD를 돌리자 '이 자리는 내 자리여야 한다'라는 기분을 직감했다.

후안펑은 그때부터 과거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그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 즐거울 뿐, 진지한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중3이 끝날 무렵, 후안펑의 점수는 이미 한 서버의 고승률로 올라갈 수 있었고, 서버를 옮긴 이후 그는 마스터 200, 300점을 달성할 수 있었다.

"언젠가,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너는 정말로 잘할 수 있을 거니까. 그걸 의심하면 안 돼."





종국적인 결정


중학교를 졸업한 후 현지 일반계 고교 일반계 학급에 진학한 후안펑은, 방 선생이 졸업해 교사로 근무하게 된 뒤 처음으로 맡게 된 학생이다.

과묵함. 그리고 좋은 성적. 탕환펑에 대한 방 선생님의 첫인상이다. 동시에 그녀는 상대의 강점을 알아채게 된다. "당시 그는 나와 수능 성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죠. 그때 그가 했던 말중 제가 기억하는 가장 분명한 말은 '선생님, 제가 꼭 선생님을 (수능 점수에서) 앞설 거예요' 였어요."

후안펑에게 방 선생님은 마음의 이해자이자, 그리고 몇 안 되는 친구였다. "몇몇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는 물어볼 사람이 없긴 했어요." 고등학교에서 후안펑의 야간자율학습은 6시 40분부터 9시 10분까지였는데, 어느 날 저녁 7시가 막 넘은 시각 후안펑은 방선생님을 찾아가 그날 밤 자습이 끝나고 수업이 모두 끝나는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제게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물었어요. 게임을 할 것이냐, 아니면 고등학교를 계속 다닐 것이냐. 당시 그는 비교적 모순적인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게임에 재능이 있고, 재능이 있는 만큼 성적 역시도 좋았다고 했지만, 그의 학교 성적 역시 좋았기 때문에 대학도 가고 싶다고 했죠."

당시 후안펑은 일반반에서 줄곧 1, 2등을 지켰다. 고등학교에서 그는 계속 공부하면서 게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생활을 계속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심정이 커졌다. 가슴 깊은 곳에, 그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날이 곧 다가올 거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방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제가 나중에 학교를 오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방 선생님은 매우 분명한 태도를 내세웠다. "당시엔 그의 게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몰랐고 게임이 그에게 어떤 더 오랜 이점을 줄지도 몰랐으니까요. 제 눈에는, 적어도 이렇게나 성적이 비교적 우수한 학생에 대해선, 저는 여전히 그가 학교라는 길을 걸을 것을 건의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대화를 나누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방 선생님은 그녀 스스로도 제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을 인지했다.







고등학교를 입학한 해, 탕환펑의 삶에선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주시는 생활비가 불안정하게 변하기 시작한 거다. 보름에 200위안(현재 3만 4천원)씩 받던 생활비가 한 달에 200위안이 됐다. 후안펑은 아버지에게 언제 돈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아버지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또 갑자기 후안펑의 어머니가 "지금 집에 돈이 없어서 돈을 내지 않으면 집을 빼앗길 수도 있다"고 말한지라, 후안펑은 아버지가 준 부족한 생활비를 조금 덜어내면서까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고, 때로 달의 후반기엔 후안펑은 하루에 오직 물 한 통과 만두 두 개만을 먹으며 근근히 보내야 했을 적도 있었다.

첫 번째 학기가 지난 후 학교에서는 성적에 따라 반이 분리되었다. 성적이 우수했던 후안펑은 핵심반으로 이동하고, 방 선생님은 더 이상 그의 담임을 맡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레 그녀는 후안펑과의 마지막 대화, 과거 한 번 했던 얘기들에 대한 답도 제시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후안펑에게 뭐든 좋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대답을 남겼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선생님이 그때 말했었죠." 방 선생님의 말은 후안펑에게 확실하게 먹혀들었지만, "가정에 아무도 그를 지지해 줄 사람이 없었나 보다"라는 주변의 시선 역시도 만연했다.

나중에 2학년이 되었을 때, 방 선생님은 우연의 일치로 후안펑이 속해 있어야 할 핵심 반에 전근되었지만, 그녀는 다시는 그녀의 학생을, 그의 마지막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를 볼 수 없었다. ─이후, 후안펑은 자퇴했다.

탕환펑에 따르면 그는 핵심반 학생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또한 그는 핵심반 학생들과 말다툼을 하게 되었을 때, 교사는 둘이 악수를 하고 억지로 화해하도록 했고, 결과적으로 그의 마음 속에는 불만이 쌓여갔다. 결국 그는 흥분해선 아버지에게 더 이상 학교에 있기 싫다며, 키보드로 온갖 과격한 말들을 써 보냈다. 나중에 그의 아버지가 학교 측에 이를 알리자 학교는 그를 영창 개념으로 학교에 하룻밤 가둬두었다. 다음날 아침, 교사들이 그의 사상 교육을 위해 아버지를 학교에 불러왔고, 교장선생님까지 모이게 되었다. 교장은 그에게 농촌과 도시의 차이, 농촌인과 도시인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사들은 그에게 공부를 할 때의 삶과 하지 않았을 때의 삶에 대해 설명했다.

