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어제 이 시간에 출시된 게임이고, 하루동안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이야기를 꺼냅니다만, 정성스러운 리뷰와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보통은 최소한 전문 웹진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충분한 플레이 시간을 거치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비욘드 어스는 개인적으로 매우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빨리 이야기를 꺼내려고 합니다.


1. 매력 있는 신세계

가장 큰 장점은 알파 센타우리 때처럼 외계 환경의 모습만큼은 매력적입니다. 외계 생물은 먼저 적대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거의 공격하지 않고, 지구와 전혀 다르면서도 조금만 플레이해도 적응이 가능한 디자인도 마음에 듭니다. 5편 때보다 훨씬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시설들은 시뮬레이션 게임으로는 큰 장점이고요. 사실 알파 센타우리를 지금 하면 처음 하는 사람은 뭐가 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단순하고 멋이 없죠. 그에 비하면 비욘드 어스는 보는 맛이 있습니다.

특히 자잘한 면에서는 도저히 구분이 안 가던 5편의 도로는 훨씬 직관적으로 생겼고, 혐오스럽지 않으면서 이질적인 외계 생물의 모습이나 생소한 자원의 디자인도 좋습니다.

제일 좋았던 부분은 역시 가장 처음 시작할 때였습니다. 후원사부터 시작해서 나만의 개척단을 꾸리고 그 다음에 지상에 착륙한 개척지와 함께 시작하는 비욘드 어스의 초반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그 초반이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2. 발전이 없는 작품

가장 어이 없는 부분은 외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5편하고 텍스트까지 똑같습니다. 아예 바뀐 게 없어요. 심지어 도시 국가를 계승하는 중소 국가 시스템은 더 축소시켜버렸습니다. 5편에선 도시 국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5편만의 장점이었는데요. 거기다가 현 버전에선 인공지능도 별로입니다. 빨리 패치를 내놓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인터페이스는 더 불편해졌습니다. PC로만 나오는 작품이 PC로 플레이하는데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아요. 고 해상도에서 글자 크기부터가 작거든요. 아이콘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살린 건 좋은데, 그냥 있으나 마나한 수준입니다. 특히 유닛 아이콘은 아예 구분이 안 가요. 그냥 개별로 다 외워서 익힐 정도니까요.

여담으로 한국어 번역은 최악까진 아닙니다. 그런데 많이 아쉽습니다.


3. 퇴보한 유닛 시스템

15년 전에 나온 알파 센타우리의 유닛 시스템은 지금 봐도 역대 문명 시리즈 중에서 제일 세련되고 깊이 있습니다. 부품을 조립해서 하나의 완성품을 내 부대로 쓰는 개념은 요즘 출시작 중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죠. 이러니 알파 센타우리와 비교해서 떨어지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5편 기반이니까요.

그런데 5편보다 떨어진다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도 뻔히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을 다 놓쳐버렸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큽니다. 대표적인 예로 기본적으로 유닛 종류가 반토막이 났습니다. 최소한 가위 바위 보 싸움은 되던 5편의 유닛들과 달리, 그냥 숫자 싸움이 되버릴 정도로 줄어들었어요. 그 예로 해군은 함선이 딸랑 두 종류 밖에 없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항공모함이니 실질적으로 함선은 그냥 하나 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그 외의 것들이 나아졌다면 또 모르겠죠. BNW까지 계속해서 개편된 위인 시스템은 아예 삭제되었죠. 물론 대체할만한 것으로 궤도 유닛이 있으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도 삭제해버렸죠. 기껏해야 유닛 시스템에서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줄여야 했던 일꾼 종류를 하나로 통합했던 정도 밖에 없습니다.

사소한 부분도 문제가 있죠. 마지막 단계의 유닛들은 아주 성의없게 이름만 바꿔놓고 외형조차 다른 게 없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숫자와 글자만 다르죠. 문명5가 그랬던가요? 최소한 시대 별로 유닛 외형은 다 달랐던 게 5편입니다. 디자인도 초반부터 중반까지 그냥 우려먹기에 불과하고요. 짧은 시간동안 게임을 내놓았다는 게 아주 뻔히 보이죠.

거기다가 어처구니 없게도 승급 시스템은 아예 선택지가 없는 수준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이러면 세 가지의 지향점과 유닛 업그레이드가 무슨 발전이 있나요? 그냥 더 복잡해졌을 뿐, 제자리 걸음일 뿐입니다.


4. 모든 면에서 부족한 양

대놓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욘드 어스는 모든 면에서 5편은 물론이고, 역대 문명 시리즈와 비교해도 가장 부족한 볼륨을 자랑합니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하나 하면은 50달러로 고작 10달러 정도 낮을 뿐이죠.

직접적으로 비교하면 오로지 싱글 플레이와 멀티 플레이가 동일한 게임 모드 하나만을 지원하고, 그게 50달러짜리 게임의 모든 컨텐츠입니다. 심지어 5편의 시나리오 모드는 비욘드 어스에서 찾아볼 수도 없어요. 거기다가 멀티 플레이 환경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엑스컴은 버그는 있을지언정, 최대한 유저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바꾸기라도 했지, 5편에서 나아진 게 없습니다.

그리고 DLC도 문제가 있습니다. 5편부터 잘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인데, 최근 파이락시스 게임즈의 DLC는 좋게 말하면 안 사도 되는 것들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질적으로 떨어집니다. 제가 5편에선 거의 대부분의 DLC를 전부 보유헀지만, 그 중에서 맵팩은 제대로 이용해본 적도 없습니다.(그 중에서 가관이었던 건, DLC 맵은 크기 조절조차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DLC가 결코 나쁜 기능만이 있는 게 아니죠. 거기다가 일단 유료로 판매하는거라면 최소한 아마추어 유저들이 무료로 배포하는 것들보단 나아야 하겠죠. 그런데 비욘드 어스의 예약 구매 보상은 그냥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차라리 5편의 바빌론 문명 제공이 나았습니다.


5. 총평

50달러란 가격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더 돈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문명5를 플레이하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15년 전에 나온 알파 센타우리를 즐기시는 게 낫습니다. GOG에서 최근의 PC 환경에 맞춰서 내놓았고, 개인이 만든 한국어 패치까지 있죠. 인터페이스 같은 부분이 심각하게 불편할지언정, 완성도는 알파 센타우리가 월등합니다.

물론 재미없는 게임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건 비욘드 어스가 잘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이미 두 차례의 확장팩까지 거치면서 기틀이 잡힌 5편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5편에서 나온 좋은 변화조차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사실 5편 오리지널 때도 이러한 비판이 있기야 했죠. 그런데 5편은 최소한 여러 면에서 전작과 완전히 차별화된 개편점을 들고 나오기라도 했습니다.

이제 막 나온 게임인데 너무한 평가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명5를 꽤 즐겨봤고, 그 어진의 시리즈도 즐겨본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만큼 게임이 너무 '짧습니다.'