점심때가 되자 탕환펑은 아버지와 함께 학교를 떠났다. 학교 측의 결정은 후안펑을 잠시 정학시킨 후 정서를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아버지에게 전학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고, 아버지는 네가 재수할 의지만 있다면 그날 바로 이웃 시내의 한 고등학교로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그 고등학교 입구에서 아버지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옆에 있던 후안펑은 그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지만,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우리 아버지는 이런 걸까.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인데, 그게 바로 우리 아버지라니."

나중에 탕환펑은 혼자서 차를 타고 원래의 도시로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그는 아버지와 한바탕 말다툼을 했다. 아버지는 물었다 : "공부를 안 할 거면, 네가 대체 뭘 할 수 있는데?" 그러나 후안펑은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혼자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그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됐어. 프로게이머가 되자."

학교를 떠나고 난 뒤, 탕환펑은 결국 수능에서 방 선생을 추월하겠다는 그의 말을 현실로 옮길 수 없게 되었다.





SN에 들어오게 된 후, 휴가에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에게 처음이었다. 탕환펑은 베트남에서 온 팀원인 SofM에게 "우리 집이랑 베트남은 그 사이에 강 하나만 두는 거리에 있어." 라고 말했다. SofM은 처음에는 이를 믿지 못했다고 말한다. (대충 후안펑의 집이 베트남과 가까웠단 얘기라 생략합니다)

2016년, 탕환펑은 동경 106°의 길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그렇게 그의 첫 e스포츠 프로 투어가 시작됐다.

학교를 나온 직후부터 후안펑은 자신이 알고 있는 e스포츠 팀들에 이력서를 내고 자신의 나이, 서버, 점수, 그리고 e스포츠를 플레이하는 이유을 사신에 첨부하기 시작했다. 보내준 메시지 중에 몇몇은 바다에 가라앉았고, 몇몇은 답장이 돌아왔으나 당신의 점수가 낮아서 채용하기는 어려우니 계속 노력하라는 것이었다.

초조함이 마음속에서 번지기 시작했다. "급했죠. 그땐 너무 급했어요." 팀을 계속 찾았지만 성과가 없던 시기가 지속되던 와중, 그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그 팀은 닝샤(寧夏)의 인촨(銀川)에 있었는데, 직접 PC방을 운영하시던 사장님이 e스포츠 팀 하나를 한 달 3000위안을 써서 조직하려 하는 상황이었다. 후안펑은 별 고민 없이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가 가기 전. 아버지는 잘 되거든 계속 하고 잘 안 되면 군대를 가라고 말했다.

닝샤 인촨에 도착했을 때, 후안펑은 동흥(東興)의 본가보다 못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임대가가 1000위안인 집이었는데, 목욕용 수도꼭지가 고장나 있었죠. 빨래할 곳도 없었고, 우리끼리 집 주인 집에 가서 직접 빨래를 해야만 했어요." 그 팀에서 탕환펑은 매일 아침 10시에 소파에서 깨어나 밤을 새워 오전 5-6시까지 게임을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생활 패턴을 반복했다. 선수들은 PC방에서 솔랭을 돌리고 배가 고프면 배달을 시켜 먹었다. 가끔씩 사장님은 선의로 팀원들을 이끌고 그의 집에 가서 부모님이 직접 요리한 밥을 먹게 해주었다.

1년 넘게 이 팀에 있으면서 탕환펑은 "경력만 있을 뿐 성적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일년을 낭비했다고 느꼈다. "그곳에서 1년 내내 살아보니 프로 생활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풀리지 않으면 얼마나 힘들지 알 수 있었죠." 후안펑은 1년 만에 1만 위안을 모으고 그 팀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거의 2천 위안을 썼다.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어요."

첫 프로 투어를 어중간하게 마친 탕환펑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집에 머물다 다시 출발했지만 이번에는 광역 충칭(重慶)으로 가서 WuDu팀에 가입하며 그 당시를 "아주 더울 때"라고 회상했다. 후안펑은 정확한 시기와 달을 떠올리지는 못했고, 그가 기억해낼 수 있던 건 당시의 기온과 옷, 그리고 그가 떠나온 작은 집과 커리어뿐이었다. 

2018년은 2부리그 LDL이 처음 열리는 해로 전국은 난징, 선전, 충칭, 베이징 등 4개 구역을 나눠 스프링과 서머를 앞두고 각각 선발전을 벌여 팀들이 경쟁하도록 했다. 탕환펑은 5월 WuDu와 함께 LDL 여름리그 출전권을 따내 서머시즌 충칭에서 조 3위에 올랐다. 결승에 오르지는 못했는데, 그들이 스프링에는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머 정규 시즌이 끝난 직후, WuDu의 인솔자는 탕환펑을 불러 그와 그의 서포터를 해고시켰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후안펑은 자신이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고 솔랭에서도 더 잘 하고 싶었다. 해고당하던 날, 그는 한국 서버에서 챌린저로 막 승급한 참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제명 소식을 들은 후 후안펑의 피가 끓었고, 복잡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는 사장에게 왜냐고 물었고, 사장은 그에게 더 좋은 플랫폼과 팀을 찾으라고 했다. 상대방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후안펑은 거리낌 없이 계속 물었다. 그는 팀원들에게 자신이 떠난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던지라, 그와 그의 서포터는 아주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휴가가 끝난 팀원들은 팀에서 두 명이 사라진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떠날 당시, 탕환펑은 중2병스러운 말을 남겼다. "앞으로 너희가 LPL에서 날 만날 일이 없도록 해." 

2016년부터~2018년까지, 동흥에서 인촨, 충칭까지, 탕환펑은 그의 고향 동흥시와 고작 1도 정도가 차이 나는 경선을 거치는 데까지 2년이 걸렸다. PC방 팀에서 LDL까지 탕환펑은 성취감을 그닥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잘했다는 느낌만 들었을 뿐이었다. 2018년 여름, LDL 충칭 시 구단에는 LPL은 물론 월드시리즈까지 다녀왔던 선수들이 많았고, 1년 뒤 LPL 경기장을 빛내게 될 신예들도 많았지만 후안펑은 그런 유명한 이름들이나 강력한 라이벌들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중에 IG.Y로 가게 된 후 후안펑에게 누군가 "넌 왜 아무것도 모르니? 건방져서?" 라고 묻자 그는 "아니요, 그냥 자기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시기는 2017년 8월로 돌아온다. 당시 은천 PC방에 있던 후안펑은 팀원들과 여러 도시를 돌며 2018 LDL 스프링게임에 출전했다. 정원이 확보되자 구단주는 숙소를 바꿔 주며 '1000위안짜리' 집에서 떠나갔다. 그때의 후안펑은 LDL에 자리를 잡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고, "경기에서 게임할 수 있다"라는 기대감에만 차 있었다. 나중에 그들의 팀에 LPL에 있던 한 베테랑 선수가 오게 되었다. 그는 탕환펑에게 LDL은 LPL을 대중화시키는 수단일 뿐이며, 심지어 후안펑은 LPL에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도 말했다. 이 수많은 사람들 중 오직 몇십 명만이 LPL에서 게임할 수 있는데, 무슨 근거로 네가?

숙소에서의 편안한 생활이 주는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에 팀 서포터가 구단주는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숙소를 마련하기 위해 LDL 시드권을 판매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이 소식을 듣고 후안펑은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일이 있어 빨리 돌아가야만 한다는 핑계를 대는 일을 아버지에게 맡긴 뒤, 2018년에 그는 인촨을 떠났다. 떠나기 전, 구단주는 그를 데리고 기차역 옆에서 1,000위안의 현금을 인출해서, 집으로 돌아가 설을 보내는데 쓰라며 그에게 건네주었다.

"LDL 시드권에 대한 일만 없었더라면, 그리고 그가 무슨 일이든 우리에게 먼저 이야기해주었다면, 사실 그는 꽤 훌륭한 사장이었죠." 꿈과 현실의 간극은 모든 e스포츠 종사자들이 마주하는 과정이다. 이 두 과정을 거치면서, 후안펑은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 해 인촨은 10월에 눈이 내렸다. 2017년 10월 초, 인촨 지역에 1961년 이래 처음으로 첫눈이 왔고, 12월에는 폭설이 내렸다. 어느 날 점심 즈음 후안펑이 기상했을 때, 누가 갑자기 빨리 와서 보라며 그를 재촉했다. 밖에 눈이 오고 있어! 그들이 숙소를 옮기기 얼마 전이었고, 그가 6층에서 내려다보니 시야 아래의 공원 전체가 온통 흰색으로 덮혀 있었다. 나중에 팀이 숙소를 옮겨간 뒤에도 눈은 녹지 않았다. 

이날 탕환펑은 PC방 동료들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와 눈을 가지고 놀았다. 그들은 함박 내린 눈 사이에서 한참 사진을 찍은 후에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당시 탕환펑에게 눈은 정말 신기한 존재였고,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호기심 가득히 바라볼 때는 눈에게서 느껴지는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의 눈은 자신이 영화 속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았다.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자란 탕환펑이 생애 처음으로 눈을 만난 곳은, 떠나온 고향에서 천구백 킬로미터나 되는 곳이었다.



우승


2018년의 마지막 날, WuDu에서 쫓겨나 3개월이 넘도록 집에 머물던 탕환펑은 IG.Y을 향해 상하이행 비행기를 탔다.

당시 IG.Y가 정글러인 레얀(Leyan) 중심으로 팀을 새롭게 꾸리고 선수들을 모집할 때, 레얀은 탕환펑을 생각했다. 같은 해 전 닝샤 PC방에서 충칭 WuDu로 후안펑을 데려온 것처럼, 레얀은 다시 한 번 옛 동료를 불러들였다.

그해 IGY에서 매니저 궈쿠이는 처음으로 후안펑을 만나게 된다. 스프링 시즌, IGY는 정규시즌 17-7의 승점을 기록하고, 플레이오프 8강에서 BLGJ(BLG 유스팀)를 만나 탈락한다. 이후 매니저인 궈쿠이는 고향으로 돌아가 창업을 하려다 어린 선수들을 위해 팀에 좀 더 머무르기를 결심한다. 서머 시즌을 앞두고 팀내 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매니저는 선수들을 끌어 모아 작은 방에서 회의를 열고 미래를 어떻게 할지 논의했다. 선수들의 과거의 경험을,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팀의 미래 계획에 대해 그들은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전 아이들에게 여러분 각자가 지금 나이에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포기해왔을 거라고 말해줬어요. 본인이 이제껏 해온 경험과 헌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너희들이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암흑 속일지라도 이 길을 걸어야만 한다고 말이죠." 스프링 시즌 동안 IGY의 관리방식은 엄격하고 군사화되어 있었으며, 개개인이 엄중하게 수행해야 할 목표가 존재했다. 서머에 들어선 후 매니저는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던 건, 그들 각자가 프로로서 게임하는 건 관리를 위해서도, 감독을 위해서도, 팀과 팬들을 위해서도 아닌, 그들 자신을 위해서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들이 정말로 마주해야 하는 상대도 그들 자신이라는 걸."

서머 시즌 동안, 매니저는 선수들이 스스로 목표를 정하도록 하고, 특정 선수들을 겨냥해 독서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이나 가치관을 키우는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쉬는 날엔 상하이에서 방탈출 놀이를 하며 긴장을 풀었다. 한 번은 팀 전체가 공포 컨셉 방탈출을 함께 즐겼는데, 처음 들어갈 때는 다들 겁에 질린데다, 애론 코치도 기분이 좋지 못했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놀다간 여기저기 부딪쳐 부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당시 선수들의 절반 가량이 포기하고 싶어했지만 매니저는 "괜찮아, 이건 팀플레이니까. 우리가 팀원들을 믿으면 할 수 있을 거야." 라며 아이들을 다독였다. 이후 매니저의 인솔로 팀원들은 그들 중 누구도 도중하차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었다.






(방탈출 인증샷을 찍은 IGY 선수들입니다. 옆에 지금은 VG로 간 Leyan과 Forge도 보이네요.)

AD는 항상 손의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자리다. 궈쿠이는 후안펑에 대해 "팀에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였다고 말한다. 2019 LDL 서머 시즌의 후안펑은 새벽 5~6시까지 솔랭을 돌리고, 휴일도 가지지 않았다. "저녁에 같이 외식하러 가자고 해도, 그는 요즘 손에 감각이 그닥 좋지 않다며, 게임을 해야겠다고 했어요. 나는 아직 솔랭 두 판을 더 돌려야 하니까 누군가 음식을 좀 싸와달라며 부탁하곤 했죠."

2019년 8월 5일 IG클럽은 기존 IGY 정글러였던 레얀을 1군으로 상향조정하는 공고를 냈다. 레얀은 이후 처음으로 LPL 무대에 올라 2019년 롤드컵에 출전했다.

레얀의 1군 진출은 WuDu에서 IGY에 이르는 동료이자 친구로서 같은 팀에 합류한 탕환펑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레얀이 1군에 가는 걸 보고는 그가 말했죠. 나는 레얀을 따라잡고 싶다고. 나는 레얀을 캐리시켜주고 싶다고. 그렇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를 캐리시켜줄 수가 없다면서요." 궈쿠이와의 대화에서 후안펑은 팀을 돕고 싶다고 말했고, 팀에게 자신을 중심으로 봐줄 수 있냐며 제안했다. 그는 게임을 캐리하고 싶어했다. 궈쿠이는 후안펑의 말을 듣고 조금 감동했다.

IGY는 2019년 9월 8일 18-6의 승점으로, 25개 팀 중 2등의 성적을 거둔 후 정규시즌에서 LDL 서머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열흘 뒤 IGY는 결승전에서 EDGY(EDG 유스팀)를 3-1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시상대에서 동료들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린 탕환펑은 흥분하지 않았다. 그 당시 그는 모든 게 조용해진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목표가 마침내 이루어진 거죠."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관중석 아래에서 바라보며 매니저와 코칭스텝들은 거의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스프링 시즌 동안 탑라이너인 705는 팀의 지나친 부담에 거의 절망해선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으려 했고, 서머 시즌이 되고 어느 BO3 1세트를 패배하자 실수의 주역이었던 미드라이너인 Forge는 눈물을 흘리며 못 견디겠다고 말하는 등……. 팀에 관한 어수선하고 소소했던 기억들이 순간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이 팀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의문을 가지고 압박을 받고 있죠. 우승에 관한 한 누구나 직접 눈으로 이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우승을 차지할 자격이 있어요."



마지막 기회


"난 만족하지 못해. 내 팀원들은 다들 LPL에 진출했는데 왜 난 가지 못한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2020년 초 이적 기간 내내 탕환펑이 자기 자신에게 수없이 반복했던 질문이다. 2019년 말 LDL에서 우승한 그는 LPL에 진출하지 못할 뻔했다.

"처음엔 다른 팀들이 저희에게 접근해서, 우리 선수들을 테스트해보고 싶어했죠. 사실 처음엔, 저도 그들이 배우고 체험할 경험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궈쿠이는 이적 기간 초기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미 IG 1군에 있던 Leyan과 VG와 계약한 Forge를 제외하고, 탕환펑은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징동으로 입단 테스트를 간 첫 선수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 LPL과 LDL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JDG에서의 시범 훈련 며칠 동안 LPL 팀과 프로 선수를 처음 접한 후안펑은,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레얀을 LPL에서의 목표이자 쫓아가야 할 대상으로 정한 탕환펑은 자신과 이 무대 사이의 현실 차이를 인지한다. JDG의 테스트가 끝나자 그는 궈쿠이에게 더 이상 훈련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은 '너무 못한다'라며 혼자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분노의 메세지를 보냈다. 한 번의 실패가 도화선이 되었을 때,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당시의 그의 안에서 폭발했다.

후안펑이 보낸 소식을 보고 궈쿠이는 분노했다. "그날 위챗에서 무척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어요. 당시 그는 굉장히 감정에 북받쳐 있는 상태였죠. 저는 LPL에 가서 훈련해보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괜찮다고 말했어요. 설령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너는 돌아올 수 있다고. 그렇지만 피해선 안 된다고." 결국 궈쿠이와 탕환펑은 그가 집에서 이틀을 쉰 뒤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훈련을 계속하기로 의견을 합치했다.







JDG에서의 입단 테스트가 끝난 뒤 탕환펑은 다른 팀으로도 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처음으로 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제의받은 선수였지만, 이적 기간이 끝나가도록 LPL로 올라가지 못한 선수로 변신했다. 처음엔 LDL에서 반 년 동안 활동하지 말고 잘 가라앉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엔, 동료들이 LPL로 하나 둘 합류하는 것을 보며 그의 속이 타들어갔다. 이적 시즌이 끝나갈 무렵, 그는 드디어 궈쿠이에게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동시에 SN에서 IGY에 연락을 넣었고, 궈쿠이는 "그래, 또 가볼까?"라고 물었다. 마침내 탕환펑은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너는 LDL에서 우승했어. 그 다음엔 뭘 할 건데? 너는 더 큰 무대로 나가고 싶겠지. 만약 이번에도 안 된다면, 인정할게." 2020년 LPL 스프링 시즌 이적 말기에 매니저 유안시와 SN 구단 관계자들이 탕환펑의 입단 테스트를 위해 IG.Y를 찾았다. 유안시는 상하이 겨울거리에서의, 마르고, 내성적이며, 우유 사탕 브랜드(大白兔奶糖)의 흰 토끼 그림이 새겨진 스웨터를 입고 있던 소년을 기억한다.



LPL에 온 걸 환영해


2020년을 앞두고, Suning Gaming에 합류한지 1년째인 대만 선수 후숴제(ID : SwordArt, SN 서포터)는 매일매일 새로운 시즌을 어떻게 치뤄야 할지 고민했다.

"당시 제가 생각해둔 건, 서포터로서 조금이라도 조작 측면을 좀 낮추고, 맵 전체가 뭘 하는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말하는 걸 늘리고, 팀과 소통하는 걸 늘리는 게 아마 팀에게 도움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는 것 같아요." 내년에 시작하는 스프링 시즌을 앞두고, 그는 포스트시즌부터의 몇 차례 경기를 치른 뒤 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결과적으로 2020년은 후숴제의 생애 중 가장 많이 말했던 해가 되었다. "이전에 Flash Wolves에 있을 땐 그닥 말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작년에 SN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은 신인들이 팀에 있으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 많아졌어요. 말뿐만 아니라 큰 소리도 내야 했죠. 최소 다른 팀원들이 지금 뭐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경기 중 동료들과 잦은 교류가 습관이 되자 그는 점점 목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서머 시즌 후반이 되자, 후숴제는 스태프들에게 목캔디를 사달라고 부탁해 버티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신인'은 천쩌빈(ID : Bin, SN 탑라이너)과 AD 탕환펑(ID : Huanfeng)을 일컫었다. 2020년 전 공식 개최된 선수 연찬회에서 후숴제는 탕환펑에게 물었다. "입단 테스트 끝나고 올 거야?" 상대는 대답했다, "아마도." 나중에 그는 이 곱슬머리의 꼬맹이가 앞으로 1년 동안 자신의 바텀 듀오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탕환펑이 SN에서의 공식적인 데뷔 무대를 가지기 하루 전 후숴제는 식사 자리에서 그에게 말했다.

"내일 경기할 때 네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니면 혹시 우리가 불리해지더라도 절대 말을 멈추면 안 돼. 그냥 모두한테 말해.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캐리하겠다고. 비록 네가 캐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너는 그렇게 말해야 해. 팀이 안심할 수 있도록."

다음 날 SN은 아쉽게 패했지만 후숴제는 자신의 AD를 좋게 평가했다. "첫 경기를 한 사람이 어떤 느낌일지 나도 아니까."

각각 대만과 관시에서 온 두 선수는 다섯 살 차이의 형제 같은 관계를 형성했다. 후숴제는 경기가 끝날 때마다 후안펑과 많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에는 더욱 격렬하게 말했다. "저는 제가 그에게서 고치고자 하고 싶어하는 점들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신인들을 더 빨리 적응시키기 위해 쑤닝은 이전 팀의 AD였던 Fury를 코치로 배치해, 매 판이 끝날 때마다 따로 바텀듀오 2명을 데리고 소규모 복기를 하곤 했다. 스프링 정규 시즌이 끝난 뒤 탕환펑은 한 시즌 내 8차례의 MVP를 거머쥐며 Smlz, Puff와 함께 ADC로서 역대 최다 MVP를 차지했다.

그러나 후숴제는 자신의 AD에게서 이런 '일방적인' 주입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스크림이나 경기를 마친 뒤 대체 내가 어디를 잘못했느냐고 그가 욕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아니면 게임 내에서 강하게 오더를 해서 내가 따르도록 해도 된다고도요. 그래야 발전도 있을 거니까요. 한 사람의 말만 무조건적으로 들으면 본인 자신은 발전할 수 없죠. 왜냐면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 늘어가면서, 탕환펑도 한 번 크게 폭발한 적이 있다. 서머 시즌이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즈음의 어느 날, 탕환펑과 후숴제는 듀오를 돌렸다. 게임이 끝난 후, 둘은 연습실에서 한 차례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다. 후안펑이 그의 서포터에게 이렇게나 격렬하게 감정을 표현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한동안 같이 듀오를 돌리지 않다가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은 후숴제가 후안펑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그는 애당초 왜 상대방이 화를 냈는지 알게 되었다.

"그날 랭킹을 돌리면서 저는 계속 핑을 찍으면서 팀원들한테 오더를 했는데, 왜냐하면 그때 SofM이 우리 적팀에 있어서 제가 말을 하면 다 들렸었거든요. 그리고 저도 상대가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었고. 저는 솔랭에서도 말을 많이 안 해서, 우리가 게임 전체에서 좀 더 많은 소통을 해야 하긴 하지만, 바텀은 특히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아마 우리가 듀오를 돌리는 이상 우리가 더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을텐데, 제가 말을 안 하니까 내가 소통을 안 하려는 게 아닌가, 내가 너무 못해서 말도 나누고 싶지 않아하는 건가? 라 생각한 것 같아요." 그때 왜 후안펑이 화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회상해보면, 후숴제와 매니저 유안시 둘 모두 어쩐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심정이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제가 솔랭을 돌릴 때 그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그를 무시한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LPL에 오른 후에도 탕환펑에게는 자신을 갈고 닦기 위해 올라야 할 경기장이 많았다. 유안시는 그에게 후숴제가 너와는 별로 말이 없을 거 같다 생각했지만, 사실 경기에서 그가 한 말은 너의 몇 백배였다고 알려줬다. 스프링 시즌이 끝난 뒤 탕환펑은 자신이 IGY에 있을 때에는 휴가철이 되면 다들 방탈출을 가곤 했는데, 왜 지금은 그럴 기회가 있어도 그러지 않냐고 물었다. 유안시는 그에게 구단마다 관리방식이 다르고, 우리도 좋은 방식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고, 이것도 좋은 결과가 있을지 모른다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그를 탓하지 않고, 차근차근 할 수밖에 없다." 스프링 시즌 동안 유안시는 후안펑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연말쯤 2020년 신인왕 후보에 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머 시즌 팀이 전면 개편되면서 후안펑은 팀을 위해 희생하는 역에 눈독을 들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한 가지 플레이 스타일만을 가지고 있다. 팀원들이 그를 중심으로 싸워야 하는지, 아니면 팀원들이 다른 라인을 중점으로 하고 싸울 때 그가 혼자 자신의 성장을 보장할 수 있는지. 우리는 후안펑에게서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보았다."

2020년 8월 9일 LPL 서머 정규 시즌 폐막전. SN이 FPX를 2-1로 꺾고 팀 사상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 올해 팀에는 월드 챔피언십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AD와 탑-미드,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한 적 있는 서포터가 있고, 월드 챔피언십에 거의 진출할 뻔한 정글러도 있다. 플레이오프를 앞둔 어느 날 밤, 매니저 유안시는 모든 선수에게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인간이라면 야심이 있어야 해."
"야망은 언제나 옳지. 특히 e스포츠에 있어서 말이야."

한편, 탕환펑과 가장 오래 지내며 함께 숙소 생활을 하는 후숴제는 자신보다 매일 늦게 자고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이 소년에게서 과거의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는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뭘 해도 몰두해서 하는 스타일이에요. 매번 그걸 볼 때마다 제가 처음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나요. 게임 밖은 생각 안 하고 오직 나만 잘해야겠다는 생각. 조금만 더 잘하면, 조금만 더 잘 싸우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 말이죠."




끝맺는 말 : 소년은 바닷가에 왔다


2019년 말 어느 날이었다. 탕환펑은 학교를 다닐 적 일찍 일어나서 랭킹을 돌렸던 것처럼 새벽 5~6시에 일어났다. 일어난 후, 그는 짐을 싸서 상하이를 떠나, 가장 이른 난닝행 비행기를 탔다.

주행 시간은 3시간 반이 조금 넘었다. 난닝에 도착한 후, 후안펑은 또 한 시간 반 동안 기차를 타고 팡청강시로 간 다음, 조금 더 작은 버스를 타고 다시 한 시간을 갔다. 이날 오후 3, 4시쯤 그는 동흥에 도착해, 자신의 과거로 돌아갔다.

휴가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후안펑은 아버지에게 집에 돌아간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 그는 자신이 살던 오두막으로 향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그는 직감했다─ "모든 게 달라졌구나." 그는 공기 중의 먼지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는 어릴 적 방학 중 집에 홀로 남아 있는 것에 익숙했고, 집안은 항상 더러워서 그는 습관적으로 손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야만 했다. 방 안에서 그는 누군가가 청소한 흔적을 발견했다. 일찍이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신속하게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고,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성장했구나." 과거에 이곳에 홀로 살던 그 아이는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간단하게 청소를 마친 후 후안펑은 택시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만웨이(万尾) 해변으로 향했다. 이곳은 동흥시의 비교적 유명한 해변 관광 명소로, 어릴 때부터 후안펑은 대략 7, 8번 이곳에 온 적이 있다. 어릴 적 그의 부모님과 함께 놀러온 적도 있고, 나중엔 친구들과 함께 와서, "매번 올 때마다 거의 빠져 죽을 뻔 했다." 태어나기 전 탕환펑(唐焕烽)의 팔자에선 불 기운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에는 두 개의 불을 의미하는 한자가 붙었고, 아버지는 그에게 가능한 한 물 가까이에 가지 말고 붉은색 옷을 더 입으라며 말하곤 했다.

만웨이에 이르는 길에 탕환펑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택시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어쩐지 조금 슬퍼졌고, 결국엔 눈물을 떨궜다. 눈가를 닦아내며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울어야 하는 걸까?

만웨이에서 호텔을 예약한 후, 그는 붉은 석양 아래 금탄 해변을 따라 바다를 보며 걸으며 홀로 생각했다. 그는 이전에 그가 싸워왔던 LDL, 미래에 가게 될지도 모르는 LPL, 그리고 제 반 친구들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떠올렸다. 그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을 즈음, 그는 자신이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다음날 그는 호텔에서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잤다. 깨어난 후, 후안펑은 바닷가의 걸상에 앉아 바다를 계속 바라보았다. 어제 저녁 해변을 따라 걷던 30분 동안, 후안펑은 반년 전 여름, 광시의 해변에서 느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허무감을 다시 찾지 못했다──광시에서 지냈던 그때의 여름은 그의 인생에서 다시금 느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래도 고향 바닷가에 몸을 맡긴 그의 마음은 오랜만에 평온을 되찾았다. "프로가 된 후,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바다에 관련된 곳을 가요. 그러면 마음이 한 가지 일이나 하나의 문제로 어수선해지지 않아지거든요."

사흘째가 되자 탕환펑은 짐을 싸 상하이로 돌아와, 그의 프로 생활과 현실로 돌아왔다. 19년 인생을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탕환펑의 미래는 그가 동경하는 바다처럼 여전히 미지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 매번 잠깐의 멈춤 후에도,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후, 이 기사를 공유하면서 쑤닝 게이밍 공식 웨이보는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내가 후안펑을 처음 본 것은 스프링 시즌을 위한 프로필 사진을 찍는 드레스룸에서였다. 아이는 아주 한참동안, 단 두 문장만을 말할 수 있었다. "쑤닝에서 좋은 경기를 하고 싶어요." "LPL에서 뛸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후안펑을 두 번째로 만난 건 설날, 숙소에서 회식으로 훠궈를 먹을 당시였다. 아이는 주눅이 들어 구석에서 혼자 훠궈를 먹다가, 나중에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혹시 저도 코코넛 밀크 하나만 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했다.

무척이나 서투른 우리 동생, 우리를 너의 가족으로 바라봐주길. 같이 경기만을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너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도 모두 우리에게 얘기해줄 수 있기를.

다른 사람들이 가진 건 너 역시도 가질 수 있을 거고, 네가 원하는 모든 게 이곳에 있을 거야.

바다가 너를 기다린다. 포기하지 말고 달리자."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건강보험증
20/08/17 15:17
수정 아이콘
컴퓨터 빼면 무슨 60년대 성공스토리 같네요..와...
FRONTIER SETTER
20/08/17 15:31
수정 아이콘
이런 이야길 보면 금의환향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 선수가 자신이 잘 된 모습을 가장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은 어릴 적의 인연들이겠죠
장고끝에악수
20/08/17 15:35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정말 잘하는 선수에요. 이런스토리도 있다니 더 멋있네요
신중하게
20/08/17 16:13
수정 아이콘
소년만화 한편 본것같네요
앞으로 대성하길 기원합니다
차은우
20/08/17 17:16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스프링에도 잘 모르는 선수가 dpm엄청 높은걸 보고 뭐지...?했는데 다음시즌에 4강까지 진출한게 정말 대단합니다. 꼭 롤드컵에서 쑤닝 볼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0/08/17 17:35
수정 아이콘
이 선수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인생역전 드라마같음
20/08/17 18:52
수정 아이콘
이런거 보면 대륙이 크긴 크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제아무리 시골 출신이래봐야 이런 맛(?)이 나오긴 어렵죠...
천지운
20/08/18 02:23
수정 아이콘
중국식 감성...문구 멋지네요
20/08/18 07:36
수정 아이콘
쑤닝도 코치에 퓨리? 역시 한국인없으면 안돌아가는 lpl!
20/08/18 13:32
수정 아이콘
이런 사연이라면.. 응원하지 않을 수 없잖아...
에바 그린
20/08/18 18:4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제 다 읽어놓고 댓글을 깜빡해서 뒤늦게 댓글 남겨요.
농담곰
20/08/18 21:2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댓글잠금 통합 규정(2019.11.8. 개정) jjohny=쿠마 19/11/08 390817 0
공지 게임게시판 운영위원회 신설 및 게임게시판 임시규정 공지(16.6.16) [3] 노틸러스 15/08/31 460017 4
공지 공지사항 - 게시판 글쓰기를 위한 안내 [29] 항즐이 03/10/05 627663 13
80619 [LOL] 내년 lck 총 경기수는 얼마나 늘어날까 [7] newness781 24/11/16 781 0
80618 [LOL] LEC 스트리머 캐드럴 EMEA 프로팀 Los Ratones 창단(Feat.마르틴 라르손) [12] 대막리지4526 24/11/15 4526 7
80617 [LOL] 2025 OKBRO EP.01 - 모건 재계약 [22] roqur4943 24/11/15 4943 1
80616 [LOL] 2025년 no.002 전설의 전당은 누구일까요? [64] Janzisuka6121 24/11/15 6121 0
80615 [LOL] T1 오너 2년 재계약 [89] GOAT9890 24/11/15 9890 12
80614 [LOL] [오피셜] Thank you Roach [69] 우스타10393 24/11/14 10393 7
80613 [LOL] 팀내 역할군에 대해서(feat. 구마유시) [145] 작은형11447 24/11/14 11447 8
80611 [LOL] [오피셜] 케리아 T1과 26년까지 재계약 [258] kapH15015 24/11/14 15015 6
80610 [LOL] [오피셜] 레클레스, 건강문제로 T1와 계약종료 + The end of the journey [34] EnergyFlow12934 24/11/13 12934 7
80609 [LOL] GPT가 말아주는 브위포와 야마토의 대화 [15] 삭제됨7329 24/11/13 7329 1
80608 [뉴스] 2024 게임대상 수상목록 정리 [47] 한입5732 24/11/13 5732 4
80607 [LOL] [오피셜] DK, 배성웅 감독/이정현 코치/하승찬 코치/김동하 어드바이저 영입 [162] EnergyFlow10686 24/11/13 10686 2
80606 [LOL] 페이커는 거품, 퇴물이 되지 않았나? [94] 아몬9492 24/11/13 9492 20
80605 [스타1] 3연벙 X 20 [7] SAS Tony Parker 3608 24/11/13 3608 0
80604 [LOL] 브위포가 말아주는 썰(펨코 펌) [40] 람머스9571 24/11/13 9571 20
80603 [콘솔] 데스스트랜딩 디렉터스 컷 XBOX 용 발매 및 할인 [1] 엑세리온2643 24/11/12 2643 2
80601 [PC] CDPR, 위쳐 3 한국에서 100만장 판매 돌파 및 한국 유저를 위한 영상 [37] Myoi Mina 5474 24/11/12 5474 6
80600 [LOL] 재미삼아 해보는 진지한 역체 논쟁 [107] roqur9469 24/11/12 9469 1
80599 [LOL] 농심 에디 피터 미디르 코치 코코 노블레스 계약 종료 [54] 카루오스8879 24/11/12 8879 1
80598 [모바일] 만 번 깎은 모델링..(명조1.4버전 낮의 문을 두드리는 야밤) [17] 대장햄토리6318 24/11/11 631